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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 탐구 - ‘좋아요’와 구독의 알고리즘
올리비아 얄롭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4월
평점 :
요즘은 여느 전문직, 학자, 기업주보다도 인플루언서가 학생들 사이에서 장래 희망으로 인기 직종입니다. 실제로도 사람들 사이에 끼치는, 말그대로 영향력(influence) 면에서, 여러 인기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고 컨텐츠를 제작하는 인플루언서의 힘이 매우 큽니다. 심지어 정치의 영역에서도, 많은 구독자, 시청자들을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이, 유력 정치인들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바야흐로 그들의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 평범한 시민들도 인플루언서가 어떤 경로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어떻게 팬덤과 구독자층을 만들어 가며, 이들 인플루언서 뒤에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따로 있다면 그들은 누구이며, 산업과 경제는 어떻게 재편되어갈지 공부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들의 그런 공부에 도움을 줍니다.
"직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그들의 작업이다.(p63)" 사실 기성 세대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뉴미디어 소통이 대체 어떻게 수익을 가져다 주는지부터가 이해가 안 되며, 과연 저런 활동을 직업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조차 혼란스러워합니다. 같은 페이지에 보면 "스타와 고객 사이의 중간 지대를 차지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사실 요즘 어린 세대에게 물어 보면 인플루언서는 그냥 인플루언서일 뿐 그게 뭔지에 대한 설명이 왜 필요하냐고 되묻습니다. 그나마 저자 올리비아 얄롭이, 나이 든 독자들이 알아 듣는 언어로 풀어 써 준 문장들이 저렇습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으나, 저자 얄롭은 서른을 채 넘길말락한 아까운 나이에 불행한, 갑작스러운,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한 해 전, 이 발랄하고 영감어린 책이 츨판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합니다. 여튼 본인도 엠지(한국식 용어지만)면서 저자는 새로운 세상의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는 세대를 위해(?), 때로는 분석적 언어를 쓰면서 어떤 논리적인 해명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주제가 주제이니만치, 이 책은 대체로 발랄하고 경쾌한 필치가 지배적입니다.
이제 미디어의 경계는 허물어진지 오래이며 어느 쪽이 과연 메인스트림이며 주류인지 쉽게 판가름하기도 어렵습니다. 요즘 TV를 보면 고령자, 취약한 청각 보유층을 의식해선인지 아주 높은 톤의 광고 문구를 단순반복하는 촌스러운 보험 광고가 커머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레거시미디어의 주 시청층이 노년층으로 축소되고 엠지들이 TV를 안 본다는 소리입니다.
p79를 보면, 영국 ITV 짝짓기 예능 <러브 아일랜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국으로 치면 에덴,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비슷한 프로그램이며,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의 어느 출연자는 "TV 출연을 통해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라며 목적을 밝히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저자 얄롭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게 놀랍지 않냐?"며 독자들에게 묻기까지 합니다. 이들에겐 소셜미디어에서의 성공 여부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며, 실제 영향력 면에서도 이미 뉴미디어가 레거시를 추월한지 오래입니다. 나이 든 세대가 모르는 새 완전히 새로운 세상 하나가 다른 대륙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란 시대에 따라 수시로 바뀝니다. 요즘 인기 있다는 연예인들을 나이 든 세대에 보여 주면, 왜 이런 얼굴을 예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꽤 나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며 어떤 연예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만 그마저도 지난 시대의 장점, 미덕을 반영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시대에는 소셜 미디어나 뉴미디어(인방 등) 인플루언서로 적합한 얼굴형과 개성이 따로 있다고도 하는데, p154를 보면 (저자 얄롭과 비슷한 또래인) 작가, 언론인 지아 톨렌티노의 말을 빌려 "인스타그램 얼굴"이라는 게 있다고도 합니다. 또 이른바 배디(baddie)라고 해서, 우리식으로 말하면 "쎈언니"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잘 통하는 개성, 캐릭터 유형도 영리하게 고안된다고 합니다. 빠른 출세를 원하면 이런 공식에 맞춰 자신을 세팅, 보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꼭 괴짜스럽고 고립적이거나 반사회적인, 혹은 퇴폐적 분위기의 캐릭터나 컨텐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가족 중심의 전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채널도 있고, 육아 포커스의 키드플루언서(p203)도 있습니다. 이런 뉴미디어가 무슨 외계인들에 의해 생산, 소비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가족의 화목과 육아는 사람들의 영원한 관심사이기 때문에 레거시, 뉴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수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p239를 보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고 허버트 사이먼이 1970년대에 창안한 "관심경제"라는 개념이 소개됩니다(경제수학 교과서를 쓴 칼 사이먼과는 물론 다른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정보가 희소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과잉이었는데 사회의 정보화가 촉진되면서 그 반대가 되어버린 현상을 예리하게 지적했던 이론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맹견에게 물린 심각한 사고는 오히려 뉴스가 안 되고 반대로 사람이 개를 무는 해프닝성 소동은 뉴스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는 거죠. 뉴미디어에 미친 헛소리 같은 과장, 허위요소가 썸네일로 판을 치는 풍조를 두고 많은 이들이 개탄하는데, 사실 이들은 사이먼이 일찍부터 알아낸 원리를 잘 이용하여 소셜미디어 성공 공식에 충실하게,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플루언서는 앞에서도 말했듯 대중과 스타 중간에 서 있는 이들이므로 스타만큼 힘이 있지도 않고 트롤링, 악플 세례에 시달리기도 하고 상처도 받지만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보면 그들은 우리와 별다를 바 없는 그저 한 사람의 직업인이며, 인플루언서의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처량한 처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인플루언서를 집중 취재하고 그들에 대한 평판을 퍼뜨리거나 만드는 이른바 메타 인플루언서라는 직종도 있습니다. 캐럴라인 캘러웨이는 하찮은 소동으로 말미암아 원치도 않았던 유명세를 타고 고생도 많이 한, 일종의 인플루언서인데 실세계의 자신과 별 관계도 없을 어떤 허상이 인터넷 세계에 돌아다니는 걸 보고 깊은 회의에 빠졌다고 합니다(p315).
팬데믹으로 인해 이른바 록다운이 일상화하자 이런 흐름을 타고 록다운 인플루언서들이 새로 등장하여 대중으로부터 환호를 받았습니다. 경제 불평등이 심화하자 시대의 저편에 잊혀진 걸로 간주되었던 마르크스 사상 해설가들이 인터넷에 다시 등장하여 관심을 받습니다. 온갖 정치적 극단주의자들도 계정을 개설하여 정반대의 입장을 설파하며 판매하는 행태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인플루언서는 어설픈 스타, 셀럽을 능가하며 우리들 일상에 침투하고 명시 혹은 묵시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바꿔 놓으려 "영향력"을 행사 중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