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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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우정이 빛나는 이야기
문학작품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중심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다. 분명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긴 한데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깊은 우정이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의도에서는 조금 벗어난 이야기일지라도 문학을 대하는 독자들의 마음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경우엔 그 작품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또한, 한 작가의 이야기 구성이 매번 비슷한 구도를 보인다면 중심내용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 어쩜 당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욤 뮈소의 작품을 세 번째 만나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이 다양한 환경에서 그려지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한편으로 작품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배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기욤 뮈소의 이 작품 ‘종이 여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위 말해 잘나가는 부류 중 인기 피아니스트와 베스트셀러 작가의 만남이 온전하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분명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가능해지는 사랑이야기 일 테니까 말이다.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사랑이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과 당당하게 나타난다면 당연하게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울분을 터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운명으로 여겼던 피아니스트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자신이 믿었던 사랑을 잃어버린 후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가고 있다.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친구를 보다 못한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친구들이 이를 돕고자 하지만 거부하고 만다. 여기에 느닷없이 등장한 여인이 있다. 바로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찾아와 자신이 현실의 세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소설 속 상상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소설을 쓰라고 강요한다. 페이퍼 속에서 살아가는 상상의 여자 빌리는 그래서 종이여자다. 우여곡절 끝에 이 둘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고 티격태격 다투는 사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종이여자 빌리의 발병으로 인해 작가와 종이여자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종이여자를 살리기 위해 결국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지게 된다. 자신을 스스로 무너뜨렸던 삶에서 구해준 종이여자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작가의 선택이다.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로운 생각의 흐름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또한 작가는 작가로써 자신이 작품을 완성해가는 동안 경험하는 심리적 변화나 갈등 등을 이 이야기 속에서 적절하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 줄의 글을 쓰기위해 얼마나 고심하는지, 그 글 속에서 작가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이며 그 고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던 작가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정적인 반전은 작가의 친구들에게 있다.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키워왔던 세 사람은 작가에게 마음속 빚을 가지고 있다. ‘친구는 우리한테 달린 날개가 나는 방법을 잊었을 때 우리를 들어 올려주는 천사 같은 존재다’라는 말처럼 작가를 향한 친구들의 우정은 눈물겹도록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된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며 찾았던 ‘다른 이야기’가 바로 이 세 사람이 보여준 우정이었다. 작가의 친구 두 사람의 결혼식장에서 증인으로 인사말을 마친 작가에게 친구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 놓으며 종이여자 ‘빌리’는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이며 나락에 떨어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고백을 받고 당황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기욤 뮈소의 작품에는 종종 한국관 관련된 사람이나 장면이 등장한다. 진심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지는 모르지만 우선 반가움 마음이다. 낯선 외국 여행길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반가운 마음이랄까? 또 다른 흥미거리는 책의 여행이다. 그 책이 낯선 사람, 다른 장소를 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차창을 통해 지나가는 낯선 풍경처럼 가까운 풍경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참으로 많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독자 자신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밝혀줄 지혜를 얻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마다 사랑을 이야기 하는 방식이 다르고 깊이 또한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공감을 느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날기를 잊어버린 친구를 들어 올려주는 마음’ 이는 종이 여자가 수렁에서 작가를 건져냈던 마음과 통하는 무엇이 있다. 그것을 사랑으로 부른다면 작가의 작품 속에 담아둔 속내를 옳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 보다는 우정이 앞서는 따스한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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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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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숨겨진 자아를 직면하는 일이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빼면 남는 것이 있을까? 