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화사 세미나리움 총서 3
휘트로 지음, 이종인 옮김 / 영림카디널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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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인들은 주어진 일상을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래야 현대 사회의 복잡한 기능을 제대로, 또 효율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시계가 점심시간을 가리키면 식사를 한다.

 물리적 시간의 객관적 순서와 개인적 경험의 시간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점점 더 개인적 ‘지금’을
 시계와 캘린더에 의해 결정된 시간 일정에 맞추도록 강요당한다.



        와, 멋진 책이다. 제목부터가 나 같은 사람들에겐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시간의 문화사’라.. 

        그동안 많이 읽어왔던 특정시대사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역사책들과는 달리, 역사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책이었다. 이정도의 간단한 설명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책을 읽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다른 책 2, 3권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책 하나 읽는데 3주나 걸리다니..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읽은 만큼 남는 것도 상당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인간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져 왔는가를 다루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두루(물론, 저자가 서양인인 만큼, 그의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가 정확한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살피고 있다. 

        가장 주목해서 볼 만한 부분은, 인류의 시간에 대한 관념이 기독교에 이르러서 극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여러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천지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선형론적 역사관이 기독교의 산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지만, 저자는 여기에 오늘날 세속적 역사관이 아무리 기독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아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기도 하다. 또, 영국의 청교도들의 사상이 ‘시간의 균일성’을 사람들에게 확고하게 인식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통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무조건적으로 기독교의 교리에 근거한 역사적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서술의 양상이나, 기독교에 할애하고 있는 지면 등을 고려해 볼 때, 대체적으로 균형적인 서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과연 ‘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대해 한 번쯤 깊은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모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려고 했으나, 절판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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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드샤 칸 역사 인물 찾기 14
에크나스 에아스와란 지음, 김문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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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비폭력 전투’라는 놀라운 발명품을 제공했고,
바드샤 칸은 그 발명품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인물, 바드샤 칸에 관한 전기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바드샤 칸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런 인물이 있었는가 하는 감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갔다.

      바드샤 칸. ‘칸 중의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칸의 본명은 칸 압둘 가파르 칸이다. 인도의 국경지방인 파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평생을 영국의 지배 하에 있었던 파탄과 인도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책의 말미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파탄지방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지방을 말한다고 한다.

        파탄 지방은 대대로 복수의 가치를 매우 높게 여겼고, 무혈투쟁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바드샤 칸의 오랜 기간동안의 비폭력투쟁은 마침내 파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수 만 명이나 되는 비폭력 군대인 ‘쿠다이 키드마트가르’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더구나 그 영향은, 사람들이 수 천 년 동안 가지고 내려왔던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비폭력투쟁이라는 바드샤 칸의 투쟁방식은 일견 매우 소극적이고, 대책이 없는 것 같은 방식이지만, 결국 비폭력이 폭력을 이겼다는 사실은, 그 투쟁방식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게 만든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주의적 대결신봉주의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안타까운 점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화합을 위해 통일 인도를 추구했던 바드샤 칸은 간디와 마찬가지로 절충론자로 오해받기 쉬웠고, 결국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대중이란 얼마나 무지몽매한가.

        신념을 위해 살다가 죽은 사람들의 일생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스승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아닌가. 내 미래의 모습이 이러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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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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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그곳을 떠나는 최초의 가족들 중에 하나였다.
정권을 잡은 보어 인들은 요하네스버그에 백인만 살기를 원했다.
우리 동네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모조리 떠나야 했다.




. 요약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였던 인종분리, 아니 인종차별정책을 이르는 말인 ‘아파르트헤이트’. 이 책은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일어났던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연대순으로 늘어놓은 일종의 모음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모두 어린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어린아이들의 눈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우월주의 정책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가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 감상평 。。。。。。。                     

 

     19,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과학기술의 폭발적인 발전과 그에 따른 삶의 질의 급격한 개선은, 이제 곧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인간에 대한 신뢰를 품고 있는 이상주의자들은 이대로만 간다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설교를 그치지 않았다. 과학과 기술만 발전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장미빛 기대.

