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지음, 김유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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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 주 공부모임 교재이며, 지난 달 초에 세미나를 했던 박상훈 저 <정치의 발견>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도 읽고 싶었다. 유럽의 현재 정치관계와 구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과거 역사적으로도 독특한 과정을 겪었고 18세기 이후 300년 넘도록 전세계에 걸쳐 정치,경제,사상적인 토대를 지배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서구보다 우월한 것 같은 동아시아의 정치사상적인 흐름마저 20세기를 거치면서 주도권을 서구 정치사상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20세기 내내 내부적인 실험을 거듭하여 21세기의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과는 또 다른 정치사사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유럽사회 전반에 흐르는 '복지국가'의 모습은 한국을 비롯한 중진국이나 후발 개발도상국의 지식인이나 민중들에게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인류역사가 21세기의 나머지 90년을 어떻게 진행될 지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공부해보고 싶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는 20세기 초반 유럽의 모습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유럽에서 직접 공부하거나 유럽 관련 전공자가 아닌 보통의 한국 사람들 역시 대부분 나와 비슷할 것이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 역시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등 당시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것이 전부일 것이다.
 
저자는 유럽의 20세기 정치사상적인 전개과정, 특히 유럽의 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가 상당히 다른 모습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에 대해 문제제기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책으로 발간하였다. '일반적인 담론'이라 함은 통상적으로 20세기, 특히 20세기 상반기의 유럽이 자유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관점과 자유주의가 사회주의자 및 자본주의와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관점을 말한다. 그리하여 20세기 후반에 최종적으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지구상의 사회를 조직하는 최상의 방식임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또는 통념)은 미국과 영국의 대부분의 학자들, 그리고 일반적인 학자들 사시에서 주류적인 시각이고 이론이다. 당연하게도 한국 역시 주류 이론 역시 그러한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담론 내지 통념이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라고 정정한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하나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며, '중요한 하나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불화를 겪어 왔다는 사실"을 의미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불화와 대립에 대한 언급은 마르크스주의자들 뿐 아니라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인 존 스튜어트 밀, 알렉시스 토크빌,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의 의견도 일치한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대중에 의한 전제정치와 계급 입법으로 귀결될 것"임이 분명했다. 따라서 저자가 판단하건대, 유럽의 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가 그토록 다른 모습을 띤 이유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서로 적대적이었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과정이 너무도 확고하게 진행되어 "이제 인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그리고 사회적 안정과 진보를 위해 당연히 필요한 공통의 전제조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럽에서 20세기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과 공존의 과정을 다루면서 사회민주주의가 궁극적인 정치사상적인 대안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을 입증하려 한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20세기의 승리자는 자유주의나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이"라고 먼저 결론을 내린다.
 
제1장. [서론] 18세기 들어 태동하기 시작한 자본주의는 20세기 초가 되자 유럽 전역으로 확장됨과 동시에 전반적으로 확장되었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에게 자신의 지위와 생활을 주로 특정 집단 혹은 공동체에 의해 규정되던 세상을 종말을 의미했고 개개인의 정체성과 생계를 시장에서의 지위에 의존하는 체제로 이행하게 만들었고 공동체도 붕괴되었다. 따라서 근대화가 파괴한 사회적 통합을 정치적 수단들을 통해 재창조해 내느 것은 근대사회가 직면한 주요 도전 과제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유럽 사회는 1920~30년대 들어 경제적 붕괴와 사회적 대혼란을 겪으면서 대중은 근대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 없는 안정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적 보호를 다시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가 대중들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나치즘),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는 그러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무대 위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라는 해결책은 민주주의의 희생과 인권 유린을 동반했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등장한 것이 사회민주주의였다. 자유주의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중심주의와 수동성을 거부하면서, 그리고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의 폭력성을 회피하면서, 사회민주주의는 저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에 대한 믿음 위에 세워졌으며, 사회주주의의 비마르크스주의적 비전을 나타냈다.
 
제2장. [배경과 기반]에서 저자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배경과 기반을 탐구한다. 19세기가 마감될 무렵, 정통 마르크주의에 대한 불만의 증가, 그로 인해 열린 정치 공간, 그리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일어난 수정주의 운동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다룬다.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와 카우키에 의해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적이고 과학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경제적 힘의 우선성과 계급투쟁의 불가피성에 기반하는 교리를 창조했다. 마르크스주의에게 국가나 정치는 '하부구조'에 의존하는 '상부구조'의 하나로써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사라지는 운명일 뿐이었다.(마찬가지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 역시 국가나 정치는 '시장경제'의 보조물에 불과했다.) 자본주의 내부 모순의 격화가 결국 체제를 끝장낼 것이라는 과도한 교리는 사회주의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에게 오직 수동적인 대응만을 주문할 뿐이었다.
 
19세기 후반 베른슈타인이 역사 유물론을 포기하고 대중 정치활동을 주장하면서 제기한 '점진적 사회주의'는 엥겔스,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등으로부터 '수정주의'라고 비난하였다. 마르크수주의자들은 '사회주의는 경제 발전과 계급투쟁의 불가피한 결과인가, 아니면 민주적 정치 활동과 계급 교차적 협력의 귀결인가?'에 대해 뜨겁게 논쟁을 벌였고 교리와 원칙은 주류 자리를 지켰다.
 
제3장. [성숙해진 민주적 수정주의]에서 저자는 어떻게, 왜 민주적 수정주의가 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 서유럽에서 퍼져 나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개별 사회주의 정당들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 더 넓게는 유럽 정치 전반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자 정당, 그리고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은 의회에서 많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의석을 차지하기도 하였지만 원칙을 강조하면서 계급투쟁과 관련한 국가와 의회의 역할, 정부에 대한 참여, 농민 등 노동계급 이외의 계층에 대한 협력, 민주주의, 민족 문제, 부르조아 정당과의 협력 등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그에 따라 제1차 세계대전을 향해 가던 시기 동안,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공식적 이데올로기로 남아있었음에도 점점 더 포위 공격을 받았다. 베른슈타인, 조레스, 투라티, 오토 바우어, 칼 레너 등을 중심으로 많은 사회주의자들을 민주적 수정주의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세4장. [혁명적 수정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에서 저자는 정치적 담장의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러시아 혁명을 필두로 하는 혁명적 수정주의의 출현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어떻게 그리고 왜 유럽의 우익 인사들이 비마르크스주의적, 민족적 사회주의를 선동하기 시작했는지를 추적한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데 경제보다는 정치의 우선성을 강조하였고 민주적 수단이 아니라 혁명적 엘리트들의 정치,군사적 노력을 통해 강제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여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조루즈 소렐은 '파국을 위한 폭력투쟁의 필요성'이라는 혁명적 수정주의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 전파하였고 이탈리아의 풋내기 무솔로니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사회적 통합과 공동체주의를 주장한 민족주의자들은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공통점을 찾아낸다.
 
제5장. [수정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에서 저자는 1차 세계대전과 그 결과에 대해 다룬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새로운 정치 지형이 어떻게 미누적 수정주의자들을 완숙한 사회민주주의자로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는지를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회주의 정당들이 각 정부의 전쟁을 지지하고 참여하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두 기둥인 계급투쟁과 역사 유물론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전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 정당은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였음에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와 원칙에 발목이 잡혀 민중들의 욕구를 실현시키지 못했다. 그 사이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은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 계급 교차적 협력, 민주주의아 민족주의적 과제를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꾀한다. 한편, 그 사회주의 정당과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이용하여 독일에서는 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가, 이탈리아에서는 민족파시스트당이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제6장. [권좌에 오른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에서 저자는 비슷한 요인들이 어떻게 혁명적 수정주의자들을 파시시트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의식있는 민족주의자들을 민족사회주의자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는지 살펴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현존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 계급 갈등과 사회적 분열의 종식, 사회보장과 경제부흥, 계급 포용과 국민적 정당 구성을 중심에 세워 독일 민중과 이탈리아 민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었다. 민중들은 대신 정통 마르크스주의, 복수 정당체계, 인권, 민주주의, 자유 등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6장은 사회적 양극화와 사회통합의 붕괴라는 현실에서 기존 정치세력이 대안을 민중에게 제시하지 못할 경우 파시즘과 대중독재가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0년 간의 진보세력의 실패가 이명박 독재정권의 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런 가능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제7장. [스웨덴에서만 가능했던 이유]에서 저자는 모범 사례로 스웨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본다. 이를 통해 스웨덴에서 사회민주주의적 헤게모니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의 사회주의 정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원리들로 일찍이 전향했다는 점, 그리고 그에 상응해 민족주의적 우파의 의제와 표현들을 선별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 있음을 보여준다.
 
