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 김동식 소설집 6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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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었던 김동식 소설은 기발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발상이 특이했고, 내용의 전환도 예상하지 못하게 일어났고, 결말 역시 새롭단 느낌을 주었다.


결코 길지 않은 소설들. 그리고 일상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일상에서 겪음직한 일들이 소설에 나왔는데...


이번 소설집은 좀 결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기발한 발상이라기보다는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내용들이 소설로 쓰였다고나 할까.


책 제목이 된 소설 '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는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고... 물론 소설에서도 매트릭스를 언급하고 있으니, 읽는 사람은 두 작품을 연결지으면서 읽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연결고리를 찾으면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을 들 수 있다. 


꿈 속에서 나비를 쫓는 것이 장자인 내가 꾼 꿈이냐, 아니면 나비가 꾼 꿈이냐 하는, 그런 현실과 꿈이 명확히 구분이 안 되는 상태. 이 소설 '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는 바로 그런 상태를 소설로 썼다고 할 수 있다.


영원히 잠들어야 하는 사람, 절대로 깨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 한 명 있고, 그 사람의 잠 속에서 인류가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내용 전개.


이 소설과 '스위치 하나로 바뀌는 내 세상'이라는 소설은 기존 김동식 소설의 틀을 따라가는, 상상으로 현실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는데, 나머지 소설들은 공포물이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 사건이 이 소설집에 많이 등장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나게 만든 소설들이 많은데...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통해서 인간들이 지닌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평생 안 가지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면?'이라는 소설, 우리가 흔히 한 번쯤 생각해 본 문제 아닌가. 이런 질문은 당신이 무인도에 간다면 꼭 가져가고 싶은 물건 세 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통하는데...


사람이 안 먹고 살 수는 없는데, 평생 단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도대체 어떤 음식을 선택할까? 평소 자신이 먹고 싶어했던 음식을 선택할까? 아니면 건강을 생각해서 선택을 할까? 아님 자신이 평소에 자주 먹던 음식을 선택할까?


소설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질문이 실행이 되려면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환경을 도박에 빠진 사람, 또는 돈이 꼭 필요해서 자신과 교환한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그렇다. 돈 또한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니, 돈과 음식을 교환한다는 발상은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라는 말과 같다.


돈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단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며 살아가려는 사람과 같다는 발상이라고 해야 할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을 선택하는데, 소설에서는 사람을 선택한 사람이 나온다.


사람을 선택했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람을 먹어야 하니, 결국 돈만 추구하다가는 사람을 죽이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포물을 겸비한 비현실적인 발상이지만, 그런 발상과 전개를 통해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돈과 같은 한 가지에만 매달려서는 결국 자신도 제대로 살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관계다. 그리고 관계는 자신이 만들어간다. 그렇게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고 주어지기를 바라면 삶은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목격자'라는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래서 '스위치 하나로 바뀌는 내 세상'에서는 스위치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결국은 자신이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집 끝에 실린 이 소설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들을 맺고, 다양함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런 다양함 속에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은 결국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그런 관계 맺기를 만들어주는 스위치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음을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 있다고 본다. 자, 나도 마음 속 스위치를 내 스스로 작동시켜야겠다.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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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건너는 집 특서 청소년문학 17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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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자신이 살고 싶은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시기란, 현재 겪는 어려움을 해결한 시기 또는 과거로 돌아가 해결할 수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아니고 현재가 만족스럽다면 현재를 택하면 된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시기를 택하겠는가? 가끔 과거로 돌아간다면? 아니면 지금을 건너뛰고 미래로 간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드는 생각이다. 이 소설은 그런 기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총 4명의 학생이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선택되었다. 선택된 이유는? 현재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학생들이 기회를 얻었지만, 학교 밖 청소년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겪는 일이 비슷하고,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 한 명도 학교 밖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겪는 폭력의 피해.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상황. 가해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데 피해자가 오히려 못 견디고 학교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 하지만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 죽음을 앞둔 엄마. 가족의 생활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 여기에 아들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의 삶만을 추구하는 듯이 보이는 엄마를 둔 아이 등등.


소설은 이렇게 청소년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상정하고, 그들이 모여 함께 네 달을 지내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시간의 문이다.


