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새기도 전부터 무슨 소리가 들린다. 잠은 다 잔 것 같아서 가만히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라.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하더니, 정말 비가 내리는구나...

 

올 한해, 비가 그리운 계절이 이어진다. 여긴 7월 초에 이틀 정도 폭우가 쏟아지더니 두 달이 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를 싫어하는 내가 비를 기다릴 정도였으니 정말 심했다. 그러다 9월 중순이 지나면서 빗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사실 입맛만 버린 것처럼 내려서 더 갈증이 난다고, 엄마가 그랬다. 여름 수도요금이 평소의 2배 이상 나왔다. 여름이라 욕실에서 사용한 것도 더 많았고, 빨래도 더 자주 돌렸다. 무엇보다 엄마의 텃밭에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줬다. 정말 손바닥만 한 텃밭에 물기가 없어 쩍쩍 갈라지는 걸 보니 물을 주지 않을 수가 없더라. 얘네들이 잘살아서 커가는 모습에 엄마가 한없이 기뻐했는데, 가뭄에 타 죽어가는 걸 보니 엄마도 덩달아 시들시들해지는 기분이 드는가 보다. 그러니 오늘 새벽의 빗소리에 깬 잠이 하나도 아쉽지 않다. 주말까지 내릴 거라고 하니, 조금 넉넉하게, 그렇지만 비 피해는 없게, 그렇게 계속 내렸으면 좋겠다. 지금 내리는 이 비 때문에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며칠 미뤄져 피곤해졌지만, 그래도 괜찮다.

 

 

엊그제 저녁에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다가 서가를 돌고 있는데, 거기서 본 책이 <뷰티 인사이드>이었다. 요즘엔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포토에세이도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 나도 이 영화를 상영관에서 봤다.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이 영화 좋았다. 포토에세이를 보니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괜히 입가에 웃음이 배시시 걸린다. 가슴으로 들어왔던 대사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다시 보인다. 그때 그랬지, 얘네들이 걱정되긴 했는데 달콤해서 부러웠어, 동시에 불안했지, 어떻게 될까 봐 계속 떨리는 마음으로 봤었어...

 

 

 

 

 

 

 

 

 

 

 

 

 

매일 자고 일어나면 외모가 바뀌는 남자.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는데, 그런 그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람은 그의 엄마와 그의 절친 상백이뿐이다. 어제 만난 내 친구가 오늘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게 상상이 되지도 않고, 또 이해한다고 해서 매일 마주하는 그 ‘다른’ 얼굴이 금방 적응되지도 않을 듯하다. 아마 부모의 자리에서 보듬어야 할 당연함과 친구의 자리에서 익숙해진 시간의 힘일 테다. 어쨌든 그렇게 변신하는 남자 우진은 숨은 듯 살아가면서 가구를 만든다.

 

 

거의 십년을 외롭게 살아가던 우진이 가구 편집숍에서 이수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그녀에게 고백도 하고 싶고 데이트도 하고 싶은데, 그의 외모가 걸린다. 좀 더 멋진 모습일 때 고백하고 싶은데, 또 고백하고 나서는 어떡할까. 매일 변하는 그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지?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고 일단 그는 고백한다. 정말 멋진 모습으로 일어났을 때. ^^ 그녀에게 고백하고 같이 밥을 먹고 내일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는 그녀를 만나는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서 변한 모습을 감당할 수 없기에 날을 새며 그녀와 만난다. 그러다 정말, 어휴 ㅠㅠ 그렇게 잠을 참다가 깜빡 졸아버리는데... 그의 외모가 변했다. 그녀와의 약속 시각은 이미 넘겨버렸고, 그는 변한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설 수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듯 서로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흐르고,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고백한다. 자기의 상황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겠지만 설명해야만 했다.

 

 

