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다. 불편이라는 말 자체가 편하지 않다는 말이니, 편하지 않은 상태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불편함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나 혼자 살아가도, 내 멋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 불편한데, 남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는, 그야말로 불편함들이 연속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불편함을 모조리 편안함으로 바꾸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만들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모든 불편함을 제거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최소화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불편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상태가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이번호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호 기획기사가 '모두의 길을 위해, 장애인 이동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전국장애인차별 철폐 연대에서 지하철 출근 투쟁을 했다. 출근을 하는데 그들은 투쟁이어야 한다. 투쟁? 싸움이다. 왜? 장애인들이 제대로 출근을 할 수 없으니까.


그들의 출근 투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뉘었는데... 우리는 몇십 분, 또는 몇 시간 불편하지만, 이 분들은 평생을 불편하게 살아왔으니, 우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분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왜 출근시간에 이런 투쟁을, 그것도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하느냐며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 비난할 문제일까?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고, 비장애인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문제라도 장애인들에게는 생활을 할 수 없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사회의 수준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개선을 해달라는 요구에 동참은 못해도 지지는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지지는 하지 않더라도 비난은 하지 않아야 함께 사는 세상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빅이슈에서 이런 장애인 출근 투쟁을 다룬 사실이 빅이슈 답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싣는 일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불편해서 다른 사람이 더 편해진다면 그런 불편은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한다.


장애인 출근 투쟁과 겹쳐 지하철(전철)에 있는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떨 때 보면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그것도 남자들이 그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임산부가 없으니, 타면 비켜주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나 본데, 본래 비어 있는 자리와 앉아 있는 사람이 일어나 앉으라고 하는 것은 차이가 난다.


그러니 비워두는 불편함. 그것은 임산부의 편리를 고려한 내 불편함일 뿐이다. 여기에 왜 임산부 자리가 기존 자리와 넓이가 같을까 하는 의문. 보통 지하철(서울을 기준으로) 한 줄에 7명이 앉을 수 있다. 그 자리의 맨 끝에 임산부 배려석을 두었는데... 가운데 다섯 명이 앉는다. 비좁다. 임산부는 행동반경이 더 크고, 좀더 쾌적하게 앉아가야 하지 않나.


그러면 임산부 배려석이 있는 칸은 총 좌석 수를 6석으로 하고, 임산부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넓이를 다른 사람의 1.5배로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할텐데... 그냥 기존 좌석에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표지만 달 게 아니라... 좀더 넓은 자리라면, 비워두었을 때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기에 망설여지지 않을까 하는데...


마찬가지로 장애인 주차구역도 그렇다.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는 사회라면 굳이 표시를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주차하지 않고 좀 멀리 대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텐데... 그런 생각...


내가 조금 불편해야 다른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조금씩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회... 쓰레기통까지 가는, 반려동물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질서를 지키는,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등등의 불편함...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모두의 편안함으로 가는 길이다.


빅이슈 274호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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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꽃 2022-05-07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도 디스토피아와 다르지 않은 거 아닐까 합니다ㅜㅜ

kinye91 2022-05-07 10:59   좋아요 1 | URL
그래요. 내가 조금 불편해질 수 있는 것도 여유 있는 마음 아닐까 해요. 유토피아는 마음의 여유에서, 디스토피아는 여유 없음에서 오지 않을까 해요.
 

  사람이 큰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늘 남 앞에 나서면서 살 수도 없다. 남 앞에서 큰소리치고, 큰일을 한다고 하고, 앞서가는 사람들만 있는 세상이 과연 행복할까?


  세상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더 잘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세상에서,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너희들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핍박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핍박을 하는 사람들, 저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남들, 그것도 꼭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에게는 내지 말라고 하고 있는 현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사는 세상. 드러내지 않아도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세상. 또 티나지 않아도, 별로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도 그냥 자신은 해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데... 이미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들 소리만 더 잘 들리는 세상은 아닌지 그런 의구심이 드는 요즘이다.


비행기... 인류가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준 도구. 세상을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엮이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기구.


하루면, 적어도 24시간 내외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가 있게 된 세상에서, 그 비행기로 인해 지구는 얼마나 힘들어졌을까 생각도 하는데...


비행기 타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 굳이 비행기만이 아니더라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생각하면서, 그 피할 수 있는 피해는 피하려고 하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할 뿐. 함민복 시집을 읽다가 '하늘길'이라는 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하늘길


비행기를 타고 날며

마음이 착해지는 것이었다


저 아래

구름도 멈춰 얌전


손을 쓰윽 새 가슴에 들이밀며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놀랄 것 없어 늘 하늘 날아 순할

너의 마음 한번 만져보고 싶어


새들도 먹이를 먹지 않는 하늘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나라 가는 길이라

차마, 하늘에서, 불경스러워, 소변이나 참아보았다


함민복,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 2013년 초판 7쇄. 98쪽.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착한 일...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오월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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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폐양어장 길고양이 학대 사건을 다룬 글도 있고, 책에 대한 글, 돌봄에 대한 글도 있다.


