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산이 현대사 2 : 사회·문화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2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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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서 여러 물건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들어왔고,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여러 유용한 내용들이 있어서 읽으면 좋은데... 역사학자답게 우리말이 어떤 역사적 기원을 지니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어서 좋다.


가령 이 책에서는 '도로(道路)'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도로에서 도와 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말로는 '길' 하나뿐이지만, 한자는 길을 내고 이용하는 방식에 따라 '도'와 '로'를 구분한다. 우선 '로'는 자연 지형에 순응하는 길이며, 인위적이되 인위적이지 않은 길이다. ...좁고 구불구불하며 위태롭고 불편하지만 꾸밈없고 소박하다. 이런 길은 종대만 허용할 뿐 횡대는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도'는 그야말로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다. 거대 권력을 윈 자가 수많은 동원하여 풀과 나무를 베고 언덕을 깎아내며 도랑을 메우게 해서 넓고 평평하며 곧고 길게 다져 놓은 길이다. '로'가 '나는 길'인 반면, '도'는 '닦는 길'이다. '도 닦는다'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408쪽)


이 말이 맞다면 우리가 한글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로'와 '도'가 합쳐진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도와 로'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길'로 쓰고 있는 상황이지만 도로명 주소라는 말에서 아직도 도로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다가 무슨무슨 '~로 다음에 몇번 길'이 나오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통상 길이라고 했을 때는 '로'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도로명 주소에 '도'는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서 근현대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니...


이런 말의 의미를 넘어서 이 책에서는 '자동차, 비행기, 전화기'와 같은 근대 문물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들이 언제 들어왔고,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상황에서 쓰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까지 살펴보고 있다.


방대한 내용이지만 하나하나가 흥미롭기 때문에 읽으면서 우리 역사와 우리들 생활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제 3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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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현대사 1 : 일상ㆍ생활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1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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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건들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한 이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존재들이 필요했다.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도구가 필요했으며, 추위나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도 다른 물건들이 필요했다. 살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들이 있는데, 그런 물건들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살펴보면 우리들의 생활 변화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전우용이 여러 물건(존재)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가가 실려 있다.


우리들에게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 어떻게 우리 곁에 왔는지, 또 한때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물건들이 어떻게 해서 사라지게 됐는지를 살피고 있다.


많은 물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물건들이라고 하기에는 아파트와 같이 커다란 존재들도 있으니 물건(존재)라고 하면 좋겠다. 


많은 존재들이 있는데,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을 깨우치게 된 것도 이 책이 내게 준 유익함이라면 유익함인데... 


그런 존재 중에 하나가 '혼인신고서'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니, 이것이 마치 오래 전부터 당연히 있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혼인신고서는 일제시대에 생겼다고 한다. 


'혼인은 국가의 공인이 필요 없는 가문과 가문 사이의 사적 결합으로서, 혼례식이라는 의례를 통해 혈연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에 '선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혼인을 취소하는 행위, 즉 이혼도 유교적 가부장제가 지배하기 전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343쪽)고 한다.


이런 사적인 일이 공적인 일이 되고, 법에 의해서 혼인과 이혼이 결정이 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라고 하니, 참...


이런 내용에 더해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승만 부인하면 프란체스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왜 그가 조혼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일찍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주로 생활했기에 조선에 부인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혼인을 했고, 그의 부인은 조선에서 시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그것도 남편이 칭찬받을 수 있게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뿐이었다고 하니...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라니...


'1945년 가을에 이승만의 본처 박승선도 같은 일을 겪었다. 남편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거처로 찾아갔으나, 이승만의 비서들에게 쫓겨났다. 본처는 법에 호소할 수도 없었다.'(351쪽)


왜냐하면 이승만이 법적으로 정리를 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법은 아는 자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 이것 참.


<함께 참조할 만한 글 : 사라진 이승만 호적 미스터리 (daum.net)>


이런 사실들과 더불어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온 많은 물건(존재)들을 소개하고 알려주고 있어서 제목과 같이 '잡동산이'들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알 수 있게 된다.


'잡동산이'는 잡동사니라고 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안정복이 쓴 책 제목도 '잡동산이'라고 하니, 우리들의 삶과 물건들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물건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왔던 근현대의 모습들. 우리 일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한꼭지 한꼭지씩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총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책들에서는 다른 분야를 다루고 있으니,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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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국적이 중국이다. 중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조 기사 : 조선족 대표시인 김철 별세,향년 91세 - 모이자 뉴스 (moyiza.kr)


  고향은 남한에 있는 곡성이라고 하는데, 일제 시대에 중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의 말과 글을 잊지 않았고, 조선의 말과 글로 시를 썼다고.


  중국에서는 꽤 알려진 시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1997년에 발간된 이 시집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시세계를 어느 정도 맛볼 수 있다.


이 시집은 그가 북한을 방문하고 느낀 점을 쓴 시다. 남한과 북한에 속하지 않고 중국 국적을 지니고 있는 시인이 통일을 염원하면서 쓴 시.


