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대에 개입하는 모든 것들은 해석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일관성을 지킨다. 그러므로 이 개입들이 다시 이루어지도록 해야만 한다. 담화 각각의 모습 속에서, 있음 (présence)‘이라는 가치에 고정된 닿으로부터 이 담화가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각각의 철학자에게 있어서 - 철학사의 한 시대를 결정해 왔던 철학자들에서부터 시작하여 ———물질적근접성, 시스템 장착, 반사 체계와의 단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밝혀내야 한다. 은이런 해석적 재독서에서, 방법은 항상 정신분석학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각 사상의 무의식적 작용에, 어쩌면 일반 철학의 무의식적작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억압의 방식들과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언어 활동의 구조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진실과 거짓, 적합한 것과 비적합한 것 등을 구분한다. - P97
우리 사회 질서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용되며 교환된다. 그들의 가치는 ‘상품‘ 의 가치이다. 사용할 수 있고매매할 수 있는 이 대상이 어떻게 말할 권리, 더 일반적으로는 교환에 참여하기를 요구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물건들이 혼자 시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 P107
그러므로 여자는 성적, 더 보편적으로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교환이라는 기능과 관계 있는 특수한 착취 상황 속에 있다. 그녀가자기의 특수한 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은 매매의 대상으로서만 그 안에 들어간다. 게다가 성적 정체성(identité)‘ 은 그녀에게생소한 유형들에 따라 강요된다. 그녀 자신과의 관계를 그녀로부터빼앗는 ‘남성적 체계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여자가 언어 활동에, 그리고 다른 여자들 쪽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여자들의 사회적 하위성은 더 심해지고 복잡해진다. ‘여성‘은 오로지 남성에 의해, 남성들을 위해 결정된다. 상호성은 ‘사실‘ 이 아니다. - P108
정신분석은 진실에 대한 담화를 여성의 성욕을 근거로 유지한다. 담화란 진실의 진정한 논리를 보여 준다. 즉 여성적인 것은 남성주체들에 의해 강요된 모델들과 법칙들 내부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위한 진실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두 개의 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성의 유일한 실천과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여성의 역사로 말하자면, 여성이란 성은 그 필요성, 그 이면, 그것이 결핍하고 있는 것들, 그것의부정적인 요소/요소들을 유지하는 것이다. 남근이란 모델은 가부장적 사회와 문화에 의해 발전된 가치들, 철학 전집 속에 새겨진 가치들, 즉 소유권 · 생산 · 질서 · 형태 · 통일성·가시성의 건립 등에 참여한다. - P113
그리하여 정상 여성으로의 변화에 관해, 프로이트는 그가 하나의 동기만 지닐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즉 문화적으로 가치를 독점하는 성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일 수 있는 ‘페니스를 갖고 싶은 욕구가 그것이다. 페니스가 없는 여자들은 남자들의 그것을 시기할 수 있을 뿐이고, 그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버금가는 것들을 찾으려고 할 뿐이다. 게다가 여자들은 모성 안에서 ‘페니스의 대체물‘ 인, 그리고 페니스를 가진 아이를 출산할 때에만자기 성취를 경험할 것이고, 행복이 완성될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의 변화를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은 자신의 성기에 개의치 않고 남자의 성기를 재생산하는 것이 된다. 사실 여자는 결코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녀에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그 사랑을 잃을지도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항상 아버지에 대한 욕망 속에서, 아버지에게 또 그의 법에 굴복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 - P114