  돌봄에 관한 글은 사람을 돌보는 일도 있지만,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돌봄도 있으니, 이번 호를 읽으면 이런 돌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본 호를 관통하는 말은 돌봄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돌봄=연대.


  돌봄이란 일방적일까? 일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돌봄은 양방향일 때가 더 많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경우는 없다. 베풀면서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돌봄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사랑이다. 로맨스라고 하는 것. 로맨스는 일방일 수 없다. 


사랑, 즉 로맨스는 양방향이다. 혼자만이 줄 수는 없다. 함께 할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번 호 표지는 소설로, 웹툰으로도 나온 '상수리나무 아래'를 소개하고 있다.


소설을 읽지도 웹툰을 보지도 못했기에 무어라 말하기 힘들지만, 이번 호에 나온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사랑이 돌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서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그 상처를 보듬고, 상처를 딛고 좋아지는 과정. 이렇게 사랑은 완벽한 남과의 만남이 아니라 만나면서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사랑은 돌봄이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 이 사랑이 사람에게만 해당할까?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 모두에게, 또 동식물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도 해당이 된다.


이렇게 나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일. 그런 사랑, 내가 돌보고, 또 다른 존재들이 나를 돌보는 일. 그런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빅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빅이슈]를 구입해 보는 일이 일방적이 아니라 양방향적이다. [빅이슈]를 통해 얻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또 생각하지도 못했던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 일... 이번 호에서 언급한 2020년 임금근로일자리 월 소득 중간 값, 즉 중위소득 금액... (49쪽) 242만 원. 이 숫자가 사랑과 돌봄과 연대를 함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42만 원.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숫자. 그러나 생각해야만 하고, 알고 있어야만 하는 숫자. 왜냐하면 이 중간 값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돌봄이라는 말이 시혜라는 말을 연상시킨다면 '연대'라는 말로 바꿔 이야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게 한다.


'사회 연대는, 나도 힘들지만 내 눈길 밖에는 나보다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과장된 빈곤감, 무리한 자기 연민은 여유 있는 이들이 소득을 갹출해서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만들고, 그래서 계층 하락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어 다시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시도에 나설 용기를 내게끔 하는 복지의 선순환 구조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성현석, 월급에 대해선 겸손하지 말자. 51쪽)


이 말을 확장하면 바로 사랑은 돌봄이고, 연대다. 나홀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활동, 이것이 바로 사랑, 돌봄, 연대다. 이들은 결국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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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는 '차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커피숍을 찾기는 쉬운데, 찻집을 찾기는 어려운 게 현실.


  소수의 사람만이 차를 마신다고 생각했는데, 또 차를 마시기는 어렵다고 (절차, 과정 등등이) 생각했는데, 이번 호를 읽으니 차를 마시는 사람도, 또 다양한 차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이제는 취향이 다변화되었고, 자신의 취향을 살려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 카페, 커피숍이 이리 늘었을까? 음료 시장도 이렇게 단일화되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음을, 이제는 남들이 한다고 우~ 하고 몰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었음을 알게 해주는 이번 호였다.


차는 빨리 마실 수가 없다. 우선 물을 끓이고 우러나는 시간이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겠지만 후르륵 마셔버리면 차 맛을 알 수가 없다.


적당한 온도에서, 적당한 양으로 천천히 우려낸 다음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음료가 바로 차다. 그런 시간, 기다림의 시간과 함께 하는 음료, 차.


(그렇다고 커피가 빨리빨리의 대명사라는 말은 아니다. 커피 역시 적당한 온도, 적당한 시간과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는 차에 대한 이야기니, 커피와 대조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차를 마실 때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름을, 빨리를 잠시 내려놓고 천천히, 여유로움을 내 곁으로 가져온다. 그렇데 우리 삶에서 누리는 기다림, 그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대상, 그것이 바로 차다.


삶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여러 과정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여러 과정, 여러 존재들이 필요하다. 


그것을 뭉뚱그려 그냥 하나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 나를 들여다보믄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빨리빨리에서 탈피하고 있지 않은가.


초고속성장이라는 말 속에는 빨리빨리가 숨어 있었는데, 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만큼, 우리 삶에도 여유로움이 생겼으면 좋겠다.


[빅이슈]를 읽는 시간이 내게는 바로 그런 빠름에서 벗어나 여유로움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이번 호를 받아보았을 때 커버 사진이 A와 B로 나뉘었다. 


아마도 내용은 같겠지만 표지 사진이 다르다.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위에 있는 표지 책만 나와 있다.


