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마 국정원 NIAT 몬스터 심화편 - NIAT 최신출제유형문제 3단계 마스터! 언어, 논리추리, 수리력, 도형추리, 도식추리, 정보소양 공시마 국가정보원 NIAT 몬스터
공시마콘텐츠연구소 외 지음 / 공시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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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AT는 국정원 정기공채에서만 시행하는 필기시험으로서 정보요원 직무적격성을 평가하는 National Intelligence Aptitude Test의 약자라고 합니다(p13). 어떤 시험이든 그 전형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게 마련이며, 지난번 기초편에 이어 이 심화편을 잘 마스터하면 적어도 NIAT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NIAT는 언어, 논리추리, 수리력, 도형추리, 도식추리, 정보소양 등의 과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언어영역을 보면 p43이나 p37에서처럼 "지문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혹은 일치하는 것)"을 단순히 묻기도 하며, p29에서처럼 글의 논리적 구조를 바르게 도식화한 선지를 고르게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pp.25~27에서는 글(문단)의 순서가 바르게 배열된 걸 고르게 하는데 이런 걸 감각적으로 잘하는 수험생도 있겠지만 교재 앞부분에 기본 이론이 나오므로 해당 이론 파트를 잘 공부한 후 문제를 풀면 도움이 더 크게 될 것 같습니다. NIAT의 언어영역은 수능의 국어과목이나 행시(5급 공채) 등의 PSAT 유형과 비슷하기에 그 시험들을 잘 준비했던 수험생이라면 따로 공부가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이 NIAT에 좀 더 최적화한 이론, 문제를 이 교재가 담았다고 저는 생각이 되네요.


언어 영역 지문은 어느 시험 중에서라도 제법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을 담기에 수험생들이 적잖이 어려워합니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도 역시 NIAT만의 독특한 개성이 지문에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문의 분야는 미디어학, 언어학, 사회학, 생리학, 경제학, 법학 등 광범위하게 걸쳐 있으며 p92처럼 단순하게 해결 가능한 게 있는가 하면 p52처럼 지문 내용을 하나하나 정확히 이해해야 해결 가능한 게 있습니다. 아주 예전부터 국어(언어)가 공부를 해도 한 만큼 늘지 않고 잘하던 사람이 잘하는 과목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스킬이나 지문 읽는 속도도 그 시험에 최적화한 교재를 골라 쓰면 어느 정도 개선이 됩니다. 언어 영역이 제 입장에서는 자신감도 길러 주고 이 책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파트였네요.


파트 2는 논리추리입니다. p147에 보면 "논리게임"이라는 제목 하에 명제의 진리표, 혹은 각종 명제함수, 또 역-이-대우의 진릿값이 보기 좋게 정리되었습니다. 이걸 수학 커리큘럼에서는 불(Boole) 대수(代數)라고 하는데 처음 보는 수험생들은 어렵게 느끼지만 이치를 알고 공부해 보면 아주 쉽고, 표에 나온 저런 결괏값도 이해가 잘 됩니다. NIAT뿐 아니라 타 출판사에서 펴낸 PSAT 교재도 제가 대략 여러 권을 많이 봤다고 자부합니다만 이 몬스터 심화편 교재가 가장 정리를 잘 해 놓은 것 같습니다. 보기가 무척 편합니다. 교재는 한정된 분량이라서 일일이 긴 설명을 하기 어려운데 이 책은 수험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도 친절히 하고 있네요. 전통적으로 이 단원에서는 힌트를 주고 이로부터 "논리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올바른 결론을 고르는 문제가 자주 출제되는데 확실히 NIAT는 PSAT이나 NCS과는 개성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정원 준비하는 분들은 다른 교재를 보기보다 NIAT 경향에 더 최적화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확실히 유리한 면이 있겠네요. 