이 투사적이고 포괄적 기제로부터 어떠한 현실도 무사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살아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육체‘ 자체는변형될 것이다. 이것이 여성의 육체를 조각내고, 손질하고, 왜곡시키고, 변형시킨 후, 자기 환상 속에서 향유하는 ‘주체‘ 의 유일한 방식이다. 위험한 것은 이 환상을 법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이 환상을 과학과 혼동할 정도까지 된다. 즉 어떠한 현실도 이 과학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은 담화 속에, 담화에 의해포위되고 또 결정된다. "추론 이전의 현실은 없다. 각각의 현실은 하나의 담화에 녹아들어 그 담화로 규정된다. - P115
여성의 쾌락에 대한 이런 사정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여자들에게는 사람들이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다. 특히 그녀들이 자신들의 쾌락에 관해 말할 경우에 그렇다. "그녀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 쾌락에대해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것은 우리가 그녀들에게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 달라고사정한 이후, 무릎 꿇고 사정한 이후이다 ㅡㅡ 나는 마지막으로 여성 분석가들에 관해 말하곤 했다_ ! 우리는 거기에서 결코 아무것도 끌어내지 못했다." "우리의 동료 여자 분석가들은, 특히 여성의 성욕에 관해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전혀 아무것도! 이것은 아주 충격적이다. - P118
아무도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통제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 P123
어쨌든 그녀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그녀는 자신의말과 욕망, 자신의 쾌락으로 법을 만드는 남성 언어 활동의 작용에혼란을 일으킬 수 없다. - P124
그러므로 여자들에게는 그들의 쾌락에 대한 법이 있을 수 없을법이것이다. 쾌락에 대한 담화 이외에는 말이다. 원인과 결과, 목적, 법과 담화가 동일 체계를 이룬다. 만일 남성의 견해대로 —— 자신들의 쾌락에 대해 여자들이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알지못한다면, 그것은 그녀들이 어떤 명칭으로든 자신들의, 혹은 자신의것이 될 어떤 언어 활동 속에서, 그리고 그 언어 활동으로는 전혀아무것도 조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의 을여자들의 쾌락은 그녀들을 위한 것이지만 항상 남성의 견해를 따른다 어쩔 수 없이 무정부적이고 무목적적이다. 그들에게 - P125
성적 쾌락은 타자의 육체 안에서 심연을 이룬다. 한편으로 이 쾌락은 타자가 담화로부터 벗어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 P128
당신들에게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담화가있다면, "이를 일으키는 것은 여성이 어머니로서만 여겨진다는 매우분석적인 담화이다.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성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여성이 ‘어머니로서만 여겨진다‘는 사실은 철학적 전통 전체에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가능성의 한 가지 조건이기도하다. 또 여성적 토대의 필요성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다. 로고스의생산이 자신의 힘을 다시 얻으려고 하는 곳은 (재)생산할 수 있는대지 어머니 자연이다. 기원을 독점하여 강력한 시작(들)을 일으키면서 말이다. - P134
정신분석학 이론은 그러므로 여성의 성욕과 성관계의 위상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거기에 그칠 뿐이다. 정신분석학적 담화의 역사적 결정 과정들에 대한 해석을 거부하면서 ㅡ"내가 가장 타당한 이유들로 증오하는 것, 그것은 역사이다"ㅡ특히 자기들의 법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남성위주의 성 변화가 함축하고 있는 바에 대한 해석을 거부하면서,이 이론은 남근 중심 사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사상에서 보편적이고 영원한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 P134
그리하여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쾌락이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그리고 여전히 고전적인 영혼의 쾌락이다. 정신분석학적 이론은 이 영혼에 대한 학문을 완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더 많은쾌락을 위해서? 그런데 어떠한 쾌락인가? 누구의 쾌락인가? 누구와 누구 사이의 쾌락인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쾌락은 결코 관계 속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같은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스스로 유일하다고 믿기 때문에 주인은 자기 중심적 쾌락을 절대자의 쾌락과 혼동한다. - P135
