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의 미래 3년 - 2027년 반도체 골든 타임, 무엇을 준비하고 실현할 것인가
박준영 지음 / 북루덴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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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들의 추격 때문에 한국 경제가 큰 위기입니다. 일찍이 이건희 회장은 "나중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나 해 주며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했었습니다. 마사지 일이 뭐 어떻다는 게 아니라 그 나라에 번듯한 산업이 없으면 젊은이들이 다닐 회사가 없고, 불안정한 고용 패턴에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겠습니다. 그 예전부터, 언젠가는 중국이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말들은 있었지만 반도체나 차화정은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서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들 했는데, 이제 드디어 그날이 온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전 산업계를 엄습하는 요즘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반도체에서 전방/후방이 정확하게 뭘 뜻하는지에 대해 p72에서 아주 쉽게 설명됩니다. 그 비유를, 정유산업을 통해 하고 있으므로 이참에 정유산업의 전후방까지 함께 공부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ㅋ). 참 재미있는 게, 정유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산업은 원자재 쪽을 전방이라고 하고, 제품 방향을 후방이라고 하는데(이게 상식입니다), 반도체는 정반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전부터 이게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저자 박준영 교수는 "원천보다 제품을 더 중시한 구분 방식"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줍니다.

과거, 삼전은 시스템반도체의 아성 인텔 등을 따라잡기는 어차피 어렵고(지금 인텔은 좀비로 전락했습니다. p139도 참조), 범용메모리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발휘해야겠다는 전략으로 올인했는데 이게 대박을 쳤습니다. 이게 아니었으면 한국은 2010년대 내내 먹거리를 마련하지 못했을 테고 이제서야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10년 전에 먼저 왔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전략적 안목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확인 가능한 대목입니다. 책에서 "황의 법칙"이란 무어의 법칙 변형(p222)으로서, 저자가 현직 때 모셨고 삼전 반도체총괄 사장을 지냈던 황창규 전 KT회장이 "메모리 생산용량이 매년 2배로 늘어남(p258)"을 가리킵니다.

책에서 굉장히 뼈아픈 지적을 하는데, 저때는 삼전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고강도로 인력을 굴렸기 때문에 초격차가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MZ가 주축이 된 현장에서, 더군다나 노동법도 개정된 판에 누가 야근을 하려 하겠습니까? 이건희처럼 카리스마 있는 리더라면 그 존재나 등장만으로도 부하직원들에게 최대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요즘 오너들에게는 그나마 이런 마력의 발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p39에서 저자는 "경영, 기술, 조직문화의 측면에서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합니다. 바람직하든 그 반대든 이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어떻게 해서 TSMC는 지금과 같은 거인이 되었는가? p59에 중요한 서술이 있습니다. "생산에서, 파티클에 위한 수율 저하까지, 설계에서 참작해 줄 수는 없다." 이렇게, 파티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방식을, TSMC는 바닥과 근본을 살핌으로써 해결했다고 나옵니다.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 때 (거꾸로) 기발한 타개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일반적인 설계는, 비용 편익 분석 후 사소한 문제는 그냥 건너뛰는 게 차라리 현명한 선택일 수 있지만, 반도체 설계는 그런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이 쉽지 그 복잡한 설계를 바닥부터 다시 들여다본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습니다. p162에는 "설계, 전공정, 후공정, 설비, 소재 등 모든 공정을 존중하는 위계 철폐가 절실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전이 과연 이런 교훈들을 내재화하면 다시 세계의 거인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요?

