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의 시대 - 인플레이션 쇼크와 금리의 역습
김광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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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이란, 허리띠를 졸라매고 씀씀이를 줄이는 걸 대체로 가리킵니다. 아마도, 경제적 곤경에 빠져서 쓸 것을 애초에 못 쓰고 가난에 시달리는 건 긴축이라 부르지 않을 듯합니다. 그보다는, 아낄 수 있을 때 자발적으로 아끼는 게 긴축의 뜻에 가깝겠으며,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국가의 정부에서 긴축 정책이란 쉽게 쓸 수 없는 옵션입니다. 국민들 중 어느 누구라도, 종전보다 많은 이자를 내고 종전보다 줄어든 혜택에 만족하라면 좋아할 이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유명한 긴축이라면, 1970년대 후반 연준의장 폴 볼커가 취한 살인적인 고금리 긴축이었겠습니다. 이때 그가 큰 마음먹고 긴축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겠으며 이후 바로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었을지 모릅니다. 짧게 굵게 고생하려는 각오가 없다면, 이후 내내 불황에 시달리며 회복의 기회를 도통 못 잡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공급망 붕괴 때문에 이 모든 위기가 닥쳐왔다고 하는데 아마 트럼프 재임 기간 반중 정책의 폐해를 꼬집는 의도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1) 코로나 위기 당시 지나치게 많이 풀린 지원금 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 자원 가격 폭등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지금 이 책은 풍부한 도표, 컬러 편집, 최신의 글로벌 사정 반영 등으로 우리 독자들이 지금 위기가 어떻게 비롯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태가 전개될지 잘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저자님 특유의 진단과 해결책 제시 부분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코로나 위기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세계는 어떤 근원적인 변동을 맞고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대전환의 시대"라 요약하며 그 방향성 셋을 꼽습니다(p49). 첫째는 디지털 대전환, 둘째는 에너지 대전환, 셋째는 긴축 시대로의 대전환입니다. 그러니 저자는 현재 각국 정부가 겁내는 어떤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게 닥치기 이전부터 이미 긴축을 내다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12년 그리스 위기 당시 미국을 위시한 서유럽 경제 강국들이 모여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실시한 적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력이 크게 나아진 바 없는데 돈만 공연히 많이 풀렸으니, 이 완화는 이제 거꾸로 몸을 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꼬인 줄을 허공에 띄워 놓으면 알아서 반대방향으로 주르륵 풀리듯 말입니다. 


1990년대 지구를 지배했던 시대정신은 "세계화"였습니다. 각 나라는 각기 잘하는 산업에 전념하여 가장 싼 가격으로 물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이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으며 모든 기업은 이른바 "오프쇼어링", 해외에 있는 더 싼 생산 기지를 찾아 본국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리쇼어링의 시대입니다(p56에 표를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기업 철수 사례가 정리됩니다). 해외에 나가 보니 본국과는 다른 문화, 다른 규제가 장벽으로 우뚝 서 있고, 임금이 싸 좋은 줄만 알았더니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개도국 정부는 은근히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며 알짜 기술과 정보만 빼가려 혈안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세계화의 종식"으로 규정합니다(p53). 그 종식의 포성은 바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선진국은 공장 증설을 해도 자국에 하려 들고, 그 결과 부품이나 소재의 병목 현상이 일어나도 제때 원활히 공급이 늘지 않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난다는 경제학의 철칙이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탈세계화가 이처럼 진척되면 기존 더 저렴한 부품이나 소재를 개도국으로부터 사 쓰는 게 어려워지고, 대신 더 비싼 자국 것을 사야 합니다. 이러니 인플레가 더 가속화하거나 빈발하게 되는데 저자는 책 p66에서 반도체의 예를 듭니다. 반도체는 산업 전반에 걸쳐 안 쓰이는 데가 없으니 반도체의 사례가 모든 분야를 대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는데 왜 우리 나라 경제가 타격을 입을까요? 이제는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당연하게들 여깁니다. 2012년 그리스 사태 때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주식 시장의 붕괴를 보며 그리스를 욕했습니다. 지금은 입을 모아 러시아를 비난합니다. 지구 반대편의 사정은 더이상 지구 반대편의 사정이 아니라 목전에 떨어진 발등의 불입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 큰 리스크를 지고 경제를 꾸려 나가는 걸 선진국들은 더 이상 용인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자국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거리도 줄 겸 이제는 장벽을 치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거죠. 물가 상승은 필연입니다. 불과 30년 만에 지구 도는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WTO 같은 건 뉴스에도 잘 안 나오는 요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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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유전자 -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하여
요아힘 바우어 지음, 장윤경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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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고전 <이기적인 유전자>는 많은 독자들에게,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유전자라는 대상에 대해 적어도 어떤 감정이나 인상을 받은 데에 기여했습니다. A, G, T, C라는 무미건조한 성분으로 구성되었을 분인 유전자를 놓고, "이기적"이라는 가치 규정을 한 것부터가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도킨스 같은 석학이 그를 두고 이기적이라고 했으니 여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유전자 아니라 무엇이라고 해도, 번식과 생존, 혹은 진화에의 의지를 가졌다면 그냥 이기적이기만 해서는 목적(그런 걸 혹 가졌다면)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자신(어폐가 있지만)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타자(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와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공감의 전략이라는 건 이기적 관점에서도 매우 유익합니다.