한 남자가 어느 세미나에서 이야기 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그에게 첫 질문으로 "당신은 남자입니까?" 라고 묻는가? 어떤 식으로든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우연하게, 또 간접적으로 그에게 물을 수 있거나, 그보다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가 ‘남자다운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에게 "당신은 남자입니까?"라고 묻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은 여자입니까?"라는 질문은 어쩌면 다른 것‘ 이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아마도 ‘남성쪽에서 만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담화 자체가 남성적이라면 이 질문은 의심의 형식으로만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의심이 담화의 현재 기능과는 다른 영역을 열 수 있는 한, 나는 이의심을 축소시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P161
여성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남자들만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들)의 언어 활동속에서는 그러한 개념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질문 Ⅱ를 보라.) - P161
역사적 결정에 대한 불충분한 의문 제기는 분명 정치와 물질의역사와 같은 체계를 이룬다. 정신분석이 소유 체제의 어떤 유형, 담화의 유형 —— 서둘러 말해서, 형이상학의 유형 —— 종교적 신화의어떤 유형 안에 자신이 포섭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자신은 여성의 성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사실 여성의 성욕은 정신분석 이론과 실천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국부적인 문제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역에 감춰진 문화적 토대와일반적 체계의 해석을 요구한다. - P166
. "이러한 작업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 이 조건들은 무의식과혹은 정신분석의 역사, 그리고 ‘정치적·물질적‘ 역사 같은 역사적 조건처럼 확장된 것이다. (이 ‘두 역사는 아마도 욕망과 효용의역사로 지칭될 수 있다.)" 나는 이미 대답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을 기반으로, 그리고/혹은 정신분석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정확한 규정을 내릴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이 그 영역 내부에 남아 있는 한, 내게 이러한 작업은 분명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작업은 오로지 내부 분석적일 수만은 없다. 문제는 정신분석이자신의 역사적 결정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던진다 해도 거의 미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이 그것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 한, 이 작업은 여성 성욕에 관한 질문에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 P166
만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마르크스는 역사가 남성 자신에 의한 남성의 번식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만일 역사가 남성에 의한 남성의 번식 과정, 남성의 자기 번식 과정이라면 —— 이 말은 형이상학적 전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않는다—"인류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임무들만을 설정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직 남자들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아닌가? 마르크스에 의하면, 역사 속에서 과연 남성이 다르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 P167
복잡한 것, 그것은 여성이 만들어 내는 ‘여성의 담화‘가 있을 수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직접적으로 말해서 어쨌든 실제적으로 정치적 실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에 의해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여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려면, 사고 방식과 정치 태도의 극단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단번에 이루어질수는 없다. - P168
