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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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건축물을 다루고 있다. 너무도 유명한 건축물이다.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건축들. 그렇지만 아직 나는 한번도 실물을 본 적이 없는 건축들.


유현준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또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축물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다. 그 건축물이 왜 대단한지를 차분히 설명해 주고 있어서, 글을 읽다보면 그 건축물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 그 건축물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친절하게도 시대 순으로 건축물을 소개하지 않고, 공간 순으로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어서 나중에 그 지역을 여행하게 되면 건축물을 찾아보기 편하도록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시작은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빌라 사보아'로 시작한다. 건축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르 코르뷔지에인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그는 현대 건축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가 건축한 빌라 사보아 역시 현대 건축에 영향을 준 건축물이고.


그러니 빌라 사보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 책의 구성상 옳다고 볼 수 있다. 빌라 사보아로부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공간은 유럽부터 시작하게 된다.


근대 건축과 더불어 고대, 중세에도 유럽에는 다양한 건축물이 있어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그런 과거를 더욱 풍성한 미래로 만들어낸 사람이 르 코르뷔지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은 무조건 칭찬만 하지 않는다. 빌라 사보아가 현대 건축을 이끈 선구적인 작품이기는 하지만 당시 재료나 기술의 한계가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방향, 지표를 제시했다는 데서 르 코르뷔지에 건축의 위대함을 보게 된다고 한다. 가장 현대적인 건축을 표방했던 르 코르뷔지에가 나중에는 '롱샹 성당'같이 다른 방향의 건축을 했고, 그 건축 또한 위대한 건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유럽의 건축에서 북아메리카로 넘어갔다가 아시아로 끝내고 있다. 아시아에도 자랑스러워 할 만한 건축물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한계를 넘어선 건축과 또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 등 다양한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따르고 싶은 건축,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해비타트 67'이라는 건축물이다.


아파트라고 다 똑같은 아파트가 아닌 그런 건축. 지금 우리나라도 같은 아파트에도 내부 구조가 다른 아파트들이 많이 생기고는 있지만, 이 건축은 내부구조만이 아니다. 외부도 다르다. 즉 지금 우리나라 아파트가 지니고 있는 '베란다(발코니라고 해야 맞다고 한다)'를 정원과 같이 사용하는 그런 건축은 아직 없다.


'해비타트 67'은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건물들을 옮겨온 듯한 느낌을 주는, 다른 층의 지붕을 정원으로 쓸 수 있게끔 설계한 그러한 건축이다. 그러니 아파트 생활을 하지만 자연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건축인 것이다.


이런 건축은 우리에게 아파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세상에 이런 아파트가 1967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냥 상자같은 아파트만 짓고 있지 않았나.


정책입안자들이 반성해야 하지 않나? 어디서 봐도 비슷한 아파트들만 난무하는 나라에서 무슨 다양성, 창의성이 길러지겠는가? 또 자연을 차단하고 기껏해야 옥상에 흙을 가져다 놓고 식물을 심고 있으니, 유현준이 소개한 이 건축물을 생각해 봐야 한다.


아시아에서 주목할 만한 건물은 바로 홍콩에 지어졌다는 'HSBC 빌딩'이다.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1층을 비워야 하는 제약을 건축공법으로 극복한 건축물. 이렇게 지어진 이 건물은 아시아 각국에서 온 가사도우미들이 일요일에 모여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하니, 대도시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렇듯 다양한 건축이 소개되고 있는데, 하나하나 들어보면 왜 그 건축물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지 알게 된다. 한번쯤은 직접 그 건축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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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를 읽으면서 '관계'를 생각했다. 관계는 나가 아닌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전제한다.


  다른 존재와 만날 때 어떠해야 하는지에 따라 관계를 잘 맺기도 하고, 잘못 맺기도 한다.


