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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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마치 드라마 배경 음악처럼(diagesis라고 할까, 등장 인물, 동물들도 다 들을 수 있지만) 많은 명곡들이 언급되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정도 작가가 의도한 무드를 상상해 가며 읽어갈 수 있습니다. 1권 후반에는 인간들이 자축 무도회(너무 일렀던)를 열며 배경음악으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트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2권에서는 p16에서 레드 제플린 천국으로 가는 계단(스테어웨이 투 헤븐), p79에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같은 게 언급됩니다. p305를 보면 베르베르가 이 작품을 쓰며 들었던 모든 음악의 제목들이 정리됩니다. 


특히 이 2권, 나아가 <행성>이라는 작품 전체의 주제는 "소통"입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스포일러라서 최대한 자제하겠습니다만 종(種)의 힘은 얼마나 개체 간에 활발하고 효과적으로 소통이 이뤄지냐에도 크게 의존합니다. 베르베르는 이 작품에서 오로지 이 주제 하나를 향해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몰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권 p38에서 바스테트는 울음소리에 그저 메시지만 담아서는 안 되고 강한 자신감까지 함께 넣어야 한다는 엄마의 교훈을 또 이야기하는데, 소통에는 이처럼 감정, 상대를 충분히 설득하고 나아가 도동화까지 시킬 수 있는 감정이 들어가야 하죠. 


바스테트의 엄마는 뭔가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교훈보다는 실용적이고 씁쓸하기까지 한 가르침을 생전에 열심히 그 딸에게 전수했나 봅니다. p161에는 난관 앞에서 딱히 방법이 없다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그 특유의 시니커함을 담아 딸에게 일러 준 교훈이 등장하는데 독자는 피식 웃게 됩니다. 바스테트는 1권에서도 나온 대로 솔직한 자신의 내면이 따로 있고, 여왕으로 떠받들리던 시절에 쓴 "가면"이 하나 따로 있어서 때로는 끝도 없이 심각해지는 게 웃음 포인트입니다. 이 2권 앞부분에서 약물 흡입을 통해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다시 비웃는 바스테트가 정작 본인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게 우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다분히 성장형이기에 독자는 끝까지 공감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안젤로는 이 2권에서도 여전히 폴을 비롯한 쥐들을 싫어하는데 p36에 또 특유의 혐오 표현(?)이 나옵니다. p181에서는 아예 "쥐들은 다 죽여야 한다"고까지 합니다. 1권에서 안젤로는 폴에 대해 엄청난 불신을 드러냈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스포일러라 생략) 엄마에 대한 집착은 여전해서 p77 같은 데서 "엄마는 최고!"라며 호들갑을 떨고 1권 말미에서도 그랬지만 엄마에게 어떤 특수 임무만 부여되면 꼭 따라나서려고 오버합니다.

 