-나는 특히 여성 해방 운동들에 관해 생각한다. 여기에서 여성‘에 관한, 그리고 여자들 속에서 여자들이 의미하는 바, 여자들의 집단‘ 이 의미할 수 있는 바에 관한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만일내가 부차성에 관해 말한다면, 이것은 우선 한편으로는 이 운동들이 여러 제도들로부터, 그리고 권력 작용 등과 같은 것들로부터일부러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권력의 영향 밖에서‘ -서 말이다. 때때로 이 운동들은 제도 자체에 __ ‘외부로부터개입을 포함해 —— 개입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여자들이 한 사회 속에서, 그리고 이 사회에 의의해 이미 결정된 장소 안에서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서 부딪치는 난점들로 규명된다. 사회는 이들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배제시켜 왔고, 그들의 몇 가지 주제들, 게다가 구호들을 비난하면서 특히 여전히그들의 특수한 요구 사항들에 대해 무지하다. 이 상황은 또 여자들이 매우 즉각적인 압박과 부담에서 벗어나 그들의 욕망을 공식화할 수 있기 위한 그들 사이의 공간을 구축하라는 요구로도 이해될수 있다. - P169
평화적인 공존?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나는 평화적 공존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권력과 전쟁이란 체계의 함정이다. 우리가 오히려 문제로 제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마치 ‘동류‘의 욕망만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배치되고 작용한다 해도, 왜 ‘타자‘ 의 욕망은 생기지 않는가? - P171
분명 소외는 늘 상호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소유는 아무 방향으로나 결정되지는 않는다. 가부장적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은 여자와 아이들의 소유자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은모든 역사적 결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어머니의권위를 구실로 삼는다. 그러나 이 권위는 남자들이 만든 체제 ‘안에서만 일어난다. 이 ‘남성 중심적 권위에서, 남성의 실패가 없는것은 아니다. 특히 자기 육체에 대한 쾌락에서 그렇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가정에서 자신의 재산처럼 여자와 아이들의 육체와 욕망 · 노동을 양도할 수 있는 자는 남자 - 아버지이다. - P188
정신분석은 ‘페스트‘ 를 일으키지 않지만, 더 이상일으키지않지만, 불행히도 정신분석은 사회 질서와 뿌리 깊게 일치된다고 말할 것이다 - P192
ㅡ제도와의 관련을 통해, 내가 그 안에 혹은 그 밖에 있는가를 아는 질문은 나와 상관 없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성분석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오히려 성차의 견지에서 더 이상 서열을 이루지 않도록무의식에 대한 청취와 해석을 실천하려고 애쓴다고 말하자. 제기된 질문들 가운데 내가 아직 남성들을 분석할 것인지 알고싶은 질문이 나타나곤 했다. 물론 내가 타자를 한 사람에게 굴복시키지 않으면서 재작동시키려는 게 두 성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게 정신분석 파괴를 요구했는가? 나는 오히려 그 작용의 어떤 양식을 분석하려고 애쓴다. 그리하여 그 실천 방법을 변화시키려고 애쓴다. - P192
나는 한 사람의 여자이다. 나는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다. 나는 여성이란 성으로 구별되었다. 내 연구의 원동력은 이러한 언술을 분절시킬 수 없음에, 그리고 이 언술의 창출이 어떤 식으로든 무분별하하고 부적합하고 부적당하다는 사실 속에 있다. 여자가 결코 존재의 속성, 존재할 수 있는 여성이란 성의 특성이 아니더라도, 여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에게서 생긴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성적으로 구분지어진 존재라는 사실이 여성이라는 유(類)를 배제하더라도 말이다. 달리 말해 내 성적 현실의 분절은 담화 속에서, 본질적 구조라는이유로 불가능하다. 내 성은 어쨌든 주체의 속성처럼 추론적 일관성을 보장하는 단언의 기능에서 벗어난다. - P195
지배자 자리에 있는 자는 쉽게 그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사람, 즉 이미 ‘거기에서 제외된 자를 상상하지도 않는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남성‘은 담화의 주도권을 공유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그는 여성과 관계있는 영역에서 이 다른 존재에게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거나, ‘행동‘ 의 권리를 부여하기보다는 말하고 쓰고, ‘여성‘ 으로부터쾌락을 누리려고 애쓰는 쪽을 더 좋아한다. 여성에게 가장 단호한 - P205