시대와 장소,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정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에 의해 인생의 희노애락이 파도처럼 넘나들기에 한 순간도 사랑을 떠나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 아닌가 싶다. 사랑이 포괄하는 다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성에 대한 구체적 감정에서 사랑의 본질을 찾는 것이 사람들이며 그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야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지만 그 사랑의 본질은 변함없이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사랑의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모습을 잘 그려내는 작가의 글을 만날 때 독자들은 자신의 사랑의 모습을 돌아보며 공감하거나 아파하거나 때론 이건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이성을 향한 사랑의 본질 앞에선 모두가 공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기윰 뮈소의 작품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이후 두 번째 만난다. 이 작품 역시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중심이다. 프랑스 출신이자 소르본법대를 졸업하고 사회 경험과 영어를 더 습득하기위해 미국에 온 마르탱과 버클리 대학생 가브리엘의 운명적 사랑에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가브리엘 아버지의 비밀적인 개입이 가미된 다소 혼란스러운 이야기 전개가 진행된다. 대서양을 건너에 두고 먼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는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거리만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사랑이다. 프랑스에서 삶을 살아가던 마르탱은 자신의 모든 건 편지를 보내고 뉴욕으로 가 사랑에 대한 희망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뉴욕의 추운 겨울바람뿐이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여전히 운명의 상대자로 자리 잡은 사랑은 어쩌지 못한다. 작가의 꿈을 접고 경찰에 투신에 마르탱이 집착하는 범인 추적은 세계적인 그림 절도범이다. 그 범인이 자신과 13년 전 잃어버린 사랑을 이어주는 음모라는 것을 모르고 범인을 잡기위해 미국에 오게 된 마르탱은 가리브엘을 만나 오랜 감정의 묵은 실마리를 풀려고 하지만 범인이 가리브엘의 아버지임을 알고 일이 다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다. 13년을 건너 두 사람이 풀어가야 할 숙제는 꼬이기만 하는 것이다. 범인이자 가리브엘의 아버지인 아키볼드 맥린과 숙명적 대결을 펼치는 과정에서 다리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나란히 눕게 되고 이후 사랑의 무한한 힘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사랑이 공존하고 있다. 가브리엘이 선택한 남자 마르탱과의 사랑과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두 남자에 대한 사랑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이 둘의 조합이 그리 어색한 것은 아니다. 이 세 사람은 무두 두려운 대상이 있다. ‘자신의 과거, 깊숙한 곳에 숨겨진 자아와 두려움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며 숨겨진 자아와의 대면을 피하게 된다. ‘인생이란 참으로 묘하지 않니? 잘못한 일이 전혀 없는데도 마치 형벌을 받는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처럼 생각하며 그렇게 본질에서 벗어난 피상적인 모습들에 몰두하게 되고 문제는 풀리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는 조금 다른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벗은 인생의 행복을 전해주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때론 혼자 감당할 일도 있다는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랑을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이다.’며 그 사랑을 지키려는 강렬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지만 사랑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받는다는 건 때로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지.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우리 인생에서 신은 간혹 나쁜 때를 골라 좋은 사람을 보내준 단다.’ 

자아를 직면할 용기가 없어 흔들리는 동안 사랑은 힘들고 곤란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럴 때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자신을 내 보일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의 나쁜 때 나타나는 천사가 그 대상이며 사랑이리라.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자아를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사랑은 곧 삶의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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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광나치오 -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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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살아가는 동안 몇 사람이나 알고 지낼 수 있을까?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오지만 정작 잘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은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또 내가 알거나 서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기에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이다 보니 사회 곳곳에 숨어 자신의 분야에서 우뚝 선 업적을 남기고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한 분야에 우뚝 서있지만 제도권 안에 들지 않은 사람들을 ‘방외지사’라 부르며 그들을 찾아내고 살아가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조용헌이라는 사람의 ‘방외지사 -우리 시대 삶의 고수들’을 통해 우리시대 함께 살아가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숨은 매력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문화부흥기로 평가되는 시기인 18세기에도 오늘날 ‘방외지사’로 불리는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으며 그들의 흔적을 문헌을 찾아내 알려주는 것이 이 책 ‘벽광나치오 :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이다. 