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2011년 독서모임의 첫 번째 교재였다.
독서모임 때문이 아니라도 지난 12월에 작고하신 고 리영희선생의 생애를 알기 위하여 이 책 이외에도 임헌영씨의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먼저 읽은 바 있다.
 
독서모임에서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한 평전으로서의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별로였다.
고인에 대한 저자 자신의 평가 내용보다 고인의 기존 저서와 자서전 성격의 책과 글, 그리고 당사자의 이야기에 주로 의존한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평전을 쓰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고인이 위독하였고 고인이 살아계실 때 완성된 평전을 보여드리기 위하여 급하게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모임 논의 중에 고인에 대한 평전으로는 강준만교수가 펴낸 <리영희 -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가 추천되었다.)
 
내가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기 보다는 어제 독서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생전에 고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죄도 있고 해서...^^)
독서모임의 주된 이야기는 책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독서모임 참가자들이 과거에 고인 및 고인의 저서와 맺게 된 사연을 회고하는 내용과 고인의 핵심적인 사상과 자세, 진실과 진리에 대한 탐구, 성장배경과 ’사상의 은사’로 불리게 된 과정 등이 중심이었다.
 
1. 평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위에서 이야기한 바 있고
 
2. 고인의 태생적인 조건이 걸출한 저널리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고인은 이북, 그것도 이북의 변방 출신이었고 중등교육은 경성공업학교라는 조선인이 드문 학교를, 고등교육의 경우 해양대학이라는 마이너 대학이었으며 7년간이나 군대에 몸을 담았음에도 통역장교라는 군내 내 비주류 직책이었다.
그런 상황들이 한 편으로는 친일파와 주류에서, 해방 후 사상적 혼돈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구조와 배경이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해방 후 주류들이 득세한 언론계에서 자신이 언론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불굴의 노력과 치밀함을 잉태시켰다.
 
3. 그와 관련하여 시대적인 배경과 과정도 고인의 능력에 도움이 되었다.
고인은 1929년 생으로 일제에 의하여 본격적인 조선어 말살정책이 강행된 1940년대 초에 중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어에 능통하게 되었고 이북 출신으로 경성에서 중등학교와 해양대학을 다니면서 학비가 부족하여 놀이와 사교보다 대부분의 개인시간을 학습과 영어공부에 투입한 것이 후에 한국전쟁 발발 후 통역장교로 복무하게 된 계기가 된다.
7년간의 통역장교 경험은 고인이 영어에 익숙하게 만들었고 언론사 국제부에 근무하게 되고 중국혁명에 관심을 가진 것들이 중국어와 불어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4개 외국어 실력은 고인이 친일파와 서울대 등 주류대학 출신들이 장악한 언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함과 동시에 해외언론을 통해서 수많은 사실적인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였고 외국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되었다.
 
4. 이과 전공, 주류와 권력에 대한 위기감, 진리추구의 열정이 한국현대사의 걸출한 언론인을 만들어내었다. 
고인은 중등교육(공업학교)과 고등교육(해양대학) 과정이 모두 이과였다.
일반적인 이과 교육과정이 그러하듯이 치밀하고 논리적인 교육내용이 어려서부터 부여된 천재적인 공부실력과 더해져 고인의 치밀한 논증과 이론의 기반이 되었고,
친일파와 주류들 속에서 비주류로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기 위해,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폭압전제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안위와 기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인은 더욱 더 근거와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작성할 수 밖에 없었다.
고인은 또 사교와 접대를 멀리하면서 남는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전부 투입하여 수많은 고전과 이론서, 자료 등을 수집하고 공부하였다.
마지막으로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성격적으로, 그리고 경쟁적으로 고인은 해외 언론의 보도내용과 해외에서 필요한 자료를 입수하여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사건과 배경, 현황과 전망에 대해 당시 그 누구보다 정확하고 뛰어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성과 진실, 진리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이 전제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고인은 자연스럽게 민주투사가 되었다.(9번의 체포, 5번의 재판, 4번의 징역)
 
