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미래, 비트코인은 혁명인가 반란인가
임정빈 지음 / 시사매거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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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은 "돈의 미래, 비트코인은 혁명인가 반란인가"로 되어 있어서 아 또 비트코인 이야기구나 하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워낙 이 주제로 많은 책이 나와 있으니까). 근데 책을 읽어 보니 오히려 내용의 방점은 "돈의 미래" 쪽에 놓여 있더군요. 아까 뉴스에 박 시장(현 시점에서 박 "후보"지만. 현 시장이라고 해도 현재는 법적으로 대행 체제이므로)이 "서울페이"를 연말에 도입하겠다는 것도 전해졌죠.

사람들이 거래에서 "피"처럼 쓰는 돈("피 같은 돈"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ㅋ)을 누가 만들고 어떤 시스템으로 운용하는지는 사실 인류 문명사의 어떤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개는 지역에서 패권을 장악한 집단이 독점 주조권까지도 가졌었습니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은 포퓰리즘으로 비난 받고도 있으나) 직접 민주제를 표방한 정치 결사가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한동안 무정부 상태가 이어진 적도 있습니다. 이때문에, "이탤릭시트"가 온다면서 증시 폭락이 이어질 거라는 뉴스도 떴고, 이런 뉴스야말로 공매도 타이밍 노리는 기관과 기자가 짜고치는 플레이라며 격렬히 반발하는 유저들의 댓글도 열심히 달렸습니다. 참 세상이 요지경인데 문제는 어느 한쪽 편을 간단히 들고 말 만큼 국제 정세나 경제 구조 돌아가는 게 간단치 않다는 데 있습니다. 여튼 직접 민주제가 정말 시대의 대세 중 하나라면, 돈 역시 분권화한 시스템에서 만들어지고 운용될 필요가 있겠고, 어쩌면 경제 섹터에서의 이런 새로운 시도가 (역으로) 정치의 민주화를 가속시킬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복잡한 세상을 올바로 파악하려면, 세상이 복잡해지는 원인을똑바로 분석한 책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죠. 그 원인이란 결국 "돈"입니다. 이것의 흐름이 어떻게 생기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보면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의 판도를 미뤄짐작할 수 있습니다. 밑바닥 돌대가리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상류층 행세를 하는 조류 같은 인간이나 "알고 싶지 않으며, 알고 싶다면 택시기사 말이나 특정 저자 책만 참고하면 된다"는 식의,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를 떠드는 거죠. 자기 생각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 단기 메모리에 의지해서 지식과 정보를 패스트푸드처럼 먹고 배설하는, 뇌 없고 입만 산 인간들이 많아질수록 인류 문명의 앞날도 암담해진다고 하겠습니다.

책은 비트코인만 다루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화폐제의 미래와 본질"를 꽤 깊이 있게 논급합니다. 1장 제목은 "화폐의 추상화"입니다. 인간이 지혜가 깨면 깰수록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palpable) 구체적인 표상에서 추상적인 가치에 눈을 돌릴 줄 압니다. 뒤샹의 <파운틴>은 일개 중고 변기에 불과했지만, 세기의 미의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 "걸작"입니다. 이처럼 심지어 미술품조차 조형의 구체가 아닌, 그 대상(심지어 "무[無]"일수도)에 던져진(입혀진) 컨셉에 사람들이 관심을 더 두기 시작한 건, 엄연히 인식과 지혜의 발전입니다. 미술품에 밝은 안목을 가진 이들이, 알고보면 돈도 많이 굴리는 알부자를 겸한 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다만 화폐가 (지나치게)추상화하면 불안을 느끼는 구세대도 있으므로 일부에서 가상화폐에 대해서조차 "실물 지갑"을 만들어 배포하는데, 그 아이디어나 배려심도 기막히지만 집단 지성의 힘이 이처럼이나 강하다는 점에 다시 놀라게 됩니다.

"내 정보가 내 정보가 아니다." 책에서는 2009년 인터넷망 마비 사태, 2013년, 14년 연달아 터진 해킹- 정보유출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이 중 적어도 일부는 북한 측의 소행임이 상당 수준으로 의심되며, 아무리 화해와 평화를 논의해도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겁니다. 이런 것까지도 "냉전적 사고" 운운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야말로 냉전 시대의 다른 진영에 페티시적 집착을 가진 게 아닌지 의심 받아 마땅하며, 인터넷상의 범죄행위에 강한 감정이입을 하고 싶은 범죄자 심리에 젖은 게 아닌지 비판 받아도 쌉니다. 그렇게 감옥에 가고 싶으면 보내 주면 됩니다.

요즘은 이름도 듣기 힘든데 1980년대 중반에 한창 크레딧 카드가 도입되고 대중화할 무렵 다이너스 카드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신용카드의 원조 다이너스 카드를 소개하며, "전자 화폐, 추상 화폐"의 시발이 이것임을 친절하게 독자에게 환기시킵니다. 가상화폐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못 가진 이들(주로 노년층)도, 자신들이 한창 왕성히 경제활동을 시작하던 무렵 신분의 상징으로 소지하던 신용카드와 지금 이것이 큰 맥락에서 동일선상에 놓였음에 착안한다면 아마 관점이 확 바뀔 것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외견상 무관해 보이는 여러 현상이 사실은 동일 선상에 놓여 있었음을 친절히 일깨워 주는 데에도 있습니다.

