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삼등文有三等

文字有三等. 上焉藏鋒不露, 讀之自有滋味. 中焉步驟馳騁, 飛沙走石. 下焉用意庸庸, 專事造語.

글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상등은 예봉을 감춰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읽고 나면 절로 맛이 있는 글이다. 중등은 마음껏 내달려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튀는 글이다. 하등은 담긴 뜻이 용렬해서 온통 말을 쥐어짜내기만 일삼는 글이다.

덤덤하게 말했는데 뒷맛이 남는다. 고수의 솜씨다. 온갖 재주와 기량을 뽐내며 내디디니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튄다. 잠깐 사람 눈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별 내용도 없이 미사여구를 동원해 겉꾸미기에 바쁜 글은 억지 글이다. 자기만 감동하고 독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글에 힘이 붙는다. 절제를 알 때 여운이 깃든다. 여기에 나만의 빛깔을 입혀야 글이 산다.

*정민 교수의 책 '석복惜福' 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송나라 때 장자(1153~1221) 가 엮은 '사학규범仕學規範' 중 작문에 관한 글을 인용하고 있다.

글의 힘의 있고 없음은 우선 글쓴이에게 달렸다. 책을 읽다보면 쉽게 읽히면서도 글이 갖는 무게로 인해 저절로 감탄하는 글을 만나는 경우는 대단한 행운이다. 그만큼 좋은 글을 만나기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글 역시도 읽는 이의 준비 정도에 의해 전달되는 무게는 달라진다. 이 둘의 조화로운 만남을 위해 주로 읽는 처지에 있는 나 부터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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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1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민 교수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미처 몰라 지나쳤던 도서 <석복>을 찜합니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날은 찬비를 맞았시니 얼어잘까 하노라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평양기생 한우寒雨를 보고 첫눈에 반한 속내를 드러낸다. 벼슬이나 권력에 연연하지않고 패기 넘치는 호남아답게 거침이 없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자리

원앙 침 비취금을 어데두고 얼어자리

오날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한우寒雨 역시 한술 더뜬다. 재색을 겸비하고 시문에 능하고 거문고와 가야금에도 뛰어나며 노래까지 절창인 기녀답게 은근하지만 속되지 않다.

주는 이나 받는 이가 마음이 맞았으니 여기에 무엇을 더하랴.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멋이 아닐런지. 비로소 손끝이 시리고 코끝이 찡한 겨울다운 날씨다. 겨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려는 하늘의 배려가 아닐까.

김용우의 '어이얼어자리'를 듣는다.

https://youtu.be/edrQUe1Dh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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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마음 길

마음에도 길이 있어

아득하게 멀거나 좁을 대로 좁아져

숨 가쁜 모양이다.

갈 수 없는 곳과, 가고는 오지 않는 곳으로

그 길 끊어진 자리에 절벽 있어

가다가 뛰어내리고 싶을 때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도 문이 있어

열리거나 닫히거나 더러는 비틀릴 때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도 항아리 있어

그 안에 누군가를 담아두고

오래오래 익혀 먹고 싶은 모양이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

달그락달그락 설거지 하고 있는 저녁

일어서지 못한 몸이 따라 문밖을 나서는데

마음에도 길이 있어 나뉘는 모양이다.

*김재진 시인의 시 '마음 길'이다. 넓기는 하늘을 품기에도 넉넉하고 좁기는 바늘 꽂을 틈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던데 늘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양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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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時宜適切'
정성이다. 시간을 겹으로 쌓아온 결과이기에 순리로 받아 들인다. 적절한 때에 각기 다른 감정과 의지가 만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을 포함하고 있다. 때에 맞춰 준비되는 무엇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수고로움이다.

겨울이라지만 어디 곳에는 푸르른 빛을 놓지 않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알맞은 공간에서 적당한 조건에 이를때까지 견디거나 준비한 결과물이고, 다음으로 건너갈 과정에 충실한 모습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준비하되 시의적절한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순리와 요구에 의해 생겨나는 그 때를 놓칠때 일어나는 것이 허전함이며 외로움이고 결국, 마음 다하지 못하였다는 후회다.

그러기에 몸과 마음이 원해서 스스로 내는 내면의 울림에 무심할 일이 아니다. 살아오는 동안 몸과 마음이 보내는 그 신호를 소홀히 여겨 낭패보았던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제는 그 내면의 울림에 답하여 자신을 돌봐야할 때다.

어쩌면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급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심장이 내는 울림에 귀기울여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고 숨을 쉬어야 적절한 때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차고 마른 바람이 불어 온다. 이것 역시 과정을 건너는 필요충분 조건이기에 기꺼이 맞이한다.
꽃피울 봄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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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벚나무

가을에 피는 벚꽃이라 생소하지만 이상기온으로 피는 것이 아니란다. 꽃을 좋아하는 이들 모두 특별한 꽃이나 변이된 꽃의 모양, 색 등에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 이런 마음이 봄과 가을에 두번 씩이나 피는 꽃을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닌가 싶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핀 꽃에 신기하기는 하다. 단풍놀이 왔다가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 벚꽃 아래서 신기해하는 것 또한 볼거리 중 하나다.

국가표준식물 목록에 춘추벚나무는 춘추벚나무(Prunus subhirtella), 아우툼날리스(Autumnalis) 등 4종이 등록되어 있다고 하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영국에서 들어와 천리포수목원을 시작으로 원광대, 광릉수목원, 진해 농업기술센터 등에 보급되었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한다. 부안 내소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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