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오리지널 초판본 고급 양장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양장본 3
조지 오웰 지음, 이수정 옮김, 배윤기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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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이며 양장본입니다. 확실히 예전 책들은 독특한, 고풍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기울어진, 날카로운, 길게 늘여진 폰트이며, ANIMAL FARM이란 제목 밑에 a fairy story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가 읽어도 이 이야기는 당대의 정치 현실을 풍자하는 의도인데, 혹시나 제기될 시비를 차단하려고 이런 문구를 덧붙였을까요? 아무튼 이 고전은 읽으면 기분이 씁쓸하고, 곳곳에 박힌 명언들의 통찰이 놀랍고, 오웰의 정의감과 신조가 존경스럽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실 원서도 그렇고 번역본도 동무(예를 들어 p16 같은 곳. comrade)라는 단어 때문에,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게 어떤 풍자의 의도인지 다 눈치챌 수 있습니다. 메이저 영감은 동물들을 모아 놓고, 지극히 사리에 맞으며 감동적이기까지 한 연설을 행합니다. 메이저 영감이 자신의 이상이 첫발을 디디는 걸 채 못 보고 죽은 건 칼 마르크스를 닮았고, 동물들과 더 밀착해서 활동한 걸 보면 레닌 같기도 합니다. 나폴레온은 누가 뭐래도 스탈린이며, 불쌍하게 축출당한 스노우볼은 트로츠키라는 데에 거의 이론이 없습니다. p24에 나오는 선전선동 담당(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이 기능이 무척 중요하죠) 스퀼러는 (이론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몰로토프라고들 말합니다. 이름을 스퀼러라고 지은 걸 보면 선전 담당에 대해 오웰의 혐오감이 무척 심했던 것 같습니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p44) 현대에도 공동체의 진지한 공론 형성을 막는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행태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도층의 주장에 약간의 이의만 제기해도 "그래서, 당신은 지금 적들의 논리에 찬동하는 반동 노릇을 자청하는 건가? 입 다물어!" 이건 민주주의의 기초를 말살하는, 가장 어리석은 전체주의적 자멸의 시그널입니다. 어떤 조직에서도 이런 식의 입틀막으로 의사형성과 정책 집행이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동무들, 존스가 다시 돌아오는 걸 보고 싶소?" 아니,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메이저 영감은 지하에서 이 꼴을 보고 얼마나 통탄했겠습니까? p64에는 "개들은 존스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폴레온에게 꼬리를 흔들어댔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p77에서 스퀼러는 처음으로 나폴레온을 지도자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왜 7계명의 내용이 슬쩍 바뀌었을까요? 스퀼러는 탁월한 궤변으로, 무엇이 본질인지 생각해 보라며 신조의 훼절을 합리화합니다. 거 참 어디서 많이 보던 수법 같습니다. 제가 21세기 사람이니 90년 전 스탈린 패거리의 가증스런 수법을 목도했을 리는 없고, 분명 최근에 이 비슷한 걸 봐서 치를 떠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클로버처럼 머리가 나빠서 구체적으로 뭔지는 기억이 안 나고, 그저 "잘되어가는 중이겠지"라며 복서처럼 현실을 외면합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조선의 소작농들은 종래의 지주에게 고율의 소작료를 내고, 이민족의 압제에 시달리는 이중의 억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진보 세력은 반외세 반봉건을 부르짖었는데, p86을 보면 암탉들은 혁명 이후에 오히려 더 가혹하게 소출을 빼앗깁니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집행한 집단농장화 정책과 홀로도모르를 풍자한 건데, 이렇게 농민들의 가혹한 희생이 따른다면 제정러시아의 구태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p87에는 나폴레온이 다른 농장주들과 관계 개선을 도모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실제로 1930년대 전운이 고조되자 영국, 프랑스 등은 소련과의 연대를 잠시 모색했지만 이내 무성의한 태도로 돌아섰습니다. 그럼 나치 독일과 손을 잡고 같이 소련을 쳤으면 어땠을까? 히틀러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경제를 재건하려 했고, 어차피 영, 불과 함께 갈 수 없었기에 서쪽으로 치고나올 수밖에 없었겠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프랑스를 불시에 쳐서 굴복시키려 했으나, 병력은 물론 전반적인 국력이 우월한 프랑스에게 반격을 받고 나치가 망했어야 정상이었는데, 하필 당시 너무도 무능한 자들이 정권을 잡은 터라 거꾸로 프랑스가 망하고 말았죠. 저는 만슈타인의 그 전술이 그렇게까지 탁월했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p143에서는 드디어 나폴레온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며 네 발은 좋지만 두 발이 더 좋다는 새 구호가 나옵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세상에! 1939년에 폰 리벤트롭과 몰로토프 외상, 스탈린 사이에 맺어진 불가침조약은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이 작품이 여기서 돌연 마무리되는 것도 당시 오웰이 받았던 충격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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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오리지널 초판본 고급 양장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양장본 4
조지 오웰 지음, 박유진 옮김, 배윤기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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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양장본이며 초판본 당시의 디자인입니다. 그나마 제가 여태 리뷰한 중 이 책은 초판본 출간 연도가 늦은 편이라서 위화감이 덜한 것 같기도 합니다. <동물 농장>은 1945년, 이 책은 1949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빅브라더가 사회 곳곳을 감시하며 통제한다는 발상은 글쎄, 1948년 당시의 기술 사정으로는 좀처럼 떠올리기 어려웠지 싶은데 대단한 상상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빅브라더 비슷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건 겨우 지금에서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가능합니다. 중국은 작금의 발달된 네트워크, 빅데이터 활용 기술을 들며 앞으로는 자신들의 방식이 체제 대결에서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고 10년 전쯤부터 이미 장담해 왔습니다. 이 정도 테크놀로지의 발달이라면 본격 계획 경제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1984년 당시 백남준은 당신이 예언했던 그런 암울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며 비디오아트를 통해 유쾌하게 오웰을 비웃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오웰리언 유니버스가 성큼, 비로소 다가왔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저는 또 놀란 게, p23에 나오듯 유라시아, 오세아니아, 동아시아 거대 삼국으로 통합 정립되었다는 정세 설정입니다(p245도 참조). 지금처럼 가면 결국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인도, 중동 등이 소홀히 다뤄지는 게 살짝 아쉽지만 1948년 당시에는 이들 지역이 전혀 힘을 못 쓸 무렵이었기에 무리도 아닙니다. 인도는 겨우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니 마니 하는 판이었고 중동은 원래 오스만 투르크의 패권 아래에 숨죽이던 초라한 신세였습니다. 터키가 1차 대전 참전으로 완전히 망하고 나서야(1919) 중동 여러 부족이 주권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죠.  

