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다. 박남준 시인의 첫시집이란다. 다시 펴낸 첫시집. 아마 시인도 감회가 새로웠겠지만, 나처럼 박남준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읽은 사람에게도 반가운 일이 된다.


  첫시부터 마음에 들었다.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사랑, 서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 시인데, 꼭 개인의 서정이 아니라,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면, 그 그리운 대상에게로 가려고 하지만, 가도 가도 닿지 못할 때 그냥 포기할까?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다. 가지 못하지만, 그 대상을 잊지 못할 때 기다린다. 


  그가 지나갔던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자세.. 이는 포기가 아니라 다시 돌아올, 다시 만날 때까지 잊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마음의 표시다.


이런 마음이 그 자리에 서서 나무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쪽으로 마음이 갈 수도 있다. 그리워 하는 대상이 잘 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일. 또는 그리워 하는 대상이 바라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


그와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그가 바라던 세상을 향해 가면, 이미 그는 그 걸음 속에 함께 한다. 박남준 첫시집은 그래서 개인의 마음에서 사회로 나아간다. 


시인이 태어난 전라도, 특히 법성포 이야기에서부터 광주민주화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상기시키는 시까지, 이 시집에는 다양한 마음이 담겨 있다.


다양한 마음이라지만, 그 마음은 그리움이다.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무엇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


첫시부터 마지막시까지 주욱 읽어가면서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하다가도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다가,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시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여기에 이야기가 있는 시도 있으니,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 있는 시 '할매는 꽃신 신고 사랑 노래 부르다가'라는 시도 있으니. 시를 통해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포기를 모른다. 시는 그 자리에 서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언젠가 올 사람을 환대해 주기 위해 기다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는 계속 우리에게 남아 았다. 박남준 첫시집을 읽으면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라는 제목이 된 시에서, 시가 하는 역할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시는 시를 쓸 수 없는 시대에도 그 자리에 남아 시는 쓰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첫시를 보자. 그냥 마음에 받아들이면 좋다.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먼 길을 걸어서도 당신을 볼 수 없어요

     새들은 돌아갈 길을 찾아 갈숲 새로 떠나는데

     가고 오는 그 모두에 눈시울 붉혀 가며

     어둔 밤까지 비어 가는 길이란 길을 서성거렷습니다

     이 길도 아닙니까 당신께로 가는 걸음

     차라리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섰습니다


박남준,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걷는사람. 2022년. 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생태소설과 추리소설, 그리고 사랑소설의 요소가 모두 갖춰진 소설이다. 어느 한쪽으로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생태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동안 자연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아왔던가.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을 '자연인'이라고 경외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경원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던가. 또한 자연에서 섭리를 배운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연이 관대하지는 않지만, 인위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자연은 죽고 삶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죽고 삶에 대해서 자연과 같은 관점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다른 행동을 하는 소위 문명인이 자연에 들어오면 그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자연에서는 사랑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 죽음도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람들 관계에 적용하면, 생태와 추리와 사랑이 함께 어우러질 수밖에 없다.


소설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는 과거-현재-과거-현재의 구성을 택하고 있다.


이렇듯 소설은 두 시간이 교차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 진행이 된다. 어린 시절의 카야와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는 카야. 


그 사이에 17년의 시간이 있다. 1952년에 엄마와 누나, 오빠들이 떠나고 아버지와 홀로 남게 되는 카야. 그러다 아버지마저 죽고. 


1969년, 한 사람이 죽는다. 그 사람을 살해한 용의자로 카야가 지목되고, 카야는 재판을 받게 된다. 1970년. 카야는 무죄 선고를 받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어릴 적 홀로 남겨진 소녀. 주민들에게 쓰레기 소녀, 마시(marsh:습지) 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던 소녀. 그런 소녀에게 글을 가르쳐 준 테이트, 또 생활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흑인 점핑 가족. 그리고 카야는 모르지만 뒤에서 조용이 카야를 응원하던 사람들.