1~6장과 7장은 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구권의 해체와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념과 비전의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의 진보정당과 세력들이 고민할 지점일 것이다. 특히 21세기 한국 정치사상의 흐름과 2011~2012년 주요 선거에서 진보정당과 세력들이 한국 대중의 요구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수렴해야만이 지지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제8장. [전후 시대]에서 저자는 20세기 후반 전후 유럽의 안정이 갖는 의미와 본지를 재평가한다.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그리고 왜 지난 4반세기 동안 자신의 길을 읽어버리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유럽 각국은 마르크스주의 정당 및 사회주의 정당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고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 자유주의적 시장 경제에 개입하여 통제하고 사회복지를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회복하고 사회 전체의 통합과 공동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 각국의 사회민주당은 자신들의 옛 강령과 주장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에 화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태도와 정책는 20세기 후반 그동안 자신들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청년과 빈곤층, 실업자, 소외된 사람들의 지지를 상실했다.
 
제9장. [결론]에서 저자는 다양한 학술 문헌과 현재의 정치 현실에 대해 이 책의 중심 주장이 지니고 있는 함의를 강조한다. 또한 사회민주주의 이야기는 단순히 옛 이야기를 흥미 차원에서 풀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그것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 뿐 아니라 발전의 도상에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 모두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전제 조건임을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고유의 색깔을 지닌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적 원리와 정책은 전 유럽에 걸쳐 폭 넓게 받아들여졌으며 유럽이 자랑하는 전후 안정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는 자본주의의 가혹한 영향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보호하는 정책들로,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안정에 대한 새로운 강조로 이어졌다. 달리 말해 전후 질서는 20세기 초반에 걸쳐 국가 - 시장 - 사회 간에 존재해 왔던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던 것이다.(p.298)" 그리고 사회민주주의가 민족사회주의나 파시즘과 추구하는 바가 일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정적인 특징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소련 체제의 해체로 인하여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 어느 누구 하나 미래의 새로운 이념과 비전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새로운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나에게 막연하게 인식되어 왔던 '사회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나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 어느 누구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사회주의를 막연하게 '사회주의 + 민주주의'로 인식해 왔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런 단순한 공식이 실제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핵심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차피 21세기 자본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본래의 의미의 자본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다. 어떻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질 수 있나? 
 
또한, 이 책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의 변화과정에 대해 짧지만 효과적인 공부가 되었다. 대학 시절 단순하게 마르크스 요약 전집, 러시아 혁명사나 유럽 혁명사, 파리 꼬뮌, 로자 룩셈부르크 등을 읽은 정도에 불과했다.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세계적인 노력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제프 엘리의 <The LEFT>를 읽고 싶었는데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읽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사회주의에 대한 수용이 상당히 왜곡된 편이다. 일제 강점 이후 러시아와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전달, 수입된 사회주의는 일제에 의한 조선의 멸망으로 이념과 비전을 상실한 한국민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였을 것이다. 반일 민족해방투쟁의 중심 세력이 사회주의자들이었음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이나 베트남, 중남미 아메리카,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회주의로서의 레닌주의, 스탈린주의는 한국 사회주의자들에게 왜곡되고 편협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 사회주의 혁명과 북한의 존재는 또 다른 유형으로 다가왔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냉전체제와 남북 분단, 군사독재 등으로 인하여 유럽과 달리 사회주의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논의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를 유력한 대안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적이고 광범위하게 정치계와 학계, 시민단체에서 논의할 수 없는 현실은 한국사회에게는 또 다른 질곡이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파괴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사회주의 및 사회민주주의의에 대해서도 성숙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진보정당과 진보적인 의식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한 사회민주주의의 특징, 즉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학고한 믿음은 굳이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중심적인 테제나 목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사회 전반에 당장 필요한 것들이다. 한국에는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회민주주의적 특징이 미약하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전사회적인 거부감, 각종 공동체의 붕괴,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불신과 부정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굳이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 가지에 대한 전 사회적인 논의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과 스웨덴, 핀란드, 독일, 프랑스는 다르다. 한국에 맞는, 한국의 역사에, 한국의 현실에, 한국민의 정서와 요구에 맞는 한국식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 책 속의 책 : 칼 마르크스 <자본론>, <공산당 선언>,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 책 속의 문장 :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우선 마르크스의 수많은 예언들이 실현되지 않았다. 19세기 말이 되자 기나긴 불황 이후 유럽 자본주의는 새로운 활기를 얻었고, 부르주아국가들은 중요한 정치?경제?사회적 개혁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 19세기 후반 무렵, 마르크스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던 정당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정치 행위자가 되어 있었지만,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전략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 20세기로 들어설 무렵, 많은 좌파들은 난처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즉 마르크스주의적 기획을 탄생시킨 가장 큰 동기였던 경제적 부정의와 사회적 분열은 그대로였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번성했다.
 
- 물론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화염 속에서 몰락했다. 반면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그 이후부터 가장 큰 성공 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전후의 안정the postwar settlement을 자유주의의 승리로 해석해 왔다. 비록 그것이 다소 순화된 형태의 자유주의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유럽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민주주의와 훨씬 관련이 깊다. 전후의 합의는 국가-시장-사회 간 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한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은 이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회적 이익은 이제 사적私的 특권보다 당연히 우선시되었다. 그리고 국가는 '공동의' 또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와 사회에 간섭할 권력(아니, 의무)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달리 말해 1945년 이후 사람들은 국가를 사회의 보호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경제적 우선순위는 종종 사회적 우선순위보다 뒷자리로 밀려났다. 그 결과 오랫동안 공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것들, 즉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성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졌다. 이 새로운 체제의 기초가 전통적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체제가 정말로 닮았던 것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옹호했던,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파시스트들과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원칙과 정책이었다.
 
[ 2011년 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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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복지국가 이야기 3
이상이 편저 / 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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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그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 인정받은 것은 4.27 재보선(보궐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예상 외로 참패한 후, 한국 정치계에 보이지 않는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 증거로 보인다.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이후 소득 양극화와 공동체 위기 상황에서 경제를 살려달라는 민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여론과 비판세력들의 의견을 묵살하면서 재벌과 대기업,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했다. 이번 선거는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이어 다시 한 번 국민들의 요구사항이 드러난 결과였고 이에 따라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가 1년 남짓한 시점에 위기감이 커진 한나라당 소속 비주류와 일부 주류 국회의원들 마저 이명박 대통령과 주류의 전횡을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집권여당이 민심을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니 만큼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제도 개혁과 정책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된 셈이다. 벌써부터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부자감세' 정책 철회와 '전세가 상한제'에 대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과 시민사회세력이 현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집중한다면 한나라당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정책들이 이명박 정권에서도 가시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이번 4.27 재보선에서는 '반MB'와 '야권연대'의 분위기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출되지 못했지만, 2010년 이후 한국의 유권자들과 국민 대다수는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와 양적 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공동체 회복과 질적 성장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분위기는 서구 국가들의 역사과정에서 보이듯이 1인당 평균 GDP가 2만불을 넘어선 시점에서 당연한 흐름이며, 한국의 경우 남북분단과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관계로 지금까지 지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무상급식'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며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지자체장과 지자체 교육감이 수도권 중심으로 대거 당선된 것이 그 단초일 것이다. 
 
최근의 정치사회적인 분위기는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복지국가' 패러다임이 후보들의 핵심적인 공약 중 하나로 떠오를 것임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육아, 교육, 의료를 걱정하지 않는 세상, 즉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제안하는 보고서다. 중산층까지 혜택을 받는 복지국가를 꿈꾸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저자들이 불안한 우리 삶에 한국인이면 누구나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꿈을 제안한다.  

*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란? :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7월 설립되었고 국회 사무처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사단법인이다. 이들은 존엄, 연대, 정의의 3개 핵심가치가 호혜적이고 능동적인 사회발전과 균형적이고 안정적인 경제발전이 함께 이루어지는 역동적 복지국가 안에서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음을 굳게 믿는다. 최병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회장,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래경 일촌공동체 운영위원장, 이태수 사회복지대학교 교수가 공동대표이고 장하준 교수와 조국 교수 등이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사회 복지국가로의 이행 필요성과 논리를 살핀다. 우리나라 사회경제체제의 신자유주의적 발전과 양극화의 심화, 이로 인한 '민생의 5대 불안'을 분석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불안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과 보편주의 원칙을 소개하고, 한국 사회에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 방향을 모색한다.
 
1부. [논리와 전략]
01장.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이상이) : 저자는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장악한 과잉금융화의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회경제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종지부를 찍고 영국식이나 독일식이 아닌 북유럽식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통해 '개인이나 가족이 시장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의 인간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복지국가를 논리와 전략으로 제시한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사회적 영역의 대대적 확장, 보편주의 사회정책, 개방과 유연성이 담보된 지속적 경제성장,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시스템적 조화와 조정 등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독특한 비율 '9 : 1' - 공공보육시설 대 민간보육시설의 비중, 공공의료기관 대 민간의료기관의 비율, 국공립대학 대 사립대학의 비율 => 신자유주의가 과도하게 침투한 사회분야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문제점으로는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구조와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계, 그리고 신자유주의 가속화로 인한 성장잠재력 약화와 혁신동력 창출이 불가능한 경제구조로 인해 삶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데 저자는 그 결과를 [민생의 5대 불안]으로 요약한다. 5대 불안은 일자리 불안, 보육 및 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건강 불안이다.
 
