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대다수는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티슈를 크리넥스라고부르듯 중국인을 아시아인을 부르는 대유법으로 여긴다. - P38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은 사회의 보호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대조되는 순전한 생물학적삶이며, "누구든 그를 죽여도 살인죄를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그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오로지 영원한 도주를 통해서만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식물이나 돼지처럼 인간의 몸이 단순한생물학적 현상으로 축소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매춘부가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홀로 죽으면, 그가 존재했다고할 수 있을까? - P40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 나라에서는 오로지 백인만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대다수의 비백인은 과거로 돌아갔다가는노예가 되거나, 살해되거나, 신체에 상해를 당하거나, 흉포한아이들에게 쫓길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1800년대 중반이후 반(反)중국인 운동을 겪으며 살아가던 공포를 목격하기위해 딱 하루만 과거로 돌아가는 위험을 감수하겠다. 당시중국인 이민자가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침을뱉고 몽둥이질을 하고 등에 총을 쏘았는데, 이런 분위기는1882년 중국인 배척법 제정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법은한 인종의 미국 이민을 통째로 금지한 최초의 이민법으로서, 의원들과 언론은 중국인을 "쥐새끼", "문둥이" 이자 선량한백인 미국인에게서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 같은 일꾼이라고규정했다. - P41
1871년에는 중국인 몇 명이 백인 경찰관을살해했다는 유언비어에 500명에 달하는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이떼 지어 LA 차이나타운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중국인 성인남자와 소년 18명을 고문하고 목매달아 죽였다. 이는 미국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린치 사건이었다. 그들이 린치당한 거리는당시 ‘검둥이들의 골목으로 불렸다. - P41
유대인 친구하나는 자기는 절대로 유대인 심리치료사에게 가지 않는다고했다. 가족의 모든 문제가 문화적인 문제라고 쉽게 전제되기때문이란다. 때로는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그 경험을 상대방에게 애써 설명할 필요가 있다 - P49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관계』에서 농담을 경향성 없는 농담과 경향성 있는 농담의두 범주로 분류한다. 경향성이 없는 농담은 아이들에게수수께끼를 들려주듯 무해하고 무독하다. 경향성을 갖는 농담은공격적이거나 저속하거나 아니면 둘 다여서 우리의 의식 속에서억눌린 부분을 캐낸다. 1940년대 미국 흑인 연예인들은 무대뒤에서 터무니없이 과장된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런 농담을가리켜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그 거짓말‘은 경향성을 지녔으며, 고지식한 백인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길모퉁이, 당구장. 이발소에서 구전되었다. 프라이어는 - 이야기를 왜곡하고, 시끄럽게 불평하고, 큰소리치고, 볼링핀이든 오르가슴에 이른촌놈이든 닥치는 대로 흉내 내며 - 거짓말을 들려주었다. 그리고프라이어가 들려주는 거짓말은 내가 당시 읽고 있던 대부분의시와 소설보다 인종에 관해서 솔직했다. - P62
우울증에서 마침내 회복한 나는 프라이어의 연기가 담긴음성 및 영상 자료를 있는 대로 필사하는 일에 집착했다. 그런데프라이어의 말을 글로 적어 놓으니, 그다지 우습지 않다는 것을깨달았다. 프라이어의 익살스러운 이야기 전달 방식이 빠지고나니, 유머라는 용해제는 증발하고 분노의 소금기만 남은 것처럼그의 말이 거칠고 둔탁하게 느껴졌다. 그가 끊임없이 비속어를사용하는 것도 일부 그런 효과에 기여하는데, 예를 들어 그는 한문장 끝날 때마다 매번 n으로 시작하는 단어(흑인 비하 표현 -옮긴이)로 추임새를 넣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글로 옮긴 그의독백은 극명하고 정신을 번쩍 들게 했으며, 예컨대 순수함은흑인은 체험하지 못하는 특권이라는 통렬한 고백성사였다. "나는여덟 살 때까지 아이였어요. 그 후 깜둥이가 되었지요." - P63
