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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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야의 그림을 보면 스페인이 보이고, 우리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재미 있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느끼고, 이런 점에서 학창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미술에 대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데...

 

고야란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사실 예전에는 모르고 있던 화가이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화가이니.

 

그런데 그의 그림 중에 언급되는 그림들이 제법 있다. 어디선가 본 그림도 있고. 그렇다면 그는 중요한 화가? 이런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서 박홍규(그는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 그에 의해 많이 소개되었다)가 쓴 "고야"에 대한 책을 보았다. 그동안 고야에 대해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간 책들을 읽은 터라 잘됐다 싶어 빌려 읽기 시작.

 

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르게 스페인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단순히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분명 대조가 아니라 비교다. 이렇게 스페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줄은 몰랐다) 시작한다.

 

도대체 고야와 스페인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관련되기에 이렇게 하나 했더니, 화가는 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으며 고야는 그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작품으로 남긴 작가라고 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누드 그림 말고, 대부분의 그림은 스페인의 현실을, 스페인의 민중을 그린 작품들이니 스페인의 역사를 알아야, 고야가 살던 당시 혁명기의 스페인을 알아야 그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반도국가에서 비슷한 시기에 기나 긴 독재시대를 거쳤다는, 외국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살해당했다는 그러한 공통점도 있고, 고야의 작품 두 점이 우리나라에서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아 전시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있으니, 작가가 우리나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왜 우리나라에는 고야와 같은 작가가 없는가고 한탄하고 있다. 왜 없겠는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고, 고야 역시 당대에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으니, 우리나라 화가들도 작품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할 뿐이다.

 

2002년에 쓰여진 이 책은 그 전까지 우리나라 화가들의 서구취향, 또는 전통 한국취향으로 위장한 자기만족에 대해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때도 우리나라 화가들 역시 시대를 직시하고, 그 시대 상황을, 민중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음 확실하다.

 

단지 고야처럼 성공적인 화가의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닐 뿐이지.

 

고야는 시골에서 태어나 아카데미에 두 번이나 떨어지는 고난을 겪는다. 그만큼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화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부단한 노력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결국 궁정화가가 된다.

 

스페인에서 궁정화가가 된다는 얘기는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고야는 왕실의 화려함을 자랑스레 표현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궁정화가로서 지내면서도 민중들의 삶에 대해, 스페인 현실에 대해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발표를 못하고, 또 금지 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말년에는 보수 반동의 흐름을 견딜 수 없어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삶을 마감한다고 하는데...

 

궁정화가로서 출세의 길을 달리지만 그는 그가 처한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특히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삶에 눈감을 수 없었다고... 또 가톨릭의 횡포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마녀사냥이 계속되어지는 스페인의 현실에도 눈을 감을 수가 없어 그를 풍자화로 그려냈다고 하니...

 

그의 그림들을 보면 스페인의 근대를 알 수 있고, 전쟁이나 권력이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 고야의 그림들이, 그것도 민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실린 것은 저자인 박홍규가 권력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고야의 민중성, 혁명성을 더 강조하고 있고, 이런 화가가 우리나라에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고야처럼 궁정화가는 되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도 민중화가들은 많이 있다. 언뜻 떠오르는 이름만 하여도 오윤, 홍성담, 임옥상, 강요배 등이 있으니... 우리도 스페인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그림들을 만들어내는 화가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그래서 한 화가의 평전이지만 책의 앞뒤로 스페인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한다.

 

스페인이 몇 번의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민주화 이후에 독재로 많이도 돌아갔듯이, 우리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런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도 이랬는데, 12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고야의 그림이 우리나라에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았듯이(이 책에 의하면 그 그림은 '벌거벗은 마하'와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비오 언덕의 총살'이다) 2014년 우리나라 광주에서, 민주화의 성지라 불리는 광주에서, 광주 정신을 계승하자고 그렇게 말하는 지금 홍성담과 몇몇이 그린 그림들이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는 것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보면... 박홍규의 절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의 마지막 구절... 2014년에도 유효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는 권력과 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악에 저항한다. 18세기 스페인이나 20세기 한국이나 그 두 가지는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괴물을 상징한다. 그 저항으로 그는 두 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당대 스페인에서 금지당한 것처럼 20세기 한국에서도 금지 당한다. 한국은 아직도 권력과 성에 있어서는 미개국이다. 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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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나날들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

 

이미 실시되고 있던 복지는 없던 일로 되돌리고, 없던 복지는 아예 없던 일로 하고, 안 해도 될 일은 굳이 하려고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현진건의 소설 제목처럼 '술 권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술이나 마실 수밖에 없는 건지.