이 교재 몬스터 집필진에는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신 이인 원장님도 포함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수리력 파트에서 참신하면서도 NIAT의 경향에 더 근접해 보이는 재미있는 문제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수리 파트 문제 풀 때 잘하는 수험생들은 그냥 기출이나 예상문제 pool만 죽 풀고 준비해도 충분하지만, 이 교재는 문제 말고도 이론 정리 역시 깔끔하게 잘 되어 있더라는 게 개인적 느낌입니다. 다만 p217에 기왕이면 짝수 2n, 홀수 2n-1 같은 것이라든가, n번째 홀수만 모은 것의 합이 n제곱, 뭐 이런 것도 넣어 주셨으면 더 망라적이었겠습니다. p230의 30번 같은 경우 이른바 베이지언 확률 문제인데, p539의 해설처럼 공식(고교 수학의 정석에 나오듯이)을 이용해서 풀어도 좋지만 2x2 표를 만들어 깔끔하게 구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p332 이하에는 입체도형의 전개도 문제들이 다수 나오는데 인쇄가 2색으로 선명하게 나와서 마치 IQ 테스트라든가 퍼즐 문제 푸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잘하는 수험생들도 시험 앞두고 유지하는 감각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자만하지 말고 꼭 풀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보소양 파트는 경제학 지식+ 일반상식이라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NIAT 기출을 철저히 분석하시고 NIAT에 실제 출제될 만한 항목만 딱 추려서 정리해 주신 것 같아 뭔가 믿음이 갔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예상문제가 좀 더 많았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바로 앞 파트 4, 파트 5는 문제 양이 충분했던 것과 좀 비교가 됩니다. 


무엇보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NIAT 대비에만 정확히 포커스가 맞춰진 교재를 푼다는 점, 또 너무 기초 말고 고득점을 위한 심화 사항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마음이 놓이고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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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 재계편 - 한국 경제의 개척자들 한국의 명가 4
김덕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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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기업을 일으켜[興業] 나라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에 보답하는 방법은 여럿이 있겠으며 어떤 이는 육신의 땀을 흘려 노동으로 갚고, 어떤 이는 지혜를, 어떤 이는 손기술을 써서 사회와 공동체에 효용을 제공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큰 기업을 일으켜 대중들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보다 싼 값에 공급하고, 더불어 수백 수천 명의 청장년에게 일거리를 제공하여 생계 수단을 마련하고, 국고를 거액의 세금으로 충만케 하는 것만큼 나라에 기여하는 일이 또 없을 듯합니다. 과거에는 높은 학덕으로 조정 공론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능란한 문장으로 외환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애국이었다면 현재는 미국 대통령에게 투자해 줘서 고맙단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사업상의 공헌만큼 국격을 높이는 애국이 또 없을 듯합니다. 


책 처음에는 "활O수로 독립운동한 민씨 가문과 윤씨 가문"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민씨, 윤씨 모두 한국 전통의 명가로 꼽히는 성씨이긴 하나 두 분의 가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지까지는 책에 소상히 밝히질 않습니다. 여튼 일제 강점기를 통해 여러 애국 사업가들이 독립 운동을 통해 산업, 군사 양면으로 애국을 해 왔음은 잘 아는 사실이나 동화약품 창업주 민씨 가문이 이처럼이나 광범위하게 만주 일대의 독립운동을 후원해 왔음은 개인적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이런 가문이야말로 조선, 아니 한국 국민 모두에게 존경 추앙받아 마땅한 명가이겠습니다. 사실 체했을 때 활O수만큼 잘 듣는 약도, 개발된지 백 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드문 것 같습니다. 


이어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꼽히는 박승직가문 이야기가 나옵니다. 7년 전에도 <박승직 상점>이라는 책을 읽고 리뷰한 적 있는데 이 가문의 입신출세 사연은 읽어도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다만 두산이 현재 고전하고 있으며 부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여 많은 주주들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3년 전 두중 두인코의 부진 혹은 롤러코스터타기 때문에 고생한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잠깐 큰 시세가 나기도 했었으며 이때 청산한 사람들은 큰 수익을 보았겠으나). 멍청한 인간은 언제나, 팔아야 할 때 사고 사야 할 때 팔기 마련이죠. 맞는 말을 안 듣고 고작 지멋대로 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낍니다. 