  디지털 사회로 넘어가면서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고, 또 섣부르게 관계를 맺기보다는 홀로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은 다른 존재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 다룬 글 중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에 나오는 말, 그렇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관계를 전제로 한다. 나와는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소망. 참 어려운 소망이다.


나와 다른 존재는 나와 같지 않기에 내가 하는 말이 오롯이 그에게 전달되기는 힘들다. 다른 존재의 마음을 읽기도 힘들고. 그렇지만 관계를 맺지 않을 수는 없다. 또한 남을 의식하면서 자신을 잃을 수는 없다.


그러니 할 말은 하자. 할 말을 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말도 받아들일 자세를 갖자. 그러면 된다.


이렇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것이 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만은 아니다. 도시와 지역의 관계일 수도 있고, 사람과 자연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면 '칼부림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라는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으면 안 된다. 사건은 관계맺기가 실패한 데서 나온다. 어떻게 관계맺기를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냥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지 말고.


결국 사회란 관계맺기가 펼쳐지는 장이다. 빅이슈가 추구하는 바도 바로 이런 관계맺기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누가 누구를 소외시키지 않는 관계. 


빅이슈를 읽으면서 이런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제대로 된 관계맺기를 하고 있는가? 어쩌면 관계맺기를 남에게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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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3년 가을호 - 통권 183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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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을 읽다. 길을 잃은 시대에 길찾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여전히 녹색평론에서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내는 녹색평론에 응원을 보낸다.


후쿠시마 오염수... 오염수라고 하지 말고 처리수라고 하자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그렇게 하자고 한다면 제 나라니까, 자기들 이익이 걸려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익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피해만 쌓여갈 뿐인 우리나라에서 오염수 방출을 반대하기는커녕 용어를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으니...


무엇이 과학인지 정말 알고 떠드는지 궁금하다. 원자력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쓰고, 핵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하는 집단에서, 인체에 해롭지 않은 피폭량이 있다고 하는 말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우리 몸에 들어온 방사능물질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나? 아주 작은 양은 몸이 견뎌낼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는 말이 과연 과학적인가?


진정 과학적이라면 아주 적은 양이라도 인체에 해가 될 수 있음을 가정하고, 오랜 시간 동안 검증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그냥 주어진 자료만 보고 아, 그렇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핵 오염수부터 시작하여 기후재앙, 그리고 정치의 후퇴 등을 다루고 있는데, 진정 민주주의라면 과학이라는 이름을 오용하면서까지 국민들 정서에 맞지 않는 정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너무도 후퇴하고 있는데, 이것은 소수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그들을 통제할 수단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국한시킨 결과이기도 하겠고.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문제는 정치다.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당연히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적인 사람들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4년에 한 번, 또는 5년에 한 번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늘 함께 할 수 있는 민주주의, 남에게 자신의 권리를 맡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왈가왈부 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또한 국회의원들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제대로 하지 않는 선거법 개정, 예전에 이루어졌으리라. 그나마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루었다고 자부했었는데, 그 형식마저도 하나하나 무너져 가고 있으니...


이런 정치적 후퇴는 삶의 퇴보를 부른다. 아니 퇴보가 아니라 위기다. 재앙이다.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온갖 재난을 보라. 이는 정치의 퇴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방향을 잃은 정치인데, 견제를 하지 못하고 바꾸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공론을 모으는 일을 하지도 않고 있으니, 이런 일이 생기게 된다.


녹색평론 이번 호를 읽으면서 지금 정치의 모습, 또는 경제 성장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이제석 광고가 떠올랐다.


앞으로, 적에게 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총구는 자신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는 광고..


<사진 출처 : [광고 천재 이제석] 개정판. 156-157쪽.>


이것이다. 성장을 외치는 지금의 모습은 이렇게 앞으로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성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성장, 성장 하고 있을텐가? 지금의 삶을 방식을 유지하면서 기후재앙을 벗어난다는 것은 망상이다. 이 성장이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 광고처럼

<사진 출처 : [광고 천재 이제석] 개정판. 158-159쪽.>


그러니 우리는 삶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녹색평론 이번 호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자급 중심의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공업이 아니라 농업을, 그것도 소농 중심의 농업을 중시해야 한다고. 


