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요약 。。。。。。。。          

         한 재능 있는 일본 작가가 한국을 방문한다. 그의 책의 한국어판 출판을 기념한 사인회와 행사를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는 공항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출판사의 통역의 얼굴을 보고 순간 얼어붙는다. 지난 7년간 잊지 못했던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단 며칠 동안의 서울 체류. 준고는 홍을 만나 끊어졌던 사랑을 다시 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만나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국인과 일본인, 여자와 남자라는 특별한 상황은 그 나이의 어린 젊은이들이 해결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를 내 주었던 것.

 

        이제 다시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전의 미숙함 때문에 생겼던 문제를 스스로 풀기 위해 준고는 홍을 찾아 나선다. 귀국 하루 전 율동공원에서 만나게 된 홍과 준고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신라 호텔, 강남 코엑스, 남산 서울타워, 분당과 율동공원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국과 일본의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감상평 。。。。。。。          

 

        요약에서도 잠깐 썼듯이 이 책의 저자인 츠지 히토나리는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유명한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냉정과 열정사이’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래 전 헤어진 두 남녀의 재회 이야기라는 큰 틀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사한 중심 소재를 가지고 다른 책을 쓰려면 뭔가 새로운 주변소재가 필수적이다. 저자는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를 크게 바꾸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냉정과 열정사이’가 이탈리아의 중소도시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 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아시아의 서울을 그 배경으로 썼다. 또 앞의 책이 고미술 복원이라는 주인공의 직업을 통해 ‘과거’라는 단어가 가지는 서정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 두드러지는 도시적 모습이 자주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언급한 두 소설은 계속해서 비교의 대상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약간은 불만스러운 부분.

 

 

        작가의 개인적인 능력을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떻게 보면 큰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는 매우 잔잔한 사건들을 가지고도, 저자는 책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있다. 일본인다운 소심한 글쓰기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섬세하다는 표현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하나. 이 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두 명의 작가가 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란다. 이번에 상대 작가는 한국인 소설가 공지영 씨. 서둘러 나머지 책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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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온 편지
시모어토핑 지음, 정회성 옮김 / 한문화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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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요약 ]

 

        중국을 사랑하는 미국인 젠슨. 그는 도교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에 머물면서, 그 땅의 사람들, 건축물, 문화 등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이 점차 심각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중국의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내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는 수많은 예술품과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심각한 타격은 중국인들 사이에 나타나는 극한의 대립이었다.

 

        전쟁은 젠슨의 연구도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중국을 떠나야 하는가 싶었던 젠슨에게 CIA 소속의 사람들이 접근해 온다. 그들은 젠슨의 중국거주를 도와주는 대신, 그가 정보부를 위해 모종의 일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들이 들춰내는 자신의 약점들을 듣고, 젠슨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즈음 젠슨이 알게 된 한 여성이 있었다. 릴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천진 대학교의 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다. 부패한 국민당 정권 대신, 중국의 개혁을 공언하고 있는 공산당이 집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릴리안. 그녀가 처음 젠슨을 만나게 된 것은 이 운동에 젠슨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어디 사람 일이라는 게 뜻대로만 되던가. 젠슨과 릴리안 모두 서로에게 점점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둘이 달콤한 사랑 놀음에만 빠져 있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특히 공산당 소속의 인민해방군이 점차 베이징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위기감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국민당이 베이징을 사수하기 위해 저항을 한다면, 수 천 년의 문화재와 건물들이 모두 잿더미가 될 판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한 가지 특명이 주어진다. 베이징을 공산당에게 양도하는 협정을 맺는 일이다. 졸지에 젠슨은 두 진영 사이에서 위험한 중개인으로서 활동하게 되어 버렸다.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내전 당시의 중국의 상황 가운데서, 베이징의 파괴를 막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 다니는 젠슨. 과연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볼 것인가, 릴리안과의 사랑은 또 어떻게 될까.


 

 


[ 감상평 ]

 

        썩 유명한 제목의 책이라고 생각해서 골랐는데, 알고 보니 동명의 다른 책이 있었다. ㅡㅡ;; 책을 다 읽고서야 알게 됐는데,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다 내 무지 탓이다.

 

        ‘혁명기의 중국, 혁명보다 강렬한 사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멋진 말이다. 하지만 과연 책의 내용이 부제에 상응할 정도의 무게감과 감동을 지니고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 쳐줘서 부제의 전반부인 ‘혁명기의 중국’까지는 어느 정도 소설을 통해 드러냈는지 모르겠는데, 나머지 부분의 ‘혁명보다 강렬한 사랑’이라는 말은 말 뿐인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 전체에 걸쳐서 젠슨과 릴리안의 사랑 이야기는 그다지 큰 비중을 갖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그 둘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접촉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거의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할 뿐이다. ‘사랑’이 ‘혁명’보다 앞서는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작가가 기자출신이라 그런지 사실묘사에는 충실했지만, 감정묘사나 이야기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떨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이다. 혁명도 사랑도 완성되지 못하는 모습. 하지만 작가는 그 부분에 대한 적절한 의미부여에도 실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적절한 감동도 주지 못하고 있다.