한국의 명가 하면 인촌 김성수의 가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촌의 죽마고우가 고하 송진우이며 그 직계후손(손자)이 ICC 재판관을 역임한 송상현 서울대 교수님이죠. 인촌의 직계후손이 고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이기도 하고 인촌 하면 동아일보인데 중앙일보 창업자를 장인으로 둔 이건희 회장이 딸을 동아일보 후계자한테 시집보낸 건 당시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만 뭐 가문의 내밀한 사정이 다 있었겠습니다. 인촌은 그 친일 행각이 논란에 오르기도 했으나 그가 일제 강점기 전중반에 민족 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한 공을 감안하면 이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겠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책 저 뒤 p140 이하에 부방 창업자 묵민 이원갑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분이 중앙고보 시절 인촌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하며 부방도 인촌의 경방을 모델로 삼고 경영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나옵니다. 


p60 이하에는 효주 허만정의 업적이 나옵니다. 구씨와 허씨의 대를 이은 협업은 유명하며 1960년대 럭키와 금성의 유명한 동행이 1990년대에 각자의 이니셜(L과 G)을 딴 대기업이 출범(그전부터 럭키금성은 한 그룹 단위였습니다만)하여 한때 재계 서열 2, 3위를 넘봤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와 의령은 인접한 고장인데 전자에서 LG그룹, 후자에서 삼성그룹의 개조(이병철씨 이야기는 p122 이하에 있습니다)가 나온 사실은 지금 새겨봐도 놀라울 뿐입니다. p82 이하에 파트너였던 구인회 창업주 이야기도 따라 나옵니다. LG와 GS(그리고 LS)를 알려면 이 두 파트는 적어도 꼭 읽어 봐야 하겠습니다. 


코오롱그룹의 오운 이원만 창업주의 이야기도 감동적이고 흥미롭습니다. 그룹 이름만 봐도 코리아와 나일론이 새겨져있지만 1950년대 당시 빈곤선 이하에서 허덕이던 한국인들에게 먹고 "입는" 문제의 해결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코오롱 그룹은 선경그룹(현 SK)과 업종도 겹치고 사세도 비슷했으나 현재는 차이가 많이 나며, 코오롱그룹도 이를 의식한 듯 여러 차례 과감한 혁신, 투자를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악재가 겹쳐 뜻대로 잘 안 되는 현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룹 고문을 지낸 나공묵씨가 쓴 p81의 "상지상 정신"에 관한 글은 두고두고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작은 인연이 있는 벽산그룹 김인득 창업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벽산그룹은 현재 사세가 많이 위축되었으나 여전히 뚜렷한 활동 중이며 이 파트를 읽어 보면 대한민국 초창기 한국 대기업들이 주로 어느 업종을 수익원으로 삼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성도 시세를 잘 읽고 업종을 영리하게 전환하여 메인 캐시카우로 삼았기에 망정이지 1960년대처럼 식음료에만 집착했다면 지금 CJ만큼의 규모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대상(구 미원)은 그나마 지금 헬스케어 쪽으로 매진하여 새로운 비전을 전개 중이죠. 


p122에 보면 삼성전무 조홍제씨 이름이 나오는데 책에도 언급되듯 이분은 나중에 효성그룹을 창업했습니다. 재벌 2, 3세 들은 대개 학벌도 휘황찬란한데 효성이라든가 이 책 p244의 한화그룹, p270의 SK 등이 특히 가문 구성원들 학력 좋기로 유명합니다(안 그런 곳도 있고, 아주 안 그런 곳도 있습니다). 훌륭한 가문은 이처럼 모든 면에서 대중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올바른 지적 각성과 사색의 결과가 되어야만 (얄팍한 대중추수나 선동이 아니라) 그 성과가 생산적이고 진정성을 갖추게 됩니다. 저자분이 현역 기자로 치밀하고 정확한 취재를 통해 저술한 책이라서 더욱 돋보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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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마지막 서점
매들린 마틴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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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명이건, 그 문명의 전수(傳受), 혹은 정수(精髓)는 책에 달려 있고 담겨 있습니다. 이슬람의 침략군이 알렉산드리아에 침노해 들어왔을 때 헬레니즘 문화의 소중한 유산도 포함한 도서관의 장서는 모조리 불에 탔습니다. 지금 이 소설은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한 시기, 나치의 공군과 미사일이 그 반대 진영의 수도를 맹폭하려 들었을 때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런던의 소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으며, 그 중에는 한 서점의 점원과 고객도 있습니다. 물론 나치가 이 작은 서점의 존재를 알고 그곳만을 노리는 건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는 여리고 약한 문명의 핵심이 날선 야수의 이빨과 발톱에 찢기기 직전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죠(p55, p99, p204)." p99에서 잠시 거론되는 고전 <오만과 편견>(또 <에마>라든가)은 원래 메인 테마가 사랑이지만, p55(또 저 뒤 p441)에 이름이 나오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 역시 사랑 이야기였던 줄은 잠시 생각해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전후방이 따로 있었던 과거의 전쟁과는 달리 바다를 사이에 둔 먼 대륙에서 얼마든지 폭격기과 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는 현대에는, 하필 이런 때에 인연을 만나 좋은 감정을 갓 싹틔워가는 연인들에게 더욱 잔혹한 시간입니다. 


