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적인 표현이 제법 많은 시집인데... 


  가령 소금쟁이를 '저수지의 옷을 수선하는 수선공'(92쪽)이라고 표현한다던지, '쥐의 여행'라는 시에서 고스톱 치는 장면을 '아버쥐, 똥 먹어/아버쥐, 그냥 죽어/아버쥐, 쌌네'라는 표현에서 아버지 대신 아버쥐라고 한 표현도 재미있는데,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 '아버쥐, 인분 드시죠/아버쥐, 그만 작고하시지요/아버쥐! 사정하셨습니다'(85쪽)라는 표현에서는 안 웃을 수가 없다.


  부모 자식 간에도 상(성)스러운 말이 오가는 고스톱 치기에서, 쥐가 등장하고, 그 쥐를 통해서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런 재미 있는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시인데, 이는 웃음이 점차 사라지고 소위 썪은 미소(썩소)만이 넘치는 사회에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제공하고 있는 시들이 많다.


그럼에도 슬픈 시들도 많은데, 집값을 위해서 죽음까지도 단합하는 모습을 그린 시 '공범'(87쪽)에서는 박완서의 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이 떠오르기도 한다. 죽음보다 집값을 우선하는 물신시대. 그런 시대를 시를 통해서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시도 있지만 이 시집에서 '페로몬'이라는 시를 읽으면 장인수 시인은 우리에게 웃음 페로몬을 내뿜어, 그 웃음으로 자신을 따르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집 제목이 된 유리창이라는 시는 정지용의 유리창을 떠올리지만, 정지용의 유리창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담고,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비통함을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하고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하지만, 장인수의 유리창은 그 죽음을 승화하고 있다. 물론 장인수 시에서 죽음은 새들의 죽음이다.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 새들. 그러나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새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한다.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새는 다시 살아나 / 유리창을 마음대로 통과하며 살아간다고 한다/산맥과 달님도 마음대로 뚫으며 날아다닌다고 한다' (23쪽)


그러니 그의 시는 죽음이라고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이 있다. 그 다음이 있으니 우리는 절망에서 허우적대서는 안된다. 비극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시인은 우리를 이끈다. 


    페로몬


카페이 앉아 있는 남녀 고등학생

공원 벤치에 누워 있는 남녀 고등학생

담배를 피우고, 이어폰을 꽂고, 만화책을 보고 있는 

그들에게서

성페로몬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하나님을 갈구하는 예배당에 모인 신자들의

영혼에서도

주님을 향한 길안내페로몬 향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나의 몸에 돼지 수컷 페로몬을 바르면

암컷 돼지들이 난리를 피우며 따라붙을 것이다

이끌림의 에너지인 페로몬 향기처럼

생애의 물꼬가 터졌으면 좋겠다


장인수, 유리창, 문학세계사. 2006년 초판 2쇄. 93쪽.


보통 어른들이, 특히 교사들이 일탈행위라고 하는 고등학생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지 않고 성페로몬이 발동했다고 하고, 종교적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서도 페로몬을 발견하며, 자신에게도 그런 페로몬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시의 화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다. 우리에게 페로몬을 발산해 그 페로몬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존재.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시를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삭막한 시대에는 더더욱 '생애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도 시를 읽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는 세계로 들어설 때가 있으니, 시인들은 이렇게 페로몬을 발산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인수 시집을 읽으며 그 페로몬이 시인만의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페로몬을 지니고 있음을... 그래서 그 페로몬으로 다른 사람을 이끌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페로몬에 이끌려 함께 가기도 한다.


함께 함. 이게 바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 서로에게 긍정 페로몬을 발산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를 이끌며 사는, 아니 굳이 이끌 필요도 없다. 그냥 함께 있어도 좋은 페로몬을 내뿜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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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시집을 읽으면 가능성이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고정이 되어 있지 않은 청소년들의 모습. 또 청소년들의 마음. 그들 마음이 하나가 아니고, 또 굳어있지 않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딱딱함, 굳음은 죽음이다. 그러니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특정한 형태로만 있으라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청소년에게서 생동감을 빼앗는 일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시집을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겠지만, 청소년보다도 어른들이, 기성세대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그들이 청소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문학을 통해야 한다.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청소년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우선 어른들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어른들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지 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면 청소년과 직접 이야기하는 일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전달이 되거나, 또는 어른들 구미에 맞는 말을 늘어놓는 청소년들의 말을 듣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청소년시집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들의 내밀한 마음들을 상상을 통해 표현한다.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던 소소한 감정들을 시로 표현해 주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역할이다. 시인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들을 표현해낸다. 