경멸과 침묵·거부라는, 그리고 여성 쾌락의 언어 활동을 발견하기 위해 한 여성의작업을 고갈시키는 일체의 반응은 우리가 완전하게 거기에 이르지 못했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 P207
여성은 남성의 이면, 게다가 반대로서만 늘 규정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 결핍 속에 정지하는 것, 이 부정을 폭로하면서 그 속에 정지하는 것, 여성으로부터‘성적 차이‘ 의 기준을 만들면서 동일함의 체계를 전복시키는 것이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차이를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와 문체·해석 · 증명의 다른 어떤 양식이 남성인 당신과관계를 맺으면서 여성인 나의 양식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차이가 다시금 서열화의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일이 가능한가? 타자를 동일성에 복종시키는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가? - P208
그러므로 질문을 던지고, 혼란을 일으켜야하는 것은 당연히 철학적 질서이다. 이 철학적 질서가 성차를 은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화 자체에서 철학의 통제권 장악을 충분히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분석 자신은 자신의 이론과 실천을성차에 대한 잘못된 인식 속에서 수행해 왔다. 정신분석학적 실천과 이론이 분명 철학적 추론성을 문제로 삼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이 거기에서 추방될 수 있을 것 —— 현재 그렇다ㅡ 이라는 사실은여성 성욕의 ‘문제‘ 가 아니었다. - P208
무지함은 상징 그 자체에 의문을 던지지 않고는 여성적 장소로부터 어떠한 것도 저절로 분절될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다. - P211
모든 여성들은 성적 ·사회적 · 문화적으로 동일한 상황에처해 왔다. 여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어떠한 것이든, 여자들은 명확하게 인식하지도 못한 채 모두가 똑같은 억압, 육체의 똑같은 착취, 그들 욕망의 한결같은 부정을 감내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남성 위주의 사회가 그들에게 할당하고 교육시켜 온 위치 · 역할 · 행동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시도하기 위해, 여자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반면에 남자들은 사실상 여자들 사이의 경쟁을 조장해 왔다. 그들에게 항상 강요되어 왔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사회성‘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해방 운동들의첫번째 쟁점, 그것은 여성 각자에게 그녀가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첨예하게 느껴졌던 것이 모든 여성들에 의해 공통된 조건이라는 사실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러한 경험은 정치성을띠게 된다. - P214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기초는 사실 오늘날의 정치에 의해 다시행해진다. 비록 ‘좌익‘ 정치라 해도 말이다. 사실 현재까지 마르크시즘은 여성들에 대한 특수한 착취의 문제들을 거의 책임지지 않았고, 여자들의 투쟁은 가장 일반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 같다. 반면에 이 투쟁들은 정치 프로그램들이 정확하게 요구하는 사회적 착취에 대한 분석 도표를 사용하여 해석될수 있을 것이다. 매번 이러한 도표들을 다른 식으로 이용한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도 지금까지 남성 우월적 권력과 자신들과의 관계에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 P215
구체적으로 이는 물론 여자들이 직업과 학문 분야 등의 차별에맞서, 임금과 사회적 권리의 평등을 위해 계속적으로 투쟁해야만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 즉 남자들과 동등한 여자들은 단순히 그들처럼 될 것이고, 여자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다시 이렇게 성차는 무시되고, 잘못 알려지며, 은폐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양식의 조직들,새로운 형태의 투쟁들, 논쟁들을 창출해야만 한다. - P216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착취를 드러내는 일, 그리고 여성 각자가 처해 있는 곳에서,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직업과 사회적 계급, 성적 경험, 다시 말해, 그녀가 당장 가장 견디기 힘든 억압의 형태에 따라서 각자에게 알맞은 투쟁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P217
