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인들이 쓴 시를 모은 책이다.


  여성 시인들로 한정하지 않고 젠더에 관한 시들을 모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아직도 여성 시인이라는 말을 쓰나? 하는 생각. 그럼에도 이런 시집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여성'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남성 시인이라는 말은 없는데, 젠더라는 성 중립적인 말(?)을 달고 여성 시인들의 시들을 엮은 것은, 여전히 남성 시인은 없고 여성 시인만 있는 세상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여기기로 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이런 시집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으니...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대립해서는 안 되고, 또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나누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을 바로 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직은 우리가 젠더를 생각하려면 여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의 삶에 대해서,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고서는 젠더에 대해 더 깊이 나아갈 수 없으므로.


시 한 편을 읽자.


  Ghost

             - 강성은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땐 죽은 여자 같더니

죽고 나선 산 여자처럼


밤의 정원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는 작은 새처럼

밤하늘을 떠다니는 검은 연처럼


장갑을 끼면 손가락이 생겨나고

양말을 신으면 발가락이 생겨나고

모자를 쓰면 머리가 생겨난다


책을 읽으면 눈이 생겨나고

음악을 들을 땐 귀가 생겨나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입술이 생겨나는데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입이 있어도

말은 못한다


김지은 이광호 엮음, #젠더 시, 문학과지성사. 2021년. 164-165쪽.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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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그럴 나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나윤아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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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보통 중2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고 사춘기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2병이라고도 한다. 중2병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 많아서, 가급적 그 말은 쓰지 않으려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사실 중2가 병은 아니지 않은가. 


[열다섯, 그럴 나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편의 소설이 묶였다. 열다섯에 겪음직한 일들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이 나이 대의 사람들이 읽으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열다섯들이 그런 일들을 겪고, 또 고민하면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열다섯에 무엇을 고민하는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영웅-히어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소통을 하며(스마트폰을 이용한 SNS-톡방), 자신의 현재 모습에 실망해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고(이번 생은 망했어-이.생.망), 사이버 세계에서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게 되기도 하며(몸캠피싱), 친구관계로 고민을 하기도(인싸) 한다.


아마도 청소년기에 영웅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이란 세상과 동떨어진 특출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영웅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공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넘어올 수 있음을 첫번째 소설, 탁경은이 쓴 '캡틴 아메리카도 외로워'에서 만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영웅이 아닐까 하는, 그럼에도 그런 영웅은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외로움을 견뎌내고,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나이, 그 나이가 열다섯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수시로 울리는 까톡, 까똑 소리. 아마 하루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그 소리를 들을 테다. 요즘 열다섯 살 사람들은. 하지만 과연 그 카톡으로만 소통이 잘 될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대화하는 세상이 과연 좋기만 할까?


이 카톡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선주가 쓴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에 나오고 있다. 누구나 편하게 쓰는 카톡 앱을 깔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소통방법? 편한 앱인데 굳이 안 깔겠다고 하는 아이를 이해 못하는 아이들. 또 그때만 깔고 지우면 되는데도 깔지 않는 아이. 과연 어떤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까? 


소설은 끝부분에 반전이 있다. 단지 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임을, 남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나 한다. 꼭 열다섯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지금 사회관계서비스망(SNS)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열다섯의 고민을 넘어 우리 모두의 고민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당연하다. 청소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불만이 많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저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한 때.


자신이 한껏 초라해 보이고 다른 사람은 다 멋있어 보이는 그런 때, 그런 때 보이는 모습을 환상을 동원해 범유진이 '악마를 주웠는데 말이야'란 소설로 썼다.


악마가 소원을 들어준다. 고전에서 많이 나오는 설정을 활용했다. 그리고 그 소원이 결국은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랑하게 한다는 결말로 나아간다.


그렇게 부러워하는 다른 사람의 삶도 알고 보면 저마다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자신에게서 출발하라고,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악마를 동원해서라도 다른 존재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은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해도, 그 생이 바로 자신의 생이니, 여기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피싱'이라고 하는 일들. 보이스 피싱은 잘 알려져 있는데 몸캠피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 많이 붉어져서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이 몸캠피싱이 청소년들에게 행해진다는 사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현실, 그런 현실을 나윤아가 '악의와 악의'라는 소설로 썼다.