5. 사상과 생활이 일치된 삶으로 일관하신 분이다.
7년간의 통역장교 시절부터 고인은 공과 사를 구분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잡기도 하나 없었음.)
언론계에 종사한 이후에도 끝까지 국제부 이외의 정치,사회부 등으로 옮기지 않아 향흥이나 접대, 금품을 수수하지 않아 언론계에 종사하면서도 가난하여 부친의 환갑잔치를 치르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정도였다.
고인은 50대에 넘어서서야 끓는 물이 자동으로 나오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고인 스스로 지성인으로서의 책무를 삶의 최우선 가치로 삼아 살아오셨기 때문에 항상 가족의 가난과 고통에 마음 아파하셨다.
 
독서모임 참가자들은 모두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고인과 같은 언론인, 그리고 지성인이 다시 이 땅에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디 고이 잠드소서...  

[ 2011년 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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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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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민의 불복종> 등과 함께 2011년 두 번째 공부모임 교재였다.
오늘 공부모임에서는 소로 및 소로의 저서와 관련되어 많은 의미있는 이야기와 논의가 있었다.
공부모임에서는 특히 개인과 개인의 자유에 대하여, 국가에 대하여,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권력에 대한 저항에 대하여, 저항의 근원적 이유와 방식에 대하여, 정치철학에 대하여, 소로의 영향에 대하여, 소로의 자유와 저항정신이 현대에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하여, 21세기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비교에 대하여, 국가보안법과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하여 모두가 공감하였다.
 
어떻게 보면 소로의 정신과 주장은 작금의 한국 현실에서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어야 한다는 소로의 선언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처음 접한 것은 1983년이었고 내가 처음 그를 접한 것은 2010년 가을이었다.
저자는 당시 유학하던 일본의 대학 교수를 통해 그를 접했고(저자는 그 교수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법정스님을 통해 그를 접했다(나는 법정스님의 삶과 글이 인상적이어서).
소로는 만45년 동안의 삶에서 남긴 것은 <월든>, <산책>, <시민저항>, <해방자>, <존 브라운 대장을 위한 변호>, <원칙없는 생활>, <메인 숲>, <낙엽>, <야생의 열매>, <씨앗의 확산> 등 수 십권의 책과 일기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인물을 속속들이,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그동안 여러 관련 서적들이 소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듯한 선입견을 주었다면, 저자는 남산 위에서 4대문 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저자는 소로가 여러가지 문헌과 자료를 통해 한국에 소개될 때, 자연주의자나 자연애호자, 환경보호자나 '숲 속의 성자', 그리고 동식물연구가, 박물학자, 시인, 금욕주의자, 비폭력주의자로 불리우는 것을 정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에게 소로가 성자이기는 커녕 반역자이고 성인은 커녕 무법자다.
소로는 그가 살던 당시에 불법이었던 노예의 탈출을 도왔고 국가가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납세를 거부했다가 감옥살이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정(不正)한 국가나 정부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부정(不定)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돈에 미쳐 싸우는 짐승들'이 가득한 세상을 경멸하고 또한 부정했다.
그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았고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독신주의나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몇 번 연애를 하기도 했고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했지만 그것은 인간이 입고 먹는 것의 노예가 되면 자유를 상실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로는 당시 19세기였음에도 기계 같은 나날을 보내는 노동자의 삶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개탄하고 그런 기계같은 생활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다.
그가 월든 호숫가에서 2년 넘게 살았던 것은 자연주의자로서나 환경보호자로서가 아니라 "'자발적 빈곤'이라고 부를 만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인간생활을 공정하고 현명하게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고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콩코드 주민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스물 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 숲 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직접 짓고 그곳에서 살면서 2년 동안 지낸 그것은 소로에게 본질적으로 '자기 탐구 여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작년 가을에 <월든>을 읽었을 때, 나는 소로를 단순히 자연주의자 그리고 생태주의자 정도로 이해하였다.
 
