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는 집안의 많은 것을 정리하는 중이다. 오래된 집의 정리라고 해봤자 버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살펴보고 분류해서 버려야 하니 틈나는 대로 하는데도 아직 정리할 게 많이 남았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장독대는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 오롯이 엄마가 다 손대고 있다. 30여 개에 달하는 장독을 지금은 거의 다섯 개만 사용하는지라 나머지 빈 장독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더니, 이때다 싶어 사람들은 서로 달라고 했고, 엄마는 깨끗하게 씻어 놓을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장독을 하나씩 비우고 정리하고 씻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정리하려니 힘이 드시나 보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손댄 김에 하겠다며 굳이 다 정리해놓겠다고 하는 걸 보니,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불편했다. 말려도 계속할 것 같아서 쉬어가면서 하시라고 했더니 엄마가 하는 말, "죽으면 푹 쉴 텐데, 뭘..." 아, 어느 정도 인생 살아온 엄마가 생각하는 쉼은 죽음 이후의 시간일 수도 있구나.

 

 

휴식이나 쉼을 떠올리면, 여행이나 늘어짐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요즘처럼 여름에 주어지는 며칠간의 휴가는 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시간이고, 평소에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한없이 게으름 피우며 뒹굴고 싶었다. 쉰다는 건 그런 거로 여겼다. 짧게 든 길게 든 보너스 같은 시간에 부리는 마음의 여유. 그 여유에서 가장 먼저 선택되어야 할 조건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여행이든, 책 쌓아놓고 방바닥 뒹굴며 읽는 것이든, 며칠 동안 밀린 잠을 자든, 그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좋아해 선택한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바로 쉰다는 거로 여겼다. 그런데 엄마의 한마디에 내가 생각하는 '쉼'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죽음이라는 건, 또 다른 의미의 쉼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인생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생각하면 시작점부터 열심히 달리다가 끝점에서야 겨우 쉬는 거라고, 그 끝점이라는 건 우리 눈 감은 후에 이뤄지는 안식 같은 게 아닐까 하고.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제대로 된 휴식을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여행용 가방에 필요한 것을 싸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여행이 시작되듯,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는, 긴 휴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사실, 그 준비를 모르는 건 아니었던 듯하다. 뻔한 답이지만, 죽음의 순간에 다다라서야 떠오르고 후회 없이 살아가는 시간과 과정을 이루는 것이 제대로 된 준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지켜보면서 그 의미를 더 깊게 고민하게 된다.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은 신경외과 의사인 저자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의사로의 삶뿐만 아니라 여러 환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비춘다. 환자와 함께하며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다. 때로는 환자를 살리고 때로는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도 하지만, 그 바탕에서 피어오르는 건 보다 나은 다음을 고민하는 것이다. 신이 아닌 의사이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도 하지만, 그때마다 진심을 드러낸다. 목숨을 살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전달해야 하는 마음의 불편함도 그대로 쏟아낸다. 그런 그가 찾아낸 괜찮은 죽음의 조건이 고요히 스며드는 것처럼 다가온다.

 

 

가끔, 누군가 “우린 아직 이 사람을 보낼 준비가 안 됐어요…….”(88페이지)라고 말하는 순간을 상상했다. 괜찮은 죽음이란, 죽은 이를 떠나보내며 아쉬워하는, 그 죽음을 붙잡고 싶은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올 때라고,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서 떠난다면(떠났다면) 참 멋지게 살고 가는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아쉬운 이별의 목소리가 전부가 아니었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25가지 에피소드에 생과 사의 온갖 생생함을 보면서 끝도 없는 생각이 이어진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어떨까,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죽음을 미리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죽음이 다시 보인다. 그냥 숨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슬픈 이별일 수 있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이제야 비로소 편히 쉬는 시간임을 보게 된다.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를 윌과 루의 로맨스로만 봤던 기억이 변한다. 윌은 자기의 휴식을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 거였다. 2년여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난 거였다. 그의 선택을 두고 많은 이가 슬퍼했겠지만, 그에게는 편안함의 시작이었을 거라고 이제야 보인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275페이지)

 

 