12월 31일이 되면 현재-과거-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기회를 얻기 위해선 그들은 일주일에 세 번은 자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집(시간의 집)에 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12월 31일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최종 선택을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


왜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집에 와야 한다고 했을까? 그것은 다양한 청소년들이 서로 만나가면서 마음을 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이 함께 지내다보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고,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이 모두 집에 모이면 시간은 정지한다. 그리고 이들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무엇을 해도 된다. 어차피 밖의 시간은 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 늘 네 명이 모일 수는 없다.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네 명이 며칠만에 신난다 하면서 함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이 짊어진 각자의 짐은 너무도 무겁다. 이 짐들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일주일에 세 번... 조금씩 만나가면서 투덜대면서, 갈등하면서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간다. 자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도 눈에 들어온다. 공감을 할 수 있는 마음이 열린다.


밖으로는 닫힌 시간이 안으로는 열린 시간이 된다. 이 열린 시간에 집에 모인 아이들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관계. 그런 관계가 청소년기에 필요함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돌발적인 사건으로 한 명이 떨어져 나간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연장선에 있는 행동이 사회에서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이 된 것이다. 그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인물. 조금씩 바뀌어 왔던 마음이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더 돌아보게 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비록 시간을 선택할 기회는 잃었지만. 


그리고 선택의 시간... 


남들에 의해 휘둘림을 당했던 인물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다. 편한 길이 아닌,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길을. 가장 모범적인 아이 역시 자신이 가는 시간을 선택하고... 각자 자신이 선택한다. 남들의 판단이 아닌 자신의 결심으로.


선택을 하면 이들이 함께 지낸 시간이 기억에서 지워진다고 한다. 잊혀질 것을 알면서도 만나는 관계. 머리 속에서는 잊혀지겠지만 마음 속에는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바로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과정을 모두 기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음 한 켠에 무언가가 남아 있어, 그것이 청소년들의 삶을 이끌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이 소설에서 기억을 지운다는 의미는 바로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겠다.


잊었지만 남아 있는 어떤 무엇. 또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 그것이 바로 청소년기에 겪는 일들이다.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고민을 하고, 또 일탈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 서로 마음을 열고 함께 하면서 남에게서 주어진 삶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모습. 그런 모습이 소설에서 시간의 문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제목이 '시간을 건너는 집'이지만, 원하는 시간으로 무조건 시간을 건널 수는 없다. 소설은 네 명의 인물을 통해서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다만, 소설을 읽다보면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집. 또 그런 시간이 필요함을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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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0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

kinye91 2022-10-08 09: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10-07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2-10-08 09: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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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문학상이라는 상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다. 과학문학상이니, 작품들은 우리가 말하는 SF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최근에 SF소설들이 많이 발표되었고, 수준도 매우 높아져서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김초엽의 작품들이 그랬고, 그런 점에서 한국과학문학상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집 역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최근 SF소설 경향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또 이들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 하는 호기심. 총 6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대상 한 편, 우수상 한 편, 가작 네 편이 실려 있다.


각 소설들이 저마다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공간과 시간이 다를 뿐,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대상을 받은 작품인 서윤빈이 쓴 '루나'는 제주도 해녀들의 삶을 우주 밖으로 끌어왔다고 보면 된다. 제주도라는 섬에서 물질만 하다가, 육지로 나가고 싶어하는 해녀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좀더 넓은 세상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주 밖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해녀들이라는 설정으로, 그리고 그 해녀들 중에서 지구에서 온 사람을 구해준 결과 지구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는 과정이 전개되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렇게 선택되지 못했지만, 자신도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 이것은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모습이다. 서윤빈은 그러한 우리들의 욕망을 우주 밖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해녀들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김혜윤이 쓴 '블랙박스와의 인터뷰'는 김쿠만이 쓴 '옛날 옛적 판교에서는'과 김필산이 쓴 '책이 된 남자'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죽어가면서 자신의 기억을 다른 존재에 남겨 생명을 연장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면에서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블랙박스에 자신의 기억을 이식한 사람, 라디오에 이식한 사람 등등이 나오지만, 그들은 영원하지 않다. 왜냐하면 기계 역시 수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은 영생을 꿈꾸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이 된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책으로 자신의 기억을, 지혜를 모두 남겨 영생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불타 버리고 마는 책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우리의 기억만을 남긴다고 과연 그것이 영생일까?


