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煮茗香 자명향

呼兒響落松蘿霧 호아향락송나무

煮茗香傳石徑風 자명향전석경풍

아이 부르는 소리는 송나를 스치는 안개 속에 들려오고

차 달이는 향기는 돌길의 바람을 타고 전해오네.

*진각국사가 스승인 보조국사가 있는 억보산 백운암을 찾아 갔을 때, 산 아래에서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 읊은 시라고 한다.

송나松蘿를 쓴 스님의 모습에는 이미 차향 가득할테니 들고나는 모든 소리 역시 차향이 배어있으리라. 차 달이는 향기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찾아본 글귀다.

꽃이 떨어지는 것은 땅 위에서 한번 더 피려는 것이다. 꽃 떨어진 자리에 바람이 일어 다시 피어난 꽃에 숨을 더한다. 물에도 젖지 않은 꽃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그리운이에게 마음을 담아 '헌화가'를 부르기 위함이다

자명향 煮茗香,

'차 달이는 향기'를 볼 수 있다면 헌화가를 부르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진 자리에 꽃향기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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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슬픔은 그날로 끝났고 그날의 즐거움도 그날로 끝났다"

*문장 하나에 걸려넘어진다. 정채봉 선생님의 "눈을 감고 보는 길"이라는 책의 머릿말의 일부다. 우연히 내게 온 오래된 이 책은 초판본이 2001년이니 20여 년을 건너와 손에 들어온 셈이다. 다시 새로운 글로는 만나지 못할 일이기에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 여긴다.

내게 화두 처럼 함께해 온 생각과 맥이 통하는 단어나 문장을 만나면 바짝 긴장하거나 반대로 한없이 풀어지는 기분을 경험한다. 이제는 단어나 문장을 벗어나 그런 기분을 느끼는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다.

"가슴에는 늘 파도 소리 같은 노래가 차 있었고 설혹 슬픔이 들어왔다가도 이내 개미끼리 박치기하는, 별것 아닌 웃음거리 한 번에 사라져 버리곤 했다."

머릿말에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다. 선생님은 바다를 처음 본 그것도 동해바다의 특별한 느낌을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이제 바다의 넓고 깊은 품에 안겨계실까?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을 소망한다'

어디서 차용한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하루에도 여러번씩 되뇌이는 이 문장이다. 위의 정채봉 선생님의 문장과 그 맥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날의 슬픔은 그날로 끝났고 그날의 즐거움도 그날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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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쌓여 키워온 마음이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안으로만 안으로만 쌓아둔 속내가 더이상 어쩌지 못하고 비집고 나온 것이리라. 연노랑 꽃잎을 마저 열지도 못하면서 고개까지 떨구었지만 의연함을 잃지는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숨죽여 내리는 비라도 쌓이면 망울지게 마련이듯 감춘다고 해도 감춰지지 않은 것들이 부지기수다.

들키면 안될 무엇이 있는 것일까.

소리도 없는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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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들어가고,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낮추고, 잠깐의 평화로운 순간을 위해 일찍 길을 나서며, 스치는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차를 멈추고, 지나온 길을 기꺼이 거슬러 올라가고, 신발을 벗고 냇가를 건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길을 나서는 것, 무엇이든 시선이 머무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쉽지는 않지만 못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세상을 조금 낯설게 보고자했던 이런 시도가 몸과 마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도 그 멈추지 않을 길 위에 서 있다.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이길 소망한다. 이기심의 극치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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得有汝幸矣 득유여행의

너를 얻을 수 있어 큰 행운이도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강진 유배시절이 만난 제자 황상(黃裳, 1788~1863)에게 한 말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 문하에 들기를 주저하는 황상에게 다산은 삼근계三勤戒를 써주며 배움을 격려했다. 어느 날 제자 황상이 보내온 시 한편을 읽고서 다음과 같이 그 소회를 밝혔다.

“부쳐온 시는 약간 기세가 꺽이는 듯하지만 기발하고 힘이 있는 것이 내 기호에 꼭 맞는구나(頓座奇崛). 기쁨을 형언할 수가 없구나.” “아에 너에게 축하하는 말을 전하며 나 스스로에게도 축하하고 싶구나. 제자 중에 너를 얻을 수 있어 행운이도다.”

제자가 스승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리라.

이런 관계가 어찌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만 해당하겠는가. 벗과 벗, 자식과 부모, 연인. 부부ᆢ.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사이를 표현하는 최고의 말이라 여겨진다.

등치 큰 박새 아래 보일듯 말듯 자리를 잡은 천마괭이눈이다. 위세에 눌려 빛을 잃을만도 한데 오롯이 제 빛과 모양을 유지하며 스스로 존재한다. 격에 맞지 않다고 내칠법도 한데 자신의 그늘에 넉넉히 품었다.

물이 위에서 흐르듯 인정도 다르지 않다지만, 무엇이든 일방통행은 없다. 귀하게 대하면 귀하게 대접 받는다. 내 주변을 둘러볼 기회로 삼는다.

得有汝幸矣 득유여행의

너를 얻을 수 있어 큰 행운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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