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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돈키호테 - 박웅현과 TBWA 0팀이 찾은 창의력 열한 조각
박웅현 외 지음 / 민음사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엉뚱함의 대명사. 어린 시절 축약본으로 읽은 돈키호테는 정말로 엉뚱한 사람이었다. 풍차를 괴물로 착각해 창을 들고 돌진하다니... 완역본으로 읽었을 때는 2부에서 다른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돈키호테는 엉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끝이었는데...
이런 돈키호테를 창의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 책은. 그렇다. 엉뚱함이란 기발함과 통할 수 있다. 남들이 생각하는 길에서 벗어난 사람을 기발하고 엉뚱한 사람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기발하고 엉뚱한 사람들은 대개 배타적인 취급을 받았다. 남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남의 이해에 굳이 매달리지 않았다. 남의 이해보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매진했다. 돈키호테를 보라. 주변 시선을 의식하기나 하는가.
이 책은 박웅현이 읽은 카잔차키스의 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역시 조르바라는 이질적인 사람을 만나 겪은 일을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지만, 그의 글에서 '스페인은 여러 국가들의 돈키호테다. ... 안전과 복지를 우습게 여기면서 절대로 손에 넣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영원히 좇는다. ... 콜럼버스, 그는 바다의 돈키호테였다.' (6쪽)라는 구절을 보고, 아, 이것이구나 하고 돈키호테들을 찾는 일을 했다고 한다.
찾으려고만 하면 찾게 된다. 돈키호테를 소설 속의 인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한 순간, 도처에 있는 돈키호테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카잔차키스도 돈키호테라고 생각한다. 이런 돈키호테들 중에 스페인 사람으로 건축가 '가우디'를 들 수도 있겠고.
하지만 이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알려져 있는 인물도 좋지만, 다른 방향에서 돈키호테들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러한 '돈키호테 프로젝트'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책답게 시작을 책에서 한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 그 잡지를 만든 한창기라는 사람. 그렇다. 발상의 전환. 그러나 단순히 발상만 전환해서는 안 된다. 그 발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갖추고 완성도를 추구해야 한다.
발상의 신선함으로 끝나지 않고, 결과의 완성과 아름다움으로 끝나야 한다. 그래야 돈키호테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참신성과 더불어 잡지 내용의 알참, 디자인의 아름다움 등을 갖췄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 새로운 시도였지만 많이 읽힐 수 있었다고...
'임스 체어'를 만든 부부도 마찬가지고...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돈키호테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 책의 말미에 가면 세종대왕이 등장한다.
그렇지. 세종대왕도 돈키호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길, 조선의 길을 가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중국 역법에서 벗어나려 했고, 조선의 성정에 맞는 음악, 과학을 하려 했으며, 종국에는 조선인이 쓰는 말을 표기하는 언어, 훈민정음을 만들어냈으니...
발상의 전환만이 아니라 그것을 추진하는 추진력, 그리고 완성해서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함까지 갖춘, 모양새도 아름다운 한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세종이라는 돈키호테에 의해. 지금 우리는 이런 한글에 '디자인'을 더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인물 중 한 사람인 장사익이 글씨를 쓰면서 써놓은 한글을 디자이너 이상봉이 자신의 옷에 한글을 입혀, 그것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한글은 이제 글자로 끝나지 않고 디자인으로 패션계까지 나아가게 됐다.
마찬가지로 한글의 모양을 여러 폰트로 만드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으니, 세종이 업적이 다른 방향으로 계속 뻗어나가고 있다. 이것이 돈키호테들의 매력이다.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 다른 분야로 계속 확장이 되게 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중 몇몇을 예로 들면 '겸재 정선, 고흐, 장사익, 서명숙, 제너, 마네, 구본창' 등이 있다. 이들 말고도 더 많은 돈키호테들이 있겠다.
그럼 이런 돈키호테를 찾는 작업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단지 그들에게 감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 아니다. 돈키호테를 찾는 작업은 나의 삶을 살아가는 길을 가기 위해서다. 그들을 통해 내 삶을 반추하고, 내 삶의 길을 바라보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돈키호테를 찾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돈키호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길을 간 사람들. 엉뚱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절대 안 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간 사람들. 그 길에 남겨진 발자국들로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게 해준 사람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내 길을 찾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으니... 각자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엉뚱하고 무모할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는 가야할 길, 가고 싶은 길이어서 그냥 가는 길일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