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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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빨리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 책이다. 이런 책은 드문데, 구절구절이 마음에 와 닿고, 그 구절을 좀더 마음 속에서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다. 도처에 인용하고픈 문장들이 있지만, 굳이 인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솔닛의 말을 인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더 이 책의 내용에 맞는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마지막 부분은 꼭 인용하고 싶다. 이것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은 그저 발성할 수 있다는 동물적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화들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렇게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세가지 있다.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이다.

가청성이란, 그의 말이 청취된다는 것을 뜻한다. ... 신뢰성이란, 그가 말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그를 기꺼이 믿어준다는 것을 뜻한다.  ...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존재라면, 그에게는 권리가 있다. 그의 말은 그 권리를 위해서 일한다.' (286~288쪽)


그렇다면 나에게 솔닛의 책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을 모두 갖춘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솔닛이란 이름 자체에 신뢰감을 느끼고, 책을 찾아 읽으니 말이다. 읽으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 또는 보지 못하고 있던 부분을 찾게 되니.


솔닛은 이 책의 끝부분에서 손금을 봐줬던 사람이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당신은 결국 운명대로 살고 있네요." (296쪽)


이 책은 바로 솔닛이 겪은 이 우여곡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신이 목소리를 지니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 역시 목소리를 지니지 않은 세상에 없는 존재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자신을 직면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과정.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책을 발간하고, 또 행동으로 나서기도 하고.


그동안 읽었던 솔닛의 책이 어떤 과정 속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그 책들의 내용을 다시 반추하면서, 아 이렇게 솔닛이 우여곡절을 겪고서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알게 해주는 책이다.


운명대로 산다는 말은 곧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산다는 말이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문제에 맞닥뜨려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세상에 없던 자신을 찾아내고 세상에 있는 존재로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손금을 봐주는 사람의 말을 빌려 한 말은 곧 솔닛의 삶을 정리하는 말이 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단단해진 솔닛.


또한 보이지 않는 또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삶들이 결코 쓸모없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솔닛. 그런 솔닛의 문장을 읽으면서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이 생각나기도 했다. 온전한 불상도 소중하지만 깨어진 불상도 그 자체로 소중함을.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우여곡절이고, 그런 우여곡절을 겪지만 우리 역시 운명대로 살아가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또 솔닛의 삶을 보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그 과정에서 웹툰 '화산귀환'의 장면이 생각났다. 상처를 통해서 더 강해진다는 119화의 장면. 


(화산귀환 - 119화 : 네이버 웹툰 (naver.com),  하지만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이 웹툰과 솔닛의 말은 차이가 있다. 물론 웹툰에서 주인공인 청명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지만, 이는 주인공인 청명이 바로 이야기를 하는 주체라는 말이 된다, 아직 다른 인물들은 청명의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다. 그들은 솔닛처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제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그 웹툰은 청명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가 될 테다. 우리 역시 솔닛의 말을 솔닛의 말로만 따라가면 우리의 말,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우리도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솔닛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솔닛은 글에서 자신의 운명은 '어떤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302쪽)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깨뜨리기 위해서도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닛은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다. 받아들였다. 바로 자신의 운명, 자신이 해야할 일을 직면했다. 


운명에 직면해서 회피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솔닛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찾아내어 밖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기존 이야기를 깨뜨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 운명대로 살고 있는 솔닛이라고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그 과정, 이 책에 잘 나와 있으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자. 읽으면 읽을수록 솔닛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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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외부자들 - 학교 내부자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박순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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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어 있는 나라. 그 나이 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나라. 그렇다고 모두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두가 학교에 가는 나라. 그럼에도 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라.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학교를 다니지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학교에서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으로는 원하는 학교로 진학하지 못한다고 다시 학원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 나라.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보다는 적지만, 너무도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나라. 학교와 학원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고민도 없이 오로지 성적, 성적을 향해 아이들을 달리게 하는 나라.


그래서 학교나 학원은 아이들 성적을 올리는 것이 최우선이 되게 하는 나라.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닌 나라. 교육의 본질이 성적이라는 지엽말단에 잠식당해 본말이 전도된 나라.


이것이 지금 한국 교육의 현실 아닌가. 이런 교육 현실의 제일 앞에 있는 교사들의 상황은 어떤가? 많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지 않나. 많은 교사들이 민원이 두려워 책임을 지지 않는 교육활동만 하려고 하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있을까? 이는 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 않을까?