말도 탈도 많지만 토렌트 쓰시는 분들 많을 텐데, 비트코인이다 전자지갑이다 하는 게 토렌트 프로그램과 다를 것 없습니다. 예전 eDonkey 같은 것만 해도 중앙에 서버가 있었는데, 저 프로그램은 그런 것도 없이 개인(peer) 사이만의 교류로, 훨씬 빠른 "공유"를 이뤄내어 각광을 받았죠. 책에서는 p63 이하에서 여러 도판(사진)과 그래픽을 곁들여 가상화폐의 원리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인터넷상에서 실물이란 게 없이 디지털 부호의 교환만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는데, 어떻게 불법 복제, 이중 지불의 위험이 없을 수 있는가. 사실 이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인문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일찍부터 제기한 바 있었습니다. 전 아직도, 책 한 권으로 그만큼이나 폭 넓은 주제를 다루고, 아젠다 획정이 정확하며, 심지어 정확한 미래 예측까지 가능한 경우가 과연, 이전에나 이후에나 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논하는 모든 프레임은 이미 그 책에서 제시되었더랬고, 마치 고골리의 외투에서 우리 모두는 나왔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여기에도 유비될 수 있다고까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은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를, 초심자도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를 겪는 이가 어디 비잔티움 제국의 장군뿐이었겠습니까만, 연유야 무엇이 되었든 이 이슈가 처음부터 그리 이름이 붙었고, 사토시 나카모토 이래 익명의 집단이 이 난제를 멋지고 깔끔하게 해결했기에, 이름은 아마도 영원히 바뀌지 않고 "비잔티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페르마의 정리가 앤드류 와일즈에 의해 25년 전 증명되었지만, 너무 많은 원리가 개입되었기에 일반인은 그 함의가 뭔지도 감 잡지 못합니다(그랬거나 말았거나 그 증명이 완벽한 위업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지만). 헌데 비잔틴 장군 딜레마는 해결 방법조차도 단순하고 깔끔하며, 마치 앨런 구스가 우주 인플레이션 이론을 처음 거론했을 때 "왜 우리는 저 단순하고 멋진 아이디어를 못 떠오렸을까?"라며 다들 탄식한 사실과도 비슷합니다. 비잔틴 장군 딜레마(와 그 해법) 이야기는, 바로 비트코인(나아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가상화폐 전반)의 원리 그 핵심을 이루기에, 수학의 원리 중 하나에 머무는 게 아니라 바로 비트코인 라이프 스토리 자체와 내내 붙어다닐 겁니다. 여태 읽어 본 책 중에서는 이 책의 소개가 가장 깔끔하며, 또 포괄적이기까지 합니다.

비트코인에는 괜한 선입견을 가진 이들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일단 신중한 태도로 돌아서거나, 최소한 "뭔가 있음"을 인정하며 미래 핵심 테크놀로지로서의 비중을 평가합니다. 이낙연 총리도 몇 달 전에 "블록체인을 블락(규제)하지는 않겠다"며 재담을 한 적 있는데, 사실 묘하게도 두 블락은 철자가 block으로 같고, 아예 같은 뜻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책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소개하는데, 기술이란 이처럼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며 경제 활성화와 혁신에 기여하는 것도 있고, (일부에서 지적하는 대로) 반사회적 결과만 낳기 일쑤인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 과연 시장의 형세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도 책은 비교적 많은 정보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한국 비트코인 시세가 유독 높게(환율을 고려해도)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책들은 이런 언급을 잘 않더군요. 시장, 혹은 최전선에서 참여자들이 체감하는 (그러나 공식화하진 않은) 이슈를 분석해 줘야 독자가 직접 효용을 얻고 만족하게 됩니다. 증시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었다면(사실 저는 최근 호황이 꼭 반도체 견인 요인이라기보다,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그간의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가상화폐 시세는 오히려 반대로 "김치 프리미엄"이 있는 셈인데, 책 p205에는 제이미 다이먼 전(前) JP 모건 CEO 역시 "모두 거품"이라고 했다가, "블록 체인 등 첨단 기술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던 내 잘못"이라고 이후 입장을 철회한 바 있습니다. 본시 문제를 규제로 대뜸 해결하려 드는 습관, 체질이야말로 바보들의 공통점이며, 무지한 자가 환경 변화에는 덮어놓고 반발을 하게 마련이죠. 눈을 감으면 감은 그 사람의 미래에만 암흑이 드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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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과목해설 및 분개처리사례 - 전2권 - 개정13판
경영정보문화사 편집부 엮음 / 경영정보문화사(경영정보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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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급(재무)회계에서 아무리 탄탄하게 이론을 배웠어도 실무에서는 "이런 건 어디다가 집어 넣어야 하지?"같은 의문이 들 때가 잦습니다. 하다못해 그 흔한(?) 현재가치 할인 차금만 해도 이게 수익 계정인지 매출액의 일부로서 자산 계정에 넣어야 하는지 헷갈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 참고해 보면서 개별 사례에 알맞은 계정 분류를 속 시원히 가르쳐 주는 책이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그거 아니냐, 중급회계 열심히 보면 다 같은 내용이 아니냐고 하는데, 설령 완전히 같은 내용이라 해도 용도에 따라 배열만 달리하면 본질과 의미까지도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대충 아는 것과 심도 있게 체계를 잡아가며 내용을 파악하는 건, 특히 실무에서 인력에 따라 자질이 극에서 극입니다. "알 것 같다"는 것과 "진짜 아는 것"의 차이를 영영 모르고 죽는다면 참 딱한 일이죠.

