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행성 환상문학전집 6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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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행성이다.


외계에서 온 사람들이 정착한 행성에서 외인으로 살아간다.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외계에서 온 이들도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들은 사람이고, 다른 존재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렇다고 서로 전쟁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다른 공간에서 살아갈 뿐이다. 서로의 도시를 방문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같은 행성에 살지만 다른 존재들. 이들에게 가알이란 종족이 침략해 온다.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가알들은 도시를 파괴하고, 약탈하고, 남자들을 학살한다.


처음에 외인과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연합해서 가알을 막으려 했지만, 외인과 만나는 여인 롤레리로 인해서 동맹이 깨지고 만다. 그리고 가알들의 침략에 속수무책.


원주민들의 도시는 파괴되고, 그들을 외인들이 받아들여 피신하고, 함께 싸운다. 혹독한 겨울추위로 가알들이 물러가고, 이들은 도시를 지켜낸다.


단순히 전쟁 소설로 읽을 수 있지만, 아가트와 롤레리를 중심에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외계에서 온 존재도 사람,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도 사람. 피부색이 다르고, 생각과 행동이 다를지 몰라도 이들은 모두 사람이라는 사실. 가알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도 사람이다.


그러니 이 행성에서 살아갈 존재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서로 다른 종이라고, 이종교배가 불가능하다고 지금까지 여겨왔던 사고방식이 소설 뒷부분으로 가면 변하게 된다.


이 행성에서 살아가면서 이들은 이종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그래서 함께 살면서 자손을 낳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 이주한 행성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들의 우월한 기술을 포기하고,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통해서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만 함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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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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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상자]


정말 눈물을 모아 놓은 상자가 있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눈물은 감정을 표현하는 대상이다. 감정 표현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눈물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의도적으로 감추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다.


하지만 눈물에도 종류가 있다. 악어의 눈물이라고, 거짓 눈물도 있지 않은가. 눈물로 자신의 감정을 가장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는 사람도 있으니...


순수한 눈물은 이런 가식을 넘어서는 눈물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눈물. 순수한 눈물은 아무 것도 없는 눈물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있는 눈물이다.


눈물 상자의 주인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네 눈물에는 더 많은 빛깔이 필요한 것 같구나. 특히 강인함 말이야. 분노와 부끄러움, 더러움까지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그렇게 해서 눈물에 어린 빛깔들이 더욱 복잡해질 때, 한순간 네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 될 거야.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 물감이 되지만, 여러 색깔의 빛을 섞으면 투명한 빛이 되는 것처럼." (64쪽)


이런 눈물의 주인공을 만나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세상이겠고.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눈물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순수한 눈물은 많은 것을 최선을 다해 행했을 때, 정말 다양한 감정들을 자신 속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만들어진다.


순수한 눈물이 어떤 눈물일까?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 (17쪽)


이런 눈물을 지닌 사람은 세상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세상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다. 어떤 가식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리는 눈물. 이 동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의 눈물이 순수한 눈물이 아니다. 순수한 눈물은 그 단계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세상에 나와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많은 것을 경험한 상태에서 자신 마음 속에서 응결된 눈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눈물이 메말라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눈물은 넘쳐나는데 악어의 눈물처럼 형식적이고 꾸민 눈물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순수한 눈물, 나와 다른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순수한 눈물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눈물들조차 말라버린 세상이 아닐까 한다. 눈물 한 방울에도 남을 의식하며 사는 세상은 행복하지 않는 세상이다.


더군다나 남을 의식해 억지로 흘리는 눈물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눈물이 아니라 순수한 눈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눈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눈물이 필요하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정치인들 눈물이 생각났다. 눈물까지 흘리는 정치인은 별로 없지만, 사과는 밥 먹듯이 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정말 이 동화에서처럼 눈물 상자가 있다면 눈물을 꺼내서 주고 싶다. 그들에게도 진정한 눈물이 필요할테니... 꼭 정치인만은 아니지. 어른들에게도 이 눈물 상자가 꼭 필요하겠단 생각을 한다. 눈물 상자 없이 자연스레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 그런 환경이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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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태양꽃 어른을 위한 동화 16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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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동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동화인데... 어른들이 읽고 많이 생각하길 바라는 동화다.


