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자락의 냉기가 채 여물지 않은 성긴 봄기운의 틈새로 스민 탓인지 새벽 등산로는 여전히 겨울과 같은 한기를 품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갈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별빛도 없는 하늘엔 살 오른 반달이 홀로 쓸쓸했다.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 탓인지 새벽에 산을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인근의 아파트에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한 집 두 집 연이어 불빛이 밝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또 그렇게 분주한 하루를 준비하는 듯했다. 한강 작가의 시 '새벽에 들은 노래 3'이 생각나 옮겨 적는다.


새벽에 들은 노래 3

                        한강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한 편의  시를 나직나직 읊어보는 일은 '서랍에 넣어 두었던' 저녁을 몰래 꺼내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는 일이지만 갈수록 메말라가는 정서는 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시나브로 멀어지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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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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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삶의 언저리에는 언제나 부유하는 시간의 잔재들이 떠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영혼이 채 영글지도 않았던 사춘기의 어느 시점에 용하다는 어느 무당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정해준 까닭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줄곧 자신의 삶 언저리에는 언제나 사춘기에 경험한 그 무당의 말이며 행동들이 시간에 부식되지 않은 채 쟁쟁거리며 떠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의 영혼이란 이렇듯 허약하기 이를 데 없어서 영혼의 지배를 받는 개인의 삶 또한 작은 운명의 둑이나 언덕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너무나 중한 나머지 예정된 운명의 향방을 미리 점쳐보거나 가늠해 볼 시간조차 없었던 운명 무지렁이의 삶은 얼마나 담대한 것인가.


"아창과 샤오메이는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창의 눈에는 당혹감만 가득하고 샤오메이의 눈에는 눈물밖에 없었다. 당황한 눈은 맞은편의 눈물을 보지 못했고 눈물 속 눈은 맞은편의 당혹감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에 대해 생각했다."  (p.546)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신작 소설 <원청: 잃어버린 도시>는 600쪽에 가까운 장대한 분량임에도 가독성이 좋아 생각보다 빠르게 읽힌다. 주인공인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삶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사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이 소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 재주도 많고 의지도 강한 사람이었지만 그마저도 그가 살았던 불운한 시대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고난의 자취를 감명 깊게 그려내고 있다. 청왕조의 끝자락인 신해혁명기, 북양군과 국민혁명군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백성들이 무기를 모아 다른 무고한 백성들을 수탈하는 토비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던 무정부 상태의 암흑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양쯔강 건너 남쪽 600리 아래 도시를 일컫는 '원청'을 소설의 제목으로 내세움으로써 존재하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존재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인간 군상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여 책을 덮는 독자들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자신에 대해 안도하는 한편 시대의 역경 앞에서 너무도 쉽게 꺾이는 인간의 삶을 생각할 때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허무와 상실감에 한동안 사로잡히게 된다.


"이 북쪽 출신 농민은 땅에 대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이가 엄마 품에 매달리는 것과 비슷한 절절함을 가지고 있었다. 12년 전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뒤 딸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았을 때 그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 속에서 처음 완무당, 물과 땅이 어우러진 그 넓은 전답을 보았다. 뿌리째 뽑힌 나무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벼가 짓밟힌 잡초처럼 여기저기 쓰러져 있으며, 망가진 배의 판자 조각, 수북한 띠, 굵은 나무와 뼈대만 남은 지붕이 수면 위로 떠내려가고 있었음에도, 린샹푸는 그 엉망으로 망가진 풍경 속에서 원래의 풍요로운 완무당을 볼 수 있었다. 노부인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미모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p.147)


소설의 주인공인 린샹푸는 '원청'에서 1000리 떨어진 황허 부쪽 남자로 5살에 아버지를, 19살에 어머니마저 여의었지만 적잖은 재산과 단단한 성품을 물려받았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목공 기술을 익힌 그는 집사인 톈다 5형제의 보살핌을 받고는 있으나 혼인을 하지 못한 24살의 노총각이 된다. 그해 가을, 꽃문양 치파오를 입은 여자와 그녀의 오빠라는 남자가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청하고, 이튿날 오빠라는 남자 아창은 아프다는 동생 샤오메이를 두고 떠난다. 곧 데려가겠다는 약속만 한 채. 홀로 남겨진 샤오메이는 린샹푸와 관계를 맺고 다음 해 초봄 보름치 음식과 새 옷을 지어 집에 남긴 채 린샹푸의 금괴를 훔쳐 사라진다. 다섯 달 만에 또 혼자가 된 린샹푸는 오열했으나 얼마 뒤 아이를 밴 채 나타난 샤오메이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또 떠나면 "아이를 안고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당신을 찾을 거"라던 린샹푸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샤오메이는 출산을 한 후 곧 사라진다.