현재가치 할인 차금이란, 아직 완전히 실현(입수)되지 않은 자산의 미래의 액면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정 부분을 감액하는 회계 처리에서 설정하는 미래 수익 계정입니다. 예를 들어 3년 뒤에 들어올 1억짜리 채권이라고 하면, 이걸 설령 지금 인식한다고 해서 장부에다 바로 "1억"을 떡하니 기입(記入)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어느 금액을 3년 정도 은행에 묵혀 두고, 꼬박꼬박 이자를 모은 후 3년 뒤에 가서야 1억이 간신히 만들어진다고 해 보죠(적금이라든가). 3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셔 둬야 1억이 만들어지는데, 3년 전 시점에서 그 돈이 대뜸 "1억"일 리야 있겠습니까? 과연 3년 뒤에 상대가 돈을 안 떼어먹고 돈을 갚을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삼아도 말입니다. 확실한 건, 3년 뒤에야 1억이 되는 돈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그 돈은 1억에 많이 미달하는 금액이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엑셀 파일(부분 캡처)을 보십시오. 이미 함수식이 설정되었으므로 기간과 이율 셀에 적당한 숫자만 집어 넣으면 바로 현가계수를 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12년이 거치 기간이고 연(年)이율이 2%라면, 12년 뒤에 들어올 1억은 현 시점에서 1억이 아니라, 저 현가계수를 곱해서 나온 7천 8백 8십 4만여원이 되는 겁니다. 차이가 2100만 정도나 나죠.

12년이 아니라 3개월 간 12번, 즉 4년에 걸쳐 돈이 들어오는데 이자율이 역시 (분기별)2%라면, 이 경우에는 저 식에 4년, 8%를 대입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효이자율법으로 매출채권을 상각할 때에는 현가계수를 달리 적용해야 올바른 계산이 이뤄집니다.

보통 매출채권 원장에다가 이처럼 액면 금액을 그대로 계상하고, 매기마다 돈이 들어오면 그만큼 차감(대변 기입)해 나갑니다. 한편, 할인차금 계정에다가는 초기 자산 인식 시점에서 함께 이 미래 수익을 기입하고, 구체적으로 이자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다시 할인차금 계정 차변에다가 그 감소(변환) 사실을 적는 거죠. 이렇게 해서 만기에 가면 매출채권 0, 상각 누계액은 할인차금 총액과 정확히 같아지는데, 계산이 정확히 이뤄졌다는 쾌감이 꽤 쏠쏠합니다.

책의 저자명의가 경영정보사이며, 출판사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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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와 SNS 시대의 소셜 경험 전략 - 서비스와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비즈니스 큐레이션, 2판 AcornLoft
배성환 외 지음 / 에이콘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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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텔리전스"의 시대를 지나 "비즈니스 애널리틱스"의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빅데이터의 양이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이 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죠. 그래서 "분석 기법"이 중요해지는 건데, 당분간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이 일을 해 내야겠으나 미래에는 이마저도 인공지능이 대신 수행하리라는 게 전문가들이 그리는 미래상입니다. 하긴 일론 머스크도, 인공지능의 정의를 두고 "아직 안 이뤄진 모든 것"이라며 다분히 냉소적으로 말한 바 있으니 뭐라고 확정하기엔 아직 너무도 이른 단계이겠지만 말입니다.

서유럽이나 북미에서도 "개인의 사생활"을 강조하던 예전의 추세에서 크게 이탈하여, 도대체 자신의 일상을 전세계에 생중계를 못해 안달들입니다. 2000년 즈음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 화상 채팅을 통해 나체 노출 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일부 유저들이 벌이던 데 대해, 국내 점잖은 네티즌들은 "전세계에 자기 몸매가 다 보여지는 건데 정말 저러고 싶을까" 같은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라면 그 부모들도 이미 인터넷이 뭔지 연결성이 뭔지 다 피부로 파악하는 세대들입니다. 그런데도 "사생활을 보호하려 드는 의지"가 이처럼 미미하게 (아직도) 머무는 걸로 보아, 중계와 노출의 트렌드는 좀처럼 멈추지 않을 듯합니다. 또, 이러니 소셜 데이터가 쌓이고 쌓여 기업들의 좋은 사냥감(꼭 나쁜 뜻은 아닙니다)이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분석기법에는 "사후 판단, 예측, 통찰" 등이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하위 수준으로 여겨질 만한 건 사후판단(hindsight)이겠는데, 이마저도 우리의 지난 행동을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필요할 때가 있을 선택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측과 통찰은 깊이와 폭 면에서 다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다음 수"를 점치는 건 "예측"이지만, 앞으로 국제 정세의 판이 어떻게 짜여질지 가늠하는 건 "통찰"입니다.