p108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어쩌면 당이 옳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1+1=2가 참이라고 대체 누가 보증할 수 있는가? 중력의 법칙이 틀렸다고 해도 누가 확실한 반론을 제기하겠는가?" 사실 날 설득해 보라며 까마귀처럼 울부짖는 무리들이 믿는 건 이치와 논리, 이성이 아니라 그저 폭력입니다. 폭력 앞에서는 끽소리도 못하며 1+1=5라는 억지에도 기꺼이 수긍하는 무리들이, 존중되어야 마땅한 과학적 진리 앞에서는 "난 아직 설득되지 않았다"며 끝내 바리케이드를 치고 이불속 유격전을 벌입니다. 제일 같잖은 게 뼈속까지 노예의 혼을 가졌으면서 당장 주먹이 날아오지 않는 판에서만 투사연하는 작태입니다. 뭘 머리아프게 따집니까 따지길. 당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겠지.

p136을 보면 가혹한 고문을 통해 불순분자들에 대해 사상개조를 하는 과정이 언급됩니다. 부하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는 소련 공산당의 가장 총명한 이론가이자 지도자들이었는데 재판정에 끌려나와 양순하게 모든 죄목을 인정해서 1930년대 후반 이를 지켜 본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랬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양심과 사실 모두에 어긋나는 바를 아무 이의 없이 긍정하는 모습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영국군에 잡혀 심문을 받고 화형에 처해진 육백년 전의 잔다르크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 혁명가들에게 대체 무슨 짓거리를 저지른 것이었을까요? p136에 해답이 있습니다.