한때 누군가의 결혼, 아기 돌잔치 초대를 많이 받았다. 어떤 시작을 알리는 소식들이 자주 들려오던 때였다. 이상하게도, 지금은 장례식에 갈 일이 잦아졌다. 친구 부모님, 친척, 지인. 몇달 전에는 이모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이제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보다. 누군가의 탄생이나 시작을 알리는 소식보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소식에 안부를 묻고 위로와 공감을 나누어야 하는 때... 누군가 떠나는 모습에, 잘 헤어져야 하는 마음을 가져야할 시간이 많아진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런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와 지인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해야 할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죽음이 아주 가까이에서 나에게 말을 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무서워진다.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듣고 싶었나 보다. 우리가 만나는 죽음을 어떻게 괜찮은 죽음으로 볼 수 있는지를...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할 때 괜찮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곱씹고 있다. 치료를 중단하는 게 최선일 수 있고, 가망이 없더라도 마지막 희망으로 수술을 선택할 수도 있다. 죽음을 염두에 두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건 환자 자신의 결정이어야 하고, 그 누구도 아닌 자기 마음속의 바람을 말해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건 그 끝에 있는 죽음으로 가는 길, 영원한 휴식을 위한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선택이다. 참, 어렵다. 마음도 무거워진다. 인생의 끝에서 마주할 그 쉼을 위해, 우리가 오늘을 채우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굳이 자기 손으로 장독을 정리하는 일도 그 과정일까. 오랜 시간 자기 곁에 머물며 일상을 채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는 엄마의 모습이 새삼 너무 진지하고 중요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어설픈 손이지만 엄마의 그 정리를 돕는 일인 것 같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이 될 시간을 준비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엄마의 편안한 쉼을 위한 준비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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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2016-12-1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얼굴에 생긴 점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피부과 가서 점을 뺄까? 안 아플까? 가만히 보니 코도 좀 높았으면 좋겠다. 얼굴도 좀 더 갸름했으면 좋겠고... 성형수술을 할까? 아니야. 무서워. 만에 하나 생기는 부작용이 나에게 오면 어떡해.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이 가시긴 하지만 좀 아쉽긴 하다. 여기도 조금, 저기도 조금, 어떻게 조금씩만 안 될까? 그렇게 마음이 오락가락하면서도, 막상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이 얼굴도 좀 봐줄 만 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얼굴이 좀 부어있고 누렇게 떠 있는데, 어라? 괜찮아 보이네? 흠. 세수하니까 얼굴이 더 깨끗해 보이고, 음... 그래, 그냥 이대로 살자. 이제껏 이 얼굴로 잘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못 살 건 뭐야. 살이나 더 찌지 말자, 라고 말은 하지만 늘 아쉽다. 막상 누가 손잡고 끌고 가더라도 성형외과에 들어갈 용기도 없으면서, 그냥 가끔 내 얼굴이 서운해지는 거다. 그렇게 마음이 왔다 갔다, 참 오랜 시간 답이 없는 고민을 했더랬다.

 

그냥저냥,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어디 가서 뛰어나게 예쁘다는 평가는 못 받아도, 대놓고 못생겼다는 소리 들으면서 살아온 적은 없던지라, 그냥 이게 '평범'이려니 싶었다. 그런데도 자꾸 좋아 보이지 않는 것만 눈에 더 들어온다. 내 신체의 열성인자는 대부분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두상이 안 예뻐서 커트할 때마다 머리 옆 부분이 신경 쓰이는 것도, 발등이 높아서 신발 신으면 안 예쁜 것도 다 엄마 탓을 했다. 누가 봐도 우아~ 예쁘다 할 수 있게, 좀 예쁘게 낳아주지 왜 이런 거냐고. 엄마 눈에 있는 쌍꺼풀도 우리에게는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형제의 절반은 그 쌍꺼풀이 후천적으로 생겼다. 그건 좀 다행인가? 그래, 어쩌겠어. 생긴 대로 살자. 살다 보니 없던 쌍꺼풀도 생기는데, 설마 이보다 더 나빠지기야 하겠어. 이대로 유지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이번에 건강검진 받으면서 또 한 번 절망했다. 키는 2cm 정도 줄었고, 몸무게는 1kg 정도 늘었더라. 몸무게가 좀 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키는 충격이었다. 나이 먹으면 키도 줄어든다는데, 정말 그래서 키가 줄었나? 평소에 키가 3cm만 더 컸으면 좋겠다던 나의 바람을 무시하는 것처럼 오히려 키가 줄었으니, 속이 상했다. 몸무게는 빼면 되지만, 줄어든 키는 복구가 안 될 거잖아. 날씬하고 키도 커야 옷을 입어도 테가 나지, 라고 생각해왔는데...

 

 

 

 

 

 

 

 

 

 

 

로버트 호지의 『발가락 코 소년』을 읽다가 또 한 번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로버트는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외모 때문에 부모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크게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자라났다. 여러 차례 수술하면서 얼굴과 몸을 변형시켜왔다. 조금은 더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말이다. 두 다리는 짧고 곧지 않았기에 절단해서 의족을 채웠다. 이마에서부터 코까지 내려온 혹은 제거했다. 그 자리에다가, 잘라낸 발에서 뽑아낸 연골로 코를 만들었다. 물고기처럼 양쪽으로 멀어진 눈 사이의 거리를 조금 가깝게 하는 수술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정상(평범)이라고 부르는 외모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그렇게 많은 수술을 했는데도, 의학의 기술을 최대치로 끌어왔는데도... 그런데도 그는 잘 성장했다. 학창시절이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니지만, 친구들의 놀림과 자기 스스로 보게 된 차별을 인지하면서 고통스러웠겠지만, 그는 발견한 거다. 의사들이 시도했던 더 잘생겨지기 위한 수술도, 그를 위한 일이라면서 설득했던 가족의 말도 그 자신의 마음보다 우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음 수술을 결정해야 했을 때 부모님은 말한다. 너의 몸이니 선택은 너 자신이 해야 한다고. 수술을 또 해야 할까? 다시 수술하면 이 얼굴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반복된 수술과 수술 후에도 기대만큼 크게 변하지 않는 외모에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더 이상의 수술은 하지 않겠노라고. 로버트가 진정으로 자기 몸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 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성인의 모습 사진이 있다. 도서 상세페이지에 그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모습과 태어났을 때 동영상도 있다. 책을 읽기 전에 그 사진들과 동영상을 먼저 봤다. 그 시작점을 알고 읽으면 그가 하는 말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음에도 못생긴 모습으로 태어난 그가 성장하면서 겪었을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막연하게 아프겠구나, 상처가 되었구나, 힘들겠구나, 싶은 추측이 이어졌다. 나는 그의 얼굴이 아닌 채로, 그처럼 의족으로 걷는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이 책의 부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어느 소년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라는 걸 그대로 확인하면서 생각이 좀 많아졌다고 해야 할까.