시집 말미에 있는 후기에서 시인은 '나는 내가 두 번의 북녘땅 기행에서 보고 들은 더 많은 것을 싣고 싶었다'(163쪽)고 썼다. 많은 이야기를 시를 통해 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러면서 그는 '남녘엔 풍요의 비극이 휩쓸고, 북녘엔 빈곤의 비극이 천지를 뒤덮어'(163쪽)라고 하고 있는데, 이후에 남녘도 IMF라는 비극을 겪게 된다. 물론 지금은 극복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지만.


북한은 지금도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의 말이 다시 30년이 지나서도 의미를 잃지 않고 있으니, 이야말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남북이 교류를 하던 때, 시인이 바라던 대로 남한 사람들도 금강산을 갈 수 있었고, 개성도 갈 수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풍선을 이용해 서로를 자극하고 있으니...


시인이 바라던 통일은 아직도 멀리 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집에 실린 이 시를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낙지발에 걸려 있는지도, 낙지 발에 있는 그 빨판이 남과 북을 꽉 움켜쥐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낙지 발의 빨판은 우리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겨내야만 하지 않을까. 이제 고인이 된 시인은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낙지


  반세기 만에 만나는

  동생을 주려고

  함흥 사는 언니는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낙지 한 마리를 들고 왔다


  깡마른 낙지를 사이에 두고

  떨구는 눈물은

  낙지보다 더 찝찔하고


  서로 다른 이야기는

  낙지발에 걸려서

  시종 엇갈리기만 하는데


  정성은 고마워도

  차마 들고 살 수 없는 그 낙지

  우리는

  여덟 개 낙지발에 걸려

  서로의 아픔에 뼈마디가 저린다


김철, 북한기행, 문학사상사, 1997년 초판 2쇄. 88쪽.


지금 우리는 낙지발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낙지발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오래 가게 해서도 안 되고.


늦었지만 김철 시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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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워프 시리즈 2
알렉산더 케이 지음, 박중서 옮김 / 허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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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소년 코난'을 너무도 재미있게 본 세대다. '코난'하면? 미래 소년을 떠올리면 구세대, 명탐정을 떠올리면 신세대라는 말도 있지만, 꽤 오래된 애니메이션.


당연히 일본에서 만들어진, 그것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이라서 원작이 있다면 일본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알렌산더 케이라는미국 작가였다. 


읽어보니 내용도 많이 다르다. 어느 작품이 더 우수하다 말을 하기보다는 작품의 장르가 지니는 특성,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등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지나친 문명의 발달이 한 순간 날아가버리고, 세상은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갈 듯하다. 기계문명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 육지의 대부분이 바다로 가라앉은 상황.


이런 상황에서도 다시 기계문명을 일으키려는,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부리는 '인더스트리아' 사람들과 여기서 벗어나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려는 '하이하버'로 나뉜다. 나머지는 사람들이 생존하지 않는 많은 섬들.


여기에 살아남은 코난이 있다. 홀로 살아남는 법을 익힌 아이. 그러다 인더스트리아로 가게 되고, 거기서 할아버지를 만나 탈출해 하이하버로 가게 된다. 그 과정까지만이 소설에 표현되어 있다.


그런 과정에서 인류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했는지,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선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작은 존재들인 인간들에게 그럼에도 희망이 있음을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자꾸만 '미래 소년 코난'이 떠올랐는데, 그런데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전개가 다르다는 점이 소설의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포비'가 나오지 않고, 다만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짐시'라는 인물이 나와 포비와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하고 있는데...


세계에 다시 엄청난 쓰나미가 몰아닥친다. 그 쓰나미는 그나마 남아 있는 육지를 많이 쓸어가 버릴 것이다. 인더스트리아도 마찬가지고, 하이하버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쓰나미가 닥친 데서 끝난다. 그 다음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이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코난이 지도자가 되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렇게 여길 수 있도록 하면서 소설이 끝을 맺는데...


아마도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자연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코난이나 라나가 다른 동물들과 교감을 하는 모습이 소설 속에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탐욕이 스스로를 파괴했기에 탐욕이 아닌 공존하는 쪽으로 세상이 나아가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이를 애니메이션에서는 더 받아들여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읽는 내내 애니메이션과 겹쳐서 다시 한번 추억을 소환한 읽기라고 해야 하나? 기후재앙이라고 하는 이 시대에, 그 다음이 어떤 비극적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기도 하고,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미리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이 소설에서 파괴된 세게는 지금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세계는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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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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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麻姑)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범인이 밝혀진 추리소설. 범인을 알려주는데, 소설에서는 범인을 만들려고 한다. 왜냐? 그 존재가 범인이 되면 안 되니까. 이것은 바로 힘에 관한 이야기다.


힘있는 존재는 범죄를 저질러도 범죄인이 되면 안 된다. 범죄인은 힘이 없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범인을 만들어 내려 한다.


일제라는 절대권력이 물러간 다음의 일이다. 일제는 물러갔지만 또다른 절대권력이 왔다. 바로 미군정이다. 그래서 소설 제목에 '미군정기'라는 말이 들어간다. 또 제목을 계속 살피자. 진범이 왜 밝혀지면 안 되는지를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으니까.