p234에서 오브라이언은 줄리아에게 말합니다. "술이 반이나 남았군." 역시 혁명가의 필수 자질은 대책없는 낙관주의와 튼튼한 간(肝)입니다. 인정하는 동시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중사고의 원칙! 이렇게 뻔뻔스러워야 전체주의자가 될 기본 자격이 갖춰지는 것이겠죠. 전쟁이란, 부분적으로는 파괴를 통해 재생산을 유도하며, 체제 내적 불만을 외부로 돌려 모순을 은폐하는 매우 효율적인 기능을 수행합니다. "자네 손가락이 몇 개인가?" "네 개, 다섯 개, 아니 뭐라도 상관 없으니 고통을 좀 멈춰줘요!(p327)" p390에서 윈스턴은 하찮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하고 빅브라더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랑하게 됩니다. 아,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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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여행 1 - 전생퇴행 최면치료, 존재와 내면의 치유 전생여행 1
김영우 지음 / 전나무숲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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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전생이라는 게 있을까요? 2차대전의 영웅 조지 S 패튼은 자신이 전생에 알렉산더, 나폴레옹 같은 불패의 야전사령관이라고 믿었는데 워낙 자기도취성향이 강한 인물이라 그런 강한 주관적 확신이 제3자에게도 객관적 증거가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기억" 비슷한 것을 증언하는 이들이 있을 뿐더러, 이 책 저자분처럼 전문의로서 높은 명성을 지닌 분까지 전생에 대해 호의적인 연구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내놓으시는 걸 보면 뭔가 귀가 솔깃해집니다. 우리만 해도 윤회의 이치를 핵심 교의로 삼던 불교를 천 수백 년 동안 믿어온 민족이라서 더욱 그런 듯합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환자들의 환각은 대개 두렵거나 지리멸렬하여 일관된 스토리를 읽을 수 없다(p28)." 그렇습니다. 무엇인가를 명징하게 언어로 표현한다는 건 사실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닙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환자들은 대개 자신들이 겪은 과거에 대해 큰 상처를 품고 삽니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공포감이 몰려오고, 이 공포감에 압도될 뿐 아니라 말로 재구성하려는 그 순간 다시 그 순간이 머리에 재생됩니다. 어떻게 두려움 없이 스토리를 선명하게 진술하겠습니까? 이게 가능하다면 그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며 병원에 다닐 필요도 없고, 그가 무슨 증언을 한다면 그건 아마 공익을 위한 봉사에 가까울 것입니다.