나는 여기서 이수의 태도가 궁금했는데, 아마 현실이라면 나는 선뜻 그 앞에 다시 나타나지 못했을 것 같다. 그가 한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고 또 확인해보고 싶었을지는 몰라도, 그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못 했을 것 같은데... 이수는 그의 변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더라. 그녀는 정말 그의 모든 것을 이해했을까?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 결국, 앓던 게 터져버렸다. 아무리 마음이 다가가도 걸리는 게 있기 마련이더라. 이수를 위해서 우진은 헤어지자고 말하고 사라진다.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계속 궁금하고 고민이 되더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좋아하고, 그러다 또 헤어지고... 그렇게 헤어지는 이유는 참 많고 다양한데, 이런 상황과 이유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걸까 계속 고민했던 거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이 정도 쯤이야 괜찮아, 견딜 수 있어, 하는, 보통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도 그렇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봐도 헤어지는 경우 대부분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당연하게 이해했던 일들이 더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끝나는 거였다. 비슷하구나 생각하면서도 반복하기도 하는 일.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일. 너무 궁금해서 같은 사람과 일곱 번 만나고 일곱 번 헤어졌던 친구 커플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너희는 어쩌다가 일곱 번이나 다시 만나니?” 그때 대답을 했던 남자 사람 친구는 그녀와 일곱 번째로 헤어졌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이런 게 좋아서 다시 만났는데, 이런 게 싫어서 다시 헤어지게 되더라. 이상하지?” 그래, 이상했다. 다시 만나는 이유와 헤어지는 이유가 똑같은 것도 웃음 나고, 게다가 그 똑같은 이유를 일곱 번이나 반복했던 그 녀석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이해는 내 몫이 아니므로 뭐, 상관없었다. 그런데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일곱 번을 반복한 건 아직도 이해 못 하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친구 커플이 참 많이 생각났는데, 그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들려온 이수의 대사 때문이었다. 다시 우진을 찾아간 이수는 말한다. 너를 못 보고 사는 게 더 힘들었노라고... (정확하진 않지만 뭐 대충 이런 대사였다) 그 친구 커플도 그랬을까? 헤어지는 이유를 분명히 알았는데도, 안 보고 사는 게 더 힘들어서 몇 번씩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걸까?

 

 

정말 좋게 본 영화이지만, 나에게 이 영화가 쌍 엄지 추켜들고 최고를 외친다거나,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애틋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어디선가 본 이 영화의 영화평 때문이다. 영화가 괜찮았어도 포토에세이는 별로 관심 없는 분야인데도 굳이 이 책을 꺼내서 본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궁금했던 영화가 있으면 그냥 보는 편이고 굳이 다른 이의 평점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 영화를 먼저 본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묻긴 한다. 그 영화 어땠어? 괜찮았어? 음, 그렇구나, 정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굳이 이 영화를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근데 안 보려고 하니까 괜히 궁금한 거다. 볼까? 말까? 주변 사람들 평은 그냥 쏘쏘... 그러다 하루 상영 횟수가 1~2회 정도였던 끝물에 보게 되었는데, 영화 예매를 하기 직전까지도 고민하던 차에, 어느 사이트에서 이 영화의 실관람객의 영화평을 보게 된 거다. 딱 한 줄. 한 문장.

 

 

그냥, 너랑 봐서 좋았다...

 

 

그렇구나. 영화의 장르도 내용도 재미도 다 필요 없는 거였다. 누구랑 봤느냐에 따라 그 영화의 평도, 기억도, 다르게 남는 거였는데...

 

 

그럼 이 영화를 혼자 보면 어떤 느낌이라고 적어야 하나?

 

그래서 예매했다.

 

그리고

 

 

그냥, 혼자 봐도 괜찮더라, 라고 나도 실관람객 후기를 쓰고 싶었으나, 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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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벤허>를 봤다. 미루기만 하다가 여기 상영관에서 오늘이 마지막 상영 시간표로 잡혀 있기에 예매를 했으나, 그 시간도 못 지킬 것 같아 포기도 했다가, 어찌어찌 무리를 해서 보게 되었다. 나는 4시간에 가까운 오래 전 영화 <벤허>도 안 봤고, 원작도 읽지 않았다. 2시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가 개봉할 때부터 궁금했으나, 뭐, 여건이 안 되어 못 봐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를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 정말 너무 재밌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4시간에 가까운 영화로도 보고 싶어졌고, 원작도 읽고 싶어졌다!

 

 

 

 

 

 

 

 

 

원래 싸움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고, 서운한 작은 마음에서 틀어지기 마련인데 메살라와 유다 벤허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계급의 차이를 겪고 있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물론 그 사이에서 로맨스가 있으니, 메살라는 유다의 여동생을 좋아했으나 유다의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못해서 괴로워했고, 그에 자기 신분에 더 채워야 할 것을 생각하고 로마로 떠났다. 역시 사랑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게 힘든 걸까, 라고 생각하던 차에 유다와 그 집의 하녀로 있던 에스더의 결혼은 역시 유다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로맨스소설 보다 더 설레잖아?!!!)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연신 유다를 칭찬했다. 엄마 엄마, 쟤(유다) 좀 봐. 잘생긴 애가 왜 멋지기까지 해? 누구는 신분의 벽을 무너뜨릴 시도조차 안 하고 떠났는데, 쟤는 결혼하러 가는 여자를 잡으러 말 타고 막 달려가잖아. 쟤네 엄마가 반대 안 했을까? 반대 했겠지? 근데 저렇게 딱 결혼해버리는 것 좀 봐. 역시 역시, 내가 처음부터 알아봤어. 잘생겼잖아!!!!

