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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대표 미셸 씨를 강제 출국조치하겠다는 기사가 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 우리나라 경제에 이바지한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고 있는가? 

무슨 기계처럼 필요할 때 부려먹고, 더이상 필요가 없다면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것이 과연 선진국일까? 

선진국 운운하기 전에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 이것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원주민이 아니라, 선주민이란 생각을 지녀야 하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로 와서 온갖 수모를 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주노동자이기 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몇 년 전 마음 아프게 읽었던 찬드라 씨 얘기.. 이게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니... 

나라의 국격 운운하기 전에.. 우리 먼저 이주노동자 운운하기 전에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즉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는 태도를 지녀야겠다. 

이 책들 읽어보자. 그러면 쉽게 이들을 강제출국시킨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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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잃게 된다. 

내 몸의 주인이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몸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어진다. 

오직 의사의 말에 순응하는 말 잘듣는 순한 양이 될 뿐이다. 

일리히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병원이 진짜 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제도로 인해 병이 아닌 것들도 병으로 인식된다는 얘기겠지. 

몸을 기관으로 해부하고 어떤 기관이 잘못되었는지를 진단하는 병원.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문제도 심각한 질병으로 분류하고 치료를 안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양  병원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전체로서의 나는 신체의 각 부분의 나로 분해가 되고, 결국 나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해진다. 

가기 싫지만, 가지 않을 수 없고,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하지 못하는 거대한 권력. 그것이 바로 병원이다. 

언제끔 나는 내 몸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 몸의 권리를 내가 행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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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교육의 방법과 실천
최광석 지음 / 역락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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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렀던 은행에서 우연히 펼쳐보았던 잡지. 여성잡지였는데, 온갖 화려한 화보들로 가득한. 그 책에서 '서양, 고전교육 열풍'이라는 내용이 눈에 확 띠었다. 

독일도, 영국도, 네덜란드도 학생 때 고전교육을 강조한다는. 

우리나라는 고전교육을 강조할까. 오히려 한 쪽으로 밀어넣고 관심을 두지 않지 않을까.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등 내용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끝까지 읽어보지는 않은 고전이 얼마나 많은가. 

말들이 너무 어렵다거나,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라거나 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학교 다닐때는 얄팍한 지식을 암기하느라 작품의 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가지 않았던가. 

이 책은 이러한 고전문학에 대한 교육이 잘못되어 왔음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고전문학을 재미있게 학생들의 삶에 다가오게 할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을 엮었다. 

고전문학 교육의 방법론부터 학교에서 구체저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까지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을 필요없이 필요한 부분들만 읽어도 많이 도움이 된다. 

특히 2부에 실린 글들은 현직 국어교사들이 읽고 토의하고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한다면 학교에서 수업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뀌면서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이 각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이 중에 공통적으로 실려 있는 작품들도 교과서마다 학습의 방향이 다르니, 교사들이 이를 살펴 통합적으로 재구성해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홍길동전에 관한 내용으로 교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이고,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구현해내는 소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고... 

적어도 수업하기 전에 한 번 이런 책을 읽으면 방향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간을 가지고, 또 자기만이 아니라 함께 교사들이 고전문학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학생들도 자연스레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을까. 

고전은 먼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삶을 규정짓는 한 요소라는 사실을, 홍길동을 통해서도, 춘향을 통해서도, 허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사실... 그걸 깨닫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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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의 학생 폭행 사건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건의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학생 폭행이 자주 일어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기사이다. 

어디 학생뿐이랴. 의경들도, 전경들도, 군인들도 폭행이 일어났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으니, 폭력이 만연한 사회라고 해야 하나. 

시집살이 고되게 한 며느리가 나중에 며느리에게 시집살이 시킨다고, 군대에서도 맞은 놈이 나중에 후임들 때린다고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맞으며 자란 아이들은 몸으로 폭력을 기억한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보다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랴. 이 책을 보라. 새상에 사랑의 매는 없다. 매는 사랑이 아니라, 폭행일 뿐이다.

하여 최근에 학교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교육청이 늘고 있는데, 이는 참 바람직한 일이다. 이 때 체벌에는 폭행을 포함하여 소위 얼차려라고 하는 신체를 힘들게 하는 기합도 포함이 된다.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교과부에서 기합은 허용하는 쪽으로 법률을 바꾼다고 하니, 이는 사회의 발전방향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기합을 주어야 정신차린다는 말, 이것은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습관이 들지 않게 하는 방법일텐데.. 오히려 학생들 또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보라.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교사들에게 또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은 힘으로 다른 사람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게 습관이 되면  이 사회에서 폭행 문제는 사라질텐데. 가끔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무슨 무협지 같은 장면도 자연스레 사라질텐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행복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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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숲에서 나오다 - 천성산 도룡뇽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
지율 스님 지음 / 도서출판 숲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 

자연과 하나인 산,  

인간의 마을에 살았지만 자연과 하나이고자 하던 아시타카 

인간의 마을에서 자연을 정복하려 한 에보시 

결국 사슴신(시시신)의 죽음으로 자연은 인간에게 굴복당하고 

거대한 존재로 다가왔던 자연이 

인간보다 작은 존재로 변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는 아시타카의 말 

산은 자연에서 아시타카는 자연에서 함께 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는데, 

산 속에서 자연과 하나되어 살던 스님,  

지율 

그가 숲에서 나와 단식을 하고 고속철도 터널의 흉폭함을 알리기까지 

글자 하나하나가 삶의 진정성이다. 

랭보는 글자에서 색깔을 보았다는데, 

나는 이 글에서 진실한 삶을 볼 수 있었다.  

지율과 지율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결국 소송에서는 지고, 공사는 강행이 되었지만 

이 글은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천성산 터널에 이어 지금은 4대강으로 

오히려 더 흉폭하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천성산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이고, 우리의 미래인데, 

하나하나 잃어가고 있으니. 

과거를 회상해 보면 

한 때 미국은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간다더라 

참 좋겠지 

우리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고 

부러워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자연과 떨어져 사는지, 

그런 삶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생각도 못한 채 

어느덧 우리도 흙을 밟을 기회가 사라지고, 

집을 나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콘크리트, 아스팔트 

흙이라곤 밟을 수 없고, 낙엽조차도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연을 정복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삼아왔다. 

자연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망각한 채.   

꼬리치레 도롱뇽이 말한대로

자연의 죽음이 곧 우리의 죽음이 됨을 잊은 채. 

거대한 자본의 움직임에 맞대응을 하지 못하지만 

한 때 결심한 것 

스키장은 가지 않는다. 골프는 하지 않는다. 

한 여름에 보았던 스키장,  

헐벗은 채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 오들오들 떨고 있던 

그 산을 본 뒤로 스키는 내 삶에서 지워졌고, 

있던 자연을 파헤치고, 메우고, 약을 뿌리며 조그만 공을 치는 

골프도 내 삶에서 지워졌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스키장, 골프장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크게 터널이나 4대강 뿐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얼마나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하는데. 

이 책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님을 

너무도 진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글자 하나하나에 삶의 무게가 담겨, 자연의 무게가 담겨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미래의 일임을 

각성하게 해주고 있다. 

유마거사 

세상이 병들었으니 나도 병들었다. 

그래, 우리가 건강해지기 위해선  

자연도, 세상도 건강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함께 할 때  

우리 모두가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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