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큼 먼 나라 지만지 한국희곡선집
노경식 지음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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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은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생중계 방송을 실시하여 눈물겨운 상봉을 드라마처럼 실현시키는 이벤트가 있었던 해입니다. 한국은 1945년 38도선 분단, 1953년 휴전선 획정, 그 사이의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전란 때문에 가족들, 부모형제나 부부 사이에 생이별을 겪는 큰 계기를 맞습니다. 요즘 같으면 국가 행정력이 잘 구비되고 전산망의 도움이라든가 DNA 검사 등의 혜택을 입을 수 있겠으나 당시에는 이런 걸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꼭 한국전 당시가 아니라 해도 우연한 사고, 경제적 궁핍 등으로 혈연과 헤어지는 일이 요즘보다는 훨씬 자주 일어날 만했습니다. 


주인공들은 노부부인데 원래 38선 이북에 거주하던 이들이 월남하면서 헤어지게 되고, 남편은 아들, 딸과 함께 살다가 새 부인을 맞이하게 되고 딸은 어린 나이에 죽습니다. 아들은 장성하여 결혼하고 남매 둘까지 슬하에 두는데 이들을 키운 사람은 영감님의 후처였으며 이분도 병으로 일찍 죽습니다. 아들과 손자, 손녀는 "낳아주신 (얼굴 모를) 어머니(할머니)"와 "길러 주신 어머니(할머니)"를 구분하며 성장했고, 영감님의 후처가 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았기에 정서적 애착은 친모(친조모) 못지 않게 형성된 상태입니다. 영감님의 후처가 된 분도 초혼은 아니었는데 후사를 못 본다고 해서 시가로부터 소박을 맞은 분을 영감님이 맞이한 것입니다. 영감님과의 사이에서도 아이가 없었던 걸 보면 불임의 원인은 여성 쪽에 있긴 했나 봅니다. 당시는 시대가 시대였으니만치 이런 걸 두고 여성에게 큰 흠을 잡았겠음은 우리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이런 것이 봉건적인 몹쓸 폐습, 인습임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이 당연합니다. 


한편 영감님과 젊어서 생이별을 하게 되었던 부인은 어느 재산가와 연을 맺게 되었는데 이 재산가와의 사이에서 새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봅니다. 재산가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 부인을 알게 되고 남동생에게 소개하면서 두 사람이 맺어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남부러울 것 없이 잘사는 집안을 일궜으나 젊었을 때는 고생을 많이 했으며 특히 그 남동생은 일자무식 적수공권에서 건축업으로 일어선 자수성가형 인물이었습니다. 건축업자는 현재 고인이 된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건축업자)이었다면 (성정이 거칠어서) 임자한테 막대하지는 않았던가?" "전혀 아니었고, 아주 착한 사람이었어요."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짧은 시간 동안 규격화한 패널을 들고 방송에 비춰지기라도 해야 요행을 바랄 수 있었지만 정말 운 좋게도 영감님과 그 부인은 방송을 거치지도 않고 상봉하게 됩니다. 여의도 인근 공원에서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못다 나눈 회포를 풉니다. 허나 각자의 아들들은 이 사실을 아직 모릅니다. 


영감님의 아들은 당연히 두 사람의 소생이지만, 영감님의 부인이 건축업자와의 사이에서 본 아들은 당연하게도 영감님과 아무 혈연 관계가 없습니다. 영감님의 아들과 건축업자의 아들은 말하자면 이부형제인 셈인데, 이복 형제라고 해도 사이가 좋으라는 법이 없었고 하물며 여전히 여성의 재가가 금기시되던 당시라면 특히 건축업자 아들 입장에서 모친의 전남편과 그의 소생이 자신의 모친을 만나는 게 반가울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일군 지금, 자신의 모친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가문의 명예에 큰 흠이라도 잡히지 않을지 꺼려지기만 합니다. 