 

"삶창 101호"가 왔다.

 

반갑게 읽기 시작.

 

마음이 따스해지고 싶어서 빨리 손에 들었는데... 이거 더 우울하다. 즐거운 소식은 역시 없다.

 

삶이 보여야 하는데, 우리나라 곳곳에 펼쳐져 있는 가림막처럼, 아님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둠의 장벽인 지배 계층의 일들처럼, 삶은 어둠 저편에 있다.

 

어둠 저편에서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삶창에 실린 내용들도 아직은 어둡다.

 

이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같은 역할을 하는 삶창이니, 당연히 어두울 수밖에 없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럼에도 조금 따뜻할 수는 없을까?

 

비록 희망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사람을 살아가게 만들고 있듯이 삶창이 무언가 희망을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호에서 <오늘>이라는 주제로 쓰여진 글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짚어내고 있는데, 그게 참 우울한 단면이고, <공간과 환경>에서도 역시 우리 삶을 침해하고 있지만 적절히 대응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삶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조금 희망을 가진다면 <다른 세상>에 나온 '공룡'이란 공동체 실험 이야기처럼 아직 희망을 지니고 다양한 삶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세월호에 관해 재판 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를 두고 말들이 많다. 그 많은 말들 중에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이런 상황이 이번 삶창 101호에서 고병권의 글.

 

그가 <노동의 인문학>에서 이야기한 '왕에게는 아무 것도 희망하지 말라. 그에게는 단지 책임만을 물어라. 힘은 바로 당신에게 있다.'(83쪽)는 고병권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시혜를 구걸하지 말라는 말, 그들이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은 시혜가 아니라 책임이라고,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힘없는 서발턴(하위 주체)들에게 책임을 묻는 왕에게 읍소하는 것이 아니라, 왕,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책임자는 바로 너라고 당당하게, 힘있게 말해야 한다고 읽힌다.

 

이게 희망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따스해지지 않는다.

 

이상하게 100호를 기점으로 삶창이 가슴에서 머리로 옮겨간 느낌이다. 삶을 살아가는 주체들의 이야기보다는 그런 주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글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마음을 울리는 글보다는 머리에 호소하는 글이 더 많다.

 

이게 삶창을 읽고 나서도 우울함이 가시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삶이 보이는 창,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나에게 삶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그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논리적 사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더 좋을 수도 있겠지.

 

덧글

 

이번 호에서 사실 마음이 가장 따스해진 글은 책 뒷표지에 실린 손별걸 시인의 글이다. 학생들이 쓴 시를 제비뽑기를 통해서 시상했다는. 시인들 답게 왜 아이들 시를 순위를 매겨야지 하는 생각, 그리고 제비뽑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고, 뽑히지 않더라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 그런 모습. 정말 따스하다.

 

예전 그리스에서는 추첨으로 지도자를 뽑기도 했다는데, 제비뽑기로 뽑은 지도자가 선거를 통해 뽑은 지도자보다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런 따스한 글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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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교육과정? 아하! 교육과정 재구성! - 교육과정 재구성 워크북 맘에드림 혁신학교 이야기 12
박현숙.이경숙 지음 / 맘에드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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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관한 책이다. 사실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교육과정이라는 말은 낯설다. 학교에 다닐 때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를 배웠지 교육과정을 배우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교과서만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그런 학교였다.

 

그런데 교육학을 배우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은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도구에 불과하고. 즉,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단을 목적인 양 착각하면서 학교 생활을 한 셈이다.

 

이것이 교육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일일까? 교육학을 아는 사람들은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답답해 했던가?

 

아니, 그들도 교과서가 교육과정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만 잘 가르치면 자연스레 교육과정을 가르치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교과서를 재구성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교과서에 나온 순서대로, 그 내용대로만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게 지금까지 우리 교육의 현주소 아니었던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그러나 너무도 한심하고 서글픈 사건이 있었지. 바로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문제(작년 문제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답이라고 주장하던 교육부가 소송에서 지고 말았지.(올해 가을들어 판결이 났다. 수험생들은 어쩌라고) 

 

이미 세상은 교과서의 내용과 다른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정답이 없음, 그러니까 모두 정답이라는 판결이 난 것.

 

만약 교과서를 신봉하지 않고 교육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교육과정에 대한 인식을 교육부에서조차도, 교육과정 평가원에서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교과서만을 맹신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교육과정에 대해서 알까?