 

그가 다른 사람들과 외모가 같지 않음을 인지하면서 겪었을 마음의 혼란, 더 나아지기 위해 했던 수술이 더는 만족하게 해줄 수 없음을 알았을 때, 외모와 장애로 인한 차별을 감당해야만 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얼굴이 좀 더 예뻤으면, 키가 조금 더 컸으면, 좀 더 날씬했으면 옷이 더 예쁘게 잘 맞을 텐데' 하고 바라던 마음과는 크기가 다르다. 비장애의 몸으로 더 간절하게 바라는 것과 장애의 몸으로 비장애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지금 모습이 더 든든하고 멋있어 보인다. '나는 내 몸의 주인이에요. 나는 장애가 나의 발전을 갉아먹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거예요. 내 몸에, 내 삶에 주체적이고 당당해지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나요. 이렇게, 멋진 삶을 계속 살아갈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오늘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 이렇게 자라왔고,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오래전에 읽었던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못생긴 여자와 조금은 잘생긴 남자, 그들의 멘토 같았던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 그들 세 사람의 조화가 참 묘한데, 특이하면서 즐겁게 읽힌다. 그건 아마도 못생긴 여자와 조금 잘생긴 남자의 조합 때문이었던 듯하다.

 

비를 맞으면서 걷던 여자에게는 우산이 없었다. 우산을 준비 못 한 게 아니다. 비 맞는 것을 좋아해서도 아니다. 그날 그녀가 회사에 가져온 우산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익숙한 일이다. 그녀의 못생긴 외모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함부로 대해지기 쉬운 이유가 되었다. 외모가 힘이 되는 순간을 그녀가 증명했다. 못생겨서 회사 면접에서 떨어지고, 그나마 입사한 회사에서는 성적이 우수했어도 적절한 자리가 아닌 힘든 일을 하는 자리로 밀려났다. 못생겼으니까... 오랜 시간 그런 경험 때문에 여자는 사랑을 믿지 못했다. 자기 외모와 사랑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거다. 그런 여자에게 남자가 다가온다. 사랑을 거부하고 의심했던 여자는 남자의 마음 앞에서 사랑을 인정한다. 스무 살, 무엇을 해도 예쁠 나이에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한다.

 

여자가 성장하면서 겪었을 일도 발가락 코 로버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외모가 힘을 가지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을 터, 그래서 변하지 않는 외모에 주눅 들고 절망하다가, 이내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잊으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외모 때문에 받는 차별을 점점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잃어갔다. 로버트는 아예 그런 외모의 차별을 처음에는 알지 못하고 성장했지만, 그것도 영원하지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될 일이 늘어나면서 왜 그것들을 못하는 건지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번쩍'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된 거다. 여자에게는 진심으로 다가왔던 남자의 등장이, 로버트에게는 자기 몸의 선택권을 주장하는 부모님이 그런 존재다.

 

 

 

외모가 권력은 아닐진대, 그 외모가 힘을 발휘하는 순간을 본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만, 그건 순간이거나 찰나에서 머물 때가 많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여전히 나는, 좀 더 예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겉으로 보는 외모나 이미지가 우선이 아니라는 건 자주 경험한다. 외모와 인성이, 외모와 실력이, 글과 인격이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병원에서 만난 잘생긴 의사가 친절한 것도 아니었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질문 몇 가지만 던져도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의사도 허다했다. 예쁘고 잘생겼다고 다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자기 자리에서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지가 좋다고 생각했던 작가의 글을 읽고 기분이 좋았는데, 문단 내 성폭력의 가해자인 걸 알게 되니,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그들의 책을 읽었나 자괴감도 들었고... 결국은, 그 사람을 알게 되기까지 외모가 첫인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전부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확인한다. 그 사람을 겪어야 알게 되는 게 진짜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외모는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나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관계에서 진심을 내보였을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내가 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외모는 그렇더라고. 남들도 나에게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분명, 그럴 거로 생각하고 싶다.

 

 

 