게다가 영감님의 아들은 작은 회사에 다니는, 그리 넉넉지 못한 형편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건축업자 아들 입장에서는 이런 종류의 이산가족 상봉이 반갑기는커녕 악몽으로 다가옵니다. 영감님의 아들은 처음에 이부 동생의 이런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처신에 격분했으나, 차차 그의 입장을 이해하게도 됩니다. 영감님 입장에서는 삼십 년 전 부부의 연을 맺고 슬하에 자녀까지 보았다가 전란으로 생이별을 한 아내의 행방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껏 만나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감동의 이벤트로만 인식되던, 수십 년 만에 만나게 된 이산가족 상봉 그 이면에 이런 말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음을 날카롭게 묘파한 작품이며, 속물 근성 가득한 건축업자 아들의 반응이라지만 어느새 독자들까지도 씁쓸한 긍정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솜씨가 탁월합니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주관한 KBS에서 이를 극화한 게 또 특이하며, 영감님과 그 부인 역에 이낙훈씨와 반효정씨, 아들 역에 전무송씨, 건축업자 아들 역에 민욱씨 등이 나와서 실감나는 연기를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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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배를 찾아서 - P
김남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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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 김남은 MBC 드라마 <수사반장> 등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이 작품도 추리극에 가깝습니다. 


가난한 화가가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전시킬 방법이 없었던 화가였고 보니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도 보이지만 노련한 형사인 서병진은 화가 윤도균의 죽음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눈치채고 이 사건을 살인으로 규정합니다. 이미 늙수구레한 중년 남성인 그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해서 딱히 승진이라든가 어떤 혜택 같은 게 주어질 듯하지도 않습니다만 그는 사건 자체가 흥미롭고, 일 자체가 좋아서 일을 하는 타입입니다. 별다른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는, 사고사 내지 자살로 편하게 덮일 사건처럼 보였으나 이처럼 일이 커진 걸 보면 진범은 운도 없는(?) 편입니다.


화단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경이라는 노화백은 그의 비서(?) 희숙에게 일종의 스폰서 노릇을 합니다. 이 불미스러운 관계를 윤도균에게 들킨 후 수경은 희숙을 버립니다. 한편 희숙은 재능 없는 젊은 화가 재만과도 내밀한 관계였으며, 자신을 내친 노화백에게 원한을 품고 그의 비리를 캐던 중 노화백이 윤도균의 모사품을 자신의 것인 양 속여 시장에 팔아 부당한 이익을 챙겨 왔음을 알아냅니다. 이 비리는 재만과 그의 형인 미술품 중개상 재용에게도 공유됩니다. 


한편 화단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년 여인 숙미라는 거물급 중개상이 또 있었는데 이 나숙미가 재능 없는 화가 재만과 또 내연의 관계입니다. 숙미는 일찍부터 윤도균의 재능을 알아 보고 몇 번 커미션을 주었으며 도균으로부터 받은 그림, 도균이 일찍부터 집착해 온 테마(마치 반 고흐가 해바라기에 집착했듯)인 붉은 돛배그림을 재만의 것으로 속여 한국미술대전에 출품합니다. 붉은 색을 다른 색으로 바꿔 그야말로 한 꺼풀 눈속임만 한 것인데 재만은 처음에 자신이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으나 정작 대상 수상작이 자신의 솜씨가 전혀 아님을 알고 경악하며 수치스러워합니다. 그 와중에도 재만은 희숙과의 관계를 또 이어갑니다. 중년 여성인 숙미와의 관계는 일종의 성적 착취로 생각했기에 재만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희숙에게서 구한 것입니다. 난잡하고도 어지럽습니다. 


도균은 늦게서야 자신의 돛배 작품 <관해일경(觀海一景)>이 대상 수상작으로 도용된 걸 알고 숙미에게 거칠게 따집니다. 숙미는 거액을 주고 입막음을 하려 드는데, 그만큼이나 젊은 재만을 사랑했었고 자신과 격이 맞는 유명 화가로 신분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뒤늦게 재만이, 별볼일 없는 젊은 희숙과 깊은 관계였음을 깨닫고 이성을 완전히 잃습니다. 결국 그녀는...


(스포일러)

노련한 형사 병진이 결국 자신의 스킬로 진상을 밝혀냈다기보다, 숙미가 거의 자멸적인 스텝을 걸으며 무모한 치정살인을 벌였기에 결국 앞의 살인인 도균의 죽음에까지도 단서를 제공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추리극으로서의 완성도는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추리극으로서의 재미보다는 명예와 애욕, 물욕 등이 얽혀 복잡하고도 파멸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통속적인 매력이 두드러집니다. 