 

만들어지는데 몇 년이 걸리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는 교과서를 맹신하는 그런 교육이 지금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점을 보면 이 책은 참 선구적이다. 이 책은 교과서를 말하지 않는다. 교육과정을 말한다. 교육과정에 의해 교과서는 언제든지 재편성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과간에도 통합, 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일들을 교사들이 해야 한다고 한다. 주장뿐이 아니라 실제로 학교에서 통합 수업을 실시했다.

 

이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말한다. 이미 현대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파묻히는 사람을 넘어서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현대는 전문가의 시대가 아니라 통섭, 융합의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학교가 따라가려면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에만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된다.

 

다른 교과 교사들과 교류하여야 한다. 함께 의논하여야 한다. 그리고 함께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육과정 재구성이다.

 

이 책에서는 교육과정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과정이란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인간상에 도달하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자료가 교과서이며,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교사이고, 그 과정에 펼쳐지는 가장 작지만 일상적인 단위가 수업인 것이다. 27쪽.

 

교육과정은 한 인간이 민주 시민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의 과정을 학교급별로, 교과별로 정한 항목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29쪽.

 

그러므로 교육과정은 독립된 존재로 있을 수 없다. 교육과정은 끝없이 함께 하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목만이 아니라 다른 교과목 교사들과 교류하고 연구하고 협력하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시흥에 있는 장곡중학교에서 교과통합 수업, 즉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다양한 교과가 함께 모여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 그런 수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직접 수업한 자료들까지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서 다른 학교에서도 참조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진정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학교 수업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떻게 교육과정을 재편성하여 통합수업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으니, 교과통합 수업에 관심 있는 교사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덧글

 

이런 교육에 관한 책, 특히 혁신학교에 관한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 교육이 참 성공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잘 하고 있는 학교가 많은데, 왜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도는 꼴찌이며, 아직도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을 택하고 있는 학교가 많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게 교사들만의 노력으로 가능할까? 무언가 제도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단지 교육감이 바뀌고, 그 교육감의 정책에 따라 지원이 이루어지면 되는 교육활동이 아니라, 늘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지 않나. 교육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제대로 된 교육제도를 정착시킨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내내 들을텐데 말이다.

 

또 교사들에게만 맡기면 교사들이 나중에 지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교사들이 지치지 않고 이런 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어떤 일에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그 일은 안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많은 것이 해결되어야 하고... 정말로 많은 것들이 교육 분야에서 논의되고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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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모델 - 화가의 붓끝에서 영원을 얻은 모델 이야기 명화 속 이야기 5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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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그 유한성이 우리를 현재에 매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유한성이 우리를 영원에 매달리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한하기 때문에 지금 잘 살기를 원하지만, 마찬가지로 유한하기 때문에 자신이 영원히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도 하다.

 

영원히 남는 방법.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무언가 남겨야 영원을 얻는데, 이 책에는 그림으로 자신들을 영원히 남긴 화가와 모델이 등장한다.

 

화가는 모델을 그림으로써 그 그림으로 영원하게 되고, 모델은 그 그림 속의 인물로서 영원하게 되는데, 이런 화가와 모델의 관계를 세 부류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이다.

 

1부는 정염의 거울에 그대를 비추다라고 하여 화가와 모델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으나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가 된, 소위 말하는 불륜이 된 그런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모델이 화가의 앞에 서는데, 이것이 순간적인 것이 아니고 지속적일 때 어찌 사랑의 마음이 싹트지 않을까. 남녀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만남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사회적 통념과는 다르게 나타난 것이 바로 1부에 나오는 화가와 모델의 관계이다.

 

불꽃같은 사랑, 운명같은 사랑,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은 어쩔 수가 없다. 참...

 

그래도 작품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이들의 사랑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고... 이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은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이니...이들의 관계가 다른 화가와 모델에게도 나타났다고 보면 된다.

 

2부는 아내, 그 사랑의 이름으로라고 하여 모델이 화가의 아내인 경우다. 이들의 사랑은 불꽃같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잔잔한 물결 같은 사랑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물결이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사랑이 바로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페른의 이야기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함께 지내지만, 화가인 모딜리아니가 죽자 아이를 임신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투신 자살한 잔 에뷔페론의 이야기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도 하지만, 이들의 이런 이야기로 인해 그들의 작품이 영원성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작품 속에서도 생생히 살아있지만, 이야기로도 살아있는 화가와 모델의 관계이기도 하다.