소설 중에 '뇌'만 남겨 영생을 꿈꾸었던 사람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뇌만 남아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해도 과연 그것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책이 된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또 블랙박스로 이식된 자아 역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옛날 옛적 판교에서는'에서처럼 프로그램이 살아 있는 것처럼 등장하는, 소위 인공지능 시대에 그런 인공지능들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세 작품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람과 인공지능, 또 영생이라는 면에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성수나가 쓴 '신께서는 아이들을'은 좀 다른 결을 지닌 소설인데, 이 소설을 '윤회'의 관점에서 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죽고 태어남. 그런데 소설에서 다루는 죽은 존재들이 아이들이다. 이 세상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문제를 소설이 다루고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런 아이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인간들의 먹고자 하는 욕망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이 멍이 쓴 '후루룩 쩝쩝 맛있는'이라는 소설은 발상이 독특하다. 마치 김동식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의 혈관을 요리로 하는 외계인이라? 3등급 행성이 된 지구이기에 인간의 요리가 불법인 우주. 그러나 현지에서 공급하면 불법이 아닌, 그러한 법률의 구멍을 찾아 자신들의 음식을 지켜내는 외계인들.


먹고 먹어서 혈관에 쌓인 노폐물들, 그것이 맛있는 요리의 비결이 되니, 그렇게 외계인에게 자신들의 혈관을 제공하고, 인공 혈관을 달고 나온 인간들이 음식을 생각하면서 침을 흘리게 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장식 축산을 비판한다고 할 수도 있고, 자신들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먹어대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판한다고도 할 수 있는 소설.


이렇게 이번 수상집에 실린 소설들은 시간이나 장소가 환상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것이  SF소설들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겠지만, 발상의 독특함도 내용의 흥미진진함도 갖추고 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다음 수상작도 기대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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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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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소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보다 더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하다. 그만큼 현실에서는 우연이 겹치고 겹치고 무어라 앞뒤가 연결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지만 이유는 모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 일이 생긴 건지,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이와 반대로 일이 술술 잘 풀릴 때가 있다. '어? 왜 이러지?' 하지만 이유는 딱히 찾을 수가 없다. 그냥 잘된다.


이게 인생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데도 소설에서는 복선이다 암시다 뭐다 해서 인과관계가 명확하길 바란다. 잘 밝혀지지 않으면 개연성이 부족한 소설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할 때가 많은데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세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내용이 전혀 다르고, 한 곳은 서점이고, 한 곳은 편의점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좋은 쪽으로. 요즘같이 팍팍한 세상에서 소설마저도 팍팍하다면 삶은 더 견디기 힘들텐데, 다행히 이 두 소설은 팍팍한 삶을 위로해주고 있다.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부드럽게 우리들을 감싸준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이 소설의 공간인 편의점 밖 야외 테이블처럼... 이곳은 겨울에도 야외 테이블을 없애지 않는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앉았다가 갈 수 있는 장소. 동네 느티나무 아래 평상처럼, 그렇게 편의점 앞에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겨울이면 온풍기도 갖다주기도 하니, 그야말로 사람들 마음 쉼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니, 이 편의점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하나하나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꼬인 관계들을 풀어나간다.


풀어나가기 전에 먼저 자신을 열어야 하는데, 자신을 열 수 있는 공간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또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있고,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들어줄 사람, 이 편의점에 전직 노숙자인 '독고'씨가 들어온다. 곰과 같은 외양의 그.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사람들 말을 들어준다. 사람들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조건, 자신의 말을 적게 한다. 다행히 소설 설정으로 노숙 생활을 하면서 그는 말을 하는 법을 잊었다가 다시 회복하는 중으로 말을 더듬는다. 


그러니 말을 할 때는 상대보다 느릴 수밖에 없고 상대는 그보다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응어리를 토해내는 일. 그것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편의점과 관계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다. 당연하게도 모든 관계가 다 좋아지지는 않는다.


이때 관계를 맺을 때 주의할 사항은 바로 '편의점'이라는 곳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편의점은 이용하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편의점이다. 그렇다면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편하게 가게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


손님이 편리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조금 불편해지는 일, 그것이 편의점이 잘 되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해나간다면 관계가 파탄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가족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듣기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기. 들으면서 상대에게 공감하기. 그러면 상대도 마음을 열게 된다. 


열린 마음들이 관계를 맺으면 그 관계를 더 좋아진다. 처음에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감수했던 내 불편이 곧 편리함으로 바뀐다.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주인(점원)이 조금 불편해지면서 손님들의 편의를 살린다면, 다음에는 주인(점원)도 편리해지는 상호 편리의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주인과 점원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왜 이 편의점이 주인과 점원이 가족같은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는지는 소설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불편한 편의점]은 노숙인 출신 점원을 중심으로 불편이 어떻게 편리로 바뀌어 가는지, 관계를 맺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이 따스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더 좋고... 물론 소설 결말이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우연은 우리 현실에서는 더 잘 일어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불편한 시대, 이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면서 어떤 자세가 관계를 편리하게 하는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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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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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앞에 '해방자'라는 말이 붙었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방자를 썼다고 본다.