 

 

보지 않았어도 이미 본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영화인데, 간략(?)하게 줄인 이 영화가 원작의 분위기나 의미를 얼마나 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엇보다 나는 주인공 유다 벤허의 외모에 푹 빠져서는, 거부감 느끼던 교회에 대해서도 살짝 그 반감이 줄었으며, 영화를 보면서 내내 엄마에게 물었다. 원래 성경에서도 쟤네들은 사이가 안 좋아? 저기 물 떠주는 사람이 진짜 예수야? 설정이야, 아니면 성경에서도 저런 내용이야?

 

 

엄마가 영화 보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영화 볼 때 옆에서 말 걸면 싫어하는데) 보면서 계속 궁금한 거다. 그동안 전혀 관심 없던 내용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는, 전차 경주 장면에서는 두 손을 꼭 쥐고 보게 됐는데, 아~~~ 안돼에에에에~~~

경쟁자가 한명씩 경기장에서 사라지고 마지막에 메살라와 벤허만 남겨졌을 때는 완전 흥분 상태였다. 그러다가 경기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그 서늘한 상영관 안이 더워지는 거다. 영화 보면서 이렇게 흥분해보기는 또 처음이다. 저런 전략이 있어서 이길 수 있었군, 역시 무식하게 덤비면 안 되는 거였어,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으면 저렇게 힘을 낼 수 있는 거구나, 싶으면서... 정말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도 가장 기다렸던 게 그 유명한 전차 경주 장면이었는데, 나는 비어있는 앞자리에 몸을 기울이면서 봤다. 두 시간짜리가 이렇게 재밌으면, 4시간에 달하는 영화는 얼마나 재밌을까? 원작은 또 얼마나 섬세할까?

 

 

이런 훌륭한 영화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처음 유다의 등장에서부터 유다만 쳐다봤는데, 특히 유다의 헤어스타일만 집중해서 봤다.

나는 예전부터 이 헤어스타일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내 얼굴형에는 안 어울리기에 마음이 안 좋았더랬다. 아, 달걀형의 얼굴에 정말 잘 어울리는데, 턱을 좀 깎아야 하나? 무섭다. 그냥 포기하자. 그러다 딱 등장한 유다의 헤어스타일을 보니 얼마나 탐이 났던지. 잘생긴 애가 헤어스타일도 내 눈에 들게 하고 나왔기에 눈에 하트가 뿅뿅. 엄마 말로는 옛날에는 저런 헤어스타일을 ‘그지 커트’라고 불렀다는데, 그지 커트가 아니라 멋진 커트잖아!

 

 

 

그러다 유다가 노예선을 타고 5년이 흐른 장면에서는 뜨악~~ 어찌 저러한 모습으로?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라 흘러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란 말이야~!

 

전차 경주를 준비하면서 유다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에서는 또 한 번 반해가지고서는... 아예 저렇게 짧게 커트해버린 거야? 얼굴이 훤히 보이니 또 다른 이미지네... 그렇게 경주에서 이기고 사람들은 파티를 하는데도, 그는 그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고 숙소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는데, 나는 또 그 옆모습을 보면서 어우~ 옆모습도 잘생겼네, 하는데 엄마는 옆에서 “에스더(유다의 아내)를 생각하나 보다.” 하시면서 달달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남은 건 원작에 대한 호감과 유다의 세 가지 헤어스타일이라네... 마지막 상영일이라 아쉽다. 다시 보고 싶은데 말이여...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벤허'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25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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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9-2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두호 만화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만...... 뭐 어쨋든 마음에 흡족하신 모양이니 다행입니다^^
저도 벤허 꼭 보고 싶었는데 벌써 내리는 분위기군요. 저는 뭐 머리모양 보다는 역시 권선징악 복수의 그 이야기와 말내달리는 그 경주....

구단씨 2016-09-28 10: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붉은돼지님!
만화로도 있었군요. (제가 잘 몰라서요... ^^)
여기서는 이 영화가 생각보다 일찍 내려지더라고요. 명절에 개봉했는데 이주만에 내려지다니... ㅠㅠ
안 보려다 봐서 그런지, 기대가 없던 상태에서 봐서 그런지 정말 좋았어요.
저는요. 결말이 그렇게 되는지 몰랐어요. 화해의 마무리라 그게 좀... 흠...

