오월엔 날들이 많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되는 날들. 

4.19혁명의 열기에 군인들이 찬물을 끼얹은 날. 

처음에는 기대도 있었다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 군대에 의해 쿠테타가 일어나는 역사는 정상적인역사가 아니라는 것. 

이 중심에 박정희가 있다. 

그 이후 18년 동안 우리나라를 통치하게 되는 사람. 

과유불급이라고, 적당한 때에 정치에서 물러났다면 지금과 같이 논란의 중심에 서지는 않았을테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지도 않았을텐데... 

그에 대한 평가는 엄정하게 해야 한다. 공과를 확실히 따져야 한다. 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거부할 것은 거부해야 한다.  

우리 현대사에 부정적인 역향을 주었다고 판단하지만, 내가 하는 이 판단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발전을 이룬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아, 기념관을 짓자고 하는 사람도 많으니... 

아직도 박정희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21세기 우리는 박정희를 완전히 극복해내야지만... 공화국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음, 국가를 말하다에서 이야기하는 공화국은 박정희의 유산을 떨쳐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위해서는 박정희를 알아야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왜 아직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벗어나는지...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 

최상천이 쓴 "알몸 박정희" 

꼭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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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시대현실 - 염무웅 평론집
염무웅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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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염무웅의 문학평론집이다. 소위 386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486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염무웅은 백낙청과 더불어 친숙한 평론가이다. 마치 60년대에 이어령이 친숙한 평론가이듯이 말이다. 

소위 평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전문가에 해당한다. 바둑으로 말하면 프로기사가 되고, 무협으로 따지면 무림고수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가 평론가가 아닌 이상 평론집을 읽는 행위는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도전하는 일이고, 이제 갓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이미 일가를 이룬 고수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일이 된다.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이 된다. 그러나 이 불공정한 게임은 즐거운 게임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미 평론집 읽기 행위는 자신도 어느 정도 문학에 대해서는 해석을 할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길 수 없듯이, 또 갓 무림에 입문한 사람이 고수를 이길 수 없듯이 고수들의 현란한 기술에 초심자는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금방 기가 죽는다.  

하지만 기 죽어서는 안된다. 이미 시작부터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는 그 작품들을 다 읽고 자기만의 관점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문학을 해석하지만, 초심자에게는 아직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초심자가 평론가가 비평하고 있는 작품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작품들을 다 읽기로 하고 덤벼든다면, 이미 초심자는 평론가를 따라갈 수가 없게 된다. 그 작품을 읽고 생각을 다듬는 동안, 평론가는 다른 작품들을 읽고 자기만의 글쓰기를 하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우리는 스승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어리석은 제자가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우리를 범하지 않기 위해, 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배에서 내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평론가의 해석을 따라가지 말고, 그가 어떤 관점에서 문학작품을 바라보고 해석을 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의 해석방법이 내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보고, 나만의 해석방법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조언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된다. 염무웅은 문학을 사회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자, 나는 작품을 사회와 관련지어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와는 전혀 관련짓지 않는 그 무엇으로 작품을 해석할 것인가. 

나는 염무웅의 관점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그의 해석 전부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작품을 사회와 관련지어 보더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김광섭, 임화, 팔봉 김기진, 신동문, 그리고 최하림, 이성선, 김영무를 다루고 있는데, 이성선, 최하림, 김영무 부분이 좀 낯설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앞 부분의 작가들은 치열하게 현실과 대립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고 볼 수 있는데(김광섭은 후기시로), 이 세 작가들은 자연을 노래하는 시들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에 의탁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든지, 관조하며 자연을 노래하든지, 자신과 하나된 자연을 노래했겠지만, 앞의 시인들과는 이질적은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이들을 3부에 속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부에서는 고은과 신경림,조태일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시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 작가의 경험과 시인들의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어 읽기에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신경림 시인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경림 시인 부분이 가장 좋았다고 할까.