이름 모를 꽃이 힘들게, 땅을 뚫고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찬란한 햇빛과 따뜻한 바람, 그리고 반겨주는 존재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어둡다. 처음 나온 세상이 이리 캄캄하다니. 암담하다. 이때 담쟁이가 희망을 준다. 너도 곧 햇빛을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지만 담쟁이는 저 멀리 홀로 먼저 나아간다. 담쟁이에 비하면 너무 늦게 자란다. 도무지 자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러다 어느날 꽃을 피웠다. 꿀벌이 날아든다. 그런데... 세상에 아름다워야 할 꽃잎이 투명하단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단다. 절망이다. 이게 뭐람.


무언가 억울하다. 왜 나만 그러냐고? 상처를 받는다. 꿀맛이 변한다. 독성이 생긴다. 마음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독기가 꽃에도 배었나 보다. 이제는 홀로라고 생각한 순간, 저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겨우 흙을 간신히 뚫고 나온 싹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그래 나도 살아가야할 소중한 존재다. 저란 싹도 흙을 뚫고 나오려고 그렇게 노력하는데... 어느 순간 다시 꿀맛이 살아난다. 그러다 이름을 얻는다. 태양꽃. 비록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버리지만 이름이 있다. 존재 의미를 깨달았다. 공연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기에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이렇게 동화는 끝난다.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세상은 너무도 험하고 무서운 곳일 수 있다. 함께 가면 좋겠는데, 저마다 자기 속도로 가고 있다. 자기 속도가 무엇인지 깨달으면 좋으련만, 앞서 가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비교가 된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그럼에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다. 그 성과에 만족하면 좋겠지만 내 성과는 너무도 보잘 것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니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면서 이 비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소위 '엄친아(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존재들에 비하면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 내 성과는 성과도 아니다. 좌절한다.


이런, 하지만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인데도 희망을 지니고 있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만족한다. 그에게는 비교는 없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끄럽다. 왜 비교를 하는가. 나는 난데. 나는 나대로 살면 되지 않나. 나는 내 속도대로 나아가면 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다. 뱁새는 뱁새 나름의 삶이 있고, 황새는 황새 다름의 삶이 있듯이 이렇게  다른데, 왜 같아지려고 할까? 왜 같아지지 못해 슬퍼하고 분노해야 하는가. 세상은 다름으로서 더 풍요로워지지 않는가. 그렇다. 나는 나다. 나는 내 삶이 있다. 어느 순간 분노와 슬픔으로 뭉쳐있던 마음과 몸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주변이 다시 보인다. 그러니 주변에 있던 존재들이 내게 다가온다. 이 다음부터는 나는 나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런 이야기다. 비교,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저지르는 잘못이다. 존재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비교 대상을 정하고 비교한다. 그래서 내 삶의 잣대가 내가 되지 못하고 남이 된다. 남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삶이 행복할까?


[내 이름은 태양꽃]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내게는 내 삶이 있으니 내 삶을 찾아야 한다고. 근데 이미 세상을 많이 살아온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이 책이.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고 비교를 멈추어야 한다고 한다면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자, 당신 어렸을 때 생각해 봐. 남들과 비교하면 좋았어?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고 남들이 하라는 일을 해서 행복해? 당신 아이들에게도 당신과 같은 그런 삶을 살게 할 거야? 이런 질문을 하면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으면 자기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대할 수 있다. 아니 다르게 대해야 한다. 아이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하기 위해 지켜보고 도와주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이 이 동화를 읽는다면 맞다, 이 동화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아이들이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면 더 좋을 동화이기도 하지만... 권정생의 [강아지똥]과 일맥상통하는 동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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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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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집을 읽다. 읽으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렇게 관계가 미끌어질 수도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소설 인물들은 서로 어긋나 있다. 가족이든 아니든, 그들은 단단하게 엮여있지 않고 살짝 어긋나 있다. 그래서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내고 있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런 관계를 맺고 있으니, 현대인들의 삶이 이렇게 서로 관계를 맺고 있되, 최소한의 관계이고, 언제든지 어긋나고 틀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읽다 보니 '파란 돌'이란 소설은 [바람이 분다, 가라]에 나오는 인물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름은 다르고 설정도 약간 다를지 모르지만, 분명히 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 가라]에 나오는 상황에서 한 장면을 이 소설에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왼손'이란 소설을 읽으면 분열된 자아를 지닌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밖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 일치하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그런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하나로 정리해서 표출하고 있다.


