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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오는 편지 - 최돈선의 저녁편지
최돈선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10월
평점 :
무엇이든 빠른 시대 느림의 미학을 공유한다
글쓰기의 완성은 산문에 있다고 한다. 다른 글과는 조금 달리 글쓴이의 진솔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삶을 살아온 시간이 넉넉한 이들의 진솔함이 담긴 산문을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위안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산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어디일까?
글을 읽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글쓴이의 얼굴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책임져야할 것이 하나 추가된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란다. 얼굴에 만들어진 주름 하나하나까지 디 자신이 살아온 흔적일 테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글에 담긴 진솔함이 글쓴이의 얼굴에서 전해지는 이미지와 닮았을 때 그 이상 더 큰 공감이 있을까? 최돈선 시인의 얼굴에서 그것을 확인한다.
그런 산문과 글쓴이를 만난다. 바로 시인 최돈선과 그의 산문집 ‘느리게 오는 편지’다. ‘너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종이 울린다’먼저 만난 최돈선 시인의 글을 통해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꾸려가는 지 공감하는 경험을 했기에 이번 산문집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를 그저 서정시나 쓰는 ‘변방시인’, 헤픈 웃음으로 자신을 희화화시키는 ‘바보시인’이라고 칭하는 시인의 감성이 묻어나는 이번 산문집은 크게 ‘그리움, 사랑, 슬픔, 아름다움’등 네 가지 주제로 삶을 통찰하고 있다.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과 추억이 깃든 고향 등에 대한 이야기, 투박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과 주변인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깊은 슬픔, 삶과 죽음에 대한 비감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삶의 구석구석에 놓인 풍경과 자연,생명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그와 나는 여간해서 전화를 하지 않는다. 우린 엽서나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근황을 알려준다. 나는 그를 아내 몰래 숨겨둔 애인처럼 생각한다. 그의 글씨를 사랑하고, 그의 진심이 담긴 글을 사랑하고, 그의 그리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달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필도 아닌 그의 글씨와 글이 그리워지면. 나는 답장을 은근히 기대하며 짧은 안부 편지를 보낸다.” -그대의 섬에서 그대를 읽네 중에서
지금은 거의 사라진 손편지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 담겼다. 다소 느긋함을 요구하는 손편지의 마음이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하는 시대와는 동떨어진 감정일지 모르나 어느 누구하나 손편지에 담긴 사람을 향한 정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담긴 글들은 바로 그런 마음을 담은 정성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특히, 최돈선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시인은 김수상 시인의 시 ‘어머니는 부픈 치마를 안고 들판에서 돌아온다’를 통해 “김수상의 시인이나 나나 어디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고 했다. 시인이 느끼는 감정에 나도 어디 하나 다르지 않다.
“편지는 그리움이고, 그 그리움을 채우는 여백이다. 편지엔 기다림이 있고 부치는 즐거움이 있다.”
본문 속에 열 두 편의 ‘저녁편지’는 바로 이제는 이미 사라져가는 편지 속에 담아온 정의 실천으로 보인다.무엇이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느리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즉각적인 피드백이 요구되는 시대이기에 가능한 필요성의 제기로 보이기도 한다. 하여, 시인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공감과 소통에도 공감을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