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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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빗줄기가 훑고 간 도시의 주택가는 마치 커다란 습식 사우나로 변한 듯 후텁지근합니다. 도시에 사는 떠돌이 비둘기 떼가 먹이를 찾아 아파트 이쪽 동에서 저쪽 동 옥상으로 비행을 하고, 금세라도 비를 뿌릴 듯하던 하늘은 구름 사이로 빼꼼 푸른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비라면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 그러나 며칠째 이어지는 비구름은 쉽게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긴 장마 덕분에 나는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밀려 있던 책들을 마저 읽었고, 빗소리를 들으며 이따금 오래된 추억들을 소환하여 시간의 순서를 아랑곳하지 않고 뒤죽박죽 늘어놓았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 역시 장마로 집에 묶이지 않았더라면 표지만 보고 무심히 흘려보냈을지도 모르는 귀한 책이었습니다. 인연이란 이렇듯 반드시 만나야 할 것들을 어떻게든 만나게 해주나 봅니다.


"나는 아까 이 집에 도착했을 때처럼 집시 아이 같은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뒤에서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 있는 내가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다음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p.30)


아일랜드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클레어 키건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맡겨진 소녀>는 1981년 아일랜드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쓰인,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작품입니다. 무뚝뚝하면서 애정이 없는 아빠와 집안일과 여러 자식들을 돌보느라 늘 삶에 쫓기고 허덕이는 엄마 밑에서 태어난 까닭에 "네"라는 대답조차 온전히 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란 '나'는 엄마의 출산을 앞둔 어느 날, 아이가 없는 먼 친척의 집에 맡겨지게 됩니다. 서둘러 오느라 변변한 옷가지도 챙겨 오지 않았던 아빠는 '나'를 마치 귀찮은 짐짝처럼 낯선 친척 집에 떨어트려 놓고는 훌쩍 떠나버립니다.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너."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나'를 떠맡게 된 킨셀라 부부는 첫날 매트리스에 오줌을 싼 '나'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은 물론 달리기 연습을 시키기도 하고, 잠들기 전에 귀지 청소를 해주는 등 이제껏 집에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애정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킨셀라 부부의 정성어린 돌봄과는 다르게 인근의 이웃들은 처음 보는 소녀에게 과한 호기심을 보이며 상처를 주곤 합니다. 평온하고 특별하지 않은 하루하루가 그 전날과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달이 다시 나오자 아저씨가 램프를 끄고, 우리는 달빛 속에서 사구를 내려왔던 길을 쉽게 찾아 따라간다. 사구 꼭대기에 도착해서 신발을 신으려 하자 아저씨가 나를 말리며 직접 신겨준다. 그런 다음 자기 신발을 신고 끈을 묶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멈춰 서서 바다를 돌아본다.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구나."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 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p.75)


어느 날 킨셀라 부부와 함께 상갓집에 들렀던 나는 한 이웃으로부터 킨셀라 부부에 대한 비밀을 듣게 됩니다. 지금의 '나' 정도의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에 대한 부부의 친절과 환대는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한 보삼 심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섣부른 판단과 왜곡된 시선과는 다르게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나'나 부모님이 원하는 날짜에 언제든 보내 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와 함께 짧고 행복했던 '나'의 날들도 끝이 났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p.96)


작가인 클레어 키건은 이 짧디 짧은 소설을 통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문자 텍스트가 아닌 여백 텍스트로 존재할 뿐이지만, 여기에서 파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느 독자에게서 다른 독자에게로, 한 명의 비평가로부터 다른 비평가에게, 혹은 키건의 소설을 그저 이야기로 전해 들은 어느 행인으로부터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면서 새로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고, 오늘 내리는 빗물처럼 흘러넘쳐서 결국에는 이야기의 바다에 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킨셀라 아저씨는 말했습니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입니다.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진심을 전할 상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인터넷 세상에는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없는 빈 말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처음부터 갖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대화가 사라진 유령의 세계에 사는 우리로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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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실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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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다시 말하면'이라고 운을 떼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설명에 대한 나의 이해가 무척이나 절실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책이나 그런 부분이 있게 마련이지요. 너무 전문적이어서 전문가인 누군가의 설명이 따로 필요하다거나, 설명이 부족하여 저자의 별도 설명이 필요하다거나, 나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책은 한낱 문자 텍스트에 불과할 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책을 먼저 읽고 이해한 또 다른 누군가의 긴 설명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별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책도 더러 있는 법이지요. 예컨대 리 차일드의 소설이 그런 부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분량은 다소 늘어나겠지만 순간순간의 세세한 설명과 묘사가 덧붙여지는 까닭에 나처럼 어눌하고 어리벙벙한 사람도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처는 길이 왼쪽으로 굽어지는 지점이 다가오는 걸 봤다. 100미터쯤 앞이었다. 큰 도로와 비스듬한 각도로 만난 그곳은 마지못해 그런다는 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런 후 계속 뻗은 길은 사과농장을 관통했다. 그는 그쪽으로 계속 걸었다. 절반쯤 갔을 때 거대한 견인 트럭이 지나갈 수 있도록 풀밭인 갓길로 올라서야 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그 트럭은 밝은 빨간색에 흠집 하나 없이 깔끔했다."  (p.202)