저자 안대회는 이백여 년 전, 남들은 뭐라 하든지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하여 드높은 새 경지를 개척한 중세의 사람들을 찾아낸 그들을 ‘벽광나치오’로 부르며 인물들을 조망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벽광나치오’는 벽(癖, 고질병자), 광(狂, 미치광이), 나(懶, 게으름뱅이), 치(痴, 바보), 오(傲, 오만한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질병을 못 고치고, 어딘가에 미쳐 있으며, 게으르고 바보 같으며 오만한 자들이라는 사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발굴하고 당시 그들이 대두되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비롯하여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망하며 현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볼 때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백 가지 기술을 한 몸에 지닌 만능 지식인 정철조’,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붓끝에서 태어난다 최북’, ‘검무로 18세기를 빛낸 최고의 춤꾼 운심’, ‘세상의 책은 모두 내 것이니라 조신선’, ‘세속의 소란을 잠재운 소리의 신 김성기’, ‘자명종 제작에 삶을 던진 천재 기술자 최천약’, ‘승부의 외나무다리를 건너 반상의 제왕에 오르다 정운창’, ‘천하의 모든 땅을 내발로 밟으리라 정란’, ‘번잡한 세상을 등진 채 꽃나라를 세운 은사 유박’, ‘그래, 나는 종놈이다 외친 천재 문인 이단전’, ‘신분의 경계를 뛰어넘은 희대의 공연예술가 탁문한’ 등 총 열한명의 방외지사들이 등장한다. 모두 18세기 조선의 문화부흥기를 이끌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공통점이 보인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미천한 신분이 주를 이룬 것이나 경제적 궁핍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스스로에게 자부심과 투철한 자의식,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열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최북이 자신의 눈을 찌른 일, 김성기가 악기를 던져버린 일같이 권력에 빌붙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힘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벽광나치오’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주인공들은 18세기 조선시대를 주름잡았던 양반사대부들이 아니다. 그들은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약자들이지만 신분적 한계를 과감하게 돌파하고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로 기술자, 화가, 춤꾼, 책쾌, 음악가, 여행가, 원예가, 문인, 공연예술가들이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튼튼한 바침이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피지배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온몸으로 보여준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배계층이 누렸던 문화의 생산자란 사실이다.


이 책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당당했던 삶을 살아간 그들을 발굴하고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조선사회가 성리학이라는 학문에 매어 단조로운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이런 사람들의 역동적인 활동에 의해 찬란한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의 사람에게 흥미를 갖는 것은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무엇이 현실의 요구를 벗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적 관심사나 자신의 안일을 돌보기보다는 내면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고난의 길임을 알면서도 ‘무리와는 다른 짓 하는 놈’들의 삶이 흥미로운 점은 그 고난을 극복한 용기와 열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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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 - 죽을 듯 사랑해 결혼하고 죽일 듯 싸우는 부부들의 외침
이주은 지음 / 예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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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살면 달라질까?
가보지 않은 길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될 때가 아닌가 싶다. 누가 보더라도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기회가 있을 때 바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뭔지 모를 기대감 속에서 그 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가지 않았기에 생각 속에만 있는 길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업의 세계에서, 만나왔던 사람들 속에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위치 등은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고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한 근거 중 ‘가족’이라는 이름 속에서의 자신을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바로 가족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한 가족의 중심은 ‘부부’다. 

‘나는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 이 책은 이런 특별한 관계인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도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여 ‘부부관계’를 끝내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심각한 이야기다. ‘가족’에는 부부를 기본으로 아이들과 부부의 양쪽 집안이 포함된다. 이러한 관계가 가족의 중심이 되는 부부사이에 끼어들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바로 그러한 부부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부부 문제 상담 전문가가 바라본 내담자들의 이야기다. 부부를 둘러 싼 시댁과 친정이라는 또 다른 가족, 각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부부 사이, 살아온 환경의 차이로 시작되는 성격의 차이, 성(性)의 문제 등에서 비롯된 갈등이 폭력이나 배우자를 무시하거나 외도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겪는 심각한 심리적 갈등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 서로의 이야기가 자신의 입장에서 보여 지고 때론 한 사람의 입장만 드러나기도 한다.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가 함께 또는 혼자 찾아와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속속들이 담겼다. 갈등을 일으킨 문제의 현상에서 본질의 문제로 접근해가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 중심은 부부다.