사회에서 격리된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연과 어울리는 일.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는 일. 엄마에게서 받은 그림 솜씨로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정리하고 그려내는 일.


이런 카야를 사람들은 쓰레기라고, 마시 걸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한다. 무시하면서 그냥 살아가게 하면 되지만, 남성적 욕망에 충실한 소위 문명인들은 카야를 가만두지 못한다. 외로움에 사람이 그리웠던 카야에게 다가와 카야를 이용했던 체이스. 카야가 거부하자 그를 겁탈하려고까지 한다. 겁탈에 실패했을 때 체이스가 생각하는 일은, 카야를 자신의 통제권에 두는 것.


자연에서 우두머리 수컷이 암컷들을 휘하에 거느리듯이 사회에서 인정받는(적어도 겉으로는) 생활을 하는 체이스는 카야가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지속적인 위협. 카야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에서 카야는 답을 찾는다.


재판과정에서 묘사되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증도 재미있게 펼쳐지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던 카야에게 그런 일은 너무도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들은 카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재판을 관람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하지만 카야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도 있다. 테이트, 그는 비록 한번 카야를 떠나기는 했지만, 다시 돌아온다. 돌아와 카야에게 인간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카야가 인간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흑인 점핑 부부에게서이다. 


나중에 점핑의 죽음에 이르러 카야가 점핑은 자신의 아버지였다고 하는 말... 이는 카야도 이제는 자연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카야의 눈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생명들을 만나게 되고, 카야의 운명을 통해서 인간이 자연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고, 그럼에도 테이트와 카야를 통해서 인간의 사랑이, 김남주 시인의 말을 빌면 인간의 사랑만이 줄 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재판 결과를 향해 가는 시간이 서로 교차하면서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동안 카야가 살아온 삶들을 통해서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카야가 함께 지내려 하는 자연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다.


여러 특징이 융합된 소설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래 된 소설이다. 1950년대에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부터 70여 년 전에 이런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니...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많은 작가들이 그려냈는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화성은 인간이 만약 생명체가 있다면 이 행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비록 낯선 생명체는 우리와는 다른 형태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을 거라 표현한 경우도 있었고,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지만, 외계 생명체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작품들도 있었다.


이 작품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화성에 생명체가 있고, 지구와 교류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번이나 화성에 로켓을 보내 탐사하지만 실패를 한다. 그러다 화성에 인간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하고, 그 인간들이 화성에서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연대기란 제목을 달고 있듯이, 1999년에서 시작하여 2026년에 끝난다.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라 우리가 지나쳐 온 시기와 아직 도달하지 않은 시기가 소설에 겹쳐 나오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화성에 인간을 보내지 못했다. 화성 이주는 여전히 비현실이다. 비록 화성에 우주인들이 가서 지내다 겪는 모험을 다룬 '마션'이란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화성은 아직도 미래형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화성에 인간이 이주해서 살고, 화성에 살던 인간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화성인이 감염병으로 많이 죽어나가는 장면은 지구상에서도 많이 벌어졌던 일이고, 화성인을 적으로 여기던 일도 신대륙(?)에 도착한 서구인들이 했던 행동과도 비슷하지만... 한 가지는 화실히 다르다.


화성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지구인에 비해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 이 점이 소설 도처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들은 지구인의 마음에 남아 있는 존재로 자유자재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구인을 화성에서 살지 못하게 하기도 하는데...


소설의 끝부분에선 인간의 가족으로 여겨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이들은 화성인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화성에는 지구인은 없게 된다. 지구가 전쟁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지구로 돌아간 인간들도 있지만, 이 화성에서 인간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이는 화성이란 행성은 화성인들이 살아가는 행성이지, 인간이 또다른 식민지 개념으로 지구인을 정착하게 하고, 화성인을 몰아내서는 안 되는 행성이란 말이기도 하다.