수많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는데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태는 이유가 뭘까? 이야기는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형이 된다. 변형된 이야기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신데렐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왕자에게 의존해서 잘 먹고 잘살았더라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지만, 굳이 신데렐라가 잘사는데 왕자와의 결혼이 필요할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결혼이 남녀의 동등한 결합이 아니라 한쪽에게 의존하는 결합이었던 시대와는 이야기가 달라져야 하니, 솔닛이 자신의 후대들에게 들려줄 신데렐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신데렐라 이야기는 나이가 든 아이들보다는 좀더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보다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아니면 그보다 좀더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한글을 익히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로, 한글을 익힌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게...


솔닛이 쓴 이 해방자 신데렐라는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다. 물론 들려줘도 좋다. 그렇지만 읽게 하면 그림을 볼 수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그 이야기책을 찾아 읽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를 글로 읽기도 하지만, 그림을 보면서 들은 내용을 떠올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는 책에는 삽화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나 사진을 꼼꼼하게 살피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젠더 관점에서... 교과서 삽화에 대해서 다양한 비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눈으로 본 그림, 사진들이 학생들에게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도 중요하다.


솔닛이 다시 쓰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삽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런 점에서 당연하다. 솔닛은 고민을 하다가 아서 래컴의 그림을 보고 아, 이거다 했단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이 점까지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 본다.


'실루엣을 이용했기 때문에 다른 이미지처럼 인종이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느껴지지 않습니다'(46쪽)

'래컴이 실루엣으로 그린 소녀의 기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데렐라는 누더기 옷을 입었지만 활기가 넘치고 씩씩하게 노동을 하고 진심을 다해 뛰어놉니다. 곤경에 처했지만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 맞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려면, 혹사와 모멸적 노동의 해결책이 왕자비가 되어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일을 안 하고 사는 것일 수는 없고, 대신 존엄을 지킬 수 있으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47쪽) 


이 점이다. 솔닛이 쓴 내용에 걸맞는 그림이다. 당당하다. 그리고 활기차다. 또한 특정한 인종을 연상할 수가 없다. 실루엣만 나오기 때문에... 이 점이 좋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솔닛이 다시 쓴 신데렐라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신데렐라는 의붓언니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의붓언니들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왕자 역시 궁궐에만 갇혀 지내지 않는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농부처럼 일을 하기도 하고, 신데렐라와 친구가 된다.


말로 변한 쥐들(도마뱀들)도 마찬가지다. 쥐(도마뱀)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지닌 쥐들(도마뱀들)도 있지만, 자신은 계속 쥐(도마뱀)로 살겠다는 쥐(도마뱀)도 있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자신의 처지보다는 좋아 보이는 하나로 모두 달려가지 않는다. 신데렐라도 자신이 활동하기엔 화려한 옷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유리구두를 들고 찾아온 왕자. 시종을 시키지 않는다. 혼자 나와 직접 사람들에게 묻는다. 묻고 묻고, 신데렐라 집에 와 언니들이 신발을 신을 때 장면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통은 구두가 작고, 언니들 발이 커서 간신히 발을 끼워넣으려고 애쓰는 장면들이 많은데 여기서는 반대다. 구두는 크고, 언니들 발은 작다. 왜? 


'언니들의 발은 구두에 비해 너무 작았어. 종일 집에 앉아 있기만 하고 강가로 달려가거나 시장에서 장을 잔뜩 봐서 바구니에 담아 들고 오거나 하지 않으니 발이 튼튼하게 자라지를 못한 거야'(30쪽)


솔닛이 하고 싶은 말이 여기에 있다. 해방자 신데렐라라는 말을 이 표현에서 찾을 수가 있다. 활기차게 삶을 사는 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 그것이 먼저 세상에 나와 살아가는 사람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해줘야 할 일.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노동이, 놀이가 사라진 생활이 아니라, 노동을, 놀이를 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유리구두의 당당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로 세상의 평화다.


'신데렐라는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 전쟁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도 있게 되었어. 신데델라는 대모 요정은 아니지만 마법 능력이 없어도 해방자가 될 수 있었어. 해방자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야.' (39-42쪽)


이렇게 신데렐라는 자신의 해방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해방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솔닛이 다시 쓴 신데렐라 이야기다.


역시 솔닛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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