내게 온 이 사진이 있는 빅이슈는 검색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첨부한다. 적어도 빅이슈를 위해서 표지 모델에 되어준 인물에 대한 예의는 그 책을 다룰 때 함께 언급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빅이슈에 표지모델이 되어 준다는 것 자체도 삶에 여유로움을 가졌다는 이야기 아닐까.


그리고 이번 4월에는 고 보리 작가를 추모하는 글이 있다.


[빅이슈]에 유명인이 표지 모델이 되는 계기를 마련한 작가라고 한다. 지금은 함께 할 수 없지만, 빅이슈는 그 고마음을 잊지 않고 4월에는 그 작가를 언급한다.


이 역시 빨리빨리에서 벗어난, 고마운 사람, 그리운 사람을 잊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 아닐까.


그래, 차를 마시는 행위처럼, 기다릴 줄도 알아야겠다. 기다림의 즐거움도 느껴야겠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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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 민족이라는 말이 옛날 말이 되어가고 있다. 다문화란 말이 자주 들리고, 이제는 어디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된 사람들.


  그러니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 하긴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우리나라 과거에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음이 역사적 사실이니...


  하지만 아직도 단일민족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물론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핏줄을 의미하지만, 어디 민족의 개념이 핏줄로만 규정되는 개념이던가.


  오래간만에 재미 있는 시집을 만났다. 이동순이 쓴 [신종족]. 그렇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들이 현대에 들어서 수도 없이 생겼다. 한때 이들을 신인류라고 일컫기도 했지만, 신인류라는 말로 뭉떵그릴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신인류를 좀더 세분하면 바로 이 시집에 나오는 '신종족'들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신종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신종족이 있는지, 이 시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읽으면서 나는 이 시집에 나온 어느 종족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하면, 당신은 또다른 종족이다.


이렇게 많은 종족들이 살아가는 사회, 다문화 사회를 넘어 다민족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다민족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다종족 사회라고 하면 되겠다. 


이 시집을 읽으며 다양한 종족들을 만나보자.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명심하자. 어떤 종족들이 나오는지, 이 종족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번 시험해 봐도 좋을 듯하다.


'~족'이라는 제목을 달지 않은 시가 '혼족 스타일 (이 시 제목에는 혼족이 들어가니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압구정 풍경(한때 오렌지족들의 삶터였던), 이불 밖은 위험해, 소확행' 이렇게 4개의 시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혼족, 혼밥족, 혼술족, 포비아족, 솔로족, 박쥐족, 빨대족, 니트족, 코쿤족, 캥거루족, 싱크족, 딩펫족, 골드앤트족, 뷰니멀족, 딩크족, 웰빈족, 거품족, 키덜트족, 홈루덴스족, 히키코모리족, 오팔족, 미스터리족, 프리터족(두 번 나온다), 갓수족, 반디족, 김포족, 베짱이족, 메뚜기족, 유턴족, 노노족, 점오배족, 둥지족, 면창족, 새벽닭족, 눈팅족, 몰카족, 파라치족, 악플족, 철퍼덕족, 된장녀족, 고스족, 폭주족, 좀비족, 오렌지족, 댓글족, 먹튀족, 스킨헤드족, 스몸비족, 쉼포족, 통크족, 에스컬레이터족, 엄지족, 쿼터족, 펌킨족, 귀차니스트족, 줌마렐라족, 한류족


에고, 족들도 만다. 이렇게 많은 종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다양성이 판치는 사회, 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사회다. 이 많은 종족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족들은 함께 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성의 사회라 할 수 있다. 각자 따로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가 이 시집 첫번째에 실린 시다. 바로 '혼족'


  혼족


세상은 점점

고립이고 단절이다

어머니 뱃속에서도 홀로였고

살다가 죽을 때도 혼자다

가족 학교 직장

사회 조직들과 공동체 많고도 많지만

모두가 혼자 아닌 척

잠시 모여 있을 뿐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된다

혼자 살면서도

외로움 타지 않고

씩씩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혼족을 본다

혼자 노는 혼놀족

혼자 밥 먹는 혼밥족

혼자 술 마시는 혼술족

혼자 설 명절 보내는 혼설족

혼자 캥핑하는 혼캠족

혼자 여행 다니는 혼여족

혼자 공연 보러 가는 혼공족

혼자 카페에서 책 읽는 혼독족

혼자 커피 마시는 혼커족

혼자 호텔에 머무는 혼텔족

혼자 맥주 마시는 혼맥족

혼자 영화 보는 혼영족

만국의 혼족들이여

단결하라


이동순, 신종족. 시와에세이, 2021년. 13-14쪽.  


자, 이 많은 혼족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라고 한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빌려온 마지막 말이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이 다양한 종족들도 함께 살아가야 함을, 혼족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따로 살아가지만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니 따로 또 같이, 그런 삶을 이 종족들이 실천하는 사회, 그런 우리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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