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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다'

자연스럽다는 것 속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았지만 억지를 부려 욕심내지 않은 상태를 포함한다. 또한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 시간과 동행하는 것이리라. 그 가운에 정갈함이 머문다.

나무둥치 위에 가즈러히 흰고무신 한컬레 놓였다. 뒷축을 실로 꼬맨자리가 어설퍼 보이지만 단정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닫힌 문이라지만 조심스럽게 머리 위 글귀를 따라 읽는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토방에 놓인 고무신이 정갈한 주인의 마음자리를 닮았으리라. 굳이 청산별곡을 읊조리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청산 그 한가운데 머문다.

가만히 흰고무신을 들었다. 두 손으로 가슴에 대어보고 그 자리에 놓았다. 주인의 정갈한 마음자리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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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露'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점으로 삼는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 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했다.

뜨거운 볕 아래 맥문동이 힘찬 기운으로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배경 삼았다. 여름볕과는 분명 다른 질감으로 다가오는 볕이다. 가을날의 까실함이 여기로부터 오는 것은 아닐까싶다. 그 성질이 뭇 곡식과 과일을 영글게 하는 것이리라.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라고 한다. 백로를 지나면 본격적인 가을이다. 혹, 반백의 머리로 안개 자욱한 숲길을 넋놓고 걷는 한 사내를 보거든 다 가을 탓인가 여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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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고 있다. 사명을 다하기 위한 근본 마음자리에 놓이는 것이 바로 간절함이다. 도달하고자는 곳, 이루고자는 바가 있다면 이 간절함에 의지해야 한다.

꽃은 한순간도 이 간절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한다. 그것이 모든 생명이 담보하는 숙명이다.

미루고 미루다 더이상 어쩌지 못하고 막바지에 초조감을 안고 나선 길이다. 그 길 어딘가에서 두 마음이 하나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간절함, 당신과 내가 함께 설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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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본다는 것'

가능한일일까? 사람과 사람이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 그 사람을 통째로 알아버리는 일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걸까?

감정을 담지 않고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은 객관적인 법칙에 대입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은 완고하고 수시로 변하기에 대입할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벽을 두르고 상대를 대하는 모든 행위는 그래서 애초에 그 벽을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출발한 경우와 같다. 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공정하지도 않고 또한 벽을 두른자의 일방적 감정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라는 벽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그것이라도 해야만 할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때론 이 절박함이 기적을 만들어 왔음을 알기에 그 기적에 의지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다.

해를 마주보는 것은 여전히 버거운 일중 하나다. 그렇더라도 마주보지 않으면 일생을. 한번 볼까 말까하는 명장면을 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나, 당신을 마주보고자 함은 이렇게 간절함을 보테 기적이라도 불러오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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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끝 무더위가 시작되는 어느날 이른 아침 불현듯 피었다가 한나절도 지나기 전에 시들어졌다. 고개 숙인 모습이 이토록 애처러운 것은 피었던 때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까닭이리라.

짧은 순간을 화려하게 살았다. 무너지는 것 역시 한순간이다.

체념일까. 좌절일까. 고뇌하는 모습으로 읽히는 것은 내 안의 무엇이 반영된 결과이니 결국, 나를 돌아볼 일이다.

매 순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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