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황제 -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이옥순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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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습기를 머금은 고장입니다. 섬은 아니지만 다른 문명권과 뚜렷한 경계를 이루며, 어느 다른 종족도 일구지 못한 독특한 성취와 개성을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물려 주었습니다. 영국이 거대 통합권역 식민지를 건설하기 전, 유구한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이들 문명이 이룩한 정치 단위가 바로 "무굴 제국"이었습니다.

"GDP 세계 1위였던 무굴!(띠지에 나옵니다)" 아닌게아니라 인구도 엄청나고 워낙에 산출되는 물산이 많으니(이것이 인구 지지력으로 다 이어지는 거죠), 정확한 통계야 현재 남아 있는 게 없다 쳐도 전혀 과장된 문구가 아닙니다. 본디 수백년 전에는 정통 토속 신앙에 기반한 굽타 왕조가 다스렸는데, 페르시아 저 너머에 웅거하던 이슬람이 10세기 이후 이곳까지 넘보게 되죠. 페르시아나 그를 널리 포함하는 호라산 고원의 유목민족, 널리 우즈벡 일대의 전사들이 무슬림화하면서 인도 아대륙의 역사는 아주 복잡하게 꼬이게 됩니다.

"인도의 운명을 걸고 치러진 대회전은 이처럼 싱겁게 마무리되었다"(p26)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바부르의 전략과 재치가 워낙 뛰어났던 이유도 있지만, 라지푸트의 30개 부족이 이브라힘 술탄에 맞서 그를 지지했던 배경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라지푸트는 지금도 인도 공화국의 필수 구성을 이루는 거대한 주(州)이며, 이곳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투지가 굳건하여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독립 세력권을 이뤄 왔습니다.

저자의 해석은 꽤나 명쾌하고 풍부한 감성을 띠는 게 특징입니다^^ 독자인 저도 십여 년 전 인도에 다녀왔었고 일 때문에 이쪽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서 어느 정도는 익숙한데요. 마치 시오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등장인물과 역사적 대사건에 대해 일일이 주관적 평가를 하는 태도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브라힘 술탄은 인기는 없었으나 원칙은 있었다" 같은 평가를 보고선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원칙만 있는 지도자는 항상 인기를 잃게 되는 게 어느 정도는 숙명일까요?

여튼 토착 힌두 세력이 그렇게나 오랜 세월 동안 몰아내려 애쓴 "델리 5왕조 술탄"의 마지막 군주인 이브라힘이 제아무리 변변치 못한 위인이었다 쳐도, 가즈니 왕조, 노예 왕조 이래 수백 년 동안 델리 같은 요충지에 웅거하며 큰 권위를 행사해 온 이 체제를, 불과 반나절만에 무너뜨린 바부르의 수완이란 실로 대단했습니다.

라나 상가가 어떤 책략과 구상을 품었는지는 p30에 자세히 나옵니다.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어쩌면 저렇게나 태평하게 자기 편할 대로의 망상을 즐기는지 모르겠다. 마치 머리(아니 짬뽕사리) 안에 음란한 상상만 가득 채워 놓고, 고전조차도 저질 도색물로 낱낱이 변환시키며 늙고 썩은 욕망을 밑바닥 사이비스럽게 충족시키는 졸혼 치매 노파와 다를 게 뭐 있을까?" 하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라나 상가에게는 그 나름의 의존할 근거가 있었지요. 앞서 말한 대로 10세기 이후부터 고원의 무슬림 전사, 정복자들이 주기적으로 힌두 아대륙 북서부를 침공해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이 덥고 습한 지역의 엄청난 재보(財寶)를 냉큼 갈무리한 채, 혹은 일부만 챙기고선, 이들은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정 관리할 필요가 있으면 자신들이 부리던 "노예"를 황제로 책봉하고서 말이죠. 라나 상가는 일종의 "적응적 기대"를 발동하여, 이 바부르도 결국 제 땅으로 돌아가겠거니 결론을 내린 겁니다.

고원의 정복자들이 힌두스탄에 대해 품은 경멸감은 예로부터 유명합니다. 이 책에서도 누차 인용되는 대로, "재물은 풍성하나 사람들이 아름답지 않다"는 소회는 바부르뿐 아니라 앞선 시대의 여러 지배자들이 공통적으로 표현한 감정입니다. "일을 시키려면 그에 딱 알맞은 기능을 지닌 장인들이 많은 건 확실히 좋다." 이는 마치 중화 대륙을 점령한 몽골, 만주의 유목 종족들이 처음 정복 사업을 완수하고 천자 놀음을 할 때 피력한 소회와 비슷합니다.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았다 뿐이지 전사의 후예로 타고난 운명인 저들 유목민족도, 중원의 농경 민족에 대한 거리낌 없는 경멸감을 무시로 표현했습니다. 청 말기에 어떤 이는 "황실의 재물과 권위를 차라리 양이에게 넘겨줄지언정 가노(家奴)인 한족(漢族)에게 줄 수 없다."는 극언까지 내뱉었죠.

알렉산더 대왕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 받은 그 풍부한 소양으로 내내 그윽한 운치 담긴 행적을 남겼듯, 바부르 역시 시인 기질을 십분 발휘하여 다양한 기록을 후세에 전합니다. 감성 풍부한 부친에게 유감스럽게도 그 낭만적 기질만을 더 많이 물려받았는지, 후계자 후마윤은 처음에 이브라힘 술탄의 잔당을 잘 다루지 못해 꽤 고생을 합니다. 세르 샤는 이브라힘의 부장이었는데, 오히려 모시던 주군보다 더 수완이 좋았는지 거의 아대륙의 패권을 후마윤에게서 빼앗기 직전까지 갑니다.

"당신에게 힌두스탄 전체를 넘겨주었으니(무슨 자랑임?) 내게 라호르만은 남겨 주시오."
"당신을 위해 카불은 남겨 놓았으니 라호르에서는 물러나시오."

