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이 쌓아간다. 한껏 키를 키우더니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오랫동안 속내를 드러낸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묵묵히 불을 밝혀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그리움으로 속앓이하는 누이를 닮았다.

애써 가꾼것도 아닌데 뜰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두번째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터에 들어온 것이 네가 먼저인지 내가 먼저인지는 알 수도 궁금하지도 않다. 그렇게 있는동안 눈맞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좋다.

산과 들, 습기가 있는 곳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추서며, 잎은 마주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으며, 잎자루도 없다. 꽃은 6-8월에 줄기 위쪽의 잎겨드랑이에 층층이 돌려나며, 입술모양의 닮은 연한 자주색을 띤다.

석잠풀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한방에서 비롯된다. 석잠石蠶은 한방에서 날도래 애벌레를 지칭한다. 석잠풀의 희고 긴 땅속줄기의 덩이뿌리가 석잠의 몸통을 닮았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연유가 궁금한 '설원의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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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바위취
남덕유산을 오르는 지친 몸을 환영이라도 하듯 반짝거리던 모습으로 처음 만났다. 이후 가야산과 덕유산 향적봉 정상 바위틈에서 만나면서 반가움으로 눈이 반짝인다. 올해는 경북 어느 계곡에서 만났다.

하늘의 별이 땅으로 내려와 꽃으로 핀 듯하다. 유독 작으면서도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 모양이 꼭 그 별을 닮았다. 하얀 꽃잎 사이에 꽃술도 나란히 펼쳐진다. 험한 환경에 자라면서도 이렇게 이쁜 모습으로 피어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바위취는 바위에 붙어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바위취는 작은 바위취라는 뜻이라고 한다. 국내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비슷한 종류로 바위떡풀이 있는데 잎이 심장형인 것과 꽂 모양이 다르다.

높은산 그것도 바위에 붙어 살면서도 이쁜 꽃을 피우기까지 그 간절함을 귀하게 보았다. '절실한 사랑'이라는 꽃말로 그 수고로움을 대신 위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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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으로 쌓였다.
바람이 지나가는 틈으로 빗물도 스며들었으리라. 그 품에 들고났던 새들의 노랫소리 또한 끊이지 않았고 드문드문 사람의 발자국 소리도 들었으리라.

칠흑같은 어둠 무기력, 새벽의 고요, 해뜨는 시간의 설렘, 별이 총총한 밤하늘의 고독, 뜨거운 햇볕과 차가운 눈보라의 열정. 어느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나무의 안과 밖에 흔적을 남겼으리라.

거부할 수 없었던 시간의 무게가 자신을 키위온 힘이었다. 내어준 만큼만 받아들었고 버겁지 않을 만큼의 틈을 내었다. 시간이 전하는 말에 귀기울었고 내면의 울림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다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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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여로
여름 숲 길을 걷다 보면 가느다란 줄기가 우뚝 솟아 작은 꽃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식물을 만난다. 한껏 키를 키운 풀 속에서 그보다 더 크게 솟아나 꽃을 피운다. 자잘한 꽃 하나하나가 앙증맞다. 모여피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여로, 이름은 익숙한데 꽃은 낯설다. 여로藜蘆는 갈대같이 생긴 줄기가 검은색의 껍질에 싸여 있다는 뜻이다. 밑동을 보면 겉이 흑갈색 섬유로 싸여서 마치 종려나무 밑동처럼 생겼다.

여로의 꽃은 녹색이나 자주색으로 피는데 붉은색으로 핀 꽃을 붉은여로라고 한다. 꽃의 색에 따라 흰여로, 붉은여로, 푸른여로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곳 남쪽에서는 붉은여로를 보지 못했다.

여로라는 이름이 낯익은 이유는 1970년대 초반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여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땅 속에서 줄기를 곧장 키워 여름을 기다려 꽃을 피우는 여로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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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높아지는 하늘에 마알간 볕이 가득하다. 가을 햇살의 속살거림이다. 이 햇살로 긴 여름을 건너온 수고로움이 영글어갈 것이고 끝내 못다한 아쉬움은 다가올 시간에 기대어 다음을 기약할 것이다.

가을로 가는 숲의 개운함이 이 햇살 덕분임을 아는 것은 떨어지는 도토리를 기다리는 다람쥐만은 아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 벚나무 잎의 하늘거리는 잎이 먼저 알고서 마지막 몸부림을 하고 있다. 그 속내가 단장을 마무리하는 날 가을은 그 빛으로 무르익는다.

밤마다 한층 더 깊어지며 늘 새로운 아침을 맞게하는 하루하루가 참으로 고마운 시절을 산다. 덥고 춥고의 경계가 이웃하여 어느쪽으로도 넘치지 않고 낮과 밤이 서로를 부둥켜안아도 그리 부끄럽지도 낯설지 않다.

지나온 발자국 위에 마알간 볕이 쌓여 뒤돌아보지 않고도 나아갈 길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이 때 비추는 너그러운 햇살 때문이다. 그 볕으로 인해 무엇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간, 가을 속으로 한발을 내밀었다.

9월 첫날, 가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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