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의 제목이 된 '사평역에서'는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많이 알려진 시가 되었다.

 

특히 이 시는 김현성이 곡을 붙여 노래로도 불러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오래 된 시, 곽재구가 시인으로 등단하게 만든 시가 바로 이 '사평역에서'인데...

 

다시 한 번 시집을 읽어 보았다.

 

적어도 이 시집에서는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 소위 비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으니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포장을 하고 가리려고 해도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없앨 수는 없는데... 1980년데 초반에 나온 이 시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지금 존재하지 않을까 하면 그렇지 않다.

 

교묘하게 가려져 있을 뿐,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만큼 사회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되겠는데...

 

그럼에도 복지 논쟁은 끝날 줄을 모르니, 나라란 적어도 제 나라 사람들이 힘겨운 삶에 짓눌려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시집의 끝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대인동' 연작들은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우울함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더 나은 곳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겨울이다. 이 시집에 '세한도'라는 시가 나오는데... 차가운 겨울, 삶도 겨울에 해당하는 그런 모습, 그러나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김정희의 '세한도'가 내뿜는 정신을 이 시에서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정신, 겨울이라도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그런 정신을 이어서 우리 역시 견뎌야 하리라. 이 겨울을. 그래서 아침을 맞이해야지.

 

곽재구의 '아침'이라는 시. 그런 아침을 맞이해야겠다.

 

                                                 아침

 

                                                    1

 

  고구마시렁에 고구마들이 추워 서로 팔 껴안는 소리 들릴까 제일 아래층에 눌린 약한 고구마들 창밑 겨울 햇살 쪼일 수 있게 힘센 고구마들 길 비켜주는 소리 후둑후둑 햇살의 칼과 맞부딪치며 마음속의 죄도 풀려 봄바람 이는 소리.

 

                                                     2

 

  녹슨 못 일렬종대 대롱대롱 햇살 속에 그네 타는 청국장 메주 밤새 물든 곰팡 서로 비벼주고 털어주며 왁자지껄 쉿 너무 소리가 커 조용히 마음속의 소리 더욱 조용히 흰 수염 입술 위 손가락 세우는 노인 메주 그리고 제일 늙은 메주와 제일 어린 메주부터 다시 순서대로 햇살 속에 그네타기 툭툭 겨울공기 차올리며 추운 햇살 속 푸른 봄바람 찾기.

 

곽재구, 사평역에서, 창작과비평사. 1997년 개정 8쇄. 74쪽.

 

이 겨울 얼마나 따스한 시인가. 좋다. 곧 봄이 온다. 봄바람 찾기, 봄바람 맞기, 햇살 맞이하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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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
조던 스몰러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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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요즘 각광받는 학문이다.

 

우리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뇌에서 작동한다고 밝혀졌고, 뇌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이 지닌 각종 이상 행위들에 대한 치료법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뇌로 인간의 모든 것을 치환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뇌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인간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뇌, 이것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전이라고 한다, 와 양육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만 한다고 한다.

 

여기에 뇌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가소성을 지닌 존재라고 하고, 인간의 발달단계에서는 민감기라는 시기가 있어서 어느 순간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급속도로 받아들이는 시기도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난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유전으로 결정된 뇌라고 해도, 이 민감기에 어떤 배움과 환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은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학적 성과들을 총동원하여 우리 인간의 뇌와 심리,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이리라.

 

인간 역시 동물이니 동물의 역사를 밝힌 진화생물학과 뇌에 관한 신경과학, 뇌과학, 여기에 유전학과 심리학까지 동원하여 우리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주로 지금까지 인간 행위를 의학에서 설명할 때는 비정상을 중심으로, 즉 증세, 질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면, 이 책은 그 관점을 뒤집어서 정상을 중심에 놓기로 한다.

 

무엇이 정상적인 인간인가? 여기서 질문을 한다. 우리를 이해할 때는 대부분이 정상적일테니, 비정상은 이 정상에서 일탈한 소수일테니, 비정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접근해야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상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 정상적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또는 무엇이 인간을 정상적으로 만드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우리는 답을 할 수가 없다.