3부에서는 시집에 대한 해설로, 소개된 시집을 다 읽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저자가 어떤 관점에서 시를 바라보고 있나를 중심으로 살피면 나름대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마음에 끌리는 시집이 있으면 한 권 사서 읽어도 좋고. 

4부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이라는 것이 문학사에 살아남은 몇 소설을 빼고는 대부분 잊혀진 소설이라서,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것도 많고, 또 읽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려 우리가 작품의 해석에 결코 저자를 따라갈 수 없는 부분으로 남게 된다. 김정한, 송기숙, 황석영이야 문학사에서도 언급이 되니 그렇다쳐도, 95년의 소설풍경1,2,3,4와 성석제, 최인석의 소설집은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는 그 많은 소설 속에서 지금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니, 이 평론들은 지금의 현실에서 잘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이 작가들의 소설집을 읽었는데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세월이 지났다.  

시와 달리 작품을 전혀 모르고 평론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는 글자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놀고, 자칫하면 저자의 생각에 백기를 들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2010년 말에 출간된 책에 1995년의 소설평이 들어가다니, 좀 당황스러웠다.  다만 염무웅이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는 일관된 생각, 문학관이 지금도 유용하고 작품 분석에 적용되기에 이 글들이 이 책에 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부는 남북문학, 서양문학과의 관련 글들이라, 지금도 유효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 둘 다 진행형이지 않은가. 이는 저자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는 부분이니,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읽으면 좋다. 특히 서양문학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영문학, 독문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은 외국문학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이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거리이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글들이 쉽게 읽힌다. 역시 고수는 다르다. 글을 결코 어렵게 쓰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한 번 손에 잡으면 주욱 읽게 된다. 특히 7,80년대 대학에서 문학에 대해서 고민을 한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향수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문학평론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문학평론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구실도 하는 책이다.  

한 번 염무웅과의 문학작품을 사이에 둔 불공정 게임에 참여해보자. 불공정한 게임이지만 즐거운 게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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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존재를 일컫는 말이 아닐까 하는데, 과연 이 땅에 스승은 존재할까. 

단지 시간과 공간에 매인 계약관계로 끝나고 마는  관계로 전락하고 말지 않았는가. 

한 때 양정자의 '중학교 선생'이란 시를 읽고 참 슬프다.  

어린아이에서 사춘기로 고통스럽게 진입해 들어가는 

번민 많은 아이들을 가득 싣고 

슬픔의 급행열차가 잠시 멎는 

시골의 쓸쓸한 간이역 같은 중학교 

거기 몇 십 년씩이나 서서 

손을 들어 달리는 그 기차를 멈추게 하고 

멎은 기차를 또다시 출발시키는 

해마다 늙어가는 기차역원같은 

돈도 명예도 없고 

있었던 실력도 오랜 세월 쓰지 않아 녹이 다 슬어버린 

허름한 중학교 선생 

스치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속력은 너무 빠르고 바빠 

몇 년 지나면 마침내 

아무도 찾지 않고 잊혀지는 중학교 선생 

양정자 시집, 아이들의 풀잎노래, 창작과 비평사에서 

그러나 현실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듯 금방 잊혀지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사들이 있지 않은가. 물론 스승이란 교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분을 스승이라 일컫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니 스승의 날 하면 학교 교사, 또는 교수 중에서 찾는 경우가 많으니...  

 진정한 스승이란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고, 제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류의 스승이라 할 공자도, 예수도, 서가도, 마호메드도 제자들이 없었다면 스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꼭 위대한 인물들 말고도 우리 주변에서 남 모르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가까이 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닌 사람, 그 사람은 스승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즉 진정한 스승은 없다고 단정짓지 말고, 나 자신이 스승을 찾을 제자의 자세를 지녔는지, 그리고 그런 스승을 뛰어넘을 각오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반걸음 앞서 가기-선생 노릇1 

