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 가로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보게 된다.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할머니들만 보인다.

 

할아버지도 있으련만... 어려운 환경에서 적응을 하고, 삶을 유지하는 존재가 바로 여성인듯이,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들이 더 눈에 잘 띠는 것인지... 분명 할아버지들이 손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본 것 같은데, 기억에는 할머니들만 남아 있다.

 

차들이 씽씽 달리는데, 남들은 차를 타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또는 제가 운전하는 네 바퀴에 실려 편안하게 가는데,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언덕길을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높이 쌓인 폐휴지며, 옆에 보이는 깡통, 병 등등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

 

이제는 편안하게 집에서 쉬어도 좋으련만, 할머니들은 손수레를 끌고 생계를 위해서 출근을 한다. 고물상으로.

 

무게로 달아 받아오는 하루 노동의 대가, 삶의 보존.

 

이 생각이 든 건 박성우의 시 '고양이'를 읽고나서다. 이 시에서 어떤 슬픔, 그러나 강한 생명력을 발견했다. 그리고 길 가로 손수레를 끌며 지나가는 할머니, 그 할머니를 받아주는 고물상이 생각났다.

 

고양이

 

고양이가 새벽 쓰레기를 뒤적인다

부스럭부스럭, 앞발에 뜯긴 비닐봉투가

빈병과 깡통을 신경질적으로 쏟아낸다

 

움 칫, 눈이 동그랗게 커진 고양이

솟은 등을 나른한 하품처럼 내려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들을 느릿느릿 쫓는다

여전히 쓸만한 몸이라는 듯 데굴

 

데굴 구르다 멈춘 것들을

종아상자 쪼가리와 신문지 위로 떠민다

한바탕 쓰레깃더미에서 나뒹군 고양이

털썩 주저앉아 멀뚱멀뚱 숨을 고른다

 

가시처럼 뻣센 수염이 뻗어 있는 홀쭉한 입

쫘악 벌렸다 오므리고는 몸뚱이 일으킨다

아랫배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등 굽은 고양이가 모퉁이 길을 나선다

 

뒤적여 모은 고물 얼기설기 쟁인 손수레 끌고

아슬랑아슬랑 제일고물상으로 들어가는 늙은 고양이

 

박성우, 가뜬한 잠, 창비, 2012년 초판 5쇄. 68-69쪽.

 

 

고물상은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활을 책임져주는 고마운 존재다. 게다가 고물상은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사용했던 사람에게 버려진 물건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삶에서 수명이 다해가는 노인들이, 수명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또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그런 행위.

 

손수레에는 그런 삶이 들어 있다. 그런 손수레를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운전에 방해된다고, 빵빵거리지는 말아야지, 투덜거리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재활용될 수 있는 것들, 폐휴지들 잘 모아서 가져가기 편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몇몇 가게들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매주 재활용을 하고, 그 이익을 공동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재활용 차가 오기 전에 먼저, 필요한 노인들에게 손수레로 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

 

어차피 자신들은 필요없다고 내 놓은 물건들, 생활에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고, 생계에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고, 그 나머지를 공동으로 나누어 자신들이 다시 가져간다면... 서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

 

이러고 보니, 고물상은 재활용을 통해 환경을 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번듯한 일자리를 갖기 힘든 노인들의 생계를 책임져, 노인들을 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동네에 고물상이 있다고, 지저분하다고 투덜거렸던 나를 반성한다.

 

이렇게 시는 나를, 주변을 돌아보게 해준다. 고마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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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스탈린 - 강철 인간의 태동, 운명의 서막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김병화 옮김 / 시공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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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강철 사내. 그렇게 번역이 되는 이름을 가진 사나이. 본명은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

 

러시아 이름은 참 길다. 길어서 사실 외우기도 힘들고 발음하기도 힘들다. 그러므로 그의 본명 따위는 무시하고, 그냥 스탈린이라고 하자. 이 책에서는 '소소'라는 이름과 '코바'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지만, 이는 모두 가명이니, 그가 스탈린이라만 알고 넘어가면 된다.