영혼이 육체를 벗어난다는 게 가능할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침대에 누운 환자를, 천정 정도의 높이에서 그 환자의 영혼이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가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에, 혹 임사 체험을 했다는 이들이 이 비슷한 증언을 내어놓긴 해도 완전히 신뢰가 가지는 않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의 전생을 기억하는" 환자들의 증언은 어떨까요? p38에서 저자는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으로도 이 현상은 설명이 안 된다고 합니다. 전생이라는 게 있어 실제로 그 생을 살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구체적인 진술이, 호세-원종진씨의 입에서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어떤 이는, 원종진씨의 청일전쟁이나 레콩키스타 상황이, 1980년대 KBS 드라마 <노다지>나 1960년대 클래식 <엘 시드> 같은 걸 보고 재구성되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p91 이하에서 원종진씨는 또다시 신비스러운 증언을 이어갑니다. "사람을 악하게만 생각하는 것과, 행위 때문에 선하게 생각하는 건 둘 다 옳지 않습니다." 참 심오합니다. 행위로 사람이 선해질 수 있다는 건 로마 가톨릭의 오랜 교의이며, 마르틴 루터라든가, 특히 장 칼뱅은 구원 여부는 오로지 신이 태초부터 독점적으로 정해 놓음이지 인간이 제 하찮은 의지로 행위한다 하여 섭리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 하여 이른바 예정설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분은 그럼 전생에 칼뱅이라든가 프랑스에 거주하던 위그노 교도였을까요? 이어 서양고전음악의 음계를 설명하며 삼위일체의 이치에까지 유비하는데 저자의 퇴행 지시에 따라 비로소 긴 변설을 마치고 휴식합니다. 대단한 학식인데 이게 모두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만약 정말 전생의 기억 잔재라면 해당 언어로도 설명이 가능한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동물에게는 영혼이 있을까요? p146에서는 요가난다의 책에서 저자가 읽은 바를 인용하며, 어린 사슴이 지극한 간호를 통해 살아나기 직전이었으나 요가난다의 꿈에 사슴의 영혼이 나타나 자신을 놓아달라고, 이 생을 여기서 마쳐야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간청하는 걸 보고 비로소 치료를 중단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사람과 때로는 비슷한 감정, 유대의식, 친밀감을 형성하는 패턴을 보면 마냥 허황되다며 평가절하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강렬한 끌림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원종진씨는 p186 이하에서 또 신비스러운 증언을 계속합니다. "행위는 남 보라는 듯이 겉치레로 이뤄져서는 안 되고, 나의 선행이 내 이름을 드러내게 하고 내가 이를 즐긴다면, 이는 허상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역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며 신랄하게 질타했는데, 원종진씨의 이 신비한 증언은 과연 어디까지 그 오의를 떨치는 것일까요? 이어 김금례라는 (전생에서의) 이름을 지닌 환자분이 또다른 흥미로운 증언을 이어갑니다. 김영우 닥터께서 리딩하는 전생체험의 행로는 점점 흥미를 더해 갑니다.(1권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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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의 거리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뉴욕 억만장자 거리에 숨겨진 이야기
캐서린 클라크 지음, 이윤정 옮김 / 잇담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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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곳곳에 높이 솟은 마천루들은 이 세계의 경제적 수도가 이곳 뉴욕임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하나하나의 상징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3년 영화 <킹콩>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는데, 이 책 p31에서 "약 15년 전 준공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이라고 한 건 2008년에 있었던 레노베이션 준공을 가리킵니다(캐서린 클라크의 이 책 원서가 2023년에 출간됨). 밴 앨런과 세버런스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들어간 당시의 마천루들은, 욱일승천하는 신생국 미국의 기세를 세계를 향해 과시했습니다.

(*북카페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 p43의 화보를 보면 해리 매클로우(Harry Macklowe)가 발주한 432 파크애버뉴 빌딩에 대한 사진이 있습니다. 해리 매클로우 본인이 홍보를 위해 킹콩 분장을 한 것도 우습습니다. 해리 매클로우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업으로 큰 돈을 번 사람이고 트럼프보다 몇 살이 많죠. 높은 건물을 짓는다는 건 부(富)와 성취의 표상이며,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오르는 욕망을 대유하기도 합니다. 20세기 초 마천루의 아버지 중 하나인 H 크레이그 세버런스의 이름이 severance(절제)인 건 묘한 역설입니다.

p91에는 브래드 잭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친 프레드 트럼프의 법률고문도 지낸 사람이라고 합니다. 잭슨 역시 부동산 개발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으로, <풋루스>에 케빈 베이컨과 함께 나왔던, 키가 178cm 정도 되는 장신의 미녀배우 로리 싱어하고도 한때 사귀었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 페이지에는 그의 친구 중 하나로 마리오 쿠오모라는 정치인이 언급되는데, 이 사람의 아들 중 하나가 앤드류 쿠오모이며, 부친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내내 거론되었지만 그 선을 넘지는 못했으며 이번에는 33세의 조란 맘다니라는 신인에게 패배하여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능력이 뛰어난 비즈니스맨들 중에는 혼자서만 일을 진행하려는 묘한 습벽을 가진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p132를 보면 해리 매클로우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이런 부자들은 증시에 자신의 회사를 공개하여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얻는 데에도 조심스럽더군요. 이 책에서 아주 자주 나오는, 예를 들면 p125 같은 곳의, CIM group(샤울 쿠바 등이 만든)에서 CIM은 대체로 Community, Infrastructure, and Mixed-use의 약자로 통하곤 합니다. CIM 입장에서는 저런 매클로우 부자(父子)의 태도가 대단히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p182 같은 곳을 봐도, CIM과 매클로우 측은 여전히 대립합니다(이 책에서는 "맥클로우"라고 일관되게 표기합니다).

