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정유진.한정선 옮김 / 노엔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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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지런히 가꾸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내면을 들여다 보며 무엇이 참된 나였는지 알아내는 노력도 물론 큰 의미가 있고 더 나은 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런 노력에만 몰두하다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 버린다면 이 역시도 문제입니다. 모색과 탐구는 적정 선까지만 하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자연의 신비는 실로 놀랍습니다. 흰개미는 목재를 먹고 살기 때문에 인간 거주의 안전에 아주 큰 해를 끼치는 곤충입니다. 그런데 흰개미의 생체만 놓고 보면 셀룰로스 분해 효소가 없어, 목재를 먹어 봐야 소화를 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기능은 흰개미의 위장에 기생하는 아메바가 대신하며, 만약 흰개미 주변에 열을 가하면 아메바는 모두 죽지만 흰개미는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목재로부터 셀룰로스를 섭취, 동화할 수 없으므로 목재만 먹고 살던 종은 결국 모두 죽게 되죠. 여기서 저자는 질문을 제기합니다(p59). 흰개미와 아메바는 같은 생명체라고 봐야 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나, 저자는 일단 "공동 운명체" 정도로 선을 긋는데,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람과 세균 등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여튼, 저자가 이 예에서 끌어내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만의 독립된 자아라는 게 알고보면 얼마자 허망한 개념인가? 우리는 우리와 일견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도 긴밀히 소통하며,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에서도 서로 밀접히 의존한다. 뿐만 아니라 저 사람이 표명하는 의견과 감정, 저 사람이 끼친 사소한 영향이 돌고돌아 큰 파장을 만들어 내게로 돌아올 수 있다. 과연 저 사람과 내가 완전히 구별되는 인격체이며, 아무 관계 없는 남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일본 의사분인데, 전근대 시절부터 공동체의식을 강조해 온 우리 동아시아인들의 정서를 많이 반영했기에, 이 주장 역시 우리들의 어떤 근원적인 공감대를 자극하는 면이 있습니다. 저 타인과 나를 선 하나로 구별하는 자체가, 세상과 우주의 작동 원리를 이해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함의입니다.

"이상적인 자아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한다." 일본인들은 미국 페리 제독이 군함을 끌고 와 대포를 쏘며 경제 개방을 요구했을 때, 서양 문명의 발달된 현황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와 타인이 명확히 구별 안 되는 농업공동체의 삶은 전근대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의학, 물리학, 화학, 각종 공학 등을 공부하고 다시 태어난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불교에서는 같은 영혼이 몇 번이고 다른 삶에서 다시 태어난다고들 상상하는데 이 역시도 개인의 삶 그 독립선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비이성적 미신으로 격하되기도 했죠.

그러나 저자는 의사로서 임사(臨死) 체험이라는 것도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혼이 일단 육체로부터 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잠시의 시간 동안 나를 벗어나 관찰한 나의 모습은 매우 낯설고, 그토록 애써서 집착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도 느껴졌다고도 증언됩니다. 물론 당사자들의 이런 발언들은 그 디테일을 하나하나 신뢰할 건 아닙니다. 사람의 의식이나 기억은 사후(事後)에 편할 대로 조작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임사체험을 책이나 미디어에서 이미 접하고서, 자신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없다고는 못 합니다. 하지만 과연 누가 죽음 앞에서 "나는 완전히 독립된 영혼이며 타인들과 분리된 개체이다."라고 과감히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변해야 할 상황인데 말입니다.