'윤박 교수 살해 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살해당한 사람이 교수다. 윤박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실제 이름이라기보다는 박사를 줄여서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윤씨 성을 가진 박사. 미군정 당시 박사는 어느 나라에서 학위를 따야 인정을 받을까? 당연히 미국이다. 미군정이니까. 


그렇다면 어느 대학의 학위를 지니고 있어야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대학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대학은?


물러볼 것도 없이 하버드 대학이다. 그렇다. 윤박은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패터슨 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32쪽) 여기에 소설은 이승만과 같은 동문이라고 한다. (33쪽) 어라?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 박사 아니었어? 찾아보니,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단다. 동문 맞네. 그렇다면 그는 미군정기에서 힘을 지닌 존재다. 자신의 말로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 명의 여성 용의자'  자, 거물급 남자가 살해당했다. 미군이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범인은 약자에게서 나와야 한다. 미군정 시기 누가 약자인가? 우선 사상적으로는 좌익이다. 좌익을 검거하고 처벌할 때니까. 그렇다면 좌익과 내통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살해당한 사람이 남성이고, 미군정과 관련이 있다면 좌익이 사주해서 정보를 빼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박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여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좌익과 어떻게든 관련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윤박과 관련이 있고, 좌익과도 관련이 있는 여성이 범인이 되어야만 한다.


소설은 이렇게 제목에서 사건의 내용을 암시해준다. 여기에 '마고'라는 말. 여성신. 한때 인류에게 추앙받았지만 남성신들에게 밀려난 존재. 그런 존재를 제목으로 삼았다. 여성성이 패퇴하고 남성성이 우세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힘이 없어진 존재들을 의미한다. 굳이 여성으로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여성만큼 또는 여성보다 더 약한 존재는 바로 성소수자니까.


이렇게 소설에는 여성과 성소수자가 나오고, 권력을 휘두르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존재들이 나온다. 그들에 의해서 진실은 가려지고 왜곡되려 한다. 이들을 태양이라고 한다면, 그 강한 빛으로 다른 주변의 존재들을 가려버리는 역할을 하는데... 소설에서 미군정과 양준수라고 하는 형사, 그리고 이든으로 나오는 미군도 여기에 포함이 된다.


자, 범인은 밝혀졌다. 그럼에도 진실은 가려졌다. 왜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했을까? 이것이 소설을 전개하는 핵심이고, 이를 중심으로 소설을 읽어야 한다.


세 명의 용의자. 셋이다. 그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 둘이라고 하겠지만, 셋이다. 연가성, 권운서, 그리고 송화.


소설에서 연가성이 사설 탐정으로 활약하는데, 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의 사건을 조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연가성의 이름이 '세 개의 달'이다. 세 개의 달. 달은 하나로 멈춰있지 않는다. 변한다. 변하는 모두가 다 달이다. 다른 존재들이지만 함께 하는 존재, 바로 이것이 달이다. 이런 달을 탐정 이름으로 택한 것은 선물받은 들고 다니는 회중시계에서 딴 것이겠지만, 태양과 달리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는, 그렇다고 다른 빛을 없애는 태양이 아닌 달처럼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여성 용의자들도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가 되고 (그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사건을 파헤치려는 연가성, 권운서도 서로 돕는 관계가 된다. 여기에 송화라는 사람은 나중에 등장해 왜 이 인물이 빠지면 안 되는지를 알게 해준다.


사건을 해결해가면서 연가성에게서 자꾸 한정현의 다른 소설들 인물이 소환된다. 그 인물들에 대해 알고 있다면 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소설은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 실린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이다. 여기서도 세 명이 등장한다. 서안나, 윤경준, 수성. 이 셋의 관계는 조금은 다른 설정이지만 연가성-권운서-송화의 관계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서 '낙관하자'란 말이 나오고, 이 말은 이번 소설에서도 반복된다. 비록 현실에서는 비극으로 생을 마감할지라도 또다른 시간이 그들에게 펼쳐질 수 있음을. 그래서 그러한 시간은 당대의 시간만이 아니고, 다른 시간에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로 전해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 더 다른 소설과 연결점을 찾으면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와도 연결이 된다. 복수를 하려 하지만 폭력으로 해결하지 않는 모습. 폭력은 남성성을 인정하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면, 한정현은 소설을 통해서 그러한 방법은 궁극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음을 여러 작중 인물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들의 삶이 현실에서는 비극일지라도, 그 비극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속했던 어둠은 달이 빛을 내어주듯이 다른 존재들에게 빛을 내어준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 그래서 그 빛들이 모여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우리도 낙관하자. 어둠 속에서도 함께 빛을 내는 존재들이 있음을. 자신만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서로가 서로의 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존재들이 있음을.


이 소설에서 연가성과 권운서처럼, 그리고 이들에게 묵묵히 배경이 되어주는 송화처럼. 그렇게, 우리도 낙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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