현실적이다.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의미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준다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있다.


악의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선의를 지닌 사람은 있는데, 청소년기에 세상에 대해서 지녀야 할 마음은 악의로 가득찬 세상이 아니라, 선의가 넘치는 세상이어야 한다.


어려울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악의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무엇보다 소설은 행복한 결말을 내지 않는다. 몸캠피싱이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바로 그런 일이 터졌을 때 대처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함을,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음이 중요함을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소설은 청소년기에 가장 중시하는 친구 관계다. 서로 웃고 떠들고 함께 하는 친구 사이지만, 과연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


늘 아이들 중심에 있는 아이가 어느날 사라져 버리고, 그 아이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아이들이 정작 그 아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음을 우다영이 '그 애'라는 소설로 펼쳐보인다.


또 소설을 읽다보면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 주장보다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친구 관계가 좋음을.


즉 친구를 잘 사귄다는 말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는 말이고, 소설은 사라진 그 애를 통해서 그런 자세를 가르쳐준다.


이렇게 다섯 편의 소설들이 열다섯에 겪을 만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읽으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읽으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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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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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우리나라 부를 대표하는 곳. 부자들이 사는 곳. 이곳 아파트 값이 얼마나 비싼지 보통 사람들은 전세로 들어가 살기도 힘들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하지만 강남이 처음부터 이렇게 부촌이었을까? 아니다. 강남은 강북에 비해 허허벌판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이 강남 개발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이권들이 오갔을까?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떼돈을 벌 때, 순전히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운과 연줄이 작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강남 개발을 둘러싼 이야기. 역사 책이 아니라 소설로 만날 수 있다. 바로 이 책이다. 강남몽.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몽(夢)'자 들어가는 소설이 많은데 이는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꿈을 빌려온 것이다.


황석영 역시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378쪽. 작가의 말에서)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강남몽'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를 대고 있다.


즉, 강남 개발에 뛰어들어 떼돈을 번 사람들의 삶이 가상 현실과 같다고, 그들이 사는 삶은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소설이 문제적 개인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 강남몽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주요 인물이 5명이다. 이들은 서로 얽히고설킨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발에 따르는 인물 군상을 황석영이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박선녀다.(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유흥업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박선녀는 김준의 내연녀가 되는데, 김준은 일제시대 일제의 정보원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 정보국에 붙어 지낸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얻어 은퇴한 뒤에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이렇게 김준의 이야기가 펼쳐진 다음에는(2장 생존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동산업자가 등장한다.(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세사기에도 공인중개사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는 말들이 있는데, 당시는 더했다. 부동산업자와 짜고 땅값을 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개발과 관련된 유흥업소, 건설업자, 그리고 부동산업자가 나왔으면 다음에는 누가 나와야 할까?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듯이 조폭들이 등장한다.(5장 개와 늑대의 시간) 개발이 되면 상가가 많아지고, 이 상가를 끼고 주먹들이 진출하는 것이다. 단지 주먹만으로? 아니다. 이들 역시 권력을 끼고 활동을 한다. 


강남 개발을 둘러싼 하이에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네 주체가 나왔다. 이들의 삶은 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런 부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소설은 '몽'자를 달고 있는 역할을 하듯이 미리 손을 털고 나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몰락한다.


현실의 부귀영화가 덧없다고 하는 '몽자류' 소설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전소설의 결말을 따라가면, 이 중 누군가가 깨달아야 한다.


"아, 이것이 아니었구나!" 


현시대에 이렇게 고전소설의 주인공처럼 깨달을까? 아니다.이들은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다른 더 강한 외부 조건을 향해 가려고 할 것이다. 마치 국내 자산이 부족하면 외국 자산을 끌어오듯이.