카불은, 잘 아는 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중심지이며, 라호르는 지금도 파키스탄의 경제 요충지이고 영국 식민 통치 기간에도 핵심적인 구실을 한 곳입니다. 이 책에는 후마윤이 고전한 이유 중 하나를 놓고, "유목 민족 특유의 분할 상속제"를 들고 있습니다. 사실 대제국의 경영과 분할 상속은 서로 함께 맞물려 갈 수 있는 관계가 전혀 아닙니다.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가문과 국가가 영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르크 제국은 형제(왕자)들 간의 죽음을 불사한 투쟁을 통해 제국의 후계자를 결정했죠. 낭만적이고 맘 좋은 바부르가 자식들에게 두루 영토를 나눠 주다 이런 혼란이 초래되었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단, 출생상의 서열보다는 능력 위주의 대접이 마땅하다는 유목 민족 고유의 정서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의 조부가 말한 대로 힌두스탄에는 뛰어난 인재가 참으로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제국은 1인 기업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크바르 대제는 마치 조부가 여러 협력자들과의 제휴로 대제국을 일군 것처럼, 아직도 도처에서 일어나는 패권에의 도전에 대해 능수능란한 정치술과 탁월한 군사적 능력을 병용하며 맞섰습니다. 책에는 암베르 왕국의 만 싱과 아크바르 대제가 평생에 걸쳐 이룬 인연에 대해 재미있는 서술이 나옵니다.

"신이 천국에서 아름다움을 나눠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만 싱의 검은 피부를 놀리며 스물 살의 젊은 아크바르가 만 싱에게 건넨 농담입니다.

만 싱 같은 뛰어난 인재에게 제국의 위신과 지위를 적절히 배분하며, 제국은 나날이 기반을 다져 나갔습니다. 다신교의 폐습을 결정적으로 혐오하며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게 이슬람 정통파였지만, 아크바르 대제는 융통성 있게 제국 내 세력 균형을 도모하며 타 종파에도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힌두 고전 음악도 애호하며 탄센 같은 예술가를 후원하는 등, 아크바르는 편협한 특정 종족만의 군주가 아닌 만민을 애호하고 보살피는 "제국의 통치자"로서 면모를 더욱 과시했습니다. 인도 역사에 길이 남을 현군으로서 그가 기려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 꼭 불초한 자식이 나와서 골칫거리를 만드는 건 동서고금이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사이비 밑에 더한 사이비 치매 딸이 태어나서 대대로 가정을 망치고 망상 속에 들어앉아 추한 자위를 일삼는 건 그보다는 드물지만 말입니다. 무라드는 아버지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술과 난행에 중독되어 아버지의 속을 문드러지게 하고(p108), 마침내는 노망한 닭처럼 먼지구덩이에 둘러싸여 비참하게 고독사합니다. 망나니 아들 살림은 어울리지 않게도 "자한기르"라는 이름으로 황제위를 잇는데, 세상에 과연 천도가 있는 것인지 이 현명한 아버지이자 "진정한 세계의 정복자"는 사실상 패륜 자식에게 찬탈과 시역을 당한 셈입니다.

대체로 동아시아 제국사의 패턴에서 이런 식으로 정권을 잡은 후계자의 연이은 패착으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까지 가는 게 보통이나, 자한기르는 제 아들 쿠슈라우(그 할아버지 아크바르가 무척이나 아낀 손자)에게 도전을 받고(업보죠), 막내아들의 반란을 겪는 등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어른"이 됩니다. 마치 사이비 닭머리가 어려서부터 사이비를 과학으로 잘못 알고 세뇌 당해 평생 치매에 시달리며 나잇값도 못한 채 추태를 떠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죠. 자한기르는 타 종교 타 문화에 대해서도 관용적이었고(이거 하나만은 아버지한테 참 좋은 본을 받은 것입니다), 반항의 기운이 보이면 가차없이 진압하여 제국의 정치적 안정도 기했습니다. 마치 조선의 신문고처럼 "저정의의 줄"을 마련하여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직접 돌보려 애도 썼습니다.

"그런가? 나의 후비가 실수로 너의 남편을 죽였구나. 그럼 이렇게 하자. 내 아내가 너의 배우자를 죽였으니, 너도 저 여자의 배우자, 즉 나를 죽이면 되지 않겠느냐. 내 어명을 내려 둘 터이니, 나를 네가 죽였다고 해서 누구도 너의 신상에 해를 못 끼치게 하리라."

물론 "쑈"이겠지만, 쑈치고는 대단한 쑈입니다. 여튼 이처럼 공정하고 사심 없는 통치자라는 인상을 신민에게 심어 주어, 초기의 찬탈자 패륜아 이미지를 많이 벗었다고 저자는 평합니다.

이 다음은 샤 자한이 제국을 다스립니다. 샤 자한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타지 마할"을 지은 바로 그 군주입니다. 무슬림은 본디 일부다처가 법제이며, 더군다나 샤 자한은 세상에 둘도 있기 힘든(생각해 보니 동시대에 셋 정도는 있었겠네요) 제국의 통치자인데 배우자 여럿을 둔들 전혀 흠이 될 바 없습니다. 그런데도 꼭 보면 저 오스만 제국에도 그랬고, 일구월심 한 배우자만을 바라기하는 통치자가 이처럼 드물게 나오긴 합니다. 제가 더 이해 안 되는 건, 이처럼 가정적인 부모님을 둔 왕자들이, 어쩜 그리도 잔인하며 인륜의 기본을 저버리는 이상한 성품으로 자라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치 세종의 둘째(적자 중)아들 수양대군 이유가 저지른 악행과도 유사하죠.