저자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3대 가치를 '존엄, 연대, 정의'로 세우고 이를 위한 사회경제체제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 개념을, 이를 위한 전략방향으로는 탈상품화와 노동진영의 강화 전략, 보편주의 전략,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조세재정 전략, 정치사회 주체의 연대를 제시한다.
 
2부. [보편주의 복지의 주요 제도]
02장. 노동시장과 고용정책의 현황과 과제(은수미) : 한국 사회경제 구조에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확대와 비정규직-비임금 근로자-비경제활동인구의 '3비 악순환 고리'의 원인으로 '배제적 노동시스템'을 지목하는데 이는 분절적 노동시장, 기업별 노사관계, 기여 중심의 취약한 사회보험의 결합구조를 말한다.
 
저자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배제적 노동시스템'이 '포섭적 노동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함을 주장한다. 차별적인 두 개의 노동시장을 하나로 만들거나 격차를 줄이고, 전체 노동시장을 하나의 노사관계의 원리에 의해 보호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세부 과제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리 구현, 비정규 입법에서의 차별규제 강화, 정규직 전환 유도, 간접고용 확산 억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거래 철폐, 조합원 범위 확장,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제도 변경, 고용보험 가입 확대, 제2의 고용안정망 형성 등이다.
 
03장. 아동보육과 육아지원정책의 현황과 과제(이상구,이숙진,백선희) : 꾸준한 연구, 분석 결과 저출산의 주 원인의 1위는 자녀의 보육 및 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며 2위는 양육부담의 여성 편중과 사회적 지원의 미비로 나타난다. 현재 한국의 육아지원 정책은 양적인 부족(대상자 중 40%가 제외)과 질적인 부족(낮은 공공시설의 비중과 부실한 질 관리체계), 그리고 보육과 유야교육의 양극화,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제도의 부실, 줄어들지 않는 빈곤아동 등 모든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저자들이 복지국가를 위해 제시하는 육아지원정책 방안은 [영유아보육법]에 정부 책임 규정, 공공보육시설의 적정 수준 확충(시설수로는 5.5% -> 28.3%, 아동수로는 10.9% -> 34.3%, 이상 양적인 문제 해결방안), 시설 평가인증제도에 처벌조항 및 강제시정명령 포함, 평가결과 공개와 문제시설 공시 의무화, 평가인증의 기준 강화, 현장 확인평가 강화, 평가지원 체계 정비(이상 질적인 문제 해결방안), 기존 표준보육료 산정방식 개선 또는 보육수가의 단계적 현실화, 시설 표준회계 준칙 도입, 보육비 지원 수준의 상향과 추가징수 비용에 대한 적극적 관리(이상 양극화 해결방안), 산전후 및 육아휴직 대상자 비정규직으로 확대, 육아휴직 급여수준 현실화 및 남성 참여 확대, 업무공백 절감 제도 도입, 복귀여성 재교육(이상 휴가제도 해결방안), 아동수당-10만원-제도 도입 : 1단계 연간 1.28조원 ~ 4단계 연간 5.8조원(이상 빈공아동 해결방안) 등이다.
 
04장. 교육정책의 현황과 과제(이상구,안승문,김미숙,윤종훈) : 저자들은 그동안 교육정책에 대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모두의 논의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교육기회의 불평등성, 교육을 통한 경제적 양극화 심화, 교육경쟁력 약화, 영리가 목적이 되어버린 대학 등을 교육정책의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 문제점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분석이 부족함.
 
저자들은 복지국가 교육정책의 이론적 배경으로 '인적자원 개발'로 삼는다. 교육정책이 "생산력 발전의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교육정책은 경제정책 및 산업정책과 연계되고 폭 넓게 이해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그 위상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산업 및 고용구조와 괴리된 대학입시제도만의 논의로는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대학교육 문제를 외면하고 초,중등교육에 치중한 정책만으로도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결국 대학의 혁신적 개편과 기능의 변화 없이는 미래 지향적인 산업구조의 개편과 경제발전을 기약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복지국가를 위한 교육정책의 대상과 범위에는 전통적인 교육정책의 영역, 다수의 인력이 종사하고 고부가가치를 지닌 산업적 측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평생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고용정책으로서의 역할 저출산 문제의 해결과 노동력 재생산 등의 인적자원 개발정책이자 인구정책으로서의 역할, 고령화 시대에 맞춘 퇴직자 재교육을 포함한 평생학습 등 노인 정책으로서의 역할, 지역 산업클러스터의 핵심적인 역할 수행을 통한 지역경제성장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 궁극적으로 연구개발과 신기술 창조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보장하는 산업정책과 경제정책으로서의 역할이 공시에 고려되어야 하며, 각각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세부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결론으로, 교육정책의 방향은 복지의 일환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제공, 교육은 개인의 발달과 공동체의 통합 그리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의 가치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 졸업생들의 취업은 학교와 국가, 지자체가 함께 책임, 직종간과 학력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대책과 동시 추진이며, 추진 과제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 제고, 사립대학의 구조조정 및 일반대학의 기술교육 중심 대학으로 전환, 교육계의 폐쇄성과 관료화의 극복, 교육투자확대 등이다.
 
세부과제로는 초중등학교를 창의력 중심으로 전면 개편, 교육에 대한 국가 투자 확대(보육/육아지원 대상자를 59% > 90%로 / 초중등 이상 교육재정 1차년도 6.4조 -> 4차년도 13.8조로), 과잉 대학진학율의 정상화(진학율을 50%로 & 평생학습체계)와 대학입시제도의 개편, 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개편과 조정, 전국에 10개 이상의 연구중심 대학 육성 등이다.
 
05장. 건강증진과 건강형평성의 현황과 과제(김철웅,정백근,윤태호,김수영) : 저자들은 건강의 결정요인을 살펴봄으로써 건강과 건강증진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건강형평성의 의미와 중요성을 기술하고 이를 기반으로 건강증진과 건강형평성의 제고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과 국가 보건의료부문의 전략, 그리고 지역사회 차원의 전략을 제시한다.
 
먼저, 건강한 삶이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므로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보편주의에 근거한 의료보장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의료보장제도 이외에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생물학적, 물질적, 사회심리적, 물리적 측면)이 존재하기 사회경제 전체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근의 연구분석 결과상 생애 초기인 태아기, 유아기, 아동기 동안에 불건강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들은 '건강형평성' 개념을 도입한다. 이는 한 사회에서의 건강증진의 개념은 단순하게 평균적 수준의 건강향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인구집단의 건강향상을 통해 전체 인구집단의 건강수준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증진과 건강형평성 제고를 위한 전략 중 국가 차원의 정책 방향과 전략으로는 건강증진과 건강형평성 제고를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제공과 공중보건사업의 확대,강화 등과 같은 국가보건의료체계 내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는 국가 차원에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요인 등에 대응하는 많은 정책을 폭 넓게 다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보건의료부문의 전략으로는 영유아 건강불평등 문제의 우선 해결해야 하며, 의료필요의 크기에 따른 보건의료자원의 배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 차원의 건강증진 및 건강형평성 제고 전략이 제대로 수립, 시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사회 차원의 전략 자체가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지역사회 차원의 부문 간 협력체계 구축, 지역사회 공공보건의료 전달체계의 구축 및 활용,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증진 및 건강불평등 해소 전략 등을 제시한다. 
---> 재정규모와 전략이 없어 실현 가능성 판단이 어려움
 
06장. 국민건강보장과 의료정책의 현황과 과제(박형근) : 여기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의 주요 현황에 대한 분석과 고찰을 통해 복지국가 방식의 보편적 의료보장 추진 원칙과 방향을 도출하고, 우리 현실에서 보편적 의료보장을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분석한다.
 
먼저, 이명박 정권의 의료정책은 영리법인 병원 허용, 일반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 의료기관 정보공개 활성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추진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미국식 의료제도로 재편을 예고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국민 의료비 및 국민건강보험제도 관련 주요 현황을 살펴보건대, 결과적으로 의료 격차 확대와 건강 불평등성의 악화, 공공의료보험 체계 붕괴, 환자와 국민의 의료비 부담 가중 등을 초래할 수 있어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의료공급 구조와 의료시장의 주요 현황을 보면, 의료공급 구조의 특성으로 민간의료기관 중심의 의료공급구조(의료기관의 90% 이상이 민간의료기관, 계속 증가 : 2000년 기관수 기준 91.2%, 병상수 기준 85.3% -> 2007년 각각 93.5%, 90.5%로 증가)와 이미 공급과잉인 급성병상(2007년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수 7.1 : OECD 평균은 3.8%), 그리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의료기관과 급성병상(2001년 대비 2009년 증가율 : 종합병원수 16.7%, 병원 106.3%, 의원 29.3% 증가 / 병상수는 91.7% 증가)을 들 수 있으며, 주요 시장 상황은 재벌병원이 주도하는 의료기관 간 고급화-전문화-대형화 경쟁의 심화로 요약된다. 이는 방치할 경우 계속 증가하는 국민건강보험 급여비로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 발생과 이로 인한 보험료 상승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현상의 도래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된다.
 