앞에서 황의 법칙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황창규 박사는 원래부터 천재로 칭송받던 인물이며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미디어에서도 찬양 일색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판이 나왔고, 이 책에서도 2008년 점차 회의론이 고조되었다고 솔직하게 나옵니다.투자자들도 하도 미디어에서 많이 들어서  그 이름이라도 알겠지만 증착(deposition)과 식각(etching)이 3D 반도체 기술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정보는 자동화, 일치화되지만 물질과 노동은 측정되는 값 바깥의 결과가 많다(p276)." 앞 p47에도 나오지만 "자동화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고 이를 하루빨리 전(全) 공정 혁신으로 이끄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이 앞으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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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의 미래 3년 - 2027년 반도체 골든 타임, 무엇을 준비하고 실현할 것인가
박준영 지음 / 북루덴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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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국반도체가 회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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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마음이 아플까 - 그림 그리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 일기
전지현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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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지현 닥터님은 현직 의사이며 아직 젊은 남성입니다. 성함도 그렇고 책의 그림체도 (제 눈에는) 여성향이라서 여성분인 줄 알았는데 책 앞날개를 보고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보통 의사 선생님이 쓰신 책은 본인이 다룬 환자들을 높은 곳에서 좀 내려다보는 시선인데, 이 책은 거꾸로 의사 본인의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 후회, 미련 등을 매우 솔직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자가 읽기에도 재미있고, 환자나 내담자들도 의사분(혹은 카운슬러)이 먼저 이렇게 마음을 열면 자신의 문제를 더 완전히,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의사도 알고보면 사람일 뿐이라서 부끄러운 마음도 있고 타인으로부터 상처도 받고 묘한 질투감정이나 승부욕, 분노, 비뚤어진 혐오감 등이 다 있기 마련입니다. 의사는 타 직업과 달리 스승 사(師) 자를 쓰는 직분인데, 의사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또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는 말도 있죠. 우리 사회는 예전과 달리 의사에 대해 깊은 존경심도 품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고도의 인격적 수양, 감정 절제 등의 미덕은 또 그것대로 요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젊은 의사분들이 본연의 직분을 수행하기가 상당히 힘들 것도 같습니다.

p77을 보면 "문 앞에 선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그림과 글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는 삶이라는 연극의 관객이 된다. 성난 파도처럼 거센 고난에 함께 슬퍼하고..." 문장도 멋질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해 깊이 공감해 주는 어떤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그림에서 환자는 의사에게 묻습니다. "제가 나갈 수 있을까요?" 환자는 어떤 곤경, 함정, 혹은 자신만의 어떤 협소한 공간에 갇혔다고 볼 수 있는데, 환자 자신도 스스로 여기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되고 나가야 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문을 열 힘이 없거나 어두운 방 안에서 아직 문도 못 찾고 있는 건데, 의사 역시 진정어린 격려를 보낼 뿐 그 일을 대신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의사는 자신을 믿고 함께 문제 해결을 이루려는 의지를 보여 준 그 환자에게 "감사"를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마음 속 문제들은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채 쌓여간다(p98)." 세월이 약이라고 설령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도 하겠거니 기대를 갖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이들의 경우 단계별로 정리를 확실히 해 주고 가야지, 그냥 얼렁뚱땅 넘어갈 수가 없나 봅니다. 책에서는 계속 키를 키워가는 선인장으로도 이 상태를 표현하고, 혹은 자기 키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담벼락을 향해 안타깝게 손을 뻗어 보는 어린이의 표정으로도 독자들에게 알려 줍니다. 사실 저자께서는 명문의대를 나와 남부러울 것 없는 과정을 밟으셨을 텐데도 이렇게 평범한 이들의 낙오에 대한 공포, 열등감, 좌절감 등을 생생하게, 감각적인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셔서 참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싶었습니다.

슢속에서 곰을 만난다면(p132)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조상들이 남긴 속담에 "범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게 있지만, 교육과 상식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행여 당사자가 냉정을 유지한다 해도 무엇을 실제 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은 맹수의 먹이 신세가 되었겠지 싶습니다. 현대인이야 자연에서 그런 위험을 맞을 일은 없지만, 대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순간 대처를 서투르게 하여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할 수는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작은 모욕과 상처가 쌓이고 쌓여 사람의 인격이나 정서가 영 망가져버리고 마침내는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관적인 문장과 그림을 통해 공황장애 발병의 위험을 몸에 정신에 쌓아 두지 않는 방법을 독자에게 가르쳐 줍니다.