시인이 꼭 청소년일 필요는 없다. 청소년시라고 해서 청소년이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청소년의 마음을 알고,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써야 한다. 그런 시들을 통해서 우리는 청소년의 마음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


오은 시집을 읽으며 청소년들의 마음이라는, 그 마음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고, 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수시로 변하며, 과거나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보게 됐다. 제목도 '마음의 일' 아닌가.


그런 청소년들의 무한한 가능성, 마음의 가소성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읽었다.


그리지 않아야 그려졌다


내가 쓰고자 했던 것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

그릴 수 없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도

쓰거나 말할 수 없다

온전하게는


창밖에는 나무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몇 분 뒤에 나도 나무 아래에 있을 수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들이치는 햇살을 맞으며

아, 행복하다

여기가 따뜻하구나

여기가 시원하구나

따뜻하면서 시원할 수 있구나

말할 수도 있다


현장의 나만 아는

그때의 나만 아는

내 몸에 새겨지고 있지만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는


나이테가 있다

지문이 있다


그리지 않아야 그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안에 있어야 보이는 바깥 부분이 있었다


내뱉고 나면 사라지고 말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는 꿈이 있었다


나는 아직 창 안에 있다

창 안에 있기에

백지 위에 한가득

창밖을 상상할 수 있다


오은, 마음의 일. 창비. 2020년. 초판 2쇄. 53-54쪽


청소년을 고정시키지 말자. 어떤 한 역할로 국한시키지 말자. 그들을 기대라는 이름으로 틀에 가두지 말자.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일, 그들이 '백지 위에 한가득 / 창밖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 그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오은 시집을 읽으며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들, 청소년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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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하면 얼굴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을 머금게 될까?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찡그린 얼굴이 될까? 과연 아이들은 학교에 오고 싶어할까?


  학교란 공간은 학생들에게는 자유를 상실한 공간, 자신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교사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그런 공간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말들이 '해라'와 '하지 마라'는 명령형으로 끝나는 말들이 대부분일텐데, 그런 공간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학생들의 말에 귀기울여 주는 교사들이 있고, 학생들이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무엇보다도 격의 없이 교사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학교라면 그 학교에 가고 싶을 수도 있겠다.


이 시집을 낸 최은숙 시인은 교사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시로 표현했다. 이 시집은 청소년시집이고, 청소년들이 읽으면 '와, 우리 이야기네.' 할 수 있는 그런 시들이 많이 실렸다.


학생을 이해해주는 교사의 모습은 완벽한 교사가 아니다. 허점이 있는 교사다. 학생들에게 배울 수 있는 교사다. 그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딱이다. 이 시들은 그런 교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배시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딱이다, 비밀, 깜빡하기, 무서운 상민이, 선생님께 하는 부탁, 핵인싸각 등등)


또한 마을 사람들과 정겹게 지내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과 지내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 이 시집을 읽으면 웃음이 있는 학교를 떠올리게 된다. 학교가 이렇게 웃음으로 충만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학생이 졸업을 한 뒤에도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런 학교. (우린 운이 좋다 언제나)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행동하는, 마을과 학교가 동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하는 모습, 그야말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그런 시가 있다.


정말 이런 학교, 이런 마을, 이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이 세상에서, 학교가 담장을 굳게 치고, 교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인 통제를 하며, 심지어 학생들도 한번 등교하면 하교할 때까지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단절된 공간이 아닌, 열린 학교, 함께 하는 학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 정경이 눈에 그려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랬으면 좋겠다. 우리들이 학교를, 학생을 대하는 모습이.