 

 


        인물의 성격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혁명을 이겨내는 사랑을 이루려면 적어도 상당한 결단력과 강력한 추진력, 판단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젠슨이나 릴리안이라는 인물 모두 이런 면에 있어서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언뜻 개인의 주관은 강한 것 같지만, 중요한 순간이 오면 언제나 자신의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강한 세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이래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지 않는가.

 


        역경을 이겨내는 아름다우면서고 강력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을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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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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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적이야말로 구세주다.

적의 존재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역동적으로 살 수 있다.

적이 있음으로써 삶이라는 이 음울한 사건은 웅장한 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 요약 ]

 

        일본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일곱 살 때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한 벨기에 소녀의 이야기다. 이런 유랑의 삶을 살게 된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직업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는 여기서 끝. 이 소설은 일곱 살짜리 소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중국 주재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의 외국인 거주 구역으로 이사를 온 소녀.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소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낀다. 남다른 관찰력과 깊은 사고를 좋아하는 소녀는 ‘공산주의 국가란 선풍기가 있는 나라’라는 독특한 고찰을 한다. 공산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경색된 느낌과 경제적인 빈곤을 매우 잘 잡아낸 고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일곱 살짜리의 눈으로 본 공산주의 사회’와 같은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아이는 아이일 뿐. 이야기는 외국인 거주 지역이라는 폐쇄된 지역에서 벌어진 아이들 사이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에는 ‘전쟁’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는 독일인 아이들과 여타의 유럽지역 아이들로 구성된 ‘연합군’과의 ‘골목전쟁’이다. 소녀는 연합군의 일원이 되어 독일인 아이들을 골탕 먹이고 괴롭힌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전쟁 말고도 또 하나의 전쟁이 소설에는 숨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밀고 당기기’가 그것이다.

 

        두 건의 거대한 전쟁에 직접 참여한 일곱 살짜리 소녀의 이야기. 저자는 소녀의 눈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소녀의 심리상태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 감상평 ]

 

        책의 표지 바로 다음 장에 저자의 통통한 얼굴이 실려 있다. 책이 발행일이 1999년이라서 그런가? 최근에 나오는 책들에 실려 있는 갸름한 얼굴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화장기술, 혹은 촬영, 조작 기술의 발달인지, 아니면 대대적인 다이어트를 감안한 것인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아멜리 노통브가 쓴 책이 아닌가. 작가가 쓴 다른 책들에서 받은 ‘감동’이 어느 정도 이상이었기에, 저자의 이름만 보더라도 이제는 손이 가게 되어 버렸다.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저자의 다른 소설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라는 책과 유사한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 세살짜리 아이의 눈으로 본 일본 세계라는 주제였다면, 이 소설은 일곱 살짜리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니까.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두 책은 비슷하다. 사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은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과 이어진다.

 

        하지만 내용상으로 넘어가면 좀 다른 느낌이다. 앞의 책이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세 살짜리 꼬마가 바라본 세상의 경이로움이 주요 주제라면, 이 책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조금 더 성장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여전히 소녀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이해하지만, 뭐 소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철저히 ‘나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가.

 

 

        작가가 비교적 초기에 쓴 이야기라서 그런지, 최근에 나온 책들과는 달리 왠지 풋풋한 느낌도 드는 책이다. 하지만 아멜리 노통브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처음부터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기에는 약간 어려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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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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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플렉트뤼드는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단조롭고 게으르고 목적 없는 헛된 삶을

견뎌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애는 자신의 치열한 생활과 금기에 안도했다.

적어도 자신은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1. 요약

 

        19살짜리 아내가 남편을 죽여 버렸다. 그것도 임신 중에. 감옥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플렉트뤼드라는 중세식의 이름을 지어주고는 자살을 해버린 어린 엄마. 그리고 이모의 집에서 셋째 딸로 자라게 된 플렉트뤼드. 소설은 비극적으로 시작한다.

 

