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잡지를 받으면서 인권에 대해 생각했다. 빅이슈는 인권과 관련이 있는 잡지인가 하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잡지니까,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잡지니까 인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봐도 인권과 관련된 내용들의 글이 빅이슈에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빅이슈에 실린 기사들이 너무도 다양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인권과 상관이 있느냐 할 수도 있다. 유명인에 대한 대담 기사부터, 디저트 소개에, 집 소개 등등...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권이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나, '빵과 장미'란 유명한 말이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빵과 장미가 함께 필요하다. 


빅이슈가 추구하는 일도 바로 이것 아닐까 한다. 빵과 장미. 경제적으로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목적을 이루려고 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노숙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회 각 분야의 소식들을 전해주어서 사회 각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 


즉 먹고 사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다른 일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잡지. 그래서 이번 호를 읽으면서도 빅이슈에 실린 기사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또한 인권을 폭넓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표지 모델은 솔직히 본 적이 없다. 본 적이 없어서 빅이슈 표지 모델이라는 점에서 믿음이 가서 내용을 읽어보니, 그래 이것이다. 바로 빵과 장미가 바로 이 모델, 입짧은햇님과의 인터뷰에서 잘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삶을 즐겨야 한다. 또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회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빵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회, 또 빵과 더불어 장미를 즐길 수 있는 사회.


이번 호에는 그래서 먹방(?) 개인 방송을 운영하는 입짧은햇님과 탱고에 대한 기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먹방하면 그냥 많이 먹는 방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에, 함께 먹는다는 느낌을 주는 방송이 먹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래서 집에서 고립되어 있는 개인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방송. 이것이야말로 빵과 장미 아니겠는가.


탱고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남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취미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음주가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 아니었던가. 그러니 여유 있는 소수의 취미가 아닌 우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춤으로 탱고도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또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장미를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하므로.


게다가 탱고는 홀로 추는 춤이 아니라 상대에 맞춰 추는 춤이라고 하니,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빅이슈란 잡지는 자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노숙인들에게도, 또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삶들을 알고 자신의 삶을 좀더 아름답게 꾸려가겠다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야말로 '인권'이 배어 있는 그런 잡지라 할 수 있다.


이번 호를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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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19로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 확 줄어들었다. 전면등교, 정상등교라는 말이 나왔지만, 코로나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 듯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2년이 지나 3년째, 학교라는 곳에 휴일을 빼고는 매일 등교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휴일이 아닌데도 원격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등교하지 않게 되었다.


  그랬더니 학력저하 운운하면서, 원격수업의 질이 나쁘다고, 원격수업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이곳저곳에서 큰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문제는 오로지 학력인 것처럼. 더 다른 문제들이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성적, 성적이다.


그래, 학생 때는 공부를 해야지. 공부도 때가 있는데, 하는 말들이 있지만, 과연 학교가 아이들 성적만 책임지는 공간이었던가. 학교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 아니었던가.


자기와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 또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과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어우러지는 방법, 교사라는 어른들, 그것도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치거나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교사들을 만나면서 사회 적응력을 키우는 장소. 그런 장소가 바로 학교 아니었나.


어떤 사람은 자조적으로 학교는 아이들의 식사(잠) 장소이자, 사교 장소라고 말한다. 밥 먹고 친구 만나러 학교에 온다고...교육기능보다 탁아기능이 더 강하다고... 이게 자조적으로 할 말인가? 오히려 학교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친구와 만나고 놀고, 같이 밥 먹는 장소. 그런 학교...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그런 학교라는 장소를 잃고 오로지 성적, 성적만 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만을 생각하게 되지 않았는가.


도처에서 들리는 학력저하 운운하는 말들은 학교를 오로지 성적으로만 존재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지 않나.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는 날수가 줄어들어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런 만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함기석 시집 [수능 예언 문제집]을 읽으며 우리나라 학생들이 갇혀 있는 수능이라는 감옥을 다시 생각한다. 수능으로 대변되는 성적, 성적, 그리고 그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학교. 아니다. 학교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도 영화도 있지 않았던가.


학교는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장소이자,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장소다. 그래야 하는데... 오로지 수능이라니.. 수능에 갇힌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시집을 읽다보면 너무도 잘 알게 된다.