 

     이러한 기대를 완전히 깔아뭉개버린 사건 중 하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말도 어이없는 정책이다. 유럽에서 이민을 온 백인들에 의해, 오로지 백인들을 위해, 백인들의 나라를 세우고자 만들어진 이 정책은, 단지 인간을 피부색으로만 구분하고 판단하고, 재단하고, 차별과 비난, 모욕을 하는 멍청한 법률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의식의 발전과 함께 나가지 못할 때 나타나게 되는 비참한 현실은, 자유와 인권을 향한 외침(의식)을 총(과학과 기술)으로 억누르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이 책이 남아공에서 있었던 그 반인류적 정책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고발하는 르포 형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그 땅에서 일어났던 그 차별과 폭력을, 그다지 강력한 비난의 어조나 흥분된 없이 그저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구성에서 각 이야기의 화자가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은 사태의 심각성을 역으로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정확한 영문도 모른 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벽에 부딪히고, 상처받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더 큰 공감대를 갖게 된다. 다만 어린아이의 시각을 사실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글을 통한 강한 정서적 감동이나 전이가 약하다는 점이 아쉽다.(좀 많이 잔잔하다)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문제 해결에 관한 중요한 시발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인간들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읽었던 ‘내 이름은 임마꿀레’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르완다 내전에서도, 소위 서구 강대국이라고 하는 유럽의 열강들이나 미국들은 자국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팔짱을 낀 채 르완다 정부의 대량학살을 방치했고, 오늘도 여전히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정식 재판절차를 밟지도 않은 채 단지 미국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침략전쟁을 통해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을 기분 내키는 대로 살해하고 있다. 중국은 티벳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시키려고 하고 있고, 북한의 당국자들은 수많은 양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군대를 키우는 데 만 온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과학의 발전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무엇에만 계속 집중한다면, 우리는 제 2의 아파르트헤이트, 제 3의 르완다 내전 등을 쉴 새 없이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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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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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 평양에서 도망가는 신하들을 향해 백성들이 한 말



 

. 요약 。。。。。。。                      

 

     징비록. 책 제목이 쉽지 않다. 이 어려운 제목은 ‘지나간 일을 뉘우치고(懲), 훗일을 위해 근신시킨다(毖)’는 뜻을 담고 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조선의 요직에 있었던 유성룡이 자신의 전쟁 경험을 글로 남긴 책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안일한 정부의 대비부터 시작해, 왜적들이 서울을 향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데도 물구하고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그저 도망가기 바쁜 선조와 중신들의 생생한 모습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많은 의병들과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등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 감상평 。。。。。。。                    

 

     책을 읽는 내내 울분을 토하게 된다. 글줄이나 읽을 줄만 알고 자기 한 몸보신하는 데만 눈이 밝았지 나라나 백성들의 삶은 아예 관심권 밖에 두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왜 500년이나 지났는데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치욕적인 일을 당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정학하게 읽어내지 못했던 당시 지도층들의 어두운 눈 때문이었다. 당리당략에만 집중하면서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상대 당파를 헐뜯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실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당연히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중요한 지휘계통의 통일과 지휘권의 독립이라는 기초적인 부분도 확보되지 못했으니 속절없이 왜적들에게 밀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눈앞의 작은 것만 쳐다보고 있으니, 큰 그림을 볼 수가 없었을 터.
 

     아울러 ‘평시’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고 낭비해버린 것도 큰 피해의 원인이었다. 국방을 위해 군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데 실패했고, 과거로부터 내려온 것을 그저 고수하려는 완고함은 적절한 시기에 무기의 개량과 군편제의 개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자연히 전쟁에 임하는 조선의 자세는 시종일관 임기웅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끌려 다니는 형국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또, 유성룡은 알지 못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임진왜란 이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왜란 당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자기가 속한 당파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이익까지도 제쳐두었던 그들은, 이후 남인과 북인, 소북과 대북, 노론과 소론 등으로 나뉘어 그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하지 않았던가.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그 때와 오늘의 가장 큰 차이는, 나라의 지도자들을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때문에 당시 국가가 처한 어려움에 있어서 백성들은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그저 지배층들의 무능력 탓이라고 마음껏 비난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국가가 처한 어려움에서 국민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무능한 지도자들을 뽑은 것은 무능한 국민들이니 말이다.