딱 반 걸음만 앞서가야지.  /  의식하지 못해도 / 늘 눈 앞에 보이게. /
하는 행동 하나 하나 / 모두 보이게. / 강요하지 않고, / 빨리도 가지 않고, /
늦게도 가지 않고, / 오직 반 걸음, /
겨우 저 정도야, / 금방 따라 잡을 수 있을 걸 / 하게 해야지. /
그래서 반 걸음 / 손을 내밀면 / 언제든 /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게, / 손 잡고 함께 / 함께 /
갈 수 있게, / 반 걸음만 / 겨우 / 반 걸음만 앞서 가야지, /
그 힘든 길을.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고 교사의 자세란 어떠해야 하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의 대안학교의 시초가 이오덕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죽어 있는, 판에 박힌 글쓰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이들의 감정과 생활이 살아있는 글쓰기를 하셨던 분. 엄혹한 시절에도 본인의 교육관을 지키려 노력하셨던 분. 그 분의 책 중에 "내가 무슨 선생노릇을 했다고"가 생각난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은 딱 반걸음 앞서간 스승이지 않을까. 

이런 이오덕 선생님 말고, 또 한 사람, 원주에서 생활을 했으나,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 분. 비록 학교 교사노릇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이웃에서 우리들보다 딱 반걸음 앞서가면서 삶의 귀감이 된 분. 장일순 선생님. 책으로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 분의 삶과 말을 기록한 그 책들은 내게 충격이었다. 이 분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었구나 하는 생각.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자신을 부끄러워한 분. 서민의 생활에서 진리를 찾으셨던 분. 결코 드러내려 하지 않았으나 그래서 드러난 분. 한 번 읽어보자.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한 분은 제도권 교육에서 애쓰셨던 분이고, 한 분은 제도권 교육 밖에서 애쓰신 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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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새어 나온 지 두 달이 되었다. 

이 재앙이 인간이 만든 재앙인데, 인간의 특별한 능력인 망각의 능력이 우선인지, 많이 잊혀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다. 

일본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 종료되지 않고, 아직도 진행중인데, 우리는 종료된 것으로 생각을 한다. 

우스운 일이지. 아마도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오래된 원전들을 계속 가동한단 소리도 있고, 새로운 원전을 건설한다는 소리도 있고, 원전을 수출한다고 자랑도 하고... 

하지만 한 편에서는 원자력 발전소라고 하지 말고, 핵발전소라고 하자는 주장도 있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원자력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기도 다르게 된다. 

이번에 읽은 녹색평론에서 원자력 발전 말고 대안이 없다는 말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이런 말을 했다. 그래 이 말이 맞다. 대안이 없어도 원자력 발전은 안 된다. 그것은 핵발전이고, 가장 비민주적인 발전이고, 우리의 미래를 파괴하는 발전이기 때문이다. 

지금 막 검출되고 있는 세슘이 반감기가 30년이라고 한다. 이 위력이 반으로 주는데, 30년이 걸리는데, 이게 한 번 나오고 계속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닌데, 계속 공기중에 떠다니든지, 바다 물 속에 있든지, 토양에 남아 있든지, 아니면 여러 동식물에 남아 있을텐데, 이 영향에 대해, 이 위험에 대해 지금 어떤 언론이 다뤄주고 있는지... 

그래도 이번 녹색평론 118호에서 이 문제를 다뤄줘서 고맙다. 역시 녹색평론은 배신을 하지 않는군. 

마음은 답답한데, 예전에 나온 책이지만, 한 번 이런 책들 읽어보자. 

세상에 알면 대책을 세우기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옛날 책이라고 다 구식이 아니니... 