 

평전이라는 이름이 그렇듯이 이 책 역시 단순히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을 통해서 하나의 관점을 형성해서 그것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스탈린은 지금은 과거 속으로 사라진 사회주의국가(혹은 공산주의 국가, 마르크스주의 국가라고도 한다)의 최고 수장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잔혹한 독재자, 전체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정권을 차지한 다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그에 대한 그의 책임은 얼마인지는 역사가들이 많이 밝혀내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스탈린이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기까지 어떻게 지냈는지를 여러 자료들을 찾아서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지금은 조지아라고 불리은 그루지아 출신의 그다지 교육을 많이 받지도 않은, 신학교 자퇴생(?)이자, 알콜 중독자의 아들(공식적으로는, 이 책에서도 그의 아버지가 제화공이자 알콜중독자가 되는 베소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이들이 아버지일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 또 스탈린 자신도 그의 생부가 누구인지 모호하게 말하고 있다고 하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러시아(한때 소련이라고 했던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권력을 잡은 뒤에 그의 잔혹성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그의 잔혹성 때문에 그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그의 폭력성, 냉정함, 잔혹함, 남에게 무신경함 등을 어릴 적부터 추적하여 보여주고 있다. 마치 스탈린은 그의 출생에서부터 환경을 통해서 어린 시절부터 비밀스럽고 잔혹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러시아 혁명 과정을 통해서 더 강화하고 조직적으로 만들어나갔다는 전제를 깔고, 그 전제에 맞는 자료들을 모아놓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책이 스탈린에 대해 없는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한 일들을 어떤 관점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또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젊은시절에는 시를 쓰기도 했고, 독서를 매우 좋아했으며, 노래에 소질이 있어서 그의 노래소리는 듣기에 좋았다는 얘기, 그의 아버지는 그가 공부하는 것을 극도로 반대했으며, 반대로 그의 어머니는 그가 사제가 되기를 바라 그를 신학교에 입학시켰다는 사실.

 

극성맞다면 극성맞은 어머니 덕에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켜 나가는 모습을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사실은 사실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은 다른 사실들과의 관계, 사실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 그 사실이 놓여 있는, 또 그 사실을 해석하는 사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니, 이 책에 나온 일들은 스탈린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기의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가 하는 치밀함, 냉혹함 등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고, 그의 가정적인 불행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다. 여러 요소들이 합쳐서 그에게는 사랑이라는 요소보다는 성취라는 요소가 그의 삶을 좌우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 성취를 위해서는 주변의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사람, 그런 스탈린이 혁명이 끝난 다음에 정권을 잡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혁명 과정에서는 이상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만, 혁명이 성공한 다음에는 그 일을 조직하고, 이끌어가는 냉철한 사람이, 자신의 말을 따르는 사람을 거느린 사람이 정권을 잡을 수 있끼 때문이다.

 

그러니 이상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다름이 지도자를 독재자로, 전체주의자로 변모시킬 수도 있음을, 또는 반대로 전체주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혁명이 성공한 다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나온 것처럼,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스탈린의 생애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좀 아쉬운 점은 스탈린의 개인적인 삶을 중심으로 평전이 구성되어 있어, 그가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는지, 그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략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평전이니만큼, 그의 행동과 그의 사상이 어떤 일치, 또는 불일치를 이루었는지, 적어도 그가 신봉했다는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레닌주의를 스탈린주의가 왜곡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오히려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하는데..640쪽...) , 레닌주의 또는 스탈린주의가 어떻게 다른지를 다루어주었으면, 스탈린의 행동과 사상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평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혁명이란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정임을, 즉 누구나 개인이 춤출 수 있는 사회가 아니면 그것은 혁명 사회가 아님을 이 스탈린 평전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됐고.

 

방대한 분량과 자세한 자료 수집, 그리고 그 자료들을 잘 엮어낸 저자의 노력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덧글

 

이 책은 출판사가 보내주었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사상을 현실에 구현했다는 소련, 그리고 그 사회의 수장이었던 스탈린의 젊은 시절을 알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출판사에 감사를 표한다.

 

하나, 오타라고 생각되는 부분...

 

553쪽에서 '그가 간 뒤 대략 1918년 4월경 리디야는 아들을 낳아 알렉산드르라고 이름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스탈린이 유형지를 떠난 것이 1916년 10월 경이고 그 이후 만나지 않았으니 이건 불가능하다. 1917년 4월경이라고 하면 모를까...