저자의 따뜻한 마음과 넉넉한 인격이 배어나는 글, 그림만 보아도 뭔가 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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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번을 두드려야 강철이 된다
우유철 지음 / 세이코리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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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우유철 박사는 현대제철 회장, 현대로템 부회장을 지낸 분입니다. 현대로템은 증시에서도 방산주, 대북경협주 등으로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낯익은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파트 등을 짓는 데 반드시 필요한 철근, 자동차의 외형을 이루는 강판 등을 만드는 곳이 현대제철이므로 현대차그룹 전체에서 이 회사가 얼마나 중요한 곳이겠는지 일반인들도 짐작 가능합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엘리트로서 원래는 철강에 대해 전문은 아니었던 그가 CEO의 자리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며, 한 분야에서 정상에 서기까지 어떤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인사스타일을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 럭비공 같다는 평을 듣는 정몽구 회장. 그는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사실상 장남이었는데 원래 저자는 로켓 개발 업무를 맡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정몽구 회장의 호출을 받아 철강 사업을 맡아 보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저자 같은 엔지니어들에게는 전문 분야라는 게  있습니다. 이 고유 영역을 떠나면 아무리 천재라도 무기력해지기가 쉽죠. 저자는 솔직하게 자신의 본연 업무(로켓)에 충실하겠다고 했는데, 이 솔직함이 정몽구 회장 마음에 꽤 들었나 봅니다. 회장 눈치를 보느라 별 적성도 능력도 없는 분야를 무모하게 맡았다가 이도저도 다 망치면 회사에도 폐를 끼치는 결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여기서, 과연 정몽구 회장이 저자의 그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서 이후 상무에서 전무로 초고속 승진을 시켰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저자께서 당시에 반대로, "회장님, 저는 로켓 쪽에 밝습니다만, 그렇게 믿고 새 일을 맡기신다니 과감하게 오늘부터 철강에 도전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정몽구 회장은 "야, 너네들 봤지? 우 박사는 이렇게 시원시원하잖아. 너네들처럼 요행을 바라고 당장 눈에 들려고 알랑거리며 꺼내는 대답이 아니야!"라며 또 저자를 추켜세우지 않았을까요? 이런 분들은 본래부터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합니다. 어차피 이 사람 크게 될 것으로 봤기 때문에 그가 무슨 대답을 해도 결국은 (새로 인수한) 한보철강에 배치하여 그 포텐을 다 발휘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어디까지나 독자인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p53에 나오듯이 정주영 창업주 시절부터 현대는 고급 강판 전문 일관제철소를 항상 갖고 싶어했으나 정부에서는 업종전문화 시책을 내세워 번번이 막았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 들어서야 한보철강을 인수하게 되었는데 한보는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이었죠. 현대 정도가 되어야 그 덩치를 인수할 수 있었겠고 여튼 현대는 이렇게 해서 숙원사항을 달성했습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의 완수." 정몽구 회장은 정말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p55에 나오듯이 이때서야 중국의 경제성장이 미친 듯 진행되고 국내 철강 산업은 공급 부족에 시달릴 정도였던 것입니다.

의외로 책의 앞부분에, 우리 국민들이 궁금해할 만한 사항에 대해, 이 분야 최고 권위자라 할 저자의 답이 바로 나옵니다. 현대제철은 올해  3월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고 4월부터 희망퇴직을 받았습니다. 중국산 철강에 밀려 한국산이 시장 셰어를 점차 뺏기는 중이며 내수도 상황이 매우 나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민 모두가 한국 철강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저자는 "극복이 쉽지는 않겠으나 고급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고객사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여 철강 엔지니어링 업체로 전환할 것"을 후배들에게 조언합니다.

방산주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에게는 아주 흥미있을, 현대정공의 K-1 전차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p115 이하에 나옵니다. "다수의 업체가 협력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특징"에 대해 깊이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하시네요. p131 이하에 나오듯이 단순히 유망한 개발에 아직 머무는 것과, 본격 사업화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있다는 점을 고부가가치 냉동 컨테이너용 냉동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도 술회합니다. 현재 한국 증시에서 핫한 섹터가 (대략 2022년쯤부터) 항공우주인데 저자는 이쪽에도 깊이 관여한 분이라서 책에서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고 해도 현장에서 이리깨지고 저리 넘어져 봐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며 종전의 나를 극복하는 인재만이 이 험한 경쟁의 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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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크래프트 맥주 - 내일은 반짝반짝 빛날
염태진 외 지음 / 애플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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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수제 맥주를 별개의 풍미로 즐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원래 유럽 등 맥주의 본고장에서는 지역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수제 맥주가 발달했었으며 이런 문화가 근사하다며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이 늘어났으며, 한국산 병입맥주, 캔맥주가 별나게 맛이 없다는 불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도 나만의 레시피를 정해 두고 즐기는 분위기인데 맥주라고 딱히 예외를 둘 이유도 없습니다. 이 책 추천사 p3을 보면 "모든 맥주에는 사연이 있다"라든가, 맥주를 음식(끼니)의 일종으로 간주한다든가 재미있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여섯 명의 저자가 자신들이 평소에 즐겨 찾는 브루어리, 브루펍 등을 소개하는 형식입니다. 인천, 전주, 경북 의성, 강원도 강릉, 부산 등 전국 곳곳의 명품 맥주에 대해 독자들은 이제 알 수 있습니다. 제5장에서 차은서 필자는 뉴잉글랜드 IPA라고 하셔서 미국 동부에서의 추억을 소개하시나 했는데 그건 아니고 홍대에 직영 펍을 운영하는 제조원이었습니다. 문장들도 시적으로 참 잘 쓰셔서 이 책이 맥주 소개서인지를 잠깐 잊기도 했습니다. 매 챕터는 "브리지"를 통해 다음 장으로 연결되는데 마지막 6장의 브리지에는 필자가 송효정씨라고 나옵니다.