큰집단보다는 작은집단이 공동체를 이루어 그곳에서 생활이 가능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다. 계속해서.


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바위가 언젠가는 뚫리고 깨진다는 믿음으로 그렇게 녹색평론을 꾸준히 외치고 있다. 아직까지도. 한편 한편의 글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이번 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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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건 - 1988~1992년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
조영남 지음 / 민음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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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내게는 그냥 '등소평' 그는 '부도옹'이라고 불렸다고 알고 있는데... 부도옹(不倒翁), 넘어지지 않는 사람... 그렇다. 그는 마오쩌뚱과 더불어 중국 혁명을 했던 사람. 그럼에도 마오에 의해 쫓겨났던 사람. 다시 문화혁명 이후 복귀에 중국 최고지도자가 된 사람.


그는 작은 키에 담배를 엄청 피웠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그는 크디 큰 중국이 현대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그의 잘못도 있었지만.


덩샤오핑은 마오를 평가하면서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 평가가 자신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는 자신에게는 잘못이 30%는 안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덩샤오핑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쥐를 잡는 데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이 없다는 소위 흑묘백묘( 黑猫白猫)론.


여기서 쥐는 바로 국민들의 빈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국민들의 빈곤을 해소하는 데는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시장이냐 통제냐 하는 것에 매몰되지 말고 무엇이 진정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서 그 방법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그는 시장경제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경제 개방을 실시하고, 이윤을 허용했으며, 높은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몇몇 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해서 경제성장을 도모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성과는 몇몇 도시일 뿐이다. 중국 전체는 아니다. 이미 성장의 맛을 본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할 뿐이다.


여기에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정치 분야에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독재와 시장이 함께 가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즉 시장이 형성이 되고, 시장이 경제의 중심이 되면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정치와 무관한 시장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에는 고도성장을 이루기 쉽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정체되기 마련이다. 이때 시장에 간섭을 하는 정치가 걸림돌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덩샤오핑의 시대 후반에 중국은 이런 상황에 도달한다. 공산당의 지도를 포기하지 않는 보수파는 전면적인 경제 개혁보다는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성장률을 낮추고, 공산당의 지도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방향. 여기에 반발이 있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아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라고 하면 반발이 생긴다. 중국의 80년대 후반이 그렇다고 봐야 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언급할 수가 없는 '천안문 사건'이 이때 벌어진다.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도 있지만, 현대화된 중국에서 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과 경제 분야만으로 국한시키려는 세력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은 학생들일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고, 또 자유로운 상황에 있는 학생들. 여기에 이상을 추구하는 나이까지 합쳐지면 학생들은 지지부진한 개혁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 원인을 정치에서 찾게 된다. 이들은 정치 민주화를 주장하게 된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사고라기보다는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도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집단에서랴... 이 책을 읽으면서 '천안문'과 '광주'가 자꾸 겹쳐지는 이유가 뭘까 했는데... 읽으면서 많이 불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야 하는 군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눴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정통성을 상실한 일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래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되는데...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천안문은 금기 사항이다. 왜냐하면 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자를 처벌한다면 그들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덩샤오핑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지도자들에게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를 '과(잘못)'라고 하자. 얼마나 될까? 아마 덩샤오핑도 자신이 비판하고 옹호했던 마오와 같은 평가를 받지 않을까. 여전히 중국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 이념, 등소평 이념이 지도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하니까.