저자는 의료를 통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합리적 목표를 제시하면서 복지국가를 위한 보편적 국민건강보장체계의 구축 전략으로 국민건강보장제도의 개혁, 의료공급체계의 개혁을 주장한다. 국민건강보장제도의 개혁 방향으로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의 대폭 강화와 중증질환 무상의료의 실현,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영역(초음파 검사, 진단검사, 특진비등)의 해소와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완전한 작동(100만원 수준으로), 국민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효율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제시하고 의료공급체계의 개혁 방향으로는 병상과잉 해소와 무한경쟁구조의 합리적 경쟁구조로의 재편(지역별 병상총량제 도입, 필요증명 제도의 도입), 의료 인프라의 균형발전을 위한 지원 및 관리체계의 구축('의료 인프라 발전기금' 신설, 인프라의 균형발전 지원), 의료 인력 확충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 지원(의사등급제 신설, 간호등급제 기준 강화,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의 확대), 의료전달체계의 강화(주치의 제도 도입, 외래진료 차등수가제도 확대)를 제시한다.
  ---> 재정규모와 전략이 없어 실현 가능성 판단이 어려움
 
07장. 국민연금과 노후소득보장의 현황과 과제(이태수) : 현재 노후소득의 문제는 당장 현재 시점에서 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해 적정한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노인인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와 시간이 지나도 현재의 국민연금제도가 노후의 소득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미래 시점에서도 이러한 노인빈곤 문제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임을 밝힌다.
 
현재의 노후소득보장체계의 현황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빈곤 인구의 31.6%와 전체 노인의 8.1%(빈곤 노인의 29.3) 밖에 적용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 인구(200만 가구, 410만 명)가 과도하고 기초노령연금제도가 2009년 현재 전체 노인의 70%에게 최대 88,000원을 지급하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제도의 경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인구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고 노후 소득보장 수준이 미약하며, 장기적으로 재정적인 불안정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저자는 연금제도 개혁의 본질은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을 막는 것이 아니라 노인부양에 소요되는 재원의 총량을 사회 전체가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연금제도 개혁 목표를 그 개혁 전 국민의 적절한 노후소득보장, 재정적 지속가능성의 확보,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과 유연한 제도의 정착,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수용성의 제고로 두고서 그 방향을 '기초연금 + 최저연금 보장형 소득비례연금'으로 제시한다.
 
기초 연금제는 과거에 상관 없이 일정 연령에 도달하는 사람에게 일정 금액의 연금(1인당 GDP or 평균임금의 10%)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초 연금에는 부분적으로 대상자를 제한이 필요하며 기초연금의 재원은 일반예산(조세)로 충당토록 한다. 재원의 규모는 2010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10.88%로서 총액은 GDP 대비 0.86~1.28%가 되며, 2050년에는 노인 인구비율이 37.29%로서 총액은 GDP 대비 2.09~3.13%로 크지 않다는 것....  최저연금보장형 소득비례연금은 최저보장연금 수준은 독신 평균소득의 30%, 부부 45%로 수급요건 등을 조건부로 계획한다. 재정의 규모는 2050년에 GDP의 1.73%...    
---> 재정규모와 전략이 없어 실현 가능성 판단이 어려움 
 
3부. [조세재정 개혁의 논리와 전략]
08장.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재정정책의 방향과 과제(정세은) : 저자는 부시 행정부에서 실시된 감세정책을 분석하면서 경기부양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으며 소득양극화를 심화시켰음을 지적하면서 복지지출의 경우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기여함을 주장하면서 선진국의 재정조세정책의 경험과 시사점을 고찰한다. 그리고 동일하 선상에서 이명막 정권이 추진하는 감세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OECD 선진국들의 정책을 비교,검토했을 때 보편주의 복지국가 전략과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일수록 경쟁력도 높고 삶의 질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OECD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한국의 정부 지출규모는 2007년 GDP의 31.1%이고 OECD 평균은 40.7%이다.(유로권은 46.9%, 미국은 36.6%) 사회보장 지출에 비해 국방, 교육(사교육 등 포함), 경제부분의 지출이 지나치게 높다. 재정 수입에 따라 지출을 계획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가재정이 매우 보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복지 수준이 경제발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OECD 복지지출 평균은 1인당 GDP가 1만 달러일 때 GDP의 18.8%, 1.5만 달러일 때 20.9%, 2만 달러일 때 23%인데 비하여 한국은 2001년 1.7만 달러였을 때 GDP의 6.1%에 불과했다.
---> 문제점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분석이 부족함.
 
저자는 공평과세 강화 증세 전략은 예산 절감(수의계약을 최저낙찰제로 변경시 연간 6.6조원 절감)과 탈세 방지(자영업자의 탈세액 연간 7.4조원) 및 공평조세를 통한 재원 마련(6조원), 평균 실효소득세율 인상을 통한 세수의 확대, 사회보장분담금의 기업 기여비율 증대, 부동산 보유세 강화, 비과세 및 감면 혜택의 축소, 금융자산 양도차익 과세, 금융소득 과세, 간이과세 제도 개혁, 누진소득세 재편 등을 제안한다.
 
4부. [정치사회적 전략]
09장. 복지국가를 위한 노동운동의 역할과 전략(오건호) : 저자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가계 운영을 위한 임금을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으로 정의하여 각각의 성격을 분석한 후 한국의 경우 가계 운영비 대비 사회임금 비율이 OECD 평균(31.9%)에 비해 턱 없이 낮으므로(7.9%) 이에 대한 확대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사회임금의 예로는 의료서비스, 공공임대주택, 공공대중교통, 공공에너지 서비스 등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사회임금을 전면에 내걸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사회임금이 소득재분배 기능을 통해 시장임금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노동자 내부의 연대를 강화시켜주며, 노동운동의 정치적 도약을 도와주고 계급간 이해관계를 드러내어 계급정치의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임금 확대를 위한 노동운동의 역할로는 사회임금 확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한 '재정요구안'을 마련해야 하며, 직접세 확대를 통한 국가재정 확보하기 위해 노력(사회복지세 신설 검토)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여 복지 체험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전략으로 노동운동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를 우선에 두는 활동에 주목하고 선도적으로 나서는 '참여적 재정운동'이 필요함을 제시한다. ---> 구체적인 추진방안 미흡
 
10장. 복지국가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개혁 전략(이종석) : 저자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즉 수입과 지출 현황을 분석하여 핵심적인 문제점으로 낮은 재정 자립도, 지자체간 심각한 재정 격차, 낮은 재정 자율성, 보조사업 증가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부담 가중, 국민혈세 낭비 등을 지적한다.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은 당연히 열악한 복지사업으로 귀결된다.
 
지방재정 확충과 재정격차 완화를 위하여 저자는 국세의 지방세 전환과 지방교부세 확대 및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지방소비세는 규모가 너무 작아 지자체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수도권과 지방간의 재정 격차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명박 정권의 감세로 인하여 매년 8조 원의 지방재정이 감소하는데 지방소비세는 겨우 2조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자체의 재정자율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국고보조사업을 재정비해야 하고 집행에 대한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확대시켜야 함을 주장한다.
 
11장.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이상이) : 저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의료, 노인요양, 아동 및 가족 서비스 등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사회 전체적으로 크게 늘어났으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처함과 동시에 해당 사회가 불안정 속에서 퇴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반대로 사회서비스는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도 매우 유익한 영역임을 지적한다.
 
저자는 사회서비스가 인권 또는 사회권이라는 원칙 하에서 규범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는 것이 타당하며, 이러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편익이 더 크다고 하면서 이때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 됨을 설명한다.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체계를 통해 생산,전달되는 사회서비스의 거시적 효율성과 재원조달의 형평성, 사회서비스 이용의 형평성을 높여야 하고 사회서비스의 질도 높여야 함을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재정투입 비율, 공공병원 수의 비율 등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공공지출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2010년 현재 약 36조 원인 국민건강보험 재정 규모를 33% 정도 더 늘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의료재정의 '공공 재정체계 + 보충형 민간보험'의 혼합이 적절함을 제시한다. 이외에도 사회서비스로는 보육, 교육, 노인, 아동, 가족, 장애인 서비스가 있는데 무상 보육과 무상 교육의 확대, 대학등록금의 완전 후불제, 아동수당 도입, 노인장기요양보장의 확대 등을 추진해야 한다.
 
12장.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전략(홍기표) : 저자는 현재 민주당-한나라당 중심의 양당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의 정치지형이 영남고 호남이라는 지역대결구도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대중이 과거의 낡은 정치지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로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당'을 건설하는 것이며, 특히 '복지국가 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의 건설에서 출발해야 함을 주장한다. 당 건설의 원칙으로는 기존의 정치에너지를 재구성할 것, 평당원체제를 당의 기초로 삼을 것(당내 민주주의 문제),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단일 통합강령이 전제될 것을 제시한다.
 