장애를 가진 외모로 태어났지만, 의술로도 완전해질 수 없는 외모를 가졌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스스로 증명한 로버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바라던 외모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3cm만 더 컸으면 하고 바랐던 키는 반대로 줄어버렸으니 이만 포기하고, 늘 3kg만 뺐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몸무게를 신경 써야겠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성장판이 닫힌 지 한참 지났는데 뭘 더 크겠다고 그렇게 바랐었는지 몰라. 설상가상, 키가 클 가능성도 아니고 이미 줄었다는데 마음을 둬서 뭘 하나. 지금보다 더 나빠지기 전에 살부터 빼자 싶다. (살이 찌니 자꾸 허리와 다리가 아픈 게, 외모가 아니라 건강 때문에라도 빼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엄마가 물려준 단점들마저 고마워진다. 발등이 좀 높으면 어때, 그것 때문에 신발은 안 예쁘게 신으면 어때, 멀쩡한 두 다리로 걷고 있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인데 말이야.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자주 잊고 사는 요즘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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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진양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알림 문자를 받았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이 있어서 알림 소식을 받고 있었다. 이번 신간은 참 오랜만이다. 게다가 기존 현대물만 써왔던 작가의 시대물이다. '음, 시대물은 내 취향 아닌데 어쩌지?' 싶은 노파심도 잠시, 일단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더랬다. 내 인생 최고의 작가는 아니지만, 나는 처음 이 작가의 이름 때문에 괜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 로맨스소설을 읽었던 건,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때문이었다. 도서관 서가를 돌다가 발견했다. 책이 너덜너덜. 이런 경우는 두 가지인데, 보통 만화책이거나 이용자의 손때가 많이 탔거나... 이 책은 소설이니 아마도 후자였으리라. 궁금해서 대출해와 읽었는데 정말 재밌었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로맨스소설이란 장르에 속하더라. 뭐지? 이런 장르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로맨스소설 읽기였는데, 그때 뭔가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이름이 '진양'이다. 이름이 본명인지 필명인지 모르겠지만, (뭐, 나중에 찾아보니 아마도 필명일 거란 생각이 들긴 하는데...) 혹시 내가 기억하는 그 애가 아닐까 싶은 궁금증이 마구마구 생기더라고. 항상 책만 보던 그 애, 교과서 앞에 소설 책 세워두고 미친 듯이 읽었던 애가 있었어. 정말 이 소설을 쓴 작가는 그 애가 아닐까? 나는 그 이름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던 거다.

 

고등학교 때, 그런 애가 있었다. 고3때 같은 반이었던 애가 있었는데, 그 애 이름은 '진양O'이었다. 친하지는 않았고, 우리 반에 그런 애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 애와 친하지 않았는데도 잊을 수가 없는 건, 그 애는 수업시간에 교과서 세워두고 그 안에 다른 책을 두고 읽곤 했다. 어쩌다 한 번이면 스쳐지나갔을 텐데, 거의 모든 수업시간에 그러했으니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당시에 만화 주간지가 인기였는데, 그 애는 용돈 대부분을 그 만화 주간지를 사는데 썼고, 할리퀸 문고 사는데 쓴다고 하더라. 그 애가 학교에서 읽는 책은 주로 세 가지였다. 만화책(만화 주간지 포함), 할리퀸 문고(그 손바닥만 한 작은 책), 두툼한 소설. 담당 과목 선생님에게 걸리기도 하고 안 걸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렇게 걸려서 혼났어도 꾸준히 그 습관을 이어갔다는 거다. 그 애가 만화 주간지를 사면 반 아이들이 돌려봤는데, 그렇게 한 바퀴 돌고나면 책을 후줄 해졌고, 그래도 괜찮았는지 아마 상당 기간 동안 그렇게 만화 주간지가 돌았던 게 생각난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쟤는 대학에 안 가나? 수업 시간 내내 저렇게 다른 책만 보고 있으면 수업 진도를 어떻게 따라가지? 방과 후에 따로 공부하나? 뭐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성적도 상위권이 아니었다. 흘려들은 소문에는 하위권에 가까웠다고 기억한다. 남의 일이지만 정말 걱정이 되더라고. 수업 잘 들어도 힘든 시험인데, 어쩌려고 저렇게 딴(?) 책만 끼고 사나? 그러다가, 우리끼리 얘기하다가 주제가 된 게 수능시험이었는데, 그 애는 다른 과목은 별로였는데 유독 언어 영역에서 점수가 높았다. 지금은 수능시험이 어떤 분위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언어 영역 점수 잘 받기가 힘든 때였다. 오히려 답이 정해진 수리탐구 영역에서 만점 받기가 쉬울 거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니 유독 언어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그 애가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무리 언어 영역에서 점수가 높아도 전체 점수가 있으니 대학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말이 돌았다. 그렇게 우리는 수능 시험을 봤고, 졸업을 했다. 친하지 않았기도 했고 각자의 진로에 정신이 없어서 아무도 그 애 얘기를 꺼내는 걸 듣지 못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후였나, 점심을 먹으려고 학생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등을 톡톡 두드리는 거다. 누구지? 돌아서서 보니 그 애였다. 고3때 매일 교과서 말고 다른 책을 보던 그 애, 진양O. 어머나~ 놀래라. 각자 다른 일행이 있었고, 다시 만날 약속을 할 정도로 친분이 없던 터라 가볍게 인사만 했는데, 그 애가 같은 학교 불문과에 입학했다고 하더라. 괜히 반가웠다. 친하지 않았지만 알던 얼굴을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는... (아마 처음에 학교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때여서 그랬나보다) 나중에 몇 달쯤 흘렀을 때 고등학교 동창에게 그 애 얘기를 들었는데, 그 애가 수능시험에서 언어 영역 만점 받고 대학에 갔다고 하더라고. 여전히 다른 과목 점수는 높지 않았는데, 언어 영역이 그 애를 살려준 거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 덩달아 나온 말이 이거였지. 그 애는 수업시간에 죽어라 다른 책만 읽더니, 만화책만 읽고 할리퀸만 읽고 소설책만 읽더니, 어떻게 언어 영역 만점을 받고 대학에 가냐, 진짜 대단하다, 뭐 이런 말이 한참 돌았다더라.