우리 시인들은 청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거짓말이다. 시인들도 위상에 집착할 수 있고 내가 알기로남의 인정을 무척이나 받고 싶어 한다. 환심을 살 청중이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시인들이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외부인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사실 시인의 청중은 제도다. 우리는 학계, 심사위원단, 펠로십 제도라는 고등한 관할권에의존하여 사회적 자본을 획득한다. 수상 제도를 거치는 것은시인이 주류적 성공에 이르는 소중한 길이며, 수상 결과는심사위원단이 공들여 이뤄낸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 이 타협은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수상작에 아무 위험성이 없음을보장한다. - P66
프라이어를 보며 나는 내가 아직도 그 제도를 상대로 글을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리기 어려운 습관이었다. 나는백인의 환심을 사도록 양육되고 교육받았으며, 환심을 사려는 이욕망이 내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위해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더라도, 그것은 백인의 환심을 사고싶어 하는 나 자신의 일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피할 방법을 알 수 없었다. - P66
나는미술을 할 때, 나중에는 시를 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생기를되찾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왜냐하면 내 육체가비물질화되고, 내 정체성이 떨구어지고, 내가 다른 삶을 사는것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모든 글이 이 자유를인증했다. 존 키츠에 따르면 시인은 "정체성이 없다 - 시인은끊임없이 어떤 다른 사람을 대신하고 그 사람의 역할을 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문학은 모든 주체가 피해 가는 그 중립자, 그 합성물, 그 모호성이며, 글을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비롯하여모든 정체성이 실종되는 덫이다. - P67
코미디는 가차 없이 찰나적이다. 농담만큼 금방 낡아버리는 것도없다. - P69
라히리의 소설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라는문예창작 과정의 교리를 대체로 잘 따르고 있다. 그렇게 하면독자는 등장인물의 고통을 체험하면서도, 수전 손택이 말한 대로자신의 특권을 등장인물의 고통과 "동일한 지도" 위에 위치 매김하지 않아도 된다. 등장인물의 내면적 생각이 제거되었으므로독자는 빈번한 사견 개입에 방해받지 않고 등장인물의의식이라는 조종석에 앉아 영화 보듯 등장인물의 시각을 체험할수 있다. - P76
프라이어는 코미디가 사실 노예선에서탄생했다고 농담한다. 한 노예가 다른 노예에게 말했다. "너만운이 나빴던 것 같지? 나는 어제만 해도 왕이었다고!" 학자글렌다 카피오에 따르면 프라이어는 "흑인 유머를 세상에선보였다. … 그것은 과거에 박탈당했던 부당하고 잔인한 것을비웃을 힘겨운 자유로서 시작되었다." - P80
유머는 하나의 생존 형식이었다. 노예들은 유머를 통해서노예제로부터 필연적으로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또한유머는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암호였다. 그곳에서 주인님은외부자이고 놀림의 대상이다. 랠프 엘리슨은 에세이 웃음의호사스러움」에서 백인은 흑인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놀림을 당했다는 전반적으로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낀다고 적고있다. - P80
앙리 베르그송은유머는 숭고함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신성이 배제되어 있고온전하게 인간적이라고 적고 있다. 즉 우리는 유머를 통해초월성보다는 우리의 피부를 통절히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 P84
클로디아 랭킨의 시집 『시민은 소수적 감정을 탐구하는 책으로는 이제고전으로 꼽힌다. 화자는 인종차별적 언사를 듣고서 자문한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지? 본 것, 들은 것이 다 확실한데도, 내현실을 남에게 폄하당하는 경험을 너무 여러 차례 겪다 보니화자 스스로 자기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감각훼손이 피해망상, 수치심, 짜증, 우울이라는 소수적 감정을초래한다. - P84
소수적 감정을 다루는 문학에는 즉각적인감정 해소가 없다. 그보다는 점증적이다. 변화의 측정은내면적인 "마음의 동요" 또는 변신하는 페르소나를 통해서이루어진다.
소수적 감정은 진행형이므로 만화(에르난데스형제, 에이드리언 토미네)나 연작시(완다 콜먼, 솔마즈 샤리프, 토미 피코)나 일화 중심의 산문시(바누 카필, 클로디아 랭킨)같은 연작 형식과 장르에 더 적합하지만, 한편으로 문학소설(폴비티, 링 마) 장르에서도 더 자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추앙받은 작가는 필립 로스나 칼 오베크나우스고르처럼 인물의 결점 많은 모습까지 전부 고스란히노출하는 책을 써온 백인 남성 작가들이었다.