저자는 복지국가 노선의 정치세력화는 '87년 체제'의 극복과 다음 단계의 정치지형 수립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87년 체제'라 함은 '자주와 평등'이라는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의 정치지형으로 저자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득표 비례 방식의 수정을 통해 내각제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이상이 교수를 비롯한 18명의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정책위원들의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논리와 전략'은 복지부분의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이론적 고찰과 해외 사례 분석, 한국의 현황과 동향에 대한 검토와 전략과 정책 대안을 마련하였다. 이 책은 한국에서 복지분야에 대한 보기드문 역작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인 '보편주의 복지'의 이론적 배경이 그동안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던 시혜적인 복지나 선별적인 복지, 나아가 시장주의적 복지에서 벗어나 21세기 한국의 미래와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반드시 필수적인 전략과 정책임을 제시한 것이 가장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데 공감한다.
 
복지국가 패러다임은 IMF 이후 심화되고 있는 소득 불균형과 빈곤층의 증가, 사회 공동체 파괴, 빈부격차 확대와 심리적 박탈감, 경제활력 감소와 각종 민생불안 등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여 의욕과 자신감을 불러 넣을 수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현실성은 이들의 이론과 전략, 정책과 실행방안을 바탕으로 지난 5월 12일 복지국가를 목표를 향한 단일정당 건설 운동의 닻을 올리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동안 회의체 형식으로 운영되어 오던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이 조직을 정비해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를 꾸려 이날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보편적 복지 실현'에 동의하는 야당과 시민단체, 학계 등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이 폭 넓게 참여하는 운동으로서, 내년 총선고 대선을 앞두고 진행 중인 통합과 연대 논의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한겨레 5월 12일자 기사, 석진환 기자)
 
물론, 저자들의 이론적 배경과 현황 분석, 치밀한 전략과 정책대안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4장. 교육정책과 8장 조세재정정책은 현재 상황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치밀하지 않은 것 같고 5장과 6장의 건강형평성과 건강보험 시스템에서는 재정 분석과 정책방향이 구체적이지 않다. 4장 교육정책과 9장 노동운동의 전략, 10장 재정 개혁 전략의 경우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복지국가를 향한 연구와 노력이 아직 초기 단계임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앞으로 더욱 풍부한 연구와 논의를 위해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별도로 한 권 정도 분량을 넘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1장에서 제시한 '민생 5대 불안' 중의 하나인 '주거 불안'에 대해 별도의 장을 할애하여 논리와 전략을 표명하지 못하고 일부 장 속에 '공공임대주택'을 거론한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거문제는 1945년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이 방해한 토지 개혁 실패에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의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트라우마처럼 인식되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수준의 직장인이 수도권에서 자신의 힘으로 주택을 마련하려면 월급을 대부분 모아도 10년 이상이 걸리게 되며, 부동산 가격의 과도한 상승과 투기는 근로자들과 직장인들의 노동의욕과 삶의 의욕, 삶의 질, 저출산 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교육과 더불어 한국 사회경제구조에서 가장 암적인 것이 부동산 광풍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은 무언가 어금니 하나가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2011년 5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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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 지식의 대통합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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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 책의 처음 인연은 2009년 아는 사람에게 선물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나는 ’통섭’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하면서 ’관념적이 사변적인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선물만 해주고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작년 말에 독서모임의 책을 블로그에 담으면서 독서모임에서도 이 책을 교재로 하여 토론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책의 정보에 대해 알아보았고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결국, 이 책은 연말에 런던에 가서 하루하루 일정을 마친 후 칠흙같은 영국의 밤을 벗삼아 읽었다.
 
21세기 현재 인류의 지식과 지성을 지배하고 있는 서구식 사회와 대학의 지식,학문들은 수 백, 수 천가지의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인류는 그 지성이 탄생한 이래 16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 모든 지성이 한 데 어우려저 탄생하고 교류하고 발전하였다.
저 멀리 서구의 소크라테스, 아이작 뉴턴에서부터 가까운 이웃나라 공자와 노자, 이 땅의 정도전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16세기를 지나면서 서구에서부터 통합되었던 학문은 한 갈래 씩 갈라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구식 사상과 문화의 특성인 ’나누기’와 ’쪼개기’는 자연과학에서 원자, 양성자, 미립자까지 나아갔고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수 많은 세부 학문들로 세분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지식,학문같지도 않은 것들까지 버젓이 대학의 학과로 편성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흐름은 ’전공’과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대세로 인정되었고 중세기부터 약500년 동안 지속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전문화는 각 분야의 깊숙한 수준까지 연구,분석을 용이하게 한 긍정적인 측면과 동시에 각 분야의 소위 전문가들이 자신이 전체 인류에서, 전체 사상과 지식에서 어디까지 왔는지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문화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전체와 동떨어지게 만들었고 학문 뿐 아니라 사회와 역사, 사람과 자연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분리되도록 한 큰 원인이 되었다.
옆 방에서, 다른 학문과 학과에서, 근처 대학에서, 이웃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게 만들었고 각자의 학문과 연구가 점점 더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만들게 한 부작용도 점점 커지고 있다.

결국, 서구의 사상과 학문은 20세기 말을 지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나누기’와 ’전문화’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서구에서도 인식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의무교육 시절과 대학 시절에 국어, 국사, 수학, 과학, 사회, 경제, 도덕, 음악, 미술 등으로 나누어진 교과 체계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사람이 서로 연관되어 있듯이, 도시와 농촌이, 국가와 국가가, 하늘과 땅이, 인간과 자연이 연관되어 있듯이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은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초보적이나마 철학과  역사, 사회와 자연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런 심증은 커졌지만, 세상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기본 지식을 늘리는 것이 더 큰 관심사였다.
 
몇 년 전부터 부족한 나의 소양을 키우기 위해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후, 지식이나 학문 사시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 책은 그런 나의 내재된 관심을 일깨우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저자는 사회생물학 분야를 탄생시킨 학자 중 하나다. 
지난 30년 동안 진행된 사회생물학 논쟁은 학문적 논의 안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기존의 형이상학적 사고를 180도 뒤집었다.
그런 진전은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인간행동유전학 등의 ‘통합 과학’들을 발전시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사회적, 생물학적 존재로서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시작했다.
저자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생명의 다양성(The Diversity of Life)> 등을 출간하여 인간 본성에 대한 ‘통합 과학’적 이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왔다.

이 책의 주제는 저자의 서문대로 ’지식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통일성’에 대한 이야기다.
책 속에는 ’사회생물학’의 태동 이래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이라는 ‘두 문화’ 사이에 놓인 거대한 틈을 메워 온 저자의 노력이 집대성되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연구자들이 인간의 지식이 본질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망을 바탕으로 협력, 연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20세기의 물리학 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통일된 연구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한 이해와 인간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21세기적 지식 혁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전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서구 학문의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가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지들 속에 숨어 있는, 그렇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간과했던 지식 통합의 가능성을 찾아내 명확하게 보여 준다.
서구 학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세계관에서 출발하여 근대 학문과 과학의 모체가 되었던 계몽주의를 거쳐 현대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종교 이론에까지 이르기까지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전망 속에서 인간의 지적 모험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아우르는 이 책은 그의 하버드대 동료 교수인 제럴드 홀턴의 말대로 “파편화되어 있는 오늘날 지식 세계의 풍경을 진정 새로운 방식으로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높은 고지대로 이끌어 준다.”
 
’통섭’은 대만 중화 학술원에서 펴낸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과 일본 학자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가 편찬한 [한화대사전(漢和大辭典)]에 비교적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큰 줄기’ 또는 ‘실마리’라는 뜻의 통(統)과 ‘잡다’ 또는 ‘쥐다’라는 뜻의 섭(攝)을 합쳐 만든 말로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삼군(三軍)을 통섭하다.”는 경우와 같이 ‘통리(統理)’ 즉 ‘장관’이라는 뜻을 지닌 정치 제도적 용어이기도 하다.
그럴 경우에도 그 뜻은 “모든 것을 다스린다.” 또는 “총괄하여 관할하다.”이므로 그런대로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사실 저자는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로 학문의 큰 줄기를 잡고자”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니 그의 consilience에는 전자(通涉)와 후자(統攝)의 개념이 모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말로 ‘통섭’이라고 할 때에는 구태여 이 둘을 구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혼동을 줄이기 위해 역자는 후자를 택했다.(옮긴이 서문 에서) 

"설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Enarro, Ergo Sum)"
저자는 르네 데카르트의 언명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대안으로 새로운 구절을 제시한다.
그동안 인류가 ’생각하는 뇌’를 들여다보기에 바빴으나, 앞으로는 ’설명하는 뇌’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명하는 뇌’는 ’생각하는 뇌’와 ’느끼는 뇌’가 보다 긴밀하게 협조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리라 예측하는 것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느낌은 "많이 어렵다"는 것...^^
저자가 일반일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 책 속에 종종 드러나기는 하지마, ’통섭’의 역사나 필요성, 관련 분야의 현황 등을 학문적으로 정리하여 설명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용이 어려울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나는 원칙적으로 한국어 ’통섭’이든,  영어 ’Condilience’ 등 모든 학문이 통해야 하고 서로 연관되어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데 동의,공감한다.
어떻게 보면, 유사 이래 동양에 전반적으로 통용되는 ’태극’이나 ’음양’처럼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모든 사물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내가 큰 거부감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서구에서는 역사적으로 그러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일원론’과 ’시비론’만이 존재했기 때문에 수 백년, 수 천년에 걸쳐 먼 길을 돌아 학문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닐런지...
 