내가 중학생이던 무렵 무협지에 한동안 빠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무협지라는 게 말이죠 모든 무협지에 양념처럼 자주 등장하는 기본 단어들과 지명들만 알면 무협지는 그야말로 유아용 만화책에 버금갈 만큼 쉽디쉬운 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무협지에 빠져든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게 부정적이고 시큰둥하게만 보였던 남자 중학생의 눈에 무협지는 자신의 무료한 시간을 채워줄 꽤나 괜찮은 도구였던 셈입니다. 리 차일드의 소설은 어쩌면 중학생 시절 내가 읽었던 무협지의 재판이거나 서양판 무협지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그와 같은 소설을 탐닉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지만 나의 수준이 딱 거기까지인 걸 어쩌겠습니까.


"그는 총을 겨눴다. 그녀는 쏟아지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그걸 뚜렷하게 봤다. 그녀는 시청했던 TV 드라마들에 나온 그 총의 브랜드를 알아봤다. 글록. 확실했다. 상자 모양으로 오밀조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앞부분의 총신은 새틴으로 마무리돼 있었다. 정밀한 부품. 가격이 1천 달러는 돼 보였다.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패트리샤 마리 선드스트롬, 25세, 칼리지 2년 재학, 제재소 노동자. 술집에서 만난 감자 농사꾼하고 짧은 기간 행복했다. 평생 예상했던 것보다 더 행복했다. 그녀가 알던 행복보다 더 행복했다. 그를 다시 보고 싶었다. 딱 한 번 더."  (p.513)


리 차일드가 쓴 잭 리처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주인공 잭 리처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입니다. 어떤 무협지의 주인공도 정의의 반대편에 선 자에게 쓰러지거나 무릎을 꿇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10호실>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잭 리처는 메인에서 샌디에이고로 가던 도중 낯익은 지명에 이끌려 잠시 샛길로 빠지게 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 스탠 리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그곳은 바로 뉴햄프셔의 래코니아였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잭 리처는 원치 않았던 사건에 이리저리 휘말리게 되지만 헌병으로 복무했던 그의 화려한 경력과 녹슬지 않은 실력 덕분에 위험천만한 상황을 가뿐하게 넘어서곤 합니다.


'희망은 최선을 기대하며 품는 것이고 계획은 최악을 대비해서 세우는 것이다.'  (p.176)