"의성 하면 마늘만 유명하다는 착각(p35)." 의성이라고 할 때 마늘을 대뜸 떠올리는 사람도 요즘은 드물 만큼 지방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 김예지 대표는 이곳에 "호피홀리데이"라는 맥주공방을 지었다고 나옵니다. 뭔가 이름도 귀여운 느낌입니다. 호피에 둘러싸여 따뜻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랄까. p44이 소개되는 메뉴는 홉희홀리데이인데 이는 김 대표가 어머니께 헌정하는 IPA(고도수 에일)이며, 성광성냥의 폐업을 아까워하는 사연을 담은 성광포터도 있는데 홉보다는 몰트가 강조되었다고 합니다. 염태진 기자가 이 1장을 집필했습니다.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다룬 글을 보면 상생의 경제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정동진영화제(p105)에서는 지역의 소상공업자들을 초청하여 차례주, 하이볼, 소시지 등의 레시피를 공유한다고 하는데, 이로써 개성 있는 향토의 맛이 일정 지역에서 통일성을 형성하여 타지 관광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효과가 생기는 거죠. 슈타인도르프(p112)는 무슨 독일 어딘가의 명소인가 싶어도 서울 방이동 먹자골목의 어느 브루어리 이름인데 강태순 대표라는 분이 꽤 이른 시기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처럼 주세법이 개정되고 나서 더욱 번창했으며, 이성준 필자는 "맥주는 술뿐 아니라 그 환경을 함께 즐기는 것(p119)"이라는 지론을 폅니다.

크래프트맥주의 주재료가 홉(hop)이다 보니 이 말이 들어간 독특한 이름이 많기도 합니다. p159를 보면 "호피"라는, XS ROOM 고유의 메뉴가 있는데 이게 hoppy 같은 표기가 아니라 한자로 호피(虎皮)라고 하니 재미있습니다. 진짜 호랑이가 아니라 여길 드나들던 길고양이한테 사람들이 붙여 준 이름이라니 더욱 흥미롭네요. 원래는 "칼리가리박사의 밀실(1920년대 독일 무성영화 고전)"이었던 인천의 어느 펍은 그 개성넘치는 이름을 버리고 인천맥주로 간판을 바꾸었는데 장샛별 필자가 정리한 그 사연도 재미있습니다.

경북 안동이라고 하면 소주만 유명한 줄 알아도 저 풍산읍에 독특한 브루어리가 있습니다(p215). 고제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고제는 高製 같은 게 아니라 독일 중부 고슬라 소재의 강 이름 Gose입니다. 과일과 매칭이 잘되는 신맛이 일품이며 그래서 김상응 필자는 앞에서 강릉의 감자브루어리를 소개할 때도 감자가 어떻게 고제 스타일과 조화되는지 설명을 자세히 했었습니다. 안효균 필자가 소개하는 부산의 와일드웨이브(p285)의 김관열 대표는 맥주를 연구하기 위해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분인데, 구도심의 맥을 이어가는 영도의 독특한 지리적 개성까지를 잘 살리는 펍의 번창함은 그의 노력에 기댄 바 큽니다.

우리 나라에만도 이런 맥주 명소들이 제각각의 풍미를 열심히 빚는 줄 처음 알았으며 장맛 못지 않은 뚝배기의 멋인지 필자들의 글솜씨도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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