 

마치 미술에서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은 스푸마토 기법처럼 인간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이 경계선은 겹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역시 수학에서 말하는 정상분포도의 그래프로 파악하면 된다. 중앙값과 표준편차. 그리고 양 극단.

 

이 양극단에 해당하는 것이 비정상일테고, 이런 비정상을 정상 분포 안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이 고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인지심리학, 행동심리학, 분자생물학 등 최신 연구결과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정상 분포 안에 인간이 처하게 할 수 있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책은 조심스럽다. 인간은 유전자로도 환경으로도 교육으로도 딱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많은 것들이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가 처한 배움이나 환경 또는 시기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평균적 인간,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정상이겠고, 인간이 가장 매력적일 때는 평균에 위치할 때라는 이 책의 연구 결과는 이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리라.

 

특별나게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 평균적인 인간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는 가장 정상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로 들릴 수 있고, 그런 인간은 정상 분포 안에 처한 인간이라는 뜻이기도 하겠기 때문이다.

 

참 많은 이론들이 담겨 있지만 우리 인간을 무엇이다라고 딱 규정짓지 않아서 좋다. 인간을 규정지을 수 있는 수많은 요인들을 알려주고, 그 요인들이 정상 분포에서 벗어났을 때 어떻게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지 보여주고, 그것을 정상 분포 안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래,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이만큼 복잡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들이 모이면 우리들의 정상 분포가 그려질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의 이 정상 분포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좀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명확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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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도서관 - 정기용의 어린이 도서관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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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순천 기적의 어린이도서관이 생각났다. 그 때 모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책을 읽습니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전국민의 독서열기를 확 끌어올린 적이 있었는데...

 

확 끌어올린 정도가 아니라 그 프로그램에 선정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엄청난 판매를 자랑하기도 했는데.. 단지 책을 읽읍시다에서 나아가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운동까지로 확대되었었는데...

 

당시에는 어린이도서관을 누가 건축했는지 관심이 없었다. 단지 특이한 도서관이었다는 생각만 남아 있었다. 무척 멋있다는 생각과 좀 다르네 했던 생각만.

 

정기용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어린이도서관을 건축한 사람이 정기용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어린이도서관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고 공부를 했는지도.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그의 노력이다. 기록으로 남겨야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을 수 있고, 좀더 나은 어린이도서관을 건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처음보다는 다음이, 그 다음이 더욱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지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기록이 남아 공부할 수 있기만 하다면.

 

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김해

 

이 책에서는 이렇게 여섯 개의 어린이도서관이 나온다. 기적의 도서관이라고 하는데... 관에서 주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 민간에서 주도한 것도 아닌'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일명 '책사회')이라는 단체가 발의하고 관과 반반 나누어 만들어낸 도서관.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도서관. 어른이 중심이 아닌 아이가 중심이 되는 도서관. 주변을 무시하고 돌출하지 않고 주변과 어울리는 도서관, 그래서 기적의 도서관이다.

 

이 기적의 도서관 운동 다음에 우리나라 곳곳에 도서관이 많이 생겼다. 이제는 도서관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그토록 많이 생긴 도서관 운영이 잘 되고 있을까?

 

정기용은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책을 통해서 어린이도서관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고, 도서관이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전통 생활방식을 살려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바닥에 모두 온돌을 깐 도서관,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공간도, 탁 트인 공간도, 자유롭게 누울 수 있는 공간도, 바른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책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끔 도서관 맨 앞에 세면대를 설치해 손을 씻고 책을 볼 수 있게, 나름 경건한 의식을 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도서관 건축에 대해서 인식 전환을 이루어내었다. 여기까지는 성공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금 도서관의 현실은 어떤가? 이 질문을 해야 한다.

 

정기용은 "감응의 건축"에서 건축에 드는 비용도 그렇지만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을 책정하고 그것들을 엄중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즉 처음에 만들어진 것을 그대로 현상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편리에 맞게 고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지보수 비용이 필수적이다.