'오전 8시, 마시면 배탈 설사 나는 흰 우유 같고' (모의고사 보는 날-10쪽)라고 표현할 정도로, 수능이 아닌 모의고사 자체도 학생들에겐 견디기 힘든 존재다. 그러니 이런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한테 그동안 뻥쳐서 미안했다는 / 사과나무나 한 그루 심으시지'(사과나무-17쪽)라고... 하지만 어떤 어른도,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은 더더욱 학생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아, 전국 모의고사 날은 / 전국이 모의해서 고등학생을 사망시키는 날 / 갑자기 내가 정육점 식당 갈고리에 걸린 / 9등급 고깃덩어리 같았다' (우울해서-25쪽)고 표현하게 된다.


더 많은 시들이 있지만, 이 시집 1부만 어른들이 제대로 읽어도 지금처럼 교육제도를 유지하지는 않을테다. 감정이 있는 어른들이라면... 적어도 아이들이 공각기동대라는 영화에서 킬리언 소령이 했다는 말인 '나의 정신은 인간이다 그러나 / 나의 육체는 인공 신체다'(공각 기동대-36쪽)를 비틀어서 '나의 육체는 인간이다 그러나 / 나의 정신은 인공 기계다' (공각 기동대-37쪽)라고 하게 하지는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학교는 오로지 성적을 위해서 학생을 가둬놓는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온갖 실험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 또 많은 실수,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장소다. 그러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애오라지 성적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잃고 있음을 생각하고, 교육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시집 1부를 읽으면 지금처럼 학교가, 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4부에 가면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이 오롯이 전해지는 시들이 많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힘들게...지내고 있으니...  그러니 수능이 끝나면 교과서는 쓰레기가 되고 말지... 이 시처럼.


       책 무덤


수능 끝난 학교 옥상에

책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다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칠해진 수많은 책이

수백 마리 가오리처럼 쌓여 있다

책 무덤 속에서 들려온다

글자들 우는 소리, 천둥 치던 여름밤 빗소리

절망에 빠져 흐느끼던 친구들 목소리

하늘은 옥상 난간까지 내려와 잿빛 수의처럼 펄럭이고

수능 마친 책들이 봉분처럼 쌓여 있다


함기석, 수능 예언 문제집, 창비교육. 2020년.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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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먹을거리를 담는 밥그릇은 우리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다.


  그런데 밥그릇이 빛난다는 말을 시인이 하고 있다. 매일 닦아서 빛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바깥 부분의 빛남이 아니라 안쪽의 빛남이라면, 이는 밥그릇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채워지지 않은 밥그릇, 빛을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기만 하는, 텅텅 빈 밥그릇. 한번도 풍족하게 채워지지 않은 밥그릇.


  그런 밥그릇조차도 지키려고 아등바등댈 수밖에 없는 존재. 최종천 시집을 읽으며 밥그릇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 풍족하지 않은 밥그릇조차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밥그릇은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한다. 내 밥그릇에 밥을 채워주는 존재에게 묶여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최소한 내 밥그릇이 비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아주 조금밖에 주어지지 않는 밥그릇을 걷어찰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이 시를 읽으며 기본소득을 생각한다.


       투명

 

혀로 빛나게 핥아놓은 밥그릇에는

허기가 가득 차 있다

허기는 투명하지만 잘 보인다

뼈가 앙상한 것을 보면

이빨은 이제

밥그릇도 씹어먹을 수 있으리라

나는 개들이

씹던 목줄을 뱉어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내 손가락을 철망 안으로 넣어주었을 때

녀석은 절대로 물지 않았다

내가 밥을 준다는 투명한 의식이

녀석을 밥그릇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를 주고 싶지만

나는 사장의 명령에 따라 한 끼만 주고 있다

나는 회사의 수위

개는 밤에 내가 할 일을 대신한다

사원들이 퇴근할 때, 개집 문을 열어놓아

불투명한 밤을 투명하게 밝혀놓아야

안심하고 잠잘 수가 있다

간밤에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일감들 사이에서 녀석이 잡아놓고

다 먹지 않은 의문 하나가 피를 흘리고 있다

내가 받는 임금은 아주 적다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

그러니까, 개밥 정도인 것이다

개의 그 깊은 낮잠 속에 고여 비치는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최종천,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창비. 2007. 32-33.


