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PS 실전 모의고사 : 뉴텝스 봉투형 3회분 - 서울대텝스관리위원회 뉴텝스 경향 반영 NEW TEPS 실전 모의고사
김무룡.넥서스 TEPS 연구소 지음 / 넥서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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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어능력 공인 시험 중 텝스(teps)는 마치 수능시험의 언어(국어) 영역 문항처럼 심도 있고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테스트합니다. 그래서 실시된지 어언 20년이 다 돠어가지만 토익처럼 효과적인 "파훼법"이 여태 개발(?)되지를 못했습니다. 토익은 그새 경향과 체계가 한 번 바뀌기도 했으나 금세 명강사들에 의해 패턴이 또 읽힌 반면, 텝스는 아직도 난공 불락인데 이번에 또 뉴 텝스로 개혁된다고 하니 응시자들의 걱정이 대단합니다. 허나 수험생 입장에서는 정공법으로 실력을 쌓고, 특정 시험을 향한 적성 외에 진짜 실력을 기르는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자면 권위 있는 출제진이 짠 모의고사를 많이 풀고 실전 감각을 기르는 게 최선의 방책입니다.

이 봉투모의고사는 총 3회분입니다. 봉투를 열어보면 문제지, OMR 시트, 해설 없이 답만 나온 앤서 키, 출판사의 다른 책 광고(...) 등으로 구성된 총 3회분이 실려 있습니다. 봉투 안에 다른 구성품은 출판사가 "정답률을 높이는 럭키펜"으로 이름 붙인 검정색 싸인펜 한 자루가 또 있고요.

https://www.nexusbook.com:446/innerFile/book/book_details.asp?menu_idx=6&page=1&pagecnt=20&listID=&listCate=11&listBrand=&listPrice=&listWord=&searchWord=%EB%B4%89%ED%88%AC&searchMenu=&listOrder=&prePage=searchList&viewType=&bookID=5020&mp3_tab=

이리 들어가시면 듣기 파일과 해설지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듣기파일은 당연히 MP3이며, 해설지는 pdf 포멧입니다. 듣기 파일은 회원 가입이나 로그인 없이 받을 수 있고, 해설지 pdf 세트는 구매 인증을 해야 합니다. 구매 인증은, 몇 회분 몇 페이지 문제에 첫번째 단어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데, 블랭크 안에 단어를 쳐 넣어서 맞으면 "정답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새로 뜹니다. 주의하실 건 "첫째 단어"라고 했지 본문 중의 첫째 단어가 아니므로, 그저 처음 보이는 단어(그게 한 글자 제목이나 심지어 정관사 the 같은 것이라도)를 써 넣어야 한다는 겁니다.

넥서스는 당연히 영어 말고도 많은 참고서를 내는 출판사이므로 검색창에서 제목을 써 넣고 찾는 게 빠른데, "봉투"라고 치는 게 제일 낫습니다. 그러면 제시 아이템 중에 이 책이 가장 먼저 뜹니다. "텝스"나 "모의고사"로 찾으면 바로 안 나옵니다.


위는 해설 pdf 파일 중 일부를 캡처한 겁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겠으므로 아주 일부만 드러냈습니다.

이런 문항을 보면, 저게 리딩 파트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듣기로 꾸며진 문항이라,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 모두 또렷이 듣는다 쳐도 쉬이 정답이 눈에 안 들어올 떼가 있습니다. 어떤 문답의 전형성을 애써 비껴가려는 출제진의 전략이 분명해서인데, 논리적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패턴을 잘 파악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딱히 없죠.

보통 리딩 파트 해설도 원 문제의 체제를 그대로 옮겨 놓고 다시 해설을 덧붙이는 게 (특히 토익 교재 등에서) 관행인데, 시간 없는 수험생들은 그래서 해설 파트만 손으로 가려 가며 페이지를 넘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봉투모의고사라서, 해설 pdf에 문제가 다시 반복이 안 됩니다. 어휘, 문법, 독해부터는 반드시 본책(봉투 모의고사)으로 돌아가서 하나하나 실전 치르듯이 문제를 풀어야 하겠습니다.

1회 어휘 21번을 보면 a return의 뜻이 뭔지 모르는 이들에게 "답답함"을 대번에 느끼게 할 만한 문제입니다. 상경계라면 저 R이 "수익'이란 뜻으로 쓰이는 게 눈에 익을 수도 있겠네요. 여튼 "귀환" 등이 아니라 "수익"이라는 뜻이 혹 머리에 스쳐지나간다면 바로 답이 ⓑinvestment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휘 30번은 벌써 despite 같은 전치사에서 종속절(앞)과 주절(뒤)의 내용이 정반대이겠음이 감 오죠. 따라서 뒤에 오는 핵심어인 positively와 반대되는 말을 골라야 하겠는데, 답이 될 만한 건 ⓒdiparaging 밖에 없습니다. ⓓmisappropriated는 혹시 inappropriate와 혼동할 수 있는 수험생들을 겨냥한 듯한데, inappropriate라면 이것도 답이 될 겁니다. 해설을 보면 "남용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남용과 유용은 미묘하게 뜻이 다릅니다. 유용(流用)은 거의 횡령이라는 뜻이죠.