아우랑제브는 광신자였습니다. 어쩌면 그 선조들 중 가장 나쁜 형질만 골라서 타고난 게 아닌지, 여태 종묘 사직의 위대한 군주들이 극구 피하던 길만 골라서 걷고, 오늘에 계승해야 할 업적만큼은 기를 쓰고 내던진 못난이였습니다. 어설픈 정복자 흉내를 내다 제국도 망쳐 놓고, 제 자녀들과도 불화하는 등 한 개인으로서도 성격 파탄자였습니다. 말년에는 완전히 망령이 든 듯 실의와 좌절에 가득한 나날을 보냈는데, 타고난 제 깜냥을 돌이켜 보지 않고 미친 망상에 젖은 자들의 말로가 꼭 이와 같습니다.

이후 무굴제국은 처연한 행로를 보냅니다. 삼백 년 전 창업자 바부르가, "골목대장" 정도로 전락한 이브라힘을 신나게 두들겨 제위에 오른 것처럼, 페르시아의 정복자(정확하게는 그 위 고원 지대 아프샤르 족의 우두머리였습니다만 여튼 사파비 조의 몰락 이후 이 일대를 잠시 제패했습니다) 나디르 샤에게 처참하게 공략당한 후(델리 시민 2만명이 학살 당했습니다. p254) 완연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이보다 얼마 전에 사이드 형제 같은 간신에게 황제가 농락당한 적 있고, 이후 샤 알람 같은 군주는 굴람 카다르 같은 악인에게 모진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합니다. 이때 이름만 남은 군주를 보위해 준 곳은 마라타 동맹이었으니, 이 동맹은 백여 년 전 어리석은 광신자 아우랑제브가 그토록 멸절하려 든 바로 그 힌두스탄 중부의 적대 세력이었다는 게 아이러니를 더합니다. 이후 무굴 제국은 거의 형해화되었다가 대영제국에게 병합되는 사정, 우리가 잘 알죠.

예전에 시공사에서 디스커버리 총서(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디쿠베흐트 시리즈를 한국어로 번역한 기획)의 일환으로 "무굴 제국"이란 책을 낸 적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이 그 책보다 분량도 많고, 도판도 대개 양이 비슷하지 싶으며, 그 책에서 살짝 얼버무린 대목을 더 명쾌히 더 감성적으로 서술했으며, 무엇보다 한국인저자의 시각이 반영된 점도 탁월한 미덕입니다. 인도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 교양서로 누구한테나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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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전쟁 - 디지털 쩐(錢)의 전쟁이 시작됐다
비즈니스워치 편집국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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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아~"라는 이상한 유행어가 한때 큰 인기를 얻고 널리 쓰이기도 했습니다. 맥락과 기원을 알고 적당한 경우에 적용하면 상관 없는데, 나이도 적잖이 먹은 이들이 무턱대고 남용하는 건 참 꼴사납더군요. 손과 목의 주름이나 감출 생각을 해야지, 오진 나잇값으로 노화를 분식회계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보면 실소를 넘어 폭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때 사회를 뜨겁게 달군 가상화폐에의 투기 광풍도 물론 한심하거나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사회에는 일정 주기를 두고 특정 상품이나 가치재가 이상 호응, 과대평가를 얻어내어 값이 등귀하기 마련입니다. 바람직하고 않고를 떠나 이는 엄연히 경제활동 인구의 평가와 가치관을 반영하는 현상이며, 이 흐름을 냉철하고 현명하게 포착한 사람은 그 현명함의 대가로 부(富)를 손에 거머쥐게 마련입니다. 이는 개탄하거나 비난할 일이 전혀 아니며, 현 체제가 자본주의를 채택한 이상 순기능이든 부작용이든 함께 끝까지 안고 가야 할 숙명에 가깝습니다. 특정 물품, 서비스의 불안정한 등락은 어느 시대, 사회에나 있었습니다. 흐름을 현명하게 올라타거나 제때 내리는 건 영리한 개인의 숙제이자 도전일 뿐입니다. 시중에는 오늘도, 그 이름마저 생소한 신규 코인이 자신을 좀 봐 달라며 어필하는데, 기업의 IPO에 빗대어, 이런 가상화폐 공개 론칭을 ICO라고 부릅니다.

주워들은 풍월로 값싼 (묻지마 식의 따라하기) 비판을 즐기는 자들도, 막상 손에 돈천이나 냉큼 쥐어주면 마다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어떤 자는 "경제 서적 무조건 못 믿는다"고 터무니없이 가련한 무지를 드러내기도 하던데, 어렸을 때 넉넉하게 자랐다면서 이런 쪽에 절망적으로 캄캄하다는 건 바로 천한 밑바닥 출신 성분을 자백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안 믿을 아침 드라마형 SF를 혼자 쓰는 셈이죠.

저자는 현재 한국의 개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패턴의 투자를 즐겨 행하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소개합니다. 사실 이런 쪽에 손 좀 대어 본 이들은 알겠지만, 내 돈 들여 내가 이것저것 알아봐 가며 시도하는 투자는 공부를 겸하는 이지적 실천이기 때문에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한국의 중산층 이상 집안에선 1980년대부터 아이들에게 용돈(말 그대로 영어의 allowance, 이 범위 안에서 네 맘대로 써 보라는 허용이죠)을 줘 가며 실전 투자 감각을 길러 주려 습관을 들이는 훈육 방법도 썼습니다. 이런 쪽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무작정 적대적인 단세포 반응만 노출하기 마련입니다.

p116을 보면 현재 신한은행과 농협에서 취급하는 가상화폐인 빗썸을 산 어느 투자자(익명으로 B라고만 나옵니다)의 사연이 소개되네요. 아무나 다 거래애 참여할 수 있을 것만 같아도, 마치 신용카드 발급처럼 계좌 개설 과정이 까다롭기 짝이 없습니다(재직 증명서, 급여 명세서 떼어 와라 뭐 해라 등등). 왜 이럴까요? 제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가상화폐 역시 다른 증권상품이나 선물처럼 "공매도"가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투자자들이 그렇게나 공매도 금지시키자고 아우성이지만 사실 투자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패턴 하나를 막아 버리면 시장에 타격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국이나 거래소에서도 이런 안전 장치(많이 미흡하지만)를 하나 마련해 둔 거죠.