 

그런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괜히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 책 읽기가 지금보다 강조되지 않던 때였는데, 책에 푹 빠져 지내던 그 애가 언어 영역 만점 받았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 글을 많이 접한 사람이 글을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언어 영역이 그 애를 살렸든 어쨌든, 대학에 입학한 그 아이가 전공을 살릴지 아니면 책 관련 쪽으로 갈지 궁금했었다. 그러다 만난 로맨스소설에서 그 애와 이름이 비슷한 작가를 발견했으니 이상한 궁금증이 생기는 거다. 이 작가가 혹시 그 애일까? 아닐까? 아니라고 해도 이 이름에 괜히 더 친근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그 애랑 친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름이 불쑥, 계속 생각나는 거지?

 

 

 

 

 

 

 

 

 

 

그런 이상한 이유로 관심 두고 읽기 시작한 작가다. 내가 이 작가의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이별한 사람들만 아는 진실>인데, 약간의 비현실적인 면을 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남자와 여자의 마음이 담겼다. '헤어졌는데 헤어진 것 같지 않아, 왠지 후회도 되는 것 같아, 나를 이만큼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 만나기 힘든데 니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 같아, 그런데 우리는 헤어졌어, 어떻게 해야 하지?' 뭐, 이런 분위기. 뻔한 내용인데 그게 또 뻔하게 흐르면서도 자꾸 생각하게 하는 거다. 어떻게 할까. 나는 현실에서도 진짜 이런 커플 봤는데, 이보다 더한 커플도 봤는데, 이게 정말 생길 수도 있는 일이구나 싶은 공감이 너무 와 닿는 거였다. 그래서 이 소설을 좋아한다. 괜히 작가의 이름에서 생긴 호기심 때문에 관심 두게 되어 하나씩 찾아 읽다가 발견한 소설이다. 작가의 출간작을 다 읽진 못했는데 꽤 많이 읽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또 다른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으면 싶다는 바람이 무색하게, 그 이후로 만나는 작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시들해지고 신간이 나왔다고 해도 안 읽고, 그렇게 넘긴 게 몇 년.

 

 

 

 

 

 

 

 

 

 

간만에 신간이 나왔다는 알림 문자를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소개 글을 보니 이거 시대물이네? 어라? 무슨 도깨비가 나와? 이상한 거 아냐? 반가운 마음도 잠깐, 노파심이 먼저 생긴 거다. 시대물 내 취향 아닌데 이번에도 비껴가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구매해서 읽었는데, 정말 재밌다. 이상한 도깨비의 등장이 아니라 귀엽고 섹시하고 매력 있는 도깨비'들'이다. 물론 스토리도 볼만하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자기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고, 그 틈틈이 등장하는 웃음의 요소도 거북하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에서 작은 모티브를 가져와 시작되었다는 이 소설은, 우리만의 정서와 분위기로 바뀌어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한다. 닮았지만 닮지 않은 이야기다. 슬럼프를 겪었다던 작가의 말이 하나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흥미롭게 읽힌다. 아, 이 작가는 현대물뿐만 아니라 시대물도 잘 쓰는구나. 또 하나의 퓨전 사극으로 나와도 정말 좋겠다는 바람이 들게 한다. (아, 물론, 극본이나 연출, 출연 배우에 따라 이야기가 산으로 갈 위험이 있긴 하지만... ㅠㅠ)

 

한 번 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면서, 몇 년 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을 다시 떠올려본다.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고, 진짜겠지만 진짜가 아닐 수도 있는 작가 이름 앞에서, 그 애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마음 하나를 더 보탠다. 괜히, 그냥 그래.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는 않은데, 그냥 그 애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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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 2016-10-3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다 궁금하네요...ㅎㅎ 아..궁금해...

구단씨 2016-11-02 14:58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해요. ㅎㅎ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할 것도 아닌데, 그냥마냥 궁금하더라고요.
그 애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

푸른희망 2016-11-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그 애 였으면 좋겠네요~~

구단씨 2016-11-02 15:01   좋아요 0 | URL
아.......
이것 저것 살펴보니 아닐 가능성이 많은 것 같지만,
그래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
 

 

이상하다... 식상한데 계속 보게 된다. 알면서도 궁금해진다. 왜 그래야했는데? 언제쯤 어떻게 밝혀질 거여?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이제 4회 남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박보검 때문에 몇 번 봤는데, 한 번 안 보니까 계속 안 보게 된다. 이미 그 흐름을 눈치 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못 봐도 내용 다 알아서 기대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오직 화초도령의 미모 때문에 보기 시작했던 거니까. 사실 보다 보니, 그 시간에 하는 다른 방송을 더 챙겨보느라고 그랬다. 월요일에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다가, 화요일에는 엄마가 <집밥 백선생>을 본다고 해서... 그럼 다시보기나 재방송을 보면 되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본방송이 아니면 집중이 잘 안 되더라. 재미도 떨어지는 것 같고. 뭐, 어디까지나 그렇게 느껴진다는 느낌적인 느낌.

