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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오리지널 초판본 고급 양장본) ㅣ 코너스톤 착한 고전 양장본 3
조지 오웰 지음, 이수정 옮김, 배윤기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평점 :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이며 양장본입니다. 확실히 예전 책들은 독특한, 고풍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기울어진, 날카로운, 길게 늘여진 폰트이며, ANIMAL FARM이란 제목 밑에 a fairy story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가 읽어도 이 이야기는 당대의 정치 현실을 풍자하는 의도인데, 혹시나 제기될 시비를 차단하려고 이런 문구를 덧붙였을까요? 아무튼 이 고전은 읽으면 기분이 씁쓸하고, 곳곳에 박힌 명언들의 통찰이 놀랍고, 오웰의 정의감과 신조가 존경스럽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실 원서도 그렇고 번역본도 동무(예를 들어 p16 같은 곳. comrade)라는 단어 때문에,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게 어떤 풍자의 의도인지 다 눈치챌 수 있습니다. 메이저 영감은 동물들을 모아 놓고, 지극히 사리에 맞으며 감동적이기까지 한 연설을 행합니다. 메이저 영감이 자신의 이상이 첫발을 디디는 걸 채 못 보고 죽은 건 칼 마르크스를 닮았고, 동물들과 더 밀착해서 활동한 걸 보면 레닌 같기도 합니다. 나폴레온은 누가 뭐래도 스탈린이며, 불쌍하게 축출당한 스노우볼은 트로츠키라는 데에 거의 이론이 없습니다. p24에 나오는 선전선동 담당(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이 기능이 무척 중요하죠) 스퀼러는 (이론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몰로토프라고들 말합니다. 이름을 스퀼러라고 지은 걸 보면 선전 담당에 대해 오웰의 혐오감이 무척 심했던 것 같습니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p44) 현대에도 공동체의 진지한 공론 형성을 막는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행태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도층의 주장에 약간의 이의만 제기해도 "그래서, 당신은 지금 적들의 논리에 찬동하는 반동 노릇을 자청하는 건가? 입 다물어!" 이건 민주주의의 기초를 말살하는, 가장 어리석은 전체주의적 자멸의 시그널입니다. 어떤 조직에서도 이런 식의 입틀막으로 의사형성과 정책 집행이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동무들, 존스가 다시 돌아오는 걸 보고 싶소?" 아니,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메이저 영감은 지하에서 이 꼴을 보고 얼마나 통탄했겠습니까? p64에는 "개들은 존스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폴레온에게 꼬리를 흔들어댔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p77에서 스퀼러는 처음으로 나폴레온을 지도자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왜 7계명의 내용이 슬쩍 바뀌었을까요? 스퀼러는 탁월한 궤변으로, 무엇이 본질인지 생각해 보라며 신조의 훼절을 합리화합니다. 거 참 어디서 많이 보던 수법 같습니다. 제가 21세기 사람이니 90년 전 스탈린 패거리의 가증스런 수법을 목도했을 리는 없고, 분명 최근에 이 비슷한 걸 봐서 치를 떠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클로버처럼 머리가 나빠서 구체적으로 뭔지는 기억이 안 나고, 그저 "잘되어가는 중이겠지"라며 복서처럼 현실을 외면합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조선의 소작농들은 종래의 지주에게 고율의 소작료를 내고, 이민족의 압제에 시달리는 이중의 억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진보 세력은 반외세 반봉건을 부르짖었는데, p86을 보면 암탉들은 혁명 이후에 오히려 더 가혹하게 소출을 빼앗깁니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집행한 집단농장화 정책과 홀로도모르를 풍자한 건데, 이렇게 농민들의 가혹한 희생이 따른다면 제정러시아의 구태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p87에는 나폴레온이 다른 농장주들과 관계 개선을 도모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실제로 1930년대 전운이 고조되자 영국, 프랑스 등은 소련과의 연대를 잠시 모색했지만 이내 무성의한 태도로 돌아섰습니다. 그럼 나치 독일과 손을 잡고 같이 소련을 쳤으면 어땠을까? 히틀러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경제를 재건하려 했고, 어차피 영, 불과 함께 갈 수 없었기에 서쪽으로 치고나올 수밖에 없었겠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프랑스를 불시에 쳐서 굴복시키려 했으나, 병력은 물론 전반적인 국력이 우월한 프랑스에게 반격을 받고 나치가 망했어야 정상이었는데, 하필 당시 너무도 무능한 자들이 정권을 잡은 터라 거꾸로 프랑스가 망하고 말았죠. 저는 만슈타인의 그 전술이 그렇게까지 탁월했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p143에서는 드디어 나폴레온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며 네 발은 좋지만 두 발이 더 좋다는 새 구호가 나옵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세상에! 1939년에 폰 리벤트롭과 몰로토프 외상, 스탈린 사이에 맺어진 불가침조약은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이 작품이 여기서 돌연 마무리되는 것도 당시 오웰이 받았던 충격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