무작정, 전망 좋으니 투자 해 보라고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그런 건 머리에 짬뽕만 가득 든 사이비가, 자신의 꼴을 남한테 투사하는 거죠. 못 배워먹었으니 이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이 사례에서 B는 불과 열흘만에, 그간 올렸던 시세차익 절반을 날렸습니다. 과거 주식 투자에서는 뭐가 일단 대세를 탄다 싶으면 일단 뒤늦은 추격매수를 시도해도 그럭저럭 재미를 보는 수가 있었습니다(제가 두어 달 전에 리뷰한 <거래량으로 승부하라>도 상당 대목이 그런 취지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빗썸 투자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가상화폐의 경우 등락 패턴이 매우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거의 하루종일 지켜보다시피하여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상투 잡는" 낭패를 당하기가 일쑤입니다.

이 가상의 사례(정말 "가상"이기만 할까요?)에서 왜 C는 1990년대 후반의 IT버블을 떠올렸을까요? (사실 생각이 이 정도에까지 미치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실전 경험도 감각도 참 뛰어난 편입니다) "코인의 가치보다는 차트나 감에 의해 더 시세가 크게 좌우된다" 사실 당시에는 IT 관련 주뿐 아니라 모든 주식이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유념할 게, 차트야 차트라 쳐도 "감"이 자신의 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무능한 사람이, 희한하게도 적중 여부에 무관하게 자기 감만큼은 철석같이 믿고 거의 미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게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자기 생각에 오류가 끼어들 수 있다는 생각이라도 품는 자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남을 평가할 자격도 없는 인간이 독후감을 쓸 때만큼은 세상 모든 책 구절이 자신의 바보 같은 선입견을 떠받치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기니 기가 찰 뿐이죠.

업비트는 카카오가 미는 가상화폐 거래소입니다. 역시 업계의 기린아가 내놓은 시스템이니만치, 가상화폐 자체에 대한 괜한 범주적 편견 같은 게 이 경우에는 끼어드는 낌새가 덜하네요. 얼마 전 빗썸이 큰 사고를 친 여파가 꼭 아니라고 해도, 이미 "은행"을 보유한 카카오이니만치 그 사회적 공신력이 다른 업체와 비교가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네이버 역시(현재 카카오가 다음과 합병한 만큼, 네이버는 당연히 카카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거래소 시장(가상화폐를 다루는 거래소 자체가 독자적인 시장 영역을 다 이룰 정도이니....) 진출에 관심을 갖습니다. 다만 중국 업체인 오케이코인과 합작했다는 사실이 좀 우려스럽네요. 원래는 김범수 의장도 네이버에 몸 담았던 분인데, 이분은 일찍부터 핀테크 혁신을 다 내다보고 그 안전한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는 스마트폰 메신저 시장 개척에 올인한 건데(메신저가 크니까 그걸 발판으로 브랜치 아웃한 게 아닙니다. 다 철저한 전략, 계산 결과임), 네이버는 그간 좋은 기회를 놓치고 국내 검색 독점자라는 편안한 자리에 안주하다 이렇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저번 빗썸 파동에서도 드러났듯, 가상화폐의 블록체인 기술 자체보다도 거래소의 허술한 관리가 더 큰 문제입니다. 몇 년 전 일본 거래소 해킹 사례도 그랬지만,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런 보안 부실은 어쩌면 운영자 측이 내통, 교사한 방증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각에서 부르는 실정입니다. 물론 한국의 빗썸은 행여 그런 의혹으로부터 단 일점까지 자유롭기를 바랄 뿐이지만 말입니다. 책에서 저자들은 카카오(정확히는 그의 자회사 두나무)의 기린아인 이 업비트를 극구 칭찬하지만, ,예컨대 p152에서 여전히 그 미진한 보안 실태를 꼬집습니다.

빗썸이 큰 홍역을 치른 건 사실이나 책에서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큰 비중을 지닌 순위권 거래소"라고 평가합니다. 아마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독자는 "원 증권회사도 아니고 거래소 분야에서 이처럼 시장이 형성되어 각축을 벌이나" 싶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증권"거래소는 공신력이 생명이라, 어느 나라라도 공법인 형태로 운영할 듯하지만, 사실은 이들 역시 금융기관이 주요 주주로 있는 민간 기업입니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죠. 다만 앞으로는 경쟁력 떨어지는 거래소는 상위 주자에게 흡수 합병될 공산이 큰데, 실제 증권-선물 거래소 들도 그런 전철을 밟아 왔었습니다.

어느 회사라도, 생각 있는 투자자가 대뜸 관심을 주는 대목은 그 지배 구조가 어떤 형태냐 하는 점이죠. 이 책은 특히 현재 가상화폐 관련 주요 거래소나 업체의 지배 소유 구조를 특히 잘 분석해 두었습니다. 본디 투자자들은 관심 있는 이들끼리 정보를 많이, 자주 주고받기에 가십이든 뭐든 화젯거리가 참 많은데, 그런 이들도 아마 처음 들어 볼 만한 정보가 많아서 유익했습니다.

요즘 가상화폐 관련 정보를 담은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 책들은 각기 일장일단이 있고 저자들의 관점도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있지만, 아마 두루 읽다 보면 "내용이 비슷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이쪽 테마 어지간히 찾아 읽으신 분들도, 이 책에서는 "안 겹치고, 새로운" 정보나 언급이 눈에 많이 띌 겁니다. 앞에서 거론한 장점들 말고도, 예컨대 향후 "과세 방침, 정책"은 어떻게 형성될지, 과연 투기나 투자 사이의 경계는 어디인지에 대해 저자만의 명쾌한 관점과 진단이 많이 눈에 띕니다.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독서 스펙트럼"에 이 책, 빠져서는 안될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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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자기 여행 : 에도 산책 - 일본 열도로 퍼진 조선 사기장의 숨결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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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문장과 청신한 사진으로 세계 각 지역의 도자기 문화를 소개해 온 조용준 선생의 기행과 수상이 벌써 여러 권째 일본 열도에 머물며 예리한 시선으로 세부를 관찰하는 중입니다. 규슈, 교토에 이어 드디어 덕천막부 삼백년의 도읍지인 에도에 도착했습니다.