1. 로버트 융크, 원자력 제국, 따님 

2. 히로세 다카시,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 푸른산 

3. 다카기 진자부로, 시민과학자로 살다, 녹색평론사 

4. 다카기 진자부로, 원자력 신화로부터 해방, 녹색평론사 

5. 토다 키요시, 환경학과 평화학, 녹색평론사 

6. 고이데 히로아키, 은폐된 원자력-핵의 진실, 녹색평론사

7. 고이테 히로아키, 원자력의 거짓말, 녹색평론사  

그리고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에 대해 심층적인 이야기를 글로 남긴, 

무엇보다도 먼저 읽어야 할 녹색평론 118호, 119, 120,121,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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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핵-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2014 올해의 환경책 / 『한겨레』가 뽑은 '2013 올해의 책' / 『시사IN』선정 '2013 올해의 책'
김익중 지음 / 한티재 / 2013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7년 10월 21일에 저장
절판

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 2012년 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2년 02월 1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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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2년 01월 29일에 저장
품절

녹색평론 통권 118호- 2011년 5-6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1년 5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3% 적립)
2011년 05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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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코바치의 텍스트 읽기 혁명 - 모든 텍스트의 진실을 가려내는 6가지 툴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지음, 김원옥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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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땡전 뉴스'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보도지침'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던 이 말은 우리에게 뉴스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데 일조를 한 말들이다.  

9시를 알리는 시간이 땡하고 치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한다 하여 땡전뉴스, 어떤 것은 보도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라는 지침을 아예 내렸던 보도지침. 이 때 일반 사람들은 뉴스에 대해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 뉴스와 뉴스 사이에 숨어 있는 행간을 읽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마찬가지로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문화방송 광주지국을 불태웠다고 들었는데, 이는 문화방송이 제대로 된 뉴스를 보내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방송은 제대로 방송했을까. 아니다. 사람들이 한국방송은 아예 불공정 방송을 한다고 제쳐놓았고, 문화방송만은 그래도 공정방송을 하겠지란 기대를 했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자 방송국을 불태웠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나는 이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가. 책을 통해서 얻었다. 그렇다면 책은 1차정보인가, 2차정보인가. 믿을만한 정보인가, 아니면 왜곡된 정보인가. 

이런 점들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 텍스트 읽기 혁명이다. 텍스트 읽기 혁명이라는 제목보다는 사실, 뉴스를 바르게 인식하는 법 정도가 더 어울리는 책인데, 그 정도로 이 책에서 말하는 텍스트란 뉴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텍스트를ㅡ 여기서는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분류하면 확인의 저널리즘, 주장의 저널리즘, 단언의 저널리즘, 이익집단의 저널리즘, 통합의 저널리즘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이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구분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다음은 텍스트가 완전한지, 무엇이 빠졌는지 알아내야 하고, 텍스트의 출처, 정보원에 대해 알아내야 하며, 증거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고, 주장과 단언만이 넘치는 텍스트를 경계해야 하며, 정말로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숙고하라고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글쓴이가 주장하는 텍스트를 읽는 여섯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미디어 저널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입증자, 의미부여자, 조사자, 증인, 권한 부여자, 똑똑한 통합자, 포럼구성자,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만이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시대에서 이제는 우리 모두가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 그리고 시민 기자들이 만들어가는 인터넷 언론도 생긴 지금 모두가 텍스트를 바르게 읽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는 이 책 저자들의 주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르게 읽고,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면 민주주의는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기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만 읽을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하고, 마찬가지고, 기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겠다는 사람도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정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엄청나게 많이 주어지는 정치적인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우리들의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판단할 수 있는 어떤 틀, 도구를 우리들 자신이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 텔레비전 뉴스나 인터넷 뉴스, 신문 등을 분석해 보자. 아니 생각해보면서 한 번 그 텍스트를 읽어보자. 과연 우리나라 언론들은 사실을,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

아마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를 보게 될 것이다. 

덧말1 : 이 책은 바야르종이 쓴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이나 바지니가 쓴 "가짜 논리" 와 함께 읽으면 더 좋다. 

덧말2 : 그런데, 다산초당은 인문사회 전문 출판사인데, 특히 텍스트를 다루는 이 책에서 가끔 눈에 거슬리게 오타가 나타난다. 문장의 뚯이 연결되지 않는 오타가 심심찮게 보이는데, 읽기에 방해가 된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런 문제. 조금만 더 출판사가 신경을 썼으면. 물론 많이 신경을 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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