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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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반전. 또는 진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내용 전개. 짧은 소설임에도 다양한 생각들을 이끌어 낸다. 기존 김동식 소설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다만, 삶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어떤 삶이 좋을지,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떤 사회면 좋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 실려 있다. 토론거리로 적당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제목이 된 '성공한 인생'만 봐도 그렇다. 과연 남들이 좋다고 하는 그런 삶이 성공한 삶일까? 성공만을 위해 내달린 인생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공이란 목표를 하나 정해두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든 상관이 없단 말인가. 아니 목표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다. 수능에서 고득점을 얻어 명문대 진학하는 일. 고시나 또는 잘나가는 기업에 취직해서 돈을 잘 버는 일. 예쁘고(잘생기고) 착한 사람과 결혼하는 일.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혹시 자신을 잃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귀신에게 일주일에 하루 하루를 내어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주인공. 결국 그에게는 주말만 남는다. 주말,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해서 좋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주말만 의식할 수 있는 그의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목표만을 향해 달렸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하루 하루를 잃어가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거상의 거래법'이라는 소설도 이득 앞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결국 이윤만을 추구하다간 자신을 잃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를 사회로 확장하면 '악한 사업'으로 연결이 된다. 이윤을 위해서 지구를 파괴하는 사업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업들을 어떻게 규제할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규제가 안 되는데, 소설 속에서는 상상을 빌려 규제를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김동식 소설의 묘미다. '장난감 총'에서 보여주는 반전도 그렇다.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아이들을 획일적으로 교육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을 장난감 총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그 반전에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2인 1조'란 소설을 읽으면서 플라톤이 '향연'에서 이야기했던 과거에는 사람들이 둘씩 묶여 있었다는 말을 떠올리게 됐다. 여기에 더해서 페미니즘을 떠올리기도 했고.  이 소설은 미래에 외계인의 힘으로 사람들이 둘씩 묶인 상황을 만든다.


남-남, 여-여, 남-여. 가리지 않고 묶인다. 이들은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이런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사회 시스템도 2인 1조를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이동수단, 생활용품, 편의용품…모든 것들이 2인용이 기본이 되었다.

  서로를 3미터 밖으로 튕겨냈기 때문에, 모든 건물과 거리, 도로들이 매우 넓어졌다. 도심 지역의 멀미 나는 밀집도 사라졌고, 의외로 인간들은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모든 교육은 서로를 배려하는 법과 존중하는 법을 최우선으로 교육했다. 모든 방송에서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한 솔루션을 자주 내보냈다. 모든 사회 분위기가 배려, 존중, 사랑, 우정 같은 가치들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았다.' (127쪽)


그렇다. 서로 배려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외계인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다시 외계인이 사람들을 떼어놓은 상태에서도 이런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작가가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겠다.


이런 소설을 비롯해서 다른 소설들도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그것을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서 우리를 바람직한 세계로 이끈다.


소설이 지닌 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전이 그런 세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함께 살악가야 하는 인간들.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남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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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동식 소설집 5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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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들, 읽기에 편하다. 술술 읽힌다. 결말도 다양하다. 생각 못한 결말이 수시로 나온다.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책 한 권에 실린 소설들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다르다고 판단하는 작품들도 많다. 이번 작품집도 마찬가지다. 살인을 다룬 작품이 많음에도 결말이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살인이라도 모두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망설임도 없이 살인으로 치닫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소설도 많이 실려 있다. 이 작품집에 살인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남에게 미안함도 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행태를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알고 행한 것과 모르고 행한 것의 차이'라는 소설을 보면, 인간이 알면서도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같은 결과라도 어떻게 했느냐에 따르는 차이. 이를 결과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동기까지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말과도 통하는데, 이는 여전히 법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정상참작을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기도 하고.


동기와 결과. 하나로 연결이 되면 좋겠지만, 이 과정에는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져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판단은 결과에 따라 또 동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내가 뭘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소설에서는 자신의 동기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풀어주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또 결과에 요즘 언어로 하면 유전적 요소를 참작해서 판결을 내리는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준, 어쩌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이렇게 잘 적용해서 소설을 썼나 싶을 정도의 작품인 '범죄 유전자'라는 소설은 결과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절로 쓴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소설인데... 범죄 유전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의지가 아닌 유전자로 인한 행위를 했으니 감형을 한다고 하는 발상...