저자에 따라 너무도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용어들이라 일의적으로 정할 수 없지만, 논자에 따라서는 "데이터마이닝"의 경우 일회성에 그치고, 재활용이 어려우며, 심지어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낳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애널리틱스는 재활용도 가능하고(예: 전기자동차의 충전 기록을 보고 충전소의 최적 위치를 재배열), 일관된 맥락을 지니기 때문에 기업의 무형 자산으로 충분히 계상(計上)될 자격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해석의 의의가 다면적이지 못하면 그것야말로 "일회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일찍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섹터에 큰 공을 들이고, 일반 소비자보다는 기업 상대 비즈니스에 승부를 걸어 왔습니다. 그래서 MS의 주가가 여전히 내려가지 않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거고요. 저자들은 빅데이터는 곧 클라우드를 뜻한다고까지 과감한 정의를 내리기도 합니다. 나에게 걸맞은 상대가 누구인지, 지구촌 저 깊숙히 어딘가 살고 있는 누군가를 콕 집어 매칭해 준다면 그건 정말 신기하고도 멋진 체험이겠습니다. 이런 건 종래의 중매업체, 혹은 그저 저장 검색 대조 기능 위주의 데이터베이스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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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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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도읍은 그 긴 시간 동안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실 새겨 보면 당연한 게, 기후와 지형의 변천 때문에라도 단일한 저자[市]가 중추 기능을 계속 수행할 수 없죠. 또 중원의 개방된 지형 때문에 여러 정치 진영이 부침(浮沈)울 거듭하는 과정에서, 각 세력이 터잡고 일어난 중심지가 타 세력의 거점을 빈번히도 대체, 압도, 파괴했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기껏해야 백 년이지만, 거대한 중원의 호흡과 맥동은 오천 년 시간을 넘어다 보았습니다. 여섯 서울이 번갈아가며 으뜸 자리를 쟁패하는 사연이란, 차라리 세계사, 지구사의 압축이라고 불러 아깝지 않습니다.

책 처음에는 시안이 나오는군요. 우리말에서도 "장안"은 보통명사 서울, 수도와 거의 동의어처럼 입에 올려질 때가 있습니다. 이 장안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 나라의 수도 함양이 항우의 무도한 손길에 의해 멸(滅)해지고, 새로 한나라가 선 후 차분히 터전이 닦인, 중국에서 제국의 중심으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고도(古都)입니다.


저자께서는 서주의 호경, 풍경, 진의 함양과 한의 장안을 모두 이 시안(서안, 西安)의 범위에 포함시켜 보십니다. 하긴 뉴욕이나 일본의 도쿄도 어디까지를 시계(市界)로 잡을지 모호한 면이 많습니다. 부심, 인근 광역 위성 도시까지 모두 포함시키는 행정 체계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구획을 잡는 나라도 많죠. 중요한 건 저자의 지적대로, 이곳이 일찍부터 서역과 문물을 주고받는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시안의 이런 역사적 맥락이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와도 핵심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책에서는 재작년 프랑스와 세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대통령에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의 시안 방문(올해 1월)까지 지적합니다. "서쪽에는 로마, 동쪽에는 시안"이란 말로 요약된다는 과거의 영화가 이제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한 시 주석의 비전과 함께 과연 되찾아질 수 있을지요.



책에서는 동북 공정을 비롯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특정 프레임만 강요하는 획일적 흐름에 대해 매우 경계하는 시선이 역력히 감지됩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개 테러리스트였을 뿐입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56개 소수민족이 모여 거대한 중국을 형성했다지만, 만약 내가 위구르 족, 광서 장족, 혹은 티벳 인으로 태어났다면 과연 어느 편에 섰겠는가?" 획일은 곧 강압이요 독선이고 불의입니다. 영웅은 그 어떤 이념과 지향을 표방하든 결국은 또하나의 압제를 타자에게 부과하는 악(惡)입니다. 저자는 다시 강조합니다. "영웅이 없는 역사라야 참된 평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다." 1000년을 넘어 3000년의 아득한 전망을 허리춤에 찬 시안을 답사하고 저자가 느낀 바는 이처럼 비장한 감개와 경탄, 미래와 역사에 대한 건강한 우려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사유와 감정이네요.



UN에서 근년 들어 부쩍 자주 세계문화유산이란 걸 지정하는 모습입니다. 이 "명예"를 가장 많이 지닌 나라는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라고 하죠. 시안의 흥교사는 명승 현장이 통솔, 수련하던 시절 원측과 규기라는 빼어난 제자 승려를 또한 배출하였으며, 특히 원측 스님은 신라 역사에서 유식 불교 관련으로 반드시 중등 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항목이기도 합니다. 라이벌 규기는 이른바 삼거 스님이라 하여 불교에서 금기로 삼는 세 가지를 모두 거느리고 다닌 행태로 유명한데, 저자께서는 이 재미난 일화를 소개하며 찬영의 기록 인용을 통해 후무(厚誣), 즉 "엄청난 무고"라는 반대 의견도 소개합니다.