도킨스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사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건 개체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널리 유전자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이 반드시 도킨스의 주장과 상충하는 건 아니겠습니다. 그런데 개체가 아닌 유전자 단위에서도 타(他)와 공감하고 협동하며 이타적으로 구는 편이 현명하다는 건 그 고전의 견해와 분명 대조를 이룹니다. 여튼 저자는 도킨스를 콕 짚기보다, 찰스 다윈 이래 이어져 온,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서로 밀어내는 존재(p29)"라는 어떤 믿음, 혹은 인상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려는 듯합니다. 또 저자는 같은 페이지, 또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도킨스는 유전자를 연구한 학자가 아니며 따라서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그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고도 명시적으로 주장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책 저자께서 이해한 바대로의 도킨스적 관점이므로, 저자의 이런 이해와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가능할 것입니다. 


"인간의 게놈은 누군가에 의해 연주되는 피아노와 같다(p32)" 어찌보면 저자가 주제와 연구 대상을 참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멋진 문장입니다. 이 표현은 지금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한 건 아니며, 미주(p241)에 의하면 동 저자의 전작 <몸의 기억> 중에서 이미 시도했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저 책은 04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어판은 그 2년 후인 06년에 나왔습니다. 지금 이 멋진 책의 전작 <협력하는 유전자>도 이미 08년에 나왔다고 하니, 22년인 지금에서야 이 책이 우리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게 아쉬운 면마저 있습니다. 도킨스의 책은 벌써 4년 전에 40주년 기념판이 나왔을 정도인데도 말입니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저 개인적 느낌도, 쌀쌀맞고 투쟁적인 도킨스의 책들보다는 뭔가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책을 고르고 읽음에 있어 그런 "느낌"이 전부일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우리 독자들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기보다, 이런 책도 읽어 보고 저런 책도 접해 봐야 견문이 넓어지고 균형 잡힌 생각을 갖게 되겠으니. 


우리는 성격이나, 특히 건강에 관련하여 "나쁜"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여깁니다. 유전자가 좋고 나쁜 게 애초에 있겠습니까만 인간은 제 생존과 행복에 이롭고 그렇지 못한 걸 그 나름의 기준으로 갈라서 볼 권리 정도야 가집니다. 그런데 저자는 심지어 그런 관점에서조차, 나쁜 유전자라는 건 없다고 합니다. 개별 인간의 삶 속에서 유전자는 (말하자면 피아노 연주자 같은 무엇에 의해) 특정 기능을 발현하거나 자제될 수 있겠고, 만약 그렇다면 설령 "나쁜 유전자"라 해도 어느 상황에서는 좋은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유전자뿐 아니라 널리 자연과 인생, 사회를 보는 눈을 훨씬 심원하게 틔워 줍니다. 또 유전자 편집 기술이 꽤 발전한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우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붙여 넣는 선택이 왜 신중해져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감을 줍니다. "유전자는 소통가이며, 또한 코퍼레이터(협력자)이기도 하다(p34)." 사실 08년 전작의 독일어 원제도 "협력적인 유전자"이긴 합니다. 


