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냉기를 품은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풀어진 웃깃을 여미면서도 그리 싫지는 않다. 그저 지금이 겨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같아서 찬바람이 오히려 반갑기만 하다.

꽃에 앉아 계절을 건너온 이야기를 전하는 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바람 끝에 도착한 안부에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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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살나무
때를 놓치고 보지 못한 꽃이 한둘이 아니다. 시나브로 꽃놀이를 다니지만 볼 수 있는 꽃은 한정되기에 늘 놓치게 된다. 이렇게 놓친 꽃에 대한 아쉬움이 고스란히 열매로 집중되는 식물이 제법 많다. 이 나무도 그 중 하나다.

여름에 피는 꽃을 놓친 이유 중에 하나는 연한 자주색으로 피는 조그마한 꽃이 잎 속에 묻히는 것도 있다. 마주나는 잎 겨드랑이에서 피기에 유심히 봐야 보이는 꽃이다.

작살나무의 가지는 정확하게 서로 마주나기로 달리고 중심 가지와의 벌어진 정도가 약간 넓은 고기잡이용 작살과 모양이 닮았다. 작살나무라는 다소 거친 이름이 붙은 이유라고 한다. 비슷한 나무로 좀작살나무가 있는데 꽃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지만 열매를 보면 금방알 수 있다.

단풍 들어 산도 그 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요란한 때를 지나고 나서야 주목을 받는다. 그 틈에서 보이는 열매들이 초겨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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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소'

겨울 첫날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다.

소素=맑다. 희다. 깨끗하다.

근본, 바탕, 본래 등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자리가 항백恒白이다.

겨울의 첫날이 가슴 시리도록 푸른하늘이다. 손끝이 저린 차가움으로 하루를 열더니 이내 풀어져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푸르름을 그대로 품었다. 맑고 푸르러 더욱 깊어진 자리에 명징明澄함이 있다. 소素, 항백恒白을 떠올리는 겨울 첫날이 더없이 여여如如하다.

素소,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첫자리에 글자 하나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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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국
스스로를 물들어 그 넘치는 향과 멋을 전하고 싶은 걸꺼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잎 떼어내 입에 넣고 살그머니 씹어 본다. 쌉쌀함 다음에 단맛이 입안에 오랫동안 머물며 그 맛을 기억하게 한다.

너 피었으니 올해 꽃놀이도 이제 막바지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하여, 이후로 만나는 모든 꽃에 더 오랫동안 눈맞춤 한다.

감국은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내 사는 곳 주변에서는 볼 수 없어 바닷가에서 첫눈마춤 하였다. 옹색하기 그지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바다를 향해 노오란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모양, 색, 꽃 피는 시기 등에서 감국과 거의 흡사하여 구분이 쉽지않은 '산국'이 있다. 꽃의 크기, 탁엽의 유무, 쓴맛의 차이 등으로 구분하나 두 꽃의 실물을 보면 쉽게 구분이 될듯도 싶다.

국화의 원조인 노란 들국화인 감국(甘菊)은 단맛이 나는 국화라는 뜻이다. 향기가 좋아 꽃을 먹기도 하며, 10월에 꽃을 말린 것을 차나 술에 넣어 먹기도 하고, 전을 부쳐서 먹기도 한다.

'가을향기', '순순한 사랑' 등 다양한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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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가지를 건너와 뺨을 스치는 바람결에 온기가 가득하다. 파아란 하늘, 살랑거리는 바람에 화창한 볕이 주는 가을날의 마지막 몸짓이 한없이 사랑스럽다.

누구의 흔적일까. 볕 좋은 날, 소나무 숲 오솔길을 걷다 만난 가벼운 몸짓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 가는줄 모르고 앉았다. 품을 벗어나고도 머뭇거림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아쉬움으로 서성거렸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머뭇머뭇 더디가는 가을을 재촉할 이유가 없듯이 오는듯마는듯 주춤거리는 겨울을 부를 이유도 없다. 지금 이 볕이 주는 온기를 담아두었다가 섣달 눈이 오는 날 가만히 풀어 내면 그만이다.

이제서야 가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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