이제 막 서점 일을, 그것도 뜻하지 않게 덜썩 맡게 된 어린 그레이스에게는 고객 접대나 책과 친해지는 일이나 모든 게 어렵습니다. 어떤 부인이 존 딕슨 카의 새 미스테리 소설을 찾을 때 그녀는 그 저자와 책 제목이 어떤 분류, 부류에 속하는지 감도 오지 않지만 용케 티를 내지 않고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하려 애씁니다. 이것은 젊음의 특권입니다. 서툴러도 무지해도 특유의 열정과 애정으로 적잖이 복잡한 미로를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p50에서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부인이 <크루키드 힌지>에 이어 <기드온 폴즈> 시리즈를 언급했을 때는 아마 뭔가를 착각했거나, 혹은 일종의 위트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딕슨 카가 만들어낸 덩치 크고 해박한 명탐정 기드온 펠의 철자는 Gideon Fell인데, 저 만화 연작 제목에서의 Falls는 하필이면 fell(이걸 동사로 해석한다면)의 3인칭 현재 활용형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에반스! 그 낫씨 놈들이 지금 프랑스에 있다네!(p197)" 원래 나치 독일은 프랑스에 비해 전력이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1차 대전처럼만 프랑스가 애써 막아줬어도 독일은 서부에서 진로가 막혔겠으며 다른 방향으로도 침략의 발길을 내딛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이 소설에 나오는 대로 불과 몇 주 만에 프랑스가 덜컥 함락되어 전세계가 위기에 놓이고 말았으니... "체임벌린은 아직도 사임하지 않았나?" 유화정책(appeasement)로 히틀러를 달랠 수 있었다고 믿은 단견의 체임벌린은 이처럼 국민들의 불신과 실망을 사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백척간두 운명을 그저 하늘이 보우하시길 기대어야 하는 처절한 심경을 프릿차드, 에반스 씨 등 장노년 캐릭터가 잘 대변합니다.


이 당시만 해도 서점 자체가 출판 시장 흥행에 미치는 효과가 대단했던 듯합니다. 소설 중에도 나오지만 배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책의 흥행 여부가 달라지며, 또 손님들의 기호나 트렌드를 정확히 파악하는 직원이나 지배인이 있으면 같은 아이템을 갖고서도 다른 서점보다 훨씬 높은 매상을 올릴 수도 있었습니다(이 점은 지금도 같습니다만). 애착을 가졌던 <비둘기 파이>가 실패를 맛본 반면, <히틀러가 원하는 것>은 시국을 반영하여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고 하니 런던 시민들의 필사적인 마음, 불안감, 절망감이 그대로 엿보이는 듯도 합니다. 


등화관제. 참으로 무섭습니다. 불빛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오면 독일 공군의 폭격기는 바로 그곳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그곳이 그저 전쟁에 무관한 민간인들, 부녀자들이 사는 곳이라 해도 예외가 없습니다. 칠흑처럼 어둡게 밤을 보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절망적인 현실입니까. 어제까지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던 드리스콜 부인 등을 갑자기 싸늘한 시신으로 만나는 그레이스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무서웠겠습니까. 전쟁의 참혹함, 무자비함, 비정함이 이 대목에 생생한 묘사로 등장합니다. 죽는 게 이유가 있어서 죽는 게 아니라, 그저 전쟁의 마수가 아무나 무작위로 희생양을 골라잡아 저세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p289)"에 젊은 여성인 그레이스가 무슨 힘이 있어 맞서겠습니까.