과학자가 자기 본래의 연구 분야가 아닌, 예를 들어 "인간성, 인격, 도덕" 같은 주제를 놓고 이를 정의하거나 긴 논변을 펼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책이 그런 책 같습니다. 저자는 유전자를 평생 공부해 왔고 또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연구 결과의 정수 외에 오랜 동안 성찰해 온 사회와 인간에 대한 심오한 결론까지 함께 제시합니다. 특히 저자는 근래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정신질환, 마약 중독 등이 인터넷의 발달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합니다(인터넷과 인간 사이의 연대에 대해 책 후반부인 p182 이하에서 저자는 자세히 논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인간 소외, 사회적 차별, "좋은 삶", 유전자에 기어이 도달하고 마는 "사회적 경험"까지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관점에서 협력적인 살믜 유익함이, 그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신경을 거쳐) 저 깊은 유전자 단위까지 도달하여 영향을 끼치고야 만다는 저자의 "과학적" 주장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공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영화 <스피시즈>를 보면 포레스트 휘태커가 연기한 스미슨 역은 사소한 흔적만으로도 그 흔적을 남긴 사람 혹은 생명체가 어떤 감정 상태였는지 알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책 p105에서는 "타인의 음성언어나 신체언어의 신호가 아주 약할 때에도 직관적으로 공명하는 사람이 있으며 이런 사람을 두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부른다... 이것은 신경세포의 공명 능력이 얼마나 놀랍고도 중요한지 보여 주는 사례"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공감능력과 동정심 등은 그저 윤리적이고 추상적이며 감상적인 자질이나 특성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량적으로 계측이 가능한 하나의 연구 대상인 것입니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좋고 나쁜 건 고정된 게 아님"을 지적했었습니다. 마냥 좋을 것만 같은 저런 세포 공명 기능도, 잘못 쓰이면 "비합리적으로 전개되거나 파괴적인 결과(p108)"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악한 자의 선동에 의해 많은 이들의 정의감정이 조작되고 왜곡되는 사례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죠. 이처럼 저자는 아무리 바람직한 논거가 발견되어도 이것 하나로 폭주하지 않고 엄밀한 논리와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며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된 구조를 유지합니다. 책의 최종 결론만 그저 타당하고 유익한 게 아니라 이모저모 다층적으로 독해해도 그 단면마다의 일관성이 모두 유지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공감적 관계를 맺지 못한 대상은, 인간은 결국 보호하지 않는다(p137)." 그래서 개 등을 먹는 동아시아인을 서유럽인들이 저리 끈덕지게 비판하는 거겠고, 일식에서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조리되는 물고기에 대해 저들이 아무런 거부감(은커녕 열광하며 먹어대죠)을 안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튼 저자는 이로부터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건설적이고 동화적이며 기여적인 태도가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도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 결론(자연을 보호하자)이야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바이지만, 이 책은 그 논거를 "공감하는 유전자"로부터 마련한다는 게 흥미롭고, 또 사회적 당위성의 합의와 자연과학적 엄밀성이 이렇게 교차하고 합입할 수 있다는 게 다시 놀랍습니다. 


"인간의 뇌는 주관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p159)." 서양인들은 문학작품에서 특히 기억을 중시하는데, 기억은 그저 머리에 저장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주위와 교감하며 열심히 산 흔적과 맥락이며 어찌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과 존엄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치매에 걸린 이들에게 그 최소한의 존엄이 무너졌다며 우리가 그토록 안타깝게 여기고 또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무서워하는 거죠. 달리 말하면 타인과 건강한 관계 맺음을 통해 인지적 건강을 유지 못하는 개인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위중한 상태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불건강은 곧 유전자 단위의 병듦과 직결된다는 저자의 대전제와 연결하면 더욱 섬뜩한 결론이 나옵니다. 


복내측 전전두엽피질, 배외측 전전두엽피질, 후방대상 피질, 이 세 가지는 자아 연결망의 세 가지 요소(p209)입니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세밀히 정의되고 파악된 자아는 심리학에서 일찍이 말한 여러 개념과도 잘 통하며, "무의식의 존재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신경망은 자신에 대해서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정신화(p210)"를 시도할 때에도 활성화된다는 게 특히 재미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 자아(이미 고립된 내가 아닌)에게 특히 필요한 건 바로 공명(p225)"이라고 저자는 결론을 맺으며, 과학과 윤리가 이처럼 한 지점에서 포옹하며 궁극 최종의 결론이 언제나 하나임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감동적입니다. 20세기 독일 가수 마를렌 디트리히의 노래 중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을 위해 태어난 사람(p65)"이란 가사가 포함된 게 있다고 합니다. 이 통속적인 구절이 자연과학의 결론이 될 수도 있다니!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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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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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결코 착하지만은 않았고" 아마도 그래서 의도적으로 "바보로 만들어졌는지" 모릅니다. 이는 저자 나탈리 헤인즈의 말이며 사실 우리 독자들이 생각해 봐도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매도되고, 단죄된 감이 있습니다. 반면 남성인 신과 영웅들은 훨씬 난폭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한 때에조차 찬양과 기림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왜 죄 없는 여성들이 대신 오명을 뒤집어썼으며, 그 죄목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거침 없는 필치로 써내려가는데 내용이 타당할 뿐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현재 일곱 편이 남아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오이디푸스 왕>이라고 합니다(p47). 우리말로 저렇게 옮기면 별 느낌이 없는데, 인문 고전 지식에 능통한 저자는 도대체 왜 이 작품의 이름이 <오이디푸스 렉스>라는 라틴어로 두루 통하는지에부터 의문을 제기합니다. 당연히 소포클레스는 그리스인이었으니 원전대로 <오이디푸스 티라노스>라 불려야 마땅하다면서 말입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원래 마땅히 주목받아야 할 인물은 이오카스테 왕비였으며, "대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p70)"라는 의문까지 제기합니다. 비단 소포클레스뿐 아니라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서도 그러하며, 저자는 다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에우리피데스의 안티고네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지에 대해서까지 논급합니다. 이어 그녀는 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여인들이 더 적극적인 행동과 독자적인 목소리를 갖게 되는지로 결론부를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트식 분석틀과 그 분석틀 자체에 대한 비판이 끼어드는 건 물론입니다. 공교롭게도 라틴어 "렉스"와 그리스어 "티라노스"는 모두,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어느 쥐라기 공룡의 이름을 구성하는 성분입니다. 한국에서는 그저 티라노사우루스라고만 부를 때가 많으므로 약간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으나 미국에서는 거의 언제나 저 공룡의 이름 뒤에 "렉스"를 붙이며 이것이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말장난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한국어판에서 정영목 번역가가 친절히 설명). 