     허구한 날 욕설과 비방만 해대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텔레비전의 화면과 이 책의 내용이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나라 걱정을 해보게 된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좋은 옛 것을 배워 오늘에 맞춰 사용하고(溫故知新), 실패한 과거를 경계로 삼아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他山之石). 올해 말의 대선, 그리고 내년에 있을 총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아는 멋진 국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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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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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쿠바의 독립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남는 수이다.”


 

 . 줄거리 。。。。。。。                                                             

        아르헨티나 사람이면서 쿠바의 자유를 위해 거의 무모할 정도의 투쟁에 뛰어들었고, 결국 그것을 얻어낸 인물. 하지만 그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전선에 나섰다가 결국 목숨을 잃은 인물. 간단히 몇 줄을 썼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그가 했던 일들이 떠올라 약간의 흥분이 느껴진다. 이 책은 이런 열정적인 사업을 했던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관한 평전이다. 

        다른 평전들처럼 이 책도,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생애를, 주요한 사건들 위주로 적어 넣고 있다. 특별히 체가 카스트로와 함께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이 용어가 엄청난 힘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이익들을 탈취해 가는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라면)국가의 침탈로부터, 쿠바의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벌인 인물이기에, 저자는 그의 무장투쟁의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전투일지나 전사(戰史)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적인 착각이 들 정도이다.

        고작 예순 두 명의 사람들로 한 나라를 바꾼 인물. 그의 ‘위대한 혁명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그리고 그의 어떤 면모가 이런 일을 이루게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의 방법론을 따라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말고.

  

 . 감상평 。。。。。。。                                                             

         책의 제목과 빨간 표지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마치 오래 전에 사둔 책처럼 익숙했다. 아직 책을 채 읽어보지도 못했으면서 나름대로 책에 대해 갖고 있던 그림이 있었으니, 체 게바라라는 제법 과격한 투쟁을 벌였던 어떤 사람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혹시 어려운 사상적 내용들이 잔뜩 등장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겁을 먹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다지 어려운 내용은 없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저자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일생에 관한 여러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다. 체와 가까운 여러 인사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체가 투쟁했던 장소들을 직접 둘러보고, 그가 남긴 기록들을 참고하면서, 저자는 매우 사실적인 전기를 구성해냈다. 이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저자는 가능한 한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체 게바라의 솔직한 모습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면은 역으로 보면 이 책의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체 게바라라는 사람의 사상의 깊은 면을 읽어내기란 꽤 어렵다. 우선 체 자신이 남긴 글이 워낙에 간결하게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고, 저자 자신도 그에 대한 평가를 깊게 하고 있지는 않다. 이래서야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체 게바라의 무장투쟁과 관련된 부분이다. 지금은 쿠바의 독재자로 알려져 있는(이건 누구 관점에서 그런 건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겨우 예순 두 명의 사람들이 탄 보트로 쿠바에 상륙해, 몇 년간의 게릴라 투쟁으로 결국 정권을 교체했던 그의 업적은 거의 경이적이다.

         하지만 그의 투쟁이 근본적으로 옳았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쉽게 긍정적으로 대답을 할 수 없지 않을까. 그와 함께 ‘혁명’을 일으킨 피델 카스트로는 수 십 년을 장기집권하며 지나치게 완고한 ‘우리식 사회주의’(이 용어를 김일성이 만들어 낸 게 아니었나보다)를 고수해 쿠바의 국민들의 삶의 질이 더 향상되는 것을 막고 있다. 체의 사상과 활동은 무엇인가를 바꾸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바꾼 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데에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또, 체가 신봉했던 사회주의에 입각한 공산주의는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욕심의 지배를 받는 인간들에게 적용되기란 매우 지난(至難)한 일이다. 사람에 대해 너무나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체는 인간의 타락이라는 면을 바로 읽어내지 못했고, 결국 그 때문에 죽게 되었다. 그리고 무장을 이용한 혁명이라는 그의 방법론도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시대도 변했고, 사람들도 달라졌다. 하지만 인간을 억압하는 잘못된 권위와 폭정으로부터 사람들을 보고하고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그의 정신만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특별히 게릴라 전술에 대한 선이해가 거의 없었던 나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 약간이나마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좋았다. 요체는 적은 숫자로도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체는 이 부분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전술가이자 전략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진 젊은이라면, 체의 이 부분에 관한 뛰어난 면모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너무 적다고 해서, 가진 힘이 약하다고 해서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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