이 책은 덩샤오핑 시대를 다룬 것 중에서 마지막 시기에 해당한다. 중국의 개혁 개방이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실시되는 과정... 이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 지도자들 간의 갈등들에 대해서 여러 자료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닌, 찬양이 아닌 자료를 통한, 역사를 통한 덩샤오핑 시대의 공과 과를 살피고 있어서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천안문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자료를 정리해주고 있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사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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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들 -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오찬호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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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일들. 자세히 보고, 자신의 관점만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일들. 제 생각과 분명히 다르지만, 왜 다른지 고민해 봐야 하는 일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그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는다. 자신의 관점만을 고수한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잘 적용되는 일들이 많다. 자기에게 유리한 면들만 보고, 그것들로 자신의 관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주장은 모두 잘못된 주장이고, 고려할 가치가 없는 편협한 주장일 뿐이다.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관점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관점이나, 이것도 그르고, 저것도 그르다는 양비론적 관점을 택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들에는 분명 옳고 그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만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힘들다면 그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피고, 원인을 파악하여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쟁점이 되는, 저자의 관점을 빌리자면 잘못된 주장을 하는 집단들이 존재하는 일들 열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다.


성소수자, 악성 댓글, 폭력(운동선수), 비정규직(노동자 사고), 빈곤(복지), 기업의 비윤리성(가습기 살균제), 코로나19(재난), 성착취, 낙태죄, 세월호, 대통령 탄핵, 입시 문제(공정)


다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제다. 사실 성소수자가 논란이 될 이유는 없다. 성적 취향이 어찌 논란이 된단 말인가? 그럼에도 아직도 성소수자는 차별을 받고 있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기도 어렵다.


소수의 성소수자들이 방송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극소수에 해당할 뿐이다. 고 변희수 하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을 당해야 했다. 아직도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지 반대가 아니라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여기에 안심 화장실 문제... 모든 성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자신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악성 댓글이 단지 댓글 창만 없앤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사회가 바뀌어야 함을, 그것이 바로 운동선수들의 폭력 문제나, 입시의 공정성, 비정규직 노동 환경(단지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함을, 노동자들의 사고는 바로 이런 노동환경의 개선이 있어야 함을, 사회가 국가가 적극적으로 노동환경의 개선에 개입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의 개선,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데 선별 복지냐 보편 복지냐에 대한 접근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까지 언급하고 있다.


즉 하나의 사안은 그 사안으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사회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만 해도 그렇다. 피해자는 있는데, 그 피해를 온전히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몇 년 전 일을...  최근에 국가에서 가습기 피해를 인정했다고 하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던가. 또한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보상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이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할 자유를 무한히 허용했다가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세월호 역시 가습기 살균제와 마찬가지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개조를 하고, 규제를 무마하기 위해 벌인 로비, 이런 것들로 인해 벌어진 사고...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인정하기 걸린 오랜 시간처럼 세월호 역시 국가가 책임지고 진실을 규명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런 일들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는데, 이는 한 개인을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대통령이 지닌 책무가 무엇인지, 대통령은 한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헌법에 부여된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자리임을, 그런 일을 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음을 잘 보여준 일이라고 한다.


여기에 낙태나 성착취는 여성을 어떻게 보는가? 성착취야 착취라는 말에서 이미 잘못임을, 범법 행위임을 알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사례들이 있었음을, 그것은 바로 성착취에 대한 과거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음을 이야기하면서, 낙태에 관한 관점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낙태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고 성문란 또는 방종으로 연결시키는 관점들이 있음을... 낙태죄가 법적으로 이미 폐지가 되었음에도 이런 관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이처럼 이 책은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저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사안들에 대해서 이런 관점과 저런 관점이 있고, 또한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단지 하나의 관점에 갇히지 말고,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한 주장이 득세를 하는 세상인데, 그 강한 주장이 적절한 근거를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근거를 들어 그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다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어려운 길일지라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 기억해야 한다. 유효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다.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이 사회는 사람이 만든 거고 그걸 바꾸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주하기 싫어도 마주해야 변화가 가능하다. 일단 화들짝 놀라고, 아직도 이런 일이 있냐고 탄식하고, 피해자를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모색하는 고민의 연속만이 사회를 움직인다.'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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