곰곰생각하는발 2016-09-2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지 카트가 정말 힘듭니다... 잘못하면 정말 거지가 됩니다..

구단씨 2016-09-28 10: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님!
그런가요?
그럼 유다는 그 그지 커트에 웨이브를 넣어서 저렇게 보였던 거군요. ^^
만약 제가 언젠가, 언젠가 그지 커트를 하게 된다면 꼭 약간의 웨이브를 넣는 것으로 해야겠습니다. ^^

Breeze 2016-09-2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지 커트` 한동안 유행했었죠.
유다, 멋있죠?
<땡스북>에서 말하기를, 소설의 아주 적은 내용만 영화화 한거라네요.
이 소설 원작이 궁금했졌어요.
저도 <시공사>판을 구입해볼까 했다가, 땡스북에서 <현대지성>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잭 휴스턴에 반하셨군요!! ^^

구단씨 2016-09-28 10:1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 간사님 그 기사 작성하려고 원작까지 다 읽으셨다고 해서 놀랐어요. (목소리 미남. ^^)
암튼 2시간짜리 영화라도 봐서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4시간짜리는 재밌고 섬세할랑가는 몰라도 잭 휴스턴이 아니므로 일단 기대는 접어둠... ㅋㅋ
 

 

남은 생명이 시한부란다. 그걸 가족들은 당사자에게 알리기를 거부한다. 의사도 이에 동참한다. 환자가 충격 받을까 염려된다는 이유였다. 정작 당사자는 환자인데, 그는 자기에게 남겨진 시간을 알 권리가 없을까?

 

종종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상황을 알고 있는 가족들이 정작 당사자에게는 남은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그에 의사도 동참한다. 정확한 상태를 환자에게 말하지 않고, 그저 잘 치료되고 있다고만 한다. 이때 정말 궁금해진다. 환자는 몰라도 되나? 자기에게 남겨진 시간을? 아니면, 자기 몸 상태를 이대로 몰라도 된다고? 그러다 죽음의 순간에 원망하면 어쩌려고?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울부짖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장면을 두고 친구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고. 질병으로 오래 앓다가 죽을 수도 있고, 예고 없는 사고로 즉사할 수도 있는데, 너의 죽음이 어떤 모양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병을 앓고 있다면, 그렇게 너에게 남겨진 시간이 곧 끝난다면, 그걸 아는 게 좋겠느냐고, 모르고 가는 게 낫겠느냐고... 친구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전자라고 했다. 어떤 경우에서든 알고 싶다고 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곧 끝난다는 걸 알고 싶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살아온 시간의 정리는 내가 직접 하고 싶었다. 하다못해, 잔고 0원인 통장까지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의 모든 흔적들은 지우고 가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는 방법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지만,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여전히 전자다. 알고 싶다. 내 죽음의 주인공은 나니까. 주변 사람들이 쉬쉬하면서 나의 상태를 비밀로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임선경의 소설 『빽넘버』를 읽으면서 자꾸만 '만약'을 생각했다. 주인공 원영은 다른 사람의 등에 있는 숫자를 본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 숫자는 그들의 남은 시간이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 남은 날이 하루인 사람의 등에는 붉은색으로 숫자 1이 빛난다. 그러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붉은색 숫자 1은 점멸하면서 희미해지고, 숨이 끊어지면 숫자도 완전히 사라진다.

 

원영은 그게 너무 괴로웠다. 저마다의 숫자를 등에 달고 사는 사람들. 남은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지만, 숫자가 적은 사람을 볼 때마다 힘들었다. 그 사람에게 가서 '당신은 남은 시간이 열흘 밖에 되지 않으니, 곧 정리해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을 거다. 반대로 남은 숫자가 많은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다. '당신은 삼만 이천구백이십일 후에 죽으니 남은 시간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그렇게 말해도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건 똑같을 테니. 어쨌든 남의 인생이다. 원영이 그들의 등에 붙은 숫자를 본다고 해서 그들에게 일일이 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할 의무나 이유도 없다. 그런데 막상 그 숫자가 보이는 사람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부러웠다. 얼마나 좋아. 아무도 모르는 그 남은 시간을 안다는 게, 점쟁이처럼 다 아는 거잖아. 그거 말해주고 복채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의 시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거 자체도 신기했지만,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요! 알고 싶어요, 라고... 나의 마지막 시간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들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아니, 얼마나 되었으면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등에는 초록빛의 긴 자릿수 숫자가 밝게 빛나고 있었으면, 미운 사람의 등에는 붉은 한 자릿수 숫자가 점멸하고 있었으면 하는, 정말 상상에서나 가능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띄웠다.