테스트 2회 문법 28번을 보면 사실 웬만큼 문법 문제를 다뤄 본 수험생들은 대번에 ⓑ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챕니다. 설령 of whom이 온다 해도(아니면 whom이 which로 바뀐다 해도) 그 뒤에 종속절(관계절)의 주어가 와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종래 학원가에서 자주 제시하는 공식들에 의해 해결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제대로 학생들을 낚으려면 whom을 which로 바꾸었어야  옳지 않았나 싶네요. 문법을 잘 몰라도 "어, 왜 곰이 whom이지?" 같은 아주 단순한 발상으로 ⓑ를 찍는 이들도 많을 텐데 이러면 변별력이 떨어질 테니 말입니다.

2회 독해 16번을 보면 잘 생각하지 않으면 딱 틀리기 좋은 문제입니다. 얼핏 보아 ⓐⓑⓒⓓ 모두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해설에도 나와 있듯 ⓑ는 이 도구(신제품)말고도 두루 해당하는 내용이며, ⓐⓓ는 지엽 말단이지 "요지"가 아닙니다.


3회 문법 25번을 보면 해설에는 ".... 온전한 문장 형태가 필요하다..." 고 하는데 ⓐⓑⓒⓓ 모두 문장이 온전하기는 합니다. 즉, ⓐⓑⓒⓓ 중 어느 하나가 구(句, phrase)의 형태라든가는 아니라는 거죠. 문제는 ⓐ의 경우 새해설에 나온 대로 all의 위치가 틀렸으며, (해설에는 없습니다만) ⓑ는 도치는 도치인데 2형식 도치이므로 were가 주어 the film 앞으로 와야 합니다. 그런데, ⓓ는 대체 왜 답이 안 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지문에 구체적인 aspect의 예가 죽 나열되었으므로, every aspect 라는 단수형과 호응이 잘 안 됩니다. 시제가 과거 was인 건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만 약간 좀 어색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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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역사 - 인간이 묻고 신이 답하다
리처드 할러웨이 지음, 이용주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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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여튼 제한된 인지(人智)로 세계를 이해하려 애 쓰던 인류의 위대한 과거 발자취 중 하나입니다. 그뿐 아니라 본능과 충동을 조절하고 도뎍률을 정신 속에 심어 줌으로써 보다 오랜, 그리고 질적으로 수월한 개체와 종족의 생존을 도모해 준 유용한 제도이자 장치이기도 합니다. 비록 고유의 기능을 (그간 개발된) 다른 제도와 체계에 빼앗기긴 했으나, 여전히 인구의 많은 수가 이에 의존하며, 따라서 종교가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는 건 곧 우리 존재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발돋움도 겸하는 것입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인간과 종교의 역사!" 영어로 하면 undisputed일까요? ㅎㅎ 사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 분야 결정판 레퍼런스북이 나오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아니, 기다린다고 나오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 리처드 할러웨이 주교(성공회)님의 면면을 보고, 또 제법 두꺼운 책을 읽어 보면, 특정 교파에 소속된 성직자로서 이만큼이나 공정한 논조와 엄정한 근거를 들어 이 주제를 논하는 게 과연 앞으로 또 가능할지. 그 품격과 완성도의 수준에 아무 "논쟁의 빌미"를 보태고 싶지 않습니다. 일반인의 교양을 위해, 또 종교학과 신입생의 학문적 발판 마련을 위해, 이보다 더 풍성하고 균형 잡힌, 유익하기까지 한 서술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모한다스 "마하트마" 간디를 모르는 이는 없으나, 정작 그가 신봉한 종교가 무엇이었는지 물어 보면 그리 쉽게 대답이 안 나올 듯합니다. 자이나 교 인데, 이 종교는 석가모니(싯다르타)보다 이른 시기 바르다마나 라는 대 성인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한자로는 대웅[大雄] 즉 위대한 영웅 정도로도 번역되는데, 불교의 대웅전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나 불교의 "대웅"은 여튼 석가모니를 가리키죠). 살생을 절대 금하고 청빈을 강조하는 점에서 불교와 비슷하나, 특히 옷을 걸치지 않고 살 것을 교리 일부로 삼는 게 특이하며, 현대에 와서는 이 교리가 많은 타협 속에 완화된 편입니다.