시대배경으로부터 한참 전이긴 하지만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에번스 씨는 캐릭터 에브니저 스크루지를 이 소설 중의 네스빗 부인에게 비깁니다(p378). 어린 시절을 빈한하게 보낸 상처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이해를 하자는 에번스 씨의 통찰은 과연 어린 그레이스의 배려가 미칠 수 없는 어떤 지점을 터치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고 성인으로서의 그런 행동이 용납되는 걸까요? 또 그 반대로, 유복하게 자란 탓에 남을 이해 못하는 인격 미숙자들은 어떻게 또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그레이스가 착하니까 저런 어설픈 설명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간다고 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웨더포드 아주머니는 네스빗 부인을 아예 "짐승 같은 여편네(p384)"라고 평가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이웃을 돕는 정성과 진심이야말로 공동체가 생존을 도모하는 첩경입니다. 이 소설 속에서 여튼 악조건 하에서도 선의와 희망을 갖고 좋은 일에 매진하며 일치단결 속에 국난을 극복하는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환난을 이겨 내는 정신적 자산을 제공도 해 주는, 첫째 가는 친구는 누가 뭐라 해도 책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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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경제 - 바이두(Baidu), 인공지능이 이끄는 미래를 말하다
리옌훙 지음, 장샤오펑 외 엮음, 이서연 외 옮김 / 버니온더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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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마트 시스템으로 변모하여 선택, 결제, 배송 등 모든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해진다는 진단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이 책은 중국에서 첫손에 꼽는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를 중심으로, 미래 경제가 과연 어떻게 재편될지를 종합적으로 다뤘습니다. 흔히 스마트 경제의 중심에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있다고들 하지만, 중국 경제는 그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적응하는 역동성을 보여 왔습니다. 한국의 네이버도 이커머스 등 여러 수익원 창출에 골몰하는 지금, 그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더 진지하게 향후 진로를 고민하는 바이두가 그리는 미래상(혹은 현재상)이 과연 어떨지가 궁금했습니다. 


저자는 세계를 뒤흔드는 양대 요소를 먼저 거론하고, 이를 기술적 요소와 비기술적 요소(p20)로 가릅니다. 특히 IT의 미래상을 진단함에 있어 비기술적 요소를 중시하는 건 요즘 저술들의 공통적인 트렌드인 듯합니다. 아마도 빅데이터 기반 산업에 속하는 중국 기업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바로 광범위한 이용자 패턴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그 방대한 데이터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구 수로는 어떤 시장 어떤 나라도 당해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미 현실과 가상현실은 그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특징을 두고 "조합, 혼합, 전환, 확대(p23)"를 꼽는데,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구체적 양태는 바로 하이브리드 지능(인간/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짐)인 만큼 이 하이브리드 지능이 더 낮은 비용 소비, 더 낮은 에너지 소모를 지향하며 진화하는 과정은 앞에서 언급한 기술적 요소/비기술적 요소의 경계까지도 모호하게 만들며 한층 생산적인 결과를 낳게 할 것입니다. 앞서 저자는 비기술적 요소를 논하면서 "그건 비기술이 아니라 기술 아닌가?"라는 독자의 의문이 가능하다고도 솔직히 인정했는데, 사실 미래에는 어차피 우리가 아는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기에 이런 기존의 틀로 무엇을 분석한다는 자체가 괜한 무리수일 수 있습니다. 