 

이 1918년이 오타라는 것은 659쪽 에필로그에서 '스탈린과 리디야 페레프리기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알렉산드르는 살아남았다. 그는 아마 1917년 초반에 태어났을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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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법(法)에 대해

 

눈을 가리고 칼을 들고 있어야 할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뜨고 책을 들고 있다. 무엇을 살피려 함인가, 상류에선 동반자 견(犬), 하류에선 처벌자 검(檢)이 되려 함인가. 이럴 때,


법(法)은 평등(平等)하지 않다.


상류(上流)는 좁고 맑아서

무엇이 있는지 너무도 잘 보여

이고 가기엔 너무도 가볍다.

오히려,

발을 담그고, 시원하다!

즐겁기만 하다.


하류(下流)는 넓고 탁해서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안 보여,

이고 있기엔 너무도 무겁다.

오히려, 

몸이 잠기고, 익사한다.

견딜 수가 없다.


법(法)은 

높이 올라갈수록 단순하다.

속이, 다 보이므로 걸릴 일이 없다.

낮은 곳에 갈수록 복잡하다.

속을, 볼 수 없으므로 다 걸린다.


법(法)이 평등하기 위해선

아래․위를 맞춰야 한다.

물로 맞추는 것이 아닌 삶으로.

그때서야 법(法)은, 법으로,

평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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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문학 속 친절한 현대사 - 교과서에서 뽑은 현대문학 작품 86 교실밖 교과서 시리즈 16
박기복 지음 / 행복한나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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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나 역사는 모두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다. 관련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문학은 문학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마치 삶과 관련이 없이 존재하는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는. 학교 교육에서는 삶을 위한 문학, 삶을 위한 역사라기보다는 진학을 위한 문학, 진학을 위한 역사 공부를 하게 된다. (물론 진학 역시 삶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삶이란 그런 범주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그래서 문학도 어렵고, 역사도 어렵다. 왜, 다 암기과목 취급을 받으니까. 그냥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하기 때문에, 그 순간에만 기억하기 위해서 암기를 하기 때문에 문학이든, 역사든 어렵고, 하기 싫고 짜증나는 과목에 불과하기만 하다.

 

과연 그런가? 문학과 역사가 그렇게 진학에만 관계가 있을까? 문학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 나오고, 역사에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하는 삶의 모습이 나오니, 문학과 역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데 적절한 참고자료가 되는 것이다.

 

특히 문학에서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특정한 환경에서 겪는 갈등들을 경험할 수 있으니,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참고자료를 얻을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란 사람들이 특정한 시대를 살아온 흔적 아니던가. 또한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 아니던가. 그 때 그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 그 결과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학문이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가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미리 어떤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문학과 역사에는 사람이 있고, 사회가 있고, 선택이 있고, 결과가 있다. 바로 우리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과 역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과목이기도 한 것이다. 또 배울 때 문학 때로 역사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넘나들면서 배우면 더욱 효과적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를 떠난 문학이 없으니, 역사 속에서 문학을 배치해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그러한 편집을 따르고 있다.

 

일제시대로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의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창시절에 배우는 문학 작품을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배치하여 보여주고 있다.

 

문학과 역사 둘 다를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데... 그냥 주욱 읽어가면 우리나라 현대사의 흐름을 익힐 수 있고, 그 사이사이에 있는 문학작품들을 통하여 당시 현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그러니 문학과 역사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나오게 된다. 이책을 읽고 문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생겼으면 문학 작품은 원문을 찾아 읽으면 좋고(무려 86편이 나온다. 이 작품들만 읽어도 우리나라 문학에 꽤 깊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역사는 좀더 세세하게 나와 있는 책을 찾아 읽으면 좋겠다. 

 

책의 뒷표지에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독자라고 해서 중학생, 고등학생, 중,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님, 선생님이라고 되어 있는데... 꼭 이들만이 아니더라도 문학이 역사와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한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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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디자인 Design Culture Book
김지원 지음 / 지콜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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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울 구로구의 항동에 있는 철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철길이 중심이 아니라, 오래된 그 철길 가에 무성하게 자라있는 세 잎 클로버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 잎 클로버 꽃말이 행복이라고 한다. 그리고 네 잎 클로버 꽃말은 행운이고. 이제는 관용어가 되다시피한 '행운을 찾기 위해 행복을 밟지 마라'는 말은,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 클로버를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태도를 비판하는 말이다.