술을 많이 마셔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심신미약 상태에 빠졌으니 그를 참작해서 형을 감량하는 판결을 내리곤 하는 재판정을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기도 한데... 인간이 자신이 한 행동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살인 또는 살인미수 또는 자살과 같은 죽음이 이 소설집에는 많이 나오는데, 이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더 살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전환시키는 작품도 있다. '그의 일대기'라는 작품이 그러한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게 해서,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고, 이는 '정선 카지노로 향하는 길에'라는 작품에 나타나는 내용인 도박장에 가는 심리를 다른 일에 빗대어서 보여주는 방법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내용들, 짧은 소설들, 그러나 어떤 경구처럼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들... 제목이 된 소설,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를 보면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자신에게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무의식은 알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살아온 삶. 뒤늦게 알게 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현재 자신 주변을 살펴보라고.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잘 살펴보라고.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지 말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이 바로 소설이라는 다른 세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때인지도 모른다. 나를 비춰주는 거울. 이 거울을 보고 나를 고쳐나가는 시간을 지니게 하는. 김동식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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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학교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0
아르튀르 테노르 지음, 곽노경 옮김 / 내인생의책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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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라는 말. 한때 유행했었다. 이렇게 쓰고 싶은데, 그렇지가 않다.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간이 배움의 공간이고, 학생들이 성장해 가도록 돕는 공간임에도, 어떤 학생들에게는 지옥보다도 더한 고통을 주는 공간이 된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가해학생은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재미로 했다고 하지만, 피해학생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 된다.


아무 생각없이 던진 말, 얼마나 많은 비속어들이 난무하는지, 청소년들의 언어는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다. 개**, 씹*, *나 등등은 그냥 상투적인 말일 뿐이다. 그들이 쓰는 언어와 언어를 이어주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지니는 의미는 그렇게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넘어갈 수가 없다. 언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언어에는 가치가 담겨 있다. 욕은 상대를 비하하기 위해,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 쓰는 언어다. 그러므로 욕이 상투적이라는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들이 일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이 모두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쓰는 말,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쓰는 말들 가운데 이런 비속어가 많으면 그건 문제다. 언어가 칼이 되어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는 중인데, 그에 대해서 아이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데... 아이 때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괴롭힘이라는 생각이 어떤 아이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길이 되기도 한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학교라는 공간은 더욱더 명심해야 한다. 어떤 괴롭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해야 한다. 장난이었어요라는 말이 통용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당하는 아이 처지에서는 그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무슨 노력을 해도 가해하는 학생들에게는 가 닿지 않는다. 더 큰 폭력으로 대항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그들로부터 벗어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학교폭력. 두 아이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소설은 나름 행복한 결말을 이루고 있지만, 작가가 이렇게 행복한 결말로 아이들이 웃으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에서는 이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학교 가는 일이 지옥인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대다수의 학생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교사들, 알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모들. 


괴롭히는 아이는 주변인들의 그러한 모습때문에 더 힘들어 하기도 한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판에 박힌 말들, 또는 네가 그러니까 그렇지 하는 말들. 또는 무관심. 그러니 결국은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을 한다.


소설 속 가스파르처럼. 남들이 대응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알아채야 한다. 여러 단서들이 나타나는데, 그 단서들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소설이 끝나고 작가는 피해자 어머니의 글을 함께 실었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것은 단지 가해-피해 학생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인식하도록.


다시, 왕따라는 말이 있었다. 이렇게 과거형으로 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안토니에 대해서 청소년들이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 과연 나는 안토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의 배경이 중학교니 중학생들이 이 소설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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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정석 김동식 소설집 7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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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꽁트라고 해도 좋을 소설들. 짧은 소설의 묘미는 바로 반전에 있다. 독자가 상상하지 못한 결말을 내는 일.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결말이 나온다면 그 소설은 잘 썼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짧은 분량에 사건을 다루는 소설은.


