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을 했다. 케이티엑스를 타고 가는 길. 결코 요금이 싸지 않은데, 그래도 운전하는 내 노동력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그 가격이 상쇄되었다고 생각하고 떠난다.


  기차를 타니, 광고나 또는 책자에 '잇다'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잇다'

  한 지점에서 한 지점을 연결해 준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을 맺어준다. 이렇게 '잇다'는 관계맺다가 된다. 고립되어 있지 않고, 함께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여행을 하면서 보게 된 낱말 '잇다'를 [빅이슈]를 읽으면서 떠올리게 된다.


  [빅이슈]를 받아보면서 늘 느끼는 점이 바로 '잇다'란 말로 정리될 수 있다. 관계맺기, 홀로가 아닌 함께. 그렇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잡지가 바로 [빅이슈]다.


판매원인 '빅판'이 전철(지하철)역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연결이 되고, 또 잡지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결되는 '함께'를 실천하는 잡지.


새해 신년호다. 무엇을 연결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호에서는 '노년'을 다루고 있다. 사람이 나이 먹어간다는 것, 나이 들어간다는 것, 이것은 바로 시간의 연결이다. 시간은 끊어지지 않는다. 시간의 끊어짐. 이건 죽음이다. 죽음 전까지 우리는 연속되는, 연결되는 시간 속에서 산다.


그런데 가끔 시간을 끊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세대론이 그렇다. 이 세대, 저 세대가 다르다고, 연결되기보다는 단절되어 있다고, 그래서 소통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시간을 끊을 수 있을까? 다른 말로 하면 한 세대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을까? 지금 젊은 세대라고 해서 영원히 젊은 세대로 남을까? '라떼는'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될까?


아니다. 우리는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간다. 그 살아온 시간 속에 수많은 세대들이 연결되어 있다. '요즘 젊은애들'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그런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된 시간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불리는 세대를 통과해 왔다.


죽음으로 시간과 단절될 때까지는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끊고 다르게 이야기를 하려는 모습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꼭 아이만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는 '잇다'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노년'이라고 특정한 시기라고 해서는 안 된다.


노년은 장년, 청년, 소년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연결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빅이슈] 이번 호를 읽으면서 [빅이슈]가 바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번 호에 있는 옥희살롱 김영옥 대표의 인터뷰 글이 있는데, 이 말이 바로 '잇다'를 대표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년에 대한 추상적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돌보고 마음을 쓰는 관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떤 것을 연습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나이 든 사람들이나 아픈 사람들을 자주 만나야 한다. 옆에서 만나본 적이 없으면 자기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자기의 돌봄 역량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46쪽)


아이들에게도, 노인들에게도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마을은, 공동체는 그렇게 사람들을, 세대들을 잇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살아가기 힘든 지금 시대에도 이러한 공동체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동체는 뜻이 맞는 사람들만이 모여 사는 장소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여러 세대들이 함께 갈등하고 그 갈등을 풀어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이어가는 그런 장소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세대를 막론하고 이런 공동체가 필요하다. [빅이슈]를 읽으면서 [빅이슈]가 이런 연결, 즉 '잇다'를 기차보다도 더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새해 받아본 소중한 잡지, 우리와 우리를 이어주는 그런 잡지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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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으면 제목이 되는 시를 찾아본다. 어떤 시집은 제목이 된 시가 실려 있고, 어떤 시집은 시구절에서 제목을 따오기도 한다. 


  이 시집 제목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시를 찾아보았는데, 시구절을 따와서 제목을 삼았다. '노스트라다무스의 별'이란 시에 '나는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이란 구절이 있다. 


 '나'로 시작했으니 '사랑'이라고 쓰기는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사람'이라고 했을텐데, 시집 제목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보다는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이라고 한 이유가 있으리라.


  그만큼 이 시집에는 사랑이 흐르고 있다. 바로 사랑, 존재에 대한 사랑이 시집 전체에 넘쳐 흐르고 있어 읽으면서 마음이 찡해지곤 한다.


'죽은 별'은 과거다. 과거를 건지는 일은 현재에 과거를 가지고 오는 일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 그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에 되살리는 일. 어쩌면 시인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잊고 묻어버린 과거를 다시 살려내어 우리들에게 가져오는 역할. 그 일은 바로 사랑일 수밖에 없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기에.


