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아리랑. 뗏목. 레일바이크, 카지노, 탄광...

 

산 좋고 물 좋은 곳 정선이다. 옛날에는 숲이 울창해서 나무들을 베어 그 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서울로 나무들을 날랐다고 한다.

 

목숨걸고 나무들을 나르는 일, 어찌 쉬웠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그 목숨값을 술로 기생으로 많이도 날렸다고 했지.

 

그러나 나무들에 이어 석탄이 정선을 대표했다.

 

추운 겨울 사람들을 따듯하게 해주기 위해 목숨 걸고 막장으로 내려갔던 사람들.

 

사북, 고한... 사북항쟁으로도 잘 알려진 그런 탄광들, 막장들. 흔히 인생 막장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그것을 우리는 막장이라고 한다.

 

뗏목에 이어 탄광이 사람들 목숨값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정선은 카지노로 유명해졌다. 강원랜드라고 하는, 말이 좋아 랜드지 내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합법적인 도박장.

 

그곳으로 이제는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막장이 아니라 인생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오나 그들 역시 막장에 처하게 된다.

 

정선은 산과 물이 좋은데, 그 산과 물 만큼 사람들도 풍성하게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연과 대조적으로 늘 쪼들리고 살았다.

 

자신들의 목숨값을 치르고 살았다. 나무로, 석탄으로, 이제는 카지노로.

 

그런 곳을 시집 전체에 담았다. 시인은 5년 동안 정선에 살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그는 정선의 삶을 시로 남겨두었다.

 

시로 정선을 남겨두고 이제 그는 떠났다고 했다. 그는 떠났지만 정선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정선. 내게는 그냥 지나쳐갔던 아름다운 자연을 둔 곳으로만 기억되는 정선을 시인은 정선의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그래서 이 시집 "정선아리랑"은 처절했던 과거 정선의 모습을, 그러나 너무도 아름다운 정선의 자연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정선에 한 번 가보자. 정선의 자연만 보지 말고, 카지노 속에만 있지 말고 정선에 서려 있는 사람들의 슬픈 역사도 새겨보자.

 

이 시집 한 권... 정선을 느껴보자.

 

두 시... 처연하고, 처절하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막장에서 빛을 보는 그런... 막장에서 단련된 사람들끼리 함께 할 때 빛이 있음을... 이 시들에서 느낄 수 있다.

 

      막장

 

가난했기에 배우지 못해

가방끈이 짧아 마른 일도 못 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기는 먹어야 해

울 사이도 없이 막연한 화딱지를 앞세우고

남몰래 밤기차에서 내려선 나라

마중하는 사람 없는 객지타관에서

조상이 건네준 힘줄을 팔며 입에 풀칠을 한다네

힘좋던 사내들 돌발에 치이고 탄더미에 깔려

병원차에 실려나가 다시는 못 보게 되어도

그들의 이름을 되뇌어 부르는 실없는 사람은 없다네

땅끝에 와서 막장의 끝에 와서

비로소 명치끝을 치받는 설움과 분노의 덩어리를

그대들 알기는 아는가

암 암 안다고 말하겠지

알면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희망과 청춘을 고아바치고 있다네

아침이면 광차에 가득가득 실려나오는

시커먼 그러나 반들반들 윤이 나는 탄덩이를 보게

밤새 광산쟁이들이 제 살을 쥐어뜯으며

지하막장에서 뱉아놓은 검은 혈흔을 좀 보게나

저것들 모두 모여 이 나라 방방곡곡 방구석을 뎁히며

가난뱅이들의 젖은 등허리를 달래주지 않겠나

보게 분노란 달래는 게 아니라네

저토록 검은 윤이 반짝이도록 단련시키는 거라네

 

박세현, 정선아리랑, 문학과지성사. 1992년 3쇄. 86-87쪽.

 

 

 

 

   동무

 

일을 마치고

골목길 평상

나무의자에 조금씩 당겨 앉으면

우리는 동무가 된다

땀에 절은 어깨를 맞대고

덜 지워진 눈자위의 탄가루를 놀리며

술잔을 돌리면 객지벗 그리운 동무가 되고 만다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충청도에서

꼬깃꼬깃 감추었던 사연들 털어놓고 보면

아름다워 저절로 눈물겨운 동무가 되고 만다

 

박세현, 정선아리랑, 문학과지성사, 1992년 3쇄.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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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창비교육총서 1
고용우 외 24명 지음 / 창비교육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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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시대를 막론하고 화두다.

