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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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과의 단절 그리고 소통을 생각 한다 
갇힌다는 것은 대부분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감금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더불어 살아야 할 모든 것들과의 단절을 의미하기에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고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기에 상상으로만 공감한다는 것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소설과도 같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실로 벌어지고 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들이 매일 벌어지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룸 Room의 이야기 구성은 간단하다. 열아홉 살 한창 미래를 꿈꿀 나이의 소녀가 납치되어 7년을 감금 상태에서 생물학적 생존에 필요한 것들에 의지해 살아왔다. 7년이 흐르는 동안 첫아이의 유산 이후 태어난 아이와 엄마가 된 소녀가 헛간과도 같은 작은방이 세상의 전부인양 살아오다 탈출한다. 이후 자신을 가둔 사방의 벽을 탈출했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치며 엄마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섯 살 아들은 주춤거리며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갇힌 방에서 태어나 갇힌 방이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는 엄마와 낡은 텔레비전 그리고 다섯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우주를 형성해 간다. 조금씩 사고의 폭이 넓고 깊어지면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단지, 그냥 이상한 일일뿐이고 그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는 늘 밖의 세상으로 탈출을 꿈꾸며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지만 벽에 늘 좌절한다. 

‘방’은 각기 다른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엄마에게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상과의 강제적인 단절의 상징이지만 아들에게는 그것이 전부나 마찬가지인 온전한 세상이라는 차이가 있다. 또한 그 ‘방’은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을 지를 상상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저 상상 속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 룸이 보여주는 강점은 바로 이 ‘방’에 대해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대한 각자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밖의 세상에 대한 사전 준비 없이 탈출한 두 사람, 엄마와 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보여 진다. 세상의 편견과 오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엄마와 세상의 많은 것들은 재방송 같았다는 아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국 자신을 가두었던 공간이 ‘방’에서의 진정한 탈출, 이것은 그 ‘방’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일 것이다. 그것을 어린 다섯 살의 아들이 엄마의 손을 이끌고 이뤄가고 있는 모습이다. 

룸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 발생했던 감금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라고 한다. 2010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살벌한 풍경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오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도 많다. 하지만 사후 약방문에 그치고 마는 그러한 것들 보다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구조적 대안의 마련뿐 아니라 피해자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주변의 손길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다섯 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자신이 갇혔던 ‘방’과 방 밖의 ‘세상’이 어쩌면 현대인이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다름 아닌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만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그것이 고독과 소외의 원인인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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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 vs 중국황제 - 시대를 뛰어넘는 권력의 법칙
신동준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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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한다. 이미 권력을 가진 자들은 지키지 위해 그렇지 못한 자들은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권력의 정점은 최고 권력자의 자리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봉건시대에는 왕으로 민주주의 시대에는 대통령이나 수상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지워진다. 무소불휘의 자리라고도 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그 시대의 정치권력의 양상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관심의 집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권력도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기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진행형의 권력의 모습을 보려면 지난 역사 속에서 나타난 최고 권력자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와 비교한다면 보다 명확하게 권력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리라. 이러한 권력의 모습을 우리의 역사와 떨어질 수 없는 중국의 황제와 조선시대 왕들에 대한 비교 분석을 통해 권력의 정점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 발간되었다. 

중국의 명·청대와 우리의 조선시대 최고 권력에 대한 비교 분석이라는 ‘조선국왕 vs 중국황제’는 그래서 매우 흥미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데 군왕들이 보여준 모습을 비교분석하여 어떤 통치술을 보여주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군왕은 태조와 홍무제, 태종과 영락제, 세조와 선덕제, 선조와 만력제, 광해군과 청태조, 인조와 청태종, 효종과 순치제, 숙종과 강희제, 영조와 건륭제, 고종과 광서제 등 총 열 쌍에 이르고 있으며 비교 대상이 되는 각각의 군왕들이 권력의 정점에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나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과정이 양자를 비교 분석하는 형식으로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이 군왕들을 비교분석하는 기조로 군왕들이 위기를 극복해가는 리더십으로 삼고 있다. 끊임없이 위협받는 권력의 정점에서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로 자리 잡아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주었던 남다른 리더십은 역사를 그 당시 한정된 것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현실로 불러내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초석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더불어 한 나라에 국한된 분석이 아니기에 세계화가 지상목표처럼 등장한 현대사회에 더욱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왕조의 건국은 새로운 왕조를 창업한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창업이 후대로 이어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것 까지를 말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이 책에서 비교 분석하는 군왕들 중에서 제2의 창업이라 할 만한 조합이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조선군왕을 중심으로 중국의 황제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황제를 중심으로 조선군와이 비교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어 저자의 주체적 시각에 아쉬운 점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은 우리 역사와 떨어질 수 없는 중국의 역사를 비교분석함으로 그 시대 동북아시아의 정치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6자 회담을 비롯하여 동북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치를 현 시점에서 올바로 읽어가는 초석을 삼을 수도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부각시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리더십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 그리고 동북공정이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중국의 역사정책을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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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신이 맞다 - 두 번째 스무 살, 삶의 고비에 맞서는 인생 고수들의 이야기
이주형 지음, 김주원 사진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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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공은 그래도 나다
사람들은 살아가다 자신이 가장 흔들린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일까? 모르긴 해도 대부분 40을 바라볼 때가 아닌가 한다. 내 경우가 그랬다. 무서울 것 없었던 청춘을 지나며 자신과 세상과 부딪치며 정신없이 살아왔으나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가 딱 그때가 아닌가 한다.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不惑)이러 불렀던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마주치듯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기가 나이 40을 전후한 때다. 지천명(知天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도 불혹은 늘 화두처럼 나를 따라 붙는다.