교사들도 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교사들보다도 더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책의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미래의 교육은 더욱 암담해질 것임도.


학교 외부자들이라고 했지만, 꼭 외부자들은 아니다. 이 책은 교사들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외부자들이라는 표현보다는, 제대로 된 교육을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교육이 단지 성적을 올리는 일이 아님을,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이 바로 교육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우선이 되어야 함을, 서로가 서로를 믿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무엇보다도 이런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를 옥죄고 있는 수많은 공문들을 줄여야 함을.


교사가 교육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지금보다 더 나은 학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래서 교육지원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교육청이 자리를 잡고, 일을 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물론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육활동에 전념한다는 말은 수업에만 집중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육활동에는 수업을 포함해서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상담 및 다양한 활동이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공문서 처리할 시간에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을 열심히 하고 이에 못지 않게 학생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가며, 학부모와 소통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교육청은 환경을,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만 학교 외부자들이라고 바깥에서 보면서 공연히 훈수나 두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하지 않고, 함께 좋은 교육을 해나가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주장으로만 그치지 않는 데에 이 책의 장점이 있다. 저자가 부임했던 학교를 예로 들어 어떻게 해야 학교 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법'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학교를 열어두는 것이다.


어쩌면 학교는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법의 적용은 가능하면 가장 나중에 하는, 먼저 교육으로 접근하고, 오랜 시간 동안 교육으로 소통하면서 지금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래야 교육의 주체는 학생-학부모-교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대해, 교사에 대해 너무도 안 좋은 말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교사들도 당연히 읽어야겠지만, 학부모를 비롯해, 교육청-교육부에 있는 관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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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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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수선하다. 세계 곳곳은 인간이 일으킨 전쟁으로 어지럽고, 또한 인간이 초래한 기후재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현실을 도외시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우리 눈에 띠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권력을 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 말, 행동. 정말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고,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고, 내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마음이 우울하다. 세상이 어수선한 것 만큼이나 내 마음 역시 뒤숭숭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 무언가 위안을 얻고 싶다.


눈에 보이는 책, 성경의 일부분을 펴본다. 잠언이다. 좋은 말을 마음에 담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 쪽이나 펼치는데, 10장이다. 그 중 2절부터...


"2절 불의의 재물은 무의미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4절 손을 게으리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6절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7절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9절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11절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2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16절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말들이다. 이런 말들을 자신의 삶에 달고 사는 사람. 비록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주변에 많다. 우리가 보지 않고 듣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사람은 의외로 많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지만, 촌스러움은 다른 말로 하면 순박함이다. 순수함이다. 인간이 지녀야 할 품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비단 전라도에만 속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속하는 말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전라도라는 지역과 전라도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책을 낸 이유는, 우리가 어떤 편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이라는 퀴퀴한 용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전라도를 비하하는 말들이 나돈 적이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됨을 말하고 있는데...


이 작은 나라에서 또 지역을 나눠 거리를 두려고 하는 행위가 결코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바로 앞 성경에서 인용한 악인의 말과 행동일 수 있다.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 책은 전라도닷컴에 연재됐던 글이기도 하다. 전라도 말의 구수함을 이야기하고, 전라도 사람들의 인심과 전라도의 맛을 알려주고, 전라도의 멋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책이다.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전라도 하면 떠오르는 전주비빔밥과 같은 널리 알려진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해먹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또 지나가는 길손과도 함께 하는 집밥에 대해서, 그런 음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다.


그냥 사랑가는 사람들 이야기. 그러나 그들의 삶이 결코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음을. 간난신고라고 하는, 그러한 삶의 여정을 거쳐온 분들의 이야기가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나보다는 남과 함께 하려는 마음, 그런 행동들이 이 책 곳곳에 드러나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 전라도의 촌스러움이 아니라 순박함,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살아왔던 우리의 미래였음을 알게 된다.


오래된 미래, 전라도의 촌스러움, 아니 순박함. 그 아름다움과 인정을 맛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성경과 관련지어 이 책의 저자가 마지막에 한 말을 인용하면서 맺는다. 이래야 한다. 정말.


"굳이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먹을거리를 '불사약'이라 여기는 순정한 전라도 농부의 마음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주면 좋겠습니다. 전라도와 전라도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은 한국인의 몸과 영혼을 살찌워 온 곳간에 침을 뱉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요." (344쪽)


꼭 전라도만이 아니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말을 쓰거나,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전라도만의 특성이 있듯이 각 지역은 자신들만의 특성으로 살아왔을테니, 그 특성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를 갖추면 좋겠다.