1999년에 타계한 토마스 쿤은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것을 논한 적 있습니다. 저자는 그 1962년의 저술을 인용하며, 기존의 모든 개념틀이 그 존립 정당성과 이유를 상실해 가는 혁신을 바로 AI가 선도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어 저자는 중국 정부 문건에서 과연 어떤 과정으로 스마트 경제가 구체적으로 오늘의 모습을 갖춰 가는지 추적하는데, 이미 2016년 3월에 "인공지능"이 13차 5개년 계획"중에 언급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2016년 5월에 구글 알파고가 처음 이세돌과의 대전으로 세상에 선을 보였으니 중국 정부의 저런 태세가 적어도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주로 바이두의 입장에서 바라본, 현재 중국 IT 업계가 전개하고 발전시키는 스마트 산업(AI 중심의)의 현황과 전망을 밝혀 놓은 내용입니다. 보통 중국 기업이라고 하면 미국과 서유럽의 기업과 학계가 미리 다져 놓은 청사진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살짝 기술만 덧입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연구하며 고민하는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술 곳곳에 중국에서만 쓰는 용어들이 등장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이런 부분이 낯설까봐 역자들이 친절히 각주를 달아 놓기도 했습니다. 


p52에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는데 잠깐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인터넷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강력한 수직통합 기능이 있어서 공유화, 생태화, 협력화를 이루어 인터넷 공간의 운명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강력한 AI 엔진을 중심으로 삼아, 쇼핑몰, 컨텐츠 제작 배포, 지식 데이터베이스,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서비스, 생활 가전 등이 하나의 시스템 하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미래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효율적인 AI를 보유한) 바이두라는 기업이 그 생태계 자체를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의 현실에 비유하자면 네이버나 다음카카오가 자동차, 전자, 쇼핑 등의 산업에서 현대, 삼성, 롯데, 신세계 등 기존의 강자를 몰아내고 통합 강자로 거듭나는 격이겠습니다. 


p121에는 인포그래픽... 겸 내용요약 겸으로 바이두가 앞으로 건설하려고 하는 AI인프라의 청사진이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 대중들이 흔히 오해하듯, AI라는 것은 그저 엔진과 Db의 단순합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하나의 인프라를 구축할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된 것입니다. 또, 인프라라는 건 그 자체로 무엇을 생산한다기보다(그렇기도 하지만), 그 위에서 다양한 개인, 기업 등의 경제주체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본연의 재화, 서비스를 생산해 내는 기반인 것입니다. AI라는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된 사회와 기업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앞으로는 생산성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뜻입니다.


p128에는 "신통치가 가져온 신공간"이란 말이 나옵니다. "통치"라고 하니까 살짝 위화감이 들기도 하는데 너무 중앙집권적인 미래를 상정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바이두는 한 개의 사기업인데 말입니다. 여튼 말이 주는 느낌이 구애받을 게 아니라 저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이 책의 원 의도가 무엇일지를 최대한 이해하려는 쪽으로 읽어 나갔습니다. 비판은 둘째 문제고 일단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정확히 이해를 하는 게 독자의 의무이기 때문이죠. 여튼 저 "신통치"의 궁극적 효과에 대해 책에서는 생산력의 해방, 공공 서비스의 유효성, 업계 관리 감독의 포용성 등 세 가지를 듭니다. 어찌보면 상호 모순으로도 보이지만 이 비전에 대해 그간 몹시도 치열한 고민을 해 온 바이두 측의 노력은 절절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요소 비상사태 관리, 요소 분배 체제 메커니즘이라는 말 역시 약간 낯설게 들립니다. 저는 처음에 요소수(尿素水. 디젤차 필수 액세서리) 문제인가 착각했으나 그 요소가 아니라 경제학에서 생산 요소(要素)라고 할 때의 그 요소였습니다. p129의 "지적 자본 필수 아키텍처 및 플롯" 역시 이 기업의 비전이 얼마나 원대하고 치밀하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체제의 특성상 국가의 지도와 감독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일개 사기업(아무리 중국 1등 포털이라고 하지만)이 이 정도이니...