김동식 소설은 읽으면서 결말을 어떻게 낼까 생각하는 재미가 있다. 이미 이 작가의 작품을 여러 편 읽었는데, 특이한 결말이 많았기에,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결말을 생각한다. 중간을 넘어서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복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면 아, 이런!!! 하는 생각이 드는 결말이 나온다.


그 재미다. 그 재미를 위해서도 김동식 소설은 읽을 만하다. 이런 예로 '신혼여행 중에(112-127쪽)'라는 소설을 들 수 있다. 다른 소설들도 그렇지만, 이 소설은 상대를 속이는 묘미, 또 독자에게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는 재미를 준다.


신혼여행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행복, 즐거움. 그리고 대다수는 남-녀가 결혼하고 떠나는 여행이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이 소설은 우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렇다면 사건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른 사건일 수밖에 없다.


낯선 외계인이 접근한다. 친절하다. 선물을 준다고 한다. 외롭게 여행을 했으니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의심 많은 한 사람은 내켜하지 않는다. 그런데 활달하고 사교적인 한 사람은 외계인을 반긴다. 그들은 외계인과 식사를 하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법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듣는 도중 한 사람은 깨닫는다. 외계인이 한 이야기는 외계인 자신의 이야기라고. 결말은? 외계인은 자신의 계략이 성공했다고 믿는다. 신혼여행 중인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한 대비책이 옳았다고 여긴다. 둘 다 자신들이 잘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결말은 반전이다. 우리가 신혼여행에서 떠올리는 그림, 성별이 아니다. 멋진 결말이다. (소설을 읽어야 이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제목이 된 '살인자의 정석'도 마찬가지다. 살인자의 정석이라니? 무슨 뜻인지 막연히 '살인자의 기억법'을 원용하고 있지 않나 했더니, 결말은 다르다. 반성하지 않는 살인자. 우리나라 법정에서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 아니 범죄자들이 썼다는 반성문. 그 반성문으로 인해 감형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보도도 있었다. 


[반성의 역설]이란 책을 보면 반성을 강요하면 결국 더 큰 범죄자가 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형식적으로, 판에 박힌 반성문을 써내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형량을 줄이려고 하는 범법자들이 많았는데, 이 소설은 그들의 그런 반성문을 소재로 삼아 펼쳐진다. 


그런데, 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점을 알 수가 없다. 결말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그 장면을 보고 형식적인 반성문이 얼마나 가식적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반성문보다는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고 행동을 바꿀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렇다. 이것이 바로 김동식 소설이 주는 즐거움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 그 반전으로 인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생각.


'나는 수염이다'는 소설... 기가 막히다. 윤회를 바탕으로 한 소설. 인과응보다. 그런데, 인과응보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떻게? 


사실, 윤회가 정말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도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다면 사람들이 막 살지는 않을테니. 그래서 진짜든 아니든 사람들이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을 하기도 한다.


'지금-여기'에서 잘 살기 위해. '지금-여기'에서 잘 산다면 '다음-거기'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을테니, '다음-거기'에서 잘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여기'에서 잘 살 수밖에 없다.


김동식 소설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환경오염을 시킨 인간이 무엇으로 환생할까? 그 점을 생각하게 해도 좋을 소설인데, 손톱으로 환생한 인간도 있다고 하니... 윤회가 있다고 가정하고, 하늘(땅 속) 법정- 그 법정이 땅 속에 있는지, 하늘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에서 잘못에 대해서 어떤 윤회 판정을 내릴지, 안 좋은 행동, 또는 범죄 행위를 두고 환생을 시킬 때 어떤 존재로 환생시킬지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이 소설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염으로 환생한다. 안 좋은 행위를 저지른 탓에 칼에 몸을 잘리는 고통을 겪게 되는, 수염 주인공이 죽을 때까지 그 고통을 겪어야 하는 벌을 받는 인간. 그는 그 인간의 빠른 죽음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는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는 깎이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 행복할까? 왜? 글쎄. 