이 책에 나오는 엄청난 전라도 말들의 구수함은 경상도 말들의 경쾌함과 어울리니 말이다.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이 바로 우리들임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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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 2 - 지리는 어떻게 나라의 운명을, 세계의 분쟁을,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2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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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보다는 범위가 좁아졌다. 1권이 거의 대륙을 중심으로 지리의 힘을 이야기했다면, 2권은 개별 나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물론 1권에서 다룬 중국이나, 미국같은 나라는 다루지 않는다. 이들 나라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고, 또한 세계 최강대국으로 남아 있으니, 대륙과 함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런 최강대국을 빼고 지구에서 중요한 위치나 역할을 하는 나라들을 다룬다.


호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그리스,터키(튀르키예), 사헬, 에티오피아, 스페인 그리고 우주.


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면서 펼쳐가고 있을 뿐이다.


나라가 만들어진 것, 민족들이 구성된 것 등등에 지리가 미치는 영향은 중요하다.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반경 내에서 민족이 구성되고, 이 민족을 중심으로 나라가 형성된다. 


가만 놔두면 지리를 중심으로 민족국가가 형성되었으리라. 그런 민족국가는 큰 나라가 아니라 작은 나라였을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지 않을까 한다.


지리의 영향을 벗어나는, 자신들의 생활 범위를 넘어서는 곳에서는 다른 민족국가들이 형성될 것이기 때문에, 소국과민이 바로 지리와 맞닿는 민족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소국과민은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역사에나 등장하는, 또는 듣기 좋은 말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족국가는 하나의 민족이 나라를 이뤄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이 미치는 범위까지를 한 국가로 삼는 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커진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물자가 필요하고, 자급자족이 안 되는 나라들은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된다. 외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리적 이점이 필요하다. 강대국이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이 있어야 하고, 쉽고 빠르게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지리적 조건도 충족되어야 한다. 이는 산악과 강과 바다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호주가 큰 대륙이자 나라임에도 대부분의 국토는 사막이다. 아직까지 최강대국이 되지 못한 이유다. 그럼에도 호주는 바다를 이용할 수가 있고, 또 떨어져 있어 외부로부터의 침임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한 지리적 이점이 앞으로 호주를 더 발전시킬 것이다. 호주와 같이 섬나라인 영국은 그러한 이점을 최대로 활용했던 나라다.


지금은 브렉시트로 인해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고 하고 있으며, 아일랜드가 독립해서 바다로부터의 방어가 예전만큼 원활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바다와 닿아있지 않은 에티오피아같은 경우는 외부로 나아가기가 힘든 조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에티오피아의 한계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나일강의 수원이기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터키와 이란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천연 요새라고 할 수 있는 지형조건도 갖추고 있지만, 자신들의 정치, 종교때문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고, 자신들 주변 국가들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향후 세계 정세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 세계 정세를 보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특이하게 우주를 들고 있는데, 이는 상상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 문명발달도 있지만, 이제 인간은 지구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화성을 비롯한 우주로 나아가려고 한다.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주 개발이 자칫 지구에서 갈등을 더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지구의 지리적 힘이 우주 공간의 점유와 이용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인데, 적어도 인류가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주에 대한 전세계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리의 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러한 지리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생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더 생각하게 된다.


우주로 눈을 돌릴 때, 지구에서는 오히려 소국과민을 생각해봐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 즉 지구연방에, 각 지형에 따라 자치를 행사하는 형태로 지구인들이 생활하는 미래.


꿈이겠지만, 그렇게 나아가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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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브레드위너 세트 - 전4권
데보라 엘리스 지음, 권혁정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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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시 평범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학교와 집을 오가며, 다른 사람이 일해 번 음식을 먹고 싶고,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고. 난 그냥 그렇게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데보라 엘리스, 브레드 위너, 첫번째 이야기. 나무처럼. 2020년 첫판 2쇄. 136쪽)


이런 것이 소망일 수 있을까? 소망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소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처연하고 슬프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소원이 된다는 사실이. 그런 소원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다.