그래도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원수처럼 미워하고, 죽일 듯 싸우고,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했나 등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 출발이 사랑으로 시작했기에 그 부부들은 그래도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다시 사랑하며 살고 싶은 마음으로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기에 희망의 싹을 안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심화된 갈등의 현재적 심정의 극단적 표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방법은 문제의 근본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경험이 교훈이 되어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시각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재혼을 한 사람들도 같은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것을 보면 대상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담자는 말하고 있다. 문제를 직시하고 함께 해결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를 다른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부사이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 즉, 집안 대 집안의 만남이 아니라 한 남자의 여자의 결합이라는 인식의 전환의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한 인간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무엇이 있다면 상대방도 원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친구가 부부라는 마음이라면 많은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과 살면 달라질까? 갈등을 일으킨 출발점으로 돌아가자. 내가 가진 인식의 한계나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고 상대가 바뀐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지금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를 생각하는 마음에 스스로 설정한 벽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상담사례는 지금 당장 심한 갈등에 직면한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돌아보게끔 하고 있다. 시작한 출발점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서로의 마음을 비춰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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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정옥자 지음 / 문이당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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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의 힘으로 본 역사와 현실
우리 악기의 소리가 좋아서 대금공부를 시작한지 4년째에 접어들었다. 함께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분들로 일선에서 물러난 분들이다. 공직이나 교직 등 자기사업을 하셨던 분들이 나이 들어서 이제는 자신의 삶의 여유를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만남이 이어지면서 그분들이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인생의 후배로써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선배들의 조언이니 앞으로 나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참고로 삼을 수 있어 좋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어떤 삶을 살아야 나이들어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로 모아지게 된다. 연륜이란 그래서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그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한 교훈이기 때문이리라.

이 책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는 바로 그런 분의 이야기다. 대학교수로 학생들과 살아온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그래서 인생의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선배의 따스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것도 자신의 전공분야였던 조선의 역사를 속에서 찾았던 ‘선비’들의 삶과 관련 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와 현재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저자의 글 속에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 정옥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자의 전공분야는 ‘조선 후기 중화사상 연구’였기에 그 시대를 살아간 선비들에게 주목했고 그들의 삶을 통해 오늘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에세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크게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화이부동을 꿈꾸며’에서는 교수가 된 시점부터 역사학자로 바라보는 사회현상에 대한 생각이나 학생들과의 교류 등 교수이자 학자이며 여성으로써 우리의 현대사를 보고 경험하는 과정에 대한 단상이 중심적으로 그려진다. 2장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에서는 역사학자의 눈으로 본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다. 전통적 가치의 하락의 문제, 외세 의존적인 문제해결 경향성 등을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속에서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다. 저자는 그 중심에 ‘선비’가 있다. 선비들이 보여준 투철한 정신과 시대의 지식인으로써의 역할 등을 강조하고 있다. ‘왜 지금 ‘정조학’인가?‘라는 3장에서는 자신의 전문분야와 현실을 직접적으로 관계 맺기를 한다. 조선의 중화사상의 배경과 더불어 조선 후기 서민문학이 가지는 의의,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수기치인’의 청백리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살피는 조선의 힘은 ‘문치주의’가 가능했기 때문이라 파악하며 존선 후기 정조의 업적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 인자로 면면하게 유전되고 있는 선비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정신적 자산이고 다가오는 평화의 시대, 문화의 시대에 꼭 필요한 한국적 리더십이라 생각된다.’

학자로, 교수로, 관리로 살아온 경험에서 우러나는 그의 삶의 지혜는 결국 과거는 흘러가버린 지난 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갈 배경이며 미래를 희망으로 이끌어갈 힘이라는 점이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와 우리 것을 지켜나갈 힘은 결국 역사 속에서 오늘의 우리 모습을 재점검하고 바로잡아 미래를 재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연륜이 묻어나는 저자의 글에서 나라와 민족, 그리고 후학들에 대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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