 

또 도서관은 운영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자원봉사자들이 잘 조직되어 잇다고 하지만, 도서관은 공공기관이다. 자원봉사자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다. 이들이 주가 되지 않고 도서관 사서들을 중심으로 한 직원들이 주가 되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책 3부를 보면 현재 운영에서 가장 취약한 점이 바로 운영하는 직원들의 숫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너무 과도한 업무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어린이도서관이라고 해도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직원들의 숫자와 근무여건, 대우들에 신경써야 한다.

 

도서관 인프라는 많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인적 인프라를 구축할 때다. 인적 인프라는 구축되어 있는데, 그들을 활용할 도서관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다. 도서관의 직원들이 과로하지 않게 과중한 업무가 아닌 자신의 능력에 맞는, 또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도서관 직원의 숫자도 신경써야 한다.

 

이 책에서 이미 어린이도서관은 어떠해야 함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이제는 도서관 내부, 사람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제 기적은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정기용이 해놓은 일을 계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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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구하기 힘든 시집이다.

 

 하긴 1983년에 초판이 나온 시집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1988년 3판이니 지금 구하려면 헌책방이나 가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시란 시대를 막론하고 살아남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데, 요즘은 너무도 많은 시들과 너무도 많은 책들이 나오고 또 금방 사라져서, 그리고 시가 사람들에게서 멀어져서 좋은 시도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물의 노래"

 

이 시집을 펼쳐든 이유는 단순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때문이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회고록의 내용을 보면 가관인가 본데... 도대체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다 시대 잘못이거나 참모들 잘못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을 오해해서 그렇다고 한다. 자신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 글이란 참, 사람을 떠나면 제 나름대로 생명을 지니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몇 백 년 뒤에 모든 기록이 사라지고 이런 회고록만 남았다고 하면 그 때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내가 이동순의 "물의 노래"를 다시 읽게 된 이유가 바로 이 회고록, 특히 4대강 때문이다. 그는 4대강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운하를 추진했으며, 수질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수질악화를 초래했고, 4대강 개발로 한반도를 잇는 작업을 한다고 하면서 한반도를 토막토막내었기 때문이다.

 

물은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물은 자신이 본래 있던 곳에서 이어져야 한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본래 있지도 않던 곳에 길을 내고 이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본래 있던 것들을 잇는 것이 아니라 자르고 막고 파괴하는 결과만 내게 된다.

 

이동순의 '물의 노래'는 댐으로 인해 수몰된 안동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어느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댐을 짓고, 그 댐으로 인해 마을이 통채로 잠기게 되는, 제 살아오던 터전을 잃고 쫓겨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게 몇십 년 전의 일만이 아니라, 4대강 개발로 인해 일어나는 지금의 일이기도 하고, 또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제 살턴 터전에서 쫓겨나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해군기지를 만든다는 이유로 파괴되어 버리는 구럼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직장에서 경영악화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비정규직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물의 노래'에서는 농민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에서 쫓겨났으며, 댐건설이라는 이유로 마을이 수장되는 아픔을 겪었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하여 70%정도가 농민이었던 우리나라가 이들을 실향민, 수몰민으로 만들면서 지금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농민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에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들, 그리고 일제시대 해외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실향민이 된 사람들...

 

정말 우리는 모두 실향민들이다. 그런 실향민들의 아픔이 이 시집에 절절하게 녹아있다.

 

특히 댐으로 인한 고통, 이것이 지금에는 4대강 개발로 인한 고통(4대강에는 댐보다는 작지만 보가 설치되어 있어 물의 흐름을 막고 있는 현실이다)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은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고 있는데, 그 물을 소위 힘있다는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개발하여 우리의 생명을 끊고 있는 셈이다.

 

댐으로 인한 마을 상실, 그 슬픔을 이 시를 통해서 느껴보자.

 

그러면 우리는 개발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물의 노래'가 긴 장시다. 그래서 그 시의 일부분 1만 싣는다.

