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햇살이 따뜻하게 배달되어 하루의 온기가 시작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시간.

 

사람들은 이제 하루 자신들의 일을 막 시작하고 첫 쉬는 시간을 가질 때.

 

그 때 만나는 햇살, 좋다.

 

이런 햇살을 기대하고 이 시집을 읽으면 그렇지 않다. 시집의 내용이 대체로 우울하다.

 

죽음이, 어찌할 수 없음이, 이미 사라져 버림이 시집에서 주로 차지하고 있다. 그가 요절했다는 점이 이 시집을 더 우울하게 읽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오전 10시. 이것을 정치에 비긴다면 정치권이 국민들을 위해서 일을 할 때, 정치가 제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정착이 되기 시작할 때... 그래서 국민들이 이제 겨우 첫 휴식을 가지며 여유를 느낄 때...

 

그 때가 바로 오전 10시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오전 10시에 도달했는가?

 

우리는 지금 몇 시에 있는가? 아직도 해가 뜨지 않은 차디찬 새벽 공기만이 세상을 감싼 서너 시에 있는가?

 

그건 아니겠지... 이 시집에서 원희석은 87년 민주화투쟁이 끝난 뒤의 슬픔을 '모두 죽었다'라는 시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에게 민주화투쟁이 끝난 뒤 10년 우리네 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 모두 썩은 세상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그 시에서 '남쪽은 모두 썩었다 입이 썩고 눈이 썩고 정치가 썩고 심장이 썩었다'고 절규하고 있다.

 

지금도 이 말이 유효할까? 유효하다면 10년이 아닌 이제는 30년이 되어가는 지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던 거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날이 지났다. 이 설날에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모여 온갖 이야기들을 했을텐데, 그 중에 정치 이야기도 있을텐데, 정치가 이야기도 했을텐데.. 그래서 '설민심'이라는 말도 나왔을텐데...

 

최소한 정치가라면 국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이 시가 꼭 정치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치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한 시다. 이런 정치인이 지금 필요하니 말이다.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

 

  물들이 깃털을 버리고 뼈 찾아 얼음 속으로 바퀴 밑으로 날카로운 발톱 감추고 알몸으로 날아간다 흙의 동굴은 솜처럼 부드럽다 생명의 경쾌한 악보는 더러운 신발 밑에 그려져 있고 코끼리를 탄 동자의 속눈썹은 도라지처럼 하얗다 사자들은 왜 대리석 이빨을 드러내고 천년 동안 울부짖는가 어둠 타고 언덕 기어오르던 햇살의 손이 바짝 오므라들 때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

  높게 나는 새는 멀리 보지만 낮게 나는 새는 정확히 본다 높게 나는 새는 굴뚝 밑 그림자 볼 수 없지만 낮게 나는 새는 장롱 밑 댕기의 사연까지 잘 안다 높이 나는 새는 큰 것 보지만 낮게 나는 새는 자세히 본다 싸리나무 회초리들을 휘두르는 손목, 거품처럼 떠오르는 깡통들의 아우성, 고무신을 끌고 가는 채찍의 노랫소리, 진흙에 묻힌 연꽃들의 귓밥 터는 소리, 저녁 햇발의 잦은 박동 소리, 뿌리는 같아도 다른 꽃잎이 피는 딱딱한 진흙의 밑바닥까지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

  낮게 나는 새는 골목에서 길목까지 버려진 늙은 고양이의 눈물 볼 수 있다 말뚝과 말뚝 사이 녹아든 철망의 신음 소리 들을 수 있다 광주에서 평양을 오가며 색칠하는 잎새들의 장구 소리 들을 수 있다 높이 나는 새는 눈이 크지만 낮게 나는 새는 귀까지 크다

 

원희석, 오전 10시에 배달되는 햇살, 민음사. 1999년. 46-47

 

설연휴가 끝났다. 정치인들, 낮게 나는 새처럼 눈을 크게, 그리고 귀도 잘 열어두길 바란다.

 

아니지, 정치인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탁은 정치인이 우리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낮게 나는 새와 같은 그런 정치인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게 우리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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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가 도미노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나

굳건히 서서는 만들 수 없고,

쓰러져야만 새 세상을 만들 때,

함께 가자,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있지 말고 너와 나

기꺼이 쓰러져 함께 쓰러져

쓰러지는 몸들을 붙고 붙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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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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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다. 읽기에.

그럼에도 읽어야 했다.

눈먼 자들이 되지 않기 위해.

적어도 책 한 권에 마음을 담을 수는 있기에.