평화롭게 공존하면 좋겠지만, 소설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편에서 나오고 있다.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대등한 존재로 여기고 대등하게 대우해야 하는데, 화성은 지구인이 이주해서 살아가야 할 행성이라는 관점에서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


이는 화성을 지구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국경선을 긋고 이주가 자유롭지 못하며, 서로가 서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아닌가. 이 좁은 지구라는 곳에서도 그런데, 우주로 범위를 넓힌다고 달라지겠는가.


처음부터 화성인이 등장해서, 화성인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이다. 중간중간 인간이 나오지만, 그 인간들이 화성에서 몰락해 가는 과정이 표현되어 있다.


짧은 소설들이 묶여 있는데, 연대기 순으로 짜여 있어 읽어가면서 흐름을 느낄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화성을 배경으로 한, 외계인이 등장하는 소설임에도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화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는 화성에 가게 되면 어떻게 살게 될까? 어떻게 지내는 것이 좋을까를 이 소설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등,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 이름앤솔러지 1
오준호 지음 / 생각과느낌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우리나라에는 '자유'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오죽하면 대통령 연설에 자유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를 세어 발표하기도 하겠는가? 


자유는 중요하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속박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유가 남을 착취할 자유, 또는 굶어죽을 자유여서는 안 된다. 자유는 평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자의 논리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평등이 자유와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있지만, 평등과 자유는 같은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다. 평등과 자유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가는 개념이다.


자유 없는 평등 없고, 평등 없는 자유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 자유란 말이 넘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 평등이란 말도 그만큼 넘쳐나도록 하자.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작은 책에서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1장에서 6장으로 나아가는데 동심원을 그리듯이 점점 더 평등의 개념과 내용을 확장해가고 있다.


1장은 불행 배틀 시대, 평등의 의미를 묻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불행 배틀은 경쟁으로 바꾸어도 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남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져서는 안 된다. 경쟁은 서로가 발전하기 위해서,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경쟁이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런 경쟁사회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치열한 경쟁, 승자독식주의로 흘러가고 있으니, 경쟁에 대해서 다시 물어야 한다. 경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경쟁을 공정하게 하자고 하는데, 공정에 대한 개념이 또 문제가 된다.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장으로 넘어가면 평등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 평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평등이냐다. 형식적 평등이냐, 실질적 평등이냐를 묻는다.


우리는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3장, 평등한 시민들, 공정한 분배를 말하다로 넘어간다.


공정한 분배,,, 이것, 산수처럼 딱 1/N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분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공정한 분배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과 육상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똑같은 선에서 출발한다고 하면 그것이 공정일까? 아닐 것이다. 신체적 특성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 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공정한 분배란 환상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공정한 분배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4장으로 넘어간다.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여러가지 제도들이 마련이 되고,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 장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바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 '평등한 시민들의 공정한 분배는 '차등의 원칙'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차등의 원칙을 단순히 호소하는 정도를 넘어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104쪽) 


이 차등의 원칙을 지킨다면 당연하게 5장에서 이야기하는 능력주의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게 된다.


능력주의는 결코 평등이 아니다. 능력에 따라서 대우를 받자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가 제공되고,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말은 형식적으로 누구나 똑같은 기회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면 '지역균형주의'라든가, '소수자 우대'는 불평등하다고,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니다. 자신이 발휘하는 능력이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능력은 다르게 발현된다.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능력주의를 숭상하게 되면, 그 사회는 차별이 공고화되는 사회가 된다. 자, 능력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6장이다. 한 걸음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장에서는 기본 소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적어도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기본 소득이 주어지는 사회. 그래서 저자는 '먼저 능력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추가 소득을 준다'(174쪽)는 분배 정의에 관한 통념을 '기본 소득으로 삶을 보장하고 더 일한다면 추가 소득을 올리게 한다'(175쪽)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기본 소득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본 소득이란 말을 기본 배당이라는 말로 바꾸자. 공유 자원은 누군가가 독점하고, 거기서 나오는 소득을 자신만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공유 자원에서 나오는 소득은 모두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 이는 소득이 아니라 배당이라고 해야 한다. 공유 자원의 정당한 배당. 우리는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구에서 나오는 이익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배당받을 권리가 있고, 그런 배당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좀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헤아리는 마음의 이름'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등은 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평등은 나와 남을 우리라는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국 다른 존재를 헤아리는 마음이 평등인 것이다.