나라 경제가 파탄났을 당시 국제 통화 기금(일명 IMF)에서 기금을 받고, 그들이 제시한 대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펼치게 된 것처럼, 현실은 고전소설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가지 않는다. 그냥 없는 사람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소설에서까지 이렇게 현실의 비참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어야 할까? 황석영은 여기서 한발 나아간다. 현실을 깨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꿈 속 삶이 아닌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음을.(5장 여기 사람 있어요)


마지막 장에 나오는 정아를 통해서 현실을 사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몽'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정아가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함께 갇혀 있던 박선녀가 자신이 정아 집안 사람들을 위해 다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 말.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338쪽) 


이 말로 황석영은 꿈이 아닌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벌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 나온 네 사람의 삶은 '몽'에 가깝다면, 정아의 삶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렇게 꿈과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황석영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들이 나온다. 소설이라서 약간 변형을 가했지만,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진 백화점이라면 누가 모르겠는가? 또한 강남 개발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이 추구했던 삶이 '몽'에 불과해야 한다고, 그런 꿈은 깨게 해야 한다고 마지막 장에서 '여기 사람 있어요'라는 말을 통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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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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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같음 상태'만 유지되는 사회가 있을까?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 아마도 그런 사회가 늘 같음 상태의 사회이리라.


질문은 나와 다름을 인식하고, 다름을 통해서 함께 하려고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다름조차도 주어진 채로 살아가는 사회라면, 그래서 질문을 할 수 없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온갖 차별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차별을 없애는 일은 좋지만, 차별이라는 명목으로 차이까지 없애는 일,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 선택조차 없애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선택이란 다름을 인식하는 일. 또한 책임을 지는 일.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은 책임을 질 일이 없다. 자신의 생명, 직업, 가족 등을 선택하지 못하고 주어진 대로만 살아가야 하는 사회. 그 사회에는 미움도 질투도 없다. 다만 사랑도 우정도 없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기억도 없다. 개인의 기억, 집단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 기억이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일. 기억이 있다면 늘 같음 상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바로 그런 사회다. 모든 생활이 통제되는 사회. 하다못해 사람들이 통제하기 힘든 식욕, 색욕까지도 통제하는 사회. 가장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도 위원회에서 지정해주는 사회니, 색욕이 발동할 수가 없다. 알약으로 해결해 버린다.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은 채.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감시되고 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존재들은 '임무 해제'라고 해서 다른 세계로 보내진다. 말이 좋아 임무 해제지, 그것은 죽음이다. 그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존재들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기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기억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돌발적인 상황이 생겼을 때 과거에서 해결책을 가져오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회는 누구도 기억을 가지면 안 되지만, 단 한 사람만은 모두의 기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임무를 맡은 사람을 기억 보유자라고 한다.


그는 모든 기억을 갖고 있기에, 이 사회에서 유일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회에서 홀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은 인류가 그동안 겪어왔던 기억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기억 보유자로 선택된 조너스. 그가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깨닫게 되는 일.


그가 살고 있던 세계가 진실한 세계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임무 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하나밖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서 탈출하게 된다.


어쩌면 기억 보유자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모든 기억이 담겨 있다. 이 기억은 그만이 간직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 판도라 상자처럼 열려서는 안 된다. 이 사회는 그렇게 기억 보유자에게만 기억할 수 있는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하지만 조너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로 한다. 기억은 상자 속에 담겨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억은 각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기억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조너스는 탈출한다.


그 다음은 아마도 혼란이겠지. 고통이겠지.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고통과 용기를 수반하니까. 또한 책임을 동반하니까. 


소설은 조너스가 떠난 다음 마을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조너스가 희망을 품고 다른 세계로 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마찬가지다. 조너스가 마을을 떠날 때 겪게 되는 고통, 좌절을 마을 사람들도 겪게 되겠지.


눈 내리는 날, 언덕을 힘겹게 조너스가 오르듯이, 마을 사람들도 돌아온 기억 때문에 힘겨움을 겪게 될 터이다. 다만 조너스는 언덕에 올라 다른 세계를 본다. 다른 세계로 갈 썰매를 탄다. 마을 사람들도 아마 이 힘겨움을 겪으면서 누군가는 내리막을 달리는 썰매를 탈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문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행복'이라는 말은 있을 수 있어도 행복을 느낄 감정은 없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말은 쓰일 수가 없는 사회다. 