책에는 특히 "아네칸타바다"에 대해 긴 설명이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장님 코끼리 만지기"로 알고 있는 그 지혜와 관련된 것입니다. 자이나 교에서는 이런 인지의 제약 현상을 두고, "우리 실존의 한계 때문에 지식의 한계가 빚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사실 지식의 한계는 수 없이 많은 인간사의 문제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다만 지식의 첨단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마주칠 때 비로소 그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이런 한계를 통감하고 나서야 인간은 존재 초극의 문제를 비로소 직시하며, 종교에 귀의한 후에야 영원한 난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늦게나마 깨닫습니다.

"예언자"란 누구일까요? 이 책은 물론 "종교의 역사"를 다루었고, 따라서 대체로는 시간 순으로 사항을 배열하고 설명하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규약에 얽매이지 않고, 예컨대 이 책 제10장처럼 "예언자들"이란 항목을 따로 분리하여 독립적으로(초시간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주교님의 인상적인 설명은,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하는 사람(foreteller)이 아니라, 앞서서 말하는 사람(forth-teller)이다."라는 부분입니다. 포어텔러라는 건 우리말로 점쟁이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어감입니다. 그러나 포스텔러는, 선각자, 선구자의 개념과 오히려 잘 통하죠.

예언자는 전통적으로 헤브라이즘에서 군주와 별개로 작동하는, 성(聖)과 속(俗)이 분리된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또다른 축으로 기능했으나, 사회에서 언제나 존경만 받았던 건 아닙니다. 때로는 기이한 행적과 언동 때문에 조롱을 받기도 했는데, 책에 나오는 다윗의 선임 군주인 사울의 경우 이 경계를 공연히 넘다 "사울도 예언자의 하나더냐?" 같은 핀잔, 빈축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언자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왜 군주가 품위, 본분을 잊고 예언자 흉내나 내느냐는 뜻이죠. 아무튼 저자인 주교님이 가장 뚜렷하고 전형적인 예시로 드는 건 밧세바를 취했던 다윗에게 나아가 직언했던 나탄입니다. 사실 이야말로 모든 예언자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이 나왔으니 헤브라이 본명이 사울이기도 한 바울이 또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정 종교의 입장을 떠나 (신학이 아닌) 객관적 종교학의 견지에서 바라본 중 첫째로 꼽히는 인물은 단연 이 바울입니다. 예수는 그 역사적 실존조차 의심을 받을 때가 있으나, 바울은 자타가 공인하는 기독교의 교단적 시조이며 이론가이자 아키텍트입니다. 유목민들에게 있어 "텐트"가 얼마나 중요한 물품인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텐데, 그는 이 필수품의 제조와 유통을 통해 큰 부를 모은, 세상사에 너무나도 밝은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그 종적조차 몀확지 않고 현실에서 처참히 패배한, 예수라는 젊은이의 가르침에 매혹되어 그토록 극적인 회심을 보였으니, 초기 기독교가 지중해 세계에 몰고온 청신한 기풍과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능하죠.

현재까지도 신도들의 높은 충성도와 교리에의 헌신을 유지하고, 신도 수만 따져도 세력이 대단한 종교는 단연 이슬람입니다. 특히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입으로 암송했을 때, 특정 대목에서는 반드시 법열을 느끼며 무아지경에 들기도 한다니 해당 종교를 믿는 이들에겐 실로 대단한 영적 체험이 아닐 수 없고,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에 종교적으로나 정치적, 군사적으로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간 그 "예언자"에 대해 새삼 경의를 갖게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꾸란에는 아름다움과 위안이 있다."