이렇게 평등이 실현되면 개인의 자유는 더 커진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더 크게 보장되고,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유가 제약을 받는다.


'자유, 자유'하는 이 시대,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헤아리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저 1호.


  인간이 만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떠나가고 있는 존재.


  망망한 우주를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우주선.


  시집 표지가 캄캄하다. 우주는 이렇게 암흑이다. 그리고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 역시 모른다. 캄캄할 뿐이다.


  다른 생명체가 우주에 있을까? 태양계를 겨우 지금 벗어나고 있는 지금, 빛의 속도로도 200만년이 걸린다는 안드로메다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그 밖의 우주에 도달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인간이 만든 물체가 그때까지 버텨줄까?


우리가 그린 그림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고 사라지듯이, 보이저 1호 역시 언젠가는 제 수명을 다하지 않을까?


우주 공간에 산소가 없으니 부식이 되지 않아 고장이 나지 않을까? 그냥 관성의 법칙으로 앞으로만 나아갈까?


이 모든 일들은 미지의 세계에 속한다. 그럼에도 보이저 1호는 우주로 나아간다. 일말의 소통 가능성을 안고.


다른 외계 생명체를 만났을 때 우주에 또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지구의 언어, 지구의 문화를 담고서.


이렇게 캄캄한 암흑에서도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통하기 위해서 하나로 통일하지 않는다.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언어들을 레코드판에 담고, 또 다른 예술작품도 담아두었다.


소통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찾는 일. 그것이 바로 소통불능의 시대에 소통을 추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로 계속 나아가는 보이저 1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의 방법이 담겨 있는데... 암흑 우주가 아닌 푸른, 창백한 푸른 점, 아주 작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란...


마치 보이저 1호가 외계 생명체를 만나 그 속에 담긴 지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들이 그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저 1호가 찍어서 보낸 지구의 모습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는데, 그 속에 사는 우리는 마치 우주와 같이 거대한 지구라고 여기고 살아가고 있으니...


지구에 살고 있는 각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외계인 바라보듯이 보고 있지는 않은지...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서로를 외계인 보듯이 보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 자기 말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보이저 1호에 담긴 메시지들이 이해받지 못하고 계속 우주로 나아가고 있듯이, 우리 역시 이러한 소통불능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적어도 보이저 1호에는 소통하고자 하는 여러 노력이 담겨 있는데... 류성훈 시집을 읽다가 제목이 된 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보이저 1호. 언제 보이저 1호는 그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만날까 하는 생각. 그러다가 우리 모두가 보이저 1호처럼 아직 소통불능의 세계에 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각자의 메시지를 담고서.


다만, 보이저 1호는 다양한 언어를 담고 있으니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자기만의 언어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판치는 세상은 소통불능의 세상이 된다. 


류성훈 시를 읽으면서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봐도 좋겠다.


       보이저 1호에게

 

     물통 속에 밤이 퍼졌다

     내 붓은 차갑게 씻기고


     안부라는 건

     대개 꿈풍선일 뿐, 눈부신

     우주 방사선 속에서


     버릴 꿈이 없어서, 널 닮은

     연체동물을 그렸다 저 외행성 출신의

     물기 없는 입을, 활짝 핀

     중력 없는 팔들의 짙푸른 기별을


     축하한다

     악수하는 법도 몰랐으면서

     우리는 늘 몽상이라는 교신 위에서

     지구에서의 너를 그렸으니

     한때 색색 풍선보다 더 필요했던

     날숨을, 더운 붓을 휘갈겨 본다


     화장실 창밖이 밝아 오고

     벌어진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그 금빛 껄끄러움 또한

     교신, 이라 생각했던 물음을 안고

     나는 지금 태양권의 어디쯤을

     쫓아가고 있을까


류성훈, 보이저 1호에게, 파란. 2020년. 102-10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