아무튼,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을 ’통섭’시키기 위해 장구한 서구 학문을 연구하여 그 이론적 기반을 닦으려는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책 속의 문장
- 인간 사고에 대한 단순한 결정론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통해 몸과 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물리 법칙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고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p.222)  
 -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들고 특정 행동들을 상대적으로 더 잘 배우게 만드는 신경 형질들이다.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형질은 모방자, 즉 문화의 단위가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종류의 기억 요소들을 고안해 내고 전달하는 방식이다.(p.268)
-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은 모두 창조적 정신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유사하기는 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에 있어서는 그원적으로 다르다. 예술과 과학 간 교류의 핵심은 ’혼성화’, 즉 ’과학적 예술’이나 ’예술적 과학’과 같은 떨떠름한 혼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 지식과 미래에 대한 그 지식의 독점적 감각으로 예술에 대한 ’해석’을 되살리는데 있다. ’해석’은 과학과 예술 간의 통섭적 설명이 가질 수 있는 논리적 통로이다.(p.365)
- ’통섭 세계관’의 핵심은 모든 현상들이 비록 길게 비비 꼬인 연쇄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물리 법칙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p.461)
- 현존 기술과 최근의 소비 및 낭비 수준을 유지하면서 나머지 세계의 생활 수준을 대부분의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수학적 불가능에 도전하는 꿈일 뿐이다. 오늘날의 소득 불균형을 평준화하려면 선진국의 생태적 발자국을 줄여야 한다.(p.484)

[ 2011년 1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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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 '공부도둑' 장회익의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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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살아온 시대나 집안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지 나는 어렸을 때 부모나 주위 어른들로부터 공부를 방해받지는 않았다. 차라리 저자처럼 공부를 하고 싶은데 필요한 교재나 참고서, 독서용 책이 부족했을 뿐이다. 초등학교~고등학교까지 학교 도서관에는 읽을만 한 책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쓸만한 도서관을 갖춘 학교도 초등학교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그리스,로마신화와 고전 몇 종, 자연과학 관련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도서관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는 교실이 있었지만 그곳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공간이 아니라 수험공부를 하는 ’특별한 장소’일 뿐이었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일부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그곳에서는 수험공부만 할 수 있었다. 도서관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고전 시리즈와 일부 교과서 이외의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책을 읽지 않았고 읽으라고 권하는 선생도 없었다.
 
저자와 나의 나이 차이가 대략 20년 정도 되었지만, 책 속에서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50년대나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70년대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나마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저자는 한국전쟁 와중에 학교를 몇 번 옮기면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중학교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나는 큰 장애없이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국가의 교육 시스템, 교사의 질, 교과목, 공부에 대한 개념은 50년대와 70년대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 역시 어느 누구에게로부터도 공부란 무엇인지, 왜 공부를 하는지, 인생과 공부는 어떤 관계인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중,고등학교라는 학제 시스템에 이끌려 ’당연히’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고 진급할 뿐이었다. 물론, 20세기 후반부터는 그 부적절하고 부족했던 교육시스템과 교사 문제, 교과과정, 공부개념이 더욱 악화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뿐더러 사교육 시장에 휘둘리고 있는 형편이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공부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가 어려서부터 살아 온 경험을 기초로 어렵게 공부를 접하였지만 역으로 그 어려운 과정이 저자의 창조력과 학구열, 공부의 질과 욕구를 더 높여 주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 즐겁고 신나게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면서 현재 가정과 학교, 대학과 국가의 공부에 대한 관념과 태도, 방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지적하고 있다.  

첫째 이야기. [창고에 갖힌 도둑] 조선 전기의 문신 사숙제私淑齊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쓴 글 중에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도자설'을 통해 커다란 곤경을 겪으면서 터득한 기술이나 방법이야말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래야 대가를 이룬다는 교훈이다. 저자는 이 옛 이야기를 자신의 공부과정에 빗대어 여러 번의 곤경을 겪으면서 저자 스스로가 공부하는 법과 자신의 앎을 세워나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 이야기. [인삼과 산삼] 할아버지의 반대에 의한 학교 중퇴, 종교에 대한 경험, 개인적인 학습 노력의 과정에서 주어진 조건과 시스템에 의한 공부가 아니 스스로의 학습법에 의한 공부야말로 '인삼'이 아닌 '산삼'이 되는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셋째 이야기. [교실 안과 교실 밖] 저자는 자신의 독립적인 공부가 청주공업고등학교 입학과 졸업에 큰 도움이 되었고, 독자적인 물리학 입문과 학교 밖을 활동을 통해 스스로 학습법이 효율이 컸음을 말한다. 이런 현장은 강도와 깊이는 다소 다르더라도 우리 세대 역시 비슷하게 겪은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과목의 경우,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서 교사로부터 배운 내용보다는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참고서, '정석' 또는 '성문종합영어'를 스스로 학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이야기. [방황과 모색]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였지만 기대와는 달리 대학 교과과정은 저자를 만족시키지도 못했고 배움도 얻지 못하게 되면서 교과과정에 있어 '자동차 조립론'이 아닌 '송아지 사육론'의 타당성을 제기한다. '자동차 조립론'이란 교과과정이 교양과목과 전공과목 모두 세부적으로 교양과 전공을 나누어 분절적으로 가르친 후 나중에 종합하는 방식이고 '송아지 사육론'이란 송아지 사육처럼 처음부터 교양이나 전공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나간 후 점점 뼈대와 살을 붙여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스스로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상대성이론' 등 최신 물리학 이론을 접하면서 철학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느끼고 철학과에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다섯째 이야기 [앎의 되새김질] 저자는 서울의 공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3년간의 국방의 의무를 마쳤는데 사관생도에 대한 강의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앎으로 생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을 '되새김질'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 물리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음을 이야기한다.
 
여섯째 이야기 [물질에서 생명으로] 결혼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어한 이후 저자는 생계와 공부의 연장을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에 입학한다. 저자의 지도교수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연구를 했던 유진 위그너 교수의 제자인 캘러웨이 교수임을 밝히면서 은근히(?) 아인슈타인의 학문 계보를 이은 느낌을 가졌음을 고백하기도 한다.(실제로 저자는 아인슈타인 이후의 흐름이 '야생학풍'이었음을 지적하고 한국식 학계의 '계보'에 대해 비판한다.) 대학원 과정을 진행하던 중, 저자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한국인 유학생을 통해 처음 DNA를 접하면서 생물학과 생명에 대한 지적 자극을 받았음을 이야기한다.
 
일곱째 이야기 [학문과 등산] 저자는 학문은 경쟁이 아님을 강조한다. 따라서 학문을 '경주'보다는 '등산'에 비유한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타과학과 협동과정, 자연과학기초론 등의 교과과정을 개설하는데 참여하고 오랜 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강의를 진행하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학 1학년 때 교양필수 과목이었던 '물리학 개론'과 '화학 개론'을 수강하였는데 내 기억에 저자의 강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과목에 해당하지 않아 접하지 못했다. 내가 당시에 저자의 강의를 들었다면 이후의 내 삶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90% 이상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답일 것이지만...^^
 
여덟째 이야기. [가르침과 깨달음] 저자는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교수 및 교사의 교습법, 학습법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후, 저자의 물리학과 철학,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 학문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온생명'에 대해 설명한다. 지구상의 개별 생명체들은 자체로 소중한, 그렇지만 홀로 생존할 수 없는 '낱생명'이며 지구의 자연과 태양, 달은 '낱생명'과 함께 엮어진 '보생명'이고 '낱생명'과 '보생명'이 한데 어우려저 '온생명'을 이룬다.
 
아홉째 이야기. [오래 묵혀둔 과제] 저자는 서구의 자연과학과 물리학에만 의존하는 동양과 한국의 세태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하면서 자신의 족보상 선조인 조선시대 선비 장현광張顯光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현광은 16세기 중엽에 태어나 <우주설宇宙說>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안에 자연과학과 우주론에 대한 이론이 들어있다. 저자는 서울대 재직 중 장현광의 '우주론'을 연구한 바 있다.
 
열째 이야기. [녹슬지 않은 배턴을 넘기기 위해] 저자는 "진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최대한의 충실을 기한다는 것이며, 이는 다시 자신의 내면을 뚫고 들어가 끝없이 자신의 깊이를 되새기는 일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삶이 일종의 이어달리기 이므로 후손들에게 '녹슬지 않는 배턴' 넘기기 위해 앎을 향한 자신의 노력을 끝까지 경주할 것을 다짐한다.  