이 작품은 MBC가 아닌 KBS에서 단막극으로 제작 방영되었는데 형사 역에 임동진씨가 나옵니다. 임동진씨는 스마트한 미남이지만 그가 여기서 펼치는 연기는 <형사 콜롬보>의 (지저분한) 피터 포크를 오마주하는 듯 보여 다소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난한 천재 화가 도균 역은 <태종 왕건>의 궁예로 유명한 김영철씨가 맡았으며, 팜 파탈이라고 할 수 있는 숙미는 故 김영애씨가 나옵니다. 재능 없는 미남 화가 역에 임혁주씨, 그 형인 미술 중개상 역에 전광렬씨 등 나중에 스타가 된 배우들의 젊었을 적 모습이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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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대한 반격의 시간 - 일본을 추월하고 중국과 대등한 싸움을 할 완벽한 시간이 온다
최윤식.최현식 지음 / 미래세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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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ain, no gain. 어떤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은 길고도 험하지만, 당장 즐겁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건 누구한테도 쉬운 선택입니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많은 데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랬던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까지 진입한 건 지난시절 많은 한국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난의 길을 자처하여 선택했고 그 과실을 지금의 후손들이 향유하는 것입니다.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려면, 이처럼 다소나마 유리해진 여건을 잘 활용하여 미래를 위한 투자, 절제, 모험의 과정을 다시 거쳐야만 할 듯합니다. 그 길은 마냥 쉽거나 하지는 않고 얼마간의 고통과 망설임이 따르겠지만, 그런 대가를 치를 가치가 충분할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지는 못하고, 중국한테는 거의 모든 경쟁력 우위를 내주고 말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관측이 팽배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도 않아서, 예를 들어 조선업종을 보면 한때 중국에 선두를 내줬던 것을 지금 도로 찾아왔습니다. 중국은 저렴한 인건비와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서 조선업에서 무서운 추격세를 보였으나 결국 일정한 기술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저그런 저부가가치 수주 물량만 간신히 감당하는 듯합니다. 한편 지난 시대 조선 세계 1위였던 일본은 현재 한국에 내준 우위를 여전히 되찾지 못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 갇혀 샌드위치 신세가 되리하는 예측은 적어도 이 업종에서 확연히 오류로 드러난 셈입니다. 일본의 노쇠함과 중국의 미숙함이 빚은 결과입니다. 


반도체 시장을 보면 2019년 반일 움직임으로 인해 일정 부분 타격을 입은 것도 있고 기술 독립을 이룬 대목도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대부분의 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내몬 상태이지만 여전히 의존해야만 하는 반도체 부품 등에서는 꾸준히 한국 제품을 수입하며 이 역시 중국 기업이 그토록 오래 반도체 굴기를 외쳤지만 달성하지 못한 목표입니다. 5년 전만 해도 중국 대세론, 중국 의존론이 한국에서 큰 목소리를 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엄연한 현실을 프로파간다나 프레임으로 물타기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매우 큰 고전을 하고 있으나 북미시장에서는 잠시간의 고전을 극복하고 다시 회복세로 접어든 듯합니다. 주행거리 보장 마케팅이나 과감한 리콜 등이 현지에서 신뢰를 얻는 데에 성공한 결과이겠으며 반도체 수급 위기가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에게 엄습했으나(p67), 이를 잘 극복하고 유럽 시장에서도 선전하는 중이라고 책에 나옵니다. 지금까지 인재 영입과 양성에 과감했고 합리적인 투자 결정을 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년 전 기아차와 애플카의 협업설이 나왔을 때도(애플 측의 희망사항 언플?) 이를 단호하게 무시하고 자체 기술력 개발과 브랜드 파워 향상에 힘쓰지 않았냐는 평가가 지금에서는 가능합니다. 


p83을 보면 저자는 한 나라의 경제가 도약하는 세 가지 길을 논합니다. 첫째는 자원부국, 둘째는 제조업국, 셋째는 무역-금융-서비스업 방식이라고 하는데 각각 산업의 분류 중 1차, 2차, 3차의 범주에도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한국은 이 중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저자는 개인 기업의 예를 들며, 현재 10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100억대로 도약하려면,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열 배의 노력을 더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매출이 열 배로 늘어나기는커녕, 기존 시스템마저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100억 매출이 가능한 시스템은 따로 있으며, 그 시스템이 뭔지를 찾아 구축하는 과제가 더 시급하다는 거죠. 