그러나 꾸란 속의 알라, 혹은 예언자가 대신 전하는 유일신의 목소리에는 그저 안온한 평화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예언자 모하메드 자신이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사이기도 했는데, 이는 교리가 용납지 않는 불의, 패륜에 대해선 불 같은 진노와 징벌을 내린다는 뜻이고, 이게 바로 저들이 말하는 성전, 지하드입니다. 이 분야를 가리켜서 "투쟁의 신학 그 기원"이라고도 하는데, 제국주의가 세게를 휩쓸 무렵에도 서유럽에서 유독 이 이슬람의 전투적 성격에 주목했습니다. 기독교와는 대조적이라는 뜻인데, 기독교가 서세 동점 상황에서 행한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긴 하나, 그 중 극단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한다 쳐도 이슬람의 교리에 대해서는 특이한 점이 여럿 눈에 띈다고 할 수 있죠. 예수는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했는데, 저 예언자는 교리로서 전쟁을 합법화했고 자신 역시 무엇이 바른 행동인지 스스로 생전에 추종자들에게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성공회가 이무리 로마 가톨릭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하나 엄연히 프로테스탄트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공유하는 교파입니다. 따라서 마르틴 루터는 성공회에서도 높이 받드는 큰 위인이며, 특히 저자는 "성경에 대한 발견"을 그의 가장 큰 공로로 꼽습니다. 유머러스하게도 저자는 "그가 나오기 전에는 성경책이 무슨 분실이라도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하며, "오로지 성경"이라는 핵심 원칙을 마르틴 루터가 새삼 기독교인들에게 환기시켜, 종교와 교회의 참된 자세를 일깨우고 이후 오백년이 지나도록 개신교가 고유의 원칙을 잃지 않게 이끌었다며 의의를 부여합니다. 당연한 말로 여길 수 있으나 위인이 핍박을 이기고 어떤 모범을 보이기 전까지는 이 당연한 게 다연하다는 듯 통념과 확신이 자리를 못 잡습니다. 또한 저자는 "성경의 발견" 못지 않게, "거대한 권력과 얼굴을 감히 마주할 수 있는 자유로운 개인의 옹호"를 중요 업적으로 듭니다.

이른바 주요 종교가 근세 초입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성장과 탄생을 멈춘 듯 보였던 종교 교단은 끊임 없이 새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제는 세계 대표 종교 중 하나로 어엿이 평가 받는 시크 교의 경우 그 신도들의 대단한 경제력과 건실한 풍속 때문에 특히 주목받는데, 서평 맨 위에서 예시한 자이나 교도 그 사정이 (양적인 교세는 다소 작으나) 비슷합니다. 역시 이 저자분의 진짜 장기는 이후 신교도의 다양한 분화를 설명하는 곳에서 제대로 드러나는데, 웬만큼 종교 관련 소양이 깊어도 도대체 재세례파, 청교도, 감리교, 장로교의 구체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이들 외 어디까지를 이단으로 잡고 경계해야 하는지 시원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이는 매우 드물겠습니다. 대체로 우리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사회적으로 확립된 평판을 지닌 교단에 (혹 몸을 담는다 해도) 담아야 한다고 여기지만, 기성 거대 종교가 과연 제 소임을 다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죠. 종교의 역사를 차분히 개관하는 작업은, 곧 바른 종교상이 무엇이며 종교의 초심이 어떠해야 하는지 재확인하는 결과로도 이어집니다. 신자 비신자를 가릴 것 없이, 근본의 원칙과 시야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돕는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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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 신의 입자를 찾아서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0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엮음, 김일선 옮김 / 한림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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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이미 그가 자신의 대담한 가설을 발표했을 당시부터, 진지한 다수 과학자나 저널에선 그의 입장이 단순한 가설을 넘어, 언젠가 발견되고야 말 확증에 의해 뒷받칭될 진리라고들 여겼습니다. 2013년 CERN이 보유한 입자가속기(LHC) 덕분에 문제의 입자를 발견하고, 그의 이론은 드디어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노벨 상이란 건 물론 도널드 트럼프도 내심으로는 원하는 지상 최대의 영예이지만, 물질계 궁극의 원리를 구명하는 이론이 (현재까지로선) 심각한 보완이나 대체의 필요성 없이 그대로 그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는사실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일개 상 따위의 존부에 의해 경중이 가려질 만한 게 아닙니다.

책 제목은 그저 "힉스"입니다. 여태 미디어에 의해 "신의 입자"로 다소 거창한 별명이 붙은 이래 많은 대중서들이 출간되었지만, 어떤 책은 교과서나 다를 바 없이 건조한 설명 일색이고, 어떤 책은 주제에서 이탈한 잡담의 비중이 더 높습니다.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내용의 깊이, 정합성도 희생하지 않는 대중서가 필요한데, SA 시리즈가 유독 힉스라는 물리학자 한 분에만 초점을 두고 평소와 비슷한 볼륨으로 새 책을 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힉스라는 주제, 글감보다, SA 시리즈의 브랜드 파워(?)가 더 큰 기대를 부르는 요인인 듯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만큼 이 기획에 대해 신뢰가 크고 여태 만족도 해 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고교 교육 과정에서 전체가 두 파트, 즉 실수부와 허수부로 나뉘는 복소수란 범주를 배운 적 있습니다(요즘 아이들은 안 배울 수도 있겠네요). 엄연히 실수도 복소수에 포함되며, 단지 허수부의 i 계수가 0일 뿐입니다. 실제 세계에서, 제곱할 때 음(-)이 되는 수는 존재하지 않기에 저걸 허수(imaginary number)라 이름 붙인 건데, 이 책 1-2 "힘과 기본 입자 사이의 게이지 이론"을 보면 특히 p49이하에서 왜 허수가 도입되어야 하는지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 이 분야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허수는 "허(虛)"하기는커녕 그보다 더한 실감으로 다가올 수도 없을 만큼 절실(實)한 도구이고 존재입니다.