아무튼 인류 역사상 이중 간첩의 시초를 OOOO으로 잡는 베르베르의 희한한 견해에는 다소 놀라게 됩니다. 1권 후반부에 보면 베르베르는 제2제정을 이끈 나폴레옹 3세에 대해 산업화의 영웅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외교적 협잡이나 포퓰리즘 잔재주의 전문가였을 뿐 국가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이끌어야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전무했죠. "지도자의 덕목인 비전"에 대해서는 이 2권 중반쯤에 바스테트가 티무르를 농락하는 장면에서 잠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는 자주는 아니지만 작품 중에서 은근 자신의 정치관을 노출하기도 하는데 p142에서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1권 말미에도 개혁가 자오쯔양을 대신한살인자 리펑이라며 한 마디 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1권에서 적의 신체 일부를 섭취함으로써 그의 덕목을 내 것으로 만드는 원시적 행태가 여러번 나왔는데 이 2권에서는 상징적 의미에서 p52에 "(알카포네의) 뇌를 (티무르가) 먹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1권에서 바스테트와 에스메랄다가 두 왕을 죽이러 왔을 때 티무르가 적극적으로 알 카포네를 돕지 않는 장면이 이미 있었죠. 역시 한 집단에 두 지도자는 공존하기 힘듭니다. 제가 1권 리뷰에서 "OOOO가 너무 일찍 퇴장한다"고 약간 불만을 드러냈었는데 베르베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습니다(스포일러라서 더 이상 자세히 쓰지 않습니다). 이 2권에서도 빌런인 알 카포네가 좀 허망하게 일찍 퇴장하는 셈인데, 어쩐지 1권에서 베르베르는 그리 큰 애착을 갖고 이 캐릭터를 다루지 않았더랬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티무르는 전작 <문명>에서부터 바스테트의 숙적이었고 p88부터 드디어 둘의 역사적인 담판이 벌어지는데 이 부분이 <행성>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무르도 천재이니만큼 둘의 티키타카가 정말 볼만합니다. 이 장면을 두고 베르베르는 헨리 8세와 프랑수아 1세의 역사적 대결에 (스스로) 비유하는데 p81에서 언급되는 토머스 울지는 영국인이므로 "울시"가 더 보편적인 발음이겠습니다("울지"는 프랑스식인가?). p85에는 시작부터 반말이라며 티무르의 무례한 화법을 비판하는 바스테트의 독백이 나오는데 1권 p68에는 존대법에 대해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한 변수라는 역자 주가 나옵니다. 프랑스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1권 p345에서는 에스메랄다와의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도 바스테트가 한 마디 했었습니다. p94에는 "협상이 쉽게 이뤄지는 건 한쪽이 다른 쪽을 속이기 때문"이라는 시니컬한 교훈이 또 나오는데 이건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입니다(역시 스포일러라서 더 이상은 생략). 1권 리뷰에서 바스테트의 모순적인 내면에 대해 비웃는 말을 적었었습니다만 2권까지 다 읽어 보니 이 역시 작가 베르베르의 의도가 다분히 개입한 솜씨였습니다. 자세한 건 이 리뷰 결말에 쓰겠습니다. 


p164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기업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현대차그룹이 인수했다고 합니다. 방산인데 쉽게 미국 정부가 이걸 허가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p180에는 드디어 인간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발주하여 (맨해튼을 점령한) 쥐들을 전멸시키려 드는데(문자 그대로의 의미) 원래 이것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려던 미국 과학자들과 정부의 기획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대목이죠. 작품의 유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아서 p109의 서류 문명, p115의 서산서해, p118의 비서종 등 말장난이 풍성히 이어집니다. 물론 번역의 묘미도 크게 기여하겠습니다. p120에는 티무르가 자유의 여신상 얼굴에 자기 얼굴을 새기려 드는 대목이 있는데 인간 문명이 폐허로 된 상징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쓰이는 건 1960년대 찰턴 헤스턴 주연의 <혹성 탈출>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도 합니다. p151에서 또 아기돼지 3형제 동화가 언급됩니다. 


전에 1권을 읽으면서 인간들이 102개 부족 총회를 열 때 독자인 제가 내내 걱정되던 게 이 내용이 만약 티무르 측에 흘러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는 점이었습니다. 영리한 베르베르는 2권 p212에서 드디어 이 문제를 터뜨리고 마네요. 인간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보안에의 무관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소통에 무능하다는 점임을 고양이 바스테트는 통렬히 지적합니다. "나는 이제 인간들의 문명이 와해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p67)." "일단 희생양을 하나 만든다. 그리고는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p65)." "종(種)의 우월감이 생존 본능보다 앞서는 한심한 인간들(p73)" 같은 문장 속에서 바스테트는 인간의 어리석은행태를 신랄히 고발합니다. p209에는 "죽음에의 충동은 인간의 본성이며 외부의 적을 향해 파괴적 본능의 발휘가 실패하면 끝내는 자기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는 말도 있습니다. p222에서 꼴통 그랜트 장군은 "또 소통?"이라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발언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합니다. 답이 없습니다. 