"조선 도자기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도예 공부는 끝난 것이다." 책 띠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대륙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 조선에 비해서도 중앙 집권의 역사가 한참 뒤떨어졌던 일본 역사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예컨대 이 책 중 "... 규슈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가 뒤떨어졌던 혼슈의 각 영주들은...." 같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대륙 혹은 반도를 향해 거대한 침략, 약탈의 기세가 뻗쳤던 시기는 크게 잡으면 두 번 정도입니다. 한 번은 남북조의 혼란기에서 열세를 극복 못 하고 그 좌절의 출구를 침략에서 찾으려 들었던 고무라카미 덴노 진영의 잔당들이 벌인 작태였고, 다른 한 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임진란 7년 전쟁이었습니다. 이 사이에도 크고 작은 왜침은 부지기수였으나, 큰 구간으로 나눠 고찰하자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침략이 대체로 영토 확보의 관점에선 무위로 돌아간 듯해도, 초특급 공예인의 유출, 문화 이식과 유입이란 점에선 왜인들에게 대성공이었습니다. 단지 고급 문화의 향유에 그치지 않고, 이의 체계적 생산을 통해 경제적 발전까지 도모할 수 있었다는 게 그들로서는 큰 수확이고 보람이었습니다.

중등 교육 한국사에서 반드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넘어가는 게 "가야 문화가 열도에 끼친 영향"이며, 그 대표적인 예가 스에키(須恵器) 문화입니다. 이 "스에키"의 어원에 대해 저자께서는 "쇳소리를 낼 정도로 얇고 강한", 즉 쇠(鐵)에서 직접 연원했다는 설을 취하고 있습니다.

책은 도자기 탐구 그 머나먼 여정의 중요 기착점(이자, 책 서문에 의하면 아마도 "종착점")으로 에도, 즉 도쿄를 다루지만 유독 그 전사(前史)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이는 아마도 반도사가 열도의 문화에 끼친 직간접 영향의 중요 결론을 (다소 감개어린 어조로) 이 책에서 일단 큰 틀에서 마무리짓고 싶었던 저자의 의욕이 다분히 반영되어서가 아닌가 추측합니다.

p131 같은 곳을 보면 이런 서술이 있습니다. "... 옛날에는 코마이누(狛犬. 앞의 글자는 '짐승이름 박 자'입니다)라고 쓰지 않고, 고려견(高麗犬)으로 썼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고려라는 글자를 모두 지우고.. 일종의 역사 날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특유의, 그저 언중의 입에서 소리나는 대로 적기보다, 훈독(訓讀)까지를 모두 고려하여 텍스트를 꾸미는 어문학적 관행을 고려해야 문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 명백한 역사적 교류와 영향의 흔적을 인정하지 않고 멋대로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이런 억지스러운 행태는 기실 풍신수길의 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 구축 과정에서 얻은 민족적, 문화적 자신감(비뚤어진)의 발로인데, 이는 도쿠가와 막부의 보다 정교한 봉건 지배 체제의 구축과 더불어 다소 완화되어가는 추세였습니다. 에도 삼백년의 평화와 안정은 곧 조일 관계의 소강 상태로도 이어졌으니 말입니다.

챕터 1에서는 고쿠타니 유적과 이에 관련한 명가들의 찬연한 예술품들이, 눈부시게 화사한 도판 속 자태와 함께 소개, 요약됩니다. 우리가 중등 교육 과정에서 배우기로, 조선 백자의 전형적 특징은 "소박하고 진솔하며 꾸밈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도공들의 예술가 기질 역시 그들의 후원자인 귀족, 지배층의 취향에 따라 그 발현의 수위가 결정되는 게 당연했는데, 비슷한 시기 일본에선 이처럼이나 대조적인  색채와 형상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외적인 화사함만으로 작품의 성취와 완성도를 평가할 것은 물론 아닙니다(물론 겉모습의 추함과 속마음의 일그러짐이 함께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허나 에도 막부의 전적인 후원, 또 이후 전개된 명치 정부에서의 여전한 호의 등에 힘입어 에도의 도자 제조 기법이 이처럼이나 휘황찬란한 경로를 밟은 데 대해서는 뭔가 부러운 마음이 생기는 게 솔직한 느낌입니다. (이는 독자인 제 생각일 뿐이고, 저술의 취지나 맥락과는 무관함을 강조해 두겠습니다)

저자의 어투나 주제의식 표현은 그래서 역설적이게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처럼이나 도도한 빛깔을 뽐낼 수 있던 게, 알고보면 모두 한류의 영향이다." 에도 도자의 성취와 (해외 만국 박람회 출품이나 호평 등) 높은 인기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면 낼수록, 마치 전자제품 판매고가 향상될 때마다 원천 기술에 지급되는 로열티도 덩달아 볼륨이 커지듯이, 우리 조상들이 열도에 끼친 업적과 위대성도 함께 현창되는 것 아니냐는 뜻입니다. 사회 지도층의 완고하고 편협한 인식 탓에, 이처럼이나 뛰어난 기술과 안목이 우리 영토 안의 번영과 풍요, 자긍의 구체적 현시로 이어지지 못한 역사가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조용준 선생의 이 시리즈가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나 이 에도편에서는 화보와 도판이 많아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활기차게 돋우는 구실을 해 줍니다. p226에 보면 "이웃집 토토로와 노리다케"라는 짧은 글이 실렸는데, 저는 꽤 의외로 받아들였습니다만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 작품을 놓고 저자께서는 언제나 힐링의 도구로 삼는다시는군요. 제목의 "노리다케"에서도 알 수 있듯, 에도 도자를 주제로 논함에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바로 노리다케입니다.