헬레네는 정말로 큰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그녀에게는 아름답다는 사실 자체가 죄였으며, 그랬기에 아무 잘못도 없는 파리스를 타락시키고 마침내 전 지중해 세계에 전쟁을 불렀다는, 일종의 전범으로까지 매도되었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 부당한 비판도 없습니다. 냉정히 서사를 우리 독자들이 살펴 봐도, 평화가 전쟁으로 바뀌기까지 헬레네의 잘못은 없으며 오히려 객으로 받은 환대를 정면 배신하고 남의 아내를 납치해 간 파리스가 부당한 짓을 저질렀음이 명백합니다. 파리스는 심지어 제 조국의 앞날과 부모 형제에 대한 책임마저도 저버런, 비겁자이자 매국노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이를 분석하며, 흥미롭게도 이성들 간에 쟁탈이 되는 대상으로 그리스 신화의 헬레네와 맞먹는 캐릭터가 히브리 설화의 요셉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왔으나 남다른 미남자였으며 그에 눈독 들인 여성들의 과오로 인해 파장 큰 불화를 빚은 장본인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민담에 등장하는 미남왕 아라도 언급됩니다. 왜 뒤의 두 남성은, 헬레네에 비해 덜 비난받고, 차라리 영웅으로까지 칭송될까요? 서사 중에서 맡은 역할은 거의 같은데도 말입니다 이런 부분이 이 저자만의 독창적이고 대담한 시선, 평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요셉과 헬레네를 연결시키다니! 흥미롭게도 이 논의는 스타트렉의 엘란(이 캐릭터는 원작 드라마에서도 명백하게, 그리스의 헬레네를 염두에 둔 피조물이긴 합니다), 실존인물인 메리 스튜어트(스코틀랜드 여왕),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가 재해석한 헬렌에까지 이어지네요.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린 메두사도 재평가의 연단에 오릅니다. 사실 메두사는 처음부터 아무 잘못이 없었으며, 이기적인 페르세우스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부당하게 희생양이 되었죠. 여기서도 저자는 히브리인들이 만든 여성 영웅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도나텔로의 그 유명한 그림을 예시합니다, 그러고 보면 전혀 아닐 것 같아도 히브리인들은 의외로 여성들에 대해 온당하고 대등한 비중을 부여했으며, 그리스인들이야말로 일방적인 남성 편향을 내비친 성차별주의자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성별만 반대일 뿐 정확히 대칭적인 역할이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부여되었을까요? 저자는 "참수"를 "거세"의 행위와 연결시키는 독창성을 또 뽐냅니다.