"그 뜬구름 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p.559)


전 재산을 집사에게 맡긴 린샹푸는 딸아이를 업은 채 샤오메이와 아창이 왔다는 도시 '원청'을 향해 떠난다. 100여 집의 젖을 먹었다 해서 붙인 딸의 이름은 린바이자(林百家). 이 딸에게 젖을 얻어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찾아 들어간 집의 큰아들 천야오우는 그때 두 살이었다. 오누이처럼 성장했던 그들의 운명은 토비에게 인질로 끌려가던 린바이자를 대신하여 잡혀갔던 천야오우에 위해 뒤바뀐다. 토비에게 귀를 잘리고 고문을 당했던 천야오우.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애틋하다. 어쩌면 그들도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운명처럼 기구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에는 몸을 팔아 남편의 아편 값을 대는 여자 추이핑과 그녀에게 자신의 남은 삶을 의지하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딸과 상인회 회장 구이민 등에게 유서와 같은 편지를 남기는 린샹푸의 이야기도 펼쳐지고, 장도끼와 스님 일파와 같은 토비들이 저질렀던 일반인에 대한 잔혹한 행위와 이에 맞서는 상인회 회장 구이민을 비롯한 민병대원들의 처절한 대응도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당시 무정부 상태 중국의 일반 백성들이 겪었던 참혹한 삶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민중의 삶이 절절하기만 하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언저리에는 언제나 부유하는 시간의 잔재들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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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해는 풀고 가야지.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 멧돼지의 단독 행보도 부쩍 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포항의 죽도 시장을 다녀왔던가 봅니다. 우리 멧돼지들의 먹성이야 세간에 이미 정평이 난 사실이지만 아내 멧돼지와 나도 다른 멧돼지들 못지않게 먹성이 좋은 편입니다. 시장에 나온 여러 음식들 중에 박달 대게가 아내 멧돼지의 눈에 띄었었나 봅니다. 입맛을 다시던 아내 멧돼지는 주변의 많은 멧돼지들의 시선을 의식한 탓에 체면상 맛있겠다는 말은 못 하고 수족관의 대게 한 마리를 덥석 꺼내 물고는 "얘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아요. 큰도리."라고 시장의 멧돼지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다른 멧돼지들에 비해 도리도리를 심하게 하는 내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박달 대게는 그렇게 '큰도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내 멧돼지는 입에 물었던 '큰도리'를 수족관에 다시 넣어주면서 "이건 팔지 마세요."라고 하자 상인 멧돼지 왈, "예, 잘 보관할게요." 하더랍니다. 그쯤하고 떠났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내 멧돼지나 나나 먹성이 오죽 좋아야지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나 봅니다. 아내 멧돼지는 기어코 큰도리 한 마리를 쪄 달라고 부탁해서 서울로 가져왔습니다. 다른 멧돼지들에게는 리더 멧돼지인 내가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도 아내 멧돼지의 동물 사랑 때문이 아니라 간편 도시락 대용이라는 것을 알 만한 멧돼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나와 아내 멧돼지의 먹성 때문인 셈이지요.