 

이 책에서 말한 '사건과 사고'라는 낱말의 정의에 동의한다. 그래야 한다. 바른 언어 생활, 그것이 우리를 눈뜨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건과 사고.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고, 세월호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는 말, 전적으로 동의 한다. 언론은 한사코 사고라는 말을 쓰는데, 아니다. 그건 사건이었다.

 

사고와 사건의 차이는 이 책에서 박민규의 글에서 나온다.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눈먼 자들의 국가'

 

이 말에 대해서는 마지막 글에서 엮은이가 정리를 잘해주고 있다.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합하는 일이다. 229쪽

 

이렇게 세월호에 대해서 사고라고 하고, 오로지 보상 쪽으로 문제를 이끌어가면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된다.

 

그렇게 '눈먼자들의 국가'가 된다.

 

이 책 제목이 된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말, 두 가지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국가의 주체를 '눈먼 자들'로 보면 그들은 돈에 눈이 멀었든, 권력에 눈이 멀었든, 진실에 눈을 감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운영하는 국가라는 뜻이 된다.

 

국민이라는 존재는 안중에 없고 애오라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 그 집단을 권력집단이라고 해도 되고, 관료집단이라고 해도 되고, 자본가 집단이라고 해도 되지만,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자신 이익 외에 다른 것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즉 눈먼 자들이 지배하는 국가는 제대로 갈 수가 없다. 방향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런 눈먼 자들은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또 '진실'을 보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눈먼 자들이 지배층에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에, 진상이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기 않았기에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14일 신문에 '세월호 진상조사 위원회' 설치에 관한 대략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나왔다. 300일이 넘은 지금에서야 진상조사 위원회 인원과 예산 정도만 합의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빨리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조사위원회가 작동하려면 사건이 터진 4월 16일을 넘길 전망이라고 한다.

 

이들은 그래서 자꾸 세월호를 '사건'으로 만들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아먄' 하는 어떤 것으로 말이다.

 

눈먼 자들에는 또다른 뜻이 있다. 바로 국민들이 눈멀었다는 뜻. 우리는 늘 속으면서도 그놈이 그놈이지, 아니 이번에는 좀 다르겠지 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대변하지 않는 정치권을 선택하곤 한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말에 혹해서 다시 눈이 먼다. '이번에는' 하고 투표를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가 된다.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눈먼 국민들은 눈먼 정치인을 양산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민도 눈 멀고, 정치인도, 경제인도 눈 멀면, '사고'는 언제나 '사건'이 되고 만다.

 

사고를 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위에 있는 자들이 눈 멀었다고 해도, 국민들이 눈을 뜨고 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가 '눈 멀고 있었음'을 알려준 '사건'이다. 눈을 떠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세월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눈물겹도록, 가슴 시리도록, 그렇게...

 

이제 눈 떠야 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시간의 흐름에 '사건'을 '사고'로 바꾸고,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눈먼 자들의 행동을 감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아니, 눈먼 자들을 이끌어야 한다. 제대로 그들이 갈 수 있도록.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팠던, 그래도 눈 뜨기 위해서, 눈이 멀지 않기 위해서 읽어야만 했던 책...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잡게 한 책.

 

이렇게 기록으로, 행동으로 남겨야 한다. '진실'을 찾기 위해, '진실'을 잊지 않기 위해.

 

'사건'의 '기억'을 위해 '진실'을 촉구하기 위해 글을 써준 12명의 작가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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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다시 펼쳐든 시집이다. 지독한 사랑이라. 사랑이면 사랑이지 지독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다니.

 

이것은 어쩌면 스토커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남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제 뜻대로 하려고 하는, 그런 사랑일테니 말이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지독한 사랑'이라는 시도 조금 섬뜩하다.

 

사랑에 중독되어 자신을 완전히 잃은 사랑 아니겠는가. 시인은 그런 사랑을 '시퍼런 칼끝이 죽음을 관통하는 이 지독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온 몸을 바친 사랑. 그런 사랑이 어떨 때는 좋지만 어떨 때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상대방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 그 사랑은 지독한 사랑이 되고, 그런 사랑은 서로에게 고통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사랑은 상대를 상대로 인정하고,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일일 것이다.

 

너를 위하여 이렇게 했다는 말이 잘못하면 상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음을, 국민을 위하여 이런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나라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 자신의 부족을 다른 사람이, 다른 존재가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아닐까 한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나와 남이 함께 공존하는 데서 찾아지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이 '나는'이라는 시를 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 세상은 또 다른 '나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그래서 나와 또다른 나들은 우리가 된다는 사실. 서로가 각자 존재하되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일서설 수가 없습니다.