아마존은 현대 영화 <원더우면>에서 묘사되듯(p173) 그리스 신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이고 전투적이며 주체적인 역할이 부여된 종족입니다. 물론 그 이름은 "무엇인가의 결핍(무엇인지는 생략하겠습니다)"을 뜻하는 다소 비하의 의미가 있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히폴리테, 또 트로이 헥토르의 부인 안드로마케, 그리고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의 그 묘한 주인공에까지 또 상상력의 나래를 펼칩니다. 이런 주제적이고 싸움 잘하며 남성에 완력으로도 밀리지 않는 똘똘한 여성들은 그 편향적인 그리스 신화에서조차 완전히 말살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뒤의 두 영화에서처럼 현대에 들어 흥미롭고 매력적인 여전사 캐릭터의 창조에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인 듯합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마 가장 논쟁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여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부재시에 별 양심의 가책 없이 부정을 저질렀고, 전장에서 십 년만에 귀환한 남편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누구의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아도 악녀 악처가 맞을 듯하나(p208), 저자는 차근차근 왜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짚습니다. 일단 남편인 아가멤논 왕은 출정 전 딸 이피게네이아를 별 갈등 없이 제물로 바치려고 했으며, 귀향길에는 크리세이스를 전리품으로 데려와 아내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자격도 없던 자가 이제는 남편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의무도 저버리다니! 저자는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이 그나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행동과 판단에 정당성을 (공정하게도) 부여한다고 결론 맺으며 사실 이는 많은 고전인문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거의 갈리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에우리디케는 신화 원전에서 남편 오르페우스와의 비극적 사랑으로 유명합니다. 영화 <흑인 오르페>에서도 이 설정은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캉캉으로 잘 아는, 오펜바흐의 유명한 작품 <지옥의 오르페우스>에서도 에우리디케의 비중은 적지 않은데 바로 저 캉캉이 그녀가 추는 춤(p239)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20세기 시인 힐다 둘리틀을 인용하며 그녀의 서늘한 분노와 의기양양함이 어떻게 멋지게 구현되었는지 설득력 있게 들려 줍니다. 사실 이는 에우리디케의 분노이자 동시에 저 시인의 격앙이기도 합니다. 


악녀 하면 또 파이드라가 빠질 수 없습니다. 요절한 미남배우 앤서니 퍼킨스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페드라>에서도 그녀는 현대인에게 일종의 악몽으로 다시 현현합니다. 하필이면 의붓아들을 정부로 골라서는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파멸의 길로 몰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 즉 잔인한 미와 애욕의 여신에 의해 그녀 역시 운명의 장난감으로 선택되었을 뿐이며, 그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이 지키려 들었던 모든 이들에 대해 장엄하고도 가차없는 방법으로 보호하려는 의도였을 뿐이었다고 저자는 변호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악행에 대해 이런 변론이 가능한 건 아니며 또 그럴 필요나 동정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메데이아 하면 독극물 사용의 대가이며 사실 악녀 중에서는 이 캐릭터야말로 이해의 여지가 있는 편에 속합니다. 우리는 그녀가,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이아손에게 어떻게 버림받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녀의 분노는 그녀보다 한 수 아래 남자(p303)인 크레온 왕을 향합니다. 아무리 그가 오만해도 여인은 그 단순한 남자의 동기를 훤히 꿰고 있습니다. 이 모든 해석의 영감을 제공한 고대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탁월한 필치에 저자는 찬양과 존경을 아끼지 않습니다. 여인의 한과 분노는 그 끝을 모르며 테세우스니 아이게우스니 하는 모든 남성 권력자들은 그녀의 치밀하고 영리한 복수의 손길에 속수무책입니다. 현실에서 패자나 을의 위치에 놓일 뿐인 여성들에게 메데이아는 영원한 대변인이자 챔피언입니다. 악녀는 알고 보면 대체 불가의 존재 이유가 있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은 페넬로페가 장식합니다. 현모양처의 아이콘이자 남성에겐 어떤 궁극의 안식, 위안을 제공하는 여상상인데 어느 부당한 차별주의자에 의해서도 결코 폄훼되지 않는 미덕의 상징입니다. 사실 신화는 이런 불가침의 요새를 여성들에게 마련함으로써 최후의 승자를 남성 아닌 여성으로 예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가뜩이나 여성 중심으로 이뤄진 <오딧세이아>가 이 거대한 어머니, 아내를 통해 마무리됨을 지적하며 결국 그 모든 모험과 승리와 영광이 오직 여성에게 예비되었을 뿐이라고 회심의 미소를 어리석은 남성들을 향해 날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논의는 고전(어)에 대한 치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통해 이뤄지니, 서양 고전 지식(헬라어, 라틴어)이라는 게 학자나 작가에게 저쪽 동네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질이요 무기인지도 다시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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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2
김광호 지음 / 아담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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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모나코"인가였습니다. 1권에는 제 기억으로 외국 배경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이 2권 들어서야 처음으로, 채수희가 캐나다에 어학 연수 가는 사연이 있습니다. 독자인 제 생각으로 채수희가 캐나다에 가서 딱히 뭘 배워 온 것 같지는 않고, 1990년대 대학생들, 특히 서울 상위권 대학생들이 거의 필수로(졸업 필수 요건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주위에 개나소나 다 가니까) 가던 어학연수라서 시대상을 드러내기 위해 등장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제목이 왜 모나코인지는 2권 후반부에서나 밝혀지고 이 부분에서 독자의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이 소설은 정통멜로라서, 아니 정통멜로임에도 불구하고 성애장면은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1권 후반에 최기우하고 드디어 관계를 가지면서 몇 번 오르가즘에 도달했다, 이런 게 거의 유일합니다. 2권에서는 캐나다어학연수 2인 1실 숙소에서 윤애리라는 룸메이트가 알몸으로 파트너와 함께 있는 걸 목격하는 장면 정도. 윤애리라는 캐릭터는 딱 여기서만 등장하고 사라집니다. 최기우를 따라 (팔자에 없던) 공장에 취업하고 그와 동거를 하는 건 1권 후반에서 봤고, 이 2권 초반에서는 그런 아슬아슬한 관계가 드디어 파국을 맞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1권 중반에서 독자들이 다 봤고, 이해가 안 가지만 채수희는 바닥을 다 봤으면서도 최기우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데 기어이 이 2권 시작부에서 지하실까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여자는 답을 다 알면서도 순간순간의 감동으로 남자를...."이란 표현으로 채수희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해명을 해 주는군요.