불혹(不惑)이 모든 것에 미혹(迷惑)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하지만 나이 40은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가정도 자리를 잡았으며 그동안의 노력의 결과가 하나 둘 쌓여 안정을 찾을 만한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와 세상의 자극에 대해 흔들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당신이 맞다’의 저자 이주형은 두 번째 맞이하는 스무 살에 인생의 고수들을 찾아 삶의 고비를 맞서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텔레비전 문화부 기자인 저자가 ‘人터뷰’라는 코너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사회 각 분야의 대가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배운 인생의 경험을 자신의 솔직한 마음으로 털어 놓고 있다. 저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의 산 체험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인생의 고비를 넘었을까? 나보다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람들이기에 그들만의 ‘노하우’나 무슨 특별한 그들만의 ‘비법’이 있는 것일까?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박웅현, 박완서, 강효, 육심원, 고은, 조정래, 허영만, 유현아, 조훈현, 최범석, 이병헌, 임항택, 씨 킴, 박칼린, 이형택, 백성민, 배상면, 김대벽, 최종일, 송진우 등 소설가, 음악가, 영화배우, 스포츠스타, 사업가, 화가, 만화가, 사진사...... 그야말로 분야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다.

남들보다 앞서간 사람들,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숨겨진 고독과 외로움, 스스로 정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열정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바로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긴다는 점이다. 이 점이 무엇보다 큰 ‘비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난은 비난에게 맡기고 칭찬은 칭찬에게 맡겨두라. 나는 여기 언제나 변함없으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삶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 될지라도 우리들은 그 ‘남의 눈’에 자신을 온통 빼앗기고 말아버린다. 남의 눈을 잣대로 내 삶을 평가하고 의지하는 삶이되다 보니 흔들리는 삶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만다. 그런 삶이 온전히 내 삶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며 솔직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들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저란 대가들도 인생의 고비를 맞았고 그 고비마다 흔들리기도 했다는 점을 확인하며 그저 자신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벽과 고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몰라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묵묵히 걸어갔던 자신의 길에 ‘그래도 당신이 맞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것은 누가 어떤 사람의 성공이 주는 비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 내가 흔들리면서도 더디더라도 꿈을 간직한 채 쉬지 않고 걸어온 온전히 내 삶에서 얻게 되는 삶의 지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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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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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자옥,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목록이 발표되면서 그 목록에 들어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지만 그 중심에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구태의연한 발상을 하는가?’와 사상에 대한 탄압이 여전히 이뤄지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웃지 못한 해프닝은 단지 그때 그 사람들에 한정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군부독재시절을 비롯한 우리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사상 탄압의 전형이 책과 글에 대한 금지로 나타났으며 이를 반증하는 것이 국방부 불온서적목록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가진 자는 지키려하고 못가진 자는 가지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권력투쟁이 결국 인간의 목숨이 왔다갔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역사는 부지기수로 보여준다. 빌미는 바로 글로 남겨진 것들에 집중된다. 이는 말보다 글이 가지는 지속성이나 파급력에 의한 것이다. 이를 문자옥(文字獄)이라 표현하며 중국의 역사 속에서 벌어진 다양한 실례를 찾아 보여주는 책이 있다. 바로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가 그것이다.