필리핀은 원래부터 자원 부국이었고 따라서 1960년대에 필리핀은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으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마르코스는 한국의 박정희를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되어 한국인들이 필리핀인들을 무시하는 통에 혐한 감정이 일어나는 판입니다. 이렇게 사정이 바뀐 건 한국이 그간 잘사는 나라로 도약히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을 효과적으로 해 온 덕분이며, 반 세기 동안 필리핀이라고 그 나름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문제는 노력의 양이 아니라 질과 방향성입니다. 


저자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거나 자칫 수십 년 전 빈국 신세로 추락할 뻔한 위기를 우리가 1998년에 겪었다고 평가합니다. 이 위기를 극복한 건 국민과 민간 기업의 현명함, 절제 덕분이었다는 게 저자의 소결론입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주도했다면 이후에는 민간이 주도권을 찾아 과거의 비능률요소를 털어내고 혁신의 계기로 삼아 오히려 변화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한 유연한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고 합니다. 삼성그룹만 해도 해외 인지도도 없는 그저그런 국내용 강자에 불과하던 게 현재는 세계 일류 브랜드로 발돋움했으며 해외 인재들도 취업을 선망하는 직장으로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저자는 1997년 당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재계 순위가 현재 얼마나 큰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를 지적하며, 앞으로도 대기업 순위에는 큰 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쌍용, 동아그룹, 해태, 대우 등은 현재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으나 20년 전만 해도 굴지의 대기업이었습니다. 한진도 해운업 파산을 계기로 사세가 위축되었으며 LG도 기업 분할 여러 번을 거치면서 순위가 내려왔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기업이 주목받고 성장할까요? 저자는 개인용 자율주행 수송 장치 산업, 둘째 디스플레이 산업, 셋째 인공지능 로봇 산업 등을 꼽습니다. 특히 저자는 pp.114~129에 걸쳐 상당히 긴 분량을 할애하여 첫째의 개인용 자율주행 수송장치 산업의 구체적 전망을 폅니다. 이에 의하면 둘째의 디스플레이 산업은 첫째에 어느 정도 종속된 활력을 받는 듯도 보입니다. 삼성, 현대차, LG 등이 앞다투어(p139) 이 로봇 산업의 개척자로 나설 것이며 바로 이 산업이 21세기 한국을 이끄는 효자 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와 연계하여 저자는 다섯째 산업으로 AI 서비스 산업을 꼽습니다(넷째는 반도체). 


한국을 현재 먹여살리는 산업은 누가 뭐라 해도 반도체입니다. 이 반도체에 대해서도 저자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보는데 특히 삼성전자는 이 반도체 영역에서의 선전 하나만으로도 한국내 1위 위상을 너끈히 유지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요즘 말도 탈도 많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도 저자는 대체로 긍정적 전망을 하는 편입니다. 


요즘 메타버스가 큰 화두로 부각되는데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주변 다른 부문도 통합하는 개념으로 "온톨로지 플랫폼 산업"을 씁니다. 3~4년 전만 해도 AR, VR 등을 키워드로 잡았는데 요즘은 더 상위 컨셉으로 메타버스가 나왔듯이 아마 이 섹터를 모두 포괄하려면 과연 저 개념이 제격일 듯합니다. 저자는 여튼 "궁극의 플랫폼(p173)"을 거론하는데 현재는 플랫폼이 일단 뜨면 이를 대체하는 플랫폼, 혹은 아예 다른 레벨에서 "플랫폼의 플랫폼"이 등장하는 추세이며, 그 궁극의 지점에 조만간 등장할 것이 "온톨로지 플랫폼"이리라는 게 저자의 전망입니다. 이것은 미디어, 광고, 교육, 금융, 스포츠, 로봇 등 모든 것을 그 안에 포함하겠으며 나이키나 통신사(SKT 등) 등이 이 안에서 경쟁하게 됩니다. 이는 또한 건축 산업, 나아가 스마트 도시 구축 산업 등도 모두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게 된다고도 합니다. 