애초에 최기우는 채수희에게 큰 애정이 없었으므로 이 소설을 테리우스 v. 주윤발로 보는 건 무리이겠습니다. 2권에서 테리우스(?)는 전반에 완전 퇴장하며 다시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1권에서 코믹 릴리프나 깍두기처럼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OOO가 2권 중반쯤에 또 독자를 만나네요. 깡패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대뜸 찾아와서 "순수한 수희를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그가 대견하긴 했으나 나이도 많고 수완도 더 좋은 범주가 녀석을 잘 요리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주윤발(!) 김범주는 이 외에도, 해결사로서 참 능숙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1권에서 재벌 회장의 청부를 받아 사이비 기자 노 아무개를 처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노 아무개는 이 2권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범주의 솜씨가 아니라 MJ회장의 돈이 추가로 투입되고 나서야 입을 다문다고 합니다. p206에 보면 "노효만이 MJ에 매수된 게 확실한 듯했다"고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맥락을 보면 더 이상의 정보를 검찰 측에서 모르는 걸로 보아 노효만이 더 이상 뭘 떠들지 않는다는 뜻이겠네요. 사이비 기자 건이 잘 해결되어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바로 문제가 또 하나 터집니다. 


부족한 리더는 부하를 쓸데없이 의심합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도 원로 탤런트 이치우씨가 扮한 양길 캐릭터(한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실존인물)는 지나치게 부하들을 의심하여 은부(박상조), 복지겸(길용우) 등이 기어이 배신하는 걸로 나오는데 이 소설 후반부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됩니다(스포일러라서 자세히는 말 못하고). 애초에 왜 변호사 송정인이라든가 보스 안영표가 자꾸 범주를 구치소에서 안심시키려 드는지가 좀 이상했는데 제대로 된 보스 같으면 집행유예니 뭐니를 미리 떠들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고 솔직한 소통을 하지요(상대가 김범주 같으면). 


(스포일러 조심)

여튼 깡패들이란 답이 없습니다. 신용이나 의리 같은 건 눈곱(눈꼽이 아님)만큼도 없고 기회만 되면 뒤통수를 칠 생각에 골몰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제 이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한때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니 뭐니 떠들지만 이런 놈한테 올바른 친구가 있을 리 없고 끝에 가서는 다 배신합니다. 깡패가 참는 건 감화가 되고 이성을 갖추어서 참는 게 아니라 더 진행하면 골치아파지겠다 같은 일차원적 동물적 판단이 고작입니다. 기회가 되면 바로 과거를 끄집어내어서 묵혀 둔 못난 분노를 폭발시키고 그게 멋있는 줄 압니다. 그래도 이 소설의 김범주처럼 멋지고 착한 놈도 있지 않은가? 깡패가 멋지고 착하면, 범주처럼 뒤통수 맞고 감옥에서 청춘기 십 년을 썩다가 운이 기적적으로 좋아야 빵에서 나올 뿐입니다. 이게 부럽나요? "십중팔구 나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p89)." 놈이 지 입으로 하는 말입니다. 