저자는 p128에서 현재의 일본 정치계를 맹렬히 비판합니다. 당대의 근시안적인 이익을 위해 함부로 국민의 세금을 쓰며 이 중에는 좁고 복잡한 일본의 국토와 자연에 민감한 영향을 항구적으로 남길 위험한 사업도 많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별개이며 자연은 인간에게 정복 대상일 뿐이라는 못난 생각도, 내가 사회와 세계로부터 고립된 개체라는 아집이 그 근원입니다. 좀 더 멀고 깊게 세상을 볼 필요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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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 카네기 서거 70주년 기념 증보완역본
데일 카네기 지음, 강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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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입니다. 확실히,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동맹군을 얻으며 내 의사를 관철해 나가는 능력은 사회 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데일 카네기는 이미 20세기 초 미국에서 무엇이 사회생활의 핵심이며 출세의 비결인지 깊이 연구했고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구루였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고전은 널리 읽히며 독자들에게 유익한 영감을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데일 카네기의 책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실화가 자주 인용됩니다. 재미있는 건, 데일 카네기도 자신의 책에다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자주 털어 놓는데, 저자가 자기 사연을 자기 책에 쓰는 건 저자만의 특권이므로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데일 카네기 역시 성공한 사람이므로 자신의 책 중에 등장할 자격이 있습니다. p57 이하에서 데일 카네기는 자신이 평소에 강연장(그는 대단히 능란한 연설가였습니다)으로 이용하던 호텔의 대강당 사용료를 갑자기 300% 인상한다는 통보를 받았던 이야기를 합니다. 결론은, 데일 카네기 자신이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여 호텔 측과 50% 인상에 합의를 봤다는 건데, 서로가 양보할 건 하고 둘 다 윈윈하는 선에서 끝을 봐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300% 인상 같은 어처구니없는 처사를 당해도, 대뜸 화부터 내고 감정싸움으로 갔다면 좋을 게 뭐가 있었겠냐는 가르침이겠습니다. 

그런데 저 같으면, 처음부터 쎄게 부르고 바텀라인을 높이려는 수작에는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여기 아니면 어디 강연할 데가 없겠냐고 바로 대안을 찾겠다고 호텔 측에 역통보했을 것 같습니다. 저하고 아무 관계 없는 100년 전의 사정인데도 이건 뭐 대놓고 양아치짓이라서 너무 기분이 나쁘네요(ㅋ). p198에는 데일 카네기가 자기 강좌 수강생이 겪은 (제 눈에는 비슷하게 보이는) 다른 일화가 나오는데 같이 읽어 보면 좋을 듯합니다. 노사 관계의 현대적 모델도 상당 부분은 미국에서 이 시기에 정립된 건데 데일 카네기가 노사 협상에 이 이치를 응용하는 대목도 흥미롭게 읽힙니다.  

p56에는 아주 유머러스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카네기라는 성씨는 아일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보는데,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성공한 카네기는 두 사람이 있어서 우리 같은 비영어권 독자들은 헷갈리기도 합니다. 아이들 위인전에 자주 나오는 철강왕 카네기는 퍼스트네임이 앤드류이고 지금 이 저자는 데일입니다. 데일 카네기의 책에, 앤드류 카네기 같은 자수성가형 사업가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여튼 이 편지 이야기에서 앤드류 카네기의 기질, 장기가 다시 드러나는데 그는 누군가의 행동을 끌어낼 때 상대방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 동기를 심어 주는 전략을 자주 씁니다. 어렸을 때 병아리에 친구들의 이름을 붙여 줬다는 일화에서도 그랬죠.     

뛰어난 정치인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부터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도 물론 삼촌의 후광을 입은 인물이지만 그전에 화술이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인간 아편"이라며 (아무리 이해가 상충했다고는 하나) 그의 인간적 매력만큼은 유보 없이 인정했습니다. 이 책 p131 이하에서 데일 카네기는 TR, 즉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대한 일화를 들려 줍니다. 그는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해도 화제가 막히는 일이 없었는데, 누구라도 그와 대화를 마치고 나면 감탄하곤 했습니다.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올해는 데일 카네기의 사망 70주기라고 합니다. 이 스타북스의 새 책에는 기존에 없던 챕터 7, 챕터 8이 새로 포함되었는데, 그 중에는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몇 가지 원칙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여성들은 누구라도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며 나이 들어서도 꾸밈에 대한 열정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럴 때 남편이 그녀의 열정을 정확히 짚어 칭찬해 주면, 아내는 마음이 더없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행복해야 가정과 모든 식구들이 행복해짐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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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 버는 힘 - 돈 버는 능력을 키우는 부자 되기 최단 루트, 개정판
박서윤.강환규 지음 / 라온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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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 버는 힘 (최신개정판)