저자는 문자옥(文字獄)이란 관리나 지식인의 글 내용 중에 황제를 비난하는 내용 등을 이유로 처벌을 받았던 것을 가리킨다고 정의하며 중국 역사를 거슬러 올라 시대별로 나타난 문자옥의 사례를 살피고 있다. 글로 남겨진 문자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거나 또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 정적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모함의 구체적 증거로 제시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경우를 찾아 그 전후 사정을 밝히고 있다. 문자옥은 역사를 거슬러 춘추전국시대까지 올라간다. 그 유명한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시작으로 청나라 말 소보사건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분서의 목적은 사상의 통제, 갱유의 목적은 왕권 수호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옥은 분명 정치권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상탄압의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민중의 마음을 대변했던 지식인들이 문자옥의 주요 대상이었다. 오늘날 지식인의 사명을 이야기할 때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현실과 미래를 살아갈 지혜를 밝히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문자옥에도 굴하지 않았던 지식인들의 삶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문자옥을 만든 사람이나 그 피해 당자자도 모두 지식인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알게 한다.

이 책을 보면 글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크게 왜곡되는 가를 잘 알 수 있다. 같은 글도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해석하는 사람의 분명한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황제들이나 정적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곡해는 목숨이 달린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헌령비헌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생겨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말이나 글이 상황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목숨을 버리는 사람까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 힘은 실감하게 된다. 글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이기에 글에 담고자 하는 자신의 뜻을 심사숙고했던 선비들의 마음이 새삼스럽게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최근 국방부 불온서적목록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요지는 ‘군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이 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군인이라는 특수신분을 이용해 사상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분단이라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분단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 결정이 문제라고 본다.

‘글과 말을 막아도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이는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삶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식과 문화를 짓밟는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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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2 암자로 가는 길 2
정찬주 글,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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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암자에서 얻는 큰마음
현대인들의 삶을 각박하다고들 한다. 바쁜 일상에 묻혀 살아가다 보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우리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자꾸 흔들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잠시 일상을 떠나 바쁜 마음에 쉼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리라. 그렇게 분주한 마음에 잠시나마 여유를 찾기 위해 나서는 곳이 대부분 자연의 한 자락이며 넉넉한 마음을 불러오는 한적한 공간이 대부분인 듯싶다. 

현대인들이 그렇게 찾아가는 곳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맥을 함께해온 사찰이 있다. 자연 속에 머물러 있는 곳이며 절집이 주는 호젓한 분위기에 이끌리는 경우가 그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의 그런 행보에는 굳이 종교를 따질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우리 민족과 울고 불며 오랫동안 함께해 온 곳이기에 우리들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감성과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서 일 것이다.

‘암자로 가는 길’은 큰 사찰보다는 전국에 산재해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 온 조그마한 암자를 찾아 순례하는 마음으로 보고 듣고 깨달은 저자의 마음이 오롯하게 담겨있다. 암자란 본래 큰 사찰에 딸린 부속 사찰로 규모가 작은 절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지만 그곳 역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부처와 만나기 위해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스님들의 수행 정진하는 도량이다. 규모가 작다보니 큰 사찰에서 느낄 수 없는 다른 무엇이 있기에 암자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이 책은 전작 ‘암자로 가는 길’에 다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후속 작으로 발간한 책이다. 사계절에 맞는 테마로 구분한 서른 두 곳의 암자들이 독자가 그곳에 함께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생생한 화보와 함께 가고 오는 동안 마음으로 담아온 저자만의 깨달음을 담아 놓은 것이다. 그러한 암자는 모두 산중에 있다. 그것도 풍광 좋은 곳만을 골라 지은 듯 한결같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암자에 거주하는 스님들은 백척간두에 서서 깨달음을 향해 절치부심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머무는 암자를 닮아서인지 오히려 넉넉하고 여유로우며 세상 모든 것들을 가슴으로 안은 듯 여여한 모습들이다. 그래서 속세의 번잡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거나 찾아가고 싶은 곳들일 것이다.

‘암자 경험이 단순히 일상적 삶에서 잠시 벗어나는 충동적 기행에 머무르지 않고 쾌락과 유희에서 삶의 위안을 찾는 세속의 관행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재고시키는 것’이라는 암자를 찾아다니는 저자의 마음도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설계하고, 나를 성장시키며 나를 사색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암자 나들이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마음에 암자를 찾는 사람들이 굳이 종교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열린 마음으로 자연을 벗하고 그 속에서 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우리려는 마음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암자는 구도자의 수행공간으로 갇혀 있는 곳이 아닌 세상과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길 바래본다.

여러 곳의 암자를 방문하고 가는 곳마다 마음에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찾아갈 수 있는 지척에 있고 찾을 때마다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는 곳 한곳 정도 정해두고 자주 찾을 수 있다면 세상살이가 조금은 더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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