(스포일러)

"범인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부을 때 말이야. 그 장면이 재미있는데 너무 짧은 것 같지 않아? 눈을 도려내는 장면을 더 넣었으면 좋겠어(p116)." 과연 놈 다운 말입니다. 이게 데이트 자리에서 하는 소립니다. 주인공이라서 동정은 가지만 사실 놈도 결말에서 저렇게 죽었어야 했습니다.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고 하는데(p275 등), 거 참 큰 미덕이고 선행이네요 네. 십 년 빵살이가 결코 가혹하지 않았다는 걸 과연 놈이 깨달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만 안 죽였을 뿐 깡패 생활 내내 저러고 다녔지 않았겠습니까?(1권 p125:18)


(강력 스포일러)

소설 결말에서 갑자기 십 수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채수희가 성공한 대스타가 되는 게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아마 원래 엄청 긴 소설이 될 작정이었는데 모종의 사정상 확 줄인 결과일지, 아니면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현실에서의 눈부신 성공 그 자체보다 성공을 빚게 한 그 모든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길게 서술된)이 훨씬 값지다는 심오한 뜻일까요? 여튼 마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처럼 어느덧 중년이 된 주인공들의 극적인 해후가 가슴을 찡하게 하긴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범주가 수희를 위해 다른 손님 한 명 없는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합니다. 1권에서 첫만남(드럼통을 두들겨패는) 등 두 번, 이 2권에서 p134 이하 놀이공원 장면. 무엇보다 감동적인건 평생 글 같은 걸 써 본 적 없는 범주가 수희에게 차마 말로는 못할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 아닐까 싶습니다. 수희는 끝까지 가도 범주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니지 싶습니다. 기성범이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형수님(채수희)"한테 사태의 진상을 알릴 때, 수희는 "만약 처음부터 범주가 자신이 투옥되었음을 알렸다면 바로 헤어졌을 것"이라 말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끝까지 투옥 사실을 숨기려 든 데에 감동한 건 맞지만 그 마음도 "이런 남자와 어떻게 헤어지겠냐"는 동정심에 가까웠다는 걸 잘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사랑했다면 감옥에 찾아갔어야죠. 뭐라고 편지를 보냈건 간에 말입니다. 놈이 설마 "여긴 왜 왔어? 날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내 체면은 지켜줬어야지!"라고 했겠습니까?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출옥(사형수지만)할 때까지 기다리든가 말입니다. 


1권에서 주인공 수희가 하녀로 데뷔하는 장면이 p216에 나오는데 2권 후반부에서는 갑자기 대스타가 됩니다. p293에는 대스타 수희가 상상이 아니라 진짜로 모나코를 찾는 장면도 있습니다. p299, p339 등에서 언제나 나대기 좋아하는 수희 친구 박희준(1권에서부터 계속 나오는 4총사 중 한 멤버)은 제멋에 겨워 또 주인공 행세인데 이런 친구들을 여성이라면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꼭 보면, 괜찮은 여자 옆에 이런 타입이 하나 들러붙어서 초를 치더라구요. 수희가 스타가 된 언급만 있는 게 아니라 정상의 자리에서 갑자기 은퇴하고 조용히 사는 단계(아들도 있음)까지도 나옵니다. 1권에서 아주 인상적인 단역이자 첫사랑이었던 음악 선생을 먼발치에서만 보고 돌아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특정 연령대의 한국인들은 국산 영화 <겨울 나그네>를 슈베르트와는 별개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p30에 보면 "청소년기에 들었던 대만 여가수가 부른.... "이란 노래는 김범주는 무식해서 모르겠지만(제목은 모를 수가 없겠죠. 첫소절 가사니까) 진추하와 아비가 부른 남녀 듀엣곡입니다. 실제 이 곡은 1976년 발표이므로 김범주가 자신의 청소년기에 들었을 법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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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1
김광호 지음 / 아담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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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설은 잘 읽히고 볼 일입니다. 아무리 심오한 내용을 담았어도 가독성이 나쁘면 독자와 소통을 할 수가 없죠. 이 1권은 모두 34개의 장으로 이뤄졌는데 두 주인공인 채수희와 김범주가 번갈아 등장하며 1인칭 화자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시점을 배경으로 삼는지, 둘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는데, 채수희는 분명히 1990년대 전반을 20대의 나이로 살고 있지만 김범주는 나이가 삼십대 초반이라는 것 외에는 현대 한국의 어느 시대에 속했는지 좀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6장, p166에서 둘의 서사가 드디어 교차했기에 답은 분명해졌습니다. 


사실 둘이 안 만날 것 같다고 느낀 이유가, 모든 장이 하나 건너 다음 장과 연결은 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또 완결적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채수희가 음악 선생을 남몰래 사모할 때 이런 이야기는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가정해도 잘 어울리고 또 전개가 유쾌했기에 그냥 거기서 사연이 끝나도 이상할 게 없겠다 싶었습니다. 체육 선생, 음악 선생은 뒤에 또 안 나오지만 채수희와 그의 친구들은 계속 등장합니다. 