2021년에 박서윤 소피노자님이 남편분과 함께 쓴 <10배 버는 힘>이란 책이 인기를 끌었었고 지금 이 책은 그 개정판입니다. 부제에도 나오지만 그새 재산이 더 증식되어서 10배가 아니라 16배가 되었는데, 다만 책 제목은 고심 끝에 그대로 전판의 그것을 유지하셨겠다고 독자인 저는 짐작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보통 우리가 "좋은 기운을 받고 싶다" 같은 말을 합니다. 인기 강사가 연단에 서서 열변을 토할 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신기하고 탁월한 (돈 버는) 방법과 이치라서 그렇게 강연장에 몰려가곤 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성공한 사람들한테는 강한 열정, 의지, 자신감이랄지 뭔가 상서롭고 럭키비키한 뭔가가 있습니다. 그걸 우리는 편의상 좋은 기운이라고 표현하는 건데 이게 미신도 아니고 사이비종교 같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잘되는 사람과 함께 다녀야 그 특유의 좋은 분위기가 나한테도 옮는 거고 알게모르게 지식이나 좋은 습관도 따라배웁니다. 이 책 p49에는 그와는 반대로 "불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이 나오는데, 이런 사람들을 멀리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행여 우리가 그런 불운의 화신이 남들에게 되지나 않는지 각별히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p123에도 나오듯이 부자가 되려면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적극적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그걸 저자들은 "주인공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 책에는 세 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첫째 나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는 주문을 외워라, 둘째 인싸가 되어라, 셋째 사회에 공헌을 세워라 등입니다. 이 대목이 저는 참 좋았는데, 아무리 인싸라도 내가 내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으면 안 됩니다. 없으면 주문을 만들어서라도 나 자신에게 불어넣어야 합니다. 사실 인싸를 자처하며 남한테 민폐나 끼치고 돌아다니는 건 그냥 정신이상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되려면 주변에 끼치는 공헌(功獻)이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 세 요소 모두 참된 주인공이 되기 위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173을 보면 현대의 삶이라는 게 우리 목표를 방해하기 위해 짜여진 알고리즘과도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의 구조가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얽혀,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웠더라도 당초의 계획대로 밀고나가기가 무척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 그냥 내 생각만 고집해서 안절부절하거나 미련하게 상황이 없어지기만 기다렸다가 내 계획대로 세팅되기만 바란다면, 그새 다른 조건들이 싹 바뀌어서 모든 계획들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말합니다.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라" 이 점이 중요합니다. 한번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그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미리 챙겨 두고 다음 단계를 모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IOC위원을 지냈던 김운용씨도 사람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서유럽의 스포츠 귀족들에게 만날 때마다 깎듯이 인사를 하는 등 다른 이들에게 내가 특별히 대접받는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p214에도 그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저자께 어떤 독서 모임의 회원이 이름표를 만들어 다른 회원들도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잘 알아 두게 배려하자는 아이디어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나옵니다. 저자분은 당연히 다른 회원의 이름을 알지만 타 회원들끼리는 그렇지 못할 수 있는데 이 점을 미처 살피지 못한 거죠. 이 외에도 5만 명의 이름을 알았다는 짐 팔리의 예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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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읽기와 필사 - 국가와 국민의 약속, 헌법 읽고 쓰기
대한민국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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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제9차 개정의 산물이며 최초로 여야 합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사실 "여야 합의"는 당시에 강조하던 의의이며, 지금은 그보다는 6월 시민항쟁의 산물이라는 쪽을 더 내세우는 듯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시대에 잘 안 맞는 점도 노출되었지만, 제헌 이후 39년 동안 9차나 개정되던 헌법이 1987년 이후로는 38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은 걸로 보아 규범력만큼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해진 헌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운용의 묘를 살려, 구태여 개정에 국력을 소비하기보다 지금 있는 헌법을 잘 살리고 적극적, 건설적 해석을 통해 문언을 존중해 나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안 지키고 악용하려는 사람이 문제지 법이 문제겠습니까.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필사책이라고 해서 지난번 대통령 탄핵 결정문처럼 크라운판형에 반양장인 줄 알았는데 하드커버라서 받아보고 좀 놀랐습니다. 확실히 고급스럽게 보이긴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두 10장으로 이뤄졌고 앞에 전문(preamble)이 있으며 말미에는 부칙이 달렸습니다. 전문은 그간 여러 차례 개정절차에 따라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대체로는 유진오 박사의 원문이 풍기는 박력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제1장 총강에는 그 유명한 제1항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나옵니다. 고종, 순종 황제의 후손을 세워 복벽한다거나 하지 않고, 이제 국민의 손에 놓인 주권(sovereign)이 영원히 국민의 것일 뿐임을 장엄하게 선언합니다.