어떻게든 세계 최강의 날리면 멧돼지의 눈에 들기 위해 리더 멧돼지에 취임한 직후부터 애를 써왔던 나는 결국 날리면 멧돼지의 꼬붕인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부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지요. 기시감 멧돼지의 선조인 일본 조폭 멧돼지들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와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우리나라 멧돼지들에 대한 일본 멧돼지들의 사죄와 배상을 일절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똘마니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와 같은 발표를 하자 일본은 물론 미국의 멧돼지들도 환영 일색이었습니다. 기시감 멧돼지를 비롯한 그의 똘마니들은 이게 웬 떡이냐는 듯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겉으로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우리나라의 늙은 멧돼지들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적당히 몇 푼 쥐어주면 못 이기는 척 받고 말겠지요. 설사 안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달리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천박한 것들! 나를 지지하는 일부 나의 똘마니들 중 한 사람은 "식민 지배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라고 했으며 또 다른 멧돼지는 "나는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는 말로 지지를 표명하고 어떤 목사 멧돼지는 일장기를 흔들며 나를 응원했습니다. 그야말로 나는 기시감 멧돼지에게 넙죽 엎드린 셈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나를 지지하는 똘마니들의 선조들은 일본의 은혜로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아, 요즘 참 나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깊어지는 듯해서 말인데 짧게 해명을 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모든 요직을 예전 나의 뒷골목 똘마니들로 채우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사실 그것은 일부러 그들만 골라 임명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의 전반적인 국정운영이 대부분 탈법이거나 불법인 까닭에 나의 임기가 끝나면 요직에 임명되었던 그들 모두 감옥에 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요직에 지명된 일반 멧돼지들 대부분은 지명을 고사하거나 숫제 지원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뒷골목 출신의 똘마니들은 그들 후배들이 버티고 있는 한 적어도 감옥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여 내가 지명하는 순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뒷배를 믿고 있는 까닭에 내가 임명한 요직을 수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런 현실이 영 개운치 않고 답답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점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나의 불법이나 탈법적인 국정운영을 앞으로 지양하거나 개선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어제는 우리 편 무리의 대표 멧돼지를 선출하는 날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원했던 멧돼지가 당선되었고 그는 나의 1년 선배이기도 하지만 선거 기간 동안 그가 보인 행보는 참으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내가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당선되기 힘들었을 듯합니다. 앞으로 나는 대표 멧돼지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혼쭐을 내 줄 생각입니다. 물론 그의 돈생은 비리가 워낙 많아서 내 말을 듣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테지만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저간의 사정을 구구절절 밝히는 이유는 쌓인 오해는 풀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날리면 멧돼지가 나를 초청하는 걸 보면 나는 조만간 그의 심복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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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8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
은유 지음 / 김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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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되지 않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이라곤 일절 주어지는 게 없는, 말하자면 지극히 비생산적인 일을 십수 년째 해오고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다고 비생산적인 그 일을 계속함으로써 기술이 향상된다거나 타인의 삶에 보탬이 된다거나 하다못해 일의 성과에 대한 작은 자부심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업에 바쁘다는 핑계로 이따금 그 일을 소홀히 할라치면 '내가 너무 무심했었나?' 하는 자책과 부담감을 나도 모르게 느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특별한 동기나 이끌리는 까닭도 모른 채 십수 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다.


글쓰기의 장점을 줄줄이 늘어놓거나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는 N잡러들의 시도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요즘이지만, 나는 사실 글쓰기를 통한 다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광고를 빙자한 흔한 유혹이 나라고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나는 다만 블로그라는 공간이 나를 제외한 다른 누구의 간섭이나 권리 주장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어느 정도의 심리적 자유가 보장되는, 다른 어떤 이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정신적 해방구로서의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왔고, 그렇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심지어 나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블로그의 주소는 물론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함구하고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내가 쓴 글을 읽게 된다는 사실이 계면쩍기도 하지만 글을 쓸 때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을 떠올리거나 문장을 써나감에 있어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건 글 자체를 왜곡하거나 미화할 소지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쓰고 있다는 행위는 일견 답답하고 고지식하게 비칠 수 있다. 적어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어떤 기대나 욕심이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동안의 독서 이력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을 남들 못지않게 읽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글쓰기 관련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없던 글쓰기 실력이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어요. 어떤 읽기는 읽는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요. 제 경험을 근거로 말씀드리면 '좋은 엄마란 뭘까' '인간답게 산다는 건 뭘까' 이렇게 자기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한 독서는 쓰기에 큰 도움이 됩니다."  (p.222)


십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글쓰기를 이어왔다면서 글쓰기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또 은유 작가의 체험에서 비롯된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은유 작가의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어왔으니 애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읽는 게 당연하지,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글.쓰.기'라는 세 글자에 눈길이 갔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글쓰기가 지금까지 제 삶에 좋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 인간은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 이 냉혹한 진실까지 자각시켜준 것이 글쓰기입니다. 참으로 믿을 만한 자기 객관화의 장치가 아닐 수 없죠. 여러분도 잘 활용해보시길 바랍니다."  (p.289)


글쓰기 수업과 강연에서 자주 받은 질문을 토대로 글쓰기에 대한 마흔여덟 개의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된 이 책은 책을 통해 글쓰기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물었음직한 보편적인 질문들을 통해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고민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글쓰기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고통스러울 때 살기 위해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세상만사가 그렇듯 글쓰기 역시 절실함에서 비롯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한다.


"글을 쓰는 고난의 시간대를 거치고 나면 쓰기의 결과물에 딸려오는 선물이 있어요. 전에 어떤 작가가 그랬거든요. 책 쓰는 일은 지독히 고통스러운데 책을 쓴 유일한 보람은 좋은 사람을 많이 알게 된 것이라고요. 크게 공감했어요. 글은 중매인처럼 인연을 맺어줘요. 저도 그랬습니다."  (p.291)