전직 베테랑 언론인인 저자를 다만 "도자기 여행 저자"로 처음 접한 독자로서는, 가뜩이나 심취하신 주제가, 필생의 애정 애니메이션과 이런 부분에서 접점을 마련하는 게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하긴 다양한 방면에서 가식과 허위 아닌 진정한 애정을 쏟을 부분을 마련한 인생은 이래서 더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인성이 비뚤어지고 거짓으로 모든 추한 에고를 감추려 드는 썩은 영혼은, 뭘 봐도 가당치도 않은 흠집과 생트집 드러내기에서 변태적 쾌감을 느끼는 것이겠고 말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도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비로소) 개관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 재미있는 건, 일본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도쿄가 수도라며 성문화한 대목이 없다는 사실이다... "(p378) 그도 그럴 것이 덕천 막부 통치 기간 내내 이곳은 그저 소박하게 "강호(江戶.에도)로 불렸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명치 연간 초기에 교토를 일러 "서경(西京. 사이쿄)"라 일컬은 사실을 지적함도 체계상 아주 적절합니다. 꼭 우리네 고려 중기 역사에서 북진 정책의 거점으로 기대되었던 평양이 "서경"으로 불린 것처럼 말입니다.

조 선생의 전작들을 유심히 읽은 독자라면 "러스터 웨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아직 귓가에 생생히 맴돌 터입니다. p270 이하에는 가토 다쿠오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이어지는데, 이분 역시 다지미 코우베이 가마의 장손 출신이라는 점 등은 역시 전작 <교토>편에서 우리가 접한 적 있습니다. 어떤 시리즈를 읽을 때 매권마다 전혀 새로운 사실과 정보, 독특한 감상이 전개되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저자께서 전작들의 포인트를 적정 시점에서 환기시킨다거나, 연계점을 다시 짚어 주는 태도도 독자 입장에서는 꽤 반갑습니다.

"... 앞선 선배들처럼 모모야마 시노와 세토 구로를 원점으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p280)" 새로움을 추구했다는 저자의 한 줄 요약은 정곡을 찌른 통찰입니다. 작가와 예술품의 핵심 특질이 이처럼 쉽고도 명쾌하게 요약되는 건, 그만큼 관찰자가 건조한 기술적 프레임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정직한 감성을 대상에 효과적으로 이입, 투영했다는 뜻입니다. 당치도 않은 생트집 잡기에나 열을 올리며 보는 이의 실소, 조소를 자아내는 노출증 사이비 괴수하고는 적나라한 대조를 이루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 주제에서도 언급 안 될 수가 없습니다. 20세기에 활동(아무래도 에도의 문화사가 근세사, 현대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책에서 우리와 인접한 시대의 인물들이 다뤄지죠)한 하마다 쇼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언급되는데, 아마도 독자들이 단연 주목할 만한 이름은 영국인 버나드 리치일 것입니다. 이쪽 사람들은 왜 이토록 부모나 집안의 간곡한(또 안전한) 충고와 지침을 따르지 않고 구태여 먼 이국으로 건너와 모험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갈 때가 왕왕 있습니다. 아무튼 금기의 사랑을 이루고 일본으로 도피(?)하여 아예 도자기 제조의 달인이 된 그는, 20세기 후반에는 드디어 한국과도 잦은 왕래를 통해 뜻있는 예인, 전문가들과 교분늘 쌓죠.

다시 책 띠지로 돌아가 볼까요?

"조선 도자기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도예 공부는 끝난 것이다."

이 말이 바로 버나드 리치의 "명언"입니다. 그저 평면적인 도자기 소개, 화사한 사진의 행렬에 그치지 않고 조용준 저자의 기획이 "인문"의 반열에 들 이유가 생기는 건, 바로 이런 촘촘하게 연결된 주제의식의 치밀한 "플롯화"입니다. 앞서 저자는 감정의 힐링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어느 작품 감상에 의존, 해결한다고 했는데, 독자로서 저는 문화나 예술에 대해 그저 기예의 정교함이 빚은 미학적 착시의 효과라는 오해, 회의가 생길 때마다 앞으로는 이 책을 펼쳐들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존재는 그만의 필연을 내포했으며, 따라서 우리네 생도 다 그 나름의 절실한 이유를 갖춘 것이라는 점, 재확인이 가능하다는 언질을 얻게 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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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예술교육법 - 아이의 두뇌의 숨은 힘을 깨우는
박선민 지음 / 별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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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그 어느때보다 예술인의 감성이 중요해지고 높은 빈도로 요구되는 요즘입니다. 중근세에도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도처에서 출현하여 동시대인들의 미학 수요를 충족시키고 영혼을 정화해 주었습니다만, 그들의 본분은 실업(實業)이 아니었기에 benefactor들의 환심을 사지 않으면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아무 재능도 없이 태어나, 입에는 거짓말과 자기 기만만 달고 사는 늙고 추한 도시 빈민이 짬뽕 같은 망상과 명예 훼손에 전념할 자유(가 아니라 민폐이자 범죄)와는 크게 구별되어 마땅한 이슈이긴 했습니다만.