 1950~80년대 한국은 말 그대로 격동의 시기였다. 분단과 한국전쟁, 전쟁의 폐허와 기아, 생필품 부족과 빈곤, 국가주도 경재개발 및 재벌경제 시스템... 그 고난의 시기에 대부분 저자 혼자 힘으로 공부의 길을 개척하고 유학을 떠나고 물리학과 철학까지 학습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한국의 물리학과 학문간 통합을 주도해가는 저자의 모습이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저자보다 한결 나은 형편과 조건에서 학업을 해온 내가 부족한 점과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배우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저자가 공부해온 과정, 삶의 여정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자세와 태도를 엿보게 해준다. 주어진 조건과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자세, 스스로 이해하고 깨달으려는 모습, 지식과 지혜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정신... 그러한 자세와 태도가 지금의 장회익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비록 저자가 살아온 인생의 조건과 과정이 우리세대와 또 지금의 10대나 20대와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저자와 같은 자세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행복한 사람’에 속하는 소수에 해당한 것 같다. 삶과 우주에 대해, 사회와 세계에 대해 저자 만큼 알고 있으면서 특별한 물리적, 정신적 어려움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평생하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과학자 집단이 다른 학문집단, 또는 다른 직업군보다 행복지수가 높다고 지적했지만 장회익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실제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글을 쓴 의도는 알고 있고 그래서 이 책이 보여주는 일정한 한계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글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미 저자가 살아온 조건과 독자들이 살고 있는 조건이 무척이나 다른 점을 고려한다면 독자들이 저자와는 또 다른 역경 속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 방법론을 가지고 공부를 해나가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단초를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자서전 같기도 하다. 서문 말미에 "한평생 공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한 살매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드린다"에서는 일부 독자들이 약 올라 하고 짜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책 속의 문장
- 나는 성경 자체가 나쁜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성실하지만 불완전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일 수 있다. 그리고 고의로 거짓저술을 했다기보다는 잘 몰라서 혹은 그런 형식 밖에 빌릴 수가 없어서 오늘 우리가 보기에 부적절한 내용들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단 내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유지하되, 제도화된 기독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도신경’을 강요하는 기독교와는 결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p.170)
 
- 요즈음은 가히 경쟁만능 시대라 부를 만큼 모든 것을 경쟁에 맡겨야한다는 생각들이 만연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학문은 기여이고 협동이지 결코 경쟁이 아니다.(p.282)
 
- 학문하는 일을 바둑에 비기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장거리 경주에 비기기도 하지만, 학문은 역시 등산에 비기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바둑이나 경주와는 달리 등산은 승부에 매달리지 않고 경쟁을 조장하지도 않는다. 자기 능력과 취향에 맞게 목표를 정하고 자기 흐름에 따라 걸음을 조정할 뿐이다.(p.301)
 
- 우리가 지금까지 ’생명’이라 생각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생명이 아니라 이것의 한 부분인 ’낱생명’이었으며, 이것이 생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것의 밖에 있는 이것 못지않게 본질적인 존재인 ’보생명’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고, 이렇게 함께해서 진정한 의미의 생명 구실을 하는 그 전체가 바로 ’온생명’이라는 이야기다.(p.330)
 
[ 2011년 5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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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을 넘어서 - 물리학자 장회익과 철학자 최종덕의 통합적 사고를 향한 대화
장회익.최종덕 지음 / 한길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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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이라는 단어에서 두 저자는 ’물리학 : 철학’이나 ’자연과학 : 인문학’, ’동양: 서양’, ’현대 : 전통’을 떠올리겠지만, 나에게 있어 ’이분법’은 전혀 다른 단어의 대립을 떠오르게 한다. 바로 ’친북 : 반북’, ’좌파 : 우파’, ’애국 : 매국’, ’민주 : 독재’, ’성공 : 실패’와 같은 단어들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또는 통섭을 사고하는 학자들과 국내 사회 현상을 사고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차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여러가지 방식과 계기로 반대 개념을 사고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밤과 낮, 삶과 죽음, 물질과 의식, 남과 녀, 남극과 북극 등등... 처음 언어와 단어를 배우기 위해서 익혔든, 영어 외우기와 시험공부를 위해 익혔든 어려서부터 반대 단어와 개념들은 쉽게 우리들에게 다가왔고 어른들과 선생들, 언론과 각종 매체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상생활에서 쉽게 살아가기 위해, 또는 각 개인가 집단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런 언어와 개념들을 사용하고 강요해 했다. 결과적으로 ’이분법’은 수 십, 수 백년 간 인류에게 커다란 사고의 틀로 자리잡게 되어 사람들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해온 셈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지난 100년 간의 근현대사를 통해 극단적인 대립 단어들로 수 많은 고통과 억압을 당해온 바 있고 아직도 그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친일과 반일은 일제시대부터 시작하여 21세기 이른 현재 시점까지 극복하지 못했고, 통일과 분단은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이 땅에서 민족의 염원이자 정치가들의 전략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또한 전쟁과 평화는 현실적인 위협과 두려움으로 이 땅에 존재하고 있고, 친북과 반북, 친공과 반공은 여전히 가공할만 한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무기로 남아있으며, 10년 만에 군사독재의 악령은 이명박 정권을 통해 사람들에게 되살아 났다.
 
이 책은 이번 주 공부모임의 교재로 선택되었지만, 나 역시도 ’이분법’이라는 단어는 20대 시절부터 늘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는, 나 스스로도 & 내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숙제였다. 그래서 세미나의 교재임에도 며칠 밤 동안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2008년 4월 이 책을 한 번 읽고 독후감까지 남겼지만, 이번에 또 다시 읽으니 대부분의 책 내용이 새롭게 다가왔다. 지난 3년 간 내 나름대로 독서를 거듭한 과정이 있었음을 느끼는 것은 처음보다 책장을 넘기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다는 것과 중요한 물리학과 철학 개념, 학자, 이론이 낯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들의 논의가 내가 가장 관심있는 분야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지만, ’이분법’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이유가 저자들의 관심사와 나의 관심사와는 상관 없이 공통적으로 흐르는 사유와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관심 있게 읽었다.
 
제1장 [과학과 철학의 만남]에서는 두 저자가 어떻게 물리학과 철학, 자연과학과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두 영역을 넘나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떤 고민과 성찰 속에서 다른 학문분야를 연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 그리고 대상적 지식과 성찰적 지식, 즉 ‘세계에 대한 질문’(물리학&자연과학)과 ‘삶에 대한 질문’(철학&인문학)이 궁극적으로 같은 물음이라는 전제에서 통합적 사유의 실마리를 찾는다. 또 학문 간의 소통을 펼쳐진 합죽선에 비유해 모든 부챗살이 모이는 공동영역인 연결고리 쪽에 관심을 두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제2장 [지식의 누적과 전환]에서는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20세기 물리학의 눈부신 성과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리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로 대표되는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사유 틀의 확장과 지식의 전환에 대한 문제를 논의한다. 특히, 불확정성이론이 마치 반이성과 탈이성의 과학적 도구이론으로 오용됐던 문제를 지적하고, “이것은 분명 합리적 이성의 승리이지 붕괴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양자역학은 불확정적이고 고전역학은 확정적이라는 이분법, 그리고 상대성이론은 상대적이고 고전역학은 절대적이라는 단순도식도 잘못되었음 말한다.

제3장 [생명에 대하여]에서는 “생명이란 것을 빼놓고 물질만 얘기해서는 반쪽 과학”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온생명 이론]을 중심으로 물질현상과 생명현상을 이원적으로 보려는 시각을 지양한다. ‘생명의 자족적 존재 단위’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라는 개념으로 정의되는 온생명은 가이아 이론과도 구별됨을 설명한다. 또한 생명과 물질의 구분은 대상과 대상의 구분이 아니라 ‘대상의 한 존재양상’(생명)과 ‘대상을 구분하는 소재’(물질)의 구분으로 본다. 수십억 년간 이어져온 진화와 변화라는 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생명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제4장 [동양과 서양]에서는 흔히 서양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했고 동양은 신화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했다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의 오류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과도한 서구화에 대한 반감으로 맹목적인 동양 우월주의도 경계할 것을 강조한다. 그런 바탕 위에 대생(對生)지식 개념과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나타난 - 항상 삶(生)과의 연관 속에서 사물을 파악하려 했던 - 동양적 인식방법을 살펴보았다. 한편 [노자]가 서양에 소개되는 과정과 뉴턴 고전역학을 공부했던 혜강 최한기의 예에서 동서양의 학문 수용과정의 어려움도 짚어보았다.