저자는 소로가 '반지성주의자'라고 단언한다.
소로는 당시의 일반인들의 삶과 전혀 동떨어진 방식으로 '자기 멋대로' 산 사람이며 노동의 타락을 개탄하고 국가의 권력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라고...
소로는 대학교육에 의해 형성되는 지성에 의문을 던지고 '삶의 예술'을 존중했다.
"오늘날 철학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없다."라는 말로 대별되는 그의 주장은 단지 19세기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에 넘쳐나는 교수들 중에 몇 명이나 진정한 학자이고 예술가이고 지성인일까?
 
저자는 소로가 소비사회가 추구하는 욕망의 논리를 철저히 부정하고 최소한의 노동으로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살면서 남는 시간은 자연을 관찰하고 독서를 하는 데 쓰며 지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소로는 진정한 독서인, 자연인, 학자였고 무엇보다 먼저 순수한 인간이었다고...
게다가 소로는 권력과 권위를 거부하거나 대체로 무시하며 살았지만, 노예제와 같이 정의롭지 못한 제도나 법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즉, 저자가 보기에 소로는 우리가 우러러봐야 할 위인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보통사람이자 우리의 친구다.
소로가 우리의 친구라 함은, 물질문명을 모두 거부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물질문명의 지배를 받게 되지 않을 정도로는 그것을 거부해야 힌간 본연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로는 하버드대학 출신의 자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자본주의에 대한 반항자이며 자유인이자 자연인이었다.
"법률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보다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나의 권리로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하는 유일한 책임은 언제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집단 자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은 정말 옳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살았던 소로의 삶은 그 이후 마틴 루터 킹과 간디, 이반 일리히, 톨스토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게리 스나이더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내가 <월든>을 읽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이 혼란스럽고 복잡했다.
소로가 자연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반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저항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지금 되돌아보면 <월든> 안에는 <시민저항>이나 <산책> 등 그의 저서와 글에서 꾸준하게 거론되어온 내용들도 들어있다.
다만, 내가 사전에 소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내 식대로 <월든>을 이해하려 했고 특정한 무언가를 책 속에서 찾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었다.(그것은 법정스님이 소개한 책이기 때문에 무소유나 소박한 삶이라는 관점에서만 내용을 읽으려 했던 것...)
<월든>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이해했던 소로의 삶과 생각을 이 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는 지금의 내 나이에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는 삶은 지금의 나에게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내가 인정하는 가장 매력적인 삶은 '일관성'과 '철학'인데 그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겸비했다.
과연 나는 앞으로 소로와 같은 삶의 자세와 태도, 행동방식을 취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 2011. 01.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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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사회이야기
문태훈 지음 / 법문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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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 [평화나눔아카데미]의 다섯 번째 강연에서 강사로 나온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교수는 "기후변화시대, 그러나 재앙은 평등하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윤교수는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강연을 진행하였으며 수강생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상당히 많은 분량의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여 100분이라는 시간도 한참 모자랐다.
 
이 책은 윤교수의 강연을 듣기 전에 윤교수가 이전에 발간한 책을 찾다가 택한 것이다. 21일 강연에서 윤교수는 기후변화, 핵발전소, 생태운동, 에너지 문제, 세계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기에 수강생들이 미처 그 강연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리 이 책(그 전에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도 먼저 읽었다)을 읽고서 강연에 참석하여 강연에서 생략하거나 건너뛴 숨은 이야기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미 20세기 후반기부터 전 세계의 수 많은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이 기후변화로 요약되는 지구의 환경상태가 극히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경고해왔다. 이제 기후변화 문제는 과학자와 환경운동가 뿐 아니라 유엔(UN)에서도 특별하게 다루어지는 문제가 되었고 2007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간한 ’지구환경전망보고서’는 "인간의 무분별한 경제활동으로 인해 현재 여섯 번째 멸종이 진행 중이며, 이는 곧 인간 자신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100년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섭씨 0.74도가 올랐으며, 해마다 200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남극 오존층의 파괴도 역대 최고 규모이며, 양서류의 30%, 포유류의 23%, 조류의 12%가 각각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환경변화와 생명체의 위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저자들은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궤도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이 새로운 환경 패러다임의 전환, 즉 ’지속가능한 발전’의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한국은 2008년 세계경제포험에서 발표한 환경보전 순위가 149개국 중 37위이고 생태계 지속성 분야는 109위로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서 특별한 정책적, 제도적 차원의 노력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시작되어 책으로 발간된 것이다. 저자들은 분야별로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에 대한 각자 논문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각 장을 구성하여 한 데 묶었다.
 