"두 파동의 위상이 같으면 간섭에 의해 진폭이 커지고, (중략) 위상이 다를 때는 두 파동의 차(差)가 도달하므로 전자의 수가 줄어든다." (p49)

이 문장의 원문은

Where  the  waves  are  in phase  the  interference  is  constructive and  many electrons  are  counted  at the second screen; where the  waves are  out of  phase  destructive  interference  reduces  the  count. 

입니다. 원문에는 없는 부분도 이 한국어본의 역자께서 친절히 행간을 보충하여 더 읽기 쉬운 문장이 되었음을 특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래서 한림출판사의 기획을 언제나 신뢰할 수 있다는 거고요. 사실 학교 다닐 때 고교 물리만 충실히 배웠어도 이 문장은 어렵지 않게(혹은 당연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겁니다.

여튼 이 대목에서 게이지 대칭이 무엇이고 양자장이 무엇인지 필자(헤라르트 엇포르트. 네덜란드 학자라서 영어권 이름에만 익숙한 한국에선 발음이 어려운데도 이처럼 표준 외국어 표기법에 맞추어 정확히 적어 주셨다는 게.... 힉스의 표준 모형 이론이 주제여서만은 아닐 겁니다 ㅎㅎ)는 쉽고도 명확하게 서술합니다. 어렵게 풀자면 한도끝도 없는 사항인데,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가독성과 신뢰도를 동시에 이룬다는 게 과학 서적에서는 매우 까다로운 과제입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이토록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관되이 잡아 주는(독자에게 만족시키는) 책은 SA의 이 기획 말고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럼 허수가 왜 나왔는가. 위의 번역문에도 그렇고 원문에도 "위상(phase)"란 말이 나오죠. 실수뿐 아니라 허수까지 포함해서 복소(複素. element가 두 가지라는 뜻입니다) 좌표를 동원해야 파동의 "위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허수부의 위상은 실수부와 90도 어긋나 있으므로.... " (p48)

이 문장은, 복소 좌표의 개념이 무엇인지 아는 독자라면 바로 한 번에 이해되는 구절입니다.

"쿼크와 경입자에서는 전체 입자의 질량이 거의 완벽하게 상쇄되는 걸로 보인다." (p129) 소립자를 탐구할 때 가장 당혹스러운 건, 전통적인 물리학이 절대 전제로 유지해 오던 많은 법칙들이 쉽게 예외를 허용하거나 심지어 무시된다는 사실입니다. "질량이 그저 작다는 게아니라, 구성 요소의 에너지 수준에서 측정했을 때는 거의 0"이라는게 아직도 학자들의 눈에는 그저 신비하게만 보입니다. "일부의 질량이 구조를 붙들어매는(근데 참 이런 번역도, 우리말로 너무 잘 통하게, 한 번에 의미가 와 닿게 잘 옮기신 듯해요) 에너지로 사라진다"고 쳐도, 이 문단 맨 위 문장처럼 그렇게나 "절묘한 상쇄"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게 평범한 독자의 머리로도 의문스럽거든요. 그래서 필자(이 아티클은 하림 하라리 박사, 바이츠만 연구소 소장입니다. 하라리는 셈 문화권에서 흔한 성씨이므로 "그분"과는 물론 무관합니다)는 "혹여, 프리쿼크 역학이 조금이라도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이 경우에 해당하는 대칭성을 찾는 게 필수 요소라는 뜻이다."라고 덧붙입니다. "프리쿼크"라는 말에서 왠지 현기증이 느껴지시지 않는지요.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선 초대칭 입자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이 많다. (중략) 모리스 골드하버는 이런 상황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가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적어도 우주에 있는 초대칭 입자 절반은 이미 찾았다면서 말이다."(p217)

이 농담은 마치 콜라의 절반만 남았다고 말할지, 아니면 절반씩이나 남았다고 할지로 사람의 긍정/부정 성향을 평가하는 거나 마찬가지 구조입니다. 사실 저 말 뒤에 숨은 진실은, 초대칭 입자의 확증은 아직 하나도 못 찾았다고 고백하는 거니까요(찾은 절반은 우리 물리계를 이루는 눈에 보이는, 혹은 체험된 모든 현상인데, 얘네들의 그림자가 숨어 있고 단지 우리가 못 찾아내었다고 말하는 게 이 학설입니다).

