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냐 개혁이냐

 

장마라는 핑계로

땀에 절은 옷들을

통에만 담가 두니

입을 옷이 없어져 간다.

 

빨아야지

세탁기에 넣다 보니

한 번에 들어가지도 않고,

여러 번 빨더라도 널 곳이 없다.

난감하게 세탁기 앞에 서 있는데,

 

혁명이냐 개혁이냐,

해묵은 논쟁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는다.

빨래처럼 제 때 빨면

그것이 개혁인 것을,

 

할 일이 묵히고 묵혀

쌓이고 쌓여 터지면 혁명임일,

개혁을 미룬 결과가 혁명임을,

돌아가는 세탁기에도

남아 있는 빨래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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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짝사랑

 

무더위에 지친 몸을

씻어주는,

대기를 청정하게 하는,

마음을 맺어주는,

너무도 아름다운

열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순 · 간 

이젠

내 곁에 있지 않는

내 맘 속에만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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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자투리 원단

 

작은 소품을 만들기 위해

자투리 원단이 필요하다는 아내와

함께 간 광장시장.

 

다양한 자투리 원단을 모아

연습도 하고 소품도 만들 기대로 갔는데

이런, 자투리가 짜투리가 아니다.

 

시장의 자투리는 네 마.

옷은 물론이고 이불도 만들 수 있는 크기

그래도 시장은 시장이라서

흥정을 하면 두 마, 한 마로도 판다.

 

필로 팔다 남은 조각이

네 마 자투리가 되어 소매상에게로

다시 두 마, 한 마로 보통 사람들에게로,

누군가의 쓸모 없음이

누군가의 쓸모 있음이 되는

광장시장의 자투리 원단.

 

대기업이 하청을 주면

하청은 재하청을, 재하청은 재재하청을 주어

위가 아래를, 아래가 더 아래를 쥐어짜

대기업은 잘되지만 중소기업은 힘든

독과점 경제와는 다르게,

자투리 원단은 이렇게

상생의 경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원단이 자투리를

자투리가 짜투리를 낳고 있음을,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경제를,

낙수효과를,

아내와 함께 간 광장시장의

자투리 원단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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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만이라도

 

   네덜란드의 한 소년은 둑에 물이 새자 나 하나만이라도 하고 손으로 구멍을 막았다는데, 세상, 작은 구멍에 나 하나쯤이야와 나 하나만으로도는 커다란 차이가 나는데, 땅이 잠길 위기를 구한 소년은 세계의 귀감이 되어 이곳 저곳에서 배우자고, 본받자고 이야기가 되어 퍼지는데, 아직도, 아니, 단 한 번도 나 하나만이라도라고 생각해보지도 않고 왜 그래야 하는지 고민도 해보지 못한 생각없음의 전형들은 나 하나쯤이야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아니 모두를 그 고귀한 생명을 갉아먹음도 알지 못하고 그냥, 뭐, 나 하난데,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고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주체성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어두운 길, 질퍽한 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성찰할 수 있는 사람, 나 하나만이라도라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 그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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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히말라야 산맥과도 같습니다.’

광고 천재 이제석에 나오는 말.

지상에 발 디디고 사는 인간이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설치한

계단이 누구에게는 상승의 도구가

누구에게는 극복의 대상이 된다.

 

아무렇지도 않던 계단을

다리가 좋지 않아 힘들게 오르내리며

계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두려움으로 한 발 한 발 오르내리던,

청년 시절 하나씩은 시원찮아 두세 개씩

한꺼번에 가뿐하게 뛰어 오르내리던,

나이 들어 왕성한 혈기 사라지고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어

차분히 하나씩 오르내리게 되던,

그러다 병들거나 더 늙으면 다시

한 발 한 발 힘겹게 오르내리는 계단.

 

계단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2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높이에 벌벌 떨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계단 위로 계속 오르려 하고

계단 위에서 계속 버티려 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내려와 땅에 설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나이 듦이 계단 오르내리기를 통해 알려주는데,

한사코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것이 보수?

 

아니, 그것은 수구 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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