이 시집 1부에는 시인의 가족사가 담겨 있다. 시로 쓴 가족사라고 할만큼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첫시인 '지킴이의 노래'가 1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편의 서사시라고 해도 좋다.


시집 2부로 가면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속도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속도에 집착해서 잃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빛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앞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다 우리가 뒤에 두고 되돌아보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속도로 인해 다른 존재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2부는 부제를 '속도에 대한 명상'이라 정하고, 한 편 한 편 속도로 인해 잃어가는 존재들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사랑이 없다면 이런 시를 쓸 수가 없다.


세상 존재들에 대한 사랑이 이런 '속도에 대한 명상' 연작을 쓰게 했다고 할 수 있따.


3부에 실린 시들은 풍자시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이 많은데, 역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풍자는 곧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풍자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다. 이렇게 시인은 사회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


이 중에 속도에 관한 시... 속도로 인해 생명이 얼마나 속절없이 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짤막한 시.


  목격 - 속도에 대한 명상1


질주하는 바퀴가 청개구리를 터뜨리고 달려갔다

………

나는 한 생명이 바퀴를 멈추는 데

아무런 제동도 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반칠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시화시학사. 2003년 1판 7쇄. 59쪽.


지금까지는 이래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한 생명이 바퀴를 멈추는 데 제동이 되는 것을 보게 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했더라도... 앞으로는... 


그래서 이 시가 더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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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별다른 불편 없이 또 별다른 두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두려운 세상이라면.

 

  공정한 세상라고 할 수 있나? 그럼에도 내가 느끼지 못했다고 그런 세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아니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러운 세상일 수도 있다. 바로 내가 편안하게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두운 거리를 어두움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을 지니고 걷는 사람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또는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걷는 사람에게 같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두려운 세상에서 목숨을 잃거나 상해를 당하거나 했던가. 그런 세상을 마치 없는 듯이 아주 극소수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듯이 이야기 해서는 안 된다.

 

기사로만 접하는 사실과 시로 만났을 때는 느낌이 다르다. 이소호가 쓴 시는 예전 황지우가 쓴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로 끌어와 쓴 황지우. 신문기사를 모아서도 시로 만들어냈던 그의 모습을 이소호 시에서 보게 된다. 이 시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이란 시도 그렇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사화 됐던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그냥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시를 통해서 누구의 삶이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협을 당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누구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시에는 각 번호마다 설명이 달린 주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시를 복사한 그림을 보면, 시 내용 곳곳에 있는 숫자들이 그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칼, 창과 같이 느껴진다.

 

주가 없을 때보다 주가 있는 시로 보는 편이 시의 내용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인쇄가 약간 삐딱하게 됐는데... 그래도)

 

 

 

 

 

 

 

 

 

 

 

 

 

 

 

 

 

 

 

 

 

 

2021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20년. 181쪽. (주는 182-184쪽에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섬뜩해진다. 아니 부끄러워진다. 여전히 이런 일이 뉴스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 시에 있는 주가 38개인데, 38개의 칼을 맞는다면 사람이 견딜 수 있을까. 아니 언제 어디서라도 칼이 날아올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시는 이런 세상이 있음을, 그것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런 세상을 우리가 바꾸어야 한다고.


누구는 누가 될 수도 있다고. 이것이 꼭 특정 성별에게만 적용되는 일은 아니라고. 특정 성별, 또 성적 지향 때문에 이렇게 공포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누구나의 어제와 오늘은 이럴지 몰라도 내일은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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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마지막 호.


  한 해를 잘 보냈다고 하고 싶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이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지내야 한다. 내년에도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있지만, 3년이 되어가니, 사람들이 적응을 하든, 극복을 하든 하지 않겠는가.


  두 해 동안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바이러스가 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으니.


  그런 변이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역시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니. 우리는 이 감염병에도 적응하고, 우리들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람들을 다뤄주었던 빅이슈를 한 해 동안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존재들을 빅이슈를 통해서 만날 수 있는 한 해였는데...


내년에도 빅이슈를 통해서 더 많은 존재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내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번 호에 영국에 사는 이항규의 글이 마지막으로 실렸다고 한다. 다음 호부터는 이항규의 글을 볼 수가 없다는 서운함이 있지만, 그의 글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전한다.