제1장. [조화로운 발전, 지속가능한 전략]에서 문태훈, 제2장. [상장과 환경: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진화]에서 박순애와 이영미는 좋은 환경 거버넌스와 발전 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은 이산화황 등 대기오염물질 배출, 하수 및 폐수처리설비, 폐기물처리에서 재활용율 등의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높은 수준의 환경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역으로 OECD로부터 환경정책의 통합과 조정, 자연과 생물다양성 보존, 수질과 수량관리, 에너지와 자원사용의 효율성, 에너지와 교통부문계획, 국제환경협력, 토지이용에 따른 환경문제 등에 대해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받았다. 문제는 환경정책이 국가의 주요 정책과 전략이 아닌 일개 정부부처의 정책으로 격하되어 있어 환경정책의 집행에 있어 부서간 통합과 조정이 원만하게 이루지고 있지 않다.
 
문태훈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3S 전략을 제시한다. 3S란 강한 한국(Strong Korea), 지속가능한 한국(Sustainable Korea), 스마트 한국(Smart Korea)다. 세부적으로는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양성, 사회복지시스템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환경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제, 사회, 환경이 균형있게 발전, 낭비없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정책을 말한다.
 
1장과 2장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한국식 이론과 근거를 알 수 있었다. ’지속가능’과 ’개발’이 서로 어울리는, 함께 사용이 가능한 단어나 개념인지는 애매하지만 환경정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방식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태훈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3S 전략’은 배경이나 이론적 근거가 미약해 보인다.
 
박순애와 이영미는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진화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시장 메커니즘의 활용 등 다각적인 방식에 의한 환경규제정책이 기본 조건임을 확인한 후, 환경오염을 단순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경제학적 인식이 사회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이를 통해 세대 간, 세대 내 자원의 공평한 할당과 분배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3장.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협약]에서 조용성은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전제임을 인식하고 기후변화협약과 온실가스 저감 방안을 다루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방안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이용의 확대, 에너지 절약 및 효율성 제고, 온실가스 저감기술의 개발 및 보급, 탄소 흡수원의 확대 등을 제시한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명패를 위해 OECD에 가입하였고 경제규모로만 보아서는 10위권에 올라 있지만 국제무역 협상이나 환경규제와 관련한 국제협상에서는 항상 ’개발도상국’이라고 주장하는 아이러니가 다시 생각난다. 무모한 개발과 성장전략을 펼치면서 세계 전역에 상품을 수출하고 환경을 파괴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했으면서도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모습은 ’저질러 놓은 결과만큼 책임지려 하지 않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본성을 보여준다.
 
제4장. [한국,중국,일본 간 환경 및 에너지 협력]에서 김정인은 환경, 에너지 분야에 있어 한국-중국-일본 간 상호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협력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정책 간 상호교류, 시범적인 에너지 협력 사업 시행,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협력 추진을 제시하고 중장기 전략으로는 상호 에너지 저장 협력 제도 공동 도입, 수소 에너지에 대한 공동개발, 공동 지분 투자를 통한 KO-CH-JA 은행 설립 등을 제시한다.
 
