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길이다 - 루쉰 아포리즘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이철수 그림 / 예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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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려워도 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해야 한다.

자고로 개혁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진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개혁에 냉소적인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은

  개혁이 효과를 본 뒤이다.

 

 요약 。。。。。。。                                                         

 

        ‘루신 아포리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아포리즘(aphorism)'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루신이라는 사람이 남긴 짧은 격언, 경구 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일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듯, 이런 책은 참 내기도 쉽고, 읽기도 쉬운 책이다.

 

 

 감상평 。。。。。。。                                                      

 

        어차피 경구집이라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경구를 남긴 사람의 인격이나 삶이 된다. 적어도 말한 대로는 살아야 나중에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써 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죽음을 찬미하는 말을 많이 남겼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목숨은 1초라도 더 이어보려고 추잡한 삶을 산 사람이라면, 영 인용하기가 거시기 할 테니.)

 

        다행히 루신이라는 사람은 적어도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은 아니다. ‘아Q정전’이라는 유명한 소설(아쉽게도 못 읽어본)을 쓴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뿐 아니라 격동적인 중국의 한 시대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살아간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말들에는 그 시대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한 지식인의 노력이 묻어 나온다.  그의 이런 노력이 얼마나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역시 비슷한 격동적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많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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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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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인의 비극은 사고사를 운명의 탓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지."

 

  줄거리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사고가 나 혼수상태가 된 어머니와 그제야 알게 된 어머니의 과거의 사랑. 그렇다고 불륜을 다룬 것은 아니다. 결혼하기 전, 젊었을 때 있었던 첫사랑 이야기다.


        별다른 외상이나 통증도 없건만, 간이라는 장기에 생긴 병은 그래서 더 위험한 법이다. 간에 병이 생겨 입원을 하게 된 한 사내.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또 한 명의 남자. 자신보다 훨씬 병이 더 진전되어서 이제는 너무나 쇠약해져버린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남자는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 그 아이를 품고 살아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당신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암벽등반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가지고 이 가족의 심리상태를 표현해 가는 작가의 능력이란..


 

 감상평                                                

        책을 열 때까지는 몰랐지만, 알고 보이 이 책은 하나의 단편이 아니라 세 개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었다. 위의 줄거리에 간단히 적어 놓았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그다지 특별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병이나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직면하는 일, 큰 병에 걸린 아이..

 

        가만히 보면 작가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누구도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된 상황들. 작가의 문제인식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 빠졌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아쉽게도 작가는 별다른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들이긴 하지만, 이야기에서 어떠한 종류의 극복이나 해결책을 말하지 못한다. 그저 현실을 그대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슬픔이 가득한 현실. 현대인들이 자랑하는 물질 중심의 과학문명도 이런 문제들을 완전히 추방시킬 수는 없는 것.

 

        적어도 현실이 이 정도가 되면 초월자를 의지하려는 마음이 들만도 하지만, 잘난 현대인들의 이성은 그마저 용납할 수 없나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대사는 이런 복잡한 심경을 잘 대변한다.

        “나도 기도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 하지만 어디에다가 기도해야할지 몰라서 바보처럼 암벽을 타고 있는 건지도 몰라.”

 

       현실에서 받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는 무기력한 현대인들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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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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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나의 단계가 끝나고,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다음 단계가 바로 다가온다.

  그런 식으로 해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그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이해하게 된다.

 



  줄거리 。。。。。。。                                                   

 

        독일에 의해 강제 병합된 헝가리에 사는 유대계 소년 죄르지. 악명 높은 반 유대 정책에 의해 주거나 이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나름대로는 어렵지만 꿋꿋히 살아가고 있는 그 가정에도 마침내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가 강제 노역장으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다가온 위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소년 역시도 강제 노역에 동원되기에 이른 것이다. 어느 날 아침의 버스에서 갑자기 강제로 끌려 내려진 소년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소년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고작해야 1, 2초밖에 안 되는 순간 다행히도 가스실이 아닌 노역장으로 배정을 받게 된 소년. 이제부터 힘겨운 수용소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몇 차례의 이동을 통해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소년의 몸에는 상처가 생기고, 정신  세계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채 하루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수용소 생활. 삶과 죽음의 경계선 상에서, 소년은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감상평 。。。。。。。                                                   

 

        강제 수용소와 가스실이라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독일의 정신병자 집단들. 그들에 의해 희생을 당한 수 백 만 명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인간이 과연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로 남아 있다. 혹독한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은 한 명의 소년은, 이제 자신의 남은 일생을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바치기로 작정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운명’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기록된 책이다.


 

 

        그 끔찍한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결코 흥분하거나 과격해지지 않는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기록된 이 책은, 마치 저자 자신의 일기장을 넘기는 것처럼, 매우 사실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결코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담담한 설명에 잠시 저자가 경험했다는 그 이야기의 진정성이 의심되기까지 할 정도이다. 무엇이 저자로 하여금 이러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을까?

 

        저자는 인생을 하나의 ‘단계’에 비유한다. 사람은 각 단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단계에서 그 단계의 목표에 도달하게 되면, 또 다른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모든 단계를 한 번에 다 경험하는 일은 없다. 오직 한 번에 하나의 단계를 거칠 뿐이다. 저자는 자신은 매 단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 단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고백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옥과 같은 상황이었지만, 저자는 그 안에서 행복(어쩌면 정확히 말하면 ‘성취’)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는 매 순간 자신의 삶의 주인이었고,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수용소 생활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일견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는 저자의 이 말은, 극한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인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저자는 보통의 사람이 보지 못하는 보다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이 견디기 힘들 것만 같은 어려움을 극복해 낸 저자의 경험은, 오늘날 작은 문제에도 세상이 다 무너지기나 한 것처럼 지나친 감정의 저조기에 빠져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듯싶다. 고압적이거나 설교 투의 문체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체험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저자는 어떤 연설보다도 강하고 진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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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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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면 그토록 꼼꼼히 리뷰들을 챙기면서

결혼이라는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의 리뷰도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



 

 

 요약。。。。。。。               

 

        일본인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쓴 동명의 소설과 같은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써 내려가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이미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시도되었기 때문에) 작업을, 한국과 일본의 남녀 작가가 다시 한 번 시도 한다.