 

생명의 탄생에는 예정일이라는 것이 있다. 출산 예정일을 알고 그 계절에 맞추어 출산 준비를 한다. 몇 년 뒤에 학교에 갈 테니, 몇 년 뒤쯤이면 결혼도 할 테니……. 인간 삶에는 대력의 예정이 있다. 예정이 있어야 준비도 할 수 있다. 죽는 날도 예정일이 있다면 어떨까? 그건 혹시 축복이 아닐까? 사는 동안에 열심히 살고 죽음이 가까워지면 또 그 준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 (『빽넘버』 180페이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죽는다. 금연, 금주, 규칙적인 운동, 오메가3와 프로바이오틱스, 깨끗한 공기와 물, 채식, 생식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놀랍게도 삶 그 자체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갔으므로, 그의 숫자가 다 소멸했으므로 사람은 죽는다. (『빽넘버』 128페이지)

 

그런데, 정말 다, 만약이다. 그런 걸 알 수가 없잖아. 알 수가 없으니 오늘을 사는 거 아닐까. 이 소설이 그걸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설정은, 다른 이의 등에 있는 숫자로 그들의 남은 시간을 보는 원영은 자신의 숫자는 못 본다. 안 보인다. 죽을 때까지 못 볼 거다. 남들의 시간을 보는 이가 정작 자기 숫자는 못 본다니, 재밌다. 마치 다 알 것처럼 보이는 그의 눈이 부러웠는데, 결국 타인의 남은 시간을 관여할 수 없는 그 자신도 자기의 남은 시간을 모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 소설의 답이 있다. 그냥, 오늘을 살아가시오. 남은 시간을 알아도 문제, 몰라도 문제. 그러니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 말고, 답이 있겠소? 있다면 나에게도 좀 알려주시구려. 에고고...

 

 

며칠 전에 읽은 이 소설이 유독 많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며칠 전부터 자꾸 꼬이고 어긋난 일들이 머리 아팠는데, 싫은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일에 고통스러웠는데, 오늘 아침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오는 짜증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냈다. 냉동실 문을 열자마자 떨어지는 작은 덩어리 하나. 엄마가 남은 만두 몇 개를 비닐 팩에 넣고 얼려두었는데, 그게 떨어졌다. 만두 끝의 뾰족한 부분이 발등을 찍었고, 무슨 혈관주사 맞은 것처럼 빨간 바늘 자국과 그 주변에 바로 퍼지는 푸른 멍. 손을 댈 수 없는 통증에 절뚝거리며 걸었는데, 다행이 크게 붓지는 않아서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등에 붙은 숫자를 간절히 보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던, 헛웃음 나는 일만 계속되었던 하루였다. 이제 다 끝난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은 말도 안 되는 '만약'을 떠올리지 않고, 편하게 잠드는 그런 하루로 끝났으면...

 

햇살이 좋았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빽넘버』 23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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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말을 할 테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은 몇 가지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무식하다’는 표현인데, 내가 유식하지 않아서 사용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상대를 앞에 두고 말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혹시 모르겠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 말을 누군가에게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정말, 많이많이많이 반성...) 무식하다고 말하면 상대는 대뜸 ‘지금 내 가방끈이 짧다고 그러는 거냐?!’ 라며 화를 내는 것도 봤다. 그러니까 이 말은 보통, 학력이 짧다는 말로 들리기 쉬운 듯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무식은 절대 가방끈의 길이와 상관없다. 기본이라 불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되는 단어가 아닐까.

 