그것이 사회생활을 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하는 요소가 된다. 적당한 가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기. 그러나 언제까지나 자신을 그렇게 억눌러 놓을 수는 없다. 자신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내면에 감춰져 있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이 관계를 파탄낼 수도 있고, 또 더 돈독한 관계를 맺게 할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소설집에 실린 '왼손'이라는 소설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지냈던 사람에게서, 더이상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관계를 파탄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살더라도 이미 관계는 파탄나 있음을 부부관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사회에서 용인되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던 요인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데 있었는데, 왼손을 통해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사회적 관계마저도 파탄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융합해야 하나. 나란 인간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존재인데, 그 복잡성을 조화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제목이 된 노랑무늬영원은 상처받은 사람이야기다. 상처를 받았지만, 어떻게 그 상처를 딛고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고 지내게 되는데, 그때마다 좌절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손을 쓸 수 없다? 이는 참 어려운 상황이다. 손을 쓰지 못하니, 가정 생활에서도 사회 생활에서도 문제가 많고,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그림 그리는 일에는 더더욱 전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나야 하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아니다. 그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제목이 노랑무늬영원인데, 무슨 뜻인가 했더니 도마뱀 이름이다. 도감에는 독을 품고 있는 도마뱀이라는데, 소설 속 또다른 인물인 아이는 독이 없는 도마뱀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발이 짤렸지만 어느 순간 다시 발이 돋아나는 도마뱀. 노랑무늬영원. 이 노랑무의에서 햇살을 생각하게 되고, 또다른 화가의 그림,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비쳐나오는 빛들을 통해서 주인공은 다시 살아갈 것이다.


상처가 깊고 회복 불능이 되나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읽으면서 젊은 시절 일화가 삽입이 되고, 그 다음에 도마뱀 이야기와 늙은 화가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나뭇잎에 가려져 있지만 햇살은 그 사이를 뚫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설은 그래서 절망에서 희망을, 상처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게 된다.


나는 입술을 물고, 선잠에 새겨졌던 낯선 꿈을 되짚어본다. 내 두 손목에서 돋아난 투명하고 작은 새 손, 열 개의 투명한 손가락들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내 팔뚝에 새겨진 선명한 노랑무늬가 신비해 팔을 들어 올렷다. 해를 등진 잎사귀들처럼, 내 팔뚝이 투명한 레몬빛이 되었다. (295쪽)


이렇게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 상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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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김태연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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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시집이 있을 뿐이다. [입 속의 검은 잎] 


그 밖에 산문집도 나왔고, 전집도 나왔지만, 기형도를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 작품은 바로 이 시집이다. 시들이다. 그래서 기형도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이 주는 암울한 분위기, 읽으면서 자꾸만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런 시들. 하지만, 그 시들을 통해서 기형도를 잊지 않게 된다.



이 책은 기형도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일들은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소설이라기보다는 기형도에 관해 친구가 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시절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전개된다. 당연하다. 연세문학회에서 만난 기형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형도의 과거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만난 기형도 이야기를 한다.


문학회에서 만나 기형도가 죽기 전까지 만나왔고, 함께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래서 기형도를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 기형도, 참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좋은 시인'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좋은 시인. 유명한도 아니고 훌륭한도 아닌 좋은, 그렇다.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좋은가. 그는 말 그대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지닌. 그리고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공부도 너무 잘하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 지니고 있던 깊은 상처. 그 검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몸에서는 병을 간직하고 지냈던 사람. 불의의 죽음으로 전설이 된 시인. 그 시인과의 만남과 이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전설이 된 기형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회를 살아갔던 살아 있는 인물이었던 기형도를 만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기형도의 시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결국 기형도를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이라 그렇겠지만, 그래도 (양력과 음력을 모두 떠나서) 기형도가 좋아했던 시인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날이 2월 16일인데, 기형도가 태어난 날이 2월 16일이라니... 윤동주의 죽음도 20대, 기형도도 20대에 세상을 떴으니, 이런 우연의 일치가... 이 소설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소설적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일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중 인물인 허승구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기형도.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기형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기형도라는 사람, 시인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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