세계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대에서도 법률가, 의사, 과학자, 정치인 들만 배출되는 게 아니라, 명 연주자, 작곡가, 화가, 조각가, 그 외 특정 범주에 한정할 수 없는 창의력 넘치는 "크리에이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련 받고, 길러지며, 탄생합니다. 하버드의 진짜 저력은 이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세계 문화에 두루 영향력을 미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진정 부러워해야 할 것은, 상법이나 회사법에 달통하여 고가의 수트를 입고 법정에서 현하의 달변으로 배심원을 매료시키는 일류 변호사들보다, 이 영원한 인류 배움의 전당에서 creative를 갈고 다듬어 인류 자산의 감성과 미학 분야에 기여하는 예술가들입니다. 이뿐 아니라, 예술가적 감성과 자질이 이제 사회 전방위에 두루 요구되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임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이미 몇 세기 전 현대 교육학의 아버지인 존 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p31) "예술 교육의 목적이란, 그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전인격체로서 인간의 성장을 도와 주기 위한 것" 사이비를 과학이라고 믿고 세뇌당한 사이비의 정신에는, 망상과 허위 날조 외에 어떤 인간적 자질이 자리할 여지가 없음은 이런 명언을 통해서도 자명해집니다. 책은 다시, "..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예술을 경험하면서 인격의 자발적인 계발을 이루는 것"에 중점이 놓인다고 강조합니다(그런데 이 말은, 존 듀이뿐 아니라 허버트 리드 역시 약간 다른 맥락에서 거의 같은 표현으로 주장했다고 책에 역시 언급되는군요). 이런 예술 교육에서, 예술은 따분한 공부나 학습이라기보다 "놀이"이며, "다양성지각, 감각, 직관, 사유" 등 네 가지 기능이 서로 상응하면서 통합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2011년 누리과정에의 통합을 통해, 우리 한국에서도 "창의적 표현, 심미적 태도, 풍부한 감성" 등이 주요 목표로 설정되어, 의무 교육 과정뿐 아니라 그 이전 유치원 커리큘럼에서부터 이 예술 교육이 점차 독자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한국에도 그의 고전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부쩍 친숙해진 호이징가(하위징어)는 일찍부터 "호모 루덴스"의 개념을 제시하며, 인격의 참다운 발현과 발전은 일과 놀이의 밀접한 상호 부조와 통합에 의해 가능함을 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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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맑스 - 엥겔스가 그린 칼 맑스의 수염 없는 초상
손석춘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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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라든가 지음(知音)의 고사에서 잘 보듯, 서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아껴 주며 존중하는 친구 간의 우정은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곤 합니다.

칼 마르크스(이하, 책의 표기에 맞춰, 또 저자 손석춘 선생과 같은 연배이신 모든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의 공감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써 "맑스"라고 쓰겠습니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우정과 교분도 또한 이와 같았는데, 관포를 놓고 볼 때 관중 쪽으로 아무래도 능력의 추가 많이 기울고, 뛰어난 감상자, 평론가인 종자기보다는 연주자 백아가 더 중요한 인물이었던 사실과 달리, 맑스와 엥겔스(이 팩션의 공동 주인공이자 1인칭 내러티브)는 사회학(뿐 아니라 인접 모든 학문에 두루)사상 엥겔스의 비중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일각에서 맑스의 학문적 업적은 그간 사회상이 격변한 까닭에 그저 "역사적" 가치만을 고려할 뿐이라고 낮춰 말하기도 하나, 엥겔스의 노작과 자취에 대해서는 (워낙 이분이 방대한 영역에 걸쳐 연구를 남긴 까닭에) 그리 말할 여지도 없습니다.

2008년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큰 약점을 노출하고, 누구나 열심히만 일하면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과 지표에 큰 상처가 남겨질 만큼 양극화가 많이 진행된 작금에, 뜻밖에도 칼 맑스의 사상과 학문 체계에 다시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끈 피케티의 저작은 (본격 경제학 서적인데도) 그 자체가 맑스의 대작에 대한 오마쥬 구실을 겸했으며, 현재 극장가에는 <청년 마르크스>라는 영화가 상영관에서 뜻있는 관객들과 소통하는 중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 우국지사였던 심산 김창숙을 기려 특정 대학교 학생들이 "청년 심산"을 현창하듯, 혹은 철학도들이 (서양인 중에서도 천수를 다 누렸다 할 만한) 헤겔을 두고 "청년 헤겔"을 기리듯(이 책 p29, p30, p46 등에도 나옵니다), 맑스 역시 그 짧다 못할 수명(1818-81이라서 외우기가 편합니다. 또 보시다시피 올해가 탄생 200주년입니다)에도 불구하고 "청년 맑스"란 호칭이 참 익숙합니다. 80년대 학번 어르신들 사이에선 동아리, 토론회 명칭으로도 눈에 선한 구절이기도 하죠.

반면 마땅히 배워야 할 걸 못 배운 밑바닥 노파의 비천한 라면사리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 어쩌구를 떠들다가 뒤늦게서야 현재의 모든 진보 동향이 이에 아득한 기원을 두고 있다는 걸 눈치 챈 후 재빨리 "폭력이 문제였다느니 뭐니"를 떠들고 얼버무리지만 말입니다. 하긴 이런 극단의 밑바닥 근성과 저능이 가장 심각한 폭력의 변이 형태이기도 합니다. 아마 노동 계급이 주도하는 혁명 운운하는 게, 자신이 가상으로 속했다고 착각하는 부유층 타령(1000퍼센트 헛소리입니다)과 잘 안 맞고, 다음으로는 워낙 어리석고 저능해서 웬만하면 한 번 정도는 공부했던 사회과학 트렌드에 단 한 번도 끼지 못한 한심한 처지였기 때문이죠. 남들 마땅히 거칠 걸 못 거친 인생은 이래서 불행하고 비참하며, 마침내는 가정까지 파탄이 나게 마련입니다.

칼 맑스의 저작은 날카롭고 정확한 통찰로도 물론 유명하지만, 그 표현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중의적 구조를 지니고 서양의 고전을 일일이 오마쥬하는 듯한 절묘한 풍취가 또한 일품입니다. 동양식으로 말하면, 사장과 경전에 두루 능한 진정한 문사라고 할 수 있었겠죠. 이책 p46을 보면, 학생 시절 귀족과 결투를 벌이다 눈 위의 작은 상처 정도로 마무리된 "사고"를 두고, 작중 화자 엥겔스(물론 진짜 엥겔스가 아니라 손 선생의 페르소나입니다)가 하는 말이 일품입니다.