 

 

 

 

 

 

 

 

 

 

 

아, 이걸 얘기하려고 시작한 건데 말이 삼천포로 가네. 어쨌든, <구르미 그린 달빛>도 남장여자 소재다. 이런 소재가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새롭지는 않은데, 뻔히 알면서도 보게 되는 이유는 그 신분이 어떻게 드러나느냐 하는 게 궁금해서다. 여자 주인공의 남장이 드러나는 계기가 좀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보게 된다. 과하지 않게, 억지스럽지 않게. 그런데 그 전에, 꼭 이런 감정이 따라온다. '너는 남자인데, 너에게서 여인의 모습이 보여... 나는 남자인데 왜 남자인 너를 자꾸 신경 쓰게 되는 거지? 네가 다른 남자 직원(내관)들과 함께 웃는 것도 싫어! 왜 자꾸 내 눈에 거슬리는 거야? 나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지 마란 말이야!'

 

 

아이고 귀여워라. 나는 이영을 보면서 그동안 봤던 남장여자 소재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성균관 스캔들>의 이선준(박유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최한결(공유), <미남이시네요>의 황태경(장근석) 등등. 뭐, 더 많겠지만 제대로 본 것이 이것뿐이라 기억도 여기가 한계다. <성균관 스캔들>과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드라마를 보기 전에 이미 소설로 다 읽어버려서 그 긴장감이 덜 했다. 그런데도 참 설레면서 봤더랬다. 어떡하지? 언제쯤 밝혀지려고 저러나? 큰일 나겠어. 아니지. 오히려 쟤(여주인공) 정체가 드러나면 더 좋은 거 아니야? 다 드러내놓고 그냥 사랑하면 되잖아. 문제될 게 없네? 됐어, 이제. 이렇게 간단한 걸 가지고 고민할 게 뭐 있다고. 이제 4회 남은 <구르미 그린 달빛>도 그렇게 흘러가면 되지 뭐, 암. 이후로 안 봤다고 뭐 크게 아쉬울 건 없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딱 그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건 클로에 크뤼쇼데의 『여장 남자와 살인자』였다. (이 책을 읽고 좀 실망스러웠던 건 주인공의 여장 모습이었다. 나는 정말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를 상상했던 거다. 이건 이따가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주인공 폴은 사랑하는 여자 루이즈와 결혼한다. 하지만 곧 전쟁에 참전하고 공포에 휩싸인다. 자기 눈앞에서 죽어가는 병사를 본 끔찍한 기억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그를 괴롭힌다. 아, 정말 그렇겠구나. 그 끔찍한 장면을 바로 코앞에서 직접 봤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벗어나고 싶었을 거다.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공포였겠지.

 

도저히 그 상황에서 버틸 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고 야전병원에 입원한다. 일부러 손가락을 낫지 않게 하면서 오랫동안 입원 상태로 있는데, 그것도 끝이 있는 법. 그는 곧 전쟁터로 소환된다. 하지만 폴은 다시 그 전쟁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탈영한다. 헉. 탈영이라니. 그렇게 힘들었던 거구나. (그나저나 여장 남자는 언제 나오는 거지?)

 

탈영한 그는 자유로웠을까? 아니다. 탈영 후 그는 수배자가 되고 또 다른 감옥에서 생활한다. 파리에서 아내 루이즈를 만나지만 그는 호텔 방에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되고, 부부는 점점 경제적으로 궁핍해진다. 루이즈의 수입만으로는 생활할 수가 없던 거다. 어느 날 폴은 술 한 병이 간절했는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고민하다가 아내의 옷을 입고 여자 차림으로 술을 사가지고 온다. '아싸~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았어! 이거 별거 아니구만~'

 

그때부터 폴은 감옥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게 된다. 바로 여장을 하고 살아가는 것! 아내의 도움을 받아 제모를 하고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는다. 여자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고 점점 완벽한 여자로 살아간다. 아내와 같은 직장에 취직했는데도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완벽해, 라고 생각할 즈음. 그는 다른 즐거움을 찾는다. 낮에는 직장의 여직원들과 어울리며 웃음을 흘리고, 밤에는 숲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과 성적 쾌락을 즐긴다. (이거 이거 정신 못 차렸구만. 어쩌려고 저러나? 아내가 버는 돈으로 굶어죽을 것 같아서 취직했다며? 그것도 여장을 한 채로? 근데 이렇게 흥청망청 해도 돼?)

 

시간은 흐르고 전쟁도 끝났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십여 년이 지난 후 폴의 수배령도 풀린다. 아, 이젠 정말 자유롭겠군. 더 이상 여장하면서 답답하게 보내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폴의 표정을 상상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터져 나왔다. 이건 내가 그동안 이런 소재의 드라마를 보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거였는데, 폴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폴은 전쟁의 공포가 여전했고, 눈앞에서 죽어간 동료의 잔인한 모습을 잊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여장으로 살아온 시간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그의 변한 모습을 보면서 정신 못 차리고 흥청망청 하는 걸 나무랐던 순간이 다시 보인다. 물론 그의 그런 행동이 잘 한 건 아니겠지만, 그가 앓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까지 보지 못했던 거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닐 텐데.

 

 

이때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최한결의 대사가 내 머릿속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최한결은 고은찬(윤은혜)을 향한 감정이 혼란스러워 멀리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결국 자기감정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러면서 고은찬에게 입을 맞추며 고백한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너 좋아해.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젠 상관 안 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갈 때까지 가보자. 한 번 가보자."