      알고 보니


올봄에도 아이들이 쑥 뜯으러 나올 거라고

동네 어른들은 둑길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쑥 뜯는 동안 자동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은 것은

다들 뒷길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공부 안 하고 놀러 나온 게 좋아서

장난치고 도망가고 야단법석

그래도 쑥이 모자라지 않았던 것은

방앗간 사장님이 뜯어 놓았던 쑥을

한 소쿠리 보태 주셨기 때문이에요


학교 앞 솔로몬문방구랑 스마일분식, 독립상회까지

떡을 돌리고도 전교생이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들이 쌀을 듬뿍듬뿍 퍼 주셨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선생도 자라고

마을은 깊어 갑니다


최은숙, 지금이 딱이야. 창비. 2021년.  87쪽. 


참 아름다운 정경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렇다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느냐 하면 아니다. 아이들은 공부 안 하고 나와서 논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들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애늙은이처럼 어른들이 우리를 배려하고 있으니, 우리 최선을 다해서 쑥을 뜯자가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겁게 논다. 즐겁게 놀아도 된다. 이 놀이가 언젠가는 그들의 마음에서 서서히 자라리라. 그들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굳이 지금 그렇게 하라고 도덕적인 말로 훈계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채우지 못한 쑥은 마을 사람들이 채우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쑥떡을 먹는 그런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우리가 공동체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런 어른들의 마음을 자라면서 알게 되리라. 시 제목이 '알고 보니'다. 


왜 아이들이 이렇듯 편안하게 쑥을 뜯을 수 있었는가, 마음 놓고 놀 수 있었는가 하니,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배려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공동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학교와 마을의 관계다.


이 시집에 실린 시 한편 한편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될 언어들로 시가 쓰였고, 또 자신들의 이야기가 표현되었으니, 시를 가까이하는 청소년들이 이런 시집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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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09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채우지 못한 쑥은 마을 사람들이 채우면 된다.
시가 아닌데 왜 시로 읽히죠?
아마도 아이들과 쑥이라는 단어가 함께 오는것이 드물어서 그런가봅니다.
시 읽기 좋은 계절이 왔네요~~♡

kinye91 2021-09-09 13:17   좋아요 0 | URL
네. 시를 읽기도 책을 읽기도 좋은 계절이 왔어요. 코로나 시국이 빨리 안정이 되면 아이들이 이렇게 밖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겠지요.
 

 

  [빅이슈]를 보면 젊은이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사서 읽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감성이 [빅이슈]에 담겨 있다.


  그래서 [빅이슈]를 읽으면 젊어지는 느낌, 새로운 세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표지 인물로 선정되는 사람들이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고, 그 표지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니, 여러모로 새로움을 알게 되는 이로움을 얻게 된다.


  이번호는 특집이 "집으로의 휴가, 책장 파먹기"다. 특집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코로나19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이제 여행가기도 민망해지곤 한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예전에 비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연휴가 되어도 제발 이동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호소에 나 몰라라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좀 그렇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집에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할 수가 있다. 집정리를 할 수도 있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죄책감 없이 푹 쉴 수도 있고, 못 읽었던 또는 안 읽었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책장 파먹기'란 제목 마음에 든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 안 읽은 책 또는 못 읽은 책이 꽤 있다. 없을 수가 없다. 그때는 읽어야지 하고 샀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읽지 못하고 그냥 책장에 머무르게 한 책들.


시간이 많을 때 읽는 일, 좋은 일이다. 하지만 [빅이슈]의 특집처럼 이번 여름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나는 '책장 파먹기'를 하지 못했다. 오히려 '책장 비우기'를 했다. 그동안 책장을 채우고 있던 많은 책들, 내 과거 나와 함께 했던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책장에 자리를 잡지 못해 밖으로 나가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책들, 책장의 칸이 아니라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책들.


정리해야지. 책장을 좀 여유롭게 만들어야지. 이번 여름에 내가 한 일이다. 어떤 책부터 비워야 하나? 어떤 책들 순으로 내 곁을 떠나게 하나?