1권에서 바스테트는 스스로를 "가면에서 못 빠져나온다"고 반성하거나 자신의 신화를 고집한다고 평가한 적있습니다. 이 2권 p218에서 또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얼굴을 붉힙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놀라운 인식에 도달하는데, 왜 인간을 그토록 좋아하냐는 티무르의 힐난에 대해 인간은 무지한 자신을 직시할 줄 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p264). 독자인 제가 1권 리뷰에서 주체파악 못하는 바스테트를 비난했었는데 p277에서 바스테트는 그녀의 연인(엥? 어떻게 된 거죠?ㅋ)으로부터 "넌 과대망상"이라며 핀잔을 듣습니다. OOOO는 저하고 의견이 일치했던 거죠.


p279에도 나오듯 고양이와 인간은 "완전한 소통"을 추구하고 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무척밝힌다는 점까지도). 그리고 이것이 쥐들로부터 세상을 구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완전한 소통은 "사랑"의 동의어에 다름 아니겠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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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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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ESRAE를 장착하고(전작 <문명> 참조) 엄청 똑똑해졌지만 다소 주제파악이 안 되고 여전히 심한 자아도취에 빠진 바스테트가 그 가족, 무리를 이끌고 북미 대륙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큰 난리가 벌어져서 사회가 파괴되었고 그 틈을 타 천재적인 머리를 지닌(어떻게 해서 이렇게 머리가 좋아졌는지는 1권에서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알 카포네"라는 쥐, 쥐들의 왕(p338)이 이끄는 엄청난 적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승리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스테트의 OO인 OOO를 비롯하여 그녀의 많은 동료들이 죽게 되는데요. 작가 베르베르가 소설 초장에 이처럼 큰 희생을 빚게 할 줄은 미처 몰랐기에 상당히 우울한 기분으로 독서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21년 전작인 <문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고양이라고 하면 하찮은 쥐 정도는 바로 압살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아도 이처럼 쥐떼들이 많이 덤벼들면, 머릿수에는 당할 장사가 없겠다는 걸 베르베르 특유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실감했습니다. <문명>에서도 그랬지만 벌어지는 사건 묘사가 꽤 잔인합니다. 쥐들은 처절하게 물어뜯고, 또 인간이나 고양이들한테 처절하게 학살당합니다. 전작 <문명> 1권 p46 같은 곳을 보면 쥐들이 이처럼 엄청난 수량으로 밀고들어오는 걸 사람의 인해전술에 빗대어 "서(鼠)해전술"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책 p35에도 다시 나옵니다. p62에는 "항(抗)서(鼠)연합군"이란 말도 나오는데 쥐들에 대항하여 인간과 고양이가 연합한 걸 가리킵니다. 쥐들은 정말 집요하며 p132에는 킹콩(영화에서의)도 못 무너뜨린 빌딩을 쥐들이 무너뜨렸다는 말이 나옵니다. p152에는 아기돼지와 늑대의 우화가 언급되며 튼튼한 건물의 미덕에 대해 찬양하는 대목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p252에는 왜 911 당시에 무역센터가 붕괴되었는지 베르베르 특유의 쉬운 설명이 나옵니다. 무엇이든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죠. 


세상이 이렇게 한번 망하고 나니 쥐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p31을 보면 stupete gentes!라는 라틴어 구절이 인용됩니다. 여기서 gentes는, 부족이라는 gens의 복수형인데, 호격(呼格)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 여러 부족들이여! 정도의 뜻이겠는데 사실 이 구절이 괜히 인용된 게 아니라서, 인간과 고양이가 연합하는 장면도 그렇고 1권 후반부에 나오는 102개 부족(p260 같은 곳에 나오는)을 다분히 미리 염두에 둔 것 아닐까 짐작합니다. 서로 처지가 다르고 생각, 취향, 신념, 생김새, 간혹 언어까지 모두가 다른 부족들. 이게 생지옥이 된 세상에서는 서로 양보를 하고 지혜를 짜내어 공존공영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겠습니다. 