한때 SK그룹은 일처리의 꼼꼼한 마무리를 3대 사시(社是)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이 책 p145에는 "능력의 제품화는 85%주의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제품과 고객 사이의 관계 형성이 가능한 건 나머지 15%에 달렸다는 설명이 뒤에 따라 나옵니다. 이를 위해 바이두는 개방형 오픈소스 협력, 양성 생태 구축 등을 목표로 내세웁니다. 우리 나라 대기업들은 과연 얼마나 상생적 생태계 구축에 노력할까요?(위의 양성 생태 구축이, 한국식으로는 윈윈 생태계 지향으로 읽힙니다) 또 네O버는 얼마나 포용적인 플랫폼을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오픈시키고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답답한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 정도로 놀라운 비전을 만들어 나갑니다. 얼마나 실천에 옮겨질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하면 워낙 한국이 독보적인 전열과 경쟁력을 갖추고 중국 시장을 석권한다고들 여겼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추세가 계속될 수 있을까요? "바이두의 비전 안에는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목표가 포함되었으며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야 한다(p165)는 게 루위안 그룹 부사장의 말입니다. 특히 엔터는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사업 분야이며 공감과 가치 공유, 인간 우선의 이념이 구현되지 않으면 그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네 엔터 거인들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요? 물론 3대 메이저들도 포털과의 협업에 근래 골몰하기는 합니다만. 


"윤리가 이끌고 기술에 체온을 더하는 바이두(p185)" 혹시 패들패들(p218)이 뭔지 아시나요? 스마트 시대 바이두의 AI 운영체제를 가리킵니다. CTO인 왕하이펑은 과연 최고 의사 결정권자 답게, 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기업인 답게, 천 팔백 년 전 활동했던 성리학의 완성자 주희를 소환하여 그 비전의 볼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스마트홈은 중국인들의 가정 생활을 훨씬 윤택하게 만들면서도 기술에 인간성 자체가 매몰되지 않게 돕습니다. p300에는 춘추전국시대의 말 감별사 백락도 인용되는데 이런 걸 보면 풍부한 고전 문화를 보유한 중국이라는 나라의 인문 토양이 너무도 부럽죠. 


중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광대하다 보니 각 성(省) 내부를 동질화하고, 성과 성 사이를 일체화하는 작업과 지향점이 어느 사업 어느 단계에서나 중요시됩니다. p259에서 말하는 "지역 통합" 역시 이런 개념이긴 하나 바이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모델이 유럽 연합이라든가 아프리카, 남미 등 지역 분열과 대립으로 골머리를 앓는 다른 나라에까지 적용, 수출될 수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잘만 되면, 미국과 서유럽이 내세우는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하나의 대안 제시라는 선전(아직까지는)에 설득력이 묵직히 실릴 듯합니다. 


p370에는 바이두가 야심차게 내세우는 연산칩 쿤룬이라든가, 이를 기반으로 삼은 클라우드 서버에 대한 자랑이 나옵니다. 이는 충분히 외부에 자랑할 만한 우수한 하드웨어 인프라의 구축이며, 다른 개발자나 기업들도 구글만을 유일한 플랫폼이나 생태계 조성자로 여기지 않고 이 바이두라는 대안의 품에 자진하여 안길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여기에서 더욱 정밀도와 완성도를 높인 위성 항법 시스템을 도출할 수 있으며 이것이 현행 GPS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모든 비전이, 바이우가 지향하는 AI 인프라에서 모두 태동 가능한 것입니다. 가뜩이나 중국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앞서가는 판인데, 이 바이두의 AI는 사고율이 낮아지고 더 원활히 작동하는 교통 시스템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산업 인터넷에서 산업 네트워크로, (단순) 인터넷에서 스마트 인터넷으로, 고립에서 생태로" 이것이 AI를 통해 나아가려는 바이두의 미래입니다. SF에서 그리던 여러 가지의 미래상 중 가장 일찍, 가장 완성도 있게 먼저 나타난 것이 망(罔)의 발전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지식을 집적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발전과 생존을 도모하려는 본능 자체가 강합니다. 고립적 기술보다는 융화와 소통을 위한 기술이 더 중요하며, 바이두가 이 점을 세계 최초로 각성하여 휴머니즘과 밀접히 결합한 미래상을 완성해 나간다면 중화 민족이 다시금 세계의 리더로 거듭날 날도 멀지 않았겠습니다. 정신 차려야 할 건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한국입니다. 언제까지 저들이 잠자고만 있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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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80년대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 백용운의 단편집입니다. 모두 열 네 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제가 재미있게 읽은 건 "고가(古家)"입니다. 이 "고가"는 1986년 행림출판사에서 나온 <우수단편모음>에도 다른 작가들의 단편들과 함께 수록되었습니다. 후자는 지금 당연히 절판되었고 제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이 든 노인들에게는 그저 자식들이 유일한 희망이요 보람입니다. 주인공 노인은 시골에 제법 큰 집을 짓고 사는데 전통적인 한옥입니다. 그렇다고 아흔아홉 간 기와집 같은 건 못 되며 다만 정원의 조경이 서양식을 약간 닮은 듯 넓고 아름답습니다. 시골이다 보니 여러 가지가 불편한데 예를 들어 안테나를 단단히 설치하지 않으면 TV 수신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아마 도시라면, 비록 지상파밖에 안 나온다고 해도 케이블을 설치해 더 안정적으로 방송을 시청했을 것입니다. 