어려운 일이다. 이 책들이 올 때 순서와는 상관없이 이제 내 관심도에 따라 떠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들, 이제는 활자체가 변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책들부터 정리한다. (역시 이런 책들은 내게 가장 먼저 온 책들 중 하나다. 책에 쓰인 활자들이 많이도 변했음을, 책을 시대 순으로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또 한때는 명쾌한 논조로 우리 사회의 명암을 잘 드러내주었지만 몇 십 년이 지나 시류에 맞지 않게 된 책들도 떠나야 한다. (시사에 관한 책들은, 역사를 공부하고, 기록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르면 시사성을 많이 읽게 된다. 그래서 그때그때 헌책방에서 다른 사람들을 빠른 시간 안에 만나지 않으면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게 된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빼서 쌓아두고 한꺼번에 집 밖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책들이 떠나가고 꽉꽉 차 있던 책장은 여유로운 공간이 생겼다. 다른 책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비워야 채운다고, 책장 비우기를 실행한 여름, 한결 넉넉해진 책장을 보면서 새로운 책을 맞이할 궁리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책들만큼 이제 이 책장의 넉넉함을 유지하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이렇듯 [빅이슈] 257호를 읽으면서 책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15일 간격으로 읽을 수 있는 [빅이슈]를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나와의 공통점 찾기.


하여 이번호에서는 새로운 감수성을 느끼면서 또한 나와 공통점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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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30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장 파먹기!!!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나선 사람들이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 자신과 경쟁을 하는 상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듯이 함부로 말을 한다. 함부로... 정말로 보통 사람들은 입에 담지 않을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귀를 씻어도 씻어도 그 말들은 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왜? 말들이 얼마나 더러운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씻어서 밖으로 내보낼 틈도 없이 또다른 더러운 말들이 들어오니까.


  겨 묻은 개가 있나 싶을 정도로 똥 묻은 개들이 네 똥에서 냄새난다고 짖어대는 꼴이다. 표현이 개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아마, 개들은 네게서 사람 냄새난다 또는 사람처럼 욕한다, 사람처럼 행동한다 등을 욕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쟁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낮추고 비방해서는 안 된다. 경쟁자이기에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자신과 엇비슷하기 때문에 경쟁자가 되었으니, 거의 대등한 존재도 예의로 대하지 않으면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를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경쟁자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자신과 경쟁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의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데 이들은 마치 경선 과정이 전부인 양 칼이 되는 말들을 쏟아붓고 있다. 영화 [신기전]에서 화살이 로켓처럼 날아가듯, 칼이 된 말들이 상대를 향해 수없이 날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어떠한 예의도 없다. 


아주 작은 예의도 없이 그렇게 정치판이 굴러가는데, 그와 반대로 우리에게는 예의가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에서는 예의가 필요하다. 예의란 관계를 잘 맺게 해주는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니.


그런 점에서 이 시집에 실린 문성해의 시... 요즘 정치인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시다. 정치를 하려면 시인의 감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들은 상대를 어떻게든 누르고자 하는 투사의 감성만 지니고 있으니... 그것도 미래는 보지도 않고 오직 현재,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이겨내는 데만 관심이 있으니... 예의란 이들에게 승리하기 전까지는 꺼내지 않을 그런 판도라의 상자 속에 가둬두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이 시를 읽으며 자신의 행동, 자신들이 뱉어낸 말들에 대해서, 또 상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까 하는 의문은 있지만, 그래도... 문해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청소년들을 비판하지 말고 자신들부터 이 시를 읽고 의미를 깨우쳤으면 한다.

   

   조그만 예의

- 문성해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이었다고

그 끝에 그만이 켤 수 있는 오 촉의 등이 있다고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

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고


이것을 캐낸 자리의 깊은 우묵함과

뻥 뚫린 가슴과

술렁거리며 그 자리로 흘러내릴 흙들도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대책 없이 땅만 파내려 가던 붉은 옹고집을

단숨에 불과 열로 익혀내는 건

어쩐지 좀 너무하다고


그래서 이것은

가슴을 퍽퍽 치고 먹어야 하는 게 조그만 예의라고 생각한다


허연 외,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2014 현대문학상수상시집, 현대문학 2013년. 65쪽)


고구마에게도 이런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그것이 '조그만 예의'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다른 존재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있는가.


예의란 상대를 존중하는 일. 그렇게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해야 상대도 나를 존중하지 않겠는가. 관계에서 일방은 없다. 쌍방이 있을 뿐이다.


최근 정치판에서 난무하는 비방, 욕설, 상대를 깎아내리는 폄훼 등등을 보면서 이 시를 생각한다. 정말 우리 '조그만 예의'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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