 

      물의 노래

'새도 옮겨앉는 곳마다 깃털이 빠지는데'

 

              1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하늘에 맺힌 물 되어 흐르며

예섰던 우물가 대추나무에도 휘감기리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 보리

살아생전 영영 돌아가지 못함이라

오늘도 물가에서 잠긴 언덕 바라보고

밤마다 꿈을 덮치는 물꿈에 가위 눌리니

세상사람 우릴 보고 수몰민이라 한다

옮겨간 낯선 곳에 눈물 뿌려 기심매고

거친 땅에 솟은 자갈돌 먼곳으로 던져가며

다시 살아보려 바둥거리는 깨진 무릎으로

구석에 서성이던 우리들 노래도 물속에 묻혔으니

두 눈 부릅뜨고 소리쳐 불러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만 나루터에 쌓여갈 뿐

나는 수몰민, 뿌리채 뽑혀 던져진 사람

마을아 억센 풀아 무너진 흙담들아

언젠가 돌아가리라 너희들 물 틈으로

나 또한 한많은 물방울 되어 세상길 흘러 흘러

돌아가 고향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이동순, 물의 노래. 실천문학사, 1988 3판. 107-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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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1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크 프레베르의 시집을 찾아요.이사랑도...좋고..축제는 계속된다.
콘서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붉은 말.귀향.도..좋아요..혹시
중고책...파시는....ㅠㅠ

kinye91 2015-02-15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외국 시집은 별로 읽지 못했어요. 그리고 아직 헌책을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지는 않고 있어요. 그런 여력이 되지 않네요. 저는 가끔 헌책방에 들러 시집이 꽂혀 있는 서가를 살펴보는데요, 그러다 보면 간혹 마음에 담아두었던 책을 구하기도 해요. 제가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장소 님께서 자크 프레베르의 시집 구하길 바랄게요.

[그장소] 2015-02-1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친절하세요..고맙습니다..저도..바깥으로 좀 나다닐수있음..헌책방을.기웃거리고 싶어요.맹렬하게 책이..찾고 싶어지긴 또 오랫만이라...
 
걱정을 걸어 두는 나무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
마리안느 머스그로브 지음, 김호정 옮김 / 책속물고기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

 

제목을 보자마자 한 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걱정인형"들이 생각났다.

 

'걱정은 저희에게 맡겨두세요.'하던 그 인형. 내 걱정을 인형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는 그런 광고.

 

무슨 보험회사 광고였는데,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어느 한 순간 뚝 떨어진 생각이 아니었음을, 걱정을 다른 존재에 맡기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풍습이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주에서 발간된 소설이다.

 

줄리엣이라는 소녀가 자신이 방을 얻게 되고, 그 방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던 걱정나무를 발견하고, 할머니에게서 그 유래를 듣고 자신의 걱정을 걱정나무에게 맡겨두면서 지내게 되는 이야기.

 

걱정나무에게 걱정을 맡겨두고, 그 걱정을 다시 찾아 걱정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게 될까? 아니다. 걱정을 맡겨두었다는 것은 그 걱정에 자신이 짓눌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걱정과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얘기다. 걱정과 한 몸이 되지 않고 걱정을 멀찍하게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얘기. 그것이 바로 걱정나무가 하는 역할이다.

 

자, 네 걱정이 바로 여기에 있어. 잘 봐. 별거 아니지. 별거 아니야. 하는 것.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미칠 것 같은, 죽을 것 같은 고민도 털어놓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그 고민의 무게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별거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고민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걱정나무가 하는 역할이다. 이 책에서는 걱정나무에 각 동물들이 앉아 있다. 그 동물들은 여러 고민을 나누어 맡는다. 딱히 무어라 정리할 수 없는 고민은 나무 구멍에 맡기면 된다.

 

줄리엣은 걱정나무를 통하여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민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세상 모든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니었구나.'

 

모든 문제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던 줄리엣이 이런 점을 깨달아가면서 이제는 자신의 문제에서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소설이 맨 마지막에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휴'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줄리엣이 이제는 당당한 주체로 섰다는 말이 된다.

 

수많은 걱정이 난무하는 시대... 단지 줄리엣같이 자라나는 청소년,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나만의 걱정나무, 걱정인형을 지니고 걱정을 맡겨두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또 어른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이런 걱정나무들을 하나씩 선물하면 어떨까? 아이 방 벽지에 나무 하나 잘 그려넣으면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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