이처럼 세계가 급변할 전망이지만, 그 변화는 점진적이기도 하고 또 한두 번의 급격한 변화를 통해 가속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놀랍게도 "글로벌 자산 시장 대학살 사건"과 "미중 패권 전쟁 극단적 순간" 두 번의 계기가 찾아올 것이며(p238) 이 급변의 순간에 한국이 사후적 대책으로 대응하지 말고 선제적으로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자산 대학살이라는 건 이미 인류를 주기적으로 찾아왔었습니다. 증시는 대폭락을 겪은 후 다시 살아났지만, 기존의 종목이 모두 부활한 건 아니고 그 중 상당수는 깡통이 되었으며 다른 종목에 가치를 넘겨주기도 했습니다. 거품 붕괴라는 게 다 그런 예시였으며, 현재 높은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나 언제 휴짓조각이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반면 지금은 거품이라고 걱정되는 자산이 언제 가치의 핵심, 최정상에 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가계부채, 기업부채가 증가하며 한국경제에는 또한번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를통해 부의 양극화가 한층 가속화하며 이른바 K 불평등 곡선의 추이가 뚜렷해집니다. 일본은 30년 전 이런 위기를 겪고 내전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았으나 현재 보듯 극심한 침체를 겪습니다. 반면 한국은 가뜩이나 성별, 계급, 지역, 세대간 대립과 갈라치기가 극에 달하고 정치인의 부패가 심각한 만큼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경제의 불안정과 위기는 사회의 분열과 붕괴를 유발하기 충분하며 남미는 물론 미국도 부분적이나마 이런 국가 위기를 겪는 중입니다. 


저자는 앞서 말한 대로 새로운 시대의 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에의 과감한 투자가 이런 위기를 선제적으로 극복하는 멋진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며, 현재는 그저 불확실성에 둘러싸였을 뿐인 바이오 제약 산업도 한국 특유의 재능과 끈기가 투입되어 새로운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어떤 나라나 사회에도 도전과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며 우리 민족은 사실 크게 보면 용기와 지혜로 잘 극복해 온 덕에 그나마 이 지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의 변화 앞에 두려움으로 후퇴하지 말고 냉철하게 현실을 잘 살펴 오히려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발판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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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 일본을 정벌하라
김봉석 지음 / 시간의물레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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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우리 민족에게 큰 상처를 안긴 끔찍란 재난이었습니다.물론 왜인들이 악의적으로 일으킨 전란이었지만, 일본 민족 전체가 우리에게 어떤 집단적 악의를 품었다기보다는 풍신수길 개인이 비뚤어진 정복욕을 갖고 기획한 어처구니없는 악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기록 중에 "조선의 칙사가 와서 다시는 일본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서약서를 쓰게 하라"는 풍신수길의 요구가 있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아니 침략은 저네들이 하고선, 피해자인 우리를 보고 다짐을 받아내려는 게 적반하장이긴 하지만, 이네들이 뭔가 큰 어리석은 오해를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습니다. 


13세기 대대적인 몽침(蒙侵)이 있고, 우리는 기어이 화해를 한 후 고려 왕실이 출륙(出陸)하여 그들에게 사대를 합니다. 왕실이야 대우는 잘 받았다고는 하나 그동안 겪은 인명 살상과 재산상의 피해는 전혀 배상을 이뤄내지 못했죠. 이때 원 제국군은 고려인들을 강제로 징용하다시피하여 연합군을 편성, 일본 열도를 침공하는데, 일본인들은 이때 공포에 질려 "고쿠리 무쿠리"란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걸 두고 왜인들이 원한을 품은 건 아닌지.


고려, 원(元)의 원정과 임란 사이에는 수백 년의 간극이 있고, 왜는 고려 말에 이미 대대적으로 반도를 침공하여 극렬한 약탈을 벌인 적 있습니다. 반면 원의 원정은 두 차례 모두 태풍으로 실패하여 일본이 이로 인해 입은 피해는 딱히 크지 않습니다. 


아마도 풍신수길은, 자신이 열도를 평정하고 나서 공신들에게 분봉할 땅도 마땅치 않고, 전투력이 최고조에 이른 부하들의 살기를 다리 달랠 길도 없어 이런 무모한 획책을 하였다고 보이며, 혹 조선이 반격하여 군사를 모아 독자적으로 열도를 침공할 가능성을 무서워했는지도 모릅니다. 