        자라면서 아름다운 외모와 평범하지 않은 기질로 주목을 받던 플렉트뤼드는, 그녀에게 매료된 이모이자 엄마의 적극적인 지지(어쩌면 애착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는)를 받아 강한 자의식과 함께 감정적인 기질을 키워나간다. 그런 그녀가 춤, 그것도 발레에 흥미를 느낀 것은 자연스러운 일. 발레의 여주인공만큼 그녀의 강한 자의식과 격정적인 감정상태를 잘 드러내줄 만한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발레학교에 들어가고, 그러면서 많은 것을 얻고, 또 잃어버린 플렉트뤼드. 갑작스러운 사고는 그녀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러는 동안 독자는 또 다른 갑작스러운 사고에 맞닥뜨리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2. 감상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딸려 있는 책이라 기대감을 가지고 뽑아들었다. 사실 이미 작가의 다른 책들을 보고 작가 자신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설사 다른 이름이 붙어 있더라도 당연히 뽑아들었을 책이다. 하지만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생각보다 책의 내용은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작가의 다른 책이, 독자의 마음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능수능란한 글솜씨를 자랑했던데 비하면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스토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단조로움 때문일 듯싶다. 주인공인 플렉트뤼드의 일상을 있는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다.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적도, 어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있었다고 해도 그다지 부각되고 있지 않다. 심지어 마지막에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가 왜 등장하는지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참 실망스러운 전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렵다.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이 보여주는 ‘평균 이상’의 감정적인 격앙상태에 관한 묘사들을 잘 생각해보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사실 지금으로선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너무 바쁘고, 너무 피곤하다. 지금으로선 그나마 손에 책을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자신을 죽여버리다니. 당혹스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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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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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갈증은 일주일을,

허기는 이 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

 

[요약]

 

        꿈 많은 브라질 소녀 하나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몇 번의 풋사랑에서 실패를 했던 마리아는, 그 문제들을 잘 정리해줄 좋은 조언자를 만나지 못한 채 보냈고, 그 결과 사랑에 관한 한 자신을 옭아매는 소녀로 자란다.

 

        19살이 되던 해, 마리아는 휴가 차 갔던 해변에서 한 외국인을 만난다. 그는 스위스의 클럽에서 브라질 식의 삼바 댄스를 출 댄서를 구하던 중이었다. 마리아는 그의 눈에 띄어 스위스로의 여행을 떠난다. 얼마 간 그 곳에서 댄서 생활을 하던 마리아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무단으로 결근을 했고, 가게에서 쫓겨나게 된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마리아. 그녀는 모델이 될 꿈을 품고, 자신의 사진을 여러 곳에 보낸다. 몇 달이 지나서야 온 전화. 하지만 전화의 내용은 그녀가 기대하던 내용과는 달랐다. 전화의 상대는 그녀와의 하룻밤을 사려는 남자였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명할까? 마리아는 고민을 하지만, 1000프랑이라는 거금의 돈을, 그녀는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마리아는 몸을 파는 여자로 살아간다.

 

        코파카바나라는 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마리아. 그녀는 하루에 세 명의 남자에게 몸을 파는 대가로 900프랑의 돈을 번다. 수많은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오직 돈을 벌어 고향에서 농장을 가꿀 생각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리아에게, 어느 날 랄프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랄프는 화가였다. 마리아에게서 ‘빛’을 발견한 그는, 급격히 마리아에게 빠져든다. 처음에는 경계를 취했던 마리아도, 조금씩 랄프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진정한 정신적 사랑을 경험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으로부터 ‘분리’ 시켰던 마리아도 마침내 랄프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감상]

 

        다시 읽게 된 파울로 코엘료. 이번 책은 섹스에 관한 책이었다.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성행위에 대한 묘사들은, 자연히 이 책에 ‘19금’이라는 등급표시를 붙이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리라. 왜 사람들은 성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한 책에는 제약을 가하는 걸까? 아마도 코엘료는 충분히 이런 질문을 할만한 사람이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성(性)에는 성(聖)적인 부분도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11분’이란, 파울로 코엘료가 생각하는 성행위의 지속시간이다. 고작 11분. 사람들은 그 11분을 위해 결혼을 하고, 직장에 나가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저자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좀 억울하다고 생각한 걸까? 저자는 이 11분에 좀 더 성스러운 의미를 집어넣고 싶어 한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신적합일의 상징으로서의 성창(聖娼)을 인용하며, 성행위에 좀 더 신비로운 무엇인가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코엘료의 재능은 이런 주장을 매우 감미로운 어휘들을 사용해, 독자에게 부드럽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 부드러움을 통해 기존의 가치체계(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적’인)의 허위와 가식을 공격한다. 코엘료는 ‘다빈치 코드’ 식의 ‘무식한’ 때려 부수기 식의 공격법을 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더 위험해 보인다. 코엘료는 ‘혼동시키기’라는 방법으로 독자의 사고를 뒤흔든다.

 

        상대적으로 성적인 부분에서 개방적인 유럽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쉽게 용납되기 어려운 성에 대한 관념이 책 전체에 걸쳐 매우 자유롭게 써져 있다. 반복은 이상함을 평범함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법. 책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주인공의 매춘행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독자들에게 덜 이상하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고통과 아픔은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못한다. 무서운 힘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은, 최근에 나온 ‘오 자히르’라는 책에 나온 것과 거의 유사하다. 인물들의 처지와 이름이 달라졌지만, 소재는 달라졌지만 핵심부에 이르러서 두 작품은 매우 유사한 느낌이다. 여기에 코엘료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한 ‘연금술사’라는 작품에서 말하는 것도 크게 보면 거의 같은 맥락이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처음의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There is nothing noble, in his no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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