그는 분명 수염으로 환생했다. 그런데 어떤 존재의 수염으로 환생했을까? 읽으면서 아랍인? 수염을 깎지 않는 사람, 조선시대 사람? 많은 생각을 했는데, 결말에서 아, 그렇구나!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 수염으로 환생한 거였지? 이 결말이 맞네.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존재의 수염으로 환생했는지는 상상하든지, 아니면 소설을 읽든지 해야 한다. 상상했던 결말과 소설이 같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 될테니)


더 많은 소설이 있지만, 그 소설들은 직접 읽어야 더 재미가 있다. 이렇듯 김동식 소설은 짧은 분량 안에 생각지 못한 결말, 그리고 우리 사회를 환기하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재미라고 하겠지만. 


지루하지 않고, 요즘 같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에 김동식 소설은 빠르게 전개되고, 예기치 않은 결말로 인해서 우리들에게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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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나 노, 지나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란주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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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살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아이들. 미등록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도 안 되어 있고, 그렇다고 외국인 등록증도 없는 아이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다. 부모도 미등록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한때 불법체류자라고 불렸던. 아이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자신이 추방당할 수 있으니, 아이가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 있어도 없는 아이가 된 아이들. 태어나지 않았어도 어린 시절에 부모를 따라 들어왔지만, 등록이 되지 않아 역시 미등록인 아이들.


이 소설은 르포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처한 현실이 이 소설에 너무도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인 로지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이. 이슬람을 믿는 아이. 부모 역시 방글라데시에서 왔고, 우리나라에서는 미등록 노동자로 남았고, 그들 역시 이슬람을 믿는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 소설에서 로지나가 겪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할랄 제품이 제법 나온다고 하지만, 초기에는 할랄이라는 말조차 몰랐다. 게다가 이슬람이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실, 그들은 라마단이라는 금식기간이 있고, 또 하루에 다섯 번은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이러니,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나라 음식에서 돼지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이슬람 율법에 맞게 도살한 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러니 그 기준에 맞는 음식을 찾기가 힘들다.


로지나 역시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들어가서 겪게 되는 어려움 중에 친구들과의 관계나 학습을 따라가는 어려움보다는 바로 이런 음식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가장 크다.


먹을 음식이 별로 없는 상황.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 돼지기름을 쓰거나, 돼지고기가 섞인 음식이 얼마나 많은가. 꼭 돼지고기만으로 만든 음식이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로지나는 나름대로 절충을 한다. 아빠가 소주를 마시듯이.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 이슬람을 배척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그럼에도 그들에게 호감을 지니고 함께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아마도 미등록이든 등록이든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선진국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들은 우리나라에서 산 것이 아니라 일만 한 것이라고 하는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고, 자본은 어느 나라든 가리지 않고 환영받으며 들어가는데, 노동자들에게는 국경이 있고, 어떤 노동자들은 환영받지 못하고 또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고 있기도 하는데, 그런 불안한 생활조차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일만 하게 되는 현실. 


그러니 그들은 살았다고 할 수 없다고, 자신들은 일만 했다고 하는 장면에서 그들이 처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로지나가 어린 시절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성년이 되기까지를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데, 로지나는 거의15년 이상을 우리나라에서 살았음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빠, 엄마는 일하다 병을 얻고, 로지나 역시 고등학교를 마치지도 못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그 동생도 마찬가지다. 동생의 처지는 더하다. 로지나는 결국 엄마, 아빠와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지만,(로지나는 그래도 방글라데시 말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동생은 돌아갈 수가 없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말을 하지 못하는 동생. 그는 방글라데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다. 자신도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라면서 자신이 한국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가는 과정. 그 과정이 소설에서 로지나의 시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는 방글라데시 사람도 될 수 없다.


이렇게 어느 나라 사람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다. 


자본이 국경이 없듯이 노동자에게도 국경이 없어야 한다. 적어도 그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라면 국적에 상관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등록이냐, 미등록이냐로 불법 운운하지 말고, 그들로 인해서 한 나라 경제가 운용되고 있으니, 그들을 한 사람으로서, 동등한 노동자로서 받아들이고,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지닐 수 있게 해야 한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아이, 로지나, 그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을 소설 형식으로 쓴 이 작품은 우리에게 미등록이주 아동들의 현실을 생각하게 해준다.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그들도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조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소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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