p28에는 행복추구권이 선언되는데 이 부분은 8차 개헌 때 들어갔다고 합니다. pursuit of happiness는 원래 미국 헌법이 아니라 독립선언서에 나오는데(광의의 헌법이기는 합니다), 이게 지금처럼 추상적인 행복 추구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기보다 (그 당시 기준으로) 사유재산을 열심히 노력한 끝에 취득하고, 그걸 권력에 의해 부당히 빼앗기지 않을 권리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돈 벌 권리, 그렇게 번 돈 내 맘대로 쓸 권리인데 점잖으신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기독교 신자들이 말을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저렇게 돌려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36조는 혼인과 양성존엄 평등에 기초한 가정의 보호를 규정합니다. 또 2항은 특별히 모성(母性)의 보호를 선언하는데 모성은 출산과 양육 기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항에 양성평등을 이미 선언했으므로 이게 소위 독박육아의 옹호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특이하게도 보건권이 이 조에 놓였는데 이건 시대에 좀 뒤떨어진 듯 보이기도 합니다. 보건권이 뭐 어쨌다는 게 아니라 이 조(條)에 배치된 게 체계상 어색하다는 뜻입니다. 9차 개정 당시의 시대 감각으로는 그럴 만도 했을 것입니다.

p188의 제86조 1항을 보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동의라는 건 사전동의를 말하며 사후동의는 동의가 아니라 승인입니다. 이 조항은 제헌 당시부터 계속 이어져왔는데 한국 헌법에서 확고한 내각제적 요소(대통령제 하라고 해도)로서, 만약 국회가 총리 임명 동의를 안 해 주면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YS 이전에는 대체로 대통령의 당이 국회다수당이거나 의석수 1당(과반은 아니더라도)이었기 때문에 큰 의의가 없었고, 국회 동의가 없어도 서리(署理)라는 형식으로 임명하여 국무총리의 직무를 사실상 수행했습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위헌이었는데, 과거에는 지금처럼 상시 개원(사실상) 국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합리화되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p228에 105조가 나오는데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임기 등을 규정합니다. 우리 나라는 특이한 게, 헌법재판관은 9인이라고 헌법에 규정된 반면, 대법관의 정원은 법원조직법에서 정할 뿐이므로 국회에서 일반 법률의 개정 절차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112조에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 등이 규정됩니다. 농업 경영 합리화를 위해 농지를 임대한다거나 융통성 있게 정책을 펴지 못하고 오로지 거주자, 직접 경작자에 한해 소유를 허용하는 건 p268의 121조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때문인데, 해방 직후에는 이 조항 아니었으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에 중요했겠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좀 변화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런데 말을 이렇게 하고 보니, 서평 초두에 제가 개헌하지 말자고 했던 것과 꽤나 모순되네요 ㅋㅋ 