제5장 [의식과 물질]에서는 의식과 주체, 정신과 물질, 마음과 신체, 그리고 그것 사이의 관계들, 즉 심신 이원론이냐 일원론이냐, 유물론이냐 유심론이냐 같은 오랜 주제들을 폭넓게 고찰하고 있다. 장구한 생명의 역사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물질의 원형으로부터 의식이 생기고, 문화와 언어를 통해 더 고양된 의식이 생기게 되었다는 자연주의적 접근의 의미를 되새겼고, 물질은 주체적인 내적 측면(의식)과 물리적인 외적 측면(신체)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일원(一元) 속의 양면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 생명의 진화, 의식의 고양에 대한 접근은 항상 입체적이고 메타적으로 고찰해야 함을 강조한다.

제6장 [대립과 화해, 물러섬과 나아감]  지식인으로서의 사회 참여행위에 대한 ’물러섬’과 ’나아감’의 문제를 성찰한다. 궁극적으로 올바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회의 속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고민은 단순한 배중률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깊은 본성이라는 것이다. “물러섬 없는 나아감은 맹목이고, 나아감 없는 물러섬은 허상”이라는 말로 귀결되는 둘의 관계는 갈등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의 관계다. ‘참여’를 유가의 도덕생명에, ‘은둔’을 도가의 자연생명에 비유하지만, 결국 그 역시 인간 삶의 양식이라는 큰 스펙트럼의 양단일 뿐이니 둘 중 하나를 가르는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가도 나에게도 ’이분법’과 ’이원론’식 사고방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된다. 이분법이나 이원론, 양자택일의 문제는 독선과 자만에서 출발하기 쉬운 법... 독선과 자만을 늘 경계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쉽지는 않은 듯 하다.
 
저자들은 대립되는 단어나 개념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는 전제를 인정하면서도 결국 겉으로는 대립되는 개념들이 이분법, 즉 ’이원성’에 빠지지 않고 ’일원양면론(一元兩面論, 하나의 존재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성격의 발현)’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위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관점과 ’이해의 틀’이 중요하게 된다.(아쉽게도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대안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원성’과 ’이분법’을 극복하고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과 주장을 통합하기 위해 필요한 관점 중 하나가 ’연속성’이다. 특히 물질과 의식의 경계,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 동양과 서양, 현대와 전통은 모두 한 가지에서 뻗쳐나온 양쪽의 극단이라고 설정하고 양 극단이 서로 이어져 있으면서 경계나 구분을 나눌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연속성’은 시간을 빼놓고는 성립될 수 없다. 자연과 물질에서 인간과 의식이 나타나는 과정이 없이, 전통에서 현대가, 동양에서 서양이, 자연과학이, 그리고 인문학이 연속적일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그 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학문적 깊이를 온전히 따라잡기 어려워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저자들이 학문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개념들만 다루는데 그쳐 실제 한국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이념적, 계급적, 정치적 편향들의 이론적 기초를 분석하거나 허구성을 파악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 책 속의 책 :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프리로프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장회익 <물질, 인간, 생명>, 프리고진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펜로즈 <황제의 새 마음> 
  
[ 2011년 5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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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서평 ] - " 물리학과 철학의 만남 "
 
 이감사님이 최근에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친히 이 책까지 빌려주셨다. 처음 이 책을 받을 때는 제목이 ’이분법을 넘어서’였기 때문에 한국의 국내상황이나 세계적인 문명출동 상황에 대해 무언가 의미있는 메시지가 있을까하고 기대했는데 실제 책을 모두 읽고나니 구체적인 사회상황보다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학문세계의 ’이분법’과 ’자연과 인간의 충돌’에 대한 논의가 주제여서 조금은 실망했다.
 
 저자 중 장회익교수는 ’온생명’이라는 생명이론 주창자이고 현재 대안학교인 녹색대학 총장을 역임한 학자이며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교수로 지내면서 오랫동안 학문의 통합과 소통에 깊은 관심을 두면서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문학적 주제들을 연구해왔다. 최종덕교수는 학제간 통합의 주창자이고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과학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이다. 그의 연구는 한의학과 생물학, 동양과 서양의 학문 영역에 걸쳐 자연데 대한 철학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책의 제목처럼 학문과 사상에 걸쳐 심각하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분법’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다. 책의 소단원들도 1. 과학과 철학의 만남, 2. 고전과 현대, 3. 생명에 대하여, 4. 동양과 서양, 5. 의식과 물질, 6. 대립과 화해(물러섬과 나아감)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최소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고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 자체가 이미 문제해결의 문지방을 반을 넘어선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저자들이 물리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했기 때문에 핵심적인 문제의 도출은 과학과 철학의 만남에 대해서이다.
 
 근대 이후 자연과학이나 서구사상이 한국이나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인간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연계의 모든 현상에 양면이 있다는 것이 사람들이 존재가 있으면 비존재가 있고 유한이 있으면 무한이 있을 거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하게 되어 버렸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지구상 어디에서나 일상화되어버린 선과 악, 아군과 적군, 승자와 패자, 이익과 손실, 경쟁력과 도태, 전쟁과 평화, 정의와 불의가 애초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넘어서서 타인을 대상화시키고 타인을 짓누르고 자연을 파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언어의 소산물인 개념을 자연계의 범주처럼 생각하는 일종의 믿음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한국인은 개념이 낳은 이분법의 아픔을 가장 많이 절감하는 사람들이고 그것은 ’현대와 전통’, ’동양과 성양’, ’남과 북’, ’민주와 반민주’, ’남과 북’, ’동과 서’라는 역사의 오랜 갈등으로 나타난다.
 
 저자들은 이러한 새태의 출발점을 짚어내기 위하여 학문적으로 접근한다. 저자들이 대화 방식을 통해 ’이분법’의 역사와 구조를 짚어내려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들까지 이어가지는 못한다. 물론 애초에 저자들의 의도 역시 현실적인 문제까지 나아가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안다는 것’에 대해서부터 따지고 분석해 들어간다. 우리가 ’안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속에서 설정된 앎의 틀 안에 앎의 내용이 자리잡는 것"을 말하며 새로운 지식이나 상황을 접했을 경우 등 달라진 상황에 따라서는 이 틀의 조정 또는 확대가 필요하다. 이들은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이런 ’앎의 틀’과 ’앎의 방식’을 자연과학의 역사로부터 이해시키고 있다. 오래전 과거 그리스 수학과 과학, 즉 유클리드 기하학과 당시의 과학 수준으로는 뉴튼의 역학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뉴튼의 고전역학의 개념의 틀 안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뉴튼의 고전역학은 3차원 공간과 별도의 시간으로서 자연을 바라보고 해석하는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공간과 시간이 동일한 4차원 시공간 내에서 구성되기 때문이고 더불어 뉴튼의 고전역학은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설정하지만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천재였지만 자신이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고 죽을 때까지 50~60년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과 상대성 이론의 ’실재성’에 대해 새로운 사유의 틀을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틀은 철학적인 사유가 동반되어야 한다.
 
 단적으로 표현하여 서양의 학문 추구방식은 ’분석적’이다. 철학과 자연과학에서 시작하여 의학이나 통계학까지 하나하나 분리내고 분석하여 더이상 분해할 수 없을 때까지 개별화시키면서 그 구조와 개별물질의 성질과 법칙성을 밝혀내려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동양의 학문 추구방식은 통합적,종합적이다. 세세하게 개별적으로 분리하고 분석하기 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파악하고 사물간의 연관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미래의 학문이나 사상은 동양이나 서양이 추구하는 각자의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따라서 더 큰 차원의 사유의 틀을 가지고 이들을 통합시켜야 한다. 특히 그러한 인식과 방향성에 큰 계기가 된 것이 쿠르트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와 양자역학이다. ’불완전성 정리’는 서구 이성이 추구하는 방식과 논리는 더 이상 증명이나 합리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성의 한계를 규정지었고 양자역학은 ’존재’와 ’실재성’에 대한 서구 자연과학의 인식과 학문의 한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대과학을 접하면서 장회익교수는 ’온생명’ 이론을 창안한다. ’온생명’ 이론이란 동물과 식물, 인간 등 살아있는 모든 개체생명과 개체생명이 살아있을 수 있도록 놓여있는 지구와 태양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자 이론이다. ’온생명’은 ’온생명’을 구성하는 모든 개체생명(낱생명)과 주변 물질이 서로 분리되거나 한쪽이 파괴도면 전체 ’온생명’ 역시 위협받는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온생명’ 이론은 당연히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으로 연결되고 일부에서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아우를 수 있는 비전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이나 철학과 같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관점이나 방법, 방향성의 맥을 잡는 데 도움을 받았다. 내가 지금 쌓고자 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접근방식을 다시한번 재검토하여 향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영역을 잡고 책을 구하고 공부해나갈 지 참고할 만한 모델이 제시되어 있다. 또 하나, 저자들이 스스로 고백하건데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이해하는데 몇 십년이 걸렸다고 한다. 따라서 나 역시 몇 개월, 1년도 안되는 공부량으로 ’어렵다’고 스스로에게 투정부린 것이 자연스러운 현실인 것 같다...ㅋㅋㅋ
 
[ 2008년 4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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