"채널이 하나밖에 안 나오잖아?" 


영감님과 그 마나님은 험한 말로 자주 싸우지만 마음에까지 그리 날이 선 건 아닙니다. 속으로는 늙어가는 배우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한번은 미국에서 소포가 도착했는데 영감님은 연신 불평입니다. 


"코쟁이 돈은 뭐하러 보냈대?"

"좀 있으면 한여름인데 세타(스웨터)는 또 뭐여? 제 부모가 돈이 없어 굶나, 추위에 떨기라도 하나?"


이것은 불평이 아니라, 먼 이국 땅에서 한번 찾아오지도 않고 선물만 보내는 아들에 대한 야속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지들 살림에나 보태지 이런 건 뭐하러 부담되게 보내냐는, 뭐 지금이라고 해도 크게 다를 것 없는 부모님들의 한결 같은 마음씀입니다. 참고로 시대 배경은 1980년대 중반쯤으로 보입니다. 


저 즈음에 북미 대륙으로 이민을 간 중산층도 많지만 소설을 더 읽어 보면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 놀랍게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첫째 아들의 사정인 듯합니다. 당시 외무고시는 몇 명 뽑지도 않았는데 이런 시험에 합격했다면 대단한 수재였겠고, 나중에 나오듯이 영감님은 그런 아들 자랑이 자자합니다. 


이처럼 자녀들이 잘 풀린 노인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자녀들이 옹색한 삶을 사는 데다, 그들로부터 대접도 제대로 못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까치가 울어대기에 혹시 아들이나 딸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손님이 오기는 왔습니다. 노인의 오랜 동년배 친구입니다. 행색도 그렇고 왠지 느낌이 좋지 못합니다. 


이런 친구를 향해 주인공은 마치 상대방 속을 뒤집어 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자식 자랑을 시작합니다. 

"첫째놈은 뭘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가 혼자 공부해서 젊은 나이에 외시에 덜컥 붙었지."

"그건 마나님이 머리가 좋아서야. 자식 머리는 원래 모친을 닮는다잖아?"

"둘째는 대쪽 같은 성미라서(이게 이럴 때 쓰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가 원하는 상대 아니면 시집 안 간다고 사흘을 굶었지. 딸 하나 없는 셈치고 그냥 시집 보냈는데, 그 집안이 그렇게 일어날 줄 누가 알았나? 셋째는 부잣집에 시집을 갔고, 넷째는..." 

----(중략)---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나?" "자네가 입만 벌리면 떠드는 자랑질인데 이 동네 사람 중 모르는 놈이 있나 어디?"


반면 친구 노인은 자기 신세를 축구공과 같다며 한탄합니다. 자식들이 모시지 않으려고 서로 미룬다는 뜻이겠습니다. 친구 노인은 서럽게 주인공 고가의 대들보를 치며 웁니다. "쥑이소, 쥑이소..." " 이 사람아 죽이긴 누굴 죽이란 말이여?"


친구 노인은 알고보니 자식들로부터 가출 신고가 되어 있었습니다. 행방을 안 그 막내아들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밤늦게 고가를 찾아옵니다. 그런 아들이라도 친구 노인은 막상 얼굴을 보니 좋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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