p109에는 왜 미국이 지금 이꼴이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나오는데, 대대적인 문화 전쟁이 결국 정치 투쟁으로 번져서라고 합니다. 아닌게아니라 미국은 지금 국론이 분열되어 바람 잘 날이 없으며, 다만 우스운 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조국 프랑스 역시 현재 정계와 국민이 좌우 양극단으로 분열하여 도통 국론을 모을 짬이 안 나는 형편이라는 점입니다. p141에는 각종 사람 종족이 모여 사는 타워가 미국 축소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2015년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 영화 <하이-라이즈>라든가, 2012 <저지 드레드>에도 낮은 층수에는 하층민들이 살고, 높은 층수에는 부유층이 산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1권 후반부에는 은근히 힐러리 클린턴을 풍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일단 이런 소설에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자체가 웃깁니다. p177에서는 가공의 캐릭터 그랜트 장군이 처음 등장하는데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의 영웅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었겠습니다. 의장 힐러리의 질문에 "여기는 쿠바가 아니라 미군 기지"라고 장군이 대답하는데 현재도 쿠바 본토 관타나모에 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바스테트 엄마의 가르침(?) 중에는 p52에 나오는 "적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싶으면 적의 뇌를 먹어보라"가 있는데 아주 징그럽지만 저 뒤 p335에는 맨해튼의 쥐 장군 폴(Paul)이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그 뇌를 먹는 장면이 또 나옵니다. 2001년작 영화 <한니발>에서 닥터 렉터가 크렌들러 씨의 뇌를 요리해 먹던 그 씬도 생각이 났습니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바스테트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참 많은 가르침을 얻었고, 지금도 머리 안에서 수시로 호출하는 엄마와 대화하며 지혜를 얻습니다. 이 1권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위험하고 가망 없어 보이는 순간 무한한 용기를 내어 상황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라(p32)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라는 이 비겁한 가르침은 p135에도 다시 나오는데 이때는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입니다. 안젤로는 엄마한테 무척 의존하며(p184에 바스테트의 말로 "이 녀석은 엄마가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줄 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끓는 피를 참지 못해 저 뚱보 쥐(폴)에게 복수를 하게 해 달라고 조르는가 하면(p305) 적한테 그렇게 쉽게 속으면 어쩌냐고 엄마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안젤로가 이런 성향을 보이는 데에는 엄마 책임도 큽니다. 사실 바스테트는 매우 자기 중심적이며, 자신의 판단이나 예측이 100% 맞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과거 여왕 노릇하던 때를 못 잊고 전지전능한 척 굽니다. p353에서 그녀는 "가면 증후군"을 언급하는데,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 알아 주는 대로 행동하려고 애쓰는 오류를 스스로도 인식합니다. 우리 독자가 다 눈치챈 대로, 알고보면 고양이 바스테트를 누가 그리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존중은커녕 1권 후반부에 나오는 대로 인간들은 그녀에게 신세를 지고서도 여전히 그녀를 무시하고 얕잡아봅니다. 이런 인간들도 우습지만, 아무도 안 알아 주는 가면을 쓰고 가면의 정체성을 자신의 것으로 끈덕지게 착각하는 바스테트가 더 우습습니다. 책 저 앞 p65에 "우리 각자의 신화"를 인용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스테트는 부풀려진 에고만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로서 민주적으로 무리를 이끌 생각은 않고 "효율만을 추구(p239)하는 고양이라며 독선적인 본성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고양이니까 이걸 귀엽게 봐 주고들 넘어가지만 실제 지도자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큰 문제입니다. 저 앞 p172에서도 "독재를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이 1권에서 "진화한 인간들의 제도"라고 규정되는데 p150에 북미 원주민들의 제도로 "파우와우"라는 게 언급되고, p172에서도 보다 자세히 설명됩니다. p194에는 "춤이 전희와 같을까?"라며 날카롭게 인간 행태를 꿰뚫어보며 p245에선 "수컷은 나에게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도구일 뿐"이라며 무책임한 남성들이나 하는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여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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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위한 권일용의 범죄심리 수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9
권일용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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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파일러라면 아마 권일용 교수님이겠습니다. 그 성함은 혹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권 교수님의 얼굴은 TV 출연 등을 통해 워낙 알려졌기에 모르는 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프로파일링이란 수사 기법은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널리 소재로 쓰이긴 했으나 이게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선 대중이 반신반의했는데,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악질 강력 범죄자의 검거와 유죄 확증에 요긴히 활용되고 있음을 권 교수님이 (다름 아닌 본인 자신의 빛나는 커리어를 통해) 잘 가르쳐 준 셈입니다. 