내가 사는 이곳 시립도서관은 4개의 분관이 있고, 몇 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시립도서관을 한 달에 한두 번쯤 이용하는 정도인데, 마침 집 근처에 노인 복지관과 함께 작은 도서관이 개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부터 하던 공사가 마무리되고 3월에 개관한다는 것이 미뤄져 결국 7월이 되니 개관했다. 사실, 처음 여기에 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쓸데없이 세금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시립도서관이 있는데, 2주에 한 번씩 이동도서관이 운행하는데, 또 도서관을 만들어 예산을 이렇게 쓰는가 싶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시립도서관까지 가지 못하는 이용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뭐 어떤 식으로든 또 이용자가 생기겠지 싶어 개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개관하던 날. 오후 늦게 도서관에 가봤다. 이 작은 공간을 어떻게, 어떤 책들로 채워놨을까 싶어 분위기 파악이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가봤다. 이용자는 몇 명 없었다. 학교 끝나고 온 학생. 작은 방 한 칸처럼 따로 만들어놓은 유아도서실에 있던 아기와 아기 엄마. 나까지 해서 다섯 명도 안 되는 이용자가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고 몇 분 안 되어 갑자기 막 소란스러워졌다. 가만히 보니 어떤 아줌마가 아이 둘과 함께 들어왔는데, 입구에서부터 참 시끄럽게 들어오더라. 슬리퍼를 신고 왔는데 질질 슬리퍼 끄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 공간이 막 울리던데, 그 소리가 그 아줌마한테는 안 들리는 걸까? 같이 온 아이 중의 한 명은 5~6세 사이로 보였는데, 그 아이 역시 슬리퍼를 신고 열람실을 다다다다다 뛰어다니고 있었다. 도서관에 슬리퍼 신고 오지 말라는 게 아니다. 발소리를 조심해야 하는 게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거, 아닌가? 한참 아이가 그렇게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소리치듯 얘기하면서 열람실을 도는데도 아이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도서관에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도 뭐라고 말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직원 앞에서 막 뛰어가니까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쉬~!’ 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아이는 그걸 보고도 그냥 무시하고 뛰어가면서 소리치고... 아마 그 직원은 애매했을 거다. 소란스럽게 하는 아이를 나무라야 하는데, 아이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어떤 행동을 취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도서관의 서가 사이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소란스럽던 그 아이가 큰 소리로 뭐라 뭐라고 하면서 내 근처로 왔다. 나는 무서운 표정을 하며(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마요미가 “아저씨 무서운 사람이야, 으르릉~” 했던 것처럼, 나 무서운 사람이야, 하는 표정으로) 검지를 입술에 대고 아이에게 ‘쉿~!’ 했는데, 아이는 또 무시하면서 그냥 갔다. 계속 아이가 소란스럽게 하는 상태로 십여 분쯤 흘렀을까.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야, 조용히 해.” 라고 말했는데, 웃긴 건 그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도 쩌렁쩌렁 울리게 큰 소리고 말하고 있더라는 거... 참다가 너무 견디기 어려워서 내가 찾던 책 한 권만 챙겨서 나오는데, 입구에 꽂아놓은 우산을 들면서 다시 서가 사이를 쳐다봤다. 여전히 그 아이와 아이 엄마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소란스러운 상태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서다가 도서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소란을 어떻게 잠재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내 얼굴을 보고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표정.

 

 

 

 

 

 

 

 

그렇게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생각하기 싫은 그 무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도서관에서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나? 아니, 아이 엄마 자체가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조차도 정돈하지 않은 것을 보며, 아이에게 그런 예의를 가르치지 않은 거로 생각하기 쉬웠다. 도서관 직원도, 나를 포함한 다른 이용자도,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감정 상하지 않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도서관 이용한 지 한두 해도 아닌데, 역시 이런 문제는 어렵다...

 

 

여동생은 아이가 둘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동생은 음식점에 가서 식사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식당에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 자기 자리에서 식사해야 한다, 뜨거운 음식을 나르고 있으니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지 마라, 등등. 처음에는 말로 했는데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엄포를 놓았다. “너희들 자꾸 이렇게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면 밥 안 먹고 집에 갈 거야.” 그렇게 말했을 때도 아이들은 엄마가 늘 하는 잔소리로 여긴 듯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자 여동생은 집에 가자며 일어났다. 막 음식이 나온 상태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모두가 일어나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황당한 표정. 설마, 정말 집으로 가겠어? 말만 그러겠지, 싶었나 보다. 그런데 정말 집으로 갔으니, 아이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여동생은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벌써 여러 번 말했는데도 안 들으니, 앞으로 너희가 식당에 가서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다시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겠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밥을 먹는 게 식당에서의 예의라고. 그 이후로 아이들은 변했다. 식당에서 뛰어다니지도 않고, 소란스럽게 하지도 않았다. 놀이방이 있는 식당에서는 식사를 다 하고 놀이방에 가서 놀았다. 이 귀여운 것들. 기본을 아는 아이가 된 걸 보니 내가 다 기뻤다. 이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몇 번 해서 그런지, 처음 도서관에 가서도 한번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 책을 꺼내보면 제자리에 꽂아두고 혹시라도 제자리를 모르겠거든 앞쪽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직원이 원래 자리에 찾아서 꽂아둘 거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다, 혹시라도 너희들끼리 얘기하고 놀고 싶으면 유아실로 들어가라, 고 했다. 유아실은 말 그대로 많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들어가 있는 곳이다. 아직 아기이다 보니 울기도 하고, 가끔 거기서 분유도 주고, 소리 내어 책도 읽어주고 하더라. 그렇게 해도 된다고 별도로 마련한 장소이니 괜찮다.