"자네를 살려 준 신께 감사할 뿐이네. 자네가 그때 죽었더라면, '종교는 아편'이라는 명구절이 아마도 탄생하지 못할 뻔하지 않았는가?"

신이 혹시 세상을 다채롭게 가꾸는 게 진짜 목적(그렇다면, 좀 이상한 분이군요)이라면, 1838년에 혹시 실수로 그를 살려 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누가 알겠습니까. 근데, 비슷한 해에(지리적으로도 가깝네요) 수학 천재 에바리스트 갈루아를 (역시 결투의 현장에서) 냉큼 어린 나이에 데려가신 걸 보면, 아마 이 천재는 수학사상 큰 업적을 더 이상 못 남기리라(할 일 다 마치고 천재성이 조로함) 여기시고 그리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갈루아가 몇 살 형이고 급진 공화파였음을 감안하면 실제 둘이 못 만난 게 아쉽기도 한데, 역시 모두가 신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에바리스트 갈루아보다는 좀 험악하게 생긴 맑스는, 엥겔스에게 평생의 지기였을 뿐 아니라, 마치 김승옥을 김현이 경탄했듯 일종의 우상으로 군림했던 면이 있습니다. 출신 성분에서 앞서고 그 자신 역시 일세의 지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 면에서 "신으로부터 받았다고밖에는 말 못할" 천재성을 보면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1장을 보면 "악마가 된 랍비"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칼 맑스는 유대인이었고(물론 유대교와는 거의 아무 상관도 없는, 그 이상 세속적일 수도 없을 철저한 반종교주의자였습니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유독 사상의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결벽증, 혹은 교주적 카리스마 같은 게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프로동의 <빈곤의 철학>을 신랄하게 비꼬며, <철학의 빈곤>을 통해 자신의 사상 일단을 나타낸 데뷔가 대단히 인상적이었죠. 이 과정에서 그는 이른바 "공상적 사회주의"를 극복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로 무장하여 "역사의 필연"을 대비하자고 역설합니다. 이 책에서 화자 엥겔스(사실은 저자 손 선생)는 "그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는 오히려 기독교적 박애주의와 한 손을 잡는 게 보통이었는데, 맑스 이후 사회주의가 '과학적 사회주의, 나아가 과격 혁명 노선'으로만 인식되며 기독교와는 영영 절연하게 된 사정을 잠시 언급합니다.

예전에 누가 케인즈에게 "혹시 <자본론>을 읽어 본 적 있냐"고 묻자,  "아니다. 물론 나는 <코란>도 읽은 적 없는 사람이다."라고 대꾸했다는 일화가 있죠(이 이야기는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에도 소개될 정도입니다). 사실 맑스를 보면 저 이란의 故 호메이니라든가(특히 덥수록하게 기른 수염이라든가 형형한 안광 등), 현재까지도 그를 추종하는 여러 아야툴라들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습니다. 셈 족 특유의 옹고집, 외골수 기질 등이 긴 세월의 침식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p107에 보면 아내 예니 폰 베스트팔렌(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귀족 출신입니다)을 가리켜 "예니헨"이라 불렀다는 맑스의 버릇이 소개되죠. -chen은 독일어에서 흔히 쓰는 지소사(指小辭), diminutive이죠. 박식한 손석춘 선생께서 본문엔 일일이 설명도 달아 주십니다. Mädchen(소녀), Hündchen(강아지) 같은 중성명사에서 저런 예를 잘 볼 수 있죠.

p207을 보면 손 선생의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로 들어갈 때 우리가 신사의 나라에서 악마로 살리라곤 전혀 예상 할 수 없었지. 물론 앞 문장에서 "악마"와 "신사"가 들어갈 자리가 살짝 바뀌었지만 말이야." 세련되고 빈틈없는 신사의 매너 속에, 타인과 약자를 사정 없이 갈취하여 눈부신 세계 제국을 이룬 당대 영국의 거대한 위선과 음모를 빗댄 구절이기도 합니다. 악마와 싸우다 보면 오히려 천사가 검댕과 오물을 뒤집어쓸 때도 있으니 말입니다.

메리와 칼도 금슬이 참 좋아 여러 아이를 둔 사실이 유명한데, 음악의 아버지 바흐도 빈민굴에서 살며 아이를 여럿 두어 고생을 자초하기도 했죠(사실 바흐는 좀 경우가 다른, 무책임하고 잡스러운 가장의 일면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실제로 부유한 자본가의 아들이었던 엥겔스가 이런 그의 가정에 자주 원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p384에 보면 헨리 하인드먼의 말을 빌려 "엥겔스는 런던의 달라이 라마"라고 한 평가가 나옵니다. 20세기 초라고 해도,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교황" 처럼 성직자(를 넘어 생불)의 직분명(을 넘어 生佛)이므로 작중 화자 엥겔스는 "내가 만약 달라이 라마라면, 자네는 붓다가 아닌가!"를 외칩니다. 사실 생전에 그토록 종교를 혐오한 그들이었지만(경쟁상대라서?), 세월이 지나도록 그의 추종자, 혹은 객관적 관찰자들도 어느 정도 종교 지도자를 바라보는 외경감과 신비감으로 그들을 대하게 되는 건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맑스나 엥겔스 못지 않게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시는 손 선생의 깐깐한 스타일과 재치는 책 여러 곳에서 묻어납니다. 예컨대 "노동자"는 "노동인"으로 바꿔 써야 한다거나, "독불연보"는 "독프연보"로 달리 불러야 한다는 대목 등이 그것입니다. 촛불 혁명의 먼 기원은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는 1980년대 학생 운동이며, 이것이 2016년에 이르러 드디어 최종적 복권을 이룬 셈입니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차라리 "우리들의 1980년대'를 회상하고 채색하는 이 책은, 그래서 더욱 한국적 현실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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