여튼, 문화 유산이란, 빛이 나면 나는 대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자신의 참된 모습을 꾸밈 없이 표현해야 가치 있는 법인데, 중국 당국에선 UN 문화 유산 등록을 위해 점수 평정에 도움이 안 되는 시설을 대거 철거하려 들다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고 합니다. 윤색과 개칠로 오히려 조상들의 긍지와 업적에 먹칠을 하는 격인 후손들의 이런 어리석은 시도 앞에, 삼천 년 내력의 도읍이 과연 어떤 참담한 마음으로 이를 바라볼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장안도 아니고 시안이라고 하면 심지어 현대 한국인들에게조차 대뜸 떠오르는 게 "시안 사변"입니다. 장학량(아명 장샤오량 혹은 이 책의 표기대로 장쉐량. 張學良)이 그 절체절명의 순간 장중정(장개석)을 납치하지 않았더라면 대륙의 주인은 국민당이 되고,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지 않았을지, 저자는 흥미로운 가정의 연속을 이어갑니다. 물론 현재 중국 당국에서는 시안 사변(영웅적인 장학량의 결단)을 계기로 공산당이 기사회생했고, 궁극적으로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시안 사변이 아니었다면 중국은 고작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졌으리라는 거죠. 뭐 생각하기 나름입니다만 저는 행간에 비치는 저자의 견해에 찬성하고 싶습니다. 그쪽 동네에선 이런 상상, 생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저자의 상상은 이에 그치지 않고, 명 태조 주원장이 남경에서 이곳 시안으로 천도를 계획했었으며, 태자 주표에게 이 기획을 맡겼으나 그가 병사함에 따라 모든 포부를 접었다고 합니다(대규모 토목 공사는 또한 국력의 엄청난 출혈을 뜻하기도 하죠). 부질없는 if 놀이가 아니라, 만약 이때 시안 천도가 이뤄졌다면 북경은 어쩌면 아득한 예전 연나라의 도읍 시절을 제외하곤, 고작 몽골 족 치하의 대도(大都)란 이름으로 그 영화의 끝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여진족이 그대로 중원을 침노했다 쳐도 기존의 수도를 존중하지, 구태여 뭐하러 북경 천도 따위를 고집했겠습니까. 여기서 대략 제1장 시안 파트가 끝나는데, 이 1장(여섯 도읍 중 한 곳의 사연)이 전체의 40% 가량을 차지합니다. 읽고 나면(혹은, 중국 역사에 정통한 독자라면 읽기 전이라 해도) 과연 그럴 만했다며 흔쾌히 이런 편제에 동의할 만합니다.

장안이 서도이면 낙양은 동도입니다. 우리 말에도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 같은 용례에서 서울과 동의어처럼 쓰이지만, 일찍이 姬氏가 견융에게 쫓겨 동천(東遷)할 때 새로 터잡은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뿐 아니라 광무제 유수가 폐허가 된 장안을 떠나 나라의 중심을 새로 정한 곳도 이곳이며, 한국의 독자들도 <삼국연의>의 배경으로 너무나도 눈에 익은 고도이죠. 저자가 손수 답사한 여러 유적의 면면에서도 드러나듯, 장안이나 이곳이나 당나라 치세 이래 널리 수입된 서역과 인도 문물의 흔적인지 사찰이 참 많습니다.

백마사에 얽힌 다양한 사연(과연 고찰이라서인지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곳곳에 서려 있군요)들을 보면 후한 명제(현종. 顯宗) 시절 불교와 도교가 한판 승부를 내려 든 일화가 그 중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상식적으로도 불교의 수입은 남북조 시대의 일이며, 도교의 성립 역시 제자백가의 노쟝 사상을 그 원형으로 설령 치더라도 "도사" 같은 계급, 직역이 등장한 건 한참 후대의 사실이란 점에서 백번 타당합니다. 영평 14년(AD 71)에 초왕 유영이 자살했다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몇 페이지 뒤 초한 쟁패 스토리가 나와서 독자들이 혹 헷갈릴 수 있지만 이때의 "초왕"은 유씨 성 가진 황실 출신 제후왕입니다. 오초 칠국의 난을 생각해 보시면 되죠.

뤄양에는 또한 불교 예술의 극치를 보여 주는 한 모범인 용문석굴이 있는데 이곳의 마하가섭상이 20세기 초 약탈된 후 흘러흘러 캐나다까지 갔으나 문화재 반환의 국제 전례가 미비하여 불의한 현상이 계속 유지되었죠. 캐나다는 이 와중에 자발적으로 중국 측에 가섭상을 반환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으며 저자는 이를 두고 "양심과 책임과 품격을 입증"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스의 사례를 들며 엘긴 마블스의 이름도 언급하는데, 보통 Elgin은 "엘진"이라 읽지만 이 사람에 한해 "엘긴"이 맞는 발음이죠. (이 책에 나온 대로요)

유명한 관운장이 여몽의 손에 죽고 그 머리가 조조에게까지 바쳐졌는데 그의 무덤이 바로 이 뤄양(낙양)에 있습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중국 역사상 제후 혈통이 아니면서 묘소에 "림(林)"자가 붙은 경우는 오직 공자, 관우 두 분의 예뿐이죠. 조조 역시 관운장을 제후의 예로 장사지냈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처럼, 워낙 오랜 기간 동안 중원 문명의 중심지로 기능하다 보니 온갖 인걸의 자취와 잔향이 도시 곳곳에 배어나는 겁니다. 더군다나 동과 서의 두 도읍은 중국 문명 황금기에중책을 맡은 고장이 아니었습니까.

