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교실 거꾸로 공부 - 왜 세계는 거꾸로 교실에 주목하는가
정형권 지음 / 더메이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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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장은 책의 뒷면에 나와 있는 한 문장에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강단 위의 현인' 대신 '객석의 안내자'가 필요한 시대"

 

그렇다. 지금 교육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이끌어가서는 안된다. 이미 시대가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바뀌었고, 하향식 수업이나 또는 상향식 수업에서 이제는 쌍방향 수업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지식을 주입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지혜를 찾아나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교사가 필요한 시대이고, 이런 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가 발전해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이를 교사들에게 당신들이 바뀌어야 우리 교육이 살아라고만 해서 될까? 교사들 역시 자신들의 수업을 바꾸려고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안정된 직장에 정년이 보장되고, 임금도 적당하고, 연금도 잘 나오는 직업이기에 그냥그냥 시간을 때우는 교사들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교사라고 하면 자신의 수업에 대해서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하든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학교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나 하는 질문을 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지금처럼 연말이 되면, 또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는 수업이라는 것은 실종되고 만다. 학교는 거대한 영화관이 되든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밥만 먹으러 오는 공간이 되든지 한다. 여기에 배움은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 아이들은 오로지 시험만을 위해서 공부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배움의 과정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기관을 다니라고 했기에, 또 그렇게 해야만 자신과 부모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기에 다닌 것뿐이다.

 

그러니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제 그 기간에는 더이상의 시험이 없으니 무엇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간의 피로를 풀어야 하는데, 피로를 푼다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은 오로지 소비적인 활동만을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 배움은 없다. 끔찍하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학생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배움이 없다고 하다니.

 

배움이 없는 학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끔찍한데, 교육을 총괄한다는 교육부는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고, 교육청은 여러 사업을 한다고 바쁘고, 교사들은 이런저런 일에 불려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학부모들은 오로지 입시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아이들이 어떻게 배움에 대해 생각하겠는가.

 

배움에 대한 동기를 자극받지 못하고 초중고 12년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2-6년간을 그냥 시간만 보내다 직장에 취직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의 암담한 현실이자, 더욱 암담한 미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가 나왔으니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해답을 찾는 과정, 이것이 바로 배움이다. 배움은 학생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해야 한다.

 

해답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배움을 중심에 놓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이름 붙여도 상관없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이라고 상관이 없다. 단 하나만 공유하면 된다.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놓는다.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배움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이것뿐이다. 스스로 배우려고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자신의 삶과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런 방법을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뒤집힌 교육방법. 하나가 아니다. 아이들은 배우려는 욕구가 있으며, 서로 도우며 잘 배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중심에 놓은 교육실천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어 있는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배움을 스스로 조직하는 아이들'에서는 인도의 수가타 미트라 교수의 실천이 나온다. 가난한 아이들도 부유한 아이들과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역시 기회만 있으면 배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것을 실천한 사람. 그 사례를 통해 우리는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 칸 아카데미'에서는 살만 칸 박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사람들이 학습할 수 있다는, 누구나 다양한 수준으로 다양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배움의 모습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실 이데아, 거꾸로 교실'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거꾸로 교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앞의 두 사례와 거꾸로 교실이 다르지 않음을, 이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거꾸로 교실 또한 특정한 모델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실현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적의 교실, 슬로 리딩'에서는 일본의 하시모토 다케시 선생이 '은수저'라는 소설을 가지고  실천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초등학교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가지고 실천한 사례도 있으니... 구체적인 수업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 생산과 거꾸로 공부'에서는 21세기, 또는 22세기에 맞는 사람은 어떤 배움을 거쳐야 하는 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된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 학생뿐만이 아니라 교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기서는 특히 '책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쓰기를 통해 종합적으로 자신의 배움을 정리하는 한 편, 자신의 배움을 하나의 내용물로 생산해내는 과정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이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 주입하는 교육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 또는 학생들이 배움에 이르르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이 책에서 아주 잘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 교육청,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들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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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이 먹어갈수록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지, 아니면 잃을 것만 있어서 그런지 자기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육체적인 나이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젊어서는 진보이더라도 늙어서는 보수가 되는,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것들을 지키려고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정치는 누가 해야 하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젊은사람이 있던가. 육체적인 나이말고, 정신적인 나이로 따지만 젊음이 우리나라 정치에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모두가 자기 것만 지키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강해지고,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막혀진다.

 

옛날 옛날 아주 옛날 고려적 시절에는 노인들을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어서, 일명 고려장이라고 했다던데... 이런 무지막지한 풍습이 없어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노인들의 지혜라고 하던데...

 

지혜는 강할 때 강하고 부드러울 때 부드러운 것,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킬 것. 무엇보다도 버려야 할 것과 지킬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아온 노인의 지혜이고, 정치를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지혜가 없이 오로지 자기 것만 고수하면 그들은 나이 먹을수록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 먹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단단해지는 것은 부러지기 쉬운 법.