그가 이번 호에서 쓴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밤길 운전을 할 때, 낯선 곳을 그것도 가로등도 없는 곳을 운전할 때의 두려움. 어쩌면 이것은 코로나19를 겪은 우리 인류들의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낯선 곳을,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곳을 운전할 때도 도움이 주는 존재들이 있다고 한다. 앞서 가는 차들. 앞서 가는 차들의 빛을 보고 따라갈 때의 안도감. 그것은 함께 한다는 든든함이다.


우리가 감염병 시대에 겪는 어려움을 이렇게 함께 함으로써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또 뒤에서 차가 내 속도에 맞춰 따라올 때의 고마움. 내가 늦게 간다고 씽씽 추월해가지 않고 천천히 함께 오는 차. 이것 역시 함께 한다는 고마움이다.


차만 그렇겠는가. 감염병 시대에 우리는 이렇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던가. 그들로 인해서 이 어려운 시대를 그래도 이겨나가려는 의지를 지니고 계속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빅이슈 또한 마찬가지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잡지다.


빅이슈가 그러한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는 생각. 내년에도 또 그 후에도 빅이슈는 이렇게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포기하지 않게 밀어주고 끌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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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으며 시 한편 한편이 독립되어 있지만, 시집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없는 시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시집을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기보다는 시 한편 한편을 유기체로 이해하고 감상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시들이 마음에 남아 시를 더 좋아하게 하기도 했는데, 이번 이원하 시집은 시 한편에서도 연과 연들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야말로 감정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하룻밤 꿈 속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그 일이 어떤 연관성도 지니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꿈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가 충격으로 다가와 어떤 꿈은 기억에 오래 남고, 어떤 꿈은 기억에서 사라져, 꿈을 꾸었다는 느낌만 남아 있게 되는데...

 

이원하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지만, 제목이 된 첫시를 읽으면서 어떤 통일성을 기대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렇게 감정들을 나열해서 무엇을 전달하고자 할까?

 

사람들 감정이 하나로 정리될 수 없음은 명확하고,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엄청남을 알려주고 있지만, 적어도 시인은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주어야 하지 않나.

 

무의식을 그냥 무의식으로 내보내는 역할이 아니라 무의식을 의식으로 걸러 내보내는 역할, 시인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이원하 시집에 실린 시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까? 아주 예민한 시인의 감성을 언어로 표현해 우리가 그런 감성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냥 느끼게 하는 걸까? 감성의 넘침. 그런 시들을 읽으면서 그 넘침에 우리들이 흠뻑 젖기를 바라나?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를 이루는 낱말들은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낱말들을 합치면 '새싹눈물'이 된다.

 

새싹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고, 눈물은 감정의 넘침이다. 그러니 이 시집은 전체가 감정의 넘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제목이 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제주 역시 동떨어진 섬 아닌가? 여기에 '혼자 살고'라고 했으니 외로움도 있겠고,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의 분출 또한 있을테고, '술은 약하'다고 했으니, 조금만 마셔도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 이렇게 넘치는 감정은 모든 것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의 투사가 사람들을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자신만이 존재하지 않고, 함께 존재해야 함을, 심지어 무생물에게서도 감정을 느끼게 되니 어찌 함부로 살 수 있겠는가?

 

이원하 시집을 읽으며 그런 감정들의 넘침을 생각하는데... 이 시를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투명해진다

 

나무는 신처럼

하늘과 가깝고 수염도 자라고

늘 같은 자리에 머물지만

내 소원을 들어줄 리 없다

 

한순간도 내게

솔직해질 용기를 줄 리 없다

 

편애도 없다 편애도 없는 건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아침마다 손이 따뜻한 이유다

관심을 얻기 위한 온도다

 

온도의 숫자를 하나둘 올리다가

내 손가락이 몇 내가 접혔을 때쯤

손에 불이 날까

 

불은 모르고 손은 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소리는

손바닥에 있다는 사실을

 

손은 모르고

나는 안다

 

이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2020년 1판 8쇄. 118-119쪽.

 

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감상만 하면 된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대로 이 시를 감상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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