대부분의 잭 리처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작가의 좌우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인들을 상대함에 있어 무자비한 면모를 보여주는 잭 리처의 활약은 모든 걸 법과 제도에 의지하는 현대의 독자들에겐 한 줄기 청량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책의 리뷰를 마침에 있어 한 가지 개인적인 소원을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자유를 사랑하고 틈만 나면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는 한 사람, 비록 겉으로는 정의의 사도인 양 행세하지만 세상의 모든 악이란 악은 모두 제 손아귀에서 주무르는 듯한 그 사람을 잭 리처가 나타나 소설에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10년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사라질 듯합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눅눅한 습기가 묻어 들어오는 걸 보면 다음 주에도 장마가 이어질 듯합니다. 현실처럼 눅눅하고 어둑어둑한 장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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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내 멧돼지, 그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나를 지지하는 세력의 대부분이 몇몇 부류로 크게 나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가 많아 뒤가 구리거나 남들보다 욕심이 많거나 작은 협박에도 쉽게 겁을 먹을 정도로 소심하거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알지 못할 정도로 무식하지만 한 번 포섭이 되면 의리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강한 세력이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얼굴을 맞댄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나를 지지하는 열혈 세력들은 위에서 언급한 특성 중 적어도 한두 가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특성에 의해 그들의 행동마저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요즘 나를 지지하는 똘마니 멧돼지들의 돌출 행동으로 인해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수조에 든 바닷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질 않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내 멧돼지와 그 일가가 소유한 땅 쪽으로 길을 낼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다른 멧돼지들로부터 느닷없는 비난과 함께 공분을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돌출 행동은 사실 나를 향한 충성심을 드러냄으로써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전 포석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일반 멧돼지들과 나를 반대하는 세력들에게는 참으로 뜬금없는 짓거리로 비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공격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처사는 아닐 듯합니다. 물론 뒷골목 똘마니들을 동원하여 이런저런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고 내 주변의 멧돼지들이 감옥에 가지 않도록 손을 쓰고는 있지만 나에게도 임기가 있고, 권력이라는 것도 때가 되면 시드는 까닭에 주변의 멧돼지들을 단속하고 조심시킬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내 멧돼지와 처가 멧돼지들의 욕심을 통제하는 건 나로서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롱 멧돼지의 과한 충성심과 아내 멧돼지의 욕심이 만들어 낸 이번 사달로 인해 어쩌면 다음 달에 있을지도 모르는 기시감 멧돼지의 핵 오염수 방류가 내게는 치명적인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겁 많고 단순하며 다혈질인 희롱 멧돼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내 멧돼지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칠 것처럼 먹구름이 몰려왔다 금세 사라지곤 합니다. 나른한 권태가 전신으로 찾아드는 오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불현듯 몰려옵니다. 리더 멧돼지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지은 죄가 너무나 많았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을 맞는다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듯합니다. 나를 부추기는 건 아내 멧돼지의 욕심 탓이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건 유난히도 겁이 많은 나의 성격 탓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아내 멧돼지의 끝을 알 수 없는 욕심은 나를 더욱 두렵게 합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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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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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의 애독자가 된 계기는 아마도 시인의 산문집 <마음사전> 덕분이지 싶다. 시인이 정리한 단어들의 의미는 단어 자체의 실질적인 의미를 넘어 시인 자신의 체험과 느낌에서 비롯된 섬세한 감정까지 담아낸 정밀한 사전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매 쪽을 넘길 때마다 감탄을 쏟아내며 읽었다. 시인의 감성과 시선은 이토록 정밀하고 흠잡을 데 없이 적확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이어졌었다. 이와 같은 느낌은 다른 독자들도 대부분 공감하는 바이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인이 쓴 다른 작품들을 모두 읽었던 것은 물론 시인이 나왔던 유튜브 동영상도 빼놓지 않고 보게 되었다. 시인이 진즉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스토커로 경찰에 신고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금니 깨물기> 역시 그 연장선상의 일환이었다.


"나는 엄마를 보고 배웠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걸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늘상 주먹을 꽉 쥐며 생각해왔다. 지키려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겨우 얻게 된 것들과 꼭 얻고 싶었던 것들을 잘 지키는 것으로써 엄마처럼은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다."  (p.24)


책에 등장하는 여러 꼭지의 산문 중 나는 첫 꼭지인 '엄마를 끝낸 엄마'를 읽으면서 주책없이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남존여비의 가부장제 질서가 지배하던 시절에 태어난 시인은 엄마로부터 오빠와 자신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경험하며 성장했고, 이러한 차별이 엄마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군가의 엄마로 살았던 시간들을 거의 다 망각하고 25년 전에 죽고 없는 오빠와 아빠에 대한 기억만 온전히 간직하게 되었을 때, 시인은 자신만 홀로 엄마를 엄마로 기억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엄마에 대한 해묵은 감정을 잊어버리기로 했단다. 요양원에 입소하기로 한 전날 밤, 처음으로 엄마 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잤다는 시인은 코로나 시국에 요양원에 입소한 엄마의 모습을 마치 남의 일인 양 아주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해서 이제 나는 거짓말처럼 아무 생각이 없다. 가끔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엄마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자문하면, 그 무엇인가는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유가 텅 빈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그리움일 뿐이다. 그런 그리움을 엄마를 향해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구나 한다."  (p.20~p.21)


어느 유튜브에서 보았던 시인은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중간 지점에서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딱 부러지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어려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깍쟁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고 자랐음직한 시인의 겉모습과 태도를 보면서 나는 내심 시인 역시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했었다. 조금의 빈틈이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는, 야물딱진 시인의 성격은 그녀가 쓴 여러 책의 문장 곳곳에서 드러나곤 한다.


"장소라는 말과 공간이라는 말은 엄연히 구별된다. 장소는 시간이 부여해준 가치와 역사가 부여해준 이야기를 함께 담은, 고유한 이름이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영위하는 한 개인의 양태들이 냄새처럼 고스란히 밴 곳이기도 하다. 장소는 유일하고 공간은 보편이다. 장소는 변화를 겪고 공간은 그대로다. 장소는 파괴되지 않지만 공간은 파괴될 수 있다."  (p.61)