내 몸의 반은 썩어 푸른 곰팡이 번지고 있습니다.

오른쪽 뇌는 굳어 단단한 돌멩이가 되었고

오른쪽 팔과 다리는 무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 굉장한 희열을 느낍니다.

내가 왼손으로 짚는 침대 모서리

찬장머리 농 손잡이 문 손잡이 의자등 계단 난간

이것들이 다 내 몸이니까요.

 

그대여 내 몸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저들을 깊이 알 수 있었을까요.

저 혼자 온전했다지만 목발 짚은 시간들 많았는데요.

 

채호기, 지독한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년 6쇄. 26쪽.

 

우리는 모두 목발 짚은 존재들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주변의 존재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만 잘났다고 설레발을 치는 사람들, 이 시를 한 번 읽어 보라.

(뇌의 오른쪽이 망가지면 몸의 왼쪽을 못 쓴다는 과학적 이야기는 생략하자.)

 

 내 몸이 불편해지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들이 소중한 존재로 내게 다가온다는, 그래서 그것들이 바로 나였음을, 나는 우리로서만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시이지 않은가.

 

과연 나는 온전한 존재인가. 나는 지금 내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남에게 군림하기 위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 이 시를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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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70
김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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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니, 무얼 느껴?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대개 길어서 짧음을 기대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길고 또 무슨 무슨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범상치 않다. 무슨 오물 냄새, 정액 냄새가 진동하는 이야기들이다. 비루한 것들을 모아놓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라블레 소설에서 느끼는 몸의 충만함, 몸으로 넘침 같은 그러한 몸에서 나는 모든 것들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무언가 밝음이 아니라 어둠이, 내놓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감춰야 할 것이 시들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춰야 하고, 숨겨야 하고,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해야 하는데, 그것을 과감하게 밖으로 드러낸다.

 

그래, 나 이렇다. 어쩔래? 하는 투다. '나 이렇다'가 아니라 '우린 본래 이런 존재야. 내숭 떨지 마'라고 하는 듯하다.

 

가리고 싶은 이면을 굳이 드러내서 그것이 현실임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임을,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임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집에 실린 시들은 난해한 시들도 있고, 도대체 이게 시가 되나 하는 시들도 있고, 어디 세상 뒷골목 이야기를 모아놓은 듯한 이야기도 있고, 적나라한 성, 성이라는 말이 그러면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들도 있다.

 

똥 냄새, 정액 냄새. 우리가 밑으로 뱉어낼 수 있는 냄새들... 결코 내세우고 싶지 않은 냄새들. 그러나 우리를 이루고 있는 원초적인 냄새들. 우리 삶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그 냄새들이 이 시집에서 진동하고 있다.

 

꼭 빌헬름 라이히의 이론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인간을 오르가즘의 존재로 규정하고, 모든 병의 근원은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 데서 온다고 주장했던 그. 그래서 자유롭게 섹스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

 

진정한 오르가즘은 사람을 환희에 떨게 하고, 그런 기쁨으로 인해 온몸의 세포들이 살아움직이게 되니, 병도 자연스레 치유될 가능성이 있을테지만...

 

김민정의 이 시집에서는 아직 그 단계까진, 진정한 오르가즘의 단계까진 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쁨의 냄새보다는 무언가 숨기고 싶은 냄새가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지... 하여튼.

 

그런데... 제목이 된 시를 읽어보면 도대체 그녀가 무엇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알 수 없음을 채우는 것이 독자의 몫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이 시집의 뒷표지에는 '시라는 것'을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는 처음, 느낀 것은 무엇일까... 시일까? 삶일까? 아님, 이러한 비루함 속에서도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그 따뜻함은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시임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냥 읽어 보자. 그냥 읽어 보라. 그녀가 처음, 무엇을 느꼈는지...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천안역이었다

연착된 막차를 홀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톡톡 이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플랫폼 위에서 한 노숙자가 발톱을 깎고 있었다

해진 군용 점퍼 그 아래로는 팬티 바람이었다

가랑이 새로 굽슬 삐져나온 털은 더럽게도 까맸다

아가씨, 나 삼백 원만 너무 추워서 그래

육백 원짜리 네스카페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이거 말고 자판기 커피 말이야 거 달달한 거

삼백 원짜리 밀크 커피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서울행 열차가 10분 더 연착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전광판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천안두리인력파출소

안내시스템 여성부 대표전화 041-566-1989

순간 다급하게 펜을 찾는 손이 있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게서 따뜻한 커피 캔이 만져졌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던 그 시였던가

여성부를 이성부로 읽던 밤이었다

 

김민정,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사. 2014년 초판 6쇄.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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