 

그럼에도 젊음은 좋다. 하지만 젊음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늙음을 받아들이고, 한때 내 젊음에는 이랬었지 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 다음에는 늙어가면서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한없이...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래서 자신이 자신의 늙음에도 다리 걸려 넘어질 수 있음을 알고 행동하는 것.

 

젊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줄 줄 아는 것.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늙었음에도 늙은 줄 모르고, 한참 젊은 줄만 아는 모양이다. 자신들의 늙음을 인정하지 않으니...

 

심보선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읽다가 문득, 이런 늙음과 정치가 생각났다.

 

그의 시 전문을 보자. 

 

 

한때 황금 전봇대의 생을 질투하였다

 

시간이 매일 그의 얼굴을

조금씩 구겨놓고 지나간다

이렇게 매일 구겨지다보면

언젠가는 죽음의 밑을 잘 닦을 수 있게 되겠지

 

크리넥스 티슈처럼, 기막히게 부드러워져서

 

시간이 매일 그의 눈가에

주름살을 부비트랩처럼 깔아놓고 지나간다

거기 걸려 넘어지면

 

끔찍하여라, 노을 지는 어떤 초저녁에는

 

지평선에 머무른 황금 전봇대의 생을

멀리 질투하기도 하였는데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2011년 초판 11쇄.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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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수업을 뒤집어라
조나단 버그만.아론 샘즈 지음, 임진혁 외 옮김 / 시공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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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방법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만큼 수업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물론 교대나 사범대 학생들과 교사들, 또는 교수들은 이런 수업방법에 관한 책에 관심이 많다.

 

바로 그들의 직업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많은 수업방법론 책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수업방법은 어느 한 가지로 정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100사람이면 100사람 다 자신만의 고유한 수업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 배어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수업방법을 되돌아보고 수업방법에 관한 연수를 듣고, 다른 사람의 방법을 자신의 수업에 응용하려는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이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교사가 될 교대나 사범대 학생이 아니다.

 

즉, 이들은 그냥 자신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수업을 해도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란 얘기다. 그렇게 흔히 생각한다. 자신의 수업방법이 지장이 없는데, 수업방법에 관한 연수를 듣고, 수업방법을 바꾸려 한다.

 

말이 안된다. 무언가 문제가 있을 때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분명 문제가 있다. 그 문제가 무엇일까? 문제를 교사에게서 찾으면 교사들에게 책임을 묻고, 네 수업방식이 잘못되었으니, 네 수업방법을 바꿔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많은 교사들이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수업방법에 관한 연수를 듣는다. 왜? 교사들은 수업이 안 되었을 때 가장 힘들고, 수업이 잘 되었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고, 이 가르침은 주로 수업에서 일어나는데(물론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말로 교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이론도 있지만, 대체로 수업에서 가르침이 일어나고, 교사는 그만큼 수업을 중시한다) 수업에서 실망하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회의를 하게 된다.

 

 

이만큼 수업방법에 관한 연수를 듣는 교사가 많다는 얘기는, 그런 책들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는 지금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수업에 대한 불만족, 왜일까? 학생들이 듣지 않기 때문이다. 듣지 않기에 질문이 없다. 질문이 없기에 토론이 없다. 토론이 없기에 더이상의 진전이 없다. 그냥 주어진 사실들을 머리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을 뿐이다.

 

그것도 시험이 끝나면 모두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지식들을 말이다. 이렇게 지식을 억지로 집어넣는 역할에 그치는 사람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 학교의 교사들이라고 하면, 이들이 수업에 만족한다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비록 미국의 사례이고, 또 강의식 수업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이들 역시 문제를 발견한다. 이건 제대로 된 수업이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로 된 수업, 그것은 가르침이 우선이 아니라, 배움이 우선이 되는, 교사가 중심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그런 수업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이 스스로 해오게 하고, 함께 하거나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수업시간에 해결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자. 이게 그들이 찾아낸 결론이다.

 

그것이 동영상이든, 다른 매체를 이용한 학습이든 무어라고 딱 규정짓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의 저자들은 동영상을 이용했을 뿐이다. 동영상의 장점은 언제든지 멈추고 다시 보기가 가능하다는 점.

 

즉, 이해할 때까지 계속 볼 수 있고, 잊어버리면 다시 볼 수 있다는 점. 이들은 이 점에서 동영상을 제시하고, 이를 수업 전에 보고 오라고 한다. 물론 내용을 정리하거나 동영상에 나와 있지 않은 질문을 하나 만들어 오라고 한다.

 

이게 바로 거꾸로 교실이다. 이 책의 번역자가 번역한 용어대로 하면 '뒤집힌 학습'이다.  교사의 강의를 최대한 줄이고, 학생들의 상황을 보아가면서 개별 학습이 가능하게 하고, 또 토론이 가능하게 하는 학습, 이런 학습이 가능함을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거꾸로 교실'이라는 이 수업방법을 사용하는 교사들이 있다. 이 책은 이런 '거?꾸로 교실'에 대한 최초의 책 또는 가장 기본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으로 '뒤집힌 학습'에 대해 정리해 놓은 책, 여기서 더 나아가 '뒤집힌 완전 학습'이라고도 하는데... 생각할거리가 많다.