저자와 기대와 달리 내 생각에는 환경과 에너지를 위한 한-중-일 협력관계가 싹트는 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 요원한 일이라 예상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비슷한 동양문화권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내용과 수준 면에서 격차가 크고 국민들 사이의 감정적인 대립이 상당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 대한...
 
제5장.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지역에너지 자립]에서 윤순진과 이유진은 정부나 지역사회 혹은 주민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 자립마을 사례연구를 통해 그 성과와 한계, 개선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에서 진행한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국가지정 시범사업’이 취지와는 달리 관광사업이나 지역개발사업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검토, 분석한 후 살기좋은 마을에서 중요한 핵심요소 중 하나가 에너지를 자립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이어서 제주 동광빌리지, 광주 신효천마을, 홍성군 홍동면, 부안군 주산면 등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사례를 통해 성과와 한계, 개선점을 제시했다.
 
5장을 통해서 한국에서 지역 단위의 에너지 자립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미래사회에 대한 전략과 정책을 제대로 수립, 집행할 경우 국가적인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처 가능성도 높이고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중의 하나가 가동될 수 있을 것 같다.
 
제6장.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 팔당 상수원 사례]에서 김성배는 팔당 상수원 사례를 통해 지역 규제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지속가능한 수질관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규제 개선방으로 지역별 규제정책의 차등화, 오염발생 행위별 규제의 차등화, 규제수단의 다양화, 다양한 방식의 매수제도 활성화 등을 제시한다.
 
제7장. [국토 난개발 방지를 위한 도시성장관리정책]에서 황희연은 개발과 보전을 동시에 고려한 통합적 국토개발에 주안점을 두고 그 세부 대책을 강구한다. 국토 난개발을 유발시키는 요인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분석한 후 도시성장관리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제8장. [보전과 개발이 함께 가는 국토환경계획]에서 김익수는 법, 정책, 인식 등 다양한 차원의 노력을 통해 환경 개선을 담보할 수 있는 국토환경계획이 수립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계획 수단과 프로그램으로 국토환경성평가제도의 강화, 생태 네트워크 도입, 도시 생태 네트워크의 구축을 제시한다.
 
7장과 8장은 개인적으로도 대학 전공과 연관된 분야라 관심있게 읽었다.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정부와 관련하계의 주류에서 바라본 국토종합계획이 ’개발’ 중심인데다가 그 개발 마저 중장기 계획이 없는 ’마구잡이’ 개발이고 ’정치적’ 개발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저자들이 제시한 ’지속가능성’을 방향타로 하여 정부와 학계, 시민이 머리를 맛대어 국토환경계획의 지향점을 합의하고 중장기 계획을 수립, 집행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중요한 일보가 될 것이다. 
 
1장에서 8장까지 대부분 저자들이 전개한 논의와 대안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 공론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아직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하여 국내에 발간된 책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저자들의 문제제기와 방향제시는 관련 주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발간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초보적인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각 장에서 저자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배경이나 필요성, 현황과 제도에 대한 분석, 중요한 주장과 이론을 세우기 위한 근거, 이론의 도입과 전개 등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각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각각을 별권으로 확대하여 다루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부문별 논의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단락이 없는 관계로 각각의 장을 총괄적으로 바라볼 수 없도록 책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경제와 환경, 기후변화와 에너지, 도시계획과 개발 등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서로 연결될 수 밖에 없고 각 부분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든, 결론부에서든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든지, 문제제기를 종합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
 
[ 2011년 4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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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세계를 뒤흔든 선언 3
앤드류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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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도 지난 주(1월 25일) 공부모임의 부교재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주제로 하여 [시민불복종]의 등장배경과 지은이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입장과 초월주의에 대한 소개, 당대의 소로에 대한 평가, 소로에 대한 진실, 그리고 [시민불복종]의 유산과 현대로 이어지는 소로 신념의 여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저자는 [시민불복종]을 매개로 하여 소로에 대하여, 전후 여파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역자는 당초 에세이의 제목이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던 [시민불복종]이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단편일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강연제목은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
지금까지 수십 종의 판본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각급 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도 올라있다고...
 