 

그만큼 행복은 우리 도처에 널려 있는데, 우리는 그런 행복을 보지 못하고, 찾지도 않고, 짓밟고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디자인에 관한 책인데, 세 잎 클로버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디자인은 우리의 삶 도처에 있고, 그런 디자인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런 디자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 행복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디자인이 우리 곁에 행복으로 늘 함께 했구나 하는 점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이 새로운 디자인이건, 오래된 디자인이건...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마음이 닿은 어딘가, 2장 삶의 마술지팡이, 3장 예기치 않은 위안, 4장 아름다움 너머의 가치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1장은 바로 의자에서 시작한다. 의자, 우리가 늘 곁에 두고 있는 물건 아니던가. 우리의 몸을 쉬게 해주는 존재. 피로한 다리를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우리보다는 두 개의 다리가 더 많은 존재.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반려동물인 개하고 의자를 비교한다. 의자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위해 세 다리를 버리고 네 다리로 존재하게 됐다는.

 

그렇다. 누가 의자에 대해서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의자 없이 지내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의자는 우리의 삶에 늘 우리와 함께 했다. 이런 의자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이다. 의자에 몸을 의지할 때 우리는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지 않는가. 이렇게 사소하지만 늘 우리 곁에 있는 것들, 신호등, 그리고 공간, 찻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1장이다.

 

2장에서는 카메라로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쓰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그렇다고 필름 카메라 중에서도 고급이 아닌, 아주 작은, 어떻게 찍힐지 예측하기 힘든, 그래서 더 재미있는 사진기. '로모그래피'라는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사실, 이 카메라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됐다. 재미있는, 어쩌면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오는 그런 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장난감, 캐릭터, 레고, 자연친화적인 자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장에서는 공책, 판자촌, 헌책방 및 벼룩시장, 서체,도시풍경 스케치가 나온다. 특히, 공책. 이제는 사라져가는, 쓸모없어지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글씨를 도통 쓰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글쓰기 기능이 있기도 하지만, 타자기능과 또 메모하기보다는 사진을 찍어서 영상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대에 공책이라니... 그런데, 공책은 우리의 기억을 보관하는 특별한 저장소다. 자기만의 기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관하는 그런 디자인, 그것이 바로 공책이다. 이런 공책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같은 어른을 과거로 이끌어간다. 

 

공책을 살 때의 기쁨, 그 공책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기쁨. 가끔 공책을 들춰보며 아, 그땐 내가 그랬구나 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기쁨... 그런 기쁨을 전해주는 디자인, 공책. 정말 행복의 디자인이다.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고.

 

4장은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4장에서는 종이컵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을 끈다. 지금은 환경오염 덩어리라고 쓰길 자제하자고 말하지만, 최초에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디자인된 것이 바로 종이컵이라고.

 

이 종이컵은 우리나라에서는 촛불집회 때 참 많이도 쓰였지.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 그런 역할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려는 의지를 보이는 촛불을 감싸주는 역할을 하던 종이컵.

 

그렇다. 무조건 종이컵을 매도할 것이 아니라, 종이컵을 우리가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행복의 디자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눈도 즐겁고(사진들이 많으니) 마음도 즐겁다. 제목 그대로 행복의 디자인이다. 그냥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어도 된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아무 장이나 펼쳐 지금 자신이 놓치고 있는 행복을 찾아보자. 아니, 행복을 느껴보자. 그게 이 책이 주는 역할이다.

 

책의 편집 후기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아마도, 이 말이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겠단 생각이 든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지원 저자와 이 책에 대해 골몰하게 고민하고 상의하던 시기에 그에게서 받았던 질문이다. 아마도 당시의 난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행복은 기억이다.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아이를 낳고 키우며 쌓인 기억. 힘든 시절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와의 기억. 사람과 함께 한 기억들은 행복으로 쌓여있고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날의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말없이 우리들 곁에 존재하던 디자인. 디자인은 절대 자기 자신을 먼저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 필요에 의해 손 내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필요하면 꺼내쓰고, 그러나 무용해지면 버려지는 우리 곁의 수많은 사물들. 그것들은 말은 못하지만, 그 동안 사용해주어서 고마웠다고, 언제고 필요할 때면 꼭 다시 찾아봐달라고 한다. 말없는 친구와 같은 다지안, 그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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