 

받아들일 점도 많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방법을 꼭 따라하라고 하지 않아서 좋다. 이런 방법이 있음을 소개하고 있고, 당신의 상황에 맞게 응용하라고 하는 점이 '뒤집힌 학습'을 얘기하는 사람들 다워서 좋다.

 

그렇다. 지금 학교에서는 배움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오로지 대학이라는 관문을 향하여 필요한 지식들을 시험을 위해 우적우적 집어넣고 있을 뿐이다.

 

잠시 자신의 뇌에 임시저장해 놓았다가 시험이 끝나고 나면 삭제해 버리는 일들의 반복. 이건 배움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배움을 되찾아야 한다. 없던 배움이 아니라, 예전에 배우고자 스승을 찾아 다니던 그런 배움에 대한 열망을 되찾아야 한다.

 

배움을 되찾은 일, 그 중의 한 방법으로 '뒤집힌 수업'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거꾸로 교실'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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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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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천천히 읽게 되는 책이다.

 

시인의 집에서 만나는 시인들을 어떻게 가볍게, 빠르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책의 분량에 비해서 많은 시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총 13명의 시인이 나오는데...

 

게오르크 트라클, 파울 첼만, 잉에보르크 바하만,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쿤체,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하인리히 하이네, 베르톨트 브레히트, 볼프 비어만, 고트프리드 벤, 프리드리히 휠덜린, 프리드리히 쉴러, 요한 볼프강 괴테

 

아는 시인도 있고, 처음 듣는 시인도 있지만 모두 유럽에서 활동한 시인들. 이 중에 카프카는 시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의 글 한 편 한 편이 김수영의 말처럼 자신의 온몸으로 쓴 것이기에, 온몸으로 밀고 나간 것이기에 시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그는 천상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거주했던, 또 지나쳐 갔던 집들에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학을 만나고, 그들의 시대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글의 저자는 그들에 대해 자신의 감성을 잘 살려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다. 외국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그 시의 맛을 느끼기 쉽지 않은데...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시를 소개하는 과정의 글이 또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다. 이상하게 글을 읽으며 시인의 집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고 그 시인과 하나가 되고 있단 느낌을 주는 글쓰기다.

 

좋은 글쓰기. 단지 건조하게 시인과 시를 소개하고, 시인의 집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본인이 시인이기도 한 저자가 시적 감수성을 십분 발휘해서 시인의 집에 가는 과정과 시인의 집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이 또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시인의 집'이기도 하지만, '시의 집'일 수도 있다. 한 시인의 발자욱에 포개져 있는 또다른 시인의 발자욱.

 

그런 발자욱의 자취들을 찾아가는 글쓴이. 그리고 글쓴이의 발자취를 좇아 또다시 시인들의 흔적을 우리 곁에 불러오는 이 책을 읽는 우리들.

 

아주 천천히... 시인의 집에 도착한 양, 그 시인을 생각하고, 그 시인의 생애를 생각하고, 그 시인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고, 그 시인의 시를 음미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 방법이리라. 그렇게 이제는 우리에게 낯익은 외국의 시인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그 점만으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시인들의 흔적을 남겨둔 그들의 문화적 감성이 부럽다. 우리는 우리에게 자취를 남긴 시인들의 흔적을 얼마나 남기고 있는가.

 

최근에는 남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시인들의 발자욱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걷는 이 길을 이미 우리의 시인들도 걸었다는 사실, 그 발자욱은 어느 한 시인의 것이 아니라, 여러 시인들이 밟고 밟고 또 밟은 그런 발자욱이라는 사실. 우리 역시 그 발자욱 위에 또 하나의 발자욱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어쩌면 이 책은 외국 시인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우리들 가슴 속에 들어온 시인들의 발자취를 한 번 찾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는 책인지도 모른다.

 

여러 발자욱들이 중첩되어 한 장소에 존재할 때, 그것이 바로 백범 김구가 꿈꾸던 문화민족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책.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마치 이국의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하나하나 살피며 다니듯, 그렇게 읽은 책. 또 그렇게 읽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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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분의 상관관계

             - 눈이 오는 날 눈을 보며


보는 이마저 벙싯거리게 만드는

아가씨의 화장.


보는 이에게 삶을 환기시키는

삶에 덧난 기미를 가려주는

아줌마의 분장.


보는 이에게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인생 산, 구비구비 넘다 넘다 깊게 패인

주름을 보이지 않게 덮어주는

할머니의 변장.


보는 이에게 성찰을 떠나 분노로만 치닫게 하는

멈출 줄 모르고 끝없이 쌓이고 쌓이는

본래의 얼굴을 잃게 만들어 버리는

제발 사라져줬으면 하게 만드는

덧칠, 환장.


과유불급(過猶不及)!

아름다움이란,

제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멈출 때 멈출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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