카이펑은 한자로 개봉(開封)이라 쓰는데 이미 전국시대에도 삼진(三晉) 중 하나인 위(魏)나라의 수도였죠. <사기 열전> 등에 보면 "대량(大梁)을 무찌른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바로 이곳입니다. 대량은 다른 이름으로 변량(卞梁)이라고도 불렀는데 변경(卞京)이란 이름도 송나라(趙宋) 시절 널리 쓰였습니다. 개봉부 부윤의 면면을 보면 범중엄, 구양수, 사마광, 소동파 등 참으로 놀라운 명사들의 대행진입니다.  저자께서는 바로 포공사로 이동하시는데, 이곳은 절[寺]이 아니라 우리도 잘 아는 포청천의 사당[祠]입니다.


국화의 도시가 마침내 진[落] 것은, 문약한 조송의 조정이 기질 드센 호족의 세력을 당해내지 못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송 휘종의 아홉째 아들인 조구가 임안(臨安), 즉 항저우[杭州]에 도읍해서 세운 새 조정이 바로 남송입니다. 천당과도 비견할 만한 멋진 풍경과 넘쳐나는 물산 덕에, 송나라 조정은 남천을 한 후에도 오히려 세수가 줄지 않고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북쪽의 금나라와 상당 기간 호각지세를 이뤘습니다. 

이곳 역시 불교 문화가 발달했는데, 저자는 그 중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호포사를 찾습니다. 이 사찰이 자랑하는 홍일대사는 속명이 리수퉁(이숙동)으로,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20세기 초반의 인물입니다.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그 온전한 맛을 음미할 수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의 진면목을 관조할 수 있다"며, 마치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도 즐겨 노래한 안빈낙도의 깊은 뜻을 설파합니다. 소동파도 그 개인은 고려를 매우 혐오하였다지만, 이처럼 정서의 깊은 곳이 서로 닿아 있으니 어찌 중국의 문호, 법사 등의 저작과 기록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난징으로 다시 내려오면 역시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 주원장의 사연과 조우해야만 합니다. 이 도읍은 멀리 삼국시대부터 강남의 중핵으로 기능했고, 책에서 규정하는 대로 5호 16국의 혼란을 피해 동진한 진(晉) 황조 역시 몸을 의탁한 "육조 문화의 꽃을 피운 곳"입니다. 도읍이 선 곳이니 행정 수도에서 입신 양명해 보려는 과거 응시자들의 애환도 여기저기에 밴 게 당연합니다. 역사 시간에 홍수전(홍수취안)이 얼토당토않게 "태평천국"이란 걸 내세워 난을 일으킨 사실은 배워서 알지만, 과거 낙방자 출신인 그의 내력과 반란의 거점을 이곳 남경으로 삼은 점을 이렇게 연결시킨 건 확실히 저자의 탁월한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중국의 국부(國父) 손문(쑨원) 역시 이곳을 그 활동의 중심지로 삼았으니, 불의에 저항하고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역사의 거센 물줄기가 이 고도를 중심으로 세차게 흐르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죠.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대학살의 만행 역시 이 남쪽 수도의 아픈 역사 한 자락을 붉게 물들입니다.

그리고 북경. 쿠빌라이칸도 유목민 수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중원의 천자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이 대도(大都)를 깊이 사랑하고 품었습니다. 조카의 황위를 뺏은 삼촌 주체의 거점이 여기였음은 이미 책 전반에서 자세히 다뤄졌지요. 청나라는 이자성이 야기한 대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입성(入城)하여 오히려 제국 통치의 기반을 더 세심히 다졌고, 자금성 내 원명원은 동양의 베르사유(아니, 그 이상이었겠죠) 궁전이란 찬사까지 들었지만 양이(洋夷)의 전화(戰禍) 앞에 잿더미로 화(化)하고 말았습니다. 북경은 이후 중일전쟁의 참사, 천안문 사태의 유혈 비극, 그리고 올림픽의 대성황까지도 모두 굽어보았습니다. 그의 뜻이건 아니었건 간에.

여섯 도읍은 거대한 중국사의 물줄기를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며 온갖 영욕의 사연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은 지리의 증인입니다. 도읍들을 돌아보며 생생한 대륙사의 체취를 맡다 보면, 밉건 곱건 그 긴 세월을 우리 겨레의 지척에서 함께 부대껴 온 거대한 역사의 엄청난 무게에 새삼 한숨이 나올 만도 합니다. 역사를 그저 글과 책으로 접하는 것과, 이처럼 대도시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 생생하고 가쁜 호흡을 공유하는 건, 각성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중국의 이런 과거와 현재를 가식과 거품 없이 이해, 수용할 때, 우리 자신의 활로도 함께 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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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Cho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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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시리즈는 어떤 시험을 대비한 교재라도 정성이 담뿍 배어서 좋습니다. 천편일률적이거나 뻔한 설명이 적고, 수험생이 실제로 고민할 만한 부분을 잘 긁어 줍니다. 이게 다 실제로 수험생들과 함께 교감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리스닝 공부를 위해 먼저 http://www.hackersteps.com/?c=s_teps 에 방문했습니다. 좀 복잡하다는 느낌도 들었으나, 커뮤니티에서의 소통이나 정보 수집을 위해 자주 찾는 이들은 익숙하게 잘 다닐 것입니다. 화면 중간 쯤에 "(텝스의) 가장 빠른 시험일"이 표시된 것도 수험생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회원 가입을 하고 파일을 다 받으니 합쳐서 4Gb나 되었습니다. 1쇄용과 2쇄용이 다르고 학습, 복습용, 고사장 실전용 파일이 모두 별개로 만들어져 배포되네요. 이런 정성이 고마워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수험생들에게 들지 않겠습니까?