그런 점에서독자들은 백인 남성 작가가 못되게 굴면 막 좋아하면서 소수자작가에게는 늘 착하게 굴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바로 이래서우리는 백인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소수적 감정을 옆으로 제쳐둔다. - P87
(1992년 LA폭동)대체로 내가기억하는 폭동은 한국 남자들이 가게 지붕에 올라가 총을 들고망을 보는 모습이나 가게에 들어온 15세의 라타샤 할린스를사살한 두순자가 법정에서 형 선고를 기다리는 모습 같은 뉴스영상들이다. 라타샤 할린스가 살해된 사건은 로드니 킹을 구타한경찰관들이 무죄로 풀려나기 몇 달 전에 일어났지만, 흑인들의분노에 기름을 부어 폭동 발생에 기여했다. - P90
폭동이 끝난 후 한국 이민자 3만 명이 행진시위를 벌이며 잃어버린 생계 수단에 대해 보상을 요구했으나상인들은 피해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아무런구제책도 제공하지 않고 도외시하는 바람에 그들은 가난과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그들 중 일부는 미국을떠났다.
도심 복구를 위한 기업 후원 캠페인 "LA 재건"(RebuildLA)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사우스센트럴 지역은 전망 있는일자리도, 병원 시설도, 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프로그램도 없이방치되었다. 흑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의해 도시에서밀려나 한때 20퍼센트에 이르렀던 LA의 흑인 인구 비율은9퍼센트까지 떨어졌다.
폭동으로 인한 사망자의 30퍼센트이상이 라틴계였고 피해 상점의 40퍼센트 이상이 라틴계소유였는데도 이 집단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이들은 "착한" 한국상인 대 "못된" 흑인 동네라는 간명한 공식에 깔끔하게 들어맞지않았기 때문이다. - P94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겪은 민족에 속한다.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 P95
1965년은 민권 운동이 격렬하게 펼쳐진획기적인 해였다. 흑인 시위대가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두 차례행진을 시도했으나 앨라배마주 경찰에 의해 난폭하게저지당했고, 세 번째에야 비로소 성공했다. 린든 존슨이마침내 투표권법을 통과시켜 투표와 관련해 인종 차별 행위를금지했으며, 맬컴 엑스가 할렘 지역 오듀번 볼룸에서 있었던집회에서 연설하다가 암살당했다. 그리고 8월에는 캘리포니아주워츠(Watts)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워츠 시민은 실업, 주거 관련 인종 차별, 경찰의 만행 등으로 여러 해 좌절한상태였다. - P105
1965년 이후 미국 이민자의 90퍼센트가 비유럽출신이었다. 퓨리서치 센터는 2050년이면 미국에서 백인이소수자 집단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 P106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에 대한반격으로 흔히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 (alllives matter)라는 구호에도 저들의 망상이 암묵적으로 내재해있다. "모든 사람" (all)은 포용적이라기보다는 방벽을 둘러친대명사, 즉 "그것을 인종 문제로 만들지 못하도록 해" 눈에보이지 않는 백인성의 헤게모니가 도전받지 않고 지속되게끔하는 방어 장치이다. - P120
2017년 2월 1일, 5세의 이란계 아이가 워싱턴DC 덜레스 공항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로 다섯 시간이나억류됐다. 미성년자임에도 "위협 가능성이 확인되었다"는이유에서였다. 무슬림이 다수인 7개국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한트럼프 행정명령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 소년은 메릴랜드주에사는 미국 시민이었는데도 당국은 상관하지 않았다. 공보 비서는
"단지 연령과 성별을 이유로 그들이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고상정하는 것은 잘못되고 그릇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트럼프행정부에 대한 분노는 그날따라 더욱더 생생하고 선명했다. 뉴욕 시민 수천 명이 JFK 공항으로 몰려가 무슬림 입국 금지에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 P125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왔건, 아프가니스탄에서왔건, 한국에서 왔건, 1965년 이후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역사는 미국을 넘어서 각자의 출신국으로 확장된다. 그곳에서우리의 동족들은 서구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미국이 세우거나지원한 독재 정권에 의한 대량 살상을 겪었다. 미국의 일원이되기 위해서 애쓰느라고 우리는 인생에서 제2의 기회를 선사받은양 황송해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뿌리는 이 나라가우리에게 부여한 기회가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의 자본주의적확장이 우리의 조국의 피를 빨아 부를 챙긴 방식이다. 우리가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126
한인 타운에서 한국인은 앞에 나와 손님을 상대하고 멕시코인은 뒤에서 보조하는 일을 한다. 한번은 내가 친구를사귀었는데 엄마가 그 아이와 놀면 안 된다고 해서 왜냐고 묻자, 엄마는 그 아이가 멕시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악할일은 내가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네가 멕시코사람이라서 너랑 놀면 안 된대." 그러자 걔가 말했다. "나는푸에르토리코 사람이야." - P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