p18에 나오듯이 한국인들에게 한때 큰 인기를 끈 드라마가 CSI입니다. 이 미국 드라마를 보면 그저 범인에게 우격다짐을 통해 자백을 받아낼 수 없는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법정에서 통할 만한 증거를 얻어내는지가 실감나게 묘사됩니다. 법치국가에서 가장 피해야 할 일이, "억울한 사람들이 폭력과 고문으로 누명을 쓰는 일(p19)"입니다. 권 교수님 같은 경찰이 있었기에, 흉악한 범죄자는 결국 죄상을 털어놓고, 결백한 시민은 그 무고함이 증명됩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이들 중 이런 분들이 가장 고마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권 교수님은 지금도 여러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시는데, 사실 보면서 걱정이 되는 건 이런 프로그램이 우리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건 좋지만, 지능범들이 행여 이를 통해 범행 수법을 배우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요령을 터득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권 교수님도 이를 인정합니다. 즉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는 만큼이나 사이코패스 범죄자들도 나날이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도 교수님은 "범죄에 '진화'라는 말을 쓰는 게 달갑지는 않지만(p25)"이란 유보적 표현을 쓰면서 그의 정의감을 표출합니다. 


지난세기에 작가 체스터튼은 "범죄자는 창의적인 예술가요 탐정(형사)은 그저 평론가일 뿐"이란 말을 하기도 했죠. 달가운 현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교활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자신의 행적을 감추는 범죄자를 응징하기 위해서는 결코 그들을 가볍게만 볼 게 아니라 가공할 만한 침략군, 적군을 연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책 p173에는 선배(?) 정두영의 행적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자신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는 유영철의 자백이 언급됩니다. 영화 <레드 드래곤>에서 렉터 박사의 재능을 찬양하는 "투스 페어리"의 모습이 결코 픽션 속에서의 행태만이 아니라는 게 증명됩니다.  


강호순 이후로는 아직 연쇄살인범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교수님의 말입니다. 없던 유형이 한때 와라락 봇물 터지듯 등장하긴 했으나 권 교수님 같은 뛰어난 경찰들의 활약으로 아마 범의가 움츠러들었을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워낙 CCTV가 많이 깔린 한국의 환경에서 초범시에 바로 검거되곤 하는 것도 영향이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정도로나마 치안이 잘 잡힌 나라에 사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하겠고 그 큰 몫은 바로 권 교수님 같은 분들에게 크레딧이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범죄자라는 게 저 유영철, 정남규 등처럼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 특수한 성격을 갖게 된 이들뿐 아니라, 사회적 배제감, 상대적 박탈감 등을 품은 그 누구에게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권 경감님의 지적입니다. 경감님은 그래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불건전하고 위험한 감정의 표현이, 인터넷 기사나 소셜 미디어에 흔히 달리곤 하는 이른바 "악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악플만큼 보편적으로 퍼진 악행이 또 없고, 악플을 습관적으로 다는 이들은 "사실 적시나 의견 표명 정도를 두고 형사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오히려 본인들의 반사회성을 합리화합니다. 이런 한심한 이들 중에는 본인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두고 오히려 악플이라며 뻔뻔스럽고 반사회적인 역공을 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무고한 사람을 악인으로 몰고서 그 무고함이 드러나자 "악의 평범성" 같은 어구를 경우에 맞지도 않게 들이대는 낙오자, 도피자 유형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아마 그 주변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면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위험한 태도, 감정을 외부에 표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성찰하고 되돌아볼 일입니다. 