노동자들의 소득을 유리지갑이라고 하기도 한다. 소득이 확연히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출 것이 없다. 사실, 얼마를 버는지 다 알려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적은 소득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 시 제목이 '투명'이다. 


없으니 투명할 수밖에... 이제는 누구라도 자신의 밥그릇이 이렇게 빛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밥그릇이 보장된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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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호는 플레이리스트다. 음악 모음이라고 해야 하나, 내 마음에 들어오는 음악들을 모아놓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게 하는 그런 플레이리스트.


  핸드폰이 일상화된 요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시대.


  그만큼 많은 음악이 유통되고 있고, 다양한 음악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많은 음악들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정리해서 들으려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너무 많으면 없는 것과 같을 때가 있는데, 이를 정리해 놓으면 자기 것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경우라 하겠다.


또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많은 통로가 있으니, 찾으려고만 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고, 여기에 자신이 고른 음악을 더할 수도 있으니, 음악은 우리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은 내가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릴 때가 많다. 우리 귀는 보는 것보다 많은 활동을 하기 때문인데, 가령 카페에 들어가도 카페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들을 때가 있으며, 방송을 보다보면 꼭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바탕에 깔려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내 상황에 맞는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더 자주 듣고 싶고, 또 그와 비슷한 음악을 찾아 듣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 많은 도움이 된다. 아니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찾으면 되고.


어디 음악뿐이랴. 우리 삶 많은 부분에서도 이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으면 좋을 때가 있다. 가령 마음이 우울할 때 가고 싶은 곳이라든지, 기쁠 때 함께 하고 싶은 존재라든지, 혼자 있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 등등.


많은 부분에서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으면 삶이 더욱 풍부해지지 않을까 한다. 내가 빅이슈를 읽는 이유도 이 중에 하나다. 책을 읽는데 다양한 분야 중에서 잘 만나기 힘든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빅이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빅이슈는 내 간접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평소에 만나지 못하는 부분을 만나고 싶을 때 읽는 책 목록에 빅이슈가 들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서 다룬 플레이리스트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내 삶에서도 나만의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내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도.


모두들, 이제 봄이다. 봄은 자연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하는 때다. 더불어 우리들 삶도 풍요로워졌으면 한다. 때로는 이렇게 빅이슈를 통해서 힘을 얻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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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가 바뀌었다. 269호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전에 268호를 썼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268호를 늦게 받게 되었다. 그래도 늦게라도 보내주어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한 호 한 호 읽는 재미로 며칠을 보내기도 했으니, 중간에 이가 빠진 것처럼 한 호가 빠지면 무언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옛것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영어로 말하면 빈티지라고 하고.


  무조건 새것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옛것을 찾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옛것 중에서 쓸모 있는 물건이 많은데, 그냥 버려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또 주택가 근처 길거리에 보면 의류 수거함이 있다. 이곳에 자신들은 쓰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의류들을 집어넣으면 수거해 가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환경도 생각하는 일이다.빈티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한번 쓰고 버려지는 물품들이 줄어들테니, 지구 입장에서도 빈티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지금은 좋을 수밖에 없다.


빈티지라고 해서 낡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예전 유행에 조금만 손봐서 현대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빈티지 물품은 옛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것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그리고 환경에도 좋은 일....그야말로 이번 호에서 '바야흐로 빈티지의 시대'라고 했으니,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된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대다. 


어쩌면 이런 빈티지에 대한 글과 함께 표지모델이 된 홍자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몇년 전에 미스트롯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가수 아닌가. 무명 생활을 거쳐서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가수, 홍자.


트로트가 한물 간 노래라고 했던 시대에서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으로 다시 사람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가 되었으니, 트롯도 역시 빈티지의 시대에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번 호 내용인 빈티지와 표지모델인 홍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홍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많이 했다고 하니, 빅이슈의 취지와도 잘 맞고... 여러모로 이번 호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계속 다른 쓰임으로도 쓰여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따스한 그런, 좀 늦었지만 빅이슈 268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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