3-2 그레이엄 콜린스 기자의 글 제목은 "힉스 입자를 만나려면 아직 좀 더 기다리자"입니다. 무슨 소린가 싶을 텐데, 글이 쓰여진 시점이 책 뒤에 나오듯 2001년 2월이라서입니다. 그렇다고 이 짧은 아티클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첫째 힉스의 모형은 별반 덧댈 부분이 남아 있지 않고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비되었으며, 2013년(정확하게는 그 몇 달 전의 실험 모두를 포함해서)에 이뤄낸 성과는 그의 확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던" 시점에서 관측자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정직하게 증언하는 하나의 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존 호건 작가의 글은 가장 일상적인 느낌을 담은, "그놈의 힉스 소동(집필 시점은 2012년 7월이고, 이때가 바로 한국에서도 "신의 입자"로 연일 매체가 떠들썩하던 바로 그 시점입니다)"에 대해 일반인과 가장 밀접히 교감할 수 있는 짧은 감상문입니다. 친구와 내기를 했다느니, 미치오 카쿠(우리가 잘 아는 하버드 출신 물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입니다)의 저술이나 예견에 대한 단편이 아주 편한 필치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책은 "힉스(입자)에서 그 비전이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너머를 지향한다"는 주제를 곳곳에서 드러냅니다. 그래서 힉스는 그 이름만으로 영원한 진보, 전진, 혹은 설렘의 표상이 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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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 헤드 철도 네트워크 제국 1
필립 리브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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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4차 산업혁명이 흔히 이야기되지만, "기차, 철도"는 제2차 산업혁명을 이끈 중요한 혁신이었죠. 새로이 발명된 철도가 그전까지 서로 떨어져 있던 여러 지점을 연결하자, 일부에서는 "온갖 악을 전파하는 악마의 도구"로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엄청난 하중을 지고서도 쾌속으로 운행하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이 철도의 마력에 흠뻑 빠져 열광하는 층도 새로 생겨났죠. 현재까지도 소위 "철덕(철도 덕후)"들이 많은 건 (다른 오타쿠층과 달리) 제법 오랜 문화적 연혁과 내력을 지닌 셈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엄마를 잃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헤매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은하철도 999"가 잠시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미국 웨스턴 장르 영화를 봐도 기차는 꼭 무법자들에게 피해를 입거나, 낯선 고장에 설치된 정류장에서 큰 사고의 발단이 생기거나 같은, 다소 불안하거나 어두운 이미지, 심상과 곧잘 연결됩니다. 그러나 바로 눈에 띄지 않는 여백의 공간에 훨씬 많은 희망을 숨겨 두기도 했고, 그걸 떠나서도 그 힘차게 뿜어대는 기적과 엔진음만으로도 탑승자들에게 가능성과 꿈을 품게 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기존의 SF(뿐 아니라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에서 철도, 기차가 그저 사람의 운전과 조종을 받아야만 하는 무정물,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했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녀석들은 (우리 시대가 새로 가지게 된 비전에 힘 입어) 인공 지능이 장착된, 더 특별한 존재로 거듭납니다. 물론 주인공들, 주로 어린 층이 감정이입할 수 있을 멋진 인물들도 많이 나오지만, 이 소설에선 스스로 판단하고 느낄 수 있는 기차들이 캐릭터의 자격으로 대거 등장한 게 큰 매력입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젠 스탈링은, 마치 <스타 워즈>에서 스스로(혹은 몇몇 스승들의 도움으로) 각성하여 광막한 우주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루크처럼, 지혜롭고 용감한 성격입니다. 단, 루크와는 달리 젠은 그간 속해 있던 나쁜 환경 때문에 좋지 못한 습관과 성격에 물들어 있기도 한데, 마치 <은하철도 999>의 메텔처럼(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그의 부족한 부분만을 딱 채워줄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런 장르에서 우리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기대할 만한 "성장"을 이뤄 나가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타고난 천품의 덕택이며, 또 어디서부터가 후천적 의지, 혹은 주변의 도움일지는 작품마다 제각기 다른 선택이긴 한데, 일단 이 1권에서 우리 독자들은 젠의 거침없고 (불량청소년다운) 경쾌한 행보에 속으로 쓴웃음을, 겉으로 통쾌하게 응원을 함께 반응하게 되더군요.