뭐 대충 이런 대사였는데, 문득 이 대사에서 그가 고민했을 수많은 시간이 보이는 거다. 자기 성정체성을 의심하면서 수도 없이 생각했을 거다. '내가 남자를 좋아하나? 아닌데? 나는 여자를 좋아했는데? 왜 이러지?'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도, <미남이시네요>의 황태경도 그랬을 거다. 남자인 내가 왜 자꾸 남자에게 끌리지? 뭐 이런 고민을 계속 했겠지. 여자 주인공은 각자의 사정이 있기에 남장을 했겠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큰 고민을 선사했을 거란 생각을 못하게 된다. 『여장 남자와 살인자』의 폴은 그 반대의 경우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른 상대를 좋아해서 하는 고민은 아니다. 그가 겪은 전쟁의 참혹한 상황과 눈앞에서 목도한 죽음, 거기에 그가 살고자 선택했던 여장의 모습이 더해져 계속 그를 괴롭히는 거다. 전쟁이 끝나고 그가 다시 남자로 돌아왔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위 드라마의 남자들과 다른 고민을 한다. 그 상황을 끝내는 법을 찾는 거다. 그리고, 찾았다.

 

 

내가 여자로, 남자로 태어나 살아가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내가 가진 사고와 다르게 가는 마음이 나타났을 때 오는 혼란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지 않지만, 정말 힘들겠구나 싶은 이해를 가지고 싶어졌다. 그동안은 그냥 웃으면서 보는 드라마와 소설이었을 뿐인데, 이제는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렇게 외치면서 보게 되겠지. '여자 주인공 너! 남장 하지 마. 쟤(남자 주인공)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알아? 모르지? 하긴 알면서도 그러면 너 정말 나쁜 애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순간을 버틸 수 있는 게 남장 밖에 없다고 해도, 다시 생각해. 남장만 빼고 하란 말이야~!'

 

 

4회밖에 안 남은 <구르미 그린 달빛>은 아무래도 화초도령 때문에 봐줘야겠다.

너무 재미있지는 않지만, 뭐, 세자 저하와 라온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의 완결을 봐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응?

(근데 원작 소설에서 결말은 어찌되나? 소설에서는 이영과 라온이 연결 되나? 원작을 안 봐서 비교를 할 수가 없네. 참고로 말하자면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드라마가 더 좋았고, <성균관 스캔들>은 원작도 드라마도 좋았음.)

 

 

 

(사진출처 : 여장 남자와 살인자 도서 상세페이지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522322)

 

『여장 남자와 살인자』에 한마디 더 보태자면, 이 이야기는 실화라고 한다. 도서 상세페이지와 책 뒷 표지에 그 주인공 폴의 실제 사진이 있는데, 음... 내가 상상했던 여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냥 체격 좋은 마담? 남자 아닐까 하면서 얼굴을 봤는데, 아마 그건 내가 이 내용을 다 알고 사진을 봤기에 그럴 지도 모르겠다. 저 모습 그대로 '나, 여자예요.' 라고 말한다면, 그냥 음, 이런 외모의 여자구나, 하는 끄덕임도 보낼 수 있겠다. 그가 여장한 외모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의 고뇌를 듣고 보니 그런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을 듯...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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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새기도 전부터 무슨 소리가 들린다. 잠은 다 잔 것 같아서 가만히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라.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하더니, 정말 비가 내리는구나...

 

올 한해, 비가 그리운 계절이 이어진다. 여긴 7월 초에 이틀 정도 폭우가 쏟아지더니 두 달이 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를 싫어하는 내가 비를 기다릴 정도였으니 정말 심했다. 그러다 9월 중순이 지나면서 빗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사실 입맛만 버린 것처럼 내려서 더 갈증이 난다고, 엄마가 그랬다. 여름 수도요금이 평소의 2배 이상 나왔다. 여름이라 욕실에서 사용한 것도 더 많았고, 빨래도 더 자주 돌렸다. 무엇보다 엄마의 텃밭에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줬다. 정말 손바닥만 한 텃밭에 물기가 없어 쩍쩍 갈라지는 걸 보니 물을 주지 않을 수가 없더라. 얘네들이 잘살아서 커가는 모습에 엄마가 한없이 기뻐했는데, 가뭄에 타 죽어가는 걸 보니 엄마도 덩달아 시들시들해지는 기분이 드는가 보다. 그러니 오늘 새벽의 빗소리에 깬 잠이 하나도 아쉽지 않다. 주말까지 내릴 거라고 하니, 조금 넉넉하게, 그렇지만 비 피해는 없게, 그렇게 계속 내렸으면 좋겠다. 지금 내리는 이 비 때문에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며칠 미뤄져 피곤해졌지만, 그래도 괜찮다.

 

 

엊그제 저녁에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다가 서가를 돌고 있는데, 거기서 본 책이 <뷰티 인사이드>이었다. 요즘엔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포토에세이도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 나도 이 영화를 상영관에서 봤다.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이 영화 좋았다. 포토에세이를 보니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괜히 입가에 웃음이 배시시 걸린다. 가슴으로 들어왔던 대사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다시 보인다. 그때 그랬지, 얘네들이 걱정되긴 했는데 달콤해서 부러웠어, 동시에 불안했지, 어떻게 될까 봐 계속 떨리는 마음으로 봤었어...