김방경 장군은 이런 어려운 시기 용맹과 지혜를 발휘하여 국가의 난감한 처지를 그럭저럭 달랜 분입니다. 안동 선김씨의 중시조이기도 하며, 우리 국사책에도 이름이 나와 많은 국민들이 낯익어할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번 독서에서도 느낀 건, 한국사에는 정사 그대로라면 참 미스테리어스한 장면이 많고, 이 간극을 메꿀 방법은 아직까지는 상상력 말고 그리 많지 않지 않냐는 점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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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 타고난 절대군주가 뿜어낸 애민의 카리스마 숙종의 진면목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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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즘 주역을 좀 제대로 공부해 볼까 하는데 이미 여러 권을 소장도 하고 정독도 했습니다만 그리 만족스럽지를 못해서 이한우 씨 주해본을 시도해 볼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마침 숙종 관련 책을 이것저것 뒤지다가 이분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인들은 특히 숙종 연간에 벌어진 비빈들의 혈투에 관심이 많은지, 중전까지 올랐다가 희빈으로 강등되고 마침내 사약을 받고 죽은 장옥정의 생이 TV 드라마로 자주 만들어진 편입니다. 그런데 딱히 이분이 한국인들 관심을 끌 만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기보다(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김지미, 남정임 등 1960년대 영화에서 이분의 생을 극화하여 대중의 큰 호응을 얻은, 어떤 우연적인 계기,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또 1980년대 이미숙씨가 TV 드라마에서 다시 이 역을 잘 소화함으로써,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 배우들이 반드시 한 번은 거치는 역으로 아주 전통 하나가 만들어진 영향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희빈 장씨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숙종의 진면목.."이란 구절이 있으나, 사실 이는 그야말로 대중 매체가 자의적으로 각인시킨 이미지에 치중한 평가일 뿐입니다. 숙종은 젊은 나이, 아니 거의 어린 나이라 할 만한 때에 보위에 올랐는데, 경험이 일천한 청년으로서 (연상의 여인이기도 한) 장옥정에게 정말 휘둘리고 "그늘에 가려질" 법도 했습니다만 실제 행적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영민하고 기질 드센 여인 하나가 정국과 역사를 좌우한다는 건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발상입니다. 아무리 신분제 사회였어도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돌아가는 게 아니라서, 세력 간의 치열한 다툼과 술수의 산물로 정치 궤적이 그려지는 것이지 개인의 영향이란 그리 크지 못합니다. 


22기 40주자 독후감에서 말했지만 예컨대 영빈 김씨 같은 경우 철저히 노론 진영의 정치 스파이로 궁중에 진입한 인물이겠으며, 이 장씨 역시 남인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여 의도적으로 심어진 케이스라 해도 과언이 결코 아닙니다. 숙종이 한 남성으로서 여인에게 개인적인 정을 준다 어쩐다 하는 낭만적 의도를 품었다손 쳐도, 이것이 살벌한 정치적 대립의 형국 속에 그대로 현실이 되리라곤 도무지 기대할 수 없었겠습니다. 숙종뿐 아니라 그의 여인들 역시 "선수들"이라, 무슨 로맨스 같은 게 애초에 꽃필 여지가 없었다는 소립니다. 


현실이 이와 같으면 구김살 없이 성장기를 보낸 청년 군주로서 좌절할 만도 했겠고 실제로 일생을 그리 낭비한 군주들도 적지 않으나 숙종은 그렇지 않았고,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냉철히 이성을 찾아 이후의 정국을 거의 오롯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이끌었습니다. 삼복의 변 같은 것도 정파 간의 중상 모략 암투 끝에 아까운 왕족들이 억울하게 죽어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아마도 숙종 자신의 교묘한 조종과 세팅의 결과 아니었을까요? 책에서 지적하는 "리더십"의 정수도 결국 이런 쪽이며, 세상이 본디 무서운 곳인 만큼 공연히 감상에 젖거나 먹잇감이 되기보다 게임의 룰을 익혀 냉정히 헤쳐 나가고 마침내 승자가 되는 게 옳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리더십(?)"은 확실히 주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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