"절 사랑하세요?" ... "아버지 말씀은 네가 매우 일반화된 단어를 사용했다는 거야. 그 단어는 너무 무의미해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지." ... "넌 이렇게 물었어야 했어.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란다." (216-217쪽)


이런 사회다. 개인의 감정은 철저하게 감춰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 책은 필요없다. 책은 해악이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는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책의 존재조차 알리지 않는다. 기억 보유자에게만 책은 존재한다.


'늘 같음 상태'가 바로 이렇다. 하지만 기억의 저장소는 책이다. 또 늘 같음 상태에 균열을 내는 것은 예술이다. 기억 전달자가 된 전 기억 보유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조너스는 색깔을 볼 수 있는 능력(미술이라고 해도 좋겠다)이 있었다.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이 그들을 기억 보유자가 되게 한다.


하나의 세계로 달려갈 때 여러 세계를 보게 만들어주는 역할,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임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고, 책은 인류의 기억 저장소임을 말해준다.


그러니 이 소설은 과거의 소설이 아니라, 고도로 발전해 가는 세계, 앞으로 최첨단 아이티(IT) 기술이 발전해,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발전으로 디지털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삶에 대해서 생각해야 함을 제시하는 미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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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수함의 토끼, 광산의 카나리아' 시인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그만큼 시인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을 바라보는 민감성. 그 민감성으로 인해 시인은 세상의 아픔과 함께 한다.


  시인에게는 '시를 쓸 수 없는 시대'는 없다. 시대가 힘들수록 시인은 시를 써야 한다. 세상의 아픔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적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다. 자연은 적이 아니라 동지다. 그러니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자연 파괴는 인간 삶의 파괴로 이어진다. 무분별한 개발이 지금에 이르러서 우리에게 어떠한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인간 공동체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또 다른 존재들이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구 공동체, 우주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런데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만 잘살겠다고 하면 공동체가 유지될까? 아니, 공동체의 유지에는 조금씩 손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으로, 내 것을 양보할 줄 알아야 공동체가 존속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유지되지 않는다. 양보와 타협. 이것이 필요한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러한가? 이성이 중심이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세계 각처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자연을 더 이상 파괴했을 때는 인간 생존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연을 파괴하고 있지 않나.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이럴 때 이 시집, 한편 한편 읽어보면 좋다. 생태를 주제로 한 시들의 모임이다.


모두가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함께 해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다. 이 중에서 최승호 시를 하나 인용한다. 


과연 우리 공동체는 이런 펭귄 공동체와 다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손을 잡지 않는 펭귄 공동체


     공동체의 이기심도 

     있다고 본다


     공동체의 이기심 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이기심도 

     있다고 본다


     펭귄들의 포옹이 

     어색한 것은

     팔이 짧고

     배가 너무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도 팔이 짧고

     배가 너무 나왔다

     나도 그렇다


     남극 눈보라 속에

     손을 잡지 않는 펭귄 공동체가 있다


     저마다 홀로 서는

     펭귄 공동체

     뿔뿔이 흩어진 채 모여 사는 펭귄 공동체


이혜원, 우찬제 엮음. #생태 시. 문학과지성사. 2021년. 156-157쪽.


'나도 그렇다'는 표현에 찔렸다. 나 역시 팔이 짧고 배가 나왔다. 남을 안을 팔은 짧아 잘 안지 못하고, 나에게 안기려는 대상을 나온 배가 밀어낸다. 그러니 함께 하기 힘들다.


그러면 안 된다. 배를 집어넣어야 한다. 팔이 짧으면 배를 집어넣어 상대를 안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길이다. 


'세상도 팔이 짧고 / 배가 너무 나왔다'는 시인의 표현, 이 시대에 딱 맞는 표현 아닐까 한다. 제발 배를 집어넣자. 너무 나온 배는 다른 존재를 밀어낸다. 그러면 공동체가 유지되기 힘들다.


이 시집에 실린 정희성의 '숲'이란 시에서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라는 절규, '그대와 나는 왜 / 숲이 아닌가'라는 말은 결국 배가 너무 나와 남을 안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최승호의 시와 정희성의 시가 이렇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시인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는데... 자꾸만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들이 보이니, 지금 우리는 '뿔뿔이 흩어진 채 모여 사는 펭귄 공동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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