 

말로 가르치든 행동으로 보여주든, 아니면 아이가 말로 했을 때 알아듣는지 행동으로 보여야만 알아듣는지 다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르쳐야 할 게 분명 있다. 그 안에서 중요한 건 기본이다. 나는 작은 도서관에서 본 그 아이 엄마의 태도를 쉽게 잊지 못하겠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걸 제지하지 않는 엄마, 그냥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아이를 보고 있는 엄마, 엄마가 나무라지 않으니 그게 잘못된 줄도 모르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 무엇이 중요한지, 기본인지 가르치는 게, 비싼 옷, 명품 가방, 명문대 같은 것보다 우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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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질문의 답변을 생각하기 전에 질문을 쭉 읽어보다가 든 생각은, 내가 정말 평범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과 오랜 시간 그 질문들의 답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익숙하게, 때로는 어떤 목적을 두고, 때로는 그냥 페이지 넘기는 재미로, 때로는 가볍게 읽는 습관들. 문제가 많은 책 읽기 습관인데, 그게 또 잘 고쳐지지 않아서 포기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그럭저럭 여전히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까지 그대로다. 별거 없네...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아무 때나 집에서든 밖에서든 상관없이 책을 한 권씩은 들고 다니는데, 주로 집에서 읽는 시간이 많고, 가끔 시간이 여유로우면 밖의 커피점 같은 데서 읽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방바닥을 뒹굴면서 읽기를 좋아한다. 자세가 불량이어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서 읽는 거 어렵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냥 뒹굴면서... 그런데 이런 습관을 고쳐야 하는 절실함이 찾아왔다. 엎드려서 책 보는 습관이 눈에 상당히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했는데, 더는 그런 무시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얼마 전 알았다. 내 눈 상태가 그러하므로... 심각하다. 그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는 지금이다. 의자에 반듯이 앉아서 읽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금은 엎드리거나 뒹굴뒹굴하면서 읽지는 않는다. 거의 2주 정도 이러고 있는데, 습관이란 게 정말 무섭다. 안 하던 자세로 책을 읽으려니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어쩌겠어. 고쳐야지.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종이책을 주로 선호하는데, 요즘엔 가끔 전자책도 읽는다. 전자책은 주로 가벼운 로맨스소설 정도 읽는데, 요즘 인터넷서점에서 전자책 구매할 수 있는 상품권을 많이 주기에 타이밍 맞으면 그 상품권 내려받아서 한두 권씩 사면서 즐겨 읽는다. 문제는, 사기는 하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주지 못해서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는 거... 가끔 진짜 여유롭게 어디 처박혀서 가벼운 소설들 읽고 싶다. 적어도 읽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나게.

읽으면서 메모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일단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읽고,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면 포스트잇 붙여놓은 부분 다시 펼쳐본다. 그때 필요하면 메모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리뷰 작성할 때 열어놓은 한글 파일 안에 붙여 놓는다. 그마저도 안 하면 그냥 잊기도 하고... (여기서도 게으름이 표가 난다.)

 

 

Q3. 지금 침대 머리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와 <치킨의 50가지 그림자>가 손닿는 곳에 있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너무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실상은 요리책이다.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책인데, 나에게는 두 번 읽힐 책은 아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는 술로 가는 그 길이 궁금해서 구매했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라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술을 좋아해야 하는 걸까. 요즘 술 못 마시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 끌리는 책이다. 말술로 마시던 친구가 생각나는 책이기도 하고, 진짜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요즘이기도 하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구분 없다. 그냥 높이나 공간이 맞으면 아무 데나 끼워 넣는다. 그러다가 책을 못 찾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 버릇 안 고쳐진다. 책을 배열해두는 방식이고 뭐고, 사실 책 정리를 거의 안 한다. 필요한 책 찾다 보면 어디 책탑 밑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정리하지 않은 택배 박스 안에서 나오기도 한다. 내가 하는 책 정리는 딱 두 가지다. 책을 사고 아무 데나 꽂아두거나, 안 읽거나 한 번 읽은 책은 내보내는 거. 내보내는 방식도 두 가지, 중고로 팔리면 팔거나 기증센터에 보내거나. 엊그제도 늘 보내던 기증 센터에 책 한 박스 보냈는데, 박스를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분 신간이다. 담당자분 말씀이, 이용자들 반응 좋은 책으로만 꾸준히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는 터라 책이 쌓이면 바로바로 보낸다. 거의 두세 달에 한 번씩인데, 그때마다 한 박스씩, 보통 한 박스에는 책이 대략 20~30권 정도. 그때 한 번씩 하는 일이 있는데, 이 책이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그때는 도서관 자료검색을 하고 비치된 자료라면 바로 기증으로 보낼 박스에 넣고, 도서관에 없는 자료라면 한 번 더 고민하기도 한다.