크라이슬러라고 하면 이제 브랜드의 미국 내 인지도가 일본의 토요타나 혼다보다도 못할 지경입니다만 한때는 GM, 포드와 함께 미국의 살아숨쉬는 엔진으로 여겨졌습니다. p218을 보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크라이슬러 빌딩 모두 대공황기(1929~)에 지어졌는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미국 산업의 집요하고 부지런한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만 마천루가 이처럼 곳곳에 들어서면, 일단 많은 이들의 조망권과 일조권이 침해받는데 책 곳곳에 나오는 MAS라는 단체는 Municipal Art Society of New York의 약자입니다. 엘리자베스 골드스타인(p218)이 이 단체의 회장(president)였는데 그녀가 보고서에 쓴 우려의 성명은 일방적 도시개발의 문제점을 압축하여 나타냅니다.

건축은 예술의 일종입니다. 이 책에는 부동산 재벌들과 사업가들뿐 아니라 예술가들도 여기저기서 등장하는데, 티에리 데스퐁(프랑스 디자이너), 히로시 스기모토(책에는 이렇게 표기되지만, 일본어로는 杉本博司[삼본박사]로 쓰므로 스기모토 히로시가 맞겠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인물이므로 surname이 뒤에 오는 관행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등의 이름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p303 이하에 나오는 이른바 스타인웨이 프로젝트에서 마이클 스턴과 케빈 멀로니 두 자본가가 내내 대립하는 모습은, 이런 대규모 건축 사업이 단순히 이권 다툼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 예술의 프레임에 대한 근본적 입장 차이가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책의 원제는 Billionaires' Row입니다. 보통 Avenue는 동서(가로), Street는 남북(세로) 방향의 길을 가리킨다고 하죠. row라고 하면 대개는 avenue와 동의어입니다만, 그 간단한 단어 안에는 세상 속에서 이권과 권력을 거머쥐려는 숱한 군상의 다툼과 이합집산, 네편네편 가르기 등이 압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 수도에서 벌어지는 돈의 전쟁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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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튀르키예(터키) - 최고의 튀르키예 여행을 위한 가장 완벽한 가이드북, 2025~2026년 개정판 프렌즈 Friends 7
주종원.채미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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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중앙북스 프렌즈 터키 편이 이렇게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에로도안 대통령이 국명을 저렇게 endonym으로 바꾼 후에, 주종원 채미정 두 분 저자의 이 책도 튀르키예 편으로 개명하여 책이 나오기 시작한 게 2023년이었고 올해가 3년차입니다. 여튼 매번 책이 말쑥하게, 업데이트 사항도 반영하여 이렇게 출간되니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울 뿐입니다. 저도 3년 연속으로 이 책을 리뷰 중입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스탄불은 정말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계획 도시를 새로 만들어 그 먼 로마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게, 예언자 마호멧의 성천(聖遷)보다 근 삼백년이 앞섭니다. p65 이하에 자세한 소개가 나오는데, 이 도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초를 놓은 지 거의 천년 하고도 백년이 지나 오스만 제국의 젊은 황제 메메드 2세에게 함락되어 기독교의 간판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453년이면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이 나오기 거의 60년 전입니다. 천 년을 기독교 동부 수도로, 다시 5백년을 이슬람의 수도로 지냈으니 문화 유산이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이 책은 한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자세한 실용 정보가 제시되는 점도 매년 좋습니다. 이스탄불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뭔가 치안이 불안하지 않냐는 선입견이 있는데, p66에 경찰 호출 등 여러 긴급 전화번호들이 나옵니다. 한국 총영사관은 (책에 잘 설명되듯) 이곳 이스탄불(유럽 대륙의 끝자락)에 있고 대사관은 공식 수도(아나톨리아 반도 한복판의) 앙카라에 소재합니다. p71에는 튀르키예판 카카오 택시라고 할 BiTaksi에 대한 자세한 어플 설명이 나옵니다.