이 세상에 자신의 주장을 온전히 남기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시인이 아니라는 걸 나는 김소연 시인을 통해 배운다. 그 목소리가 작든 크든 상관없이, 어쩌면 옳고 그름을 구별할 필요도 없이 오직 자신의 내부에서 뻗어 나오는 하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자만이 시인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음을... 그리하여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겯는 어느 날 비로소 계관을 쓴 시인이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문장이 아니라 맥락이, 맥락이 아니라 노래 비슷한 것이, 노래가 아니라 울먹임이, 울먹임이 아니라 불꽃이, 불꽃이 아니라 잿더미가 비로소 백지 위에 하얗게 쌓인다. 시는 온갖 실의와 실패를 겪어가며 끝장을 본, 한 줌 재인 셈이다."  (p.74~p.75)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때로 어금니를 깨물고 버텨야 할 만큼 힘들고 고달픈 일이겠으나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게 하나의 시였고, 동화였고, 지워지지 않는 전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시인도 아마 그런 시절을 살아왔을 터, 때로는 어금니를 깨무는 것으로도 모자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바들바들 떨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언제나 그런 아득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이라는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현실이라는 아득함에 시간이라는 조미료를 솔솔 뿌려 추억이라는 이름의 짙은 사랑을 어렵게 찾아내곤 한다. 인간이란 어쩌면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순간에 이미 사라져 버린 어떤 소중한 것을 그리워하는 미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고, 다른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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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다음 타깃은...


여름 장마가 한창입니다. 장마라고 해서 딱히 리더 멧돼지인 내가 나서서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안타깝다거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등의 언급은 그때그때마다 시의적절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아랫것들의 조언입니다. 사실 그와 같이 마음에도 없는 낯간지러운 말을 한다는 게 나의 정서상 썩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리더 멧돼지로 재임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도 합니다. 장마가 길어지고 피해 지역이 늘어난다고 해도 설마 나의 나와바리인 남산 지역까지 물에 잠길 리도 없고 농어촌에 사는 천것들의 피해야 내가 일일이 신경 쓸 일도 아니기에 나에게 장마철은 전과 다름없는 평범한 날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물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자면 약간의 연기 공부가 필요할 테지만 말입니다.


나는 얼마 전 나를 지지하는 단체의 창립 기념일에 참석하여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북한 멧돼지들과 전쟁을 끝내고 평화롭게 잘 지내보자는 무리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칭하며 맹비난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내전 상태에 돌입한 마음으로 선전포고를 한 셈이지요. 그런데 나의 말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걸 나로서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나를 비롯하여 나의 최측근에서 근무하는 멧돼지들 대부분이 군대를 가지 않았거나 짧게 다녀왔을 뿐 온전하게 군생활을 한 멧돼지들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반국가 세력 멧돼지들에게 안보를 맡김으로써 나의 생명과 재산 역시 그들에게 의존해 왔던 셈이지요. 전혀 말이 안 되는 논리이지요. 나의 논리가 합리성을 득하려면 입영대상 멧돼지들 전체에 대해 입대 전에 먼저 사상검증을 하고 나와 사상을 같이하는 멧돼지들만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군대에 갈 멧돼지들도 극소수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나의 최측근이자 최상위 그룹 멧돼지인 그들의 부모 멧돼지들 역시 쌍수를 들고 반대할 게 뻔하지만 말입니다. 결국 나는 헛소리를 한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국내외적으로 나를 '또라이' 혹은 '룬(loon)'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날리면 멧돼지는 공식 석상에서 걸핏하면 나를 '룬'이라고 칭하는데 여간 기분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 덧붙이자면 날리면 언어 'loon'의 의미는 '미치광이'란 뜻입니다.


우리나라 멧돼지들의 교육열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뜨겁다는 건 이미 정평이 난 사실입니다. 하여 자녀 멧돼지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 멧돼지들은 자신의 노후를 포기하더라도 사교육에 모든 걸 투자하는 실정입니다. 자식이 없는 나는 이러한 사실이 영 못마땅하였고, 어떻게든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태어난 신분대로 살다 가면 되지 능력도 되지 않는 것들이 굳이 더 높은 자리를 탐한다는 건 국가 전체로 볼 때 쓸데없는 낭비일 뿐이라는 게 나의 신념이었습니다. 부자의 자식은 부자로, 권력자의 자식은 권력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랫것들이 자신의 처지도 생각하지 않고 높은 자리를 탐하는 모습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참에 나는 그런 생각을 부추기는 멧돼지들을 모두 때려잡을 생각입니다. 노조를 결성하여 기업가에게 대드는 천한 멧돼지들을 때려잡으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우울합니다. 오늘은 아랫것들과 모처럼 진흙 목욕이라도 함께 할까 생각 중입니다. 술도 한 잔 나누면서 말입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다음 타깃도 정해지겠지요. 그것이 내전 상태에 돌입한 나의 계획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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