 

 

       20대 초반에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최홍과 일본인 작가 지망생 준고. 어린 나이에 사랑과 동거를 시작한 그들은 어떤 어려움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국과 일본이라는 문화적, 역사적 차이,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는 결국 그 어린 사랑을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그리고 7년 후 다시 만난 두 사람. 이미 각각은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적응해 있지만, 서로를 직접 본 순간 그들의 마음은 요동하기 시작한다. 둘은 과거의 오해를 풀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앞서 츠지 히토나리가 남자인 준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면, 공지영은 최홍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해 나간다.


 


 감상평。。。。。。。            

 

        앞서 요약 부분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듯이 이 책은 ‘냉정과 열정사이’이라는 소설과 여러모로 비견된다. 츠지 히토나리의 경우는 두 이야기에 모두 참여한 작가인데, 그래서 그런지 두 이야기를 썼는데도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진행방식이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상대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와 공지영은, 여성 작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서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내 생각엔 공지영 작가의 경우가 좀 더 감정의 선이 깊은 듯싶다. 에쿠니 가오리의 경우는 섬세한 묘사가 탁월하게 두드러진다면, 공지영은 오랜 생각 끝에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서 내뱉는다.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오랫동안 서로를 잊지 못하는, ‘진정한’ 사랑. 사랑 이야기야 누구나 반감을 갖기는 어려운 이야기일 테지만, 책을 읽는 동안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만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면 된다’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거의 종교적 진리처럼 새겨진, 분명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명제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덮고 있다. 사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사랑을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참 모습인 양 여겨지는 시대이니 말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들은 그러한 사랑을 하라고 용기를 북돋고 있으며, 영화들은 사랑만이 우리가 믿어야 할 유일한 신이라고 선포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 중독증이다. 감정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좋은 상황으로 호도하고, 삶의 비전을 ‘사랑의 왕국을 세우는 데’ 두라는 강력한 메시지. 어쩌면 오늘날 기독교적 가르침의 가장 큰 경쟁자는 이런 세속적인 사랑에 대한 헌신일지도 모른다.

        사랑 이야기를 읽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 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소설에 나타나는 중독증상은 신중히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쁜 이야기지만, 잘못하면 새로운 우상을 전파하는 경전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의 감정만을 신뢰하라는 가르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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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6-12-0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사랑이 인생이 전부인 마냥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심리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사랑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감정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소설을 이끌어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로쏘의 주인공은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긴 하지만, 일상생활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사랑도 하나의 일상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좀, 작정하고 연애소설로 가려고 한 얄팍함이나 상업성이 보여서 좀 그렇더군요. 그렇다고 에쿠니 소설이 상업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면 좀 곤란하죠 ㅋ서평 잘 읽었슴다.

sayonara 2006-12-27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댓글도 멋집니다. 저도 공지영씨의 소설에 왠지모를 거북함이 있었는데, 노란가방님과 픽팍님의 글을 읽으니 이해가 갑니다. ^_^

노란가방 2006-12-27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맙습니다. 칭찬은 언제 들어도 좋죠.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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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요약 。。。。。。。。          

         한 재능 있는 일본 작가가 한국을 방문한다. 그의 책의 한국어판 출판을 기념한 사인회와 행사를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는 공항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출판사의 통역의 얼굴을 보고 순간 얼어붙는다. 지난 7년간 잊지 못했던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단 며칠 동안의 서울 체류. 준고는 홍을 만나 끊어졌던 사랑을 다시 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만나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국인과 일본인, 여자와 남자라는 특별한 상황은 그 나이의 어린 젊은이들이 해결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를 내 주었던 것.

 

        이제 다시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전의 미숙함 때문에 생겼던 문제를 스스로 풀기 위해 준고는 홍을 찾아 나선다. 귀국 하루 전 율동공원에서 만나게 된 홍과 준고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신라 호텔, 강남 코엑스, 남산 서울타워, 분당과 율동공원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국과 일본의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감상평 。。。。。。。          

 

        요약에서도 잠깐 썼듯이 이 책의 저자인 츠지 히토나리는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유명한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냉정과 열정사이’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래 전 헤어진 두 남녀의 재회 이야기라는 큰 틀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사한 중심 소재를 가지고 다른 책을 쓰려면 뭔가 새로운 주변소재가 필수적이다. 저자는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를 크게 바꾸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냉정과 열정사이’가 이탈리아의 중소도시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 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아시아의 서울을 그 배경으로 썼다. 또 앞의 책이 고미술 복원이라는 주인공의 직업을 통해 ‘과거’라는 단어가 가지는 서정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 두드러지는 도시적 모습이 자주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언급한 두 소설은 계속해서 비교의 대상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약간은 불만스러운 부분.

 

 

        작가의 개인적인 능력을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떻게 보면 큰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는 매우 잔잔한 사건들을 가지고도, 저자는 책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있다. 일본인다운 소심한 글쓰기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섬세하다는 표현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하나. 이 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도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두 명의 작가가 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란다. 이번에 상대 작가는 한국인 소설가 공지영 씨. 서둘러 나머지 책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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