p116에는 한때 지중해 세계 최강자로 위엄을 떨친 오스만 제국의 영화를 상징하는 군사 박물관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여기는 1933년에 개관했다고 책에 나오는데,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라는, 현대 튀르키예의 국부(國父), 혹은 중시조(重始祖)라고 부를 만한 장군이 설립한 시설입니다. 매일 오후 3시에 키크고 잘생긴 군악대 청년들이 보여 주는 메흐테르 공연도 있다고 하니 특히 여성 관광객들이 참고할 만한 정보입니다. 아타튀르크 같은 이가 세속주의, 근대 지향의 바른 방향을 잡았는데 현재의 영도자인 에르도안은 나라를 정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니 이만저만 큰일이 아닙니다. 

p250 이하에는 에페스에 대한 정보가 자세합니다. 에페스라고 하면 잘 모를 분들도, 에페소스 또는 에베소라고 하면 모를 사람이 없습니다. 이곳은 교부 시대 기독교 5대 교구 중 하나의 중심지였으며 사도 바울이 그곳의 초기 교인들에게 보낸 서간이 신약 27권 중 하나일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이 이슬람세력권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쇠퇴한 건 아니고, 어느 문명권의 대도시도 그러하듯 자연 재해라든가 산업 구조의 개편 등의 이유로 쪼그라들기도 합니다. 터키는 남쪽으로 시리아와 바싹 붙어 있는데, 이 에페스는 바로 그 시리아와의 접경 근처에 자리합니다. 에페소스 자체가 그 극성스럽고 바지런했던 시리아인들의 무역으로 번성했던 곳입니다.

올림포스 산은 그리스 열두 주신이 모여 살았다고 하여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들의 거주지로 유명하니 그 산은 그리스에 있는 게 맞고, p360에 소개된 관광지는 튀르키예에 있는 곳입니다. 그리스 신화도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진 컨텐츠였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헬레니즘 시대를 열며 곳곳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만들었듯 이 올림포스라는 산 이름이 지중해 여기저기에 있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여기도 꽤 유명한 곳입니다.

아무리 메이저 종교라고 해도 신비주의 종파가 꼭 발호하게 마련인데 황홀경에 들어 현세를 초월한 비전을 얻는 게 종교의 오랜 기능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단 도가 지나치면 사이비가 되고, 주류 교단으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합니다. 시아파도 원래 수니파가 보기에 이단이었고 페르시아라는 큰 규모의 정치적, 종족적 단위로부터 지지를 받기 전에는 형편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p556을 보면 이슬람 소수 교단 중 하나인 메블라나의 발생지인 콘야라는 도시가 소개됩니다. 교통 인프라가 잘 발달되었는데 세계 각지로부터 성지 순례를 오는 신도들을 맞으려면 그런 준비가 필요했겠지요.

튀르키예는 영토가 우리 생각보다 넓고, 일차대전 패배 후 아무리 제국이 박살났다고 하나 케말 파샤 영도 하에 그럭저럭 추스린 땅이 꽤 넓습니다. 아나톨리아 반도가 넓다 보니 기후대도 상당히 다양하고, p604 이하에는 에르주룸이라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추운 도시"가 소개됩니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의한면 냉대(D)소우(s) 지역에 속합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의 국교를 기독교로 정했는데, 그 테오도시우스가 요새화한 곳이 바로 여기 에르주룸입니다. 고대 로마의 중추 도시 중 하나였고 옴미아드 왕조(우마이야 왕조)도 이곳을 중시하며 다스렸습니다. 에르주룸에서 "룸"이 바로 로마를 아랍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이번년도판도 알찬 정보가 많고 컬러풀한 편집에 눈이 호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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