범죄자들은 때로 비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결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허위에 가득찼는지는 새삼 뭘 지적할 필요도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권 교수님은 범죄자와 일정한 라포(rapport)를 형성한 후에는 "같은 상황이었으면 나도 범죄를 저질렀을까?"라며 범죄자와 자신을 잠시 동일시해 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미국 드라마 <한니발>에서 윌 그레이엄 캐릭터(천재 프로파일러)가 보여 주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악인은 원래 철저히 피해자를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권 교수님 같은 분은 정반대로 이런 악질들에게도 일정 부분의 공감을 보낼 줄 안다는 게 대조됩니다. 악질들은 본래 다른 이들이 자신을 공감해 주기만을 울부짖을 뿐, 자신이 다른 이에게 공감하는 법은 전혀 없습니다. 더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저항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개처럼 복종하는 건 혹 있습니다만.


촉법소년 문제도 책에서 언급됩니다. 사실 아이들이 흉포해지고 범죄에 물드는 건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이 맞고 그 부모들만을 탓할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무력한 원칙론에 불과하며 그저 관용의 눈으로만 대해서는 법제의 허점을 악용하는 이들의 교활함에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또 교수님은 "살인과 사기가 경중이 같냐"고 되묻는 이들에게 "어디 한번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보라"고 합니다. 사실 교수님은 현직 때 사기 사건을 많이 다뤄보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공감 능력이 탁월하신 거죠. 여튼 이런 현대적 유형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한 가지 길은 "눈을 감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 헤아라기"라고 교수님은 말합니다. 거의 종교적 경지입니다. 


보성 어부 사건은 당시 모든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가슴 좀 만져 보려고 했는데 거부한 그O이 잘못한 거다.""애초에 배를 태워달라고 한 것들이 잘못이다"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강력 범죄 수사 과정을 회상화며 권 교수님은 그들의 비틀어진 심리를 하나하나 짚습니다. 문장은 침착하고 논리적이지만 그 행간에는 의분이 느껴집니다. 포모 증후군이라든가 인터넷으로 촘촘히 연결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범죄자를 덜 닮게 되고, 또 어떻게 해야 사회 파괴적인 강력 범죄를 선제적으로 방지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저자는 차분한 논의를 이어가며 독자의 공감을 유도합니다. 조선 시대 고매한 유학자의 향촌 교화 논변을 듣는 느낌도 듭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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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풍차
최인호 / 여백(여백미디어)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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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프 24기 48주차에 같은 작가의 <처세술 개론>을 읽고 리뷰를 썼었습니다. 지금 이 작품은 그 소설과는 또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원래 최인호 작가가 엄청 다작을 한 분이고 어느 특정 스타일, 소재, 주제에 머문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어느 특정 작품과의 관계를 말한다는 게 사실상 무의미하기는 합니다.