결론은,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책을 안 읽고 살았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있던 책이 계몽사 세계문학이었는데, 그게 있어도 나는 책을 안 읽었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다. 웃기게도, 대학 때도 전공 서적 외에는,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면 책 거의 안 보고 살았다. 키다리 아저씨나 어린 왕자 같은 책도 나는 몇 년 전에야 읽었으니, 뭐 더 할 말이 있으랴... 내 주변의 독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은 사람들이던데, 나는 그게 가장 부럽더라. 그런 환경이 부럽고,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읽어왔으니까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거구나 싶어서 말이다.

고로,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성인이 되어 읽은 <키다리 아저씨>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시집 몇 권, 소설 몇 권, 인문서 몇 권. 뭐 그 정도이고, 누가 놀랄 만한 책은 없는 것 같다. 아, 그런 건 있다. 같은 책이 두세 권씩 되는 책. 예전에 누가 왜 같은 책을 여러 권 사느냐고 물었는데, 그때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다. 내가 그렇게 산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더라. 누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질문이 가장 난감하다. 취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특히 책에서는 그게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알아서인지 책 추천 거의 안 한다. 누군가에게 선뜻 어떤 책을 권하고, 내 취향의 책을 선물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사람들이 내가 두 권씩 가지고 있던 그 책을 궁금해하면 선물하곤 했다. 그리고 디자인이 예뻐서 두 권 세 권 구매한 책이 있다. 특별판으로 나와서 지금은 살 수 없다거나 하는 책들. 그런 책은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보내는 내 마음이 괜히 더 좋아서. ^^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독자와의 대화나 작가 팬 사인회 같은 행사도 많던데, 나는 굳이 그런 거 바란 적이 없는 듯하다. 그냥 책으로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 나는 왜 작가나, 작가에게 궁금한 게 없을까, 하고...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돈키호테, 안나 카레니나, 나쓰메 소세키 전집, 등등 너무 많은데... 주로 고전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잘 읽히지 않아서 매번 포기했다. 다른 책에 밀리기도 했고... 아무 책도 안 읽고 오직 그 책만 읽어야 한다면서 독방에 갇히지 않는 이상 지금 그 책들을 읽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이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눈이 딴 데로 가서, 다른 책들에 손을 댄다. 깊게 읽지도 않고, 끝까지 읽지도 못할 거면서 매번 그런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바닷 마을 다이어리>를 영화로 못 본 터라,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꺼번에 주문했는데, 금방 읽힐 줄 알았는데 쉽게 안 읽히더라. 주변의 반응은 참으로 좋더만, 나에게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지금의 환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고 싶다. 새로 출간된 7권도 샀단 말이다.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세 권이나 가져가야 하나? 아니면, 세 권밖에 못 가져가는 건가?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는데, 세 권만 가져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다. 꼭 안 가져간 책들이 더 생각나기 마련이라 고르고 골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책들로 챙겨야 할 텐데 걱정이다. 차라리 전자책으로 몇백 권 가져가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문제겠다. 충전을 못 하니 전자책도 못 볼 거고, 종이책으로 가져가자니 너무 무겁고... 그래도 고르라니 일단 종이책으로 골라보는데, 선택의 기준 가장 첫 번째가 이거다. 집중해서 읽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방대한 분량이 엄두가 안 나서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책들을 가져가야겠다. 그곳에 딱 그 책만 있다는데, 그 책을 읽기 싫어도 그 책밖에 없다는데 어쩌겠어. 고를 수 없으니 있는 책으로 읽어야지. 오직 그 책만 읽을 수밖에 없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일까. <돈키호테>, <주석 달린 월든>, <국어사전> 이렇게 세 권. <돈키호테>는 정말 언젠가 한 번은 꼭 완독하고 싶은 책인데, 신간에 밀리고 게으름에 밀려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 도서정가제 시행된 이후로 가장 먼저 산 책인데 말이다. <주석 달린 월든> 역시 마찬가지. 그 유명한 <월든>을 읽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책이 그렇게 안 읽히더라. 무인도에 갇혀 있으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어사전>은 언젠가 한 번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사전에 실린 모든 단어를 읽어봐야지 싶었다. 어휘가 꽝인 내가 가장 궁금한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시간 남으면 또 읽고 해서 늙어가는 기억력 속에서도 단어의 저장이 깊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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