저자의 생각으로는 소로의 정치사상적인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정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미국의 탄생과 당시 사회역사적인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1775년~1783년의 독립전쟁으로부터 태어나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작성한 건국 문서 위에 세워진 미국은 이상적인 국가, 즉 국민을 위한 국민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새로운 대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미국 앞에는 정복을 기다리는 험악한 변경이 놓여있었고 국민들은 그들이 가진 자원을 바탕으로 어떠한 도전에도 응전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미국의 독립 선언서와 미국 헌법, 권리장전에는 소로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몇 가지 개념들이 있다. 그것은 '행복추구권'과 '인민으로부터의 권력' 개념이다. 이는 소로에게 있어서 '개인에 대한 강조'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근거가 되었다.
 
당시의 초월주의 역시 소로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엄격한 청교도주의와 칼뱅주의에 대한 반발로 유니테리언주의가 탄생하였고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이러한 유니테리언주의에서 종교적인 배경을 벗어나 초월주의를 창시했다. 소로는 에머슨을 처음 만나 제자가 되었다.
 
소로와 에머슨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전해진다. 처음 만난 후 에머슨이 소로의 스승이었고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소로를 많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에머슨의 사상은 소로의 열정과 독창성에 자극받은 것이었고 문화적 계몽이 실현되리라는 소로의 통찰력도 에머슨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철학이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고 초기에 나타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이상이 사라졌다.
 
[시민 불복종]이 당시에 특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개인의 적절한 관계에 대하여, 개인의 양심과 국가의 법과의 상충 문제,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자유의 양도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많은 입장과 관념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로의 독특한 점은 그의 '문체가 가진 힘'과 '몸소 행한 실천의 상징적인 힘'이었다. 소로는 자연을 중심으로 사고만 하지 않고 직접 '월든'에 들어가 2년 넘게 생활하였고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에 대한 부당성을 글과 강연으로 주장하였으며, 부당한 정부에 대한 항의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단 하루일지라도...)
 
소로의 정치학의 토대는 도덕률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요구, 인간 속에 있는 신성, 인간 영혼의 진리성 등이다. 국가에 대한 그의 저항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소로가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시민불복종] 강연을 한 이유는 미국 북부에서 노예제 지지전쟁이라고 비판한 1846년의 멕시코전쟁과 노예제에 대한 가슴속에서 우러난 반감 때문이었다.
 
소로의 글은 당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세기 내내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어서까지 철저히 무시되었던 소로의 작품이 미국에서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20년대에  주로 야생 자연의 찬양자이자 자립적인 삶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낭만주의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로가 정치사상가로 미친 파급력은 유럽과 인도에서는 지대했으나 미국에서는 1960년대의 급진운동을 통해 그의 글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미미한 정도에 머물렀다.
 
영국에서 소로에게 영향을 받은 인물은 사회주의 언론인이자 독립노동당의 창건자인 로버트 블래치퍼드, 사회주의동맹에 가입했던 에드워드 카펜터, 신생활협회 회원인 헨리 솔트 등이 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로의 저작을 처음 접한 이후 1906년 경 [시민불복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진리의 힘'이라 불리는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를 이끌어냈다. 간디는 감옥에 들어갈 때마다 소로의 저작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소로에 대한 대접은 극과 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즘' 광풍은 전세계 미국 문화원에서 소로의 저작을 폐기하도록 만들기도 했고 1960년대에 일어난 반전운동과 마팅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로의 영향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줄어들지 않았고 911 테러전쟁 이후 시민저항 운동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민불복종] 뿐 아니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와 국가/국민 개념이 다소 다르다 하더라도, 나는 정부와 시민(국민)에 대한 관념과 입장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한국에서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관계 정립,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 정부의 정당성과 부당성의 한계,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질서(법)의 경계, 부당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대응, 비폭력과 폭력의 경계와 구분 등에 대해 폭 넓은 사회적 공감대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논의나 공감대는 정부나 정치권, 언론이나 학계가 먼저 공론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바야흐로 개인의 인식과 행위의 완결성이 점점 커져가는 시대다.
한 사람 한 사람부터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와 개념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공개하고 서로가 의견을 나누면서 전체적인 공감대를 키워야할 것이다. 
  