주인공은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라 어느 재산가의 "첩"한테서 태어난 소위 사생아입니다. 요즘 같으면 직계혈족임이 증명되기만 하면(증명도 쉽죠) 재산 상속에 아무 문제가 없으나(사실상으로는 유족들의 실력 행사 등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당시에는 소위 적모(適母)의 후의가 있어야 이런저런 일들이 그나마 편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이, 1980년대 즈음에는 완강한 가부장적 사고에 막혀 현실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겠습니다. 이런 걸 보면 1990년에 가족법 개정을 이뤄낸 전문가들은 정말 대단한, 시대를 앞서간 업적을 많은 난관을 딛고 이뤄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법의 실질적인 현대화는 저 1990년에 대부분이 완수되었고, 21세기 들어 이뤄진 호주제 폐지 등은 형해화한 찌꺼기 몇을 치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적모의 제안으로, 또 생모의 승낙을 받아 생부의 집에서 기거하게 됩니다. 이 집안은 적모가 모든 일을 주관하며 여기서 주인공이 맡아 해야 할 일은 배다른 남동생을 돌보는 것입니다. 애초에 아들이 버젓한 처지이면 구태여 사생아를 집에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즉 이 이복동생은 정신적으로 다소 박약한 구석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자주 눈에 띄는 자폐라든가 조현병 같은 건 아니고, 약간의 자폐 증상을 보이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타인과 소통은 가능합니다. 단지 무엇인가에의 집착이 강하고, 낯선 사람과 쉽게 말을 섞지 못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능이 크게 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이 이복형과 친해지며 소통이 이뤄지고 나서는 형을 따라 뭘 막 열심히 몰두하기도 합니다. 마음을 완전히 열어야 그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는 듯하며, 마음을 여는 게 힘들기 때문에 TV나 공교육기관의 선생, 책 등을 통해서는 학습이 어렵다는 것 같습니다.


어느 문학 작품에서건 서자는 기본 인성이 비틀어진 캐릭터로 세팅되기가 쉽고 여기서도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불량배에 가깝습니다. 나쁜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런 것만 보고 배웠다는 식인데, 좀 독특한 건 겉으로 드러난 것이나 하는 짓은 논쟁의 여지 없는 불량배이지만 마음에 은근 착한 구석이 있다는 겁니다. 나한테서 뭘 기대했냐?라고나 하듯 주인공은 이복동생에게 절도, 재물손괴, 음주 흡연 등 못된 건 다 가르칩니다. 문제는 이 동생이 갑자기 만난 형을 무척 좋아하기에 아무 마음에 갈등없이 시키는 대로 다 따라한다는 겁니다. 그 모친은 아직 이런 한심한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가뜩이나 사생아는 미움을 받기 마련인데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재미있는 건 작가가 이 작품을 명백한 성장 소설로 기획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성장은 주인공의 몫이며 나보다 못한 누군가의 (의도된) 좌절, 실패를 보며 주인공은 오히려 자신의 타락한 심성, 모자란 부분 등을 자각하고 이를 고치려 든다는 것입니다. 의도는 이복동생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구원되는 길을 발견합니다.


이 작품은 1980년대에 MBC에서 역시 단막극으로 만들어진 적 있으며 주인공이 이복동생과 공유(!)하려 드는 여친 역을 한창 젊은 시절의 황신혜씨가 맡았습니다. 아, 그 경이로운 미모를 구경하느라 정작 드라마 진행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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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이문열 중단편전집 6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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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의 제목을 단 작품이라면 누구에게나 현진건의 그 단편이 대뜸 떠오르겠습니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라는 유명한 대사라든가 반어적으로 붙은 제목, 주인공의 처지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관대하고 젊고 부유한 그 학생 손님 같은 캐릭터 등등.


처음 독자들에게 선보였을 때 이문열은 삼국연의의 평역이라든가 어떤 정치적 논란 같은 걸로 유명했던 게 아니라(당연하죠), 모파상이라든가 O 헨리 같은 고전 단편의 성공 비결(?)을 정확히 추출하여 한국적 소재에 응용한 그 영리한 자질이 크게 어필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초창기에 참 많은 단편을 만들어 낸 그였는데 어떤 교과서적인 구조의 아름다움 같은 게 지금 읽어 봐도 돋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익명의 섬" 같은 단편은 플롯의 완성도를 충분히 갖췄으면서도 다른 나라의 모범적인 작품 같은 데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개성도 두루 지닌, 이문열 세계의 깊이와 폭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이문열의 단편 아홉 작품이 실렸는데 그 중 하나가 "운수 좋은 날"입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현진건의 그 단편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과거의 인력거꾼이라면 현재는 (몸이 비교적 덜 힘들겠으나) 택시기사가 그에 상응하는 직업입니다. 사실 과거의 인력거꾼이나 현재의 택시기사나 그날 운수에 수입의 과다를 맡겨야 하는 처량한 면이 다분하긴 하겠습니다. 운수(運數)에 운수(運輸)의 원활이 달린 셈이니 단어 생김새에 기묘한 우연의 일치가 끼어든 셈이기도 하며... 