편제가 고급스럽고 필사란도 기능적으로 짜여져 아주 만족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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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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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혜 작가님의 신작 장편입니다. 저는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단편집)>, <해를 품은 천리안>, <사랑의 묘약> 등을 읽고 전에 리뷰를 남겼는데, 세 편 모두 개성이 다릅니다. 매우 도회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델리키트한 삶을 소재로 삼은 것도 있고, 오랜 전통의 고장 진주 출신 작가답게 꼬장꼬장한 양반의 가치관을 체화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공간, 시대를 초월해서) 상류층의 삶들이 소재로 등장한다는 건데, 제 눈에는 꽤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저희 모친도 저 밑에 통영여고 나온 분이라서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본래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입니다. 기생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게 아니라 논개는 원래 주달문이라는 학식있는 인물의 딸이었는데, 그 삼촌이라는 자가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팔아먹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놈은 어떻게든 천벌을 받기 마련인데(p61 참조)... 아무튼 논개(아명은 옥)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고 기질이 영특했으나 이런 곡절을 거쳐 관비로 등재되었고 천한 기생의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소설에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사실 이런 배경이 구태여 세팅되지 않더라도 조선 시대 기생은 요즘 술집 아가씨들처럼 돈 몇 푼에 몸을 파는 매춘부하고는 좀 성격이 달랐습니다. 기생집을 드나드는 손이라고 해도 쌩으로 저질들이 드물었으며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주류였기 때문에 기생 역시 그에 합당한 소양을 갖췄어야 했습니다. 아무하고나 잠을 자면 금세 소문이 나 그 세계에서조차 싸구려로 찍히고 저급의 색주가로 팔려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교양 있는 선비들을 상대하니 들은 풍월로라도 지식이 쌓였고, 세계관과 철학이 사대부의 그것으로 마이그레이션되는 게 보통이었겠습니다.

아마 고객들(?)도 술과 웃음을 파는 계집이라고 함부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겠고, 고객에게 존중을 받으니 고유의 기풍이 생겼겠으며, 이런 기풍이 있으니까 왜장을 끌어안고 죽는 의기를 발휘한 이런 인물도 나온 것이겠습니다. 수백 년 후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창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장교들을 접대했는데, 파리 해방 후 그 창녀들은 모조리 거리로 끌려나와 삭발을 당하는 등 공개 모욕을 당했습니다. 손님을 가려받지 않은 당사자들도 한심하지만 사회 최하층을 상대로 무슨 나치 잔재 청산을 한다며 난리를 친 파리 시민들이라는 비겁한 작자들도 역겨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조선이 20세기 초 프랑스보다는 더 사회윤리와 기강이 잡힌 사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겅상우병사 최경회가 p109에 등장합니다. 경북 옆에 영해라는 지방이 있는데 지금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최경회도 원래는 전라도(p110) 능주 사람인데 냉면으로 유명한 지금의 화순(p124)입니다. 영해 동헌의 우물물이 좋다는 등 성지혜 작가님 특유의 지방색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김씨 부인도 조선조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부인으로서 그 이상적인 미덕, 인격, 품행이 두드러집니다. 진주 교방은 소례풍이라는 인물이 대모 구실을 하는데, p151 이하에 나오듯이 이 사람도 본래가 천출이 아니라 억울한 사정이 있어 흘러흘러 여기까지 온 것으로 설명됩니다. 통하는 게 있어야 사람을 내 여유 안에서 봐 주든지 할 텐데, 주논개와 소례풍은 살아 온 삶의 궤적 면에서 이렇게 닮은 데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일상이라는 게 모두 날아갑니다. 평범하게, 우리들처럼 트위터 하고 인스타하면서 지내던 우크라이나의 여인들, 젊은이들의 삶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p182를 보면 사마천의 <사기>에서 삼망(三忘)이라는 말이 인용되는데 집(가족), 부모, 자신을 잊으라는 뜻입니다. 최경회는 원래 지방관이었으나 관군이 박살난 후에는 의병장으로서 맹활약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런 패턴이 많았습니다. 진주(晉州)는 조선 시대 삼남 최대 인구 밀집지 중 하나였으며 왜군에 대해 가장 처절하게 맞서 싸운 고장이었고 피해도 가장 심했습니다. 논개 같은 민족혼의 한 상징은 그런 배경 하에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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