소설은 몇년의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현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르포나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기에는 너무도 처참해서 차마 다룰 수 없는 참담함. 비극을 소설은 다룰 수 있기에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겪는 참혹함을 이 소설보다 잘 드러낼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소설이 무겁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린 소녀가 주인공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소녀의 시선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어둡고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이, 웃음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이 문학의 힘인지도 모른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총 4권이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브레드위너]라는 제목으로 3부작이 나왔고, 그 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4편을 썼다고 한다. 번역은 '소녀 파수꾼'으로 했지만, 영어 제목은 '내 이름은 파바나(My Name Is Parvana')'다. 이 소설의 주인공 파바나.


1권은 아버지가 잡혀간 다음, 남자 없이는 외출이 금지당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세상에 남자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다니... 그럼 남자가 없는 집은 그냥 집 안에서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게 파바나가 남장을 하는 이유다. 파바나만이 아니다. 많은 소녀들이 남장을 하고 일을 하러 나온다.


당연한 일이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뒤, 외국 유학을 갔다온 아빠는 잡혀가고, 대학을 나온 엄마는 여자라는 이유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현실. 파바나를 통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펼쳐진다.


2권은 엄마와 언니가 떠나고, 그들을 찾아 떠나는 파바나의 여정이 그려져 있다. 파바나가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아이들. 그 아이들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아이들이다. 


수많은 지뢰,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 특히 어린 여자들은 사람이 아닌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재산일 뿐이다. 이것이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인가? 우주로 인간을 보내려고 하는 이 시대에 그런 일이 용납된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한 비극이다.


3권은 프랑스로 가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일을 하게 되는 파바나의 친구 샤우지아의 이야기다. 개인의 행복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개인은 행복해질지 몰라도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여성들만의 삶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많은 아이들이 지뢰로 발을 잃거나 죽임을 당한다. 또한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는 남성들도 고난을 겪는다. 탈레반의 극단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 역시 고통을 받는다. 


탈레반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사회, 그런 사회를 두고 개인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에펠탑에서 유럽의 풍경을, 안식을 누리고 있을 때 떠나온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샤우지아는 그래서 프랑스로 떠나지 못한다. 위라 아줌마를 도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녀들이 겪는 비극을 1,2,3권이 다루고 있다면 4권은 몇 년 뒤다. 


그 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탈레반을 축출하는 미군이 등장하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은 행복해질까? 아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마치 신동엽 시인이 노래한 '봄은'이라는 시처럼 말이다.


봄은 - 신동엽


봄은 /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 // 너그럽고 / 빛나는 / 봄의 그 눈짓은, / 제주에서 두만까지 / 우리가 디딘 /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 겨울은, / 바다와 대륙 밖에서 /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 이제 올 /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 우리들 가슴 속에서 / 움트리라. // 움터서, /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신동엽 전집, 창박과비평사. 1985년 3판. 71-72쪽.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내부에서 변화가 오기는 하지만, 아직은 너무도 미약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파바나의 엄마는 여학생을 위한 학교를 세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살해의 이유가 된다. 여전하다. 소련과의 전쟁이 끝나도, 탈레반의 통치가 끝나도, 그리고 미군이 들어와도...


미군이 들어오지만 과연 달라졌을까? 현실에서는 미국 역시 소련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다시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통치를 받는다. 여성들은 여전히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남자의 예속물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 제목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해피엔딩이라도?'라는 제목. 그럴 수가 없다. 아무리 소설에서 희망을 주려 해도 희망의 처음이 보이지 않으니.


이 소설이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외국 작가가 썼기 때문에 이렇게 적나라하게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표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에게 '봄'이 와야 하는데, 소련이나 미국과 같은 외부에서가 아니라 또 탈레반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라는 힘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그들이 서로 존중하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일 때,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려 할 때 '봄은' 그때 비로소 온다.


파바나나 샤우지아가 그런 봄을 촉발시킬 사람들이다. 그들은 비록 해피엔딩을 꿈꾸지 않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로 피해가지도 않는다.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해나갈 뿐이다. 봄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


파바나와 샤우지아. 그들에게는 아직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이 냉랭한 겨울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봄이 와 있다. 남들과 함께 누릴 봄을 예비하고 있는 그들이다.


여기에 꼭 탈레반이 추종하는 이슬람 극단주의만이 아니더라도, 종교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사람이 종교를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서양의 역사를 보면 종교를 위해 사람이 존재해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등. 지금도 종교로 인해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들.


이렇게 이 소설은 종교와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도 한다. 4권으로 나뉘어 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아주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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