예전에 <은하철도 999>를 보며, 저 키 작고 충성스러운 차장은 열차 자신의 화체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인체형 아바타" 없이도 기관차가 스스로 행동과 판단과 개성을 지니고 인물들과 소통합니다. 인체형이 아닌 유닛에서 작동이 원활한 모습을 봐야 비로소 AI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는데, 이때 성능과 가치란, 거기다가 인간적 존엄까지를 우리가 (진심에서) 부여할 수 있을지까지가 포함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녀석들은 "무력과 가차 없는 성격" 때문에 힘 없는 하층의 부스러기 같은 부류에게는 그런 여유를 허용도 아예 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스타워즈>를 보면 외양도 가지각색이지만 그 출신 배경 역시 천차만별인 여러 캐릭터들, 생명체들, 로봇들이 등장해서 관객을 매혹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마찬가지죠. 질서도 흔들리고 사회악은 19세기에서 별반 나아질 바도 없이 여전하고, 소설 내내 암시되듯 뭔가 심상찮은(불길한) 일이 분명 배후에서 꾸며지는데도 이 우주가 아름답게 다가오는 건, 바로 캐릭터들이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며 세계를 점유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도 되는 체험이었습니다.

"다들 모토릭에 지나지 않지."

젠이 이 대목에서 당황한 건, 저 말을 하는 노바가 마치 자신은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투였기 때문입니다. 젠이 되묻죠.

"넌 네가 모토릭이라는 걸 알아?" (몰라?라고 묻지 않는 게 좀 특이한데, 영어에서는 이 경우 뉘앙스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만, 그들은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해."

피와 살을 지닌 인간이라고 해도, 그저 대세에 따라 움직이고 이익을 위해 영합하며 때에 따라 말과 소신이 바뀐다면 그의 존엄은 어디서도 찾을 근거가 없습니다. 모토릭으로 태어났어도 후천적으로 제 의지에 따라 존엄을 가꾸었다면, 그런 존재야말로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불로불사의 존재 레이븐은 유독 이 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거기서 빠져 나오려면 총까지 쏴야 하나요?"
"준비해 둬서 나쁠 건 없지."

사람의 생각이란, 혹 100이 필요하다고 할 환경에서, 고작 3, 4 정도를 예견하고 살피는 데에 불과합니다. 그 정도도 자신에게는 꽤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정도만으로도 200 이상의 준비가 마쳐졌다고 착각(자기 기만)하는 게 또 타고난 생리입니다. 하지만 레이븐은 이 정도의 준비로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며, 다만 어린 젠에게 괜한 부담을 줄 필요야 없음도 꿰뚫기에 저 정도로 얼버무립니다.

앞에서 기차의 경적 소리만으로도 철도 덕후, 혹은 철도에 아무 애정 없어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어 이 거대한 탈것(vehicle)에 오른 모든 이들에게 괜한 설렘을 느끼게 한다고 적었습니다. 덕후건 아니건 이 순간만큼은 기차가 노래를 부른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이 소설 속에서는 정말로(비유가 아니라) 기차가 운행 중 노래를 부릅니다. 황제와 그 일가들이 탑승한 기차에서 이제 뭔가 일을 벌여야만 하는 젠은 잔뜩 긴장해 있고, 그런 젠을 노바는 계속 다독입니다.

"이 기차, 정말 좋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을 받아 주는(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필수겠지요) 상점을 찾아다닌 젠은, 3D 프린터로 총 한 자루를 뚝딱 만들어 구입합니다. 웨스턴을 보면 마침내 자유를 찾은 무법자가 대뜸 처음 발견한 총기 소매점에 들러 이것저것 쑤셔 본 후 마음에 드는 걸로 (부품 몇을 교체해 가며) 고른 후, 돈도 안 내고 총포상을 엉망으로 만든 후 유유히 빠져나오는 장면이 많죠. "3D 프린터"라고 이름은 안 붙었으나 여태 SF 장르에선 그 비슷한 설정이 많았습니다. 일개 좀도둑에서 총기도 슬슬 만져가며 더 간 크고 실력(?) 좋은 무법자로 성장(!)하는 젠을 보며, "어차피 세상은 거친 곳이니 사소한 불편과 고통에 굴복하지 말라"며 애들(젠보다 훨씬 어린 꼬마 때부터)을 강하게 키우는 저쪽 동네 분위기가 새삼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아나이스 식스의 인터페이스가 벌떡 일어났다. 낮은 천장 아래에 서니 훨씬 더 키가 커 보였다."