그럴지도 모르겠다. 얼굴을 맞대고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블로그에 쓴 짧은 글을 통해 많은 블로거들과 인연을 맺기도 하고, 글에 달린 댓글을 통해 일희일비한 적도 더러 있다. 삶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선물이 이따금 주어지는 까닭에 질긴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 역시 좋은 인연이 있어 토막토막 단절된 시간들을 이어갈 수 있게 되나 보다. 돌이켜보면 십수 년의 긴 시간 동안 나도 블로그를 통해 꽤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가장 큰 선물이라면 선물일 터, 나는 그 인연들을 너무나 쉽고 가볍게 여겨왔던 게 아닌가. 크게 반성하는 시간이다. 바깥공기가 탁해 창문조차 열 수 없는 휴일, 그 여유로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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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느껴지는 봄바람에 비해 햇살은 무척이나 따사로운 하루였습니다. 매화나무의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하고 옛 애인의 편지처럼 국토의 끝 멀리 남쪽에서 싱그러운 꽃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봄바람을 타고 그 향기마저 전해지는 듯하여 가슴은 둥실 날아갈 듯 들뜨는 요즘입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휴일 오후에도 베란다 창 너머 아련한 상념의 세계를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뻗고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 한동안 넋을 놓았던...


3월을 준비하던 2월 하순은 참으로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개강 준비를 하는 아들을 도와 대학가 주변에 세를 얻은 방으로 이삿짐을 날랐었고, 매년 이맘때면 준비해야 하는 사무실의 여러 서류와 준비물들, 이런저런 상담과 각종 모임 등으로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른 채 정신없이 흘려보냈던 것입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러 "그래도 바쁜 게 좋지." 인사치레의 말들을 던지곤 합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어제는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이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나중에 여러 언론을 통해 전해 듣게 되는 사람들이나 대통령의 기념사는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을 듯합니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듯 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고 했던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강자는 언제나 약소국을 침범해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하는 것도, 히틀러가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침범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도 모두 용서가 되는 일이며, 약소국의 국민들은 그 모든 게 자신들의 불찰일 뿐이며 침략자인 그들을 원망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는 대목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우리의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일본을 향한 끝없는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 달라진 게 없는데 대통령 혼자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여 딱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날짜마저 흐릿해져 가는 날이 있습니다. 8월 29일! 1910년 8월 29일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던 이완용과 일제의 데라우치 통감 사이에 조인되어 발표되었던 경술국치. 우리는 주권을 잃고 일제의 식민지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의 논리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경술국치일 또한 국가 기념일로 변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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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3-02 17:05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조선 민족이 나라를 잃은 것은 스스로 못나고 약했기 때문이니, 일본을 탓할 일이 아니다. 지금 조선 민족의 과제는 일본과 협력하여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이다.”
2023년 3.1절 대통령 기념사의 역사적 의미는, 1940년대 친일파들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복권시킨 데에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겁니다.

이런 소릴 삼일절 날 듣다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꼼쥐 2023-03-05 15:03   좋아요 1 | URL
그와 같은 기념사를 듣고서도 국민의힘 구회의원들은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으니 아마도 그들은 지금도 천황 폐하의 신민이 되고 싶어 하는 족속들인가 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더구나 제대로 된 보수라면 그와 같은 말을 듣는 즉시 칼을 빼 들고 자결이라도 했겠지요.

은하수 2023-03-02 18: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어젠 정말 너무 어이없고 화났어요
내가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게 맞나.. 저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나... 누가 뽑은건지 참담하기 이를데 없는 하루였어요.
역사인식이 있긴 한건지 의심스럽네요
차라리 없으면 제대로 가르쳐 줄텐데 어디서 못돼먹은걸 배워 와서는 그걸 수시로 써먹네요
˝그거 다 무식해서 그래요~~˝ 하던 드라마 대사를 날려 주고 싶네요
나와 같다면 님 말씀 백퍼 공감합니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돼서 그래요!

꼼쥐 2023-03-05 15:06   좋아요 2 | URL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면 정치로부터 멀어지고, 정치로부터 멀어지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양비론에 손을 들어주게 되며, 수구언론의 꼬임에 여지없이 걸려들게 마련이지요. 정부가 경제를 등한시하는 이유도 다 그런 데 목적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젊은이들을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게 함으로써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잉크냄새 2023-03-02 19: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치를 하는 놈들이니 머리가 모자라서 저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죠. 분노의 임계선을 자꾸 건드려보는 느낌입니다.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그 임계선을 스스로 설정하고 확장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더 심한 망발이, 망발을 넘어선 파렴치한 행동이 서슴없이 나오리라 봅니다.

꼼쥐 2023-03-05 15:10   좋아요 1 | URL
얼굴을 심하게 뜯어 고친 어떤 여인은 연일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면서 설쳐대더군요. 주가조작 조사를 받으라는 국민들의 여론이 비등한대도 말이죠. 그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그들의 뻔뻔함은 정말 인간 이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singri 2023-03-02 2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친일파들 진짜 끝이 없네요

꼼쥐 2023-03-05 15:10   좋아요 1 | URL
이 정권이 끝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쭉 이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