p180에 보면 오답의 유형 중, 같거나 비슷한 단어를 바꿔 쓴 게 많다고 합니다. 같거나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는 무조건 오답이라는 토익의 공식도 있지만, 텝스는 이런 경로를 고지식하게 따르지는 않기 때문에 오히려 머뭇거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텝스 리스닝에서 많은 이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건 "그럴듯하지만 본문에서 언급된 적 없는 문항"입니다. 이런 오답 장치야말로 텝스를 타 시험에 비해 어렵게 만들고, 따라서 변별력을 높이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부만 일치하는 유형" 역시 시험 다 치고 나서 많은 수험생들을 허탈감에 빠뜨리죠. 안타깝지만, 방법, 정석은, 결국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히 가려 듣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없겠습니다. 어학 학습시 음원에서는 남성/여성의 발음을 구별해서 둘 다를 들려 주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이들은 뭐하러 그렇게 하냐고 하지만 텝스는 유독 남자와 여자를 바꿔 써서 정답을 오답으로 만드는 유형이 자주 출제됩니다(남녀 사이에 높낮이, 울림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이슈는 non- native의 청해에 유의미한 장애 요소일 수 있습니다). 어떤 학습자들은 성인(남녀 불문)들의 발음은 잘 알아듣지만 유독 아이들 말을 못 알아듣기도 하는데, 이 이슈가 단지 혀짤배기 발음이다 아니다 하고는 별개의 문제인 듯도 합니다.

매 단원은 리스닝 실제 출제 유형에 맞춰 정말 필요한 문법 설명이나 접근 전략만 맞춤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본기 다지기 → 오답 유형 분석 → 전략 제시 → 실전 감각 기르기 등으로 단계가 세밀하게 나눠졌네요. 책의 체제만 착실히 따라가다 보면 절로 실력과 감각이 늘게끔 한 게 최고의 장점입니다. 실력이 있어도 유독 실전 감각이 떨어지는 수험생들도 많은데, 이 "감각"을 세심히 길러 주는 체제와 편집이 단연 돋보입니다.

기본기 다지기 → 오답 유형 분석 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실전 맛보기"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기초를 공부할 때, 기초를 익히기 위해 드릴 할 때는 잘 적응하다가 갑자기 실전으로 넘어가면 (귀가) 얼어버리는 이들도 있죠. 그래서 이처럼 초보 단계에서도 잠시 "맛보기"용으로 실전급을 배치한 건 수험생 입장에서 심리적으로도 참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part1에서 맛보기가 모두 열 문항이 나옵니다. 물론 맛보기일 뿐이기 때문에, 뒤에 나오는 완전 실전용 음원보다는 미세하게 느리고 더 또렷한 음원입니다.

1번은 들을 때는 하나도 헷갈리지 않았는데, 해설을 보니 원 세상에 텝스 출제진이 이처럼 머리를 써서 전략적으로 함정을 파는구나 싶었습니다. 질문이 How much do you plan to study? 인데 (a)는 "저 구석에 있는 게 더 싸."입니다. 뭔 동문서답인가 싶어서 대부분 이 선지(選支)를 제외할 수 있겠지만, 이건 질문에서 How much... 까지만 듣고 가격을 묻는 상황으로 대뜸 오해하는 이들을 노린 함정이었다는 설명이라고 하네요(별권의 p12). 이런 이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수험생들 상황이 다들 같지는 않습니다. 정말 이런 걸 어려워해서 매번 비슷한 실수를 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을 맞춤형으로 알려 주는" 이런 지적이 참으로 고맙지 않을까요?