[ 2011년 1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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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을 멈춰라 -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
히로세 다카시 지음, 김원식 옮김 / 이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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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26일)는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된지 25주년 되는 날이다. 

이 책은 1987년 일본에서 처음 초판이 발행되었고 1989년 재판을 발행한 후, 이번 일본 북동부 대지진과 쓰나미 발생으로 인한 후쿠시마 핵(원자력)발전소 사태를 맞이하여 다시 복간된 것이다. 1986년 소련(현재는 우크라이나 지역) 체르노빌 핵(원자력)발전소 폭발사건이 유럽과 전지구에 가져다준 충격과 피해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한 책으로 24년 전에 후쿠시마 핵(원자력)발전소 사태를 예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발간된 후 이 책은 일본의 반핵, 반원자력 운동에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 사건은 1986년 4월 26일 운명의 금요일 한 밤중에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평야 한가운데서 천지를 뒤흔드는 대폭발음과 함께 체르노빌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저자가 초판을 발행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 비극의 진상은 아직 지구상에 생존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시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의 우수한 핵발전소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주장해오던 소련 지도부는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국내외 정부나 사람들에게 알리기 싫어했던 것이다.(일부에서는 당시 소련 지도부 역시 핵발전소 관리 담당자들로부터 미미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며 빠른 시일 안에 핵발전소를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허위 보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핵발전소 폭발이나 방사능 유출과 같은 재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질병으로 나타난다.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를 덮치고 엄마 옆에서 소꿉장난을 하던 어린이를 덮치고 미래의 사랑과 희망을 꿈꾸는 젊은이를 덮친다. 그들 중에서 누군가가 병에 걸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의 인생은 절망 속에 빠지고 만다. 저자는 체르노빌 폭발 사고를 통해 핵발전소의 위험과 방사능의 피해에 대해 섬뜩한 경고를 알려주고 있으며 핵발전소과 방사능의 불안정성과 위험을 감추고 알려주지 않는 구조적인 이유와 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체르노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서는 1986년 당시 체르노빌 폭발 사고의 자세한 경위와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언론 및 자료에서 나타난 사건 경위를 통해 사고의 여파와 피해상황을 도출한다. 그리고 IAEA와 소련 크렘린에서 사고에 얼마나 무책임하게 대처하고 사고를 감추기 위해 애썼는지 등에 대해 말한다.

 
2부. [재해의 예측과 현실]에서는 1945년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전후하여 미국 등에서 진행한 핵 실험에 참가한 이후 방사능에 피폭된 ’아토믹 솔저(atomic soldier)’의 이야기, 남태평양 비키니섬 핵 실험 여파, 미국 네바다 핵 실험 후 피해상황, 체르노빌 사고가 유럽 전역에 끼친 피해,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등의 경위와 방사능이 동식물에게 단기적, 장기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다룬다.
  
3부. [일본에 대사고가 일어나는 날]에서는 핵발전소의 구조와 위험, 위협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함과 동시에 그 위헙을 둘러싼 일본 정부와 기업계, 연구소와 IAEA의 인식을 다룬다. 지진대에 올라서 있는 일본으로서는 대지진과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를 통해 얼마든지 핵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4부. [원자력 산업과 저널리즘의 정체]에서는 핵발전소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허상을 지적하고 핵발전소와 에너지를 둘러싼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스차일드, 이스라엘, 모건과 록펠러 등의 세계적인 음모와 범죄행위를 폭로한다. 또한, 일본에서 핵발전소를 둘러싼 이해관계 세력들과 저널리즘을 상실한 저널리즘의 행태에 대해 밝힌다.
 