여튼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평균의 법칙이 부과하는 가혹한 섭리 앞에 당일 운수를 모두 반납하기라도 하듯 처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운명의 신은 반 세기 전과 달리 남편의 몫을 그 아내에 대신 부과하는 무성의함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이 선해지고 또 진화한 모습입니다. 뭐가 되었든 간에, 평생 주어진 복(福)의 총량이 그것뿐인데 개인의 힘으로 더 이상 어떻게 저항하겠습니까. 슬프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감정이 유발되기보다는, 소재를 이지적이고 정밀하게 처리하는 작가의 솜씨에 대해 감탄하게 됩니다. 


이 단편은 1987년 KBS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어 방영한 적 있는데 주인공 택시기사 역에 배우 김성환씨가 나옵니다. 최근까지 자기 이름을 걸고 연말에 진행하는 디너쇼 티켓을 완판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노년의 아이돌 스타이며 젊은 시절 모습도 유쾌하고 잘생겼습니다. 여기서는 전업 택시기사가 아니라, 운전을 주업으로 하되 일종의 고액 보수 대신맨이랄까 핸디맨입니다. 하지만 저런 일감이 레귤러하게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경제사정은 어려운 편이며 착한 아내도 곁에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그가 맡는 일감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콜뛰기"입니다. 접대부 외에 사장님도 함께 수송(ㅋ)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차량은 시대상을 반영하여(?) 그랜저로 설정되었는데 저무렵 그랜저면 지금의 K9하고 맞먹겠습니다. 


드라마에서 진정 시청자를 사로잡는 건 김성환씨의 연기라기보다, 에로영화 <고금소총>의 주연이었던 배우 최기선씨의 압도적인 미모입니다(사실 이 독후감에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 여기서 그녀는 설악산 근방 관광지에서 주인공과 우연히 만난 부잣집 딸로 나오는데 현실의 권태와 부조리에 질려 죽음을 꿈꾸는 미대생으로 나옵니다. 이건 현진건의 원작이나 이문열의 패러디에는 전혀 없는, 각색자 이홍구씨만의 창의의 산물입니다. 이 아가씨야말로 현생의 모든 불운을 한몸에 안고 태어난 인력거꾼이나 그의 아내와 대척상에 선 캐릭터이며 사실 여기서의 택시기사는 제 나름대로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기에 아가씨가 그의 안티테제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1987년 시세로 3천만원이면 정말 큰돈인데 이런 거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에 투척할 수도 있는 이 젊은 여성이야말로 인력거꾼의 모든 면을 반대로 투사한 행운의 총아이겠습니다. 이런 캐릭터를 작품 안에 넣어 주인공의 모든 욕망과 열등감과 좌절감의 소실점으로 삼은 이홍구씨의 솜씨야말로 천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비전이나 희망은 사실상 포기하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주인공, 그와는 대조적으로 돈이 썩어나지만 현생의 권태 때문에 차라리 눈을 감고 피안으로 뛰어넘고 싶었던 미모의 여성 두 행보가 극단의 대조를 이룹니다. 이문열 작품과는 달리 주인공은 죽지 않고(애초에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대신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자살을 택한 여성 앞에서 주인공은 아마 자신의 생이 통째 부정당하는 모멸감이 들 만 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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