무의식과 그 체계를 이해한다는 사실로부터. 이 철학적담화가 담화 질서의 법칙을 부여하지만, 추론적인 체계성 내의 결정적 순간들과 여성에게 부여된 위상을 다시 가로질러야만 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철학적 추론의 규범 속으로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타자‘ 가 보장하는 기능에 대해서, 즉 여성성이라는 가장 커다란 일반성 속에서 특히 그렇다. 문제는 같은 부류의 타자로부터 이 타자 —— 여성 ——를 어떻게 분리시키는가이다. 담화들 가운데 담화인 철학은 또한 ㅡ상당 부분 —과학의 담화를 통제해 왔다. 이러한 시점에서, 고체의 수학적 처리와 관계 있는 액체의 수학적 처리가 역사적으로 지연되었다는 것은 동일한유형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즉 왜 고체 운동이 액체 운동보다 더중요했는가? 또 어떠한 공모가 합리성과 사물들의 이러한 질서를유지하는가? (액체의 작동‘>을 보라.)이 지배적인 합리성으로 인해 여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굶주린 자‘ 로서가 아니라면,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J. 라캉)결국 정신분석학적 담화가 시사하는 것은 이것이다. - P219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 우리의 문화는 여자들의 교환 위에서 세워졌다. 여자들을 교환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연 세계의 무정부적상태(?)로, 동물의 지배라는 불확실성(?) 속으로 다시 추락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질서, 상징적 질서, 간략하게 질서로의 전이를 보장하는 것, 그것은 남자들, 혹은 남자들의집단이 자기들 사이에서 여자들을 유포시키는 것이다. 즉 이것이근친 상간 금지라는 명목하에 인정된 규범이다. - P223
왜 여자들을 교환하는가? 여자들은 ‘집단 생활에 있어서 희소 가치가 있고, 본질적인 필수품들이기 때문이라고 이 인류학자는 단언한다. 남자들과 여자들의 출생 사이에 생물학적 균형이 이루어지는데 왜 이 희소성이 생기는가? "모든 남자들이 그 경향을 지니고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뿌리 깊은 다혼의 경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들의 수가 항상 불충분한 것처럼 제시하기 때문이다. 비록여자들과 남자들이 수적으로 간다 해도 여자들은 똑같이 욕망을품을 수 없고, 결정적으로 욕망을 품는 여자들은 극히 소수이다." (레비 스트로스, 친족의 기본 구조) - P223
그렇다면 남자들은 모두 똑같이 욕망을 품을 수 있는가? 여자를에게는 다혼의 취향이 전혀 없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이 정직한 인류학자에게는 생기지 않는다. 하물며 남자들은 왜 여자들 사이의교환 대상이 아닌가 하는 질문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들의 육체 ———그들이 이용되고 소비되며 유포됨으로써 ——는 사회와 문화를 가능케 하는 조건을 보장하지만, 이 육체는 그 생성이 잘못 알려진하부 구조에 남아 있다. 여성이라는 질료의 착취는 우리의 사회적·문화적 지평에 너무나 필요한 요소이어서 여성은 이 지평 내에서 자신의 독자적 해석을 발견할 수 없다. - P224
다시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부장 사회들을 조직하는 이 모든 교환 체계들, 그곳에서 인정되고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며, 응분의 보수가 주어지는 생산적 노동의 모든 양상들은 남자들의 몫이다. 여자들 · 기호들 · 상품들은 노동력 생산을 위해 항상 남성에게귀속되고(한 남자가 소녀를 살 때, 그가 대가를 지불하는 대상‘ 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나 남자 형제이다), 이것들은 늘 한 남자로부터 다른 남자에게로, 한 남성 집단에게서 다른 남성 집단으로 옮아간다. 노동력은 그러므로 항상 남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고, 이 ‘생산품들은 남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용도와 상호 작용의목적이 된다. - P224
남성이 자기와 유사한 존재인 남성을 번식시키는 역사라는 이 새로운 자궁 안에서, 아내 · 딸 · 누이는 남자들 사이의 관계를 가능케하고, 이 관계의 목적으로 기능할 때에만 가치를 가진다. 여자들을이용하고 교환함으로써 남성 위주의 동성애가 뒷받침되고 유지된다. 사유 작용과 거울의 작용, 동일시와 다소 경쟁적인 소유 작용속에서 이 동성애는 계속 유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작용들은 동성애의 실제적인 적용을 미룬다. 도처에서 지배하면서도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금지되는 동성애는 여자들의 육체·질료 혹은 기호를 통해 작동하고, 이성적 성욕은 지금까지 남성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들, 남자들 사이의 관계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것에대한 한 가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사회-문화적인 동족 결혼‘은 사회 질서에 아주 낯선 이 타자, 즉 여성이 거기에 동참하는 것을 배제한다. 족외혼은 아마도 사람들이 자기 가족으로부. - P225