 

3부는 영감의 씨줄, 동행의 날줄이라고 하여 불륜도 아니고, 부부도 아닌, 그러나 화가와 모델로 서로에게 도움을 준 그런 관계들을 살피고 있다.

 

특이하게 맨 마지막에 프리다 칼로 편에서는 모델이 바로 자신인 칼로라고 하고 있는데, 하긴 칼로의 삶을 보면 자신의 그림에서 칼로만큼 중요한 인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화가만을 기억하고, 그림 속의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지만, 그림 속의 인물은 모델로서 영원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요즘은 미술관에서 박물관에서 특별대접을 받으며 보관되고, 전시되고 있으니 이들의 생명은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이 존속하는 한 화가 역시 영원성을 얻는다. 화가는 모델에게 영원성을 부여했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모델도 화가에게 영원성을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화가와 모델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성을 주는 그런 관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명화라고 하는 작품에서는.

 

영원성. 인간이 추구하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그 영원성을 어떻게 획득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적어도 안 좋은 쪽으로 영원성을 획득하는 것보다는 좋은 쪽으로 영원성을 획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림을 보며, 그림을 통한 화가와 모델의 영원성만이 아니라, 그 그림을 보는 나의 영원성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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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재구성 - 기본소득과 사회적 지분 급여
브루스 액커만 외 지음, 너른복지연구모임 옮김 / 나눔의집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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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허경영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래도 한 때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 그는 갖가지의 기행으로도 유명한 사람인데,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 내건 공약을 보고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허황된 소리를 한다고 했었다.

 

그의 공약 중에서 위키피아에 있는 것 몇 가지만 보면 지금 보아도 앞서가도 너무 앞서 갔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원씩 지급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원씩 지급 (재혼 제외)

출산수당 출산시마다 3000만원씩 지급

 

이것이 그의 공약 중 유명해진 것들이다. 다 복지에 관련되는 것들인데,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75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현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만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것을 앞서 간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 수당은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출산수당은 이야기되고 있지만, 결혼 수당은 아직(몇몇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실시하고 있지 않다. 여행 다니다 어느 동네에서 플래카드에 결혼을 하면 결혼 장려수당으로 얼마를 준다는 내용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이야기가 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 때는 저런 미친 사람, 하고 손가락짓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무상급식이라 불리는 의무급식이 시행되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누리교육과정을 나라에서 책임지겠다고(말로는 그래놓고, 지자체, 또는 교육청에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하고 있지 않은가.

 

반값 등록금 이야기도 나왔었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반값 등록금으로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그에 준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도 현 대통령 공약이지 않았나.

 

그런데 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버려 문제가 많아졌지만, 이렇게 그런 공약이나마 내걸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이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갑자기 왜 허경영 이야기냐고?

 

요즘 계속해서 기본소득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 모두에게 조건없이 일정액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

 

허경영의 공약처럼 실현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주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냐고, 꿈도 꾸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다.

 

유토피아, 그냥 유토피아가 아니라 가능한 유토피아라고 해서 '리얼 유토피아'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 내용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분배의 재구성"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분배의 재구성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분배의 재구성으로 사람들은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가 있게 된다.

 

이들은 평등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있고, 당당한 한 개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 무엇으로도 차별받지 않고 말이다.

 

다만, 기본소득으로 달마다 얼마를 주어야 하냐 하는 금액과 어디서 재원을 마련하느냐는 재원 마련의 문제, 그리고 기본소득과는 성격이 좀 다른 '사회적 지분'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그리고 어느 정책을 지지할 것이냐 하는 점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반 빠레이스와 사회적 지분을 지지하는 액커만과 알스톳의 주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둘은 목표에서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과정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지급이 지속적이냐 일시적이냐, 소액이냐 거액이냐의 차이 말고도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것이 더 우리나라 상황에 합당하냐를 지금은 따질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논의들이 일어난다는 사실들이 기본소득이 먼 미래가 아닌 곧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복지가 계속 뒤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이 번역되어 이미 몇 십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관해서 논의를 하고, 그 주장이 실현될 수 있게 구체화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서 냉철하게 판단하는 눈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사람들이 실질적 자유를 누리면서 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소득은 필수적이니, 그런 삶의 소득을 재분배해주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정당이 있고, 또 기본소득에 관해서 이론을 만들고 홍보도 아닌 단체도 있는데, 기본소득에 대해서 또는 사회적 지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면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 무엇인지, 또 사회적 지분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것이 더 자신에게 와닿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해 관심이 더 생기면 기본소득네트워크에 한 번 들어가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http://basicinco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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