 

언제나 중심에 있고, 사회의 고민을 집약하고 있다. 특히 그 나라 자국어를 가르치는 교육에서는 더더구나.

 

우리나라 역시 국어교육에서는 고민이 많다. 자기 나라 언어를 가르치는 일, 그것은 단지 언어를 가르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을 가르치고, 또 민족의 영속성을 지켜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지 않았던가. 자국어 공부가 삶이자 목표인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외국어에 밀려, 특히 영어에 밀려 천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게다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우리말은 다 알아요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가. 굳이 배울 필요없다고... 배우지 않아도 말하고 쓸 수 있는데 왜 배우냐고?

 

여기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면 국어교육은 계속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교육에 학생들이 집중할 리가 없고,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는 교과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국어교육을 우리말이니까라는 당위로만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이제는 당위가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국어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일선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고민이 있다.

 

과연 국어교육을 받지 않아도 될까? 물론 몇몇은 자신만의 노력으로 학교 교육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국어교육을 받지 않으면 학교 교육을 넘어설 수 없다.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며, 더더구나 우리말로 된 문화를 향유하기가 힘들어진다.

 

글자는 읽을 수 있는데 의미가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의미는 알겠는데 감동을 못 느낀다거나, 그냥 기계적인 언어만을 나열할 뿐이라던가... 그런 모습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국어교육과 관련있는 사람들이, 아마도 창비 교과서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국어교육 전반에 관해서 제각기 글을 써서 모았다.

 

그렇게 모은 결과물이 이 책이다.

 

국어교육에 대한 총론부터 시작하여 국어교육의 교육과정, 교과서, 그리고 국어교육의 각 분야에 걸쳐서 한 고민들과 실천의 결과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예비교사들에게는 국어교육의 전반에 대한 지침서 역할을 할 책이고, 현직 국어교사들에게는 자신의 국어교육을 돌아볼 거울 역할을 할 책이고, 학자들에게는 국어교육을 현장에 접목시킬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책이다.

 

국어교육에 관계된 사람들로 독자가 국한되겠지만, 적어도 국어교육에 관계된 사람들은 한 번은 읽고 생각해 볼 만한 책이다.

 

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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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하나 하나의 꿈과 사랑과 추억의 깊이를 만나고 그것들이 내 시의 혼곤한 밑그림이 될 수 있을 때만이 진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무렵의 나는 행복했었다.' (후기에서. 121쪽)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마을, 아름다운 산천... 하나하나 돌면서 그를 시로 표현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덩달아 우리네 삶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텐데...

 

그런데 이제 과연 그런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아름다움을 사라지게 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아름다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진흙탕에서도 피어나는 연꽃과 같이 아름다움은 그 어떤 비루함 속에서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바로 그런 아름다움을 찾는 일, 그것이 시인의 일이고, 우리들의 일일지도 모른다.

 

'사평역에서'에 이어 읽은 곽재구 시집. "참 맑은 물살"

 

그가 만난 마을들, 그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가 느낀 점들이 담담하게 아름답게 시에 표현되어 있는데...

 

사실, 그냥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이 시집을 펼쳤다가, 얼마나 좋은가, 참 맑은 물살, 이미 마음을 씻어주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다, 첫 시에서 탁 막혔다. 꽉 막혔다. 도대체, 왜, 이 시가 처음인거야? 왜? 왜?

 

그냥 제목만 읽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시가, 세상에 그 놈의 작은 제목 때문에... 울컥해버렸는데...

 

과연 이제 이 아름다움을 여기서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 팽목... 팽목항...

 

 

   봄언덕

              팽목에서

  

냉이꽃들이 바람에 하염없이 흩날리네

황톳길 칠십리 하룻길은 아직 멀었는데

눈에 부딪는 산과 강 다 그리워

버리지 못하고 가슴에 안고 가네

사랑하는 사람아

냉이꽃밭 위 찢긴 몸 그대로 누워라

조선의 사월의 가장 맑은 바람

이 꽃밭 속에 숨어 사나니

내 그 바람 한 줄기 불러다가

최루가스 짓물린 네 눈물자욱도 닦아주고

엄지손톱 끝 머릿니랑 서캐랑 뚝뚝 눌러주고

곤봉으로 피멍든 첫사랑 이야기도 들어주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해 저물면

마을에 내려가 더운밥 한 그릇도 얻어다 줄게.