2번을 보시면 참 어렵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분명 또렷하게 다 들리는데도 몇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게 합니다. 해설을 보니 (b)가 틀린 이유는 turn 이란 같은 단어가 나왔기 때문에 일단 제외시켜야 한다고 합니다(역시 같은 대목 p12). 텝스뿐 아니라 토익에도 맞는 요령일 겁니다. 물론 "진짜 이유"는, 시제가 과거 시제라서입니다. 이게 만약 현재 시제라면 (b)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a)가 왜 답이 안 되는 건지 궁금했는데(대다수의 수험생들은 "가장 맞는" 답을 골라야 한다는 유익한 강박이 있으므로 별 갈등 없이 결국은 (d)룰 맞혔을 겁니다), 해설을 보니 "이것은 '보모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군.' 같은 말에 대한 답으로나 알맞다."고 합니다. 다른 문제에 대해 안성맞춤일 해답이라고 해서 지금 이 문제에서는 자격이 없다는 논리는 물론 타당치 않지만, 여튼 텝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외의 감각까지 익힌 이들에게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아주 믿음직한 "수험서다운"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꿩 잡는 게 매인 법입니다. 형식논리를 따질 게 아니라, 지금 이 책을 집어드는 이들은 당장 점수를 올려야 하는 수험생들이니 그들의 니즈에 맞춰야 그게 올바른 수험서입니다. 이 해설 하나로 다른 유형의 문제까지 동시에 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이기까지 합니까. "문제도 좋지만 해설이 더욱 압권"이라는 시중의 평판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파트 원을 열심히 공부했으면 part test로 해당 단원을 마무리지어야 하겠습니다. 1번 질문이나 네 선지나 역시 놓치는 단어 없이 또렷이 들립니다. "지난 학기 이후 많이 나아졌네요?" 라고 여성분이 묻자, 남성이 답하는 (a) 선지는 "다음 번에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입니다. last semester가 문제에 나왔으니, 살짝 비슷한 말로 바꿔 쓴 next time이 들어가서 오답이라고 "수험서 다운" 해설을 붙이는 것도 가능은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해답집에 그런 식의 설명이 아니라, "왜 이렇게 성적이 낮니?" 같은 질문에 더 어울리는 답이라고 풀어 줍니다. 사실 한국의 현실에선 워낙 가식적인 문답이 많기에, 선생님이 칭찬을 해도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한다거나, "더 잘 하라는 격려로 알겠습니다." 같은 낯간지러운 패턴이 많아서, 서구식 사고에 익숙지 않으면 이게 동문서답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답인 (d)는, 우리 식으로는 너무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죠 ㅎㅎ ("아 정말요? 그 말 들으니 기분 최고네요.")

신유형이 대폭 출제될 파트 4와 파트5는 문장이 길고 주제도 전문적, 복합적일 뿐 아니라 속도가 빠르기도 합니다. 파트테스트의 첫째 문제는 인체의 혈액 순환 체계를 발견한 윌리엄 하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와 내용도 어렵고 빠른데 이걸 다 어떻게 알아듣지 하고 긴장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질문을 일단 두 번 (성별을 바꿔 가며) 들려 주는 데다, 묻는 내용이 "요지가 무엇인가?" 정도의 저난도이므로,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a)라는 답을 맞힐 수 있었을 겁니다. 단, 소위 "르네상스 닥터(혹은 의약학)"라는 게, 흑사병 등의 창궐과 시기가 맞으므로 우리가 흔히 아는 14, 5세기보다 조금 더 늦은 시기입니다. 또, 하필 예로 든 인물이 윌리엄 하비 한 사람뿐이었므로, (b)인 "윌리엄 하비의 생애와 경력"으로 오답을 고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파트 1에서 5까지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게 1부입니다. 이 리스닝 기본서에는 2부도 있는데, 이 2부는 문제유형별 공략(1부)이 아니라, 대화 주제 및 담화 유형별 공략 체제입니다. 같은 리스닝 문제를 놓고 이처럼 방향을 바꿔서 접근하는 방법을 또 제시하니, 수험생 입장에서 훨씬 입체적으로 시험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역사를 시대순으로 한번 공부하고, 다음에는 제도사, 문물별로 다른 각도에서 파고드는 거나 비슷하다고 할까요.

2부 course 5에서 다루는 상황은 "병원"입니다. come down with는 요즘 텝스뿐 아니라 타 시험 영어 과목에도 부쩍 자주 출제되는(그래서 수험생들 사이에 유명해진[?]) 숙어이죠. 이 뒤에는 flu라든가, 여기서처럼 fever 같은 가벼운 증상이 자주 따라옵니다. "나 열이 있는 것 같아."라고 하니까, 여자가 (a) 의사는 뭐래? 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느낌으로는 답이 될 듯도 한데, 텝스 유형에서는 뻔한 오답입니다. 해설(별책 p219)에서는 "나 어제 인후염 때문에 병원에 갔더랬어." 같은 말 뒤에나 오기 어울리는 반응이라고 하네요. 타당하죠. 이 대목 해설은 재미있는 게, (d) "문제 없어." 같은 건, "열이 높은데도 여전히 캠핑 갈거야?" 식의 질문에나 어울리는 선지라고 합니다.

문제도 좋지만 해설이 진짜 볼만한 해커스 뉴텝스 기본서. 아무래도 기본서이니만치 문제의 상당량은 쉽게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방심 마시고, 이런 기본서에서 문제 몇 개 답을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진짜 실력을 키워 나가는 과제가 더 시급하다고 항상 긴장을 해야 합니다. 해설 한 문제분을 보고서도 다른 문제 서너 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돕는 참고서, 그냥 순서대로 착실히만 풀어 나가도 어느새 시험 체질이 나도 모르는 새 길러져 있는 이런 좋은 책을 만나는 게 참 행운입니다. 사이트에 방문하셔서 받아쓰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단어장 pdf(리딩은 당연하고 리스닝 책에도 이 부록이 따로 제작되어 있어요)도 다운 받으셔서, 책의 계획에만 편히 몸을 맡기고 열공하시기 바랍니다. 시중에 무수히 나온 게 그 책이 그 책 같아도, 공부를 보람차게 끝내고 성과를 맛 본 사람만이 이런 좋은 책의 진가를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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