가부장적 사회의 조직과 이 조직의 기초가되는 상징 작용 - 그 도구와 대표자는 아버지 · 신이라는 고유 명. 사이다 ——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들로 규정하는 발전들을 처음부터 포함한다. - P226
즉 자연을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로 만드는 인간의 ‘노동‘ 에 이 자연을 굴복시킨다는 것, 생산자와 여자들- 상품들을 자기들끼리 교환하는 사유 재산가 사이의 노동 분화, 또 생산자와 사회 질서를 이용하는 자, 혹은 사회 질서로부터 착취당하는 자들 사이의 노동 분화, 그들의 동등함을 결정하는 고유명사에 여자들을 맞추는 것, 가장 ‘고유한 이름을 가진 대표자들———우두머리들 —— 이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여자들을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는 것 같은 부를 축적하려는 경향, 상징의 사회적 작용이 점점 더 광범위한 추상화 쪽으로 나아간다는 것 등이 그 특징들이다. - P226
여자들의 용도는 그러므로 차례로 이들을 소유하는 것보다 그 중요성이 덜하다. 여자들의 ‘유용성‘ 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자들 전체에 대한 소유권들은 그들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용도는 여서 가치의 문지적 기바을 구축한다. - P228
것을 가정한다. 남성이 자연을 개조한다는 것, 오로지 남성들에 의해서 규정된 ‘이가적 기준에 따라 자연이 변화한다는 것, 자연은노동에, 기술에 굴복한다는 것, 물질적·구체적·감각적 자질을 교환이라는 추상적 가치로 환원시킨다는 것, 게다가 모든 감각의 세계를 남성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활동으로 환원시킨다는 것, 여자들 사이에서는 여자들이 평등하지만 그들 외부에 있는 동등성의법칙에 따른다는 것, 여자들을 남자들 사이의 관계를 구체화하는대상‘ 으로 만든다는 것 등이다. - P240
반대로 여성-처녀는 순수한 교환 가치에 속한다. 그녀는 남자들간의 관계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 장소 · 기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한 치장이 사회적통용이라는 쟁점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명목으로 그녀의자연적 육체는 그녀가 대표하는 기능 속에서 소멸된다. - P241
어머니 · 처녀 창녀, 이것들이 여자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들이다. (이른바) 여성 성욕의 특징들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즉 번식활동과 영양 공급에 대한 가치 부여, 정절, 정숙함, 무지, 게다가 쾌락에 대한 무관심, 남성들의 활동‘ 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소비자들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한 유혹, 그러나 자신은 누리지 않으면서 이 욕망에 필요한 물질적 기반으로 자신을 바친다. 어머니도 처녀도 창녀도 아닌 여성에게는 자기 쾌락에 대한 권리가 없다. - P242
아마도 성욕을 다루는 이론가들은 때때로 여성의 불감증에 놀랄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가들에 따르면, 불감증은 여성적 본질이 어떤 유형의 사회에 굴복한다기보다는 이 여성적 ‘본질‘ 의 무능력함으로 더 많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 여성의 성욕으로 요구되는 것은 상품이라는 위상의 특징들을 생소하게 만든다. ‘자연적인 것, 즉 생리학적인 것, 유기적인 것 등을 요구하고, 그리고 아주 모호하게 거부하면서 말이다. - P242
그녀들 사이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사유화에 의해 분리된다. - P244
형이상학의 이 실제적 실현은 아버지나 그 지지자들이 여자들의육체를소유화하는 과정에 그 기본 작용을 둘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등가 체계에, 즉 아버지의 권력 독점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에여자들을 굴복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부터여자들은 자연적 상태에서 사회적 목적의 상태로 옮아가는 자신들의 가치를 부여받을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육체가 용도와 교환가치로 변화함은 상징적 질서를 작동시킨다. 그러나 이 상징적 질서는 이른바 순수한 잉여 가치 위에서 움직인다. 남자들처럼 말할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동물들인 여자들은 수취인은 아니지만 상징의 이용과 유통의 가능성을 보장할 것이다. 그녀들은 사회 질서를 확립하는 상징에 접근하지 못한다. 남자들간의 관계를 형성시켜, 주는 여자들은 말할 수 있는 권리, 게다가 동물적 권리를 포기할때에만 이 작용을 실현한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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