비키니섬 핵 실험, 네바다 핵 실험, 아토믹 솔져(atomic soldier), 쓰리마일 사고, 체르노빌 사고, 후쿠시마 사고,... 이 모든 핵 관련 재앙의 피해는 사고 순간부터 수 십년에서 수 백년 동안 주변 수 백~수 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서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들에게 질병을 일으킨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질병들이 유전자속에 숨어 있다가 후대에 걸쳐 영원히 질병과 장애와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현대에 이르러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핵 발전 과정에서 ’완벽한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으며, 고농축 핵폐기물 처리에 대해서는 현재 어느 국가도 제대로 된 처리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핵 발전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이성적으로도, 합리적으로도, 인권의 차원에서도, 생태계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핵 발전 포기’라는 결론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과학기술을 남용해서는 안된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100% 안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피해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핵발전소의 피해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처럼 핵발전을 반대해야 한다. 우리가 이 위험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의 아이들, 후손들에게 그 위험을 떠넘기는 것에 다름 없다. 그들이 그런 위험과 피해를 당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독일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핵발전 포기를 분명하게 합의하고 계획되거나 추진 중인 핵발전소 건립을 취소해야 한다.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기한을 정해 단계적으로 폐기해야 하고 가동기간이 종료된 핵발전소는 가동 연장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식경제부와 원자력 관계자들, 한국전력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핵(원자력)발전소를 통한 전기량 충당율이 40% 가까이 되는 한국의 경우에 전국적으로전기부족으로 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태양력, 풍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전기사용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1980~90년대 한국에서 유휴전기량이 남아돌던 때가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심야전력 할인과 산업전기 할인 등을 취소하고 전기요금을 선진국처럼 현실화함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불필요한 전력을 절약하고 절전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편하게"를 삶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오히려 ’더 많이, 더 크게’ 질병과 스트레스를 받고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해 왔고 과도한 소비생활과 부채를 가졌으며,
빈부격차와 소득불균형을 만들어 내고 물가와 대학등록금과 사교육비를 ’더 높게’ 만들고,
비정규직 증가와 청년실업율, 국가채무와 가계채무를, 공동체 와해와 환경파괴를 ’더 빠르게’ 늘리고,
그리고 ’더 편하게’ 살아감으로써 운동부족과 건강부실, 대화의 소통의 부재,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행복과 건강, 더불어 삶과 웃음과 희망을 위해 우리는 좀 더 적게, 작게, 낮게, 느리게, 불편하게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 책 속의 문장 : 
- 이제부터 시도하고자 하는 작업은 다음과 같다. 우선 20세기에 일어난 다양한 중대 사건들을 추려낸 후, 각 사건에서 도발적으로 행동을 일삼았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본다. 다음으로, 이들의 표면적인 직함을 걷어내고 한 사람씩 가계도를 정리해본다. 이것은 이들이 자본가와 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측한대로 결과가 나온 인재들이 모아지면, 그들의 행동을 역사적 사실 위에 순서를 세워 짜 맞추어 간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진상을 ‘자본의 언어’로 다시 써보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씌어진 역사서와는 매우 다른 실상이 눈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 역사책 어딘가에 하나의 커다란 금기가 있다면 모두들 그곳을 피해서 지나간다. 그러나 어쩌면 그 금기만이 진실이며, 그 금기를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자야말로 우리가 보다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필연적으로 맞서야 할 유일한 대상이 아닐까? 기존의 역사 해석의 중대한 과오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기업 패밀리, 요컨대 자본가 구성원의 계보에 대하여 단 한번이라도 정밀하고도 체계적인 조사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를 그려나간 최고 책임자를 여지껏 한 차례도 분석해 본 적이 없는 인류.. 결국 지금까지 우리는 이성을 키울 만한 지식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는지.. (/ 본문 중에서)
 
[ 2011년 4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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