 

 

 

 

 

 

 

 

 

 

 

 

 

매일 자고 일어나면 외모가 바뀌는 남자.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는데, 그런 그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람은 그의 엄마와 그의 절친 상백이뿐이다. 어제 만난 내 친구가 오늘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게 상상이 되지도 않고, 또 이해한다고 해서 매일 마주하는 그 ‘다른’ 얼굴이 금방 적응되지도 않을 듯하다. 아마 부모의 자리에서 보듬어야 할 당연함과 친구의 자리에서 익숙해진 시간의 힘일 테다. 어쨌든 그렇게 변신하는 남자 우진은 숨은 듯 살아가면서 가구를 만든다.

 

 

거의 십년을 외롭게 살아가던 우진이 가구 편집숍에서 이수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그녀에게 고백도 하고 싶고 데이트도 하고 싶은데, 그의 외모가 걸린다. 좀 더 멋진 모습일 때 고백하고 싶은데, 또 고백하고 나서는 어떡할까. 매일 변하는 그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지?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고 일단 그는 고백한다. 정말 멋진 모습으로 일어났을 때. ^^ 그녀에게 고백하고 같이 밥을 먹고 내일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는 그녀를 만나는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서 변한 모습을 감당할 수 없기에 날을 새며 그녀와 만난다. 그러다 정말, 어휴 ㅠㅠ 그렇게 잠을 참다가 깜빡 졸아버리는데... 그의 외모가 변했다. 그녀와의 약속 시각은 이미 넘겨버렸고, 그는 변한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설 수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듯 서로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흐르고,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고백한다. 자기의 상황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겠지만 설명해야만 했다.

 

 

나는 여기서 이수의 태도가 궁금했는데, 아마 현실이라면 나는 선뜻 그 앞에 다시 나타나지 못했을 것 같다. 그가 한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고 또 확인해보고 싶었을지는 몰라도, 그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못 했을 것 같은데... 이수는 그의 변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더라. 그녀는 정말 그의 모든 것을 이해했을까?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 결국, 앓던 게 터져버렸다. 아무리 마음이 다가가도 걸리는 게 있기 마련이더라. 이수를 위해서 우진은 헤어지자고 말하고 사라진다.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계속 궁금하고 고민이 되더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좋아하고, 그러다 또 헤어지고... 그렇게 헤어지는 이유는 참 많고 다양한데, 이런 상황과 이유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걸까 계속 고민했던 거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이 정도 쯤이야 괜찮아, 견딜 수 있어, 하는, 보통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도 그렇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봐도 헤어지는 경우 대부분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당연하게 이해했던 일들이 더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끝나는 거였다. 비슷하구나 생각하면서도 반복하기도 하는 일.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일. 너무 궁금해서 같은 사람과 일곱 번 만나고 일곱 번 헤어졌던 친구 커플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너희는 어쩌다가 일곱 번이나 다시 만나니?” 그때 대답을 했던 남자 사람 친구는 그녀와 일곱 번째로 헤어졌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이런 게 좋아서 다시 만났는데, 이런 게 싫어서 다시 헤어지게 되더라. 이상하지?” 그래, 이상했다. 다시 만나는 이유와 헤어지는 이유가 똑같은 것도 웃음 나고, 게다가 그 똑같은 이유를 일곱 번이나 반복했던 그 녀석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이해는 내 몫이 아니므로 뭐, 상관없었다. 그런데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일곱 번을 반복한 건 아직도 이해 못 하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친구 커플이 참 많이 생각났는데, 그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들려온 이수의 대사 때문이었다. 다시 우진을 찾아간 이수는 말한다. 너를 못 보고 사는 게 더 힘들었노라고... (정확하진 않지만 뭐 대충 이런 대사였다) 그 친구 커플도 그랬을까? 헤어지는 이유를 분명히 알았는데도, 안 보고 사는 게 더 힘들어서 몇 번씩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걸까?

 

 

정말 좋게 본 영화이지만, 나에게 이 영화가 쌍 엄지 추켜들고 최고를 외친다거나,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애틋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어디선가 본 이 영화의 영화평 때문이다. 영화가 괜찮았어도 포토에세이는 별로 관심 없는 분야인데도 굳이 이 책을 꺼내서 본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궁금했던 영화가 있으면 그냥 보는 편이고 굳이 다른 이의 평점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 영화를 먼저 본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묻긴 한다. 그 영화 어땠어? 괜찮았어? 음, 그렇구나, 정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굳이 이 영화를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근데 안 보려고 하니까 괜히 궁금한 거다. 볼까? 말까? 주변 사람들 평은 그냥 쏘쏘... 그러다 하루 상영 횟수가 1~2회 정도였던 끝물에 보게 되었는데, 영화 예매를 하기 직전까지도 고민하던 차에, 어느 사이트에서 이 영화의 실관람객의 영화평을 보게 된 거다. 딱 한 줄. 한 문장.

 

 

그냥, 너랑 봐서 좋았다...

 

 

그렇구나. 영화의 장르도 내용도 재미도 다 필요 없는 거였다. 누구랑 봤느냐에 따라 그 영화의 평도, 기억도, 다르게 남는 거였는데...

 

 

그럼 이 영화를 혼자 보면 어떤 느낌이라고 적어야 하나?

 

그래서 예매했다.

 

그리고

 

 

그냥, 혼자 봐도 괜찮더라, 라고 나도 실관람객 후기를 쓰고 싶었으나, 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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