채수희는 아주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집안에서 자란 반면 김범주는 밑바닥 출신에 주먹 하나로 일어선 자입니다. 깡패라고 해도 아주 개념이 없어(p272) 그냥 말단 조직원으로 끝날 인생들이 있고, 전혀 자기 제어가 되지 않아 명을 재촉하는 유형(p123의 윤인식)이 있고, 어느 선까지 잘나가다가 딱 거기까지가 한계라서 조직으로부터 제거되는 윤삼원(p280) 같은 인간이 있으며, 지금 김범주처럼 능력도 있고 판단도 잘 되며 상식선에서 처신을 잘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김범주처럼 약점이 딱히 없으면 이번에는 보스로부터 견제를 받기 십상이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가장 좋은 선택은, 애초에 "깡패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밖에요.


채수희는 참 감이 뛰어난 여성 같습니다(?). p111에는 "신기가 있는지도 모른다"란 말도 있습니다. p57에서 그녀는 "뭔가 수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딱히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얼른 수상한 사무실로부터 도망쳐 나옵니다. 그런가하면 사실 그녀가 완전히 꽃혀 있는 남자는 최기우인데 어설픈 운동권 대학생에 지나지 않으며 주제도 모르고 정치인을 꿈꾸지만, 2020년대를 사는 우리들이 두 눈으로 확인한 대로 운동권은 지금 정치인 중 최상위 성골 라인이니 가히 그녀는 미래를 내다보고 남친에 투자 중이라 하겠습니다(!). 증거도 없었건만 일찌감치 끔찍한 일에 안 엮이고 상황을 모면했으니 대단한 센스다? 그런데 그녀 눈에만 안 보였을 뿐 우리 독자들은 <사건과 내막>, <여학생의 세계>가 얼마나 한심한 잡지인지 대번에 알아챘으며, 25년 뒤 한총련 출신들이 대한민국 최상위 티어를 차지할 줄을 지가 어떻게 알고 신랑감을 선점했겠습니까? 그냥 빌리 크리스탈(해리 역을 연기한 미국 코미디언)을 주관적으로 엉뚱한 대학생한테다 투사했을 뿐. 


한편 김범주의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채수희와 그의 친구들이 대뜸 주윤발과 동일시한 걸 보면 그 예외적인 상황(p174)에서 보정을 받은 걸 감안하더라도 꽤 잘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연애에 대단히 서투를 뿐 아니라 단 한 번도 외모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표현을 않는 걸 보면(아직 젊다면 젊은 30대인데) 은근 진중한 면이 있습니다. 하긴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 조각 낭만도 허락이 안 되기는 하겠는데, p235라든가 p251, p182, p68 같은 데서 기성범이, 차동만이 같은 이들이 형님한테 장난도 치고 여자도 소개시켜 주는 걸 보면 또 부하들은 젊은이답게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라고 해도 아랫사람한테 이 정도의 여유도 허락 안 하면 아마 리더십을 온전히 구축하기 어렵겠습니다. 


"깡패의 꿈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들처럼 사는 것이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p122)." 아닌 것 같아도 이 진술은 틀림없이 어떤 현실의 일면을 잘 반영한 말입니다.  많은 깡패들은 혹 말은 번듯하게 해도 대화를 길게 나눠 보면 정상인을 당황케 하는 구석을 거의 반드시 드러냅니다. p124에 보면 정상적인 그 나이 또래가 결코 보이지 않는 단순함이라든가, 뭔가 경계성 지능 장애 같은 걸 결국은 티를 내는 거죠. "내가 아무 말 안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나 본데(p163)..." 보스 안영표는 특유의 허세로 "자신이 벌(여) 놓은 일(p162)"에 대해 떠듭니다. "나를 정상인으로 만들지 않은 세상 자체에 대한 적의가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 여차하면 나 역시 다른 주먹들과 다르지 않은...(p213)" 같은 말도 참 실감나는 깡패에 대한 내면 묘사입니다. 


채수희는 예를 들어 맑은 눈동자를 한 테리우스 같은(p246) 최기우에 대해 "여자의 내숭은 결코 계산되고 꾸민 게 아니고, 그것은 두려움과 설레임과 기대감이 뒤섞여, 도저히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도, 상대가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멀리는 못 가는, 그런 감정(p132)"이라면서 참 독자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말을 합니다. 배경음악으로는 역시 1990년대에 인기를 끈 캐럴 키드의 "When I dream"이라든가(p116), p313에 나오는 티시 이노사의 "돈데 보이" 같은 곡들이 소환됩니다. 2권이 궁금해지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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