 

곽재구, 참 맑은 물살. 창작과비평사. 1995년. 8쪽.

 

유족들이 팽목항에 도착하여 세월호 인양을 외치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는데...

 

입춘이 지났는데.. 이제 봄이 와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네 가슴은 차디찬 겨울이니...

 

작고 여린 냉이꽃들이 함께 모여 아름다움을 과시하듯이, 그 냉이꽃에서 맑은 바람이 나오듯이, 사월의 바람이 우리의 마음을 녹이듯이 그렇게 세상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이제 우리의 사월은 누구의 시 말대로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으니...

 

이 시와 세월호가 겹쳐지면서, 냉이꽃과 바닷속에서 스러져간 넋들이 겹쳐지면서 마음이 애잔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봄은 온다. 봄이 오게 해야 한다. 팽목에도 봄이 오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로 이제는 눈물자욱 닦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잊어서는 안된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다시 사월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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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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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에 애를 낳았다. 여자도 남자도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러나 그들은 애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포기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열일곱 살이 되었다. 물리적인 나이는 열일곱. 그러나 육체적인 나이는 팔십.

 

조로증이다. 일찍 온몸의 세포들이 늙어가 남들보다 일생을 길고도 짧게 살게 된다.

 

열일곱이 된 내가 열일곱에 자신을 난 부모들을 보면서, 그 부모들이 늙었을 때 모습이 지금 자신의 모습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죽어간다. 이렇게 죽어가는 젊지만 늙은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마치 열일곱에 애를 가졌을 때 포기하지 못했던 것처럼, 다시 열일곱이 된 아이가 자신들을 떠나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못'이 아니라 '안'이다. 의지다. 그럼에도 아이는 떠나간다. 그리고 다른 아이가 오려 한다.

 

아이는 열일곱의 인생에서 한창 여름을 글로 남겨놓았다. 부모는 여름도 없이 가을로 갔고, 그들은 아이의 죽음으로 곧 겨울로 접어들텐데, 아이는 자신이 글을 써서 남김으로써 부모에게 부모의 열일곱, 그 여름을 돌려주고 있다.

 

그렇게 돌려 받은 여름이 이 소설의 끝이다.

 

여러 이야기가 중첩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읽어가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죽 읽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는 무슨 심술이 났는지 한 번에 읽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내용을 반추하면서 읽었다.

 

그렇게 한 번에 읽기보다 조금씩 되새김질 하면서 읽으니 더 재밌다. 아니 더 울림이 있다.

 

열일곱, 나는 인생의 여름을 어떻게 보냈던가. 인생의 여름을 맞이하고도 여름을 즐기지도 못한 이 소설의 주인공 '아름'. 그리고 이런 아름이로 인해 자신들의 가을을 겨울로 만들어야 했던 부모, 대수와 미라.

 

죽음을 생각할 수 없는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아름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아마도 우리는 자신이 그 계절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계절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금 거리를 두어서야 그 계절의 맛을 알게 되는 것, 아름이로 인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인생이라는 그 여름의 무성함을, 그 다양함을 알게 되니 말이다.

 

여름일 나이에 겨울을 맞은 아름이를 통해, 그의 아름다운 삶을 통해, 내 인생이 다시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한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지만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 경이,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에서 들리는 소리, 내 심장에서 들리는 소리, 그런 두근두근 하는 설렘으로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 설렘을 이 소설이 다시 찾아주었다.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의 인생이 여름이라고... 모두 두근거리는 인생이라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여름이라고... 무성하고, 깊고 다양한, 생명이 살아 넘치는 그런 여름이라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는 것도 의미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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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서로를 믿을 때 세상은 변하고


믿음이 있어야 해.


세상을 바꾸려

여린 몸으로

오랫동안 오다보면

이리저리

흩날리기도 하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대지에

온몸을 떨고

두려움에

한 방울 눈물로

변하고도 싶겠지만


믿어야 해.


함께 온 것들,

뒤에 온 것들이

참고 기다려준

앞서 온 것들과

하나 될 때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여린 것들도

함께 모이면

새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믿음이 있어야 해,

새 세상을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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