인터페이스란 개념은, MS가 GUI를 만들어 전세계 가정과 개인에 일상 용품으로 보급한 이래 SF에도 역수입되어 더 자주 만나는 듯합니다. 아바타가 있고 그 아바타를 통해서만 소통하면,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사실상 본체와 대리인을 구별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유독 이 작품에서는 이걸 칼같이 따지고 드는 게 돋보였습니다. 젠은 아마도 가짜와 진짜를 가르는 길고도 힘든 투쟁에 필수 전력으로 이미 (자의든 타의든) 끼게 된 것 같습니다. 2권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무래도 주 독자층을 어린 쪽에 주안을 둔 게 역력하지만, SF 장르 자체에 아직 부담을 느끼는 성인 독자라면 이 쫄깃한 모험담을 자신만의 입문서로 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공부 잘하는 틴에이저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게, 혹시 너무 재밌어서 이 소설 기반 게임이라도 이후 출시되면 아주 위험할 것 같아서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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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분석대로 미래는 이루어진다 - 국내 유일 트럼프 당선을 정확히 예측한 우종필 교수의 구글 빅데이터 기법 공개!
우종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어떤 이론을 놓고서도, 그 이론의 궁극적 효용이란 결국 어떤 모델을 그로부터 도출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빅데이터 역시 이를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선 데이터의 정제, 해석을 통해 멋진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많은 이들은 "이 역시 앞으로는 AI가 대신하게 되는 미래"를 예견하고, 또 완성도 높은 AI라면 그 정도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현 2018년 시점에서 보면 그저 SF적 상상력, 기껏해야 혁신을 향한 패기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구체적으로 빅데이터를 다뤄 보고 HADOOP등 최첨단 솔루션도 돌려 본 분들의 주장, 모범 사례 등에 경청하는 게 일단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꿈 꾸는 젊은이들의 우선 순위 과제인 듯합니다. "추상적인" 빅데이터 만능론보다, 실제로 업무를 시행해 본 분들의 체험담이 훨씬 그들에게 유용하고 반갑게 와 닿기 때문이죠.

빅데이터 시론은 요즘 경영학과 교수님들 사이에서 부쩍 의욕적으로 제안되며, 또 참고할 만한 시사점, 인사이트가 많이 발견되기도 하죠. 이 책도 말하자면 그런 부류에 속하는데, 일반론도 길게 나오지만 교수님(즉 저자)의 실제 연구와 적용을 바탕으로 한 경험담이 흥미로웠습니다. 책은 작년 3월에 출간되었는데, 이때면 아직 한국에선 대선이 치러지기 전이며 미국에서는 전년도 11월에 있은 선거 결과에 따라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두어 달이 지난 시점입니다. 얼마 전에도 모 정당이 여론 조사 결과의 공정성에 시비를 거는 일이 있었는데, 저 무렵이면 한국에서의 여론조사는 대체로 실제 결과와 맞아떨어지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크게 어긋나서 이의 해석을 두고 논란이 분분할 때입니다.

2016년 7월 저자 우종필 교수는 매경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하는 언급을 해서 주목을 끌었고, 이 예견은 4개월 뒤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6&no=508898 이 링크로 가 보시면 흔히 교수들이 취하는 태도처럼 "그럴 수도 있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같은 모호한 화법이 아니라, 구글 트렌드에서 몇 가지 시도를 해 보고는 "이대로라면 트럼프가 이긴다"는 결론을 선명히 내놓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상 징후는 이뿐이 아니라, 당시 내한했던 한국계 지식인들 여러 명이,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서 트럼프의 지지세가 어마무시하다는 현장에서의 느낌을 그대로 전함으로써, 낡은 기법에 집착하는 여론조사가 미처 보지 못한 민심의 민낯을 엿볼 수 있게 도왔습니다.

FIFA 월드컵에서도, 소위 "돈은 거짓말을 않는다"는 속설 때문에, 특정 경기의 승패는 도박사들이 가장 정확히 맞히곤 하죠. 헌데 2년 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는 이들조차 헛다리를 짚었고, 대신 구글 트렌드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구글 트렌드가 물론 "영국이 EU에 남는다, 아니다"를 점쟁이처럼 맞히는 건 아닙니다. 해석은 역시 사람이 해야 하는데(생각해 보니 점괘도 스스로 말하는 건 아니고 점쟁이가 해석을 해 줘야 하는군요), 우 교수는 해당 지표를 보고 다른 결론, 해석이 나오기가 힘들다고 관측하신 거죠.

"많아야 1000명 안팎인 표본을 두고서는 제대로 민심을 읽을 수 없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통계학자들은 크게 반발할 겁니다. 1000명 안팎의 표본으로도 얼마든지 모집단의 경향을 추측할 수 있음은 이미 수학적, 통계학적으로 확립된 이론이라면서요. 하지만 표본의 추출, 심지어는 "보정"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낄 수 있음도 이미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뒷받침됩니다. 게다가, 표본의 수에서 상대가 될 수 없는 빅데이터 기반의 연구, 결론 앞에서야 이런 주장이 설 땅이 대단히 좁아지는 것도 명백하죠. 서로 다른 무기를 갖고 붙는 게 아니라, 같은 종류의 도구를 지니고 